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우장춘 담쟁이 문고
이남희 지음, 고찬규 그림 / 실천문학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앎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다. 때론 개인적인 기억이나 앎이 왜곡될 수도 있고, 때론 집단적인 기억이나 앎이 왜곡될 수도 있다. 여기 또 하나의 왜곡된 앎이 있다. 바로 우장춘 박사에 대한 우리들의 앎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우장춘 박사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다. 그는 바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학자가 아닌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우장춘 박사의 신화에 대해서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우장춘 박사는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힘겹던 우리 민족에게 육종학을 통한 품종 개량 등으로 먹거리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이런 업적과 ‘씨 없는 수박’이 잘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씨가 없다는 건, 되려 번식의 길이 막히기에 먹거리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치명적인 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물론 ‘씨 없는 수박’을 개량한 것이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청년 우장춘』을 읽음으로 그런 막연한 의문이 다시 떠올랐고, 뿐만 아니라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의 업적이 아니다. 이는 일본 사람 기하라의 업적이다. 단지 우장춘 박사는 당시 농업 정책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던 시대였기에 과학의 힘을 실감케 하여 농정의 권위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씨 없는 수박’을 실현해 보인 것뿐이란다.

 

오히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이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무와 배추를 개량하고, 대관령에서 씨감자를 생산하고, 제주도가 귤의 산지가 된 것, 우리 땅 많은 곳에서 코스모스가 피게 된 것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업적은 피폐했던 이 땅에 육종학이라는 씨앗을 뿌렸다는 점일 게다.

 

아울러 그의 과학적 접근이 대단히 멋스럽다. 당시 다윈의 적자생존의 이론이 바이블처럼 이해되던 때, 오히려 협력과 상생을 이야기하였을 뿐더러 실제 과학적 증명까지 이루어냈던 게 바로 우장춘 박사의 위대한 업적이다.

 

정말 약육강식이 보편적 원리일까요?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계의 일부분을 관찰한 이론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사회는 대체로 협동, 협력하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습니까? ... 어떤 사회가 약육강식,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면 결국은 멸망하지 않습니까? 역사에는 그런 예가 많고. 작게는 한 가족을 봐도 그렇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투쟁한다면 그 가족은 약해지다 해체되고 말 겁니다. 또 약자도태가 당연하다면 가족 중 약한 사람이 있다면 죽게 하나요? 아니죠. 보살펴서 같이 가죠. 협력하면 제 기능을 발휘해서 더 나아진다는 걸 아닐까요. 그렇게 서로 돕고 협력할 줄 알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다윈의 적자생존을 보편적인 이론으로 두루 적용하는 건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172-3쪽)

 

투쟁해서 강자가 살아남는 게 보편의 법칙은 아니다! 개체는 공존, 협력하니까 발전한다! 서로 다른 개체들이 결합해서 보다 발달된 종이 탄생한다! 협력과 상생이야말로 발전 원리다!(280쪽)

 

이 얼마나 멋진 접근인가. 게다가 이 논리는 오늘날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된 논리이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책 『청년 우장춘』은 우장춘 박사의 이러한 과학적 업적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삶을 살아야 했던 우장춘. 반쪽 조선인이며, 또한 많은 조선인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조선인임을 포기하지 않고 조선인임을 자긍하며 살아갔던 우장춘. 그러면서도 자신의 업적을 일본에 빼앗겨야만 했던 아픔. 그의 젊은 시절의 아픔과 눈물, 고뇌와 결단 등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는 우장춘만의 고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 시대 젊은이들이 모두 당면했을 고민과 아픔, 눈물을 소설은 우장춘의 이야기를 빌어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시대적 상황, 그 시대의 암울하고 불확실한 시대상과 함께 우장춘이 붙잡고 나아갔던 공존과 협력의 사상을 통해, 오늘 우리 역시 이러한 공존과 협력을 붙잡고 나아갈 때 멋지고 아름다운 미래가 열리게 될 것임을 작가는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