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7080 땅콩집 이야기
강성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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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땅콩집 이야기 7080』을 접하며 먼저, 그 제목 ‘땅콩집’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땅콩집은 ‘땅콩껍질 안에 두 알의 땅콩이 들어있는 것처럼, 한 필지에 지어진 두 채의 쌍둥이 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고향 무라리 일대에서 땅콩을 재배하고 수확하기 위해 만주사람들이 지어놓은, 넣은 뜰 한 가운데의 가옥을 가리키지요.”(6쪽)

 

그렇다. 이 책은 전남 영광 무라리가 고향인 태민이 겪어나간 70-80년대의 이야기다. 격동의 세월, 그 격랑을 살아낸 태민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그 시대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시기는 참 많은 일들이 있던 시대다. 어쩌면 부끄러운 시대이기도 하며, 또한 그런 부끄러움 이면에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던 자랑스러운 시대이기도 하다.

 

부마 민주항쟁, 10.26, 12.12, 5.18, 6월 항쟁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있던 시대, 뿐 아니라, 실미도, 장영자 사건, KAL기 피격, 삼청교육대, 평화의 댐 건설 등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시대였다. 무엇보다 안보를 빙자하여 펼쳐지는 강압 통치와 신군부의 정권장악을 위해 벌인 만행 등이 우리의 울분을 자아내게 되는 시대였으며, 국민들을 속이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던 정권이 계속되던 암울한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면으로는 이러한 불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하였기에 어둠 앞에 항거하며 빛을 밝히던 민주화 운동의 자랑스러움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의 삶을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 뿐 아니라, 그의 고향 ‘땅콩집’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진 슬픔의 사건들(두 동생을 잃고, 딸을 잃는)을 보여주며,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싶다. 70년대, 80년대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과 사회현상은 어쩌면 오늘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또한 그저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이야기될 지나가 버린 이야기에 불과하다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는 실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었다고. 아울러, 같은 시대를 살아낸 이들 역시 자신에겐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사건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작가는 ‘땅콩집’에서의 슬픔과 비극의 사건들을 통해, 그 타자적 사건들을 모두의 삶 속으로 끌어당김으로, 결국 그 사건들이 나와 무관한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울러 자신의 교수 등용 과정을 통한 좌절과 극복, 그리고 성취의 과정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음성도 들어본다. 비록 우리가 살아낼 시대, 그 삶의 현장은 힘겨움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부조리가 있을지라도 결국엔 그 삶을 딛고 일어서길 바라는.

 

나의 기쁨이자 자랑인 내 아이들, 잔치에 참석해 주기만을 바라는 부모님. 나를 찾는 누군가가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어딘가가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닌가? 살자. 눈 찔끔 감고 살아주자. ... 이제 난 새로운 편지를 써야 한다. 죽음의 편지가 아닌 삶의 편지를. 절망의 편지가 아닌 희망의 편지를 써야 한다. (243쪽)

 

그렇기에 ‘땅콩집’은 태민에게는 비극의 현장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삶을 일으키고 끌어나가는 원동력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들 삶의 공간 역시 이러한 ‘땅콩집’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들은 때론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울분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이 겪어 나가는 아픔을 통해 함께 슬퍼하기도 하며, 또한 태민의 성취가 나의 성취처럼 느껴져 함께 기뻐하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70-80년대를 살아온 분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들을 읽으며, 맞아, 그땐 그랬어. 하는 공감도 하게 될 것이다.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질 않았던 젊은 세대들에겐 아~ 이런 역사를 우리 민족이 품고 있구나 하는 우리 현대사 가운데 70-80년대를 배우고 정리할 수도 있는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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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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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중쇄를 찍자』 1권은 좋은 책을 만들고 그 책이 제대로 대접받으며 팔리길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팔리기를 기다리는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파는’ 자들의 치열한 이야기. 좋은 작품이 사장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자들의 이야기다. 그것을 위해 이들은 중쇄를 꿈꾼다. 중쇄, 즉 책의 초판을 찍어내고, 이 책이 다 팔려 추가로 다시 찍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행동하는 출판계 삶의 현장을 재미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쿠로사와 코코로는 여자 유도 국가대표 선수였지만, 부상 때문에 이제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동안 유도, 그리고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갑자기 목표를 상실한 쿠로사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가운데 쿠로사와는 자신이 왜 유도를 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만화를 통해, 유도에 대한 꿈을 꾸고 키워왔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자신 역시 그런 꿈을 누군가에 심어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즉, 사람들을 두근거리게 할 그런 좋은 만화를 자신 역시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것.

 

이렇게 하여 두드린 출판사 취업문. 쿠로사와는 멋지게 합격을 하고, 편집부에 배속된다. 그곳에서 쿠로사와는 책을 만든다는 것, 편집자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배워나간다. 뿐 아니라 좌충우돌, 새로운 활력과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 만화는 재미있다. 그리고 뭔가 안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그건 중쇄를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 많은 이들의 치열함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일 게다. 무엇보다 이 만화는 주인공 쿠로사와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저돌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모습, 포기하기 보다는 다시 도전하는 그 도전정신, 진심을 다해 일하는 모습,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을 즐기는 모습, 무엇보다 안과 밖이 한결같은 진실한 모습. 이런 멋진 모습들을 통해 쿠로사와의 기분 좋은 에너지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만화다.

 

쿠로사와 코코로의 멋진 활약을 다음 편에서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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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 : 점에서 점으로
쉬빙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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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 地書 - 점에서 점으로』란 이 책은 먼저, 표지가 참 깔끔하고 예쁘다. 두 개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 책과 함께 가이드북이 딸려 있다. 물론, 이 가이드북은 본 책을 읽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지만, 가이드북 없이 바로 본 책을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물론, 처음엔 ‘이게 무슨 책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보다 더 색다른 책은 아마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책, 『지서 地書 - 점에서 점으로』는 소설이다. 하지만, 글자가 하나도 없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어느 언어를 사용하는 독자라도 번역 없이 그래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수많은 아이콘, 픽토그램, 이모티콘 등으로 책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국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의 주인공인 ‘미스터 블랙’(주인공의 아이콘이 검은색 남자 모양이기에)은 사무직 직원이다. 흔히 말하는 화이트칼라. 그런 미스터 블랙의 24시간의 일상을 그린 책이 이 책이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장면까지, 아이콘 하나하나를 살펴보다보면, 그의 재미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출근하는 여정,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여 하는 일들(사실 일은 정말 쥐꼬리만큼 한다. 그리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눈이 어질어질하다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심지어 그렇게 일함에도 사장 이하 임직원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오직 아이콘들로만 표현하고 있다. 아이콘으로만 표현하기에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독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맛깔 나는 표현이 좌우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터 블랙의 하루 일과는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출근하여 밤사이 도착한 컴퓨터 메일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그들에게 답장도 해줘야 하고 약속을 잡아야 한다(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게다가 시간 시간 커피도 마셔야 한다. 또 연애정보사이트에 들어가 맘에 드는 여자와 저녁 약속을 잡아야 한다. 결혼하는 친지의 선물도 사야 한다(정말 많은 일들을 하지 않는가!). 뿐인가! 본업도 충실해야 한다. 사장님의 지시에 의해 프리젠테이션 자료 준비와 발표에 오줌 쌀 시간도 부족하다(사실은 딴 짓 하느라고 그렇지만 말이다). 게다가 스팸 전화도 받아야 하고, 엄마의 안부전화까지 받아야 하니 근무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린다.

 

퇴근 후에도 할 일이 많다. 병문안도 가야하고, 여자도 만나야 한다(이 여자 만나는 부분에서는 또한 오해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 차인 친구를 만나 함께 술도 마셔야 하고, 뻗은 녀석을 집에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집에 가선 여러 채널을 섭렵하며 tv도 봐야 하고, 오락도 해야 한다. 참, 모기와도 싸워야 한다. 그러니, 하루 24시간으론 너무나도 부족하기만 한, 미스터 블랙의 하루 일상, 얼마나 불쌍한 샐러리맨의 하루인가!^^

 

이 책은 어쩌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요즘 직장인들을 향한 풍자와 그들의 애환까지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콘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색다름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겠다. 그리고 내용도 그 안에 많은 위트가 담겨져 있고 말이다. 몇몇 부분에선 아이콘을 살피다 빵 터지기도 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변태적(?) 취미가 있으신 분들, 평범한 책은 거부하며 색다른 책을 찾고 계신 분들, 미스터 블랙과 다르게 하루의 시간이 남아도는 분들, 너무 시간이 없어 글자가 많은 책은 읽을 수 없는 분들, 글을 모르는 분들(그런 분들이라면 이 서평도 못 읽겠지만..), 그리고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길 원하시는 분들, 누군가의 노력에 편견 없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신 분들(이게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분들이 이 책을 사 보면 좋을 것이다.

 

참, 책 모으는 것이 취미인 비블리오마니아 역시 이 책을 꼭 사길 바란다. 정말 독특한 책이니 말이다. 책도 예쁘고 서고에 꽂아놓으면 예쁠뿐더러 친지들에게 펼쳐보여 주며 대화의 문을 열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고정관념이 확고하신 분들은 이 책을 절대 펼치지 마시라. 그냥 모른 척 하시는 것이 저자를 위해서도 출판사를 위해서도 고마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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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랜드 2 - 그림자들의 흥청망청파티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공보경 옮김, 아나 후안 그림 / 작가정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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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2살의 나이로 처음 페어리랜드를 방문하여 온갖 진귀한 모험과 아찔한 경험, 그리고 우정의 시간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던 셉템버는(1권 「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이제 13살이 된 셉템버는 다시 페어리랜드를 찾게 된다. 그런데 그토록 그리워하던 페어리랜드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모든 그림자가 사라져 버린 것. 지하 페어리랜드에서 지상 페어리랜드의 그림자들을 훔쳐간 것이다. 게다가 지하에서 그림자들이 흥청망청 파티를 하며, 마구 마법을 쓰기 때문에 지상에는 마법이 바닥났다. 이에 셉템버는 이번엔 지하 페어리랜드로 향한다. 잃어버린 그림자들을 되찾기 위해.

 

지하 페어리랜드로 내려가는 문을 지키는 시블을 통과하여 지하 페어리랜드에 도착한 셉템버는 그곳에서 그리워하던 친구인 엘의 그림자, 새터데이의 그림자를 만나게 된다(심지어 아버지의 그림자도 만난다). 이번엔 엘과 새터데이의 그림자들과 함께 하게 된 여행, 과연 이 여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셉템버는 그림자들을 무사히 구해낼 수 있을까?

 

『페어리랜드 2권』인 「그림자들의 흥청망청 파티」에서도 셉템버는 온갖 환상적인 모험들을 하게 된다. 전기뱀장어 기차를 타기도 하고, 잠자는 왕자를 찾아 지하의 지하 그 아래 가장 아래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이번엔 엘과 새터데이의 그림자 뿐 아니라, 일행이 또 하나 늘어 나이트도도새인 오버진이 함께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셉템버를 돕는 또 하나의 공신으로는 우연히 얻어 입게 된 ‘주의 깊은 원피스’와 빨간 바람이 원 주인이었던 빨간색 외투의 도움도 받게 된다.

 

역시 『페어리랜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환상적인 모험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뛰어넘을만한 환상적 모험이 페어리랜드에는 가득하다. 페어리랜드에서는 모두가 생명을 얻는다. 심지어 외투와 모자, 그리고 바람까지.

 

아울러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단순히 스토리 위주의 판타지 소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곳곳에는 작가가 들려주는 철학 내지 메시지가 가득하다. 어떤 메시지는 스토리 전체와 연관되기도 하지만, 또 스토리 자체에 많은 영향은 주지 않지만 깊은 철학적 사고를 전해주는 문장들이 책 안에는 가득하다. 그렇기에 스토리에 빠져드는 것도 좋고, 또한 환상적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의미심장한 구절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것도 이 책이 전해주는 또 하나의 선물일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심 메시지는 그림자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소설 속의 그림자는 또 하나의 인격과 실체적 형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그림자는 그동안 몸체를 따라다니며, 그저 따라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에 대한 반발심을 가진 하나의 인격이 된다. 그렇기에 선에 억눌린 악의 형상을 띠기도 하고, 반대로 악에 억눌린 선의 형상을 띠기도 한다. 물론, 이 둘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원 몸체와 반대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다.

 

다들 어떻게 자아의 일부분을 숨기고 살 수 있는 건지 셉템버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아의 사악하고 몰인정한 부분, 용감하거나 무모하거나 생기발랄한 부분, 빈틈없거나 강력하거나 경이롭거나 아름다운 부분을 심장 깊숙이 숨겨 놓는 것일까. 세상이 두려워서, 아니면 다른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게 두려워서, 아니면 용감하게 업적을 세우라는 기대를 받는 게 버거워서일까. 누군가 어둠 속에 숨겨 놓은 용감하고 무모하고 빈틈없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부분들. 그리고 가끔은 사악하고 몰인정한 부분들에는 결국 기묘한 버섯이 자라게 된다. 이런 부분들이 그림자의 성격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118-9쪽)

 

지하 페어리랜드에서 활개 치는 그림자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이를 통해 나의 그림자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이 외에도 소설 속에는 의미심장한 구절들이 참 많다. 그런 구절들을 찾아 적어보는 재미가 있는 독특한 판타지소설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았던 몇 구절을 아래에 적어본다.

 

책은 문이야.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책은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마음,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란 말이 있지.(215쪽)

 

이들은 셉템버의 친구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가끔 괴상하게 굴 때도 있고,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남이 되지는 않는다.(240쪽)

 

내가 장담하는데, 밝은 면이라고 해서 꼭 좋기만 한 것도 아니야. 어둠이 없이 밝기만 하면 꿈을 꿀 수가 없어. 제대로 쉬지도 못해. 달빛이 비추는 발코니에서 연인을 만날 수도 없지. 어둠이 없는 세상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어두운 면은 반드시 필요해. 어두운 면이 없다면 너의 절반이 없는 셈이니까.(293쪽)

 

우리 모두는 괴물이란다. 문제는 어떤 괴물이 되기로 결정하느냐지. 마을을 건설하는 괴물이 되느냐. 마을을 부수는 괴물이 되느냐.(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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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네버랜드 클래식 49
잭 런던 지음, 필립 R. 굿윈.찰스 리빙스턴 불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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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주니어에서 출간되고 있는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 49번째 책인 『야성의 부름』을 만났다.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저자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시대적 배경 등이 사진들과 함께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조금 참고해보면, 이 책은 잭 런던의 1903년 첫 출간된 작품으로 작가의 경험이 상당부분 반영된 작품이라 한다. 187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잭 런던은 1897년 의붓 누나 부부와 함께 클론다이크 금광으로 황금을 찾아 갔지만, 빈털터리에 병까지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이 그의 작품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 『야성의 부름』 역시 이처럼 골드러시 행렬과 연관되어 있다.

 

『야성의 부름』은 벅이란 개의 이야기다. 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 벅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벅은 캘리포니아 넓은 농장 지대에 있는 밀리 판사 저택에서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던 개다. 벅은 그곳 저택에서 가장 대접받던 개였지만, 그런 벅은 어느 날 갑자기 정원사의 조수인 매뉴얼에 의해 아무도 모르게 팔려 나가게 된다.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저택의 보호 아래 살아가던 벅은 이제 냉혹한 힘의 세계 가운데 내동댕이쳐진다. 벅이 맞닥뜨린 북녘의 땅은 몽둥이와 송곳니가 법이 되는 세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안락하고 풍요로운 문명의 삶에서 원시의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진 벅이 그 세상에 적응할뿐더러 모든 썰매 개들 위에 우뚝 서게 되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벅은 무엇보다 편안한 삶 속에 파묻혀 죽어 있던 개로서의 본능, 야성이 깨어나게 된다. 벅은 길들여진 삶이 아닌,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이런 과정은 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벅이 나아가는 그 여정이 대단히 흥미진진할뿐더러 때론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런 벅의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 역시 나에게 주어진 상황으로 인해 길들여진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소설 속의 벅은 다른 개들과 달리 스스로 생각한다. 그리고 학습 능력도 대단하다. 뿐더러 상황판단을 하며, 자신을 억제하며 기다릴 줄도 알지만, 행동해야 할 순간 번개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야성을 향해 나아간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저 길들여지고 수긍하며 살아가기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 안에 감춰진 참 야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뿐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벅을 가장 힘겹게 하고,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은 찰스와 머세이디스 부부, 그리고 남동생 할의 모습이다(어쩌면 이들은 황금러시에서 실패한 저자와 의붓누이 부부를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다. 황금을 찾아 나서긴 하지만, 썰매 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자신들의 여정은 어떠해야 하며, 짐은 어떻게 꾸려야 할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남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고집쟁이들, 바보들이다. 특히 남동생 할이 그렇고, 그 누이인 머세이디스 부인은 투정만 부릴 줄 아는 철부지 여인이며, 남편 찰스는 침묵하고 방관하는 자다. 이들은 특별히 악한 죄를 범하진 않는다(개들을 혹사하는 것 자체를 죄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의 삶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악을 행하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왜? 준비되지 않은 자, 모르면서 고집만 부리는 자, 타인의 상황은 고려치 않고 투정만 부리는 자, 잘못을 보며 침묵하며 방관하는 자는 그 모습 그대로 악을 행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오늘 독자들에게 말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벅은 자신을 구해주고,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준 손턴을 향해서는 한결같은 충의를 보여준다. 물론, 이런 손턴을 향한 충의와 야성의 부름 사이에서 벅은 갈등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그 충의를 버리지 않는다. 이 역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한 모습이겠다.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쉽게 신의를 버리고 배신을 일삼는 인간의 모습은 벅이라는 개에 비해 너무나도 가볍고, 헤픈 부끄러운 모습 아니냐는.

 

요즘 새롭게 창작되는 동화들만큼 기발한 발상이나, 재미난 구성은 어쩌면 조금 떨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고전이 갖고 있는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잔잔한 듯싶으면서도 박진감 있고, 깊은 감동과 생각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고전들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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