충격적이고 기괴한 영화. 하지만 그 속에 의미있는 알맹이가 꽉 들어차 있다. 이런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영화의 쇼킹한 면이 한껏 부각된, 그리고 이게 연출가가 의도한 비판적 의식의 구현이라면 영화의 차원은 더 높아진다. 매끄러운 플롯 속에 이런 내용을 담아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연출가가 영화에서 이런 작업을 해 낼 때 우리는 그 연출가를 대가라 칭한다. 해다마 세계적으로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산업에서, 대가의 아우라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한 해 한편 만나면 운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며, 두 편 정도 만나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뭐, 여러말 주절거렸지만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대가 연출가의 아우라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다. 헌데, 단돈 10원에 아주 빼어난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자주 가는 모 사이트의 모바일 서비스 덕분이다. 모바일로 보면 pc상에서보다 10배 정도가 싸니, 정말 우습게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바일용 영화들은 대부분 그저그런 영화들 뿐이거나, 오래된 명작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주 간혹, 선댄스영화제나,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부산, 전주)에서 초빙됐던 영화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 만난 작품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됐던 영화다. 우리나라 타이틀은 <은밀한 가족>으로 돼 있는데, 원제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 원제는 <Miss. Violence>다. 아마도 우리 영화에서 '~가족'타이틀로 대박난 영화가 많아서 이 타이틀을 뽑은 거 같은데, 원제의 강렬함을 반감시키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어쨌든, 공포영화를 감상하듯이 봤다. 분명히 유럽의 한 가족을 그린 영화였지만 일반적인 유럽 가족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독한 가부장적 가족 사회를 모델로 한 듯보였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렇게도 많이 보아온 '가족 소재'의 영화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드코어 영화로 유명세를 탄 <살인마 가족>은 여기에다 대면 전혀 기괴하거나 공포스럽지 않다. 살인마 가족일지라도 그들은 끈끈한 사랑의 가족 공동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가족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기괴하다. 영화의 첫 시작부터가 충격적이다. 이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어머니-손자&손녀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대가족이다.  영화는 11세 손녀의 생일 축하로 시작된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면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는 딸들. 그런 와중에 생일을 맞은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베란다로 내려선 다음(너두도 자연스럽게) 평온한 표정으로 땅으로 떨어진다. 카메라는 피흘리며 사망한 딸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의 프롤로그를 장식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 가족의 모습은 시종일관 공포스럽고 기괴하다. 가족 구성원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소리내서 울지 않는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할아버지 역시 울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자신의 딸(죽은 손녀의 엄마)에게 화를 내는 게 전부다. 죽은 딸의 엄마도 그냥 흐느끼는 정도. 어색한 고요함과 평온함의 실체는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이 가족은 어느 누구도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할아버지만 임시직 일을 할 뿐이다. 그것도 가족들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임시직일을 다니다가 그만둔다. 이 할아저지의 주요 일과는 '돌본다'는 사랑하에 가족 구성원 모두를 간섭하고 참견하는 거다. 이 외에 하는 일이라곤 쳐먹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딸이건 손녀건 모두 일정 시간을 굶긴다. 그도 그럴것이 이 가족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그렇다.

 

영화 초반부터 먹는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가족의 식탁은 언제나 메인화면으로 설정된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먹는 분위기는 무척 강조되는 듯하다. 집에서 가족들이 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청소하고 TV를 본는 것 외에는 항상 멍청하게 앉아 있거나 무언가를 먹고 있다. 사실 일하는 사람이 없기에 먹는 것이 중요해서 자꾸 먹는 걸 비춰주는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러닝 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대에 가서야 이 장면들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이 가족의 돈벌이 실체가 드러난다. 가족의 분위기상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실체가 막상 드러나니, 좀 역겨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의 손녀들을 매춘 도구로 사용하여 끼니를 때우는 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해외 토픽에도 가끔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그리 놀라운 건 없다. 자기 딸을 수년간 강간해온 짐승같은 아비들도 뉴스에 곧잘 소개되지 않는가.

 

하지만 영화는 이 모티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러닝 타임이 끝나갈수록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요인은 바로 여기에 기인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감독은 이 모티프를 자신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지점이 플롯의 윤리적인 면(인륜)을 완벽히 넘어서면서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이 영화를 한 차원 높게 평가하는 동인이 되게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는 백미 중 하나는 이 가족의 상황을 온전히 연기해 내고 있는 배우들에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연극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곤한다. 배우들은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다. 말하지 않을 때에는 같은 장소(항상 집이다)에서 항상 뭔가를 행한다. 식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에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다. 카메라라를 보고 배우가 연기하는게 아니라 카메라가 이들을 따라가서 그 행위의 의미를 담는 듯한 인상이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카메라로 담았다는 게 정확할 표현일 듯싶다.

 

그렇기에 가족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을 나타내는 데 이보다 더 끝내주는 효과는 없었을 듯싶다. '가족의 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혈실의 공포' 그 자체였다고 느꼈으니까. 감독이 영화의 배역을 모두 연극 배우들로 캐스팅한 이유도 관객들이게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이 영화는 매우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앞에서도 <살인마 가족>보다 더 공포스럽다고 했는데, 어째서 '가족 영화'가 이런 느낌을 들게할까? <Miss. Violence>가 <살인마 가족>보다 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유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 전원이 절망감과 치욕감 그리고 불합리함을 가족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을 시종일관 관통하는 침묵에 고스란히 들어난다.

 

이 은밀한 가족은 남(사찰나온 복지위원들)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며 위장된 평온함과 침묵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덮기에 급급하다. 이들 각자의 자아는 할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불합리하게 억압을 당하지만 끊임없이 참고 또 참는다.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런 공생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할아버지의 행동을 참아 낸다.

 

그도그럴 것이 영화 내에서 할아버지의 존재는 곧 가족의 생존과 동일시된다. 아마도 어렸을때부터 가족의 무의식속에 이런 생활패턴이 습관적으로 자리잡아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가족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그 어떤 윤리적인 잣대도 쉽게 들이댈 수 없다.

 

 

 

 

현대 윤리학으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의 노림수가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감독의 의도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감독이 '그리스 사태(디폴트)'를 보고, 그리스 국민에게 경각심을 울려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는 일사천리로 썼지만, 가족과 국가가 잘 유비되겠끔 다듬는 작업을 6개월에 걸쳐 행했단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의식의 극대화를 위해 배우들을 연극배우들로만 캐스팅했다. 그만큼 영화를 통해 어떤 충격적 장치를 만들려고 애쓴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독은 '은밀한 가족'의 기괴한 행위를 통해 그리스에 커다란 주먹감자를 날린다. 할아버지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억압과 폭력은 그리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고, 할아버지가 가족을 망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 위정자들이 그리스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아주 분명히 보여진다. 복지 위원들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여 사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IMF로 대변되는 외부 감사를 빗댄 것이다. 할아버지가 했던 방식으로 그리스는 IMF를 속였다는 거다. (여기에는 그리스 국민들이 사찰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그 비판의 최고점은 할아버지가 손녀를 매춘시키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니네들(그리스 위정자들)이 그리스 국민을 치욕스럽게 욕보이며 그리스 국정을 운영했다는 거다. 감독이 그리스에게 커다락 빅엿을 날리는 이 대목. 웰메이드 비판 영화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덧]

1. 나중에 알긴 했지만 역시 이 작품을 연출한 안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는 제7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역시 대가 작품은 영화제에서도 간과할 수 없나부다. 거기다 남우주연상까지 탔으니 작품의 퀄리티는 더 말하면 입아프다.

2. 영화 마지막에 할아버지에 가한 폭력.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방식으로 끝맺음 한 것이 조금 아쉽다.

3. 이 영화와 그나마 같이 볼 수 있는 책이 책세상에서 나온 <폭력>이지 않을까 한다. 바로 아래 내용 때문에..

폭력엾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남이 겪는 폭력을 마치 내가 겪는 폭력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공격이 자신에게 폭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단련하고..

 

그래도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윤리적 차원보다는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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