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 불규칙한 조화가 이루는 변화 필립 볼 형태학 3부작
필립 볼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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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초기에 물에서 일어난 한 조그만 회전이 왜 강력한 소용돌이로 발전하는지는 알고 있다. 이것은 배출구로 모여드는 물의 움직임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이 집중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룰 수 있다. 물은 모든 방향에서 배수구를 향해 안쪽으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그 대칭적 상황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유체 흐름의 작용 방식 때문에 변화가 증폭될 수 있는데, 그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흐름은 마찰 때문에 한 유체 영역에서 다른 유체 영역으로 전달될 수 있다.(p60) <흐름> 中


[사진] 물 흐름(출처 :: https://kr.freeimages.com/photo/water-flow-1559287)


 필립 볼(Philip Ball)의 형태학 3부작 중 2번째 이야기는 <흐름 Flow>이다. 전작 <모양>에서 패턴과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대칭성의 깨짐'으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엔트로피(entropy)법칙을 통해 파악했다면, <흐름>에서는 이러한 패턴의 경향성(傾向性)에 대해 말한다.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는 자연에서 패턴의 다양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성질이 같은 물이 만들어 내는 흐름, 모래 알갱이들이 만들어 내는 사구(沙丘)의 모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배수구의 소용돌이는 자발적인 대칭 파괴의 한 예다. 방사상으로 모이는 원형 대칭의 흐름은 비대칭적으로 틀어진 흐름으로 발전한다. 그 방향은 회전을 처음 일으킨 너무나 미세한 추진력의 성질에 따라 시계 방향일 수도 반시계 방향일 수도 있다.(p61) <흐름> 中


 <흐름>에서는 이러한 패턴 다양성의 원인을 시스템의 조건과 구성 요소의 특질에서 찾는다. 이들의 작은 차이로 인해 전체 흐름의 틀은 유지되지만, 개개의 흐름은 자신만의 개성을 갖게 된다.


 대류하는 유체에서 볼 수 있는 이 패턴들의 풍부함과 다양성 때문에, 하나의 주어진 실험에서 어떤 패턴이 나타날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원칙적으로 한 특정한 집합의 조건들에서 몇 가지 대안적 패턴들이 가능할 때, 어떤 것이 선택되느냐는 시스템이 어떤 조건을 갖추었느냐에 달렸을 수도 있다. 즉 초기 조건들과 그 조건들이 변화하여 실험적 매개 변수들의 특정한 집합에 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패턴 형성은 그 시스템의 과거 역사에 달렸다.(p83) <흐름> 中


[사진] 신두리 사구의 모래물결(출처 : 환경부)


 자연의 모래 패턴들이 보여주는 한 가지 흥미로운 특징은 모래 알갱이들이 크기에 따라 각자 언덕의 다른 부분에 분류된다는 것이다. 모래 잔물결에서, 가장 굵은 알갱이들은 마루에 그리고 슈토스면을 뒤덥은 얇은 표면층에 쌓이는 경향이 있다. 큰 사구들에서는 종종 그것과 정반대다. 가장 잔 알갱이들이 마루에 모이고, 가장 굵은 알갱이들이 고랑에 모인다.(p126) <흐름> 中


 그리고, 개성(個性)을 갖는 서로 다른 패턴을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임계점(臨界點)이다.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집단을 움직이는 흐름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回歸)되고 이러한 일련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반복(反復)되는 통계적 규칙성을 확인하게 된다.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해 보이는 현상을 뚜렷한 패턴을 낳는 현상들과 관련짓는 요인에는 매우 중요한 통계적 규칙성이 있다. 사태들은 대다수 패턴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조직하기 때문이다.(p140) <흐름> 中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그 각도는 최대 안정성 각도라고 한다. 그리고 사태가 끝나면 그릇 속 알갱이들의 경사는 안정적인 값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휴식각이라고 불린다. 반복되는 사태는 한 더미의 알갱이들이 얼마나 높이 쌓이든 경사가 동일한 휴식각에 이르러, 어느 정도는 항구성을 유지하게 만든다. 이런 '사태 각도들'은 알갱이 모양에 달렸다.(p132) <흐름> 中


 <흐름>에서는 이처럼 물리학 법칙(엔트로피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물질의 개별 특질과 시스템의 환경이 서로 다른 모양의 흐름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흐름의 큰 형태는 차이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유체에서 흐름의 상세한 패턴을 보려고 노력하기보다 그냥 평균적 특성들에 관해 묻는 편이 더 낫다. 다른 말로 우리는 유체 입자들의 개별적 궤도들을 잊어버리고 그 대신 그들의 통계적 성질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심지어 난류 같은 명백히 무작위적인, 구조가 없는 시스템조차 특징적인 형태가 있음이 밝혀진다.(p230) <흐름> 中


 그렇다면, 흐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자.

 요즘(2019년 1월 현재) 세계 경제 전체가 불안한 가운데 한국 주가지수(KOSPI) 역시 많이 하락한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속에서 포트폴리오(portfolio) 구성만으로 하락하는 주식시장에서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까?(생각해보니 있긴하다. 공매도, Reverse-ETF, 옵션 등등) 별로 좋은 예는 아닌 듯 하지만, 논의를 계속 해보자.


 일반적으로 총위험을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과 비체계적 위험(unsystematic risk)으로 나눈다. 이 경우 체계적 위험은 시장위험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며, 비체계적 위험은 분산 투자를 통해 회피할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결국, 하락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개별 주식의 베타(β, 개별 주식이나 펀드가 시장의 지수 변동에 반응하는 정도)가 낮은 주식을 사는 것으로  체계적 위험를 피할 수 없고, 비체계적 위험만 피할 수 있다는 재무관리 이론 안에서 우리는 '흐름'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개별 주식의 특성으로 다른 형태를 만들 수 있지만, 임계점 이후의 붕괴 상황까지 만들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주식 시장을 보면서, '흐름(cash flow)'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흐름>을 통해 독서의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꿀벌 떼는 20개체 중 단 하나의 개체만 좋은 장소로 가는 길을 알고 있어도 새로운 둥지의 부지를 찾을 수 있다... 무리의 다른 누구도 누가 '가장 잘 아는지'를, 아니 애초에 어떤 개체가 나머지보다 더 잘 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적은 수의 모든 개체들이 집단 움직임에 약간의 편향만 더해 줘도, 그 정도면 다른 개체들이 따라오게 만들기에 충분하다.(p190) <흐름> 中


 <흐름>에서는 생물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흐름에 대해서도 말한다. 단지 5%의 꿀벌만 제대로 길을 알고 있어도 좋은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 속에서 우리의 현실은 돌아보면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 중 하나가 올바른 흐름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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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9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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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9 0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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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본질에 관한 열 차례의 강의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지음, 서정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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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지음, 서정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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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에게 고함
J.G.피히테 지음 / 범우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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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지음, 서정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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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게는 모든 존재와 의식의 근원은 곧 절대적 자아의 자기 정립 활동이다. 규정된 모든 현상계의 절대 근거인 '자유로운 활동적 자아'가 피히테 지식학의 중심인 것이다. 바로 이 자유로운 활동적 주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학자의 사명도 논할 수 있다.(p125)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는 제목 그대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가 정의한 학자의 사명과 관련한 다섯 가지 강의를 모은 책이다.  본문에서 피히테는 다섯 가지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자의 사명에 대해 말하기 전 '학자란 무엇인가?', '사회 속에서 신분의 차이란 무엇인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사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신의 사명이란 무엇인가?'등의 질문을 제기한다. 인간의 사명부터 학자의 사명으로 점차 질문의 범위를 좁혀가면서 본질(本質)을 찾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피히테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강의는 첫 번째 강의라 생각하기에, 이번 리뷰에서는 첫 번째 강의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강의에서 저자는 먼저 인간을 독립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순수 자아가 비아 das Nicht Ich(非我)의 산물이라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자아 외부에 있으며 자아와 구별되고 자아에 대립되는 모든 것을 저는 비아라 부릅니다. 그리고 순수 자아가 비아의 산물이라는 것은 진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p23)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인간 자체를 독립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와 동등한 다른 이성적 존재자와 맺는 관계를 우선은 고려하지 않고 인간 그 자체를 고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을 이렇게 규정할 경우 인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p24)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피히테는 이처럼 자아(自我)는 비아와 독립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러한 주장을 펼쳤을까? 피히테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피히테의 논의에서 우리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 사상의 영향을 발견하게 된다.


 자아는 이처럼 외적 사물에 의해 규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규정해야만 하며 결코 낯선 것에 의해 규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의 최종 사명은 절대적 일치성, 항구적인 동일성, 자기 자신과의 완전한 합치입니다. 이러한 절대적 동일성이 순수 자아의 형식이자 유일하게 참된 형식입니다.(p27)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그토록 확실하게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면 인간이 인간 자신의 고유한 목적이다. 즉 어떤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있지 않고, 인간은 인간이 있기 때문에 단적으로 있다. 인간의 단적인 존재는 인간 존재의 최종 목적이며, 동시에 우리는 모순 없이는 인간 존재의 어떤 목적에 대해서도 물음을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가 존재하므로 존재합니다. 인간이 단적으로 이성적 존재자로 고찰되는 한, 절대적 존재, 즉 자기 자신으로 인한 존재의 이러한 특성이 인간의 특성이자 사명입니다.(p25)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칸트 사상의 영향을 짙게 받은 다음의 문단을 통해 인간의 존재 목적은 이성(理性)이 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해서는 더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역자는 해제(解題)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피히테에 따르면 우리가 가장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동일률의 명제, 즉 'A는 A이다'라는 것이다. 피히테는 이 동일률을 'A가 존재한다면'이라는 A를 가정하는 측면과 'A가 존재한다'라는 A를 정립하는 측면의 결합, 즉 사유의 측면과 존재의 측면이 결합된 것으로 해석한다.(p124)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A=A' 라는 항등식은 A를 다른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표현되는 형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처럼 좌항의 A와 우항의 A의 형태를 띤 대표적인 명제를 <성경 聖經>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있는 나다 Ego sum qui sum" <탈출 3, 13~ 14> 영어로 "I am who I am"로 번역되는 이 명제를 충족하는 존재는,  칸트의 최고선(最高善). 도덕과 행복이 결합된 완벽한 존재인 신(God)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이 그 자체로 존재 목적이 된다는 피히테가 말한 의미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최고선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뜻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해야 하고, 이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일치할 수 있기 위해서 인간 외의 모든 사물과 그 사물들에 대한 필연적인 실천적 개념들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는, 대체로 칸트가 최고선 das hochste Gut라고 칭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선은 이성적 존재자의 자기 자신과의 완전한 일치입니다.(p30)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그렇지만, 인간은 동시에 감성(感性)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최고선과 결코 같아질 수 없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특정 사물을 감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성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게 되고, 이로 인해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어떤 것인 한, 인간은 감성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인간은 동시에 이성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감성에 의해 지양되지 않으며, 감성과 이성이라는 이 양자는 서로 양립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인간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명제는 감성과 이성의 이러한 결합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 즉 '인간은 단적으로 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가 그 어떤 것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라는 명제로 바뀌게 됩니다.(p26)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순수한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면, 불순물이 섞인 물의 온도는 이보다 더 높게 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최고선과 일치를 이를 수 있다면, 감성이라는 불순물을 가진 인간은 최고선과 일치를 이루기위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사명은 이해되어야 하며,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논의 된다.


 인간이 최종적인 목표에 이를 수 없으며 그 목표를 향한 도정(道程)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바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 내에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최종적인 목표에 이르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사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목표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다가가야만 합니다.(p31)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中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는 제목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많은 내용을 다룬 글은 아니지만, 피히테의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칸트 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피히테가 그의 유명한 저서 <독일 민족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 속에서 교육(敎育)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비추어 보면, 그가 말한 학자의 사명은 단순한 사명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책에서 말한 인간의 사명의 실천과 관련하여 막스 베스(Max Weber,1864 ~ 1920)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짧은 글이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는 단순한 직업 윤리나 사명감을 강조하는 내용의 책이 아니라, 독일 관념론(觀念論 idealism) 철학을 개략적으로나마 알려준다는 점에서 일독(一讀)할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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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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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1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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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설명처럼 이 책은 ‘정치와 도덕‘, ‘권력과 지배‘, ‘종교와 정치‘,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의 5가지 측면에서 서양정치세계사를 조망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의 시대까지 ‘정치와 도덕‘의 과제에서 출발한 정치학의 과제가 ‘종교와 정치‘의 과제로 귀결되기까지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시대의 사상사 흐름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운명이란 무엇인가‘등 사물의 정의를 내리기를 좋아한 그리스인들의 정치 사상은 플라톤이 「국가」「법률」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6가지 정체를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6가지 체제 중 귀족정은 공화정으로, 군주제는 제정의 모습으로 로마제국에게 계승된다. 그리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원수정-제정의 길이 열리며, 군주제로 정치와 도덕의 갈등이 봉합되었다.

그렇지만, 로마제국 후기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로 자리잡게 되고, 그 시기 제국으로서의 로마는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로마의 종말에 대해 기독교 사상가들은 ‘인간에 의한 지배‘가 아닌 ‘신에 의한 지배‘를 강조하면서 이제 정치사상사에서는 새로운 ‘종교와 정치‘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정치철학1 : 그리스 로마와 중세」에서는 이러한 정치 사상의 전반적 흐름 속에서 구체적인 사상의 모습을 개략적으로 잘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1부는 정치철학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 줄수 있는 쟁점들을 다루었다. 물론 정치와 도덕, 권력과 지배, 종교와정치,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는 정치철학이 당면한 수많은 난제들중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7부의 현대 정치철학에 대한 설명에서 다루듯, 정치철학의 주제들은 정치사회적 문제와 함께 진화한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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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16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만나면 언젠가는 꼭 읽을거야 하며 매번 그냥 돌아서는 책인데, 호랑이님의 리뷰를 보며 전의를 불태울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책 리뷰가 이어지나요??

겨울호랑이 2019-01-16 16:24   좋아요 1 | URL
^^:) 제가 알기로는 2권까지로 알고 있어 다음 번에 간략하게 정리하면 바로 졸업일 것 같네요. syo님께 작은 도움이나마 드린 것 같아 기분이좋네요.^^:)

2019-01-16 17: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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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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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1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앞표지 디자인이 알록달록해서 보기 좋은데 거기에 혹해서 책을 펼치면 안 되겠어요. 내용이 방대해서... ㅎㅎㅎ 표지만 좋은 교과서 같은 책일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1-16 18:01   좋아요 0 | URL
cyrus님의 교과서 의견에 동의합니다만, cyrus님 내공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 스스로 경계 밖에 서서 이 땅의 건축과 도시를 바라본 한 석학의 이야기. 그가 생각하는 건축과 도시, 그리고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Stay out, Stay alone.‘ 바깥에서 머무르며 홀로 됨을 즐기는 삶, 이게 진정한 지식인의 태도이며 적어도 바른 건축가가 사는 방법일 게다.(p13)

건축은 기본적으로 우리 삶을 영위하는 내부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며 따라서 그 공간이 보다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불행하게도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니어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가 어떤 건축에서 감동을느낀다면 그것은 거의 다 그 건축 속에 빛이 내려앉아 빚어진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p29)

그러므로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인 것처럼, 도시에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결코 몇 낱기념비적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이 또한 보이는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도시는 그 애환과 열정을 담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존속하게 된다.(p31)

이 땅의 도시들에 프랑수아 아셰의 개념을 적용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이를 ‘메타시티‘Metacity‘ 라 이름하여 가지를 쳤다.

지리와 지형에 집착하는 메타시티이니 여기서는 기억과전통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보편성은 또한 절대적 가치여서변화와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우리가 살았던 터전을 깡그리 지우는 개발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는 재생이라는 단어가 적합하며, 외과수술을 하듯 전체를바꾸는 마스터플랜보다는 부분적 환경 개선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어 전체적인 변화를 이끄는 도시침술이 더 유용하고, 일시적 완성보다는 더디지만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생성과 변화의 과정이 소중하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점진적이고 관찰적이어서 보다 사회적이고 인간적이다.(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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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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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6: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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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1-14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완전히 배제되어 대로로 차단되어 접근조차 어려운 한강을 바라보면 이 잘못을 어찌할까 라는 한탄을 합니다. 올림픽대로. 강변북로를 계획한 사람은 후손에 부끄럽지도 않은지..
정책 하나를 결정할 때 왜 우리는 우리 뒤에 올 세대를 생각해야 하는지..

겨울호랑이 2019-01-14 19:58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님 글을 보니 저자가 말한 내용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건축, 도시계획은 없고 부동산만 있다는... 몇몇 사람의 이익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한숨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