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의 한 구절을 이렇게 썼다“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그럴듯한 말이다한국의 서평가인 나는 <서서비행>에 미처 쓰지 못한 문장을 여기에 쓴다“당신이 읽은 책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물론 이 문장은 사실이 아니다그러니 내게 당신이 읽은 책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는 당신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서 진행했던 작가 인터뷰 중 열두 편을 추린 책이다움베르토 에코에서 오르한 파묵무라카미 하루키폴 오스터이언 매큐언필립 로스밀란 쿤데라레이먼드 카버,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어니스트 헤밍웨이윌리엄 포크너그리고 E.M. 포스터까지모두 쟁쟁한 작가들이다(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함으로써 최소한의 ‘리스펙트’를 표했다.결코 지면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럼 지금부터 당신에 대해 말해보겠다일단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그중에서도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다당신은 작가를 꿈꾸거나이미 작가이거나최소한 언젠가 한 번쯤은 그런 꿈을 꿨을 것이다앞서 나열한 열두 명 중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정도는 있을 테고둘이나 셋넷일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다섯 명은 아닐 것이다그리고 분명 어렸을 때 마당에 커다란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겠지없었다고그럼 다행이다만약 대추나무가 있었다면 당신은 이 글을 영영 읽지 못할 수도 있었다큰 화를 입는 대신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니 액땜이라고 생각하시라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아무튼 올 여름에는 물가를 조심해야 한다가을에는 횡재수가 있지만 지출은 규모 있게 하는 게 좋다.


미안하다하지만 아직 당신은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작가란 무엇인가>를 손에 든 당신이 제일 먼저 읽은 인터뷰가 누구의 것인지아직 읽지 않았다면 누구의 인터뷰를 제일 먼저 읽을 생각인지그때 비로소 나는 당신들 각자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다하루키 인터뷰를 찾는 당신에게 하는 말과 포크너 인터뷰를 펼친 당신에게 해야 하는 말은 서로 다를 테니까당신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나아가 다른 문학관을어쩌면 다른 세계관을 가졌을 테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먼저 에코를 읽고 다음으로 파묵을 읽었으며다른 작가들을 읽은 뒤 마지막으로 포스터의 인터뷰를 읽었다한 마디로순서대로 읽었다는 말이다그게 바로 서평가가 책을 읽는 방식이다한 손에 연필을 들고인용할 만한 부분을 찾아 밑줄을 그으며처음에는 그들의 글만큼이나 각기 다른 개성을 읽었고어느 순간부터는 (여전한 차이에도 불구하고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들에 주목하며 읽었다이런 것들이다 : 1)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2) 비평가의 말은 듣지 않는다. 3) 유머 감각은 중요하다. 4) 가난과 궁핍은 작가의 적이다. 5) 어쨌거나 쓴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무엇보다 직접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특히 진정으로 작가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다음과 같은 포크너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비평의 기능을 묻는 질문에 포크너는 이렇게 답했다“예술가들은 비평가들이 하는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겠지만진정으로 글을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시사인 335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09

















 
 
poptrash 2014-02-18 08:47   댓글달기 | URL
뭔가 폰트가 이상한 거 같은데... 노트북으로는 확인이 잘 안 되네...

다락방 2014-02-18 09:46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폰트 예쁜데요? 이건 무슨 폰트에요? 궁서체도 아니고 바탕체도 아닌것 같은데??

poptrash 2014-02-18 17:03   URL
한글 파일을 메일로 보내면(한메일) 보낸 메일함에서 파일을 클라우드로 볼 할 수 있거든요. 그걸 그냥 복사했어요. ㅎㅎ

건조기후 2014-02-18 10:40   댓글달기 | URL
저는 서평가도 아닌데 차례대로 읽었네요 ㅎ 매사에 좀 무신경한 성격이 이런 데서도 나오는군요..
글을 다른 데서 썼다가 복사붙이기를 하면 자간이 좀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폰트가 이상하게 보이는 걸 거예요.

poptrash 2014-02-18 17:03   URL
네... 그냥 복사했더니... 근데 노트북으로 보는 거하고 데스크톱으로 보는 거하고 또 틀리네요 ㅎㅎ

pek0501 2014-02-18 13:50   댓글달기 | URL
오호... 서서비행을 구입한 사람으로서 님의 글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1)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3) 유머 감각은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저도 요즘 명심하고 있는 것이라서요.
제가 제대로 짚어냈다는 걸 확인하네요.
저도 신문에서 보고 이 책에 관심 있어 검색해 봤어요. ^^

poptrash 2014-02-18 17:06   URL
나열된 작가들 중 몇 명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실만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

스티플 2014-04-22 02:26   댓글달기 | URL
카페 꼼마에서 사회 보시기로 한 날이 언제인지 좀 알려주시겠어요?
알라딘인가 예스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부분이 안 보이네요.-_-;;

poptrash 2014-04-23 17:08   URL
행사가 취소 되었어요... 상황이 그런 걸 할 상황이 아니어서... 언제 다시 하게 될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감사해요.
 

대부분의 시상식은 연말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연초에 나온 작품들은 부득불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최근에 받은 감상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2013년 올해의 책을 꼽기 전에 먼저 평균 이하인 내 기억력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만약 내가 엊그제 읽은 책의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면 올해의 책을 꼽기 위해 지난 독서목록을 뒤지는 일은 없었을 거고, 그랬다면 올해 첫 책으로 읽은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을 떠올리지 못했을 거다. 휴, 다행이지 정말.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책을 읽은 게 1월 5일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책을 다소간 묵혔다 읽는 게으른 습벽을 생각할 때, 책이 2012년 12월에 출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래, 미친 거지. 마감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 걸 따지고 있다니, 멍청한 주제에 집요하기까지 하지만 별 수 없다. 내게도 나름의 직업윤리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들 하기에 하나 장만했을 뿐이다.


판권면을 펼쳐 출간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013년 1월 3일.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물론 그런 경우는 별로 많지 않지만, 책은 2012년 연말에 나온 게 맞다. 신문 기사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일간지 기사가 12월 마지막 주, 주간지에는 1월 첫째 주에 실렸다. 출간 이전에 미리 기사가 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하는 유명작가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따라서 나는 출간일을 늦추어 기재한 출판사의 선경지명에 감사드리는 바다). 물론 한승태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한승태가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 속상하다.


<인간의 조건>은 저자가 꽃게잡이 배에서부터 서울의 주유소와 편의점, 아산의 돼지농장, 춘천의 비닐하우스, 당진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 이르기까지 몸소 체험한 다양한 직업의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프로그램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그는 단순히 경험을 위해, 혹은 문학 수업의 일환으로 그 일자리들을 전전한 게 아니다. 단지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틈틈이 글을 썼다. 몇몇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어쩔 수 없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을 굴러먹던 조지 오웰(<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미국 전역을 떠돌며 온갖 잡일을 섭렵했던 찰스 부코스키(<팩토텀>)의 삶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한승태 역시 그들을 좋아한다. 책날개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했고 일하는 틈틈이 영원히 출판되지 못할 게 분명한 시와 소설 들을 썼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고시원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동안 겪어본 직업이 꽤 여러 가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1차·2차·3차 산업, 더 세밀하게는 농업, 어업, 축산업, 제조업, 서비스업계에서 모두 일해본다면 그때는 책을 한 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작가 소개 중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훌륭하다. 우체국을 그만둔 후 <우체국>이라는 제목의 장편 데뷔작을 쓴 부코스키 또한 언젠가 그렇게 했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우체국>(박현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 241쪽)


그러고 보면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또한 작가의 첫 장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데뷔작을 통해 받아 마땅한 주목을 받았다. 축하할 일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가,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광적인 마니아를 낳은 컬트 소설가가 되었다. 제몫의 성공을 챙긴 것이다. 그렇다면 한승태는 어떨까? <인간의 조건> 가격은 14800원, 졸저 <서서비행>(금정연 지음, 마티 펴냄)보다 딱 천 원 비싸다. 그렇다면 각 인터넷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를 살펴보건대… 에이, 관두자. 차라라 그 시간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게 낫겠다.


나는 지금 한승태가 조지 오웰이나 찰스 부코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이루어낸 성취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노동에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출간 직후 한 신문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어 전업 작가로 살려면 한 달에 얼마 정도가 필요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이런 산수를 내민다. 


“한 달에 80만~90만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공간이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 달에 방세 30만~35만원, 식비는 30만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 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서울신문, 2012년 12월 29일,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내가 만약 부자라면 그에게 매달 돈 백만 원쯤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나 역시 생계가 가능한 최소한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납품하는 글쟁이일 뿐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 글 또한 올해의 책을 핑계로 “가난한 작가들의 생계를 보장하라”고 징징대는 투정(물론 당신의 생각도 옳다. 가난한 건 작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라.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건, 나는 다만 <인간의 조건>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받을만한 책이라는 사실을 몇몇 이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 책이 올해 나온 어떤 책들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가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렇다는 사실에 내 한 달치 원고료를 걸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은 그 정도 금액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세상이 이따위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쓸모없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체스 게임에서 감지할 수 있다. 체스의 졸은 한 번에 한 칸씩 전진하는 것밖에 못하는 절름발이 말이지만, 그런 졸이라 해도 상대편 진영 끝에 도달하게 되면 여왕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생 졸에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 (447쪽)


나 역시 그의 두려움에 공감한다. 동시에 그가 8~90만원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느라 다음 책을 쓰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독자는 이렇게 이기적이다.















PRESSIAN BOOKS 170호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121317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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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북스 올해의 책으로 지금껏 내가 꼽았던 책들은 다음과 같다. 


2011년 <어떤 작위의 세계>

2012년 <야만스러운 탐정들> 


한승태의 다음 책이 궁금하다.




 
 
구차달 2013-12-19 11:19   댓글달기 | URL
팝 님 덕에 작가는 몇 끼의 식비를 벌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그가 몇 개의 문장을 벌게 될 것 같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이 글 뭔가 절절해서 좋네요.

poptrash 2013-12-25 23:34   URL
몇 끼의 식비를 벌고 몇 개의 문장을 번다니, 구차달 님의 댓글이 더 좋네요. ^^
 

마침내 돌아온 작가의 신작을 앞에 둔 채 지난 그의 잠적을 둘러싼 뒷소문을 늘어놓는 것은 점잖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게 그렇다.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 하얀 종이(혹은 모니터)의 시선을 일단 의식하게 되면 뭐라도 시부렁거리게 되는 법이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필사적으로 실없는 농담을 쏟아내는 사내아이처럼. 그러니 점잖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글 따위는 멀리하는 편이 좋다. 더불어 말도 아끼고, 사람들과의 접촉도 가능한 피할 것을 권한다. 물론 삶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백민석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그러니까 소문이 있었다. ‘전위·신세대·뉴웨이브 문학의 아이콘’으로 불렸(다)던 그다. 당시에는 ‘그로테스크’나 ‘엽기’ 같은 단어들이 그를 더 자주 수식했던 것 같지만, 아무려나,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종적을 감추었으니 소문이 없을 리 없다. 사소한 흔적조차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스스로 제 몸피를 불려갔다. 그는 충남 어느 바닷가에서 농사를 지었고, 식당에서 밥을 날랐으며, 세상과 담을 쌓은 채 평생의 대작을 집필하기도 했다. 지난 십 년 간의 일이다.


마지막 소문을 들은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그가 곧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반가웠지만 온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소문에 불과했으니까. 십 년이라는 세월이 내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돌아왔다.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 <혀끝의 남자>와 함께.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껏 그를 둘러싼 숱한 소문을 들었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는 아직 이르다. 문제는 내가 만들어낸 소문이었다. 그러니까 ‘평생의 대작’ 설. 그것이 백민석을 잊지 못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점잖지 못하게 주장해온 것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도서관 소년이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책을 읽지 않을 리 없고, 읽는다면 쓰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는, 코르크로 방문을 막은 채 집필에 몰두했다던 누군가처럼, 세상을 놀라게 할 대작을 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건 철없는 독자의 바람일 뿐이었지만, 소문이 대개 그렇듯, 어느덧 나는 스스로 그것을 믿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두 편의 신작과 새롭게 고쳐 쓴 일곱 편의 기발표작이라는 구성이 성에 찰 리 없다.


물론 그것은 백민석의 비즈니스가 아니다. 돌아보면 그는 언제나 그랬다. 유령처럼 되돌아오는 어제의 기억과 목을 죄어오는 오늘의 현실, 한국문학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폭력과 섹스, 도무지 구해지지 않는 구원과 어디에도 쓸모없는 진실 등등. 그는 독자들이 기꺼이 듣고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예의 무표정으로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들을 쓸 뿐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십 년 만에 만나는 백민석의 새 소설들이다. 그러니 그것으로 일단 만족하기로 하자.


절필 당시의 심경을 담담하게 적고 있는 마지막 단편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인 것이 나머지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고백한다. 앞으로도 그런 위기가 또다시 닥치면 몇 번이라도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다짐도 함께. 하지만 나는 그가 끝내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가 한 번 돌아왔다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에 그가 쓰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는 원래 점잖지 못한 법이다.


시사인 326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727


















 
 
구차달 2013-12-17 17:58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말입니다. 팝 님께서 한수철 님에게 정영문 씨는 한수철 님에게 술 한잔 사야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백민석 씨는 팝 님에게 술 한잔 사야된다는 말을 제가 여기서 하고 싶네요. ㅋ (아, 인간의 기억이란, 아니, 나의 기억이란... 분명히 팝 님께서 한수철 님에게 하신 말로 기억하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불현듯 드는군요. 어쨌든 제 마음은 아시겠죠?)

poptrash 2013-12-18 11:16   URL
음... 역시 술은 얻어먹는 게 제 맛이라는 거죠? ㅎㅎ
 

처음엔 봄이라고 했다. 작년에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봄이 되자 상반기에 나온다고 했다. 상반기에는 여름에 나온다고 했고, 여름에는 추석 전에 나온다고 했다. 추석이 지나자 이번에는 시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11월이다. 여태껏 무언가를 이렇게 간절히, 그리고 길게 기다려본 적은 없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마지막 장편소설 <2666> 이야기다. 아마 사람이었다면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다려 흰 장갑으로 뺨을 때리며 결투라도 신청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참을 수 없는 가우초>의 출간은 다소 뜬금없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얄팍한 책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다는 둥, 전례 없는 ‘메가 소설’이라는 둥 소문만으로도 무시무시한 <2666>과 비교하자면, 치킨을 기대하고 있는데 삶은 메추리알을 준 격이다. 삶은… 계란도 아니고 삶은… 메추리알이라니 양이 찰 리 없잖아. 삶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킨다. 작고, 초라한데다 배까지 고프다. ( ) 우리는 살아간다.


앞선 문장에 존재하는 괄호, 그곳은 바로 문학의 자리다. 그리고, 그래도, 그런데,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저마다의 말들로 괄호를 채운다. 볼라뇨는 그 자리에 ‘아무려나’라고 쓴다. 아무려나. 그것은 잇고, 부연하고, 강조하고, 뒤집고, 체념하는 다른 단어들과는 달리, 앞선 문장을 가볍게 넘어버린다. ‘삶’이야 어쨌건, 아무려나,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전부다.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물론 볼라뇨는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무시하는 것도,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람?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삶이 먼저 있고 그것을 따라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들 각자가 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그렇게 볼라뇨는 사람들이 삶이라는 것에 대해 떠들어대는 모든 헛소리를 날려버린다. 볼라뇨는 그것을 용기라고 불렀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는 모두 다섯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나는 앞서 ‘메추리알’이라고 한 것을 취소해야겠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모든 작품을 따라 읽은 자신만만한 독자라도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사실 길이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삶의 길이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볼라뇨의 너무 이른 죽음을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뿐이다.


모든 작품들이 주옥같지만(나는 지금 아무런 회한도 부끄러움도 없이 이 단어를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경찰 쥐’와 두 편의 에세이가 좋았다. 특히 죽음을 앞둔 소회를 ‘문학적으로’ 밝히고 있는 ‘문학+병=병’과 스페인어권 문학의 현재를 러브크래프트 풍의 기괴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크툴루 신화’는 압권(나는 이 단어를 즐겨 쓰지 않는데, 어쩌면 볼라뇨에 대해 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이다. ‘한국 문학의 오늘’ 같은 쓸데없는 주제를 종종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차피 길이도 짧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지만 조만간 한 번 더 읽을 생각이고, 그때까지는 <2666>이 출간되었기를 바란다. 아니라면, 한 번 더 읽지 뭐. 기다림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시사IN 323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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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월이 되었고 <2666>이 곧, 그것도 5권 세트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쁘다.



 
 
패딩없는영구 2013-12-10 19:23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디어 <4001>과 대적할만한 책이 나오나여!는 개소리고.. 완전 기대됩니다.

poptrash 2013-12-11 22:20   URL
총 5권. 세트로만 판매. 가격은 66600원이라고 하더군. 으아 떨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1 04:14   댓글달기 | URL
가우초가 그리 재미있네요... 아, 이거 좀 미리 땡겨서 쓰시지 그러셨습니까. 저 방금 책 지르고 오는 길인데 말입니다...

poptrash 2013-12-11 22:21   URL
<2666>과 함께 구입하세요 ㅎㅎㅎ
 

11월 25일

지난 원고의 마지막을 너무 섣부르게 마무리한 것 같다. 특히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감히) 비틀어, “우리 모두는 고골의 콧구멍에서 나왔다”고 시부렁거린 부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내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찝찝한 게 마치 코를 풀다 코딱지가 입술에 묻은 기분이다. 그것도 모른 채 하루 종일 거리를 싸돌아다니다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11월 27일

아무래도 그 글이 <외투>파를 자극한 모양이다. 누군가 내게 메일을 보내 <외투>의 진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너 같은 놈은 코딱지나 다름없다고 했다. 물론 <코>파의 지원은 없었다. 내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코>파와 <외투>파의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붙게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다. 어차피 똑같은 놈들이다. <죽은 혼>은 너무 길어서 읽지 않고, <검찰관>은 희곡 형식이라 읽지 않는다는 멍청한 놈들일 뿐이다. 


11월 28일

코딱지라니. 그거야말로 우리 모두가 콧구멍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아닌가? 적어도 나는. 물론 그게 누구 콧구멍인가는 여전히 논쟁의 소지가 있긴 하겠지만(어쩌면 신은 거대한 콧구멍이 아닐까?) 그나저나 자꾸만 콧물이 나온다. 인중이 쓰리다. 날씨 탓이다. 외투를 장만해야 한다.


12월 1일 

겨울 외투를 구경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형형색색의 패딩들이 늘어선 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나를 골라서 입어보았다. 점원이 조용히 웃으며 내게 옷을 입혀주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너무 가볍고 포근해서 그 자리에서 스르륵 잠들 뻔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은, 그런 곳에서 잠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런 가격표를 보고도 태연히 잠들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돈을 주고 옷을 사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때야 나는 점원의 옅은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네가?’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점원을 향해 크게 콧방귀를 뀌어주고 백화점을 나섰다. 바람이 찼다.


12월 2일 

잠이 오지 않는다. 외투 때문이다. 어제 입었던 패딩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양을 세어 보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이 작은 무리를 이루자 어디선가 양치는 소년이 나타나 양털을 깎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외투를 만들었다. 하얀색 패딩이었다. 잠깐만, 어제 내가 입어 본 건 ‘구스 다운’이었는데? 아무려나, 양털로 만든 패딩 또한 너무나 포근해 보여서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백화점에 가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양털로 만든 패딩은 없냐고. 사실 ‘구스 다운’만 있으면 양털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냥 호기심이다.


12월 3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눈을 감으면 자꾸 거위와 오리와 양과 너구리와 여우와 곰과 알파카와 그 밖의 털과 가죽을 가진 동물들이라면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동물의 똥으로 가득한 것처럼 무거웠다. 그걸 치우려면 여러 명의 사육사가 필요할 거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사육사를 고용할 돈이 없었고,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인들의 SNS를 구경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너나없이 패딩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패딩을 지르고 지르고 지르고 질렀다. 왜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거지? 누나 가슴에 삼천 원쯤은 있는 것처럼, 누구나 옷장에 ‘구스 다운’ 하나쯤은 있는 모양이었다. 나만 빼놓고? 


나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패딩을 검색해보았다. 백화점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색상도, 디자인도,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콧물이 흘렀지만 닦는 것도 잊었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나를 언제나 겁먹게 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디자인은 대동소이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검색 결과, 많은 업체들이 유명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도용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그건 내가 백화점에서 입어본 바로 그 옷이었다). 휴, 다행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폭을 현저히 좁힐 수 있는 것이다. 색상이야 선호하는 색상이 있으니(‘고독한 남자의 그레이’, ‘남자라면 네이비’ 그리고 ‘진짜 사나이라면 카키’) 문제는 가격이었다. 십만 원대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가 났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하나하나 꼼꼼히 비교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건 정말이지 넓고도 깊은 세상이었고, 나는 하룻밤 사이 전문가가 된 것 같아 어쩐지 뿌듯했다. 콧물은 멈추지 않았다.


12월 4일 

밤을 꼬박 샌 것으로 모자라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더니 눈알이 빠질 것 같다. <외투>파의 일원에게 새로운 메일이 왔다. 정말로 시급한 문학적 문제는 단 하나, 바로 외투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알베르 카뮈라니, 도대체 이놈들의 독서는 어디에서 멈춘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격식을 갖춘 것처럼 시작한 메일은 이내 유치한 비방이 되었다. “코 풀다 콧구멍이 헐어서 패혈증에 걸려 뒈질 놈”이라는 부분에서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잘못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코를 푼 후)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고 사과한 뒤, 이어 작금의 패딩적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과연 오리지널의 가치가 몇 배가 훌쩍 넘는 가격차를 상쇄할 정도로 의미 있느냐고도. 진심으로 궁금한 문제, 차라리 당면문제였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에게 답장이 왔다. 사뭇 정중한 어조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한 뒤, 녀석은 각 패딩의 충전재와 ‘필파워’의 차이를 조목조목 비교해갔다. 보기보다 깊은 지식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글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닌 어떤 패딩을 입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상세한 비교와 달리 결론은 단순했다. 단순해서 오히려 더욱 믿음이 가는 결론이었다. 역시 패딩이라면 캐나다 거위로 만든 오리지널을 입어야 한다는 것. 녀석은 이렇게 덧붙였다. 


“P.S. 고골의 <외투>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당신의 패딩적 고뇌를 해결해 줄 단 하나의 소설입니다.” 


12월 5일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시 읽은 고골의 <외투>는 과연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 눈이 아파 아직 절반밖에는 읽지 못하긴 했지만(여전히 한 숨도 자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당면한 나의 패딩적 현실에 대한 해법을 일러주었다. 잊기 전에 정리해둔다.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불쌍한 양반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9급 관리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고골은 거장다운 필치로 그를 묘사한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고 키가 작은 그 관리는 약간 얽은 자국이 있는 불그스름한 얼굴에 눈에 띄게 시력이 안 좋았으며, 이마가 조금 벗겨지고, 양볼에 주름이 진 데다 치질 환자 같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뻬쩨르부르그 기후 탓인 것을. 관등에 관한 한(우리나라에서는 우선 광등부터 밝혀야 한다) 그는 만년 9급 관리였다. 아시다시피 밟혀도 끽소리 한번 못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훌륭한 습성이 있는 온갖 종류의 작가들이 마음껏 놀려대고 마구 비꼬는 바로 그 9급이다. (‘외투’, <빼쩨르부르그 이야기>(조주관 옮김, 민음사 펴냄) 56쪽)


그가 언제 어떤 시기에 관청에 들어왔는지, 또 그를 관직에 앉힌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기억할 수 없었다. 부장과 국장이 수없이 갈리는 동안,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와 같은 직위에서 서기로사 겉은 업무를 되풀이하였다. 나중에는 그가 제복을 입고 이마가 벗겨진 모습을 한 채 9급 관리가 되기 위해 이미 완전한 준비를 하고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다들 믿게 되었다. 관청에서는 모두 그를 아무렇게나 대했다. (58쪽)


관청에서 그가 담당하는 업무는 문서를 정서하는 일이었다. 젊은 관리들이 그를 조롱하고, 일흔 살 먹은 주인집 노파하고 언제 결혼 하냐며 놀려대고, 눈이 내린다며 종이 부스러기를 그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누군가 그의 팔을 건드리며 일을 방해할 때에야, 그제서야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건 어쩐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나는 다시금 콧물을 훔친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소시민이다. 세상은 왜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가? 그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말단 9급 관리라서? 작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이마가 벗겨진 가난뱅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그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뿐이었다면, 그는 반쯤은 체념하고 반쯤은 즐기며 남은 인생을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서를) 쓸 만큼 다 쓰고 나면 ‘내일은 또 무엇을 정서해야 하나?’하고 미리 내일을 상상해 보며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400루블의 급료로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한 인간의 평화로운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아마 또 그렇게 순조롭게 말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9급이든, 3급이든, 7급이든, 또 어떤 공직자이든, 관청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삶의 길에 뿌려진 갖가지 큰 불행이 없었다면 말이다. (62쪽)


문제는 그가 입고 있는 외투였다. 악명 높은 뻬쩨르부르그의 북풍에서 그가 의지하는 낡고 얇은 외투가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하도 덧대고 기워서 모양까지 이상해진 볼품없는 그것을 동료들은 “외투라는 점잖은 이름 대신에 실내복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것이 그를 동료들 사이에서 만만한 남자로, 마음껏 놀리고 조롱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외투적 현실이었다. 설상가상, 그것이 완전히 못 쓰게 되면서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고난이 시작된다. 망가진 외투적 현실. 다시 말해 ‘망함’. 놀란 그는 재봉사에게 달려가지만 주정뱅이 재봉사는 냉정한 외과의사의 시선으로 사형선고를 내린다. 


“안 되겠는데요, 못 고치겠어요. 옷이 완전히 망가졌네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왜 안 된다는 거야, 뻬뜨로비치?” 그의 목소리는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겨우 어깨가 좀 닳은 것뿐인데, 사실 덧댈 만한 천이 있지 않나……?”

“그래요, 천 같은 거야 뭐, 얼마든지 있지요, 하지만 꿰맬 수가 없어요. 너무 심하게 삭아서 바늘을 갖다 대면 찢어질걸요.”

“찢어지면 어때, 또 즉시 기우면 되지.”

“덧댈 수가 없어요. 받쳐주는 게 아니라 닳아버린 옷감을 더 잡아당길 테니까요. 말이 양복지지 바람만 불어보세요, 금방 갈가리 찢어질 텐데요.”

“그래도, 어떻게 해보게.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내 참……!”

뻬뜨로비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손댈 수가 없어요. 완전히 엉망이에요. 이제 겨울 추위도 다가오고 할 테니 잘라서 각반이나 만들어 쓰는 게 나아요. 추울 땐 양말만으론 부족할 테니까.” (67쪽)


재봉사는 그에게 이 기회에 새 외투를 장만하라고 말한다. 가격은 50루블짜리 석 장, 즉 150루블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잠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또한 그런 남자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콧물도 조금 흘렸을 것이다. 


나는 초조했다. 이 가련한 남자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아니,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꼭 나처럼 느껴……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나는 그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 그래, 공감능력이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주인공답게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는 술주정뱅이 이웃에 대한 이해와 가계에 대한 산수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뻬뜨로비치가 80루블을 받고도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80루블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단 말인가? (*중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에게는 평소에 잔돈을 모아두는 저금통이 있었고, 몇 년간 모아온 그 돈이 대략 40루블 정도 될 거라는 계산을 한다.) 절반은 이미 수중에 있으나, 나머지 반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40루블이나 되는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적어도 1년간만이라도 생활비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도 끊고, 저녁에 촛불도 켜지 않고 꼭 필요할 때는 주인 여자 방에 있는 촛불을 사용하면 된다. 길에서는 되도록 살살 걸어 다니고, 돌과 석판을 밟을 때는 조심조심 발끝으로 걷다시피 하여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주의하고,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세탁부에게 맡기는 횟수를 줄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속옷 대신 오래됐지만 아직 쓸 만한 목면 가운만 걸치고 살기로 했다. (72쪽)


아, 이 불행한 사람! 이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콧물은 킁킁 남몰래 삼킬 수 있지만 눈물은 도로 삼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도. 고작 새 외투를 사기 위해 1년 동안이나 그런 궁상을 떨어야 하다니,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정신의 승리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그런 내핍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더니 어느덧 순조롭게 되었다. 나중엔 저녁을 굶는 것이 완전히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 대신에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존재는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으며,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하기로 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삶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동반자란 다름이 아니라 두꺼운 솜과 해지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외투였던 것이다. 그는 웬일인지 생기가 돌았고, 이제 스스로 목표를 정한 사람처럼 성격이 보다 강인해졌다. 그의 얼굴과 행동에서 보이던 불안과 우유부단함이,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던 불확실한 특징이 이제 사라졌다. 때때로 눈에서 불꽃이 보였고, 머릿속으로는 아주 뻔뻔스럽고 대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 옷깃에다가 담비가죽을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73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는 그런 궁핍한 생활을 이겨냈고, 생각보다 빨리, 고작 6개월 만에, 생각보다 많이 들어온 보너스의 도움으로, 필요한 80루블을 모두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새 외투를 구입한다! 윤이 반지르르하고 몸에도 꼭 맞는 따뜻한 새 외투가 그에게도 생긴 것이다! 만세! 


다음 날,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그는 마치 축제를 즐기듯 새 외투를 뽐내며 걸어갔다. 고골에 따르면 사실 새 외투가 좋은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관청에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동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새 외투를 구경하며 따뜻하게 축하해줬다. 여전히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말단 9급 관리에 작고 볼품없는 외모와 이마까지 벗겨진 가난뱅이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였지만, 새 외투를 구입함으로써 마침내 그들의 동료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들은 새 외투를 위해 기념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수줍게 거절하자 계장대리가 대신 나서 축하 파티를 열어주기로 했다. 바야흐로 새 외투와 함께 새 인생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여기까지 읽었다. 그리고 나는 <외투>파의 친절한 사내가 내게 하려던 말을 이해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패딩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패딩을 사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게는 돈이 없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처럼 청승을 떨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걱정 없다. 내게는 신용카드가 있다. 12개월 할부로 결제하면 그만이다.


12월 6일

간만에 단잠을 잤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멋진 꿈도 꾸었던 것 같다. 간만에 생기가 돌았고 강인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찼지만 그건 나를 오히려 더욱 들뜨게 했다. 웬일인지 콧물도 흐르지 않았다. 


백화점에는 예의 점원이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일전에 입었던 그것을 다시 한 번 입혀주었다. 똑같은 미소와 함께. 하지만 이제 내게 그의 미소는 더없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의 친절한 도움으로 패딩을 입으며 왈칵, 눈물이 터질 뻔했다. 며칠 동안 내가 그리던 패딩적 이상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여전히 포근하며 따뜻했으며,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가벼워 마치 정말로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비유적 의미에서의 비행이라면 실제로 가능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외투>의 교훈이었다. 


지체할 것 없다. 나는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가 물었다. “12개월로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보너스라도 받는다면 6개월로 끊어도 되겠지만, 제가 프리랜서라서.” 그러자 그가 예의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은 분명 <외투>를 읽으셨겠네요. 그렇죠?”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게 패딩이 든 쇼핑백을 건네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손님, 혹시 그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명색이 서평가인데 끝까지 읽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2월 6일 (2)

참지 못하고 지하철 화장실에 들러 패딩을 입었다.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패딩적 현실을 느끼고 싶었다. 과연, 고골이 옳았다. 새로운 패딩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나는 더럽게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럽게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땀이 났지만 벗지 않았다. 앞으로는 사우나를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2월 6일 (3)

집에 돌아오자마자 SNS에 ‘착샷’을 올렸다. 친구들의 축하 멘션에 일일이 답을 해주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내일은 ‘요설’ 마감이 있는 날이라 일찍 잠을 자야만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불을 켜고 <외투>를 마저 읽었다. 그런데 잠깐, 뭔가 이상하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잠깐 생각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12월 7일, 마감 당일

밤새 <외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혹시라도 내가 잘 못 읽었나 싶어 다시 읽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앞에 새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새로운 외투적 현실과 함께, 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조금 더 사교적이 되어 주말이면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그러다 여자를 소개받아 결혼도 하고, 그런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었다고.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그날, 그러니까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축하 파티까지 열게 된 그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외투를 강탈당한다. 파티 장에서 늦게까지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던 그를 괴한이 덮쳤다. 그들은 무자비하게도 그에게서 외투를 빼앗아갔고, 그는 잠시 기절한 후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두염에 걸렸다. 너무 낙담한 나머지 멍하니 입을 열고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죽어 유령이 된다. 밤마다 거리를 떠돌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는 불쌍한 유령이……. 그것이 그의 외투적 미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패딩적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날, 마감 시한을 얼마 남기지 않은 몇 시쯤

메일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콧물이 흘러내려 하마터면 질식사해 죽을 뻔했다. 아니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코를 세게 풀었다. 인중이 또 쓰렸다. 

두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하나는 프레시안 담당기자에게서. ‘^^’라는 이모티콘과 함께 원고를 언제 줄 것인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아니, 과연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메일은 <외투>파의 일원에게 온 것이었다. 그는 내게 옷은 마음에 드는지, 따뜻한지 묻더니 곧이어 물론 마음에 들고 따뜻하겠지 자답했다. 이놈은 미친놈인가? 그런데 이 녀석이 내가 새 패딩을 산 것을 어떻게 알지?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계속해서 메일을 읽었다. 녀석은 내가 12개월로 패딩을 구입한 것까지 알고 있었다. 녀석이 바로 백화점의 점원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정중하게, 그러나 어딘가 조롱하는 투로, 메일을 마무리 지었다. 새로운 패딩적 현실에 적응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P.S. <외투>는 다시금 끝까지 읽어보셨나요? 부디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몇 시인지도. 아직 마감은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시(時)

아까부터 전화기가 계속 울린다. 처음에는 카톡이, 다음에는 문자가, 그리고 다음에는 전화가 왔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마감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다. 없고 말고. 새로운 나의 패딩적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나의 패딩적 미래는 어떤가? 그러니까 앞으로 12개월 동안,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궁핍은 무엇인가? 앞으로 몇 개의 원고를 더 써야 하는가? 겨울은 고작 세 달 남짓일 뿐인데? 원고를 써야 할부금을 갚을 수 있는데, 당장 마감을 넘기지 못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얼마나 많은 청탁과 원고가, 얼마나 많은 거위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마감과 사과가, 얼마나 많은 헛소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거위가 필요할까? 


알 수 없는 나는 패딩을 입는다. 따뜻하고 포근한 패딩 속에 숨어 이 모든 겨울과 마감과 기나긴 할부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 끝 -


















PRESSIAN BOOKS 169호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1206181247&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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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연재 1년을 맞이한 요설 2013년 마지막 특별호. 일기의 화자와 상관없는 나는 엊그제 인터넷을 통해 패딩을 구입했고 패딩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1 04:13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이 춥던데 패딩 제대로 입어볼 기회이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연말 모임은 조심하셔야 할 것 갓습니다.
담뱃불 떨어져서 홀랑 타는 경우도 있더라고요..헤헤..

poptrash 2013-12-11 22:20   URL
고골이 말한 그대로,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더라고요. 덕분에 추운줄도 모르고 즐겁게 쏘다녔습니다 ㅎㅎ

왕타나베 2014-01-10 14:21   댓글달기 | URL
고골 작품 중 코와 외투를 인상 깊게 보았는데, 패딩 (광인)이야기까지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너무 잘 쓰신 서평, 일기, 재창작 소설 잘 봤습니다.

사무실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참고로 저 패딩 만들어 파는 회사 다닙니다.
보는 내내 점원처럼 씨익 웃었습니다.

저도 고골 글을 보고 쓴 '잠바' 라는 습작 소설이 있어 보내드리고 싶은데, 관심 있으시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읽어 주신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poptrash 2014-01-11 23:47   URL
앗, 패딩 회사에 다니신다니, 이거 대단한 우연이네요. ㅎㅎ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통한 말씀도 드릴 순 없겠지만 보내주시면 즐겁게 잘 읽겠습니다. blur182@hanmail.net 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