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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세트 - 전2권 - 주교의 새 그루터기 실종 사건 ㅣ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7월
평점 :
와, 이 정신없는 작품을 읽고 잊어버릴까 봐 빨리 리뷰를 써야지 했는데
이미 열흘이 넘게 지나버렸고.. 등장인물 이름은 네드 밖에 생각이 나지 않으며.. (쓰다가 몇 명 더 생각남)
과연 이 리뷰의 정확도는 몇 퍼센트일 것인가..
어차피 내용 요약은 글렀으니 감상 위주로 간단히 써야겠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연작' 중 <둠즈데이북>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둠즈데이북>과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작품의 '현재'는 2050년경, 타임머신이 개발되었으나 시간을 오갈 수 있는 장비- '네트'-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주 사소한 거라도 막아버리기 때문에, 수익을 노리고 뛰어들었던 기업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결국 타임머신은 역사학자들의 차지가 되어, 역사학도들이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설정이다.
전작 <둠즈데이북>은 훌륭한 비극이었는데 이 작품은 완전히 희극이다.
부제로 붙어 있는 '주교의 새그루터기 실종 사건'이 모든 일의 발단.
네드를 비롯한 모든 역사학도들이 2차 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 불타버린 코번트리 성당을 복원하기 위한 슈라프넬(?) 여사의 장대한 계획에 희생되는 상황. 그녀는 "신은 사소한 것에 깃들어 있다"라면서 성당 안팎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구현하길 원하는데, '주교의 새그루터기'라는 화려하게 장식된 화병 같은 물건이 폭격 이후 도대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슈라프넬 여사에 의해 역사학도들은 새그루터기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없이 시간여행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베리티라는 여성 역사학도가 과거(1888년)에서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고양이를 구해내어 현재로 데려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원래 과거의 것을 현재로 가져오는 일은 네트가 허용하지 않는데 이변이 일어난 것! 네드는 고양이를 다시 과거로 돌려놓는 임무를 받지만, 불행히도 너무 시간여행을 많이 한 탓에 시차증후군에 시달리느라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과거로 가게 된다. 혼란의 와중 네드는 만나야 할 두 남녀의 만남을 본의 아니게 훼방 놓게 되고, 그로 인해 슈라프넬 여사의 선조가 엉뚱한 사람과 약혼하게 되어 버리는데..
과거가 바뀌는 바람에 모순이 발생하게 될 경우, '네트'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과거의 변형을 시도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네트의 의도이고 어디부터가 과거로 간 역사학도들의 몫인 걸까?
결국 밝혀지는 결론(모호한 부분도 있지만)에 따르면 네드와 베리티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모순을 수정하려고 애썼던 것이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슈라프넬 여사가 강조했던 "신은 사소한 것에 깃들어 있다"는 말처럼, 이 작품은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존재 하나하나가, 사소한 모든 순간들마저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2차 대전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역사가 얼마나 사소한 것에 의해 바뀌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실제 있었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또 1888년 빅토리아 시대의 - 지금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고 유치한 - 장식적 특징들도 다수 묘사되는데 재미있다. 끊임없이 배경음처럼 지속되는 한 교수의 역사에 대한 논설(역사는 그랜드디자인에 의해 움직인다는 다른 교수의 주장에 대해 개인의 중요성을 설파), 영혼을 부른다는 심령술의 유행과 이를 이용한 사기꾼들의 등장 등 많은 요소들이 이야기에 섞여서 나타나기 때문에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지지만, 1권의 산을 넘어 2권에 돌입하면 본격 재미, 끝을 보고 나면 그 모든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 작가의 노고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 코번트리 성당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1962년경 복원하였는데, 옛 그대로 복원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소설에서 옛 그대로 복원하는 이야기가 나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