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하이데거 How To Read 시리즈
마크 A. 래톨 지음, 권순홍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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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자의 존재는 존재자가 바로 그 존재자로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그것이다.(p25)...  유의미한 사물들은 다른 유의미한 사물들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사물들의 존재 방식을 이룬다. _ <How To Read 하이데거>, p26


 존재자(Seiendes), 존재(Sein), 현존재(Dasein)... 


 <How To Read 하이데거>는 용어부터 낯선 하이데거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입문서다. '있는 것' 자체로서 존재자, 존재자가 존재하는 근거, '있음'으로서 존재, 존재자 중 유일하게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현존재. 현존재는 자신을 '실존(Existenz)'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해한다. 현존재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세계 내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현존재이기에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변화하는 양상 속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일상생활에서 그는 언제나 실존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현존재의 유동적인 질문과 답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야 비로소 고정된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본질이다.


 현존재는 본래적인 결단(Entschlossenheit)을 통해 죽음을 선취(Vorlaufen)함으로써, 죽음 이전에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삶의 매 순간, 위기의 순간 찾아오는 불안감(Angst)이 찾아올 때, 현존재는 이를 뿌리치고  본래적인 자기로의 결단(Entschlossenheit)을 통해 자신의 전체(Ganzheit)를 인식하고, 비본래적인 타자(Das Man)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하이데거는 특히 '미래를 향한 기투(Entwurf)'를 강조한다. 현존재인 우리가 아무 근거 없이 허공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한계(피투성)를 딛고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내던지는(기투) 행위를 통해 본래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How To Read 하이데거>는 난해한 하이데거 철학의 얼개를 차분히 설명하며, 독자들이 하이데거 철학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입문서다.



현존재(Dasein)는 그의 존재(Sein)에서 이해하면서 이 존재와 스스로 관계하는(verhalt) 존재자(Seiendes)다. 이것으로써 실존의 형식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다. 현존재는 실존한다. 게다가 현존재는 그때마다 나 자신인 존재자다. 실존하는 현존재에게는 각자성(各自性, Jemeingkeit)이 본래성(Eigentlichkeit)과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속해 있다. - P17

세계-내-존재는 우리가 늘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에 처해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우리는 ‘거기에‘를, 즉 의미 있게 구조화된 상황을 갖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행동하고 실존하게 마련이다. 현존재의 한 가지 존재 구성 틀은 세계가 언제나 우리로서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특정한 방식으로 쩌여 있거나 기분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구성 틀은 우리 자신이 언제나 특정한 바익으로 사물들과 관련해서 기분에 젖어 있고 또 그 사물들이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 간에 우리를 습격한다는 사실이다. 사물들이 습격하는 방식은 우리의 기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어쨌든 기분은 세계 내부적인 사물들과 관련해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기분에 젖어들게 함으로써 우리의 태도를 이끌고 구조화한다. 이렇게 보자면, 유정성은 일종의 ‘조율‘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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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 오늘의 유럽을 낳은 최초의 영토 전쟁 1618~1648
C. V. 웨지우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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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의 열풍이 일단락되면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회의를 통해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루터파에만 국한되고 칼뱅파를 비롯한 다른 신교 종파는 제외되었는데, 이 불씨가 결국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신교연합과 가톨릭동맹 사이의) 일촉즉발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1617년에 보헤미아의 왕이 된 페르디난트 2세가 신교도를 탄압하자 보헤미아의 귀족들은 그를 거부하고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한다. 이것이 30년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시작은 그랬으나 전쟁이 진행될수록 종교의 명분은 뒷전으로 나앉고, 유럽 각국의 국익이 점점 중요하게 대두된다. _ <30년 전쟁>, 옮긴이의 글, p15


 유럽 최초의 근대적 영토전쟁 30년 전쟁. 1618~1648년까지 독일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전쟁들을 통칭하는 이 용어는 단순히 '30년동안 일어난 전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 전쟁을 명분으로 했으나, 그 이면에는 유럽 각국의 국익이라는 실리가 충돌한 전쟁이었다. 제국을 꿈꾸는 군주, 영지를 지키려는 제후, 신분 상승을 노리는 용병 대장, 생존을 위한 상인과 농민 등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가 얽혔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껍데기 아래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독일은 이러한 욕망의 충돌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고, 그 비극적인 대가를 치렀다. 이처럼 종교라는 중세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국가와 민족의 이해관계라는 근대적 실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30년 전쟁은 '최후의 중세 전쟁이자 최초의 근대 전쟁'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독일 지역에는 독립 소국들의 방대한 집단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뭉쳐 중부 유럽의 지리적, 정치적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조와  부르봉 왕조의 경쟁, 에스파냐 왕과 네덜란드의 경쟁, 가톨릭과 신교의 경쟁에서 독일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각국 정부는 그 점을 깨닫고 저마다 이 분열된 나라에서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_ <30년 전쟁>, p53


 <30년 전쟁>의 저자 C.V.웨지우드는 이러한 수많은 욕망들의 대립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마드리드, 파리, 런던, 스톡홀름, 빈, 코펜하겐에서 결정된 내용에 의해 마그네부르크는 약탈당했으며, 뤼첸에서는 대군이 격돌했고, 우체돔에는 스웨덴 군을 맞아야 했던 만큼 독일 전역에 재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을 독자들 눈앞에 차분하게 그리고 작가만의 기준을 갖고 그려낸다. 작가는 주요 사건 전후로 핵심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데, 그 기준은 독창적이다. 대표적으로 30년 전쟁사 중 보기드물게 성군으로 인정받는 스웨덴 국왕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다소 박하다. 이는 곧 웨지우드가 전쟁을 바라보는 기준이 '유럽 다수에게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다주는가'에 맞춰져 있으며, 전쟁을 통해 영웅이 되는 개인의 성취보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대중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구스타프를 옹호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를 유럽 역사의 공인된 영웅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강력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어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신념일 뿐 증거에 입각한 견해는 아니다... 구스타프처럼 타고난 정복자는 아무리 평화를 희구하더라도 항상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_ <30년 전쟁>, p411


 전체 독일 인구의 1/3이 줄었을 정도로 독일에 치명타를 안긴 이 비극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독일의 봉건제가 지속되고 근대화가 영국, 프랑스에 비해 뒤쳐진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이 거시적 흐름의 인과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그 흐름을 헤쳐갔던 이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30년 전쟁>의 저자 웨지우드는 전장의 전사를 그리면서도, 약탈을 피해 성당으로 피하는 노약자들을 함께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박진감 넘치는 전쟁사'가 아닌 '파괴의 문명사'로서 전쟁의 의미를 독자들과 함께 찾는다.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유럽의 압도적인 다수, 독일의 압도적인 다수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힘도 목소리도 없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든 결정은 그들을 고려하지 않고 내려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 둘씩 전쟁으로 끌려들어갔고, 모두가 진심으로 궁극적인 평화를 갈망했다. _ <30년 전쟁>, p641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30년 전쟁의 종결인 베스트팔렌 조약(1648) 을 '근대 외교사의 탄생'으로 기록한다. 이 조약은 네덜란드의 독립, 합스부르크 세력의 쇠퇴, 프랑스의 부상이라는 결과를 낳으며 국가 중심의 근대 유럽 질서를 확립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국가의 관점' 대신 전쟁의 피해자, 즉 '대중의 관점'에서 전쟁의 의미를 찾는다. 저자는 농민 계층이 전쟁 기간 동안 겪은 끔찍한 고통을 상세히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집단으로서의 농민이 전쟁 후 사회 내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 강자로 떠올랐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전쟁의 비극적 유산 속에서도 미묘한 사회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30년전쟁>은 17세기 근대 유럽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건을 보다 낮은 자리에서 올려다 본 의밌는 역사책이라 여겨진다...


 개인으로서 농민은 전쟁 중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엄중한 과세와 약탈, 폭력, 추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집단으로서의 농민은 전쟁을 거치면서 그들이 부양하는 사회의 다른 부문에 비해 강자로 떠올랐다. _ <30년 전쟁>, p624



종교개혁 이후 불과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권을 재통합한다는 꿈을 버렸다. 가톨릭이 재통합에 실패한 것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원인은 있다. 교회의 운명이 오스트리아 왕실과 긴밀하게 얽히면서 왕실의 영토 욕심이 가톨릭 교회를 옹호해야 할 세력들을 분열시켰던 것이다. - P43

신교 군주들은 프리드리히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또한 가톨릭 세력은 페르디난트를 지지하는 것으로 외국의 간섭을 방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유럽에는 프리드리히나 보헤미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오스트리아 왕가를 두려워하거나 라인 유역을 탐내는 군주들은 많았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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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치됐던 보건진료소를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다.
농어촌 주민의 일상에 가장 근접한 곳에서 예방·치료·돌봄을 수행해온 유일한 제도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완성된 해법‘을 발견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된 제도임에도 누구도 제대로 챙기고 가꾸지 않아 인력은 부족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기능과 역할 재정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남아 있다. - P15

한양대·고려대·성균관대도서관 ID가 거래되는가 하면, 올리브영무신사, 네이버, 탑툰, 카카오, 멜론, 텀블벅, 예스24 등 주요 인터넷 서비스의 ID등이 매물로 등재되어 있었다. 각 서비스매물에는 실명인증한 아이디를 제공한다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ID당 가격은100~300위안(약 2만~6만원) 수준이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 접속 정보 보호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내는 모습이다. - P17

특검 공소장에 따르면, 무인기 침투이후 북한 내부 경계가 삼엄해졌다. 북한은 경비 인력을 재배치하고 사상 교육을 강화했다. 동시에 러시아 방공무기체계를 도입하는 등 경계 태세를 올렸다. 바깥으로는 방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10월15일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와 철도를 폭파하면서 "이번 조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연결통로가 철저히 분리됐다"라고 강조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 P20

"단기적으로는 환헤지(환율변동에 따른위험에 대비해 사전에 특정 환율로 고정하는 것), 외환 스와프 연장 등의 수단으로 외환의 공급을 늘려 환율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한국의 산업구조 변화와 경쟁력 약화가원화 약세의 기저에 있다." 단기 처방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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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위대한 생각 1~5권 세트 - 전5권
마르셀 프루스트 외 지음, 유예진 외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62,000원 → 55,800원(10%할인) / 마일리지 3,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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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정초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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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 : 작가의 신념- 삶, 기술, 예술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경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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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기행 : 마루시의 거상
헨리 밀러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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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위대한 생각 시리즈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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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아름다운 책들이 갖는 위대하고 뛰어난 특성 중 하나로 작가에게는 '결론'이고 독자에게는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작가의 지혜가 끝날 때 우리의 지혜가 시작됨을 느끼고, 작가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를 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에게 욕구를 불어넣는 것이다.(p33) ... 작가는 말하는 순간 모습을 감춘다. 바로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한계이다. 시작임에 불과한 것을 마치 규범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독서에 지나치게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삶의 도입부에 있다. 독서는 그러한 삶에 안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_ <독서에 관하여>, p35


 작가의 끝 그리고 독자의 시작. <독서에 관하여>안에서 프루스트는 작가와 독자의 단절을 말한다. 작가는 책을 '쓴다'. 독서가 이루어지는 동안 독자들은 이미 떠난 작가가 남긴 자취를 따라 자신만의 여행을 간다. 작가와는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독자의 머리 안에서 작가가 남긴 흔적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조립될 것이고, 독자 자신은 DIY로 조합되고 해석된 의미를 통해 책을 '읽는다'. '쓴다-읽는다'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타인의 구미에 맞추어 일할 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일할 때 그 결과는 반드시 누군가의 공감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한 무엇이 아무에게도 같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독특하지 않고, 천만다행으로 삶에서 그토록 큰 기쁨을 주는 호감과 이해심으로 우리의 개인성은 보편적인 틀 속에 짜여 있다. _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 p64


 보편성과 개별성. 많은 경우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공감을 받는 보편성을 갖는다고 여긴다. 자신과 남들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들은 잘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반응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최소한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갖는 이들에게만이라도 이해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기대는 그렇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작가와 같은 사회적 배경에 있더라도, 드러나지 않은 저마다의 개인감정을 통해 읽혀진 작품에 대한 반응은 마치 무회전 공처럼 예측하기 힘들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예측 불가능한 틈. 어쩌면 이곳이 창조성 발현 공간은 아닐까?


 창조적인 행위는 그것에 관한 어떤 법칙을 알고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신비한 힘, 그것을 밝혀낸다고 해서 더 강해지지는 않는 그 어떤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_ <샤르댕과 렘브란트>, p64


 작품이 온전하게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쓰고 읽는', '그리고 보는', '연주하고 듣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예술의 창조성은 과정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과정 안에 숨겨진 힘.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의. 이처럼 작가와 독자라는 둘 사이의 '신비한 힘'에 의해 이루어진 창조물(작품)은 그것을 낳은 작가와 구별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작가와 작품은 구별되어야 하며, 곧 프루스트 예술론과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독서에 관하여>에서 드러난 프루스트의 예술론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화자가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독자나 관객을 작가의 의도를 관철시켜야 하는 대상이 아닌, 작가가 바라본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가진 '제2의 창작자'로 받아들이고  독자의 몫을 남겨야 한다는 프루스트의 예술론을 알고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다른 의미에서 독자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는 아닐까 라는 작은 물음과 함께 책을 덮는다...


 예술작품을 통해 민중에게 교훈을 주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을 추구하려 했던 러스킨의 미학은 예술가의 정치적이며 사회참여적인 자세를 유도하기에 이른다. 이는 다시 말하면 모든 훌륭한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에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논리로까지 전개될 수 있다(p225)... 프루스트에게 있어 예술가의 임무는 숨어 있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글이건 그림이건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여 예술작품을 승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기준은 오로지 진리의 추구인 것이다. _ <독서에 관하여>, 역자해설 p227

고전작품은 동시대 작품들과 달리 그것을 창조한 정신이 아름다움만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다. 고전작품들은 그보다 더 감동적인 다른 것을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그 작품을 구성하는 재질, 그것이 쓰인 언어이다. 그 재질은 삶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 P53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법이다. 그들이 이제껏 우리에게만 기쁨을 주던 것들의 엄숙한 이름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채 부를 때, 그것이 현실에 우리보다 더 종속된 이들에 의해 이같이 다루어질 때 우리는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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