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초록들이 잔뜩이다.
도서관도 너무 좋은데, 가는 길도 걸어 3분, 초록들이 잔뜩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내 작은 도서관이 나타난다.

신청도서가 석달만에 오는 것만 어떻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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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읽기.. 이 두꺼운 책. 전자책이라 얼마나 읽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터치하면 나오는 하단의 바에 점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수학 정석책마냥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 또 반복. 맘 먹고 다시 읽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끝까지 읽어야지.

 

1부 신화와 회상까지 (다시) 읽었고, 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을 (다시) 읽고 있다.

 

지금 시기를 나중에 어떻게 돌이켜볼지 모르겠는데,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 후일, 돌이켜 볼 때, 내가, 내 주위가, 내 주위의 주위가 나아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뉴스를 보고, 현실이 점점 진창 똥구렁텅이임을 알게 될수록 냉소를 경계해야 한다. 누구도 이렇게 계속 분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노에 무뎌져서는 안 된다. 실망하고, 또 실망하더라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백래시 서문에서 수잔 팔라디는 '환멸은 출발점이다. 실망과 패배는 다르다.' 고 했다. 그러니, 지금의 환멸은 출발이고, 분노에 지칠때, 무뎌지지 않도록 도움 받고, 도울 것이다.

 

백래시 1부에서 국가와 미디어가 어떻게 거짓 연구를 부풀리고, 인용하고, 거기에 휘둘려지고, 후려쳐지는지 볼 수 있다.

 

" 하이트와 블로트닉의 연구 결과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대중문화가 취사선택해 가장 크게 홍보하는 통계야말로 우리가 가장 조심해서 봐야 할 통계임을 시사한다. 이런 것들이 널리 유통되는 것은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믿는 미디어의 편견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무해한 음모인가.

혜화역 시위에 관한 정부 보고서 기사 읽으며, 읽는 내내 입이 썼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8&aid=0004130036&sid1=001&lfrom=twitter

 

"△5월 1일 홍대 남성 누드 몰카 사건 발생 △10일 피의자 검거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개시 △19일 1차 집회 개최까지 사태의 발전은 급속하게 진행됐는데, 이처럼 급속한 속도로 청와대 국민청원과 집회로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은 참여자들에게 '몰카'라는 소재가 낯설지 않은,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혜화역 시위에 참여하거나 공감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몰카 범죄는 △여성의 신체적 안전에 대한 위협 △사생활의 권리 및 생명권·안전권 침해 △국가로부터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2등 시민'으로서 여성에 대한 자각 △여성의 신체를 위법적으로 소비할 뿐 아니라 고용차별, 임금격차, 직장 내 유리 천정 등 성별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시키는 남성 권력에 대한 분노라는,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각기 네 가지 층위의 인식을 집결시키는 소재"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통해 얻은 대중의 정치적 효능감이 혜화역 시위와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다.

 

맞는 말인데, 뒤로 갈수록 욕 나온다.

 

연구진은 이 외에도 "문제 제기 주체들이 '한국 남성 대 잠재적, 현재적 피해자인 여성'이라는 프레임과 '남성 권력 대 피해자인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강조하는데 반해 갈등 중재자는 △몰카 범죄자 대 피해자 △법 집행 기관(경찰, 검찰) 대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시민 등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프레임을 사용해야 한다"며 "특히 '몰카를 찍고 유통시키는 주체로서 남성 대 언제 어디서든 피해자가 될 수있는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몰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비가 너무나 확연한데, 여성을 지우고, 절실함에서 몰려 나온 여자들의 시위를 '인정욕구' 로 비하한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 대실망) 의 여가부에서 나온 불법촬영 동영상에서의 가해자가 여성이고, 남성이 눈쌀 찌푸리는 편, 정말 토할 것 같고, 쌍욕 나오는 그것이 의도적인 무해한 음모였음을 확신하게 된다. 여성이슈에 입 닥치고, 양심적 병역거부 이슈에 기뻐 죽는 여가부 장관이라니, 정말 꺼지세요.

 

매 번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백래시 1부에 나온다. 지금 나는 이것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무력감과 피로감은 엄청날 것. 그러니, 2보 퇴보하더라도, 3보 나갈 때까지 멈추면 안 된다.

 

무해한 여성상에 대해 생각한다. 여성의 애교, 드세지 않은 여자. 여자가 드세다는 건 뭔가?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 희생자인 여자 이미지에 대해 생각한다. '냉장고속 여자' 같은 것이 클리쉐로 쓰이고..  

 

전후, 50년대, 다시 여성을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여성의 공간을 가정으로 한정하는 이미지와 프로파간다들이 판을 칠 때 나온 단어가 '코쿠닝cocooning '이라는 허구적인 트렌드이다.

 

 " 고치cocoon는 성숙 단계에 이르면 즉시 벗겨지는 겉껍질이다. 나비는 번데기로도, 유충으로도 되돌아가지 않는다. 고치 짓기라는 문화적인 신화는 생애 주기에서 태내의 상태로 퇴행하는 성인 여성을 암시한다. 이는 20세기 전환기에 활동했던 한 작가가 "성장을 위한 여성들의 시도"라고 한 때 적절히 규정했던 페미니즘의 여정에서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게다가 중년에 접어드는 여성 인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바로 그 시점에 여성 성인기에서의 퇴행을 활성화하는 고치 짓기라는 유아기적 이미지에는 악의적인 뜻이 숨겨져 있다. 하필이면 여성들이 젊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여성적인 젊음이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치 짓기는 여성들에게 어린 소녀가 되라고 졸라 대고, 그러고 난 뒤 그런 노력을 할 수 없는 여성들을 가차 없이 욕보인다. "

 

(...)

 

" 그녀는 집 안에 틀어박힌 냉동 인간, 자리보전하고 있는 환자, 이름 없는 조용한 몸이다. 그녀는 목 잘린 여성의 그림이 실린 1980년대 빈티지 와인 라벨의 이름처럼 '말 없는 여성the Quiet Woman' 이다. 그녀는 입생로랑의 향수 오피움을 비롯한 1980년대의 다른 많은 향수 광고에서 보여 주는 혼절한 여성이다. 그녀는 <에스콰이어>가 "우리가 사랑한 여성들" 호의 표지로 선택한 <트윈픽스>의 죽은 소녀 로라 팔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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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1-0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쿠닝... 저도 하이라이트 해 놓았는데 퇴행하는 성인 여성... 에서 정말 흠칫했어요.
전 이북으로 읽기 어려워 종이책으로 읽고 있답니다. 점이 힘들어서^^
 

오늘 아침 알라딘 2019년 달력 시리즈 보고 너무 예뻐서 현기증 나면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맘 가라앉히고, 차분히 일력과 달력과 패브릭 달력까지 살펴보고, 내게 필요한 건 스누피 일력.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에겐 캣갤러리 일력이 있지만, 스누피 일력은 메모장같이 생겨서 매일 그 날 계획 쓰면 된다. 지금 그냥 수첩에 하고 찢어내는 것처럼. 좋았어.

 

하고,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5만원어치나 책 살 자신 없어서 (자신은 있는데, 내가 요즘 책을 안 사서 한 번에 오만원 쓰려니 간이 쫄아 못 삼) 3만원 이북을 노렸다. 적립금과 쿠폰과 몰적립금까지 마구 모아서 사면 만원대로 살 수 있어. 하고 책을 고르기 시작했지만, 살 책이 너무 없어서! (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다시 종이책까지 뒤적였으나, 역시 사고 싶은 책이 없다.

 

이런 패턴.

 

전자책 살까 싶은 것들은 별로면 어떡하지, 팔지도 버리지도 못해. 평생 소장할 만큼 이 책이 읽고 싶은건 아니야.

 

종이책 살까 싶은 것들은, 아, 이거 전자책 나오면 살까, 혹은 도서관에 신청할까.

 

하다가 하루 종일 고민만 함.

 

스누피 일력 가져야 하는데!

 

하지만, 골랐다. 전자책으로. 30,400원 맞추고, (역시 금액 맞추는 실력 어디 안 가) 각종 할인과 적립금 사용해서 13,370원을 지불하고, 스누피 일력이 출고준비중이다.

 

 

 

 

 

 

 

 

 

 

 

 

 

 

 

이렇게 세 권 골랐습니다.

 

오늘 도서관에서 책도 읽었고, 읽고 싶었던 가스등 이펙트랑 회복탄력성 관련 책 두 권 빌렸고,

제주 와서 처음으로 (처음인가? 아, 처음은 아니고, 다섯달 만에) 알라딘에 책도 팔았고, 집에 있는 책 선물도 하고,

유익한 책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었는데, 뭔가 내가 이십년만에 책호더?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잠깐잠깐 들었다. 일흔의 나이에 내가 그를 엄청 부러워했던 프랑스 작은 마을의 서재. 남은 평생을 그 곳에서 보내리라 했는데, 관료상의 문제로 프랑스를 떠나와야 했고, 서재를 해체해야 했고, 그 과정은 엄청 분노를 일으키고, 슬프고, 허탈했다.

 

1톤트럭 가득 책을 버리고 왔는데, 가지고 내려온 책이 적은가? 모르겠다. 더 줄여도 될 것 같고, 나는 책의 물성보다는 그냥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맘에 들었던 문장들을 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김연수 작가가 가장 좋았던 픽션 365권, 논픽션 365권만 가지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 책들만 읽으며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들만 남겨두고, 반복해서 읽으며 살고 싶다. 새로 나오는 책들은 읽고 반납하고, 읽고 팔고, 읽고 선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 되었고, 그 때마다 사실 아무 기준 없이 백권이랬다 천권이랬다 삼백권이랬다 오백권이랬다 그랬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내 안의 뭔가 딸깍. 하면서 그 숫자가 확 내려갔다. 몇 권이라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닌데, 내 마음 속에 여렴풋이 그려지는 서재는 작은 책장 하나였다.

 

사람은 변한다. 

 

알라딘 굿즈 받으려고 책 산 페이퍼 쓰면서 할 이야기인가는 모르겠지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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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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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면서야, 나는 간호사 다음에 쉼표가 있고, 사람입니다. 가 제목인 걸 알았다. 그렇겠지. 간호사도 사람인데 같은 뜻이겠지. 간호사인종 뭐 이런거 아니고. 표지의 제목 보고선 몰랐다.

 

알바 끝나고, 바로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권 반납하고, 읽고 싶은 책들을 빌렸다. 도서관에서 다 읽은 책이다.

눈물 나서 중간중간 고개 처들고, 눈물 말리면서.

 

이십년 경력의 간호사, 회의를 못 견디고 이십년을 버티다 뛰쳐나와 자신을 돌아 본 사람이 쓴 글들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갑갑하고, 힘들어지는데, 그걸 더 가까이서 접하고도 도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35% 정도가 못 견디고 나온다고 한다. 메르스 때, 간호사의 편지. 같은 걸 봤던 것도 같고, 안 봤던 것도 같은데, 그 때, 간호사의 편지로 유명세를 탔던 간호사이고, 이 책에 나온 몇몇 에피소드는 확실히 본 기억이 나는걸 보면, 그 후로도 매체에 글을 기고했었나보다. 자신의 편지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더 힘내고,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고 쪼개서 홍보에 도움될 일들을 했다고 한다. 올스타전에까지 초대 받았다고 하니, 메르스때의 그 간호사가 미디어에서 어떻게 소비된걸까 놀랍긴 하다. 그런 자신의 유명세를 좋아한 병원 윗 사람들이 제안한 승진 대신 간호사들의 처우를 얘기하다가 외면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상황이 그려져, 입 안이 무척 씁쓸하다.

 

뛰쳐나오게 된 건, 오해로 인해, 진상 보호자들로부터 멱살 잡혀 끌려 나가는 후배 간호사를 병원에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였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열정페이 같은 것도 나쁘지만, 그 열정과 희생마저 인정해주지 않고, 당연시 여긴다면, 같은 편이어야 할 병원이 보호해주지 못하고, 쥐어짜내야할 소모품으로만 여긴다면, 누가 견딜까. 저자가 염두에 두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은 에피소드들에서 안타까운 여자들을 본다. 여자들이 대부분일 강한 약자 간호사들을 본다. 딱 하나 빼 버렸음, 없었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내 친구들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딱 알듯.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알려지지도 않던 수 많은 비인간적인 갑질과 노동을 후려치는 많은 사례들이 그나마 알려지기라도 하는 것이긴 할텐데, 그래서 변할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몰랐던 걸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몰랐던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니, 더 나아지고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알게 되는 것, 알려지는 것이 없이, 변화도 없겠지.

 

이렇게 목소리 내주고, 그 목소리의 편에 서서 힘 실어주고, 개인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조금씩 좋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개인은 무력하지만, 개인이 모인 것이 사회이니, 변하는 개인이 많아질 때 사회도 변할 것이다.

 

40대 초반에 병원을 박차고 나온 것 같은데, 비슷한 나이의 비혼 여성으로 이 분이 앞으로 뭐할까.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응원하고 싶다. 본인의 경험을 살려 빛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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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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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은 계속 접하고 있었지만, 정희진의 책을 읽은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고, 그 사이에 사회도, 나도 아주 많이 변했다. <혼자서 본 영화>를 읽으며 정말 좋아서, 지금의 내가 다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그의 책들을 대기에 올려 둔다.

 

여성주의 강의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가장 임팩트가 크고, 나를 변화 시킨 것은 정희진의 강의였다. 글과 말이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어서 충격이었고, 강의 듣는 시간 내내 같이 웃고, 분노하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혼자서 본 영화>는 영화 감상문인데, 텍스트와 본인이 달라붙어 있다고 하는 만큼, 그의 영화 감상문 또한 정희진의 그간의 글들과 말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의 인생과 붙어 있다. 몸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자신의 삶을 내던져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도, 이별도, 상처도, 그의 여성에 대한 공부와 헌신, 글쓰기와 영화, 읽기에 중독된 삶이 고스란히 이 책에 드러난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 때로 실망도 하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머리말에 이 책을 엮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글을 못 쓰는지 알았다고 하는데, 이보세요, 선생님. 특히 표현력이 떨어진다고 자학하는데, 저기요, 이분이 참.. 나는 이 책이 영화감상문의 탈을 쓴 훌륭한 여성주의 책이기도 하고, 훌륭한 사랑과 이별의 책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다보면, 인용된 영화들을 너무 당장 보고 싶지만, 그건 그의 진정성 있는 글과 글발(표현력!) 때문이고, 영화는 재미 없겠지. 선생님, 저는 영화 중독은 아니니깐요. 하지만, 그의 영화 읽기. 그의 몸과 머리와 삶이 녹아 있는 영화 읽기는 참 좋았다.

 

좋았던 감상문들을 몇 가지 꼽아 보는 것은 내 삶과 맞닿아 있는 감상문의 감상문일 것이다.

 

<하얀 궁전> 부자 남자와 '하얀궁전'이라는 햄버거 집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의 사랑 이야기. 영화 속 사랑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 (...) 상대에게 무시당하고 어느 부분만 착취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나의 고통을 즐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 이전에 윤리. 윤리는 정치학이고 사회 정의다. 윤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 의사 소통이 사랑의 기본이건만, 우리는 타인과 대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대화 자체가 권력 관계의 규제를 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

 

나를 함부로 대하는 상대에게서 도망쳐. 착취당하지 말고. 자신을 존중하는 상대를 만나. 대화할 수 없는, 소통할 수 없는 상대에게서 도망치라고.

 

<샤도우 랜드> 영화 내용은 무슨 내용인지 생각도 안 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니엘 페나크가 <몸의 일기>에서 '아줌마가 죽었다. 아줌마가 죽었다. 아줌마가 죽었다' 고 148번 썼다는 것, 정희진은 "엄마는 안 죽었어" 라고 여러 번 쓰고, 지금도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 수업>과 <인생 수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한마디"가 필요했다는 것.

 

"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 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 삶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잃어 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로스의 말인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내게 상실은 끝난 것도 아니고 계속되는 삶도 아닌, 모든 것이 멈춘 상태다. 오도 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말은 내게 닿았다. 나는 이 말을 붙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 권리를 포기하고 나니 상실감 대신 엄마를 만날 날이 기다려졌다. 그 시간까지가 인생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책으로도 읽고, 영화로도 봤던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이런 내용에 무감하던 시절에 읽었던 책이었다. 교실의 아이들이 서로 이지메 하고, 여학생을 골라 윤간하고, 원조 교제 시장에 내보낸다. 주인공의 단짝은 악마가 되어 학교를 지배한다. 같은 반 악마의 지시를 받은 남학생들은 더러운 학교 창고 같은 곳에서 같은 반 여학생들을 성폭행할 것을 강요당하며, 소문이 나고,

 

소녀들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변하기 시작한다. 공부를 포기하고, 화장을 하고, 한껏 '여자'가 되어 간다. 남자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소녀들은 중학생을 찾는 아저씨들을 찾아 성을 팔고, 여자 아이들이 번 돈은 남자 아이들이 거둬간다.

 

"그러던 어느 날, 피해 여학생 중 한 명이 다른 여학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해자들이 더(?) 놀란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다음 날, 삭발을 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등교해 공부에 매진한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 가발을 쓰지 않는 한, 삭발한 채 원조 교제 시장에 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이 지옥에서, 여성 특히 10대 소녀들의 가치는 섹스뿐이다. 그러므로 '삭발한 계집애는 필요 없다'. 그녀는 그렇게 그들에게 쓸모없는 여자가 됨으로써 살아남는다. (..)

 

상처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이기도 하다. 상처를 강조하면 상대방의 권력도 커진다. 그 소녀는 상처받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권력에 저항하고 그들을 비웃는다. "너희들은, 나를 망칠 만큼 대단하지 않아." '우리'는 상처받았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저들의 폭력을 폭로해야 한다. '우리'의 상처가 크고 작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우리는 지배 집단과의 싸움보다 누가 더 큰 상처를 받았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사는 메커니즘 자체이고 그들의 잘못이지 '우리의 약함'이 아니다."

 

이 장을 덮고, 피해자성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고, 아직 답을 못 찾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타인의 삶> 이 영화는 재미있었다. 누가 봐도 좋은 영화이고. 근데, 이 부분에서 나는 좀 웃고 공감했지.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혐인증인 나에게 '다른 인간'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고, 인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내가 더 타락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격려해준다."

 

<더 스토닝>, <거북이도 난다> 의 영화평은 영화 장면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끔찍한 이야기에서 고통과 아름다움을 뽑아내는 거칠지만 와닿는 감상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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