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서재 기네스
* * *
서재 활동 : 1년간 총 135개의 글을 작성해주셨습니다. |
|
마이리뷰 |
11 |
|
마이페이퍼 |
124 |
|
마이리스트 |
0 |
|
포토리뷰 |
0 |
|
100자평 |
0 |
|
밑줄긋기 |
0 |
|
총 합계 |
135 | |
|
내가 작성한 댓글수 |
178 |
|
내 글에 달린 댓글수 |
181 |
|
내가 추천한 수 |
275 |
|
내 글에 추천 받은 수 |
496 |
|
Thanks to 한 수 |
18 |
|
Thanks to 받은 수 |
90 |
|
TTB2 받은 적립금 |
5,590 | |
1년간 추천을 많이 받은 글 TOP 3 |
연간 통계 리포트 |
|
|
2013년 oren님이 작성해주신 글은 총 135개이며, 작성해주신 글자수는 501,774자 입니다. 이는 <엄마를 부탁해> 같은 단행본으로 만든다면 4.36권을 출간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oren님은 전체 알라디너 중 243번째로 글을 많이 작성해주신 알라디너십니다. |
|
방문자 수 |
|
1년간 총 방문자는 24,420명이며, 방문자가 가장 많았던 날은 12월 26일(수)로 486명이 방문하셨습니다. |
* * *
연말이다. 다른 모든 활동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결산'이 필요한 때이다. 어느 활동에서든 누구라도 자신의 '1년 동안의 활동 내역'을 받아 들고 아무런 소감이 없을 수는 없다. 한해를 되돌아보니 작년 이맘때 정말 뜻밖에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면서 내 서재에 노란 딱지 하나가 덜컥 붙은 모습에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뚜렷한데 어느새 엠블럼이 하나 더 덧붙여진 모습도 이젠 별로 놀랍지 않다. 사람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몹시도 욕망하지만 이미 가진 사물에 대해선 금세 시큰둥해진다는 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싶다.
우리의 욕망은 내 손에 있는 것은 경멸하며 넘겨 버린다
나는 내 종마장에서 늙은 말 한 필을 쫓아냈다. 이놈은 암컷 냄새만으로는 붙여 볼 도리가 없었다. 제 암컷들과는 일이 쉬우니까 바로 물려 버렸다. 그러나 다른 집 암컷들은 어느 것이 목장 부근을 지나기만 해도 귀찮게 이힝힝거리며 흥분하는 꼴이었다.
우리의 욕망은 내 손에 있는 것은 경멸하며 넘겨 버린다. 그리고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을 차지하려고 애쓴다.
그는 수중에 있는 것은 경멸하고
잡히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호라티우스)
(676쪽)
'2013 알라딘 서재 결산'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내용은 없는 듯싶다. 늘 꾸준히 얼굴을 내밀던 친숙한 분들이 얼마간 자리를 채우지 못했고 새롭게 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인 분들이 새로운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이런 면모는 흔히들 갖는 수많은 연말 모임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서재 결산 또한 여느 모임에서 '총무'가 간략히 발표하는 '결산 보고'와도 어느 정도 닮았다. 나는 여느 '연말 모임'의 회원들이 으례 그렇게 행동하듯이, 이곳의 회원으로서 나에게 해당되는 몇 가지에 대해서 짐짓 모른체하고 넘기기가 조금은 쑥스럽다.
우선 첫째로, 나의 보잘 것 없는 서재가 서재 기네스 Top 10 '즐겨찾기' 부문에서 수많은 명망높은 알라디너 분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힘써준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로서는 서재의 달인에 선정된 것보다 더 놀라운 결산 소득이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좋은 리뷰나 좀 더 읽을 만한 페이퍼를 열심히 올려야겠다는 새로운 다짐도 해보게 된다. 그렇더라도 나는 내 힘에 부치는 욕심을 내지는 않겠다.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902쪽)
두 번째로, 내 글에 추천받은 수(496회)에 비해 내가 추천한 수(275회)가 너무 적었던 점을 반성해 본다. 내가 다른 분들의 글에 '추천' 버튼을 누르는 데 잠깐씩 주저했던 순간들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대체로 내가 다른 분들의 글을 추천하는데 매우 인색했던 점을 반성한다. 이와는 반대로 내 글에 몰래 추천을 꾹꾹 눌러주고 가신 많은 익명의 회원 분들께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다음의 인용글이 익명으로 추천하는 분들께 어느 정도 들어맞는 말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드러내 놓지 않고 몰래 추천을 눌러주신 많은 분들께 이럴 때 말고 언제 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는가.
드러내 놓은 것은 반은 이미 할인된 것이다
선한 행동의 명성이 높아 감에 따라 나는 그 선한 점이 선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도 명성을 얻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을 억누른다. 드러내 놓은 것은 반은 이미 할인된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그것을 성취한 자들의 손에서 자연스레 풍겨져 나오거나, 점잖은 사람들이 다음에 그것을 택하여 세상에 묻혀 있는 것을 드러내고 그 자체가 좋으므로 세상에 알려지고 드러날 때에, 한층 더 운치가 나는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성취된 행적이 훨씬 더 찬양할 만하다고 본다"(케케로)고 세상에서 가장 허영스런 인물은 말한다.
(1139쪽)
사실 지난 1년을 되돌아 보면 알라딘과 심각하게 날을 세운 일부터 먼저 떠오른다. 그건 내 서재에서 <1년간 추천을 많이 받은 글 TOP 3>에서도 다시금 확인되는 일이다. 올 연초에 불거진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 때문에 나는 사실 알라딘을 떠날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한동안 알라딘을 외면했었고 알라딘을 통해서는 책조차 사지 않았다. 그러나 내 스스로 알라딘 서재와 결별하기에 앞서 계속 꾸물거리다가 결국 다시 여기에 눌러붙었다. 꾸물거림의 가치도 무시하긴 어렵다. 누구 말대로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는 않겠지만, 설령 내가 이곳을 떠난 뒤 다소 외롭고 쓸쓸해 지더라도 그게 오히려 나를 키워줄 지도 모를 일임을 믿기 때문에, 알라딘을 떠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유약한 행동 습관에서 오는 거칠고 쓴 일은 상대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게서 적의나 시기심 같은 것은 쉽사리 벗어 던진다.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미움 받지 않기로는 나만큼 기회를 얻은 자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람과의 교제에 냉담하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잃었고, 그 사람들이 나의 이러한 태도를 나쁜 의미로 해석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902쪽)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
사람들 중에는 은둔적이고 내향적인 특수한 성질도 있다. 나의 본질적인 형태는 나를 표현하고 사람과 교제하는 데 적합하다. 나는 천성이 사교와 우정을 즐기며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보여 준다. 나는 외롭고 쓸쓸함을 즐기고 권유하지만, 그것은 주로 내 심정과 사상을 자신에게 끌어오는 데 그치며, 내 생활이 아니라 욕망과 근심을 제한하여 압축하기 위함이며, 외부의 일이 되어 가는 형세로 외로워지는 것도 단념하고, 굴종과 부담을 극도로 피하기 때문이며, 사람이 많은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다. 내 사는 자리가 외롭고 쓸쓸한 것은,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나를 뻗쳐서 밖으로 키워 준다. 나는 혼자 있을 때에 더 즐겨서 국가와 우주의 일에 열중한다.
(905∼906쪽)
내가 작성한 댓글(178개)와 내 글에 달린 댓글(181)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췄다. 나는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도 싫지만 내 글에 달린 댓글을 외면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견디기 어렵다. 혹시라도 내 글에 달린 댓글에 내가 미처 댓글을 달아 드리지 못했다면 그건 순전히 내 불찰이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믿어 달라.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 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후하게 내려줌은 이미 더 많이 실시하였을수록 다음에는 그만큼 더 못하게 된다. 기분좋게 하는 일을 오래 두고 할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처사가 어디 있는가?"(키케로)
(1001쪽)
받아버린 것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채워 줄수록 커 가는 욕심을 어떻게 만족시킨단 말인가? 가질 생각을 가진 자는 이미 가진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탐욕은 배은망덕하기에 꼭 알맞은 소질이다.
(1002쪽)
나는 댓글을 다는 일에 몹시 조심하는 편이다. 혹시라도 내가 쓴 댓글이 글을 쓴 분들의 기분을 언짢게 했다면 이 기회에 용서를 구한다. 내가 여러번 인용하는 글이지만,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댓글을 읽을 땐 가끔씩 '강인한 귀'를 가질 필요도 있다.
강인한 귀, 특별한 우정의 표시
우리는 자기를 솔직하게 비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강인한 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이 쓰리다고 느끼지 않고 남의 비판을 참고 듣는 자는 드문 까닭에, 우리에게 감히 비평을 시도하는 자는 특별한 우정의 표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좋게 해 주려고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모욕을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전하게 사랑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못된 소질이 착한 소질보다 강한 자를 비판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플라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자에게 지식과 호의와 과감성이라는 세 가지 소질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1201쪽)
내가 쓰는 글들은 가끔씩이나마 '애써서 지은 품'이 박혀 있을 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체로 애를 쓰기만 할 뿐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다. 좀 더 부지런히 읽고, 자주 그렇게 해왔듯이 책에서 발견한 좋은 글들을 부지런히 옮겨 쓰면서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글을 쓸 때보다 좋은 책을 읽을 때가 훨씬 더 즐겁다.
좁은 홈통
웅변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굴러가지 않으면 쓸모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떤 작품들은 애써서 지은 품이 박혀 있어 어딘가 투박하고 무뚝뚝한 맛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등불과 기름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것은 잘 지어 보려고 애를 쓰며 자기 일에 너무 긴장하고 억눌린 마음 때문에 자연스러운 웅변을 억누르고 꺽어 빽빽하게 만들고, 마치 풍부한 물이 억지로 맹렬하게 밀려 나가다가 좁은 홈통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격이 된다.
(48쪽)
별 대수롭지 않은 '결산'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하니 몹시 홀가분하다. 더구나 내일은 즐거운 성탄절이다. 나도 어서 퇴근해야겠다. 이맘때만 쓸 수 있는 유쾌한 인사를 여기서 빼놓을 순 없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