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그림이 좋아서 구입했습니다. 서사를 엿볼 수 있게 상징화한 구도가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그림이 순수함을 지향하는 느낌이랄가요. 정말 다른 그림들과 다른 지점이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소장품 경매에서 매우 저렴하게 나온 좋은 작품들 중 하나였는데 작가가 생소하여 낙찰받은 후 작가에 대해 공부를 좀 해봤습니다.
근데, 처음에 박영 화백을 검색하면 판화가 박영하고 같이 검색됩니다. 첨엔 누가 그림의 원작자인지 모를 수 있는데, 조금만 검색해 보면 52년생 홍대 서양미술학과 졸업한 분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작가를 탐구할수록 성인의 인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작품을 팔아 2억원을 모금할 수 있을 정도면, 그림의 가치가 어느 정도되지 않는 이상 힘들겁니다. 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그의 기획작품전을 통한 그림 판매는 항상 억대를 찍었던듯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학교를 짓거나 파산직전의 사업가를 구할 수 없었겠죠. 아마도 박 화백이 그 모든 수익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전업작가였다면 그림을 팔아 수백억을 벌었을 겁니다.
불교계에 법정 스님이 있다면 기독교계에는 박영 화백이 단연 돋보입니다. 프랑스에 유학할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지만, 유학생활 중 신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다는 소설가 김승옥. 김 작가는 신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붓을 꺽었습니다. 그리고는 선교활동에 그의 모든 삶을 바쳤습니다. 김승옥 작가는 신비한 체험을 한 이후 자신의 작품이 신에 비해 말할 수 없이 비루하다고 한 바 있습니다.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아 한국문단에서는 큰 손실을 봤죠.
하지만 박영 화백은 신학 박사로 목회를 했지만 화가의 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팔아 선교 후원을 하고 교회를 짓는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낮아지기 위해 해남으로 내려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면서 영감이 충만할 때, 다시 말해 지독히 고독하여 신의 인도함을 느낄 대 그림을 그린답니다.
불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거기다가 라틴어와 히브리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진짜 우리나라에 몇 안 된다는 라틴어와 히브리어 능통자), 교수를 역임했던 엘리트 중 엘리트가 모든 걸 버리고 신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젊은날의 우쭐함과 우월함을 반성하면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그렇게 낮아지고자 그렇게...
(그의 아내분(이화대 영문과 출신)도 그의 이런 생활을 응원하고 지원한다니 놀라운 부부입니다.)
아프고 낮은 자들을 위해, 그리고 신의 영광을 위해 죽는날까지 그림를 그리고자 한다는 화백의 인터뷰를 보면서, 고 이태석 신부가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화가의 그림값은 화가의 삶과 밀접한관계가 있죠. 박수근, 이중섭, 손상기 등등. 우리는 압니다. 그들의 그림값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는 걸. 그건 그림에 화가의 드라마틱한 삶이 녹아있기때문이죠.
화가의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박 화백은 오래 전에 서울 미대 김병종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작가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그림의 소재는 항상 어머니와 소가 등장한다는군요. 제가 낙찰 받은 그림을 봐도 박화백의 작품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크기까지 20호! 정말 가치있는 작품을 너무도 저렴하게 낙찰받아 미안할 정도.
아마도 내가 구입한 그림 중 제일 가치있는 그림이었다고 생각하며, 아니 우리나라에서 기라성 같은 화가가 많았지만 그 화가들 중 단연 돋보이고 내게 감탄사를 나오게 했던 화가이며 그런 화가의 그림을 소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이미 대가에 오른 김종학 화백 만큼 작가 아우라를 가진(아니 이미 넘었다고 나는 판단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우리시대의 마지막 성자적 화가라 칭송하고 싶은 분입니다.
이 그림을 소장품 경매로 내 놓으신 분의 사연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삶과 그의 철학을 아는 분이라면 헐값에 그림을 처분할 마음을 먹지 않았을 거라 사료됩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그림을 잘그리는 분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도구로 사용하는 화가는 정말 손에 꼽습니다. 그런 작가 중에 자신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금전적 가치를 버리고 낮아지고자 자발적 가난이라는 구도자적 길을 가는 화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나누지만, 작가적 이상은 한없이 치열하여 오직 영감이 온몸을 휩쌀때 작품을 시작하고, 작업 후 맘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폐기한다니 그가 세상에 내 놓은 그림은 모두 그의 온전한 삶의 기록이라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작가가 초야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