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주 들르는 블로그가 있다. 이 블로그 주인장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석사를 준비한다. 자주 드나들며 포스팅 된 글을 읽으니 이 분의 전공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분석철학을 전공한다고 밝힌 글이 있었던 거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보면, 아주 간명하고 내가 생각하는 바랑 일치하는 글이 많다. 그래서 자주 방문한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내 분신이 쓴 거 같다.--;; 특히 유형을 3가지로 나눈 것까지!
근데, 분석철학에 관심을 가지면 대동소이한 생각을 갖게 되나 보다. 어쨌든 너무도 내 생각과 흠사한 글이라 이 분의 글을 가져와 봤다. 주로 학생을 언급하지만 학생들을 일반인으로 치환하여 읽어도 아무 무리가 없는 글이다~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건너 건너로 몇몇 학교의 문과생들이 써놓은 글을 보게 된다. 이상한 글이 너무 많다. 내가 본 사례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특수한 사례라고 하기에는 그런 글을 너무 많이 봤다. (중간 생략) 어디서 배웠는지 글에다 희한한 짓을 한다. 읽다 보면 화가 난다. 글이 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 읽을 수 없는 게 아니다. 별 내용도 없는데 이상한 말을 덕지덕지 덧붙여서 읽기 힘들게 만든다.
그 중에는 이상한 글을 써놓고도 자신이 심오한 글을 써서 남들이 자신의 글을 읽기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가독성이 좋은 글을 중학생이나 읽는 글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중학생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라는 건 대학생이 다룰 내용을 중학생이 읽을 정도로 쉽게 쓰라는 말이다. 내용은 중학생 수준인데 하도 비틀어놔서 대학생의 추론능력을 요구하는 글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을 써 놓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글을 여러 번 읽으며 음미하기를 바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이상한 글을 쓰는 문과생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신조어 만들기 형'이다. 헤겔이나 하이데거도 아니면서 자기식대로 용어를 만든다. 이들은 자신의 글에서 그러한 용어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서 새로운 말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인지를 설명하면 그 용어가 불필요한 수식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막 갖다 쓰기 형'이다. 아무 관련도 없는 개념을 글에다 막 갖다 붓는다. 사는 게 덧없다는 주제로 글을 쓰는데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파르메니데스부터 시작해서 비트겐슈타인과 노자와 용수가 나온다. 그런 글을 읽으면 글쓴이가 사는 게 덧없어 하는지를 알게 되고, 동시에 고등교육이 얼마나 덧없는지도 알게 된다.
세 번째 유형은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형'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쓴다. 사진도 구도가 있고 영상도 편집이 있는데, 이들은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쓴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경우는 술에 취했거나 프로포폴을 맞았을 때뿐인데, 그걸 그대로 문자로 옮긴다.
내가 학부 때 관찰한 바로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는 어설프지만 정상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과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경우 판단력이 있는 사람들은 침을 뱉고 나가는데, 판단능력이 그저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며 조금씩 망가진다. 그리고 후배가 들어오면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한테 전수한다. 그래서 졸업할 때쯤이면 오히려 신입생 때보다 글을 못 쓰는무리가 생긴다.
문제는 세 가지 유형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 기자가 되겠네, 평론가가 되겠네, 칼럼니스트가 되겠네 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점이다. 내가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할 바 아니지만, 그들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으로서 동생을 대하는 형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다. 헛꿈 깨고 빨리 기술을 배우라고.
by 어쩌다보니 대학원생
글쓰기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꽤 의미심장한 글인 듯하다. 흠, 갑자기 글쓰기 책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