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 모르는 것 - 박세현 산문집
박세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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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현 시인의 책을 두 번째로 만났다. 첫 번째 만났던 책은 『시인의 잡담』이란 에세이집이었다. 이번에 만난 책 역시 에세이집으로 『시만 모르는 것』이란 제목이다. 『시인의 잡담』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다. 참 자유롭게 쓴 글들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마지막 5부인 <잘 모르는 만큼만>은 격식(?)을 갖춘 글로 느낌이 다른 부분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시인의 글들이 그의 전작인 『시인의 잡담』처럼, 자유롭게 잡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때론 가볍고, 때론 헤픈 농담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시인의 깊은 통찰력이 언뜻 엿보이기도 하기에 때론 가벼우면서도 때론 묵직한 느낌을 갖게 한다. 헤픈 농담 같지만 때론 진득하게 삶을 조우하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의 농담 속엔 때론 세상을 향한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기도 하다. 때론 그저 찻잔을 기울이며 일상의 수다를 떠는 것과도 같지만, 그 안에서 은연 중 스며 나오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 소재는 아무래도 저자가 시인이기에 시에 대한 내용들이 많다. 시란 무엇인지 저자 나름의 생각과 정의들을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뿐 아니라, 저자는 다른 문학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타인의 시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한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며 문학의 길을 걷는 이들의 쓸쓸함 내지 고단함도 종종 엿보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한 문학에 대한 열정과 고집도 느끼게 된다.

 

아울러 저자가 글 속에서 슬쩍 소개하는 여러 책들과 글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책들을 기록해놓고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 저자는 ‘읽는다’에 대한 재미난 말도 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읽는’다는 말은 잉는다로 발음되면서 ‘입는다’ 혹은 ‘익는다’는 의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저자의 생각을 내 생각에 덧씌우는 것 내지는 남의 생각을 통해 나를 익혀가는 것이 책 읽기의 한 습속인지도 모르겠다. (43쪽)

 

왠지 오늘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게 된다. 책 읽는 기쁨과 행복이 좋아 많은 책들을 읽고 있지만 과연 그런 책읽기를 통해 남의 생각들이 내 인격 내 삶을 과연 얼마나 새롭게 입히고 있으며 익혀가고 있는지 말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음에도 여전히 인격이 익어가지 못하고 더 인격이 날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을 품어 본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닌 책이 내 삶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또한 누구에게 읽히려는 욕심보다는 본인이 읽으려는 욕망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의 고백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의 글쓰기(이런 서평도 마찬가지고)가 누군가에게 읽히려는 욕심만으로 써진다면 그건 어쩌면 가짜가 아닐까? 무엇보다 나를 향한 글쓰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본인이 읽으려는 욕망을 이렇게 적용해본다.).

 

저자는 이 책의 글들을 통해 말하길, 자신의 책을 받은 누군가에게서 ‘잘 읽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돌려받을 때, 거개는 자신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며, 또한 ‘아, 네, 잘 읽었습니다.’를 싸고도는 그 상견례식 독후감은 ‘시 별 것 없던데요.’와 같은 심금의 무덤덤의 교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118쪽)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치 가벼운 잡담과도 같은 그의 글들을 모은 『시만 모르는 것』, 참 잘 읽었다.^^ 하지만, 정작 시인의 시는 접하지 못하고 시인의 에세이집만을 두 권 읽었음에 괜스레 송구한 마음도 없지 않다. 다음번에는 시인의 시집을 펼쳐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으로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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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인이지만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인정욕망이 있지요. 진정한 작가라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보다
실력있는 평론가나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뭏든 건필하세요. ^^

비로그인 2016-02-1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글 잘 쓰시네요. ^^

중동이 2016-02-11 21: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작가뿐 아니라, 누구나 다 인정받길 원하는 욕망이 있죠.^^ 단지 심혈을 기울여 적어간 작품들을 독자라는 명목으로 애먼 비판을 하게 될까 두렵더라고요. 시인님의 작업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칭찬도 감사하고요~^^
 
청년 우장춘 담쟁이 문고
이남희 지음, 고찬규 그림 / 실천문학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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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앎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다. 때론 개인적인 기억이나 앎이 왜곡될 수도 있고, 때론 집단적인 기억이나 앎이 왜곡될 수도 있다. 여기 또 하나의 왜곡된 앎이 있다. 바로 우장춘 박사에 대한 우리들의 앎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우장춘 박사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다. 그는 바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학자가 아닌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우장춘 박사의 신화에 대해서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우장춘 박사는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힘겹던 우리 민족에게 육종학을 통한 품종 개량 등으로 먹거리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이런 업적과 ‘씨 없는 수박’이 잘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씨가 없다는 건, 되려 번식의 길이 막히기에 먹거리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치명적인 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물론 ‘씨 없는 수박’을 개량한 것이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청년 우장춘』을 읽음으로 그런 막연한 의문이 다시 떠올랐고, 뿐만 아니라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의 업적이 아니다. 이는 일본 사람 기하라의 업적이다. 단지 우장춘 박사는 당시 농업 정책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던 시대였기에 과학의 힘을 실감케 하여 농정의 권위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씨 없는 수박’을 실현해 보인 것뿐이란다.

 

오히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이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무와 배추를 개량하고, 대관령에서 씨감자를 생산하고, 제주도가 귤의 산지가 된 것, 우리 땅 많은 곳에서 코스모스가 피게 된 것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업적은 피폐했던 이 땅에 육종학이라는 씨앗을 뿌렸다는 점일 게다.

 

아울러 그의 과학적 접근이 대단히 멋스럽다. 당시 다윈의 적자생존의 이론이 바이블처럼 이해되던 때, 오히려 협력과 상생을 이야기하였을 뿐더러 실제 과학적 증명까지 이루어냈던 게 바로 우장춘 박사의 위대한 업적이다.

 

정말 약육강식이 보편적 원리일까요?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계의 일부분을 관찰한 이론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사회는 대체로 협동, 협력하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습니까? ... 어떤 사회가 약육강식,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면 결국은 멸망하지 않습니까? 역사에는 그런 예가 많고. 작게는 한 가족을 봐도 그렇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투쟁한다면 그 가족은 약해지다 해체되고 말 겁니다. 또 약자도태가 당연하다면 가족 중 약한 사람이 있다면 죽게 하나요? 아니죠. 보살펴서 같이 가죠. 협력하면 제 기능을 발휘해서 더 나아진다는 걸 아닐까요. 그렇게 서로 돕고 협력할 줄 알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다윈의 적자생존을 보편적인 이론으로 두루 적용하는 건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172-3쪽)

 

투쟁해서 강자가 살아남는 게 보편의 법칙은 아니다! 개체는 공존, 협력하니까 발전한다! 서로 다른 개체들이 결합해서 보다 발달된 종이 탄생한다! 협력과 상생이야말로 발전 원리다!(280쪽)

 

이 얼마나 멋진 접근인가. 게다가 이 논리는 오늘날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된 논리이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책 『청년 우장춘』은 우장춘 박사의 이러한 과학적 업적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삶을 살아야 했던 우장춘. 반쪽 조선인이며, 또한 많은 조선인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조선인임을 포기하지 않고 조선인임을 자긍하며 살아갔던 우장춘. 그러면서도 자신의 업적을 일본에 빼앗겨야만 했던 아픔. 그의 젊은 시절의 아픔과 눈물, 고뇌와 결단 등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는 우장춘만의 고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 시대 젊은이들이 모두 당면했을 고민과 아픔, 눈물을 소설은 우장춘의 이야기를 빌어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시대적 상황, 그 시대의 암울하고 불확실한 시대상과 함께 우장춘이 붙잡고 나아갔던 공존과 협력의 사상을 통해, 오늘 우리 역시 이러한 공존과 협력을 붙잡고 나아갈 때 멋지고 아름다운 미래가 열리게 될 것임을 작가는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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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잎
권순식 외 지음 / 한숲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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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보다 아름다운 잎』 분명 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텐데, 잎이 더 아름답다 말하니 눈길이 간다. 여섯 명이 공저자인 이 책은 수목원에서 근무하는 가드너들의 고민에서 출발한다(여섯 명 가운데 네 명이 춘천의 제이드 가든 수목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꽃이 만발한 시기에 수목원을 더 많이 찾게 마련일 게다. 꽃의 화려함과 그 향기에 취하기 위해. 하지만, 정확한 개화시기를 아는 것은 짝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처럼 쉽지 않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기에 개화시기를 맞추지 못한 방문객들은 아쉬움을 안고 관람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겠고. 이에 언제라도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같은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면 이란 고민에서 이 책이 시작된다.

 

책은 말한다.

 

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닮았다면 잎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을 닮았다. 꽃이 달콤하고 아찔한 향기를 풍긴다면 잎은 그들만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꽃이 효율적이지만 지속적인 아름다움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잎의 도움이 필요하다. 꽃의 화려함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잎의 은은함과 꾸준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8쪽)

 

잎이 주는 은은함과 꾸준함, 비록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 않다할지라도 늘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을 닮은 잎이라니. 이런 설명을 듣고 보니 앞으로는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될 잎들이 예사롭지 않겠다. 물론, 그럼에도 난 여전히 꽃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다. 하지만, 이젠 꽃만이 아닌, 잎에 담겨진 아름다움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오늘 우리네 삶이란 게 꽃보다는 잎이 더 보편적인 삶일 게다. 그럼에도 우린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식사, 평범하지 않은 나들이를 SNS에 올리고 허세 아닌 허세를 즐기게 될게다. 이게 잘못이란 말은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평범하지 않은 일탈적인 순간이기에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할 테니. 그럼에도 잎과 같은 시간들, 특별한 일이 없는 극히 평범한 나날들 안에서도 꽃보다 더 아름다운 매력을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잎들은 대체로 평범하지 않다. 다시 말해, 평범한 녹색이 아닌, 무늬나 색이 아름다운 잎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다. 은은함을 이야기하였기에 진정 평범하고 흔한 잎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꽃이 아닌 잎에서 꽃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업은 분명 멋지다. 이 책은 무늬나 색이 있는 잎들에 대한 식물도감과 같은 책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곁에 두고 볼 가치가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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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샬 - 판단력 있는 아이 위인들의 어린시절
헬렌 A. 몬셀 지음, 오소희 옮김 / 리빙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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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북 출판사에서 계속하여 번역 출간되고 있는 <위인들의 어린시절> 시리즈 가운데 『존 마샬 : 판단력 있는 아이』를 읽었다. 먼저, 존 마샬이 누구인지 검색해본다.

 

존 마셜(John Marshall, 1755년 9월 24일 - 1835년 7월 6일)은 미국의 정치인이자, 법률가로 제4대 연방 대법원장을 역임하였고, 의회 의원, 제4대 미국 국무장관도 역임했다.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그의 친척이다.

 

마셜은 버지니아 주 포키어 카운티 저먼타운 (현재 미들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독립 전쟁 초기에 컬페퍼 민병대의 일원이었으며, 1776년 7월 30일 제3 버지니아 컨티넨탈 연대에 입대하여 대위로 승진하였다. 그는 많은 중요한 전쟁에서 공헌을 했다. 그는 전후 변호사가 되어, 버지니아의 연방당 조직을 결성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능력은 중앙 정부로부터 주목받아 여러 번 외교관을 제시받았지만, 버지니아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1797년에 프랑스와 협상을 위해 삼인위원회 위원직을 수락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표 탈레랑은 협상 테이블에 앉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요구하였고(XYZ 사건 참조) 마셜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국가의 명예와 존엄을 지켰다. 그 후 그는 의회 의원, 또한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휘하에서 국무 장관을 역임한다. 연방 의회 선거에서 연방당이 대패하자, 1801년 연방 대법원장이 된다. 수많은 헌법상의 중요 판결, 대법원의 권위를 높이는 초석을 쌓아 후세에 가장 존경받는 판사가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5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연방 대법원장을 역임한 사람의 어린 시절은 어떨까? 미국의 위인들의 어린 시절을 위주로 보여주는 <위인들의 어린시절> 시리즈답게 이 책 역시 존 마샬의 어린 시절을 위주로 보여준다.

 

마샬은 15남매의 맏이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서도 아무래도 맏이로서의 책임감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다. 마샬은 아버지가 지방의회 일로 며칠씩 집을 비울 때면, 가장의 역할을 의젓하게 톡톡히 해냈다.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 감당하는. 이처럼 어린 나이부터 가정을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 모습을 보며, 오늘의 아이들은 많은 도전을 받으리라 여겨진다.

 

뿐 아니라, 소박한 삶도 눈에 띤다. 물론 그 시절의 삶이야 모두 소박하였겠지만, 그 소박함 가운데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 언제나 부족함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행복을 누리는 모습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감사가 사라진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또한 이 책에서 발견하는 존 마샬은 뭐든 즐기는 소년의 모습이다. 일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노는 것도 즐기는 모습이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며 공부에 눌려 있는 모습이 아닌지. 이 책을 통해, 오늘 우리 아이들이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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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의 식채
미부 아츠시 원작, 혼죠 케이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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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의 식채』란 다소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제목인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일본만화인데(그래픽노블이란 단어가 이 책과 참 잘 어울린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6명의 문호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나, 그들이 좋아했을 법한 음식에 대해 찾아가는 작업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 여섯 명은 다음과 같다.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의 작가 나츠메 소세키. 결핵으로 오랜 세월 병상생활을 하다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세키와는 친구이기도 한 마사오카 시키. 역시 결핵으로 24세의 나이에 요절한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 79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단골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미식가라 불린 작가 나가이 카후. 삶에 대한 집착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묘사한 출세작 『라쇼몽』을 쓰고, 나츠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35세의 나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여러 차례 자살 미수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결국 정부와 함께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

 

이들 가운데 내가 알거나 그 작품을 읽은 이는 아무래도 나츠메 소세키 뿐이다. 하지만, 나머지 작가들 모두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 한다.

 

이야기는 정치부 기자였지만, 지방 지국으로 좌천한 카와나카 케이조라는 기자가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의도로 문호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추적하여 글로 쓰는 작업을 하면서 시작된다. 때론 그들이 평소 자주 들렀다는 식당의 음식을 먹어보고 소개하기도 하며, 또 상당부분은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가 사랑했을 법한 음식을 추리해나가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이 음식이 이들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으며, 작가들은 이 음식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비록 그 작가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라도 금세 이들 작가가 사랑한 음식들에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이 가운데, 마사오카 시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오랜 병상생활을 해왔던 시키는 그날그날의 일기를 자세히 기록했다고 한다. 특히, 죽기 전 1년가량의 기록인 <앙와만록>에는 그가 그날그날 먹은 음식들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주인공인 케이조 기자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만년의 시키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아직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뜻하죠. 와병 중이었던 시키는 매일 그런 생각을 곰씹으면서 간병을 받으면서 먹고 싸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요.(53쪽)

 

왠지 숙연해지는 장면이다. 먹을 수 있음이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이 말. 그렇기에 그날그날 주어진 음식을 감사함으로 모두 입안에 집어넣고 하나하나 자세히 기록해야만 했던 시키의 모습. 왠지 오늘날 가끔씩 먹는 음식들을 사진으로 예쁘게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림으로 허세를 부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하는 내용이다.

 

이 책, 『문호의 식채』는 한권의 단행본으로 끝나기가 아쉬운, 이런 작업이 계속됨으로 또 다른 많은 작가들에 얽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그런 책이다. 큰 기대 없이 만났지만, 너무나도 큰 행복을 선물해준 그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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