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상어 중 하나가 '패션디자인'이란 단어다. 이 단어는 무수히 회자된다. 관련 책도 정말 셀 수 없이 나와 있고, 끊임 없이 출간되고 있다.
일단 '패션디자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 된 책들을 보자.
이런 책들은 딱 세 부류다. 패턴 메이킹 방법을 그림을 통해 알려주는 책이거나 패션지 기자 출신이 쓴 스타일 이야기. 그리고 의상학 및 패션학과 교수가 자기 교과서로 쓴 책.
위와 같은 책을 보면, 한결같이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얘기는 없다. 오로지 '패션'과 디자인' 그리고 '스타일'을 디자이너들과 함께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도 쓰는 사람 마음대로다. 세부 전공자에 따라 다루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책의 내용은 대개가 비슷하다.
아무 책이나 열어보면, 주구장창 디자인 얘기하다가 갑자기 디자이너 예기로 넘어간다. 그도 아니면 스타일 얘기하다가 갑자기 브랜드와 패턴 얘기로 여백을 메우고 있다.(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전무하다.
예전에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마릴리 혼 & 루이스 구렐의 <의복>(까치,1988)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의복 ; 제2의 피부'였다. 그나마 이 책이 의복의 본질을 어느 정도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의복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의복이 문화로써 어떻게 자리매김했고, 어떤 상징을 얻었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해 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책에도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개념적 고찰은 거의 없다. (이상하게도 이 책에는 패션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패션'이 뭔가? 스타일인가 아니면 패턴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유행인가? '패션'이라는 단어는 이들 각각을 지칭하지만, 스타일, 패턴, 유행, 브랜드 그리고 디자인을 아주 가뿐하게 넘어 다닌다. 정말 꺼리길 것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아주 복합적(이중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패션 스타일'이란 게 바로 그런 거. 개념이 매우 넓은 단어임에도불구하고 이 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저자는 정말이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뭐, 전무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왼쪽의 책들은 그나마 '패션'에 대해서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긴 하다. (특히 패션 철학은 그나마 시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나열식이다. 이도저도 아닌 가장 좋지 않은 소개 방식이랄 수 있다. 역시나 이들 책에도 패션에 대한 개념적 고찰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의상과 패션디자인>은 정말 심하다. 옷과 패션을 그냥 동일선상에다 놓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해댄다. 엄연히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자기 얘기를 해 나가야하는데, 의상에서 그냥 브랜드로 넘어간다. 뭐, 다른 패션디자인에 관계된 책이라고 다를 건 없어 보인다.
'디자인'이라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종합대학치고 디자인과가 없는 학교는 별로 없다. 산업디자인 과나 실내디자인 과 등 여타 '디자인'이 붙은 학과가 설치돼 있고, 전문대학에서도 꽤 많은 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디자인 학계나 업계에서 이 '디자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작업이 하나도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달 <철학자의 디자인 공부>라는 책을 보았는데, 거기서 저자가 밝힌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 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스테판 비알이라는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을 소개해 보겠다.
디지인은 이미 백년 전에(독일에서) 탄생했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된 이론조차 없이 고아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다. 이 점에 대해 마리 오드 카라에스는 <디자인 연구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프랑스 디자인에 대한 참고 문헌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 어떤 명확한 자료도 없으며, '디자인의 영역과 목표를 상세히 밝혀주는' 그 어떤 시도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디자인과 실제로 밀접하게 연결된 영역들(예를 들면 미술이나 공학)과 디자인 사이를 나눠주는 확실하고 절대적인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분야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침투성으로 인해 어느 시점에 한 분야가 멈추고 다른 분야가 시작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p 14)
패션과 디자인 선진국 중 하나라는 프랑스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말해서 뭘할까. 특히 패션과 아주 밀접하지만 패션의 따라지로 격하된(그런 인상이 짙은) '디자인'은 정말 난감한 분야다. (패션은 디자인의 변형만을 주어 다음 철 수입이 저절로 확보되는 신기한 분야다.)
계속 비알이 말하는 바를 따라가 보자. 그러면 위에 내가 언급했던 디자인 분야(학계와 출판물)의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난다.
디자인은 이제 역사가 분명히 정립되고*1), 직업상의 실무가 확실히 파악되었으며, 전 세계 교육기관의 목록이 작성된 데다, 작업 방법 및 도구의 수준도 높아지고, 영햑력을 발휘하는 주요 인물들이 만인에게 알려진 분야다. 그렇기에 이런 분야가 오늘날 이토록 막연한 개념 속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히 놀랍고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pp 14-15)
바로 이거다. 역사가 분명하고 만인에게 알려진 분야이지만 합의된 개념없이 중구난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거다. 이와 같은 이상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 분야는 무엇이 있을까?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현재 '디자인'은, 그러니까 쓰는 사람 마음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비록 최근에 '디자인'의 개념이 '사고에 대한 기획'이라고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막연한 개념을 교통정리 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패션이라는 개념은 '디자인'의 하위 개념이 분명하지만 자기(패션)가 디자인을 좌지우지 한다. 여기에 현재 '패션 디자인'에 대한 문제 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패션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으니, 디자이너들은 자기 마음대로 이 개념을 갖다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패턴으로, 어떤 사람은 브랜드로 또 어떤 사람은 스타일로.
패션이 무엇인지 성찰해 보지 않으니 디자이너들은 항상 소재를 바꾸고, 길이를 변화시키며 주된 색상을 해마다 정한다. 이게 유행을 타면 패션 디자이너들은 또 다음해를 위해 같은 일은 반복한다.
물론 소재가 중요하고, 패턴이 중요하며 디자인(시루엣)이 중요하다. 세련미와 완성도는 최고로 간주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패션을 평가하는 기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패션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위에서 패션은 디자인의 하위 영역이라 했다. 그 이유는 옷의 경우 무언가를 고안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별로 없기에 그렇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기 때문.
그래서 패션의 경우는 특이한 패턴의 경우도 특허를 받을 수 없다. 프라다의 어떤 옷 디자인(형태)을 누가 베꼈다 하더라도 프라다가 소송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어떤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기에 패션의 아주 기본적인 토대는 옷(옷의 형태)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행과 스타일과 패턴은 이 기본적인 옷(의복)으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원형적인 옷의 형태는 단순하다. 단순하게 두 개로 대별할 수 있다. 몸통, 팔, 다리를 각기 따로 감싸는 천을 이은 것. 이게 옷의 첫번째 형태이다. 두번 째는 원피스형이다. 조선시대 두루마기나 그리스 원로원에서 입던 옷도 모두 통으로 된 천으로 몸을 감싸는 것이다.
현대의 옷은 이 두 옷으로로부터 나왔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야 한다. 왜 남자는 기본적인 형태가 바지와 상의를 따로 입게 됐는지. 그리고 여자는 왜 치마를 기본으로 한 원피스형이 기본적인 형태가 됐는지.
또한 우임은 어째서 남자 옷이 됐고, 좌임은 여자 옷이 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언제 왜 그렇게 됐는지도 확실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좌임과 우임 그리고 단추 여밈의 방향은 근대 복식을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렇다.
벗고 입음에 대한 고찰도 해 봐야 한다. 야생의 시절 인간은 벗고 있었다. 문명이 시작되자 옷을 입게 됐지만 현대에 들어서조차 사람들에게 옷이 필요없는 시간이 늘고 있다. 사람에게 옷이 필요하지 않을 때, 즉 벗고 있을 때 디자이너들은 옷에 대해 좀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옷의 벗음과 입음을 통해 몸은 자신의 안과 밖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를 주절거려 봤지만, 결론은 하나다. 디자인처럼 패션도 자신의 기본 개념에 대한 막연함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입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면 '옷을 짓는 다'는 행위에(패션이 아니다!) 대해서도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세계적인 패션 명품 회사가 패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은 패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기에는 반복되는 주제, 기발한 아이디어, 현란한 디테일에 대한 그럴듯한 포장만이 넘쳐난다.
이제 패션은 디자인의 하위 영역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형태가 왜 기능을 따를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게 아니라면, 형태의 디자인으로 자신을 정의내리려 하지 말고,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런 시도는 패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낼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1) 디자인은 역사가 분명한 분야가 됐다. 19세기 중반 디자인의 원형적인 개념은 영국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독일을 거쳐 미국에서 온전히 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