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선비」의 책 표지는 책 내용을 잘 표현한다. 당당한 표정을 짓는 옆 모습의 신사와 용맹한 기사 그 사이에 백과사전이 한 편에 있다면, 반대편에는 표정을 알 수 없는 선비의 뒷모습과 붓이 그려져 있다. 앞 모습의 서양문화와 뒷 모습의 선비. 이 표지는 저자의 역사관을 잘 드러낸다.

「신사와 선비」에서 저자의 입장은 명확하게 아래의 문장들로 요약된다. 중세 서양의 기사도 정신은 근대 신사도로 변화, 발전되어 현대선진유럽 문명의 정신근간을 만들어냈다. 반면, 우리 선비정신은 성리학에만 치중해서 합리성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근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동서양 문화 차이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타당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신사와 선비」에서는 기사도 정신의 기원을 난폭한 기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보급되었다고 말한다. 즉, 기사도 정신이 기사의 윤리로 외부에서 강제된 것이다. 외부에서 강제된 이 윤리는 결코 기사들의 정신을 대표하지 못함을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예루살렘에서 자행된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세를 통해 기사도 정신은 결코 기사들의 사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사도 정신에 의미가 부여된 것은 중세 이후 문학의 보급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그 과정에서 기사도 정신은 낭만적으로 미화되었다. 결국 기사도 정신은 실패한 사상이었다. 오히려, 기사도 정신의 실패로 기사로 대표되는 군사력과 과학, 자본(신사도), 종교가 결합하여 서구 문명의 진출이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표출되었다면, 기사도와 신사도는 계승관계가 아닌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반해 선비 사상은 조선 유교 사회의 지배 사상이었다. 성공적으로 사상이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에 조선은 반세기를 존속했고,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조선의 비극이었음을 놓고 본다면 문제는 선비사상이나 기사도의 내용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책의 내용이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상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사회가 수탈당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지적하는 편이 더 설득력있지 않았을까. 여기에 ‘우리가 근대화할 역량이 없었는가?‘ 하는 문제까지 던지자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니, 근대화와 관련된 한 문장만을 짚도록 하자.

이 나라는 사실상 선비공화국이라서 자발적 근대화가 불가능했다(p234)

「신사와 참배」에 나오는 위의 문장은 저자의 역사관을 잘 나타내는 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한 반론을 하자면 일이 너무 커지니 여기서 일단 논의를 멈추겠지만, 개인적으로 저자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밝히는 것으로 일단 미룬다. 다만, 「신사와 선비」는 이러한 단점에도 블구하고 역사의 단편적인 사실을 핵심적으로 잘 제시한하고 있으며 이는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신사와 선비」는 책의 장점이 단점을 덮을 정도는 못된다는 개인적인 의견과 함께 이번 리뷰를 마친다.





돌이켜보면 유럽인들은 중세 이후 수백 년동안 많은 역사적 경험을 축적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기사도와 신사도의 전통을 의식적으로 계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과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 근대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시민의식(Consciousness)이라 불리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내가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서구 시민사회는 여러 가지 역사적 경험을 겪으며 점차 ‘저항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현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부각된다. 21세기 서구의 시민권(citizenship)은 대략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p124)



 조선은 책으로 일어났으나, 책으로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지식의 독점이 깨지고 각계각층이 선비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오직 성리서만을 고집하는 구태의연함 때문에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안타깝지만 19세기 말의 우리 역사는 이렇게 평해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p205)

유헙의 최상층 지배자들(왕과 교회의 최상층 사제들)은 기사들의 난폭한 행위를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사회질서가 혼란에 빠지면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로마교황청이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황청은 기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하달했다... 교황청의 거듭된 요구는 점차 기사들의 행동강령으로 자리 잡았다...(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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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5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2-07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미쿡으로 선비 문화 견학하러
가신 어느 의원 나리의 행적이 문제가
되어서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민중들의 삶과 괴리된 성리학 질서를
신봉한 조선 선비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7 13:46   좋아요 1 | URL
바른 선비상을 세우고 본받아야하는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문제라 여겨지네요...

cyrus 2019-02-10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교, 선비만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하기에는 단조로워요. <신사와 선비>를 안 읽어서 판단하기가 이르지만, 중세 기사도 정신이 유럽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껄끄럽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문명의 중심은 늘 남성이었다는 점과 주변부의 여성이 문명 발달에 기여한 일을 은폐하기 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10 17:51   좋아요 0 | URL
cyrus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물론 과학에서 모형화가 단순화, 추상화의 과정을 거치는 작업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이 책에서 변수 설정이 잘 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를 남성과 여성을 기준으로 하는 관점에는 제가 익숙하지 않아 쉽게 말하기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