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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조선인물실록 - 역사적 인물들, 인간적으로 거들떠보기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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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화 -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뜻밖의 조선사 이야기
배상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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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귀신 실록 - 조선의 왕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궁궐의 귀신들
김용관 지음 / 돋을새김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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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담 -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 사회의 뜻밖의 사건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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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의 한 구절을 이렇게 썼다“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그럴듯한 말이다한국의 서평가인 나는 <서서비행>에 미처 쓰지 못한 문장을 여기에 쓴다“당신이 읽은 책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물론 이 문장은 사실이 아니다그러니 내게 당신이 읽은 책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는 당신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서 진행했던 작가 인터뷰 중 열두 편을 추린 책이다움베르토 에코에서 오르한 파묵무라카미 하루키폴 오스터이언 매큐언필립 로스밀란 쿤데라레이먼드 카버,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어니스트 헤밍웨이윌리엄 포크너그리고 E.M. 포스터까지모두 쟁쟁한 작가들이다(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함으로써 최소한의 ‘리스펙트’를 표했다.결코 지면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럼 지금부터 당신에 대해 말해보겠다일단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그중에서도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다당신은 작가를 꿈꾸거나이미 작가이거나최소한 언젠가 한 번쯤은 그런 꿈을 꿨을 것이다앞서 나열한 열두 명 중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정도는 있을 테고둘이나 셋넷일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다섯 명은 아닐 것이다그리고 분명 어렸을 때 마당에 커다란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겠지없었다고그럼 다행이다만약 대추나무가 있었다면 당신은 이 글을 영영 읽지 못할 수도 있었다큰 화를 입는 대신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니 액땜이라고 생각하시라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아무튼 올 여름에는 물가를 조심해야 한다가을에는 횡재수가 있지만 지출은 규모 있게 하는 게 좋다.


미안하다하지만 아직 당신은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작가란 무엇인가>를 손에 든 당신이 제일 먼저 읽은 인터뷰가 누구의 것인지아직 읽지 않았다면 누구의 인터뷰를 제일 먼저 읽을 생각인지그때 비로소 나는 당신들 각자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다하루키 인터뷰를 찾는 당신에게 하는 말과 포크너 인터뷰를 펼친 당신에게 해야 하는 말은 서로 다를 테니까당신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나아가 다른 문학관을어쩌면 다른 세계관을 가졌을 테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먼저 에코를 읽고 다음으로 파묵을 읽었으며다른 작가들을 읽은 뒤 마지막으로 포스터의 인터뷰를 읽었다한 마디로순서대로 읽었다는 말이다그게 바로 서평가가 책을 읽는 방식이다한 손에 연필을 들고인용할 만한 부분을 찾아 밑줄을 그으며처음에는 그들의 글만큼이나 각기 다른 개성을 읽었고어느 순간부터는 (여전한 차이에도 불구하고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들에 주목하며 읽었다이런 것들이다 : 1)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2) 비평가의 말은 듣지 않는다. 3) 유머 감각은 중요하다. 4) 가난과 궁핍은 작가의 적이다. 5) 어쨌거나 쓴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무엇보다 직접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특히 진정으로 작가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다음과 같은 포크너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비평의 기능을 묻는 질문에 포크너는 이렇게 답했다“예술가들은 비평가들이 하는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겠지만진정으로 글을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시사인 335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09

















 
 
poptrash 2014-02-18 08:47   댓글달기 | URL
뭔가 폰트가 이상한 거 같은데... 노트북으로는 확인이 잘 안 되네...

다락방 2014-02-18 09:46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폰트 예쁜데요? 이건 무슨 폰트에요? 궁서체도 아니고 바탕체도 아닌것 같은데??

poptrash 2014-02-18 17:03   URL
한글 파일을 메일로 보내면(한메일) 보낸 메일함에서 파일을 클라우드로 볼 할 수 있거든요. 그걸 그냥 복사했어요. ㅎㅎ

건조기후 2014-02-18 10:40   댓글달기 | URL
저는 서평가도 아닌데 차례대로 읽었네요 ㅎ 매사에 좀 무신경한 성격이 이런 데서도 나오는군요..
글을 다른 데서 썼다가 복사붙이기를 하면 자간이 좀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폰트가 이상하게 보이는 걸 거예요.

poptrash 2014-02-18 17:03   URL
네... 그냥 복사했더니... 근데 노트북으로 보는 거하고 데스크톱으로 보는 거하고 또 틀리네요 ㅎㅎ

pek0501 2014-02-18 13:50   댓글달기 | URL
오호... 서서비행을 구입한 사람으로서 님의 글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1)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3) 유머 감각은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저도 요즘 명심하고 있는 것이라서요.
제가 제대로 짚어냈다는 걸 확인하네요.
저도 신문에서 보고 이 책에 관심 있어 검색해 봤어요. ^^

poptrash 2014-02-18 17:06   URL
나열된 작가들 중 몇 명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실만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

스티플 2014-04-22 02:26   댓글달기 | URL
카페 꼼마에서 사회 보시기로 한 날이 언제인지 좀 알려주시겠어요?
알라딘인가 예스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부분이 안 보이네요.-_-;;

poptrash 2014-04-23 17:08   URL
행사가 취소 되었어요... 상황이 그런 걸 할 상황이 아니어서... 언제 다시 하게 될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감사해요.
 

대부분의 시상식은 연말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연초에 나온 작품들은 부득불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최근에 받은 감상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2013년 올해의 책을 꼽기 전에 먼저 평균 이하인 내 기억력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만약 내가 엊그제 읽은 책의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면 올해의 책을 꼽기 위해 지난 독서목록을 뒤지는 일은 없었을 거고, 그랬다면 올해 첫 책으로 읽은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을 떠올리지 못했을 거다. 휴, 다행이지 정말.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책을 읽은 게 1월 5일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책을 다소간 묵혔다 읽는 게으른 습벽을 생각할 때, 책이 2012년 12월에 출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래, 미친 거지. 마감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 걸 따지고 있다니, 멍청한 주제에 집요하기까지 하지만 별 수 없다. 내게도 나름의 직업윤리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들 하기에 하나 장만했을 뿐이다.


판권면을 펼쳐 출간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013년 1월 3일.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물론 그런 경우는 별로 많지 않지만, 책은 2012년 연말에 나온 게 맞다. 신문 기사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일간지 기사가 12월 마지막 주, 주간지에는 1월 첫째 주에 실렸다. 출간 이전에 미리 기사가 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하는 유명작가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따라서 나는 출간일을 늦추어 기재한 출판사의 선경지명에 감사드리는 바다). 물론 한승태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한승태가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 속상하다.


<인간의 조건>은 저자가 꽃게잡이 배에서부터 서울의 주유소와 편의점, 아산의 돼지농장, 춘천의 비닐하우스, 당진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 이르기까지 몸소 체험한 다양한 직업의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프로그램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그는 단순히 경험을 위해, 혹은 문학 수업의 일환으로 그 일자리들을 전전한 게 아니다. 단지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틈틈이 글을 썼다. 몇몇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어쩔 수 없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을 굴러먹던 조지 오웰(<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미국 전역을 떠돌며 온갖 잡일을 섭렵했던 찰스 부코스키(<팩토텀>)의 삶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한승태 역시 그들을 좋아한다. 책날개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했고 일하는 틈틈이 영원히 출판되지 못할 게 분명한 시와 소설 들을 썼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고시원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동안 겪어본 직업이 꽤 여러 가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1차·2차·3차 산업, 더 세밀하게는 농업, 어업, 축산업, 제조업, 서비스업계에서 모두 일해본다면 그때는 책을 한 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작가 소개 중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훌륭하다. 우체국을 그만둔 후 <우체국>이라는 제목의 장편 데뷔작을 쓴 부코스키 또한 언젠가 그렇게 했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우체국>(박현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 241쪽)


그러고 보면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또한 작가의 첫 장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데뷔작을 통해 받아 마땅한 주목을 받았다. 축하할 일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가,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광적인 마니아를 낳은 컬트 소설가가 되었다. 제몫의 성공을 챙긴 것이다. 그렇다면 한승태는 어떨까? <인간의 조건> 가격은 14800원, 졸저 <서서비행>(금정연 지음, 마티 펴냄)보다 딱 천 원 비싸다. 그렇다면 각 인터넷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를 살펴보건대… 에이, 관두자. 차라라 그 시간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게 낫겠다.


나는 지금 한승태가 조지 오웰이나 찰스 부코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이루어낸 성취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노동에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출간 직후 한 신문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어 전업 작가로 살려면 한 달에 얼마 정도가 필요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이런 산수를 내민다. 


“한 달에 80만~90만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공간이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 달에 방세 30만~35만원, 식비는 30만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 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서울신문, 2012년 12월 29일,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내가 만약 부자라면 그에게 매달 돈 백만 원쯤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나 역시 생계가 가능한 최소한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납품하는 글쟁이일 뿐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 글 또한 올해의 책을 핑계로 “가난한 작가들의 생계를 보장하라”고 징징대는 투정(물론 당신의 생각도 옳다. 가난한 건 작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라.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건, 나는 다만 <인간의 조건>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받을만한 책이라는 사실을 몇몇 이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 책이 올해 나온 어떤 책들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가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렇다는 사실에 내 한 달치 원고료를 걸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은 그 정도 금액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세상이 이따위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쓸모없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체스 게임에서 감지할 수 있다. 체스의 졸은 한 번에 한 칸씩 전진하는 것밖에 못하는 절름발이 말이지만, 그런 졸이라 해도 상대편 진영 끝에 도달하게 되면 여왕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생 졸에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 (447쪽)


나 역시 그의 두려움에 공감한다. 동시에 그가 8~90만원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느라 다음 책을 쓰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독자는 이렇게 이기적이다.















PRESSIAN BOOKS 170호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121317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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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북스 올해의 책으로 지금껏 내가 꼽았던 책들은 다음과 같다. 


2011년 <어떤 작위의 세계>

2012년 <야만스러운 탐정들> 


한승태의 다음 책이 궁금하다.




 
 
구차달 2013-12-19 11:19   댓글달기 | URL
팝 님 덕에 작가는 몇 끼의 식비를 벌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그가 몇 개의 문장을 벌게 될 것 같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이 글 뭔가 절절해서 좋네요.

poptrash 2013-12-25 23:34   URL
몇 끼의 식비를 벌고 몇 개의 문장을 번다니, 구차달 님의 댓글이 더 좋네요. ^^
 

마침내 돌아온 작가의 신작을 앞에 둔 채 지난 그의 잠적을 둘러싼 뒷소문을 늘어놓는 것은 점잖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게 그렇다.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 하얀 종이(혹은 모니터)의 시선을 일단 의식하게 되면 뭐라도 시부렁거리게 되는 법이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필사적으로 실없는 농담을 쏟아내는 사내아이처럼. 그러니 점잖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글 따위는 멀리하는 편이 좋다. 더불어 말도 아끼고, 사람들과의 접촉도 가능한 피할 것을 권한다. 물론 삶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백민석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그러니까 소문이 있었다. ‘전위·신세대·뉴웨이브 문학의 아이콘’으로 불렸(다)던 그다. 당시에는 ‘그로테스크’나 ‘엽기’ 같은 단어들이 그를 더 자주 수식했던 것 같지만, 아무려나,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종적을 감추었으니 소문이 없을 리 없다. 사소한 흔적조차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스스로 제 몸피를 불려갔다. 그는 충남 어느 바닷가에서 농사를 지었고, 식당에서 밥을 날랐으며, 세상과 담을 쌓은 채 평생의 대작을 집필하기도 했다. 지난 십 년 간의 일이다.


마지막 소문을 들은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그가 곧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반가웠지만 온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소문에 불과했으니까. 십 년이라는 세월이 내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돌아왔다.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 <혀끝의 남자>와 함께.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껏 그를 둘러싼 숱한 소문을 들었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는 아직 이르다. 문제는 내가 만들어낸 소문이었다. 그러니까 ‘평생의 대작’ 설. 그것이 백민석을 잊지 못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점잖지 못하게 주장해온 것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도서관 소년이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책을 읽지 않을 리 없고, 읽는다면 쓰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는, 코르크로 방문을 막은 채 집필에 몰두했다던 누군가처럼, 세상을 놀라게 할 대작을 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건 철없는 독자의 바람일 뿐이었지만, 소문이 대개 그렇듯, 어느덧 나는 스스로 그것을 믿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두 편의 신작과 새롭게 고쳐 쓴 일곱 편의 기발표작이라는 구성이 성에 찰 리 없다.


물론 그것은 백민석의 비즈니스가 아니다. 돌아보면 그는 언제나 그랬다. 유령처럼 되돌아오는 어제의 기억과 목을 죄어오는 오늘의 현실, 한국문학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폭력과 섹스, 도무지 구해지지 않는 구원과 어디에도 쓸모없는 진실 등등. 그는 독자들이 기꺼이 듣고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예의 무표정으로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들을 쓸 뿐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십 년 만에 만나는 백민석의 새 소설들이다. 그러니 그것으로 일단 만족하기로 하자.


절필 당시의 심경을 담담하게 적고 있는 마지막 단편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인 것이 나머지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고백한다. 앞으로도 그런 위기가 또다시 닥치면 몇 번이라도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다짐도 함께. 하지만 나는 그가 끝내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가 한 번 돌아왔다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에 그가 쓰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는 원래 점잖지 못한 법이다.


시사인 326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727


















 
 
구차달 2013-12-17 17:58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말입니다. 팝 님께서 한수철 님에게 정영문 씨는 한수철 님에게 술 한잔 사야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백민석 씨는 팝 님에게 술 한잔 사야된다는 말을 제가 여기서 하고 싶네요. ㅋ (아, 인간의 기억이란, 아니, 나의 기억이란... 분명히 팝 님께서 한수철 님에게 하신 말로 기억하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불현듯 드는군요. 어쨌든 제 마음은 아시겠죠?)

poptrash 2013-12-18 11:16   URL
음... 역시 술은 얻어먹는 게 제 맛이라는 거죠? ㅎㅎ
 

처음엔 봄이라고 했다. 작년에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봄이 되자 상반기에 나온다고 했다. 상반기에는 여름에 나온다고 했고, 여름에는 추석 전에 나온다고 했다. 추석이 지나자 이번에는 시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11월이다. 여태껏 무언가를 이렇게 간절히, 그리고 길게 기다려본 적은 없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마지막 장편소설 <2666> 이야기다. 아마 사람이었다면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다려 흰 장갑으로 뺨을 때리며 결투라도 신청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참을 수 없는 가우초>의 출간은 다소 뜬금없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얄팍한 책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다는 둥, 전례 없는 ‘메가 소설’이라는 둥 소문만으로도 무시무시한 <2666>과 비교하자면, 치킨을 기대하고 있는데 삶은 메추리알을 준 격이다. 삶은… 계란도 아니고 삶은… 메추리알이라니 양이 찰 리 없잖아. 삶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킨다. 작고, 초라한데다 배까지 고프다. ( ) 우리는 살아간다.


앞선 문장에 존재하는 괄호, 그곳은 바로 문학의 자리다. 그리고, 그래도, 그런데,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저마다의 말들로 괄호를 채운다. 볼라뇨는 그 자리에 ‘아무려나’라고 쓴다. 아무려나. 그것은 잇고, 부연하고, 강조하고, 뒤집고, 체념하는 다른 단어들과는 달리, 앞선 문장을 가볍게 넘어버린다. ‘삶’이야 어쨌건, 아무려나,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전부다.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물론 볼라뇨는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무시하는 것도,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람?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삶이 먼저 있고 그것을 따라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들 각자가 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그렇게 볼라뇨는 사람들이 삶이라는 것에 대해 떠들어대는 모든 헛소리를 날려버린다. 볼라뇨는 그것을 용기라고 불렀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는 모두 다섯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나는 앞서 ‘메추리알’이라고 한 것을 취소해야겠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모든 작품을 따라 읽은 자신만만한 독자라도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사실 길이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삶의 길이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볼라뇨의 너무 이른 죽음을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뿐이다.


모든 작품들이 주옥같지만(나는 지금 아무런 회한도 부끄러움도 없이 이 단어를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경찰 쥐’와 두 편의 에세이가 좋았다. 특히 죽음을 앞둔 소회를 ‘문학적으로’ 밝히고 있는 ‘문학+병=병’과 스페인어권 문학의 현재를 러브크래프트 풍의 기괴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크툴루 신화’는 압권(나는 이 단어를 즐겨 쓰지 않는데, 어쩌면 볼라뇨에 대해 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이다. ‘한국 문학의 오늘’ 같은 쓸데없는 주제를 종종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차피 길이도 짧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지만 조만간 한 번 더 읽을 생각이고, 그때까지는 <2666>이 출간되었기를 바란다. 아니라면, 한 번 더 읽지 뭐. 기다림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시사IN 323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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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월이 되었고 <2666>이 곧, 그것도 5권 세트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쁘다.



 
 
패딩없는영구 2013-12-10 19:23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디어 <4001>과 대적할만한 책이 나오나여!는 개소리고.. 완전 기대됩니다.

poptrash 2013-12-11 22:20   URL
총 5권. 세트로만 판매. 가격은 66600원이라고 하더군. 으아 떨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1 04:14   댓글달기 | URL
가우초가 그리 재미있네요... 아, 이거 좀 미리 땡겨서 쓰시지 그러셨습니까. 저 방금 책 지르고 오는 길인데 말입니다...

poptrash 2013-12-11 22:21   URL
<2666>과 함께 구입하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