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경제를 배울 때 금과옥조처럼 외워 받들었던 말이 있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다.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알아서 잘만 굴러가니 늬들은 그저 타고난 욕구에 따라 열심히 경쟁하면 모두 다 함께 잘 살 수 있으리라. 물론 수정자본주의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치가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하여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여전히 경제학의 기초에는 시장은 그 자체로 정의로울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믿음의 근저에 있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초상은 환상에 불과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과 의존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마치 ‘우주 속에 혼자 유영하는 것처럼‘ 고립된 개체로 취급함으로써 실제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외면해왔다고 지적한다. 또 한 가지, 경제적 인간은 남성을 의미하므로 여성을 모조리 소외시켰고,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 온 ˝돌보기˝의 역할을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애덤스미스의 저녁은 어머니인 마거릿 더글라스가 차려준 것‘으로, 애덤 스미스가 이룬 학문적 성과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임에도 그의 학문에서는 그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재치있는 제목을 지었다. (원제보다도 번역한 제목이 흥미를 끌기에 좋은 것 같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쉽고 재미있는 문장으로 경제학과 페미니즘을 엮어나간다. 다만 뒤로 갈수록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하고, 한 단락에 한 문장만 들어간 데가 많아 쓸데없이 양을 늘린 게 아닌가 싶다. 책 말미에 실린 각주에는 본문에 나온 정보의 출처나 약간의 추가 정보가 들어있는데, 특이하게도 본문에는 각주 표시가 없어서 다 읽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았다.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깥‘은‘ 여름이라니. 그러면 ‘안‘은? 표지의 여자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시원한 푸름을 뒤로 하고 어두운 어딘가로.
<풍경의 쓸모>라는 단편에 그 실마리가 있다. 손 안의 작은 겨울, 스노우볼. 싱싱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깊고 추운 겨울을 품은 모습은 얼마나 쓸쓸한 풍경인가.
김애란은 이 소설집 전체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엮어가는 삶을 담담히 조명하고 있다. 훌륭한 리뷰가 워낙 많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특히 마음에 남은 두 작품만 언급하고 싶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 찬성은 어느날 휴게소에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가 에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우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살 돈이 없어 같은 반 친구들의 스마트한 세계로부터 소외된 찬성은 에반과의 감정적 교류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에반은 병들고, 찬성은 수술과 안락사 중 안락사를 택한다. 찬성의 아버지는 트럭사고로 죽었지만 고의사고-자살-라고 판단되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함께 사는 할머니는 늘 습관처럼 ˝어서 죽어야지˝ 하므로 찬성에게 죽음이란 이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찬성은 에반의 안락사를 위한 비용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 손에 쥐어본 큰 돈은 스마트한 세계로의 편입이라는 강렬한 유혹이 되어 찬성을 뒤흔든다. 찬성이 유혹에 넘어가 스마트폰을 개통한 후, 폰을 들여다보느라 곁에 있는 에반을 돌보지 않는 장면은 너무나 씁쓸하다. 소외된 개체가 다시 다른 소외된 개체를 소외시키는 이중의 소외. 주류세계로부터 소외된 자는 다른 소외된 자와의 교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에반은 또한번 버려진 셈이다.
동남아에서 온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재이를 이혼 후 홀로 키우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가리는 손>에서도 같은 구조가 나타난다. 재이는 심한 따돌림 따위를 당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소외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재이는 어느날 동네 청소년들과 파지 줍는 할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다툼과 그 결과 할아버지의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 모습이 찍힌 cctv가 공개되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된다. cctv 속 재이는 다툼을 지켜보던 도중 손으로 입을 가린다. 충격을 받았구나, 엄마는 생각한다. 그러나 가해자인 청소년들이 할아버지에게 던진 틀딱-노인 비하 호칭이라고 한다. 처음 알았다..-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들을 보았을 때.. cctv에 찍힌 아들의 손 뒤에 가려진 얼굴에 충격이 아닌 비웃음이 서려 있을지 모른다는 가슴 아픈 가정에 도달한다.
소외된 자가 다시 다른 소외된 자를 소외시키는 이중의 소외. 그건 주류가 비주류를, 다수가 소수를 소외시키는 것보다도 더, 얼마나 처절하게 쓸쓸한 풍경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8-19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어른들의 언행을 보면서 따라합니다. 기성 세대를 비하하는 시선은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를 비하하는 지금 세대는 자신들도 늙는다는 사실을 몰라요. 비하당하는 입장이 되면 괴롭습니다.

독서괭 2017-08-19 19:32   좋아요 0 | URL
젊음은 아름답지만 누구나 거쳐가는 것이므로 과시할 것은 아닌데 말이죠. 맘 충이니 한남충이니 김치녀니 이런 비하언어들이 난무하는 현실이 슬픕니다.
 
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책이다. 법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논한다.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기는 하지만, 독자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책 끝부분에 본문에서 언급한 문학작품들의 목록을 실어둔 것도 장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님께 구매 및 그냥 드림으로 받은 책 7권. 상태가 최상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깨끗하네요. 감사합니다.
언제 다 읽지... 라는 늘 하는 고민은 이제 그만 하자. 하하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8-19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녀 이야기》 구판은 구하기 힘들어요. 황금가지 환상문학전집은 양장본이었을 때가 좋았습니다. ^^

독서괭 2017-08-19 19:2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읽고 있는데 내용도 번역도 좋네요^^
 

아아 이놈의 문구 욕심;; 메모는 잘 하지도 않으면서 수첩은 엄청 많다. 그남자의고양이와 사은품으로 선택한 고양이책갈피, 마우스패드는 언니에게 줄 선물. 읽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는데 사는 속도는 줄기는 커녕...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그랬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고. 후훗.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7-07-14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 ㅋㅋ 공감가네요. ㅎㅎㅎ

독서괭 2017-07-14 18:12   좋아요 0 | URL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