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나무 여행 내 마음의 여행 시리즈 2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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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나 풀나무들과 붙어 살던 농경 사회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그 이름들과 속성, 쓰임새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땅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기 시작한 도시에선

흙을 보기조차 쉽지 않은데, 다행히도 이 땅의 70%가 산지라는 특성 덕분에,

아무리 삭막한 도시라 해도 쉽게 산을 접하게 된다.

천만 다행이다.

공원이라든지 하천이라든지... 이런 곳에 공공성의 개념이 부여되지 않은 나라에서,

그나마 산이라도 없었다면... 온 나라가 잿빛 시멘트 천지가 되지 않았을까?

 

꽃들과 풀나무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쉬운 것은, 설명이 자세하면 사진이 좀 떨어지고,

암튼...

이 책의 사진을 찍은 송기엽은 야생화 전문 작가인 모양인데,

사진이 '정물화' 같지 않고 '풍경화' 같은 느낌이어서 참 좋았다.

이유미의 글도 감성 충만하여 넘치지는 않지만,

일반 설명문 투에서 벗어나 이땅의 풀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았다.

 

이 책의 장점.

넘치지 않는다.

나처럼 도시에서 계속 자라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떤 수종과 어떤 풀꽃들이 대표 식물인지를 분간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려운 이름의 외국 꽃들(팬지, 글라디올러스, 칸나...)은 알아도,

토종 아름다운 꽃들은 엉겅퀴, 패랭이 조차도 분간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을 보다보면, 주변의 산에 지천으로 널린 풀나무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것도 춘하추동에 따라 그 풀나무들의 꽃, 열매, 나무 껍질과 낙엽 등의 생리를 자유롭게 쓰고 있어,

전문적인 글이지만 자유롭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장점의 뒷면에 있는 이 책의 단점.

역시, 전문성을 찾아 펼쳤다면 내용이 부족하다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초보용 산책 도우미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사진으로 만난 때죽나무 꽃은 참 아름답다.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에서 만난 '때죽나무와 때끓이는 외딴 집 굴뚝' 대목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었다니...

산딸나무 꽃처럼 보이던 것이 '포'였다는 것도 새로 알았다.

무엇이든 알면 새롭게 보이는 법이다.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그 사람의 정면 반신 여권 사진을 들이밀면서 설명하는 데 비해,

자연스럽게 활짝 웃는 모습으로 찍힌 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수용자에게 다가설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모습들이 그렇게 제시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책의 사진들이 좋은 것은, 꼭 풀꽃이나 나무들을 제시하는 데,

정면 여권 사진같은 것을 들이밀지 않고,

아스라히 눈부신 햇빛 비치는 숲도 있고,

활짝 꽃핀 모습들도 한 페이지에 다양하게 배치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 노력한 점 들에서

작가나 편집자의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도시 사는 사람들이 산에 다닐 때, 한 권쯤 넣고 다니면서

야, 네가 바로 이넘이었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막걸리 한 잔 걸치지 않고서도 덩실덩실 춤추며 하산할 수 있어 좋을 게다.

 

오탈자 몇 개.............

 

77. 최류탄... 최루탄

210. 임진왜란 시 몽진한 성조... 선조

239. 녹차 한 잔을 다려... 달여



 
 
 
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1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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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을 만나면 반갑다.

그리고 그의 시들에서 읽히는 삶의 흔적은 나의 그것으로 쉽게 치환되어 버린다.

한편 좋고,

한편 아프다.

 

허연의 이전 시집에서 기억에 남는 시는 아래 시다.

 굳은 채 남겨진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
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
운 부분이 있다. 먹고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
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
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 주기 싫은 곳. 밥벌
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
선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전문> [시집 ‘나쁜 소년이 서있다’에서]


굳은살과 상스럽다는 말이 '사랑스럽다'는 말도 떠올리는 한편 서러움을 환기한다.

아마도 내 마음 속의 굳은살...

그 상스러워 감히 내어보이지 못한 흔적,

그러나 그 상스러움 속에선 치열함이 가득했을... 그것들에 대한 애착이

이 시를 기억에 남게 했나보다. 

 

이 시집의 표제시, 내가 원하는 천사, 는 귀엽다. ^^

 

천사를 본 사람들은 / 먼저 / 실망부터 해야 한다.//

천사는 바보다./ 구름보다 무겁고,/ 내 집게손가락의 굳은살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천사는 바보이고/ 천사는 있다.//

천사가 있다고 믿는/ 나는/ 천사가 비천사적인 순간을 /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 천사를 떠올린다.//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 천사. / 허우적거리다 /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진흙에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 그 난처한 아름다움.//

아니면 /야간 비행 실수로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불시착한 천사//

가까스로 매달린 채 / 엉덩이를 내보이며 / 날개를 추스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면/ 비둘기 똥 가득한/ 중세의 첨탑 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망연자실.

내가 원하는 천사다. <내가 원하는 천사>


이런 인간적인 천사가 있나? ^^

그렇지만, 그 천사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존재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시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는 '덧칠'이다.

'덧칠하면서 사는 나이'에 마음이 매여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난 오늘 덧칠을 시작했다'에서 다시 '덧칠'이 마음을 '덧나게' 한다.

나이는 이런저런 생채기, 또는 굳은살을 애써 무시하며 살게하는 역할을 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어두운 한켠에 덧칠을 한다.

애써 칠한 그 '덧댐'은 그러나... 흉한 결과를 낳고,

의도한 감춤에는 실패하고, 오히려 굳은살의 위치만을 더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덧칠을 하면서 헛됨을 깨닫게 되는 것.


 덧칠하면서 사는 나이다. 낡은 목선에 켜켜이 붙어

있는 페인트의 두께에서 어떤 절지동물 사체들이 묻

혀 있는 굴곡이 보인다. 기생하면서 살아온 것들, 고

래와 목선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들, 그 위에 덧칠된

울퉁불퉁한 굴곡들. 뜨거운 게 치밀어 올라온다. 난

오늘 덧칠을 시작했다.


 목선에 들러붙은 지독한 것들에게. 온몸이 가려워

지는 그들의 생존 방식에 대해 짠물에도 살아남은 그

들의 묵묵한 인내에 경배한다. 하나하나의 이름은 모

른다. 하지만 진화에서 빗겨 나간 과묵함이 눈물을

핑 돌게 하는 풍경임은 분명하다. 나는 얼마나 작은

가. 숨죽이며 발목을 잡는 건 자책이다. 짠물에 씻겨

나가지 않은 사체의 세월이 나의 노래이기를.  <덧칠>


그의 이번 시집에서 읽히는 몇 개의 사랑 노래.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누군가에게 몰입

하는 일. 얼어붙거나 불에 타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얼음의 온도, 전문)


사랑을 '잊음'에 빗대면 어떨까?

낯선 사람에겐 깜짝 놀랄 일인 얼음의 온도, 불의 온도도,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잊히는 것.

천년을 거듭해도 잊기 쉬운... 익숙해짐... 뭐, 그런 일...

사랑의 반대켠에 놓이는 이별.

그 이별의 마당에서 '노래'를 줍는다.

노랫말 속에서 풍겨나는 '기억'은 추억뿐만 아니라 회한이기도 쉽다.

너무도 길고 긴... 견디기만 하라는 말.

이별노래 치고는 저미는 노래인데... 그 저밈이 '서리'의 촉각으로 시리다.

 

 노래로 늙어갈 줄 알았다면 그 말의 무늬와 바람의

색깔과, 차가운 새벽의 냄새를 기억해 놓았을 텐데


 밤이 오고 또 밤이 가는데. 견디는 모든 것들은 화

석이 되고 새들은 또 날고. 오늘 아침 철로변에서 그

리움은 서리로 내리고. 또 그대는 견디기만 하라 하고


 그대의 날들은 너무 길고 길어서. (別於曲, 부분)


그 이별 노래를 부르는 이,

시정잡배지만, 노래 한 곡에 담을 사랑은 무엇일까?
모든 유행가 가사가 자기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촉처럼 아픈 심장에게

세상살이는 죽을 만큼 아프다.

그 아픔은 눈물 한 방울 난다.


술국 먹다 말고 울컥 누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물가물하지만 무지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그 술국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또 웃는다.

잊어버리는 건 쉽지만

다시 떠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그게 시정잡배의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십팔번 딱 한 번만 부르고 죽자. (시정잡배의 사랑, 부분)


그의 십팔번이 무슨 곡이든...

눈물이 핑 돌게 부를 것임은 자명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이 쉴 곳 없네'가 되었든,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흔들리는 차창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눈물도 흐르고 잊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가 되었든,

십팔번 한 번 부르고 죽고 싶을 정도로 흐느낌과 오열이 뒤섞일 것이다.

 

눈물은, 빗방울이고, 그 빗방울은 부서진다.

부서지는 빗방울이 아프다.

핏방울이 튀듯, 통증으로 가득하다.

불통의 통증은, 뼈아프게 서있는 나무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자라지 못하는 아픈 나무가 그저 비맞으며 서 있을 뿐이다.

 뭔가를 덮어놓은 두꺼운 비닐을 때리는 빗소리가

총소리처럼 뜨끔하다. 기억을 두들겨대는 소리에 홀

려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빗속에 들어가 나무처럼

서 있다.


 언제나 어깨가 가장 먼저 젖는다. 남들보다 좁아서

박복한 어깨가 비를 맞는다. 금서의 첫 장을 열듯, 빗

방울 하나하나를 본다. 투명 구슬처럼 반짝이며 떨어

지는 물방울의 마지막 순간을 본다. 자결하면서 쏟아

지는 유리구슬. 핏방울이 튀듯 투명 구슬이 튄다.


 마당 하나 가득 깨어진 구슬로 가득하다. 나는 여

전히 개어진 구슬 한가운데 서 있다. 구슬이 나를 때

린다. 뼈로 들어서는 통증. 나는 뼈아프게 서 있는 나

무다. 자라지 못하는 나무다. (자라지 않는 나무, 전문)


지구가 멸망한들,

지구는 잿빛으로만 남지 않는다.

거기서 명도가 살아나는 색채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름답다.
그 생명체가 고양이라면, 더 아름답다. 생생하다.


 무너져버린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고양이들이 짝

짓기를 한다. 순식간에 장르가 바뀐다. 에로다. 며칠

전까지 이곳에서 벌어졌던 중장비들의 공포는 이미 잊

혔다. 족보 한 장이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을가.


 몰락은 사족 없이도 눈부시다. 내밀한 서사가 창자

밀려 나오듯 밀려 나와 있는 몰락은 눈부시다. 미리

약속하지 않았으므로 몰락은 눈부시다. 그리고 그 몰

락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짝짓기란.


 무거웠던 것들이 모두 누워버린 몰락의 한가운데서

고양이의 배 속에 담겨 날아온 씨앗들도 싹을 틔우리

라. 똑바로 서 있던 벽돌의 모습은 고양이들에게 더

이상 기억되지 않으리라. (몰락의 아름다움, 전문)

 

그러나, 그의 사랑은 몰락만은 아니다.

사랑은 신전을 만든다.

신전에는 유전자의 기록 외에도,

잊혀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담아 기록을 한다.


영원히 살 수 없으니까 사랑을 하는 거다

따지고 보면

기껏 유전자나 남기고자 하는 일이다


비극은

피하고 싶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어쨌든

기억에서조차 사라지는 게

사랑이다 보니

사람들은 무엇인가 쓰기 시작했다


신전 기둥에 남긴 사랑도

그저 기록일 뿐이다


겁내지 말라고

내가 다 기록해놨다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고

남자는 외치지만

여자는 죽어간다.

신전은 세워지고 있지만 여자는 여전히 죽어간다


죽어가는 여자보다

사랑을 잊지 않으려는 남자가

진화상으론 하수다 (신전에 날이 저문다, 부분)


진화상으로 하수인 남자.

그 남자의 기록이 이 천사의 기록이다.

신전의 기록과 천사의 타락...

 

날은 저물지만,

사랑은... 그 굳은살과 아림은 계속된다.



 
 
자목련 2012-05-24 19:27   댓글달기 | URL
더이상 사랑의 기적을 꿈꾸지 않지만,
사랑했으므로, 사랑함으로 우리는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글샘 2012-05-25 11:34   URL
사랑이 기적일까요? ㅋ
좋네요... 사랑으로 이어가는 삶이라...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본문 수록 작품 소책자 증정]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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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섹시하다. 무지 섹시하다.

난 이런 책을 보면 흥분해서 주체를 못한다.

그래서 끌어안고 쓸어보고 다시 안아보길 멈추지 못하는 거...

 

표지는 선명한 빨강, 이다.

그 빨강의 윗부분으로 10% 정도의 그라데이션이 주어지고,

빨강을 돋보이도록 도드라진 코팅처리조차 섹시하다.

그 아래,

제임스 딘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돋보이는

애인이 담배를 꼬나물고,

트렌치 코트 차림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지은이는 강신주다.

이 섹시한 남자는 편집자 김서연을 저자 이름 옆에 떡하니 앉혔다.

이 사람이 내 여자친구다! 이러고 온 세상에 공표하듯이. ㅎㅎ

그 마음이 정말 섹시하다.

 

속표지 또한 섹시미의 전형인데,

짙은 장밋빛 레드 속표지에

제 눈을 가리키며 '나는 시인이다!'를 힘주어 말하는 듯한,

강한 시선의 김수영이 화면 가득이다.

책 읽기도 전에 짜릿, 하다.

 

 

한국 시의 최고봉은 단연 서정주다.

한국어를 어쩜 그렇게 감칠맛나게 구사하는지... 정말 서정주는 매력적이다.

근데... 이 사람 시는 좋은데... 그의 인생은... 결코 훌륭하지 않아 치욕적이다.

강신주, 한 마디로 서정주를 디스(disrespect)한다. 통쾌하다. ㅋ

 

감성의 차원에서는 구원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문정신이나 이것을 지키는 차원에선 구원될 수 없다. (167)

 

뒤에 가서 아도르노를 빌려 뒤통수를 한번 더 가격한다. 보낼 때 확실하게 보내야 한다.

 

분단과 독재의 시대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191)

 

 

고은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여러 해 꼽아왔다.

노벨 문학상은 상당히 정치적인 수상 경향을 띠는데,

고은이 수상할 만큼 한국의 정치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고은의 시는 올곧지만, 서정주만큼 언어 구사가 유려하지 않다.

고은의 걸어온 발자국 - 민족문학 작가회의- 을 높이사는 프리미엄이 그의 이름에 붙어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시편(poem) 또는 시(poetry)라는 것에서 가장 탁월한 성과를 획득한 이라면,

역시 김수영이다.

그러나, 김수영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그늘에서 늘 폄훼되어 왔고,

김수영의 시를, 그의 글들을, 그의 사상과 인간상을 총체적으로 '해석'한 책으론 이 책이 최고다.

 

이 책은 김수영에 대한 절절한 연애 편지다.

러브레터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장 큰 구절은 첫 문장이다.

그래서 이 책의 첫 문장,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이성복)

 

이 문장이 가진 무게는, 육중하다.

이 책 전체를 끌고 가기에, 연애편지론에 충실한 첫문장을 품었다.

 

여느 책들은 모두 특정한 '체재'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강신주가 '정신적 키를 한 뼘은 키워준 김수영을 그리며' 쓴 절절한 연애편지이므로,

서술의 '방법'은 없다.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므로...

 

김수영, 그의 정신은 '자유'다.

인간에게서 '자유'만큼 섹시한 인문 정신이 또 있을까?

자유는 매혹적이다.

그렇지만, 자유의 향기에 매혹되는 자,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자유'를 이야기하는 순간, 독고다이로 맞설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므로...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자유'라면,

그 자유가 관통하는 인간은 '단독자'이다.

한국처럼 굴곡진 근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뇌 속엔 자유에 대한 본능적 공포감이 총탄처럼 '장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만세!

 

그래서 강신주는 이 시를 들이민다.

독자는 누구라도, 이 시구에 대하여 금세라도 '장전된 총탄'을 발사할 듯 긴장한다.

 

사포처럼 살갗을 도려내는 일상의 적들과 싸우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그 사람.

 

이 책의 편집자가 김수영 전집을 넘겨주며 속지에 적었다는 이 말,

역시 러브 레터에 필수 요소인 '짜릿한 구절의 인용'이다.

이 책을 잘 읽으면 러브 레터에 통달할 수 있겠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간접 체험으로도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으나, 딱 하나

제 '온 몸'으로 겪어내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사랑>이다.

그 지독한 이름, 사랑의 방식 이외에는 김수영을 설명하고 번역하고 해석할 수 없었다는 듯,

이 책은 치열한 그래서 아름다운 러브 레터로 창작되고 있는 거다.

 

러브 레터치고 섹시하지 않은 글은 없는 법이니까.

러브 레터를 쓰는 사람이 품지 않는 생각. '이만하면' 이다.

이만하면 잘 썼지?

이만하면 만족하겠지?

이런 인간, 사랑은 못해본 종족이다.

사랑에 빠져 러브 레터를 써본 사람이라면, '이만하면'이 불가능한 어법임을 알 거다.

 

'책은 도끼다'란 책이 있다.

카프카의 말에서 온 거다.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이 섹시한 강신주의 김수영은...

도끼였다. 사랑이었고, 죽음이었고, 추방이었고, 자살이었다.

김수영은, 삶과 죽음 그 자체로 <상처>였고, <자극>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섹시는 미완인 채로 완성된다.

 

남루한 것을 남루한 것으로 긍정하지 못하고

번지르르한 기름으로 그것을 가리려고 하는 것(350)

 

삶은 이런 섹시하지 못한 돼지들 사이에서 비비적대게 된다.

그래서, 섹시 코드로 무장한 이런 책이 세상엔 인문학의 이름으로 가득차야 한다.

이 책의 섹시함의 완성은 그림에 있다.

내용과 꼭 맞춤한 그림들이 한 페이지씩 차지하고 있어,

김수영에 대한 연애 편지를 읽는 사이사이,

그 사랑을 한눈에 담지할 수 있게 하는 관조의 순간을 통찰하게 해 준다.

러브 레터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마음에 담아 보라.

그리고 품고 살아보라.

삶 자체가 러브 레터의 번역이자, 사랑 그 자체인 단독자로 오롯이 설 수 있는 행운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 섹시한 러브 레터를 읽고 나면,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하게 된다.

그걸 질병으로 말하자면, <벅찬 영혼 신드롬>쯤 된다.

이 질병은 불치병이다.

그리고, 전염성이 강하다.

 

가난한 영혼이여,

벅찬 영혼 신드롬에 전염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섹시한 러브 레터를 읽지 않고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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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틀린 맞춤법을 찾아내는 일은 마음아팠다.

연애 편지에서 맞춤법을 운운하는 건 쫌 치사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강신주가 제 옆자리에 떡하니 여자친구라고 앉힌 김서연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사랑을 위해서라도 굳이 밝혀야겠다.

독자로서의 애정을 가득 담아서...

이 책이 1판으로 절판될 것이 아닐 것이므로...

 

(편집자님이 연락을 주셔서 오탈자는 지웁니다. ^^)



 
 
마중물 2012-05-25 09:47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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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글샘의 이 리뷰가 강신주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같이 느껴지네요 ㅎㅎㅎ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글샘 2012-05-25 11:34   URL
맞아요. 무한 애정을 담아 쓴 러브레턴데... 부치지 못하고 담아뒀다는... ㅋㅋ
 

 

 

 

 

 

 

 

 

 

 

 

 

 

 



 
 
 
유령이 쓴 책 
데이비드 미첼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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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지배하는 분.

초월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옷으로 싸인 고기, 고기로 싸인 장기... 이런 것이 인간으로 상정되기도 한다.

 

이 책의 유령은 고정된 형태로, 하나의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 몇 편의 이야기는 그 유령의 형태가 다양함에 힘입어,

마치 사진의 배경에 우연히 찍힌 존재들에게서 기시감을 느끼듯한 재미를 엮어내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통일감이나 찰진 연결 고리를 놓쳐버리는 느낌에 시들해지게도 한다.

 

결국 유령을 매개로 하여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므로, 제목도 '유령이 쓴 이야기' 정도가 낫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문에 단 종이 울리더니 공기가 확 움직이고 가게에 있는 모든 종이들이 바스락거렸다.

 

이렇게 미세한 파동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스스로 유령이라 일컬을 만 하다. ^^

음악과 관련된 언표들도 이 소설의 재미를 돋워줄 수 있다.

굳이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글의 흐름 자체가 음악적이다.

 

평소에는 조용히 느릿느릿 나무 아래를 흘러가다가, 바람이 스치면 물결이 이는 냇물같은 앨범.

또다른 노래들에서는 내해에 닿아 반짝이는 화음들...

 

작가는 세계 각지의 상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등장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응집력의 약화를 부르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벚꽃이 지면서 공중에서 이리저리 흩날릴 때만 아주 잠깐 가장 완벽한 거야...

내 생각에는 오직 우리 일본 사람만이 그걸 이해할 수 있다 봐.

 

유령의 모습을 단적으로 그린 부분도 있다.

그러나, 놈들...의 모습은 인간의 일면이기도 하다.

 

당신은 놈들이 오는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

놈들은 남들이 보지 않고 지나치는, 그리고 먼지를 털어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놈들은 거대하게 자라고,

그 동안 당신은 놈들의 진짜 모습은 물론이고 존재에 대해 꿈에서조차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때가 되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힐끗 보게 되고 빗장이 풀리면서......

 

인간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 한다.

보기 싫고 믿기 싫어하는 것들은 억지로 외면하고 눈감으려 한다.

그렇지만, 사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인간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사실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힐끗 보게 되고 빗장이 풀리는...

그런 '우연'성이 인간에 대한 본질에 다가서는 유일한 열쇠 풀림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등대가 각자의 독특한 신호를 가지고 있듯 모든 마음은 특유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어떤 마음은 변함없이 신호를 보내고 어떤 마음은 변덕스럽게 신호를 보낸다.

어떤 마음은 미적지근하고 어떤 마음은 뜨겁다.

어떤 마음은 이글거리고 어떤 마음은 거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어떤 마음은 퀘이사처럼 주변부에 자리잡고 있다. ... 내 경우 동물과 인간은 각각 다른 등급과 색과 중력을 가진 별과 같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는데,

그들이 벌이는 사랑, 탐욕, 살인, 살상 들은 모두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들이지만,

어쩌면 운명이 벌이는 장난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있는 존재니까.

 

그래서 인간의 운명과 우연성에 대한 탐구는 '원인'에 치중하는 사색이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면서, 늘 '원인'을 밝히려 든다.

그것이 낳은 결과가 눈앞에 처참하게 널부러져 피흘리고 있는데도, 굳이 외면하면서...

 

갑자기 당신이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당신은 '결과' 얘기는 절대로 안 하잖아요.(437)

 

결국 인간은 존재의 의미 파악에 관심이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유령이 들여다본 인간은, 참 시시하고 시들한 것이었는지도...

쪽팔려서 그들이 저질러 놓은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려고도, 개선을 꿈꾸지도 않으니 말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모든 것이 담긴 테이프가 당신 손에 있다. 우연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모든 결정과 임의로 떨어지는 공의 방향은 이미 운명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음, 그 답과 시간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당신이 읽고 있는 책처럼 외부 관점에서 보자면 삶을 지배하는 것은 늘 운명이다.

내 삶은 우물이고 나는 바로 그 우물 안에 있다. 우물은 깊고 나는 아직 바닥에 닿지 못했다.

 

결국 '상대적'이라는 말로, 운명을 설득하려 한다.

작가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온 세계를 돌아온 거리감의 피로도에 비하면, 응집력이 약해져 버린 느낌인데,

그의 인간에 대한 탐색 내지 사색의 내용들은 제법 거둬들일 것들이 있다.

 

능동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는지,

어쩔 수 없이 자기 삶이란 의식도 없이 마지못해 사는지...

우연이 춤추는 자신의 삶의 앞길에서 고통에 몸을 내어 맡기고 흔들리는 춤을 추며 걷는 삶도 아이러니지만,

그는 적절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날아가는 새의 시선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인 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힘겨워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삶의 비척거림 역시 아이러니라면,

그는 방향감도 거리감도 다 놓쳐버린 걸음인지 비틀거림인지를 반복할 수도 있겠다.

 

유령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노라면,

당신이 어디에 살든,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오늘이라는 '우연'의 선물을 한번 들여다보라는 충고를 나즉히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여성의 그것도 남성의 그것도 아니지만,

당신이라는 삶의 우물물에,

한번쯤 철버덩 하고 두레박을 던져 시원한 물을 길어올리기를 권해준다.

 

 

----------- 틀린 맞춤법...

 

98. 쉬흔 번째로... 쉰 번째로

306. 횡경막을... 횡격막을

502,. 걸프 만의... 걸프 = 만



 
 
양철나무꾼 2012-05-22 17:27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왕 사랑하는 책이지요.
요 위, 샘 리뷰에서도 언급되지만...
'나로 인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깨닫게 되는 순간,
삶은 유령같은것이 되기도 하고, 운명이나 우연 같은 것이 되기도 한 걸 보면 말이죠.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ㅋ~.

글샘 2012-05-23 08:43   URL
맞아요. 삶은 '... 때문에'나 '... 덕분에'란 말 한 마디 차이로도,
운명같은 순간을 맞기도 하고, 유령처럼 쓸쓸해 하게도 되는 거겠죠.
좋은 리뷰~라시니... ^^ ㅋ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