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거짓말은 언제였을까. 

아이들은 너덧살이 되면 슬금슬금 거짓말을 시작한다. 귀엽고 사소한 거짓말들. 이를테면 과자를 먹어 놓고 먹지 않았다거나, 손을 씻지 않고서는 씻었다거나.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에서는 아이는 (만 나이) 3-4살 사이에 '마음의 이론 Theory of mind(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 믿음, 의도, 욕망 등의 정신적 상태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는 다른 정신적 상태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를, 다시 말해 '마음을 읽는 법'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42쪽). 저자는, 그러므로 당신의 아이가 첫 거짓말을 한 날을 축하해도 좋다고 한다. 축하까지야 아니겠지만, 이제는 이 아이가 다른 사람의 마음/시각이라는 것을 깨달았구나(무의식적으로), 하고 속으로 흐뭇해 하면서 정직을 가르쳐도 좋겠다. 


앞에서 나는 에덴동산에서 뱀을 탓하는 하와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 속인 이는 누구인가? 뱀이 아니다. 뱀은 멋지고 젊은 두 남녀에게 열매를 따 먹으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을 뿐이다. 실제로 거짓말을 한 이가 있다면 그는 바로 신이다. 신은 아담과 하와에게 열매를 먹는 바로 그날, 그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그들은 먹었지만 갑자기 죽어버리지는 않았다. 신은 솔직하지 않았다. 신이 속이지 않고는 해낼 수 없다면, 과연 우리 중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9쪽 


살면서 거짓말 해보지 않은 자가 있다면 3-4살 이하의 유아일 것이고, 그가 성인이라면 아마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격장애 평가를 받을 것이다. 흔히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하는 가벼운 거짓말- "그 옷 정말 잘 어울린다!" - 은 물론이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거짓말 - "난 괜찮아." - 역시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누가 그러던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솔직하게 다 말하는 사람은 벌거벗은 채로 "내가 벗었으니 너도 벗어 봐"라고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거짓말을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이 삶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김애란 작가의 장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제목은 고2인 주인공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이 처음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를 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놀이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어야 한다.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히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게 된다. 


이 게임의 목적은 얼핏 '거짓 가려내기' 같지만 실제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누구나 들어도 좋을' '아무에게나 말해도 되는' 진실만 말하는 거였다. 당연했다. 누구도 초면에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으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란 걸 어린 지우조차 알고 있었다.  - <이중 하나는 거짓말> 226쪽


그러나 지우와 애매한 관계에 있는 '아저씨'는 무거운 진실만을 던지며 진심을 전하고, 아마도 거짓으로 보이는 - 알 수 없지만 나는 거짓말일 거라 생각한다 - '하얀 거짓말'을 통해 지우를 위로한다. 채운의 아버지처럼 남들 앞에서 자식에게 실컷 욕을 퍼부은 뒤 "아, 미안.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라고 으스대는, 자신이 빈말 못하고 솔직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하는(75쪽) 사람과는 반대의 방식으로 말이다. 

채운의 어머니는 채운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소리는 채운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에도 진심이 담길 수 있고, 지어낸 이야기에도 진실이 담길 수 있는 것. 이 소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는 그렇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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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9-10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단편들에 비하면 문장의 농도가 옅고 다소 청소년문학 같은 느낌이 있어서, 호불호 갈릴 듯 합니다.

자목련 2024-09-10 11:13   좋아요 2 | URL
호불호, 맞습니다.
저는 호가 아닌 쪽으로....

독서괭 2024-09-10 11:17   좋아요 1 | URL
ㅎㅎ 자목련님, 저는 그래도!! 호를 외쳐보지만 전작들보다는 별로입니다 ㅜㅜ

자목련 2024-09-10 11:19   좋아요 1 | URL
<음악소설집> 속 김애란의 단편이 좋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연이어 읽은 소설 속 영어 공부 장면에 김애란 작가 영어 공부를 하나 싶은 생각을 ㅋㅋㅋ

독서괭 2024-09-10 11:25   좋아요 0 | URL
역시 김애란작가는 단편인가봐요~~ 다음 소설집을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영어공부 장면 재밌었어요 ㅎㅎ

다락방 2024-09-10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김애란 책에 대한 글이었군요! 젤 처음 인용문 읽으면서 이 거짓말은 어디에 닿을것인가, 했더니 김애란 이었어요. 후기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09-10 11:1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산책 권수를 늘리지 않는 데 한몫해서 다행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4-09-10 13:01   좋아요 1 | URL
나도.. 고마워요... 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9-10 13:08   좋아요 1 | URL
고마우면 퀴즈대회~ ㅋㅋㅋㅋ

잠자냥 2024-09-10 13:19   좋아요 1 | URL
퍼ㅏ하하하하하 기승전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9-11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문장들이 진짜 서늘한 것이 ㅋㅋㅋㅋㅋㅋ 모두 다 옳은 말씀인 것이오며...
김애란 작가님 올곧은 분. 독서괭님 올곧은 분!

독서괭 2024-09-18 16:02   좋아요 1 | URL
저 올곧지 않습니다 삐딱합니다… ㅋㅋㅋ 그래도 숨길 수 없는 모범생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