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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평점 :
이 책은 “시극[詩劇]”이다. 마치 연극 무대를 감상하는 것과 분위기이지만, 산문보다는 대체로 운문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그런 시극. 처음 접하는 장르의 책이기에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가운데, 그 안에 빠져들게 된다. 금세 읽을 분량이기에 한번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훑어보며 그 여운을 즐겨본다.
무대는 폐기된 해수욕장의 작은 파출소. 한 사내가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들어온다. 업혀온 사내는 김씨다. 김씨는 고무인간이다. 반은 인간, 반은 고무인 고무인간. 그의 다리는 기껏 15센티미터 가량. 그 다리를 기다란 고무 튜브로 감싸고, 길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다를 향해 기어가다,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온 거다. 이렇게 파출소에서 둘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이 둘의 대화가 시극의 주를 이루고 있다.
김씨는 땅바닥을 기다가 사람들에게 손을 밟히면 하늘을 올려본다 말한다. 그렇게 올려다본 하늘엔 물고기들이 날아다닌다고. 김씨는 물고기가 되길 꿈꾼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항 안의 물고기 지느러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단다. 그곳 물고기의 지느러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김씨는 꿈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물고기가 되어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는 꿈이 있다. 언제나 바닥이 익숙한 그는 다시 태어나면 물고기가 되고 싶어 한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인생보다는 물고기가 되어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침이 더 낫다 여겼을 터. 어쩌면, 그 꿈을 찾아 바다로 기어갔던 건 아닐까? 어쩌면, 김씨는 자신의 몸 절반을 뒤덮고 있는 고무 튜브가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되길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씨는 땅을 기어 다닐 때, 선글라스를 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자신의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보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리어 사람들이 김씨의 눈을 보면 불편해할까 봐 선글라스는 낀단다. 사람들은 김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왜? 작은 동정을 지불하기도 부담스러워서일까?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내 안에 자리한다.
그는 또한 나비의 연한 발목을 바라보곤 했다고 말한다. 실처럼 가늘고 긴 나비의 발목, 하지만, 그에게는 그나마 가는 발목조차 없다.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어쩜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을지도.
이런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파출소 직원은 이제 은퇴가 몇 날 남지 않은 늙은 경찰이다. 이제 곧 폐쇄될 해수욕장, 그리고 그 안의 파출소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그런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 자폐를 앓던 아들이 집을 나가고, 그 아들의 죽음과 함께 아내 역시 죽음을 선택했던 것. 그는 다리가 있지만, 그 역시 파출소와 그 관할 구역을 제외하곤 어느 곳도 향할 수 없는 다리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가슴 속에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술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어쩜, 우리네 인생은 이처럼 아픔이 가득할까? 우린 누군가의 다리가 되어주기보다는 왜 누군가의 남은 다리나마 밟고 살아가는가? 왜 우리는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아픔 하나씩 감추고 살아가야만 하는가? 안타깝다.
그렇다. 인생이란 누구나 아픔 하나쯤 감추고 살아가는 게다. 그렇기에 극 중에서 김씨는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땅바닥에 있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그것은 바로 ‘몰래 떨어진 눈물’이라고. 이처럼 누구나 남이 알까 두려워 남 몰래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인생이다. 그런데, 그 눈물은 언제나 따뜻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래, 오늘 우리가 남 몰래 흘리는 눈물, 아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도 따뜻하다는 것. 우린 이것을 잊지 말자.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은 따뜻한 것이다. 우리 안에 아픔 하나씩 감추고 있다 하지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다. 작가는 김씨를 통해 말한다. 사랑은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것이라고. 그렇다. 우리에 삶 속에 다리가 찢기고 그저 지느러미 하나 불쑥 튀어나와 있다 할지라도, 그 상처 난 지느러미를 서로 부비며 노는 행복이 우리에겐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삶의 지느러미를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맞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