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편 - I'm a los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책에이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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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의의 편』이라는 다소 무겁고 딱딱한 제목의 소설을 만났다. "I'm a loser"란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책 제목만으로 본다면 딱딱하고 무거울뿐더러 왠지 짠하고 안타까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물론, 무겁고 딱딱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정의라는 것, 그리고 왕따와 폭력, 부정 등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을 어찌 이리도 유쾌하고 재미나게 풀어갈 수 있을까 감탄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주인공 하스미 료타는 고1 여름부터 왕따, 빵셔틀, 그리고 샌드백이 되어야만 했던 루저 중에 루저다. 그에게는 고교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지만, 한 가지 꿈이 있다. 그건 자신의 학교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가지 않을 별 볼일 없는 3류 대학에 진학하는 것. 그럼 그곳에서 3년간의 치욕스러운 나날들을 딛고 새 출발을 하려는 것.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들어가 상큼한 봄날을 시작하려는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원흉 중에 원흉인 하타케타가 자신과 같은 대학에 들어 온 것이 아닌가.

 

봄날의 시작을 기대했는데, 또다시 매서운 겨울이 시작된다. 료타의 대학생활은 하타케타에게 도서관 뒤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돈을 뜯기는 일로 시작된다. 지난 3년의 반복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때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기류 유이치라는 녀석. 도모이치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고교 전국 복싱 대회에서 3연패를 한 복싱의 신. 도모이치의 도움으로 료타는 하타케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도모이치에게 끌려 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 동아리는 다름 아닌 “정의의 편 연구부”라는 동아리. 대학이 인정하는 공식 동아리이면서도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가 아닌, 동아리 회원의 스카우트와 모든 회원들의 찬성으로 가입할 수 있는 최소정예로 운영되는 동아리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정의란 어떤 것인지. 정의의 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는 곳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교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 뭔가 정의롭지 못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 이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 능력자들의 모임인 것. 사안에 따라서는 교내 검도부, 가라테부, 축구부 회원들을 협력요청이라는 명목으로 마치 하부조직처럼 부릴 수도 있는 막강한 동아리였던 것.

 

왕따에 빵셔틀이나 하던 루저인 료타는 놀랍게도 수많은 시간동안 구타를 당하며 실제로는 그 구타를 피할 수 있는 선구안과 반사 신경을 자신도 모르게 터득했던 것. 여기에 도모이치와 절친이 되며, 도모이치로부터 복싱을 전수받게 되는 료타의 신나는 변신과 활약을 독자들은 만나게 된다. 과연 료타 앞에는 어떤 신나고 놀라운 대학생활이 펼쳐질게 될까?

 

이 소설은 무엇보다 루저의 반전, 루저의 반란이 통쾌하다. 물론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럼에도 루저 료타가 교내 가장 막강한 전설적 동아리의 회원이 되어 이런저런 사건해결을 위해 투입되는 과정들이 때론 조마조마하며, 때론 낯 뜨겁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신나고 통쾌하며 재미나다. 무엇보다 친구가 없던 외톨이가 도모이치와 절친이자 동료, 동지애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뿌듯할뿐더러 고맙기도 하다. 여기에 청춘들답게 남녀 간의 애정전선, 그 청춘사업 역시 독자들의 마음을 때론 달달하고, 때론 안타깝고, 때론 심쿵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소설이 너무나도 재미나다. 하지만, 그 재미 속에서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세상은 정의가 살아 있는가? 그리고 그 세상은 공평한가? 정의의 구현은 무엇으로 행할 수 있는가? 힘이 있는 자들만이 행할 수 있나? 아니면 약자들 역시 정의 구현의 힘을 가진 걸까? 과연 돈의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을 정의가 존재할까? 정의를 깨뜨리는 자들은 과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일까? 정의구현으로 과연 세상은 바뀌게 될까? 그리고 과연 난 정의의 편에 서 있는가? 등등 다양한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진다. 여기에 대한 답은 물론 각자가 찾아나가야 한다. 다시 루저의 자리로 돌아가 정의구현을 붙잡으려 시도하는 료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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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잃어버린 것 - 창작집단 독 희곡집 제철소 옆 문학관 1
유희경 외 지음, 창작집단 독 엮음 / 제철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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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집은 처음 읽게 된 것 같다(예전에 시극(詩劇)은 읽은 적이 있지만). 그러니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처음 만난 희곡집이다. 그 첫 선택, 첫 만남이 왠지 탁월한 선택, 행복한 만남이라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아직 잘 모르긴 하지만, 소설집과는 또 다른 희곡집만의 맛이 있구나 싶은. 그래서 앞으로 희곡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어질 것만 같은 만남이었다.

 

이 책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창작집단 독이란 모임에 속한 아홉 명의 극작가들이 각기 별개의 이야기들을 따로 그리고 같이 써내려간 작업의 결과다. 따로이지만, 결코 따로가 아닌 이야기들 26편(세 개의 테마를 가지고 각기 한 편씩(2부에선 여덟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래서 26편이다.). 1부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모두 어느 크리스마스 다음날 오후에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부 「사이렌」은 모두 서울 외곽에 자리한 어느 동네의 오래된 5층 빌딩의 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3부 「터미널」은 다양한 터미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민들의 아픔과 슬픔, 고단함을 느끼게 하기도 하며, 또한 그 가운데서 유쾌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1부인 「당신이 잃어버린 것」에 나오는 9편의 이야기들은 그 시기는 같지만 각기 별개다. 물론, 별개의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인물이 까메오로 등장하기도 하고, 연결되는 내용들이 있기도 하다. 특히, 한 겨울임에도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마도 매미 울음소리를 통해, 짧은 생을 보내기 위한 7년의 시간, 그 잃어버린 시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모두 뭔가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렇다고 분위기가 모두 어두운 것은 아니다.

 

2부 「사이렌」의 경우 8편의 이야기 모두에 등장하는 택배 기사의 존재는 너무나도 웃겨서 읽는 내내 웃음 빵빵 터지게 만든다(똥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는 택배 기사의 모습이 처절하면서도 너무나도 유쾌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웃긴다.). 또한 3부 「터미널」의 경우 만남과 이별의 장소답게 이별, 떠남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으면서 그 안에 정치적 내용들도 언뜻 비춰주고 있음도 눈에 띤다(댓글 사건, 세월호 사건, 평화의 댐 건설, 4대강 정비 등).

 

이 책을 읽으며 희곡의 매력은 무엇보다 대사로만 내용을 전하기에 간결함에 있지 않은가 싶다. 물론 지문을 통해 상황 설명을 하기도 하고, 긴 내용의 대사들도 있지만, 소설처럼 다양한 내용이나 상세한 설명을 곁들일 수 없다는 한계가 오히려 절제됨 가운데 이야기 속으로 더욱 몰입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짧은 내용들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연극을 직접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문득문득 느끼기도 한다. 아울러 금세 끝나버리는 이야기들이지만, 책읽기 후에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담겨져 있다. 소설과는 또 다른 희곡만의 매력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준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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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아토피 식이요법 - 많이 먹어서 아토피에 좋은 음식은 없다 의철학 인문서
이길영 지음 / 와이겔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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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토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특히, 어린이들이 아토피로 많은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딸아이 역시 심하진 않지만, 아토피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심하지 않아, 평소에는 전혀 아토피가 있다 여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혹 방심하여 음식들을 마구 먹으면(솔직히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먹지만, 좋지 않은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게 될 때면 여지없이 아토피가 튀어 나온다.) 여지없이 아토피가 올라와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런 딸아이와 우리 가정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바른 아토피 식이요법』이란 이 책은 아토피 전문 한의사로 20여 년간 진료하며 임상통계를 가지고 말하는 아토피를 극복하는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식생활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아토피에 대한 대처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식이요법만이 답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 반드시 약물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할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식이요법이야말로 아토피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임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토피에 좋지 않은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무엇보다 단백질이 아토피의 가장 큰 주범임을 말한다. 그렇기에 고기뿐 아니라 콩, 우유, 달걀 등이 아토피에 좋지 않다. 아울러 모든 기름은 아토피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말하는 좋은 기름들 역시 아토피에는 좋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견과류 역시 좋지 않으며, 과일들 역시 좋지 않다고 한다(저자는 바나나는 괜찮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일들이 좋지 않은 이유는 과일은 생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아토피에는 날 것으로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생선회도 좋지 않고, 많은 과일들이 아토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뿐 아니라 생식이나 선식도 좋지 않다고 한다. 이 부분은 흔히 아토피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고 많이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토피를 악화시키게 된다고 한다.

 

또한 아토피에는 명현반응은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흔히들 아토피에 좋은 것이라 권장하며, 이것을 먹으면 처음에는 명현반응으로 아토피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낫게 된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런 말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먹고 아토피에 좋지 않으면 중단할 것을 말한다. 여기에 밀가루, 식품첨가물, 어패류 등이 좋지 않은 음식들이며, 잡곡밥 역시 좋지 않다고 한다. 아토피에는 흰쌀밥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식이요법은 아토피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토피가 심한 경우에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이지 모든 사람들이 지양해야할 음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울러 다른 질병에는 오히려 이 책에서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음식들이 좋은 경우가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아토피에 좋지 않은 음식들 역시 각자 개인적인 차이가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맞지 않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겠다.

 

무엇보다 우리 딸아이처럼 아토피가 심하지 않은 경우(사실 이 책의 기준으로 본다면 정상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에는 평소에는 골고루 먹다가(저자는 무엇이든 한 가지를 많이 먹는 것은 아토피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조금씩 골고루 먹는 것이 아토피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토피가 다시 발생했을 때, 아토피에 좋지 않아 삼가야 할 음식들이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 정확하게 알게 된 것만 가지고도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우리가 흔히 좋을 것이라 여겼던 음식들이 아토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이 책을 곁에 두고 주의하게 된다면 아토피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지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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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0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선이라는 피부병을 앓고 있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완쾌가 되고 있지요. 특히 음식을 가려 먹고 운동과 충분한 수면 등 몸의 면역체계를 돌보는 것이 좋더라구요.

중동이 2016-02-21 17:30   좋아요 0 | URL
건선도 굉장히 괴로울 텐데, 조심하세요~^^ 빨리 완쾌하시고요^^
 
통조림 학원 스콜라 어린이문고 17
송미경 지음, 유준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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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학원』, 왠지 책 제목이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통조림으로 만들어 버리는 학원, 공부의 압박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제목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 동화 『통조림 학원』은 그런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 속에 물론 공부를 잘 하고자 하는 마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동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슬픔이나 아픈 기억, 나쁜 기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린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안에 있는 나쁜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리면 될까요? 아픈 기억은 모두 잊어버린 채 쉬지 않고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승환네 동네에 어느 날 박사학위가 6개나 있는 삐에로 박사가 등장하여 통조림 학습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학원에 가서 공부한 아이들이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자녀들을 통조림 학원에 보내기를 원하죠.

 

우리의 주인공 승환 역시 통조림 학원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목욕을 함으로 몸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는 것이라네요. 그러며 목마르면 마시라고 의문의 음료수를 주는데, 승환은 이 음료수를 마시지 않고 다 쏟아버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때에 맞춰 먹으라고 주는 통조림 역시 일부는 자신이 먹고, 일부는 친구 윤아에게 줘버립니다. 그래서인지 승환은 다른 아이들처럼 통조림 학원의 효과를 보지 못하네요. 대신 승환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삐에로 박사에게 길들여지기보다는 박사를 향한 의심을 품게 되죠. 과연 삐에로 박사에게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통조림 학원에서 지시하는 대로 행한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동화는 그저 망각만이 답은 아님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비록 슬픔의 기억, 아픔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우리네 삶임을 이야기하죠. 그리고 그 슬픔의 기억을 딛고 일어설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함도 말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삐에로 박사는 아이들의 나쁜 습관, 감정, 기억들을 기계를 통해 모두 추출하고, 이를 모두 통조림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나쁜 습관, 나쁜 기억을 모두 잊으면 행복하게 된다고 믿죠.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아이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행복이라는 최면에 걸리게 됩니다. 모두 멍한 상태로 말이죠.

 

승환 역시 깊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윤아네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사고가 나게 되고, 윤아의 오빠와 승환의 누나를 잃었거든요. 이로 인해 승환에게는 망각의 병이 생겼습니다. 이 망각의 병은 도벽으로 나타나고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물건들을 훔치게 되죠. 자신은 초콜릿과 같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초콜릿을 훔쳐 먹곤 합니다. 단지 승환이 기억하지 못할 뿐. 그러니, 이런 승환의 모습을 통해 동화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단지 나쁜 기억, 슬픈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이처럼 망각의 상태 가운데 물건을 훔치는 승환과 같은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나쁜 기억을 그저 지워버린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이고 아픔이겠지만, 억지로 지워버리는 것보다는 내 힘으로 그 아픈 기억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진짜가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선 아플 만큼 아파야만 할 테고 말이죠.

 

이야기 속에서 삐에로 박사에 의해 강제로 기억을 편집당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억이 담긴 통조림을 모두 오픈해서 기억을 소환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며 말이죠.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 기억이야!”

 

맞아요.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 기억이죠. 강제로 우리의 기억이 편집당하고 강제로 행복의 감정이 이식된다면 이건 진짜 행복이 아닐 겁니다. 우리 아프면 아파하면 어떨까요. 하지만, 그 아픔에 함몰되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파한 후에는 그 아픔의 땅을 딛고 다시 일어 설 수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우린 앞으로도 여전히 삶 속에서 다양한 아픔을 생산해 내겠지만, 그럼에도 그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고, 행복의 땅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소나기 후에 햇빛 남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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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우리 젊은 날 복각판 세트 - 전3권 - 응답하라1988 그 시집 - 1988년 전국 대학가 익명, 낙서, 서클 시 모음집 슬픈 우리 젊은 날 복각판
사회와 문학을 생각하는 모임 엮음 / 스타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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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반가운 책이 다시 나왔다. 『슬픈 우리 젊은 날 복각판』세트가 그것이다. 1988년에 1,2권, 1989년에 3권이 나온 이 시집은 낙서와 문학작품 사이 그 어디쯤에 존재하는 글들의 모음이다. 바로 대학가에 산재한 낙서들을 모아 시집으로 엮은 것. 이 시집이 기억난다. 당시 시집이 출간되었을 당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시집이었기에 나 역시 읽었던 기억이 말이다.

 

이 시집은 요즘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힘을 빌려 다시 세상에 나왔다. 요 근래 인기리에 종영한 『응답하라』 시리즈 3번째 이야기인 『응답하라 1988』 속에서 이 시집이 등장하였음이 아마도 큰 힘이 되었겠다.

 

1988년은 독재정권에 맞서 펼쳐졌던 6월 항쟁과 이로 인한 시민과 학생들의 승리 그 여운이 가득하던 시절이다. 한쪽에서는 서울 올림픽의 뜨거움과 함께 또 한쪽에는 여전한 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대단하던 시절. 나 역시 이 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시집도 만났다. 이 시집은 당시 대학생들의 공감대를 건드렸기에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1권은 서울에 소재한 대학가 주변의 카페나 술집, 동아리방의 낙서장이나 화장실에 적힌 낙서 등을 모아 놓았으며, 2권은 지방 소재 대학가에서, 그리고 3권은 다시 서울 소재 대학가 중에서도 주로 동아리의 낙서장 등에서 수집한 낙서들이다.

 

물론 몇몇 편은 문학적으로 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들도 있지만, 사실 대다수는 낙서의 수준임에 분명하다. 당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끄적이던 그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들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던 이유는 문학적 수준 때문이 아니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과 시대적 관심이 이 안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물론 2권의 경우 시대적 요구와 그에 대한 부응이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당시 지성인으로서(당시 대학생들에게는 시대의 깨어있는 지성인이라는 자각이 제법 있었다.) 대학생들이 품었던 꿈과 낭만, 그리고 좌절과 아픔 등이 그들이 끄적였던 글귀들 안에 오롯이 녹아 있다. 게다가 당시의 유머를 만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요즘 이런 유머는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식히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단골 메뉴였던 전두〇, 이순〇에 대한 유머도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이 안에 담겨진 정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시, 낙서, 유머를 통해 당시 젊은이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시집들을 읽고 난 후 드는 생각은 그래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대적 아픔을 끌어안고 고민했던 당시 대다수 젊은이들의 고민은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 일자리의, 일자리에 의한, 일자리를 위한 고민에 비한다면 행복하고 보람 있는 고민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다. 시대적 아픔을 돌아보기엔 이미 여력이 없으며, 일자리를 얻기 위한 스펙을 쌓는 일이 시대적 사명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지고 하고.

 

또한 그 시대를 젊음으로 살아갔던 분들에게는 옛 추억을 물씬 느끼게 하는 고마운 선물이 될 것이다. 이런 시집의 복각판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을 보면, 이젠 나도 조금씩 나이를 들고 있나보다. 여전히 새파랗다(머리가 하얗게 센 주제에^^)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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