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의 인터뷰집이다.

대부분이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책은 쉽사리 읽히지 않는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책을 덮고 하늘을 바라봐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반장이었던 미지를 잃고 난 뒤 어머니는 미지가 반장 나가는 걸 막지 못한 걸 후회한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미지는 그 당시 갑판까지 올라와 해경에게 저 밑에 우리 친구들 많으니까 구해달라고 했단다.

물론 해경은 그 말에 신경도 안썼고, 결국 미지는 친구들을 구하러 다시 배 아래로 내려갔다.

반장만 아니었으면 살아나왔을 텐데 하면서 많이 자책했어.....책임감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다 아는데 미지가 그렇게 가고 나니 잘 모르겠어. 훌륭한 게 뭔지.” (56쪽) 

말썽꾸러기였던 창현이에게 늘 잔소리만 했다는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들, 딸과 사이가 좋은 채 헤어지는 사람들도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나처럼 사이가 안좋다거나 서로 대치하다가 떠나보낸 그 아들과 딸에 관한 아픔도 정말 크거든. 후회가 굉장히 많이 남아요.” (146쪽)


세월호 얘기를 그만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유족들은 멈출 수 없다.

배가 왜 침몰했는지, 해경은 왜 학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해군 UDT 등에서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서 구했는데 못 구했다 그러면 우리도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창현 어머니의 증언, 157쪽)

게다가 유족들을 흡사 범죄자 취급하듯 대하는 모습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가족들을 몰아붙일지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국민도 아닌 것 같아요....대통령 눈길 한번 사로잡으려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치는데 눈길 한번 안주더라고요...그게 사람인지요.” (같은 쪽) 


하지만 정말 슬픈 건, 이 시대를 같이 살고 있는 우리들의 냉담한 시선이다.

우리 애들은 갑자기 죽은 것도 아니고 사고 나고서도 한참을 연락하다 죽었잖아요. 엄마가 걱정하니까 우리 살아서 갈 건데 왜 걱정하냐고 화내고 간 아이도 있는데. 그런데도 교통사고라느니, 놀러가다 죽은 건데 왜 그러냐니까 상처가 돼요. 세월호는 달라요. 뭔가 있다고요. 의문이 너무 많다고요.” (82쪽, 승희 어머니의 증언) 

유족들이 벌써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챙기고도 더 받아내기 위해 떼를 쓴다는 의견도 많다. 

이제는 돈 얘기만 해요. 우리 진짜 돈 받은 것 없어요. 해수부에서 긴급자금으로 준 거 말고는 없어요. 사람들이 자식 팔아서 돈 벌려고 그런다는 말들 많이 하는데...어떻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 아니라고 돈이랑 자식이랑 어떻게 바꿀까 싶고.” (83쪽)

그럼에도 유족들을 돈에 굶주린 하이에나 보듯이 하는 댓글들을 보면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사고가 언젠가는 자기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왜들 이럴까. 


책이 나오고 난 뒤 유족들은 전국을 돌면서 북 콘서트를 열고 있다.

어제는 천안에서 했는데, 천안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씨, 그리고 장항선씨 이외에는 유명인이 살지 않는 탓에

부끄럽게도 내가 북콘서트 사회를 봤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알게 됐다.

내가 방송을 그만둔 게 아니라 잘린 것이며, 왜 잘렸는지 그 이유를 말이다1) 

이제 곧 세월호 1주기가 돌아온다.

우리는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말고,

이 책을 사서 읽으시라. 

정부에서 조작해 낸 유족들의 모습 대신, 진짜 유족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으니까.

-------

1) 그날 사회를 잘 못봤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섭외 많이 들어와요!





 
 
재는재로 2015-03-22 02:47   댓글달기 | URL
무슨사건만때만반짝관심시간이지나면흐부지되는이런여론의관심과아직도제대로처리되지않는법!적인문제 자식을잃은부모는가슴에대못이박힌채살고있는데이런사건을자신의이익을위해이용하는인간들그리고악의적인 악플러들 얼마적오뎅사건도그렇고진짜인간이싫어지네요
방송그만두신게아니라짤린신?요즘방송에서보기힘들던데그런사정이
오랜만에글올리는데 잘지내시죠

마태우스 2015-03-22 10:53   URL
재는재로님 안녕하셨어요 저는 그닥 잘 못지냅니다 올해는 자신을 찾겠다 이딴 소리 했는데 별로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 방송에 그닥 애정이 없어졌어요. 그 대신 다른 곳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할까요. 그래서 요즘 그쪽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악플러들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오죠 저게 사람인가 싶고, ㅠㅠ

보광적선 개도적선 2015-03-22 04:19   댓글달기 | URL
통곡의 목소리 누군가 들리겠지?

마태우스 2015-03-22 10:53   URL
그랬으면 좋겠는데 귀가 잘 안들리시는 듯....

blanca 2015-03-22 12:50   댓글달기 | URL
저는 세월호 사고날이 하필 결혼기념일이었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 화가 나고 슬플 것 같아 차마 이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웃으며 혹은 자잘하게 다투며 보낸 아이들이 죽어 돌아왔을 때의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온전히 헤아리겠습니까. 마태우스님의 용기 있는 헌신에 응원이나마 보탭니다.

그리고 방송하차에 사연이 있었군요. 힘내세요!!!!

마태우스 2015-03-22 17:11   URL
블랑카님 안녕하세요? 결혼기념일이 하필....ㅠㅠ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시겠군요ㅠㅠ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는커녕 놀리는 애들이 천지라, 이런 땅에서 살고싶지 않네요. 갑자기 미국 가서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구 방송하차 얘기는 농담이었어요. 그냥 사회를 잘 못봐서 사람들이˝쟤가 저래서 잘렸구나˝라고 생각할 거란 얘기였어요. 사실은 섭외요청이 오면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는.... 대신 다른 일에서 제 재능을 발견해서 그쪽으로 올인하고 있어요. 암튼 격려 감사드려요

paviana 2015-03-22 14:47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차마 읽을 수가 없어서 그냥 책상에 올려놓고 있어요. 북콘서트 잘하신거지요? 물어보신다는 것에 대한 답은 들으셨나요? 방송은 안하시는게 나아요. 그 시간에 우리 술이나 마셔요. ㅎㅎ

마태우스 2015-03-22 17:13   URL
앗...글고보니 물어본다는 걸 깜빡....ㅠㅠ 죄송해요. 면목없게도 ㅠㅠ 글고 제가 방송에 재능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후후후, 시간내서 만나요.

paviana 2015-03-23 00:34   댓글달기 | URL
기사 찾아보니 미지 아버님이랑 창현이 어머님이 가셨더라구요. 제가 미지랑 페북 친구라서 더 아픈 친구에요. 많은 분들이 마지막에 우셨다고 하던데...ㅠㅠ
 
삼성의 몰락 - 이재용(JY) 시대를 생각한다
심정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삼성의 몰락>에 관심이 간 건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도 망한다고 생각해 와서다.

도대체 삼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궁금해 책을 샀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제목에 낚여 소중한 시간을 날렸다.

중간쯤 읽다 때려치웠어야 하지만 굳이 끝까지 읽었던 건,

이 리뷰를 쓰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삼성의 몰락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삼성에 몇 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저자가 자신이 삼성에 대해 아는 것을 얘기한 것뿐이다.

‘삼성의 몰락’이란 제목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삼성의 현주소가 어떻고 경쟁자는 어떻게 치고 올라오며, 앞으로 삼성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가 나와야 하는데,

이 책은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읽다가 멀미가 날 정도였다. 

다 읽고 나서도 “대체 삼성이 어떻게 된다는 거야?”라는 의문이 풀리지가 않는다.

이것보다는 잘나가는 기업 몇 개를 선정해 그들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분석한 <사라진 실패>를 읽는 것이 삼성의 미래를 점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논문심사를 하다보면 “유감스럽지만 이 논문은 우리 학술지에 실리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라는 평가를 매길 때가 있다.

논문을 ‘억셉트’할 때는 그리 긴 설명이 필요없지만,

‘리젝트 (reject)’를 할 때는 왜 적합하지 않은지 이유를 말해줘야 한다.

이 책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 볼까 한다.

리뷰가 무지하게 길어질 거라는 얘기다.


1) 불필요한 대목

-“나는 의지만 있다면 여당의 힘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같은 자리로 옮겨갈 수 있었다...그럼에도 정치권으로 선뜻 옮기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에서는 일정 기간 경제적 궁핍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23쪽)

자신이 잘난 체를 하는 것 같은 이 대목을 굳이 넣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참고로 이 페이지에서만 ‘나는’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온다. 


-“이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내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고 주창하며...이건희 회장의 그룹 임원들에 대한 질타는 욕설과 막말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성격 급한 오정환은 휴식시간에 회의장을 벗어나 사표를 썼다. 잘못한 게 없는데 단체로 이회장에게 야단을 맞는 상황에서 월급쟁이로서의 자존심이 한계에 달했다고 한다. 후배 임원들이 그를 말렸고 그는 사표를 거두었다.” (180쪽)

이런 얘기는 흡사 이 회장의 독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보면 전혀 그게 아니다. 바로 다음에 천재 한명이 수십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 경영론이 나온다. 비판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천재경영론을 해설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휴대폰 책임자인 오정환 얘기는 왜 나왔을까? 자신만 아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서현의 남편인 김재열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건희 회장도 IOC 위원으로 피선되는 데는 두 번의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주니어급인 김사장이 빠른 시간 내 IOC 위원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5쪽)

이것 역시 삼성의 몰락과는 쥐꼬리만한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박동건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은...정통 삼성맨이다. 입사 후 10년만에....”(159-160쪽)

“홍종만 전 삼성자동차 사장....박 부회장과 정 부사장은 상고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61쪽)

난 삼성에 근무하는 개개인을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은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삼성 임원들에 대한 소개가 제법 나온다. 224-231쪽에는 대놓고 임원들을 소개하는데, 이들 때문에 삼성이 어둡다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없는 대목이다. 


2) 중복

-“삼성전자는 2013년 베트남 전체 수출의 18퍼센트를 차지하며 베트남 경제를 견인했다...2014년 삼성이 베트남에 집행했거나 계획 중인 전체 투자 규모는 110억달러에 달한다.” (26-27쪽)

“2009년 생산을 개시한 삼성전자 베트남 휴대전화 사업부는....베트남 전체 수출의 18퍼센트를 차지했다...삼성잔자의 베트남에서의 위상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274쪽)

물론 베트남에 투자하는 것이 삼성의 앞날에 영향이 있다면 사소한 중복도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그저 통계숫자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중국 휴대폰 업체인) 샤오미는..온라인 판매에 주력해 유통비용도 최소화했다...온라인 판로를 이용해 유통비용을 80-90퍼센트 줄였다.“ (54쪽)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의 샤오미는 애플, 삼성과는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온라인 중심의 판매 유통망이 가장 특징적이며...” (242쪽)



3) 자동차에 대한 집착

저자는 자동차만 보고 삼성에 입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차 얘기를 할 때는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다.

“1999년 말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 포기를 결정했을 때 xxx 기획팀장은 ‘그룹이 향후 20년은 후퇴할 것이다’고 지인들에게 단언한 바 있다.” (76쪽)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포기는 정권의 압력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잘못 기획된 사업 경쟁력 저하가 자동차 사업의 포기로 이어졌다.” (19쪽)

“야당의 삼성 때리기도 계속될 전망이다. 1997년 삼성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삼성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삼성의 자동차 사업도 김대중 정권이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다. 사업성이 저하된 상황 속에서 사업 추진파가 이학수 중심의 반대파와의 파워 게임에서 패배한 결과다.” (134쪽)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계속 유지해왔다면 오늘날 전자와 자동차가 결합하는 글로벌 흐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쪽)

얘기의 핵심이 뭘까? 삼성이 자동차를 포기한 게 몰락의 이유일까?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설사 그게 이유라면, 다시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일까. 그런 것 같다. 298쪽을 보자.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추진했으면 나는 삼성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은 전자 사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도 자동차 사업에 재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281쪽)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건 이해하겠지만, 개인적인 소회를 삼성의 몰락으로 포장해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 저자의 다음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다시 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현대자동차 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입에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278쪽)

그때 현대가 삼성자동차에 신경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독주하는 판에 새로운 경쟁자가 생기는 것을 반기는 사업자는 세상에 없다. 저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4) 일관성 없음

“이건희 회장의 최고 치적으로 평가받았던 것은 반도체 사업이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은 이 회장의 단독 과업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도체 사업은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직접 지시로 시작되었다.....1988년 초부터 반도체 경기는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행운이었다.” (44-45쪽)

“이 회장 재임 기간 중 삼성이 발전했다는 것은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경영자로서 이만하면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182쪽)


5) 억측

48쪽부터 세 페이지는 도대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권 부회장은 해외 대형 투자를 못하는 이유는 기술을 빼앗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당시 (2013년) 중국 시안에 70억 달러를 쏟아부어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었다.” (48쪽)

이 대목을 읽으면 겉과 속이 다른 삼성을 비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쪽엔 놀라운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생산라인과 연구개발 투자를 해외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핵심 기술과 인력유출 우려가 뒤따른다. 이러한 투자는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시화되었다.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삼성그룹은 거의 사색이 되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죽이기의 타깃이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글로벌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산과 제한된 연구개발센터를 해외로 이전해야 하는 측면도 있었다.

김대중에 이어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자 삼성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때부터 삼성의 핵심 역량 해외 옮기기는 본격화되었다.“ (49쪽)

그렇다면 삼성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좌파정권 때문인가? 그런데 박근혜 정부인 2013년에는 왜 중국 시안에 공장을 짓는 것일까? 그 다음 페이지를 보자.

“삼성의 의사결정 과정은 공기업적 마인드가 강했다...재무적 이익만 고려하면 해외 투자가 유리하지만” (50쪽)

삼성이 평택에 공장을 짓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삼성의 공기업적 마인드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그 다음 구절이 도무지 이해 불가다. 재무적 이익만 고려하면 해외 투자가 유리하다니, 바로 직전에는 좌파 정권 때문에 해외에 나간다고 했지 않는가? 다음을 보자. 

“삼성전자는 2014년 5월 시안에 70억달러를 투입해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건설해 기술유출 우려를 낳고 있다...이재용 체제가 연착륙하려면 무엇보다 중국 시장이 중요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삼성전자 시안공장을 현지 방문했다. 시장에서 삼성전자 시안 투자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63쪽)

“2014년 박찬훈 시안반도체 법인장은...고객 대응력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는 만큼 현지 생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같은 쪽)

정리하면 이렇다. 좌파정권 때문에 해외로 나갔다. 사실 해외로 나가면 재무적 이익은 훨씬 좋다. 그런데 기술유출 우려가 있다. 그런데 좌파정권이 아닌, 친기업적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해외로 나간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고객 대응력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더라 이 말을 이해하라고?


6) 쥐꼬리만한 이유

-저자는 삼성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중국인들의 스마트폰 선호 성향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67쪽).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중국 시장에서의 침체는 중국삼성 CEO의 교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중국에 주재했던 소식통의 언급이다.” (69쪽)

박근희 부회장이 장 모 사장으로 교체된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 그게 이유인가? 그게 이유라면, 이런 식으로 잘못된 인사가 남발되는 사례가 몇 개 더 나와야 맞다. 하지만 그 다음 나오는 말은 놀랍다.

“삼성은 애플에게는 기술적인 안전성과 완전성에서 뒤쳐져 있고, 중국 업체들과는...가격경쟁력의 합리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70쪽)

그렇다면 다시 박 부회장이 들어서도 안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75쪽을 보자. 

“한편 삼성은 특유의 발 빠른 인사 및 조직 개편으로 단기 시장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이걸 보면 삼성은 인사를 아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뭐가 진실일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삼성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120쪽)

이 책에서 저자는 김대중 정권이 삼성에 적대적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도 여러 번 강조해서 멀미가 나는데,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엔 그다지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단다. 왜? 

“정권 역시 삼성을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120쪽)

“정권이 국가경제를 책임지면 정책 방향에 배치되는 기업이라도 끌어안게 되어 있다.” (134쪽)

매우 당연한 얘기 같은데, 저자는 또 다른 이유를 댄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은 호남의 대표적 기업인 대상그룹의 자제인 임세령과 전격 결혼을 발표한다. 삼성의 심리적 긴장도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나는 이재용의 호남 기업 오너 자제와의 결혼이 삼성이 DJ 정권을 잘 견디게 해준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21쪽)

이게 사실이라 해도, 이게 <삼성의 몰락>에 들어갈 내용인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좌파정권이 들어서지 않아야 삼성이 잘 나갈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이재용 부회장을 지칭하는 JY 이니셜은 삼성 직원들 사이에서 쓰였다. 그런데...사회 전반에까지 일반화된 것을 보면 삼성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183쪽)

JYP면 몰라도 JY는 처음 들어봤다. 굳이 이런 말도 안되는 억측을 쓰지 않아도 삼성은 일반 대중에게 아주 깊이 각인돼 있다. 


7) 이남석 교수

이 책에는 중대 교수인 이남석이 자주 인용된다. 삼성 비서실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으니 그의 말을 소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글쎄 네 번이나 나온다. 

“이남석 중앙대학 교수는......비판했다.” (77쪽)

“이남석 교수가 이와 관련해 적절한 사례를 제시했다...1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박사논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99쪽)

“2006년 이남석 중앙대학 교수에 따르면....” (188쪽)

“이남석 중앙대학 교수는 삼성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77쪽)

이렇게 자주 인용되는 걸 보면 석학인 모양인데, 솔직히 난 그분의 말씀이 아주 정확하게 핵심을 찌른다,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세 번째로 인용됐을 때는 좀 짜증이 났다. 


8) 글을 맺으며

299쪽엔 이런 좋은 말이 쓰여 있다. “이 책이 잘 팔리면 수익의 상당부분은...전직 수도자와 가난한 수도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그랬으면 좋겠다.”

책의 수익금이 그렇게 쓰인다 해도, 이 책을 사서 수도원에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보단 그냥 수도원에 기부를 하자. 아무쪼록 그랬으면 좋겠다. 





 
 
마태우스 2015-03-14 15:37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나싶어 리뷰를 봤더니 리뷰가 무려 23개나 달려 있고 평점도 8.3이다. 내가 이상한 걸까?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23:17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권이 비판을 많이 받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삼성과의 밀월이었는데 ( 노무현이 이학수를 말할 때 형님 형님 했다는... ) 노무현 정권 탄생해서 기겁을 했다는 저자의 말은 의아한데요....
그리고 사실 삼성은 대한민국 불굴의 1위`를 확정지은 때가 바로 노무현 정권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즉 적대적이라기보다는 밀월 관계였다고 보는게 주로 좀 쎈 좌파들의 비판이었는데...
멀리 볼 것도 없이 fta통섭 본부장이 김현섭 삼성전자 해외 법무 사장 아.. 이름이 가물가물.... 이었고 주미대사가 중앙일보 홍사장 아니었습니까....

마태우스 2015-03-15 18:14   URL
우왓 역시 곰발님은 아는 거 많으시네요. 노무현 시절 삼성이 원탑이 됐군요. 전 이상하게 한참 전에 그리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soyo12 2015-03-15 01:33   댓글달기 | URL
전직 삼성맨스럽게 제목을 잘 달았나보내요. ^.^

마태우스 2015-03-15 18:14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원래 제대로 된 제목은 ˝자동차 다시 해요, 잉˝이 좋을 듯한데, 너무 거창하게 달아서 저를 낚았어요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촌철살인한 영화.시사 코드와 전문 OST 분석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 / 성안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화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주제로 한 책이 제법 많이 나오는데,

최근에 읽은 책이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이다.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긴데다,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게다가 딴지영진공이라니, B급을 표방하는 딴지일보의 한 파트라는 걸 밝히면

책 판매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제목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제목 때문에 묻히기엔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다.

영화의 고수들이 모여 팟캐스트로 방송한 것들을 책으로 낸 건데,

글 한편 한편이 전문가의 식견이 물씬 담겨있는 수작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주는 것인데,

이 책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가지고 반대편을 종북으로 모는 우리 사회를 탄식하고,

<괴물>을 얘기하면서 세월호를 오버랩시킨다.

물론 ‘딴지’의 정신은 죽지 않아, 글 곳곳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유머가 가득한데,

그 유머가 나같은 사람에겐 딱이다. 예를 들어 우베 볼이란 감독이 만든 <블러드레인>에 대한 평.

[<블러드레인>은 (터미네이터 3에 나왔던) 크리스타나 로겐의 떡신을 볼 수 있다는 것말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영화로, 그마저도 존나 짧다. 전편에 흐르는 똥칠의 정도로 봤을 때 떡신이 적어도 30분은 되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인데 10초도 안돼서...그래서 이 영화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140쪽)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이 시대의 거장: 심형래 편>이었다.

그 유명한 <디워> 논란이 있었을 때, 부끄럽게도 난 평론가보단 심형래 편에 섰었다.

심지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이 정도면 재미있지 않냐?”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글에 의하면 심형래는 영화를 만들고 띄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스킬을 이용한다.

‘추억팔이--> 선구자의 고행-->즙짜기-->위대한 도전자’의 4단계인데,

이 중 내가 넘어간 부분은 2단계와 4단계였다.

즉 심형래가 고초를 겪는 게 그가 정통 영화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에 격하게 동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에 진출해 블록버스터들과 맞짱을 뜨려는 그의 포부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사 직원들의 임금조차 주지 않으면서 자신은 “정선 강원랜드의 A급 고객”인데,

책에 의하면 “거기선 몇십 억 정도 쓴 걸로 A급 고객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적어도 몇백 억 정도는 돼야 한다” (156쪽)인데,

“투자금 명목으로 모아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써버린 돈 120억원의 행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그는 재기를 꿈꾸고 있단다.

“<디워>를 3D로 컨버팅해서 100개 나라에 팔겠다” “<디워>에 들어있는 아리랑을 알려서 중국의 동북아공정을 막아보겠다”고 떠들고 다닌다는데,

사람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마련이며, 

<용가리>와 <디워>로 두 번이나 속은 우리 국민들이 또 넘어갈 것 같진 않지만,

2007년 12월의 잘못된 선택에도 불구하고 5년 후 같은 선택을 한 걸 보면 심형래의 재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한번쯤 극장에서 봤거나 아니면 들어는 본 영화를 가지고 하는 얘기라 가슴에 더 와닿는 책,

<딴지영진공>과 함께 황사를 이겨내면 어떨까.



 
 
soyo12 2015-03-15 01:35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캐스트 참 재미있게 듣고 있는대 다음 주에 나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마태우스 2015-03-15 18:12   URL
앗 그게 공지됐군요!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하겟습니다

블랙겟타 2015-03-16 09:18   댓글달기 | URL
팟캐스트는 쭉 들어왔지만 책으로 살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태우스님때문에 지름니다. ㅎㅎㅎ

마태우스 2015-03-22 01:08   URL
팟캐스트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책도 재미있을 겁니다!!
 
주기자의 사법활극 - 소송전문기자 주진우가 알려주는 소송에서 살아남는 법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늘 하는 말이지만 난 참 못생겼다.

이 외모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치를 엄청 보고,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해 할 말도 못하는 소심한 어른이 됐다.



주진우 기자를 구글에서 처음 검색했을 때,

난 나와 똑 닮은 외모에 무지하게 놀랐다.

심지어 내가 즐겨쓰던 “부끄럽구요”라는 말이 18번이기까지 하니,

그 역시 나와 성격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모의 지배를 받아버린 나와 달리

주기자는 조폭들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당장 나오라고 하면 지금 바쁘니까 내일 낮에 보자고 한단다-

그 많은 소송에도 꿋꿋이 버티며 하루하루를 산다.

자기가 가는 길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그의 대단한 점은 또 있다.

자기를 그렇게 힘들게 한 수많은 소송들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소송에 잘 대비하라는 의미로

<주기자의 사법활극>을 썼으니 말이다. 

외모 때문에 세상을 저주한 채 움츠려 들었던 자신이 좀 부끄러워진다.


주기자의 전작이 자신의 무용담 차원이라면,

<사법활극>은 소송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뤄주는 공익적인 책이다.

검찰이나 경찰서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절이 하수상한데다 변호사까지 많아진 탓에

누가나 한두번은 법과 관련된 귀찮음을 겪을 확률이 높아졌다.

거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 어쩌면 우리 둘의 차이는 이름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난 서민이라 서민처럼 납짝 엎드려 사는 것이고,

주진우는 '주'씨기 때문에 '주기자'가 되어 정권에서 죽이려 드는 건지도.

참고로 이름의 중요성을 두 개만 써본다 (전에 쓴 것같은 불안한 예감)


-이탈리아 디자이너 베르사체: 자기 집 계단에서 사체로 발견됨

-박종팔: 세계 타이틀매치에서 8회에 종쳤다






 
 
꼬마요정 2015-03-03 09:25   댓글달기 | URL
음...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베르사체가 사체로 발견됐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ㅎㅎ
주기자는 배짱이 정말 대단한 듯. 앞으로 주진우 기자라고 꼭 불러줘야할 거 같아요^^

마태우스 2015-03-03 11:09   URL
왓 요정님이닷 베르사체가 총맞고 쓰러진 채로 발견됐어요. 나오미 캠벨이 막 울고 그랬는데....암튼 주기자는 정말 대단한 분이죠!

세실 2015-03-03 09:48   댓글달기 | URL
주기자님 심한 짝눈이닷~~~~ ㅎㅎ
마태우스님 많이 잘 생겨지셨는걸요(?)^^
이젠 외모에 자신감 가져도 충분하세요!

마태우스 2015-03-03 11:09   URL
하하 그래봤자 하위 10%에서 15%로 올라간 거임다. 님처럼 상위 5%의 삶은 어떨지 심히 궁금해요!
 













이십대의 어느날, 조카를 데리고 원숭이 쇼를 보러 갔다.

원숭이의 재롱에 조카는 신나했지만,

난 그 쇼를 즐기지 못했다.

저 동작들을 익히기 위해 고생했을 원숭이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렇듯 어린애는 보지 못하는 사물의 이면을 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설 특집으로 TV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해주기에 열심히 봤다 (절대 불법다운 받은 건 아닙니다!)

젊은 시절 비디오로 볼 땐 그 영화가 ‘노래로 뭉친 가족애’를 주장하는 영화로 보였다.

하지만 중년이 된 나이에 그 영화를 보니까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먼저 마리아. 수녀원에서 나와 트랩 대령의 집에 간 그녀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 등 거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까운 그 집에 반한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좋겠다”고 생각한 마리아에게 나타난 트랩 대령은

미남이기까지 하다.

나이는 거의 마흔에 달했으니 (애가 일곱이니 그 정도는 됐을 듯하다)

잘해야 이십대 초중반인 마리아와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그리고 애가 일곱이나 되지만,

마리아는 트랩 대령을 잡기로 한다.

트랩 대령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보트에서 호수로 빠지고,

물에 젖은 채로 트랩 대령 앞에 나타난 것은 마리아가 선수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트랩 대령. 아이 일곱을 데리고 혼자 살아온 트랩은

미모의, 그리고 돈까지 많은 남작부인과 연애를 한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풋풋한 매력의 마리아에게 트랩은 다른 마음을 먹는다.

특히 트랩은 옆에 남작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졌다 나온 마리아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선생은 나 좀 봅시다.”

트랩의 마음은 이 말에 나타나 있다.

물론 트랩의 구실은 아이들을 나무에 매달리게 했고, 또 커튼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 걸 꾸짖는 것이었지만,

난 봤다. 트랩의 눈이 마리아의 가슴을 향해 있음을 (아내의 말에 의하면 마리아가 가슴이 꽤 큰 편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트랩은 고민한다.

마리아를 어떻게 해볼 기회를 잡으려고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돈이 이미 많은 남자에겐 돈많은 미망인보다

풋풋한 매력으로 무장한 이십대 여자가 훨씬 더 좋다는 것이다.

비슷한 컨셉의 드라마 <푸른안개>에서 김미숙은 이십대의 이요원에게 말한다.

“네가 언제까지 젊을 것 같아?”

영화에서도 위기감에 빠진 남작부인은 마리아를 불러 이야기한다.

마리아 때문에 자신과 트랩대령의 사이가 위기에 처했다는 남작부인의 말에

마리아는 죄책감을 느끼고 수녀원으로 떠난다.

영화에선 남작부인이 무슨 마녀 비슷하게 그려지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이 여자는 트랩대령의 돈이 아닌, 그 자체의 트랩을 사랑한 몇 안되는 여자였다.

그럼에도 노래를 못한다고, 또 이미 다른 여자에게 사로잡힌 아이들과 불화한다고

“안되겠소.”라는 잔인한 말로 파혼을 선언한 트랩이 나쁜 놈인 거다.

 


수녀원으로 돌아간 마리아는 그대로 죽을 수 없다며 계획을 세우는데,

그녀가 구워삶아 놓은 바로 일곱 아이들이 그녀의 구세주였다.

남편이 재산만 남기고 죽은 탓에 우아하게만 살았던 남작부인은

도통 아이들과 놀아줄 줄을 모르고,

아이들은 공놀이 도중 그녀를 일부러 맞히는 등 노골적인 이지메를 가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교훈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남자도 잡을 수 있다는 것으로,

최근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손여은이 남편의 전처 딸과 불화를 한 끝에 아이를 때리고,

이로 인해 남편과 시댁 전체의 불신을 산 예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마리아를 따끔하게 꾸짖어야 할 원장수녀도 마리아의 편에 선다.

하느님은 한쪽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등, 그 사랑이 그 사랑하고 별 차이가 없다는 등

감언이설로 마리아에게 트랩 대령의 품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무슨 저런 원장수녀가 다 있담, 하고 의문을 품겠지만,

아무래도 원장수녀는 트랩 대령의 부인이 된 마리아로부터 많은 기부를 받는 미래를 상상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대목은 같이 보던 아내가 얘기했다).

 


이 영화의 진짜 위기는 트랩이 독일군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했을 때가 아니라,

트랩과 마리아가 아이 일곱과 더불어 알프스산을 넘어 도망가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생각해 보라.

돈 때문에 트랩과 결혼한 마리아인데, 이제 재산도 못챙기고 스위스로 간 트랩이

대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대충 예상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는 아이들과 합창단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돈을 벌고,

별로 할 일이 없는 트랩은 그 돈으로 술을 마시며 맨날 성질만 부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사가 나타나더니 그들 앞에 있는 상자에 백 달러짜리 지폐를 (보이게끔) 넣는다.

그 액수에 놀란 마리아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가씨는 노래 부를 때가 정말 아름답군요.”

그 남자는 매일 같은 시각에 나타나 백 달러짜리 지폐를 넣는다.

결국 남자는 마리아에게 차나 한잔 마시자고 하고....

뭐 이렇게 진행되는 게 실제의 삶이 아닐까 싶다.

젊을 때 봤으면 아름다운 영화라며 넋을 잃고 봤을 것을,

오래 살면서 이것저것 다 겪으니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좀 슬프다.

더 신기한 것은 지금부터 11년 전, 이 블로그에다 트랩 대령에 대해 악담을 퍼부었다는 것.

http://blog.aladin.co.kr/747250153/597287

그 글을 읽으면서 느낀 건, 그래도 그때는 조금 순수함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마리아가 돈을 보고 결혼했다는 비난은 안했으니까.

 

* 둘이서 잘 되고 난 뒤 트랩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 게 솔방울 위에 앉을 때부터였다고 하고, 마리아는 “당신이 그 우스꽝스러운 호루라기를 불 때부터예요”라고 하는데, 마리아는 그럴 수 있겠지만 트랩의 말은 거짓말이다. 그 이전까지 마리아를 볼 때와 호수에 빠지고 난 뒤의 마리아를 볼 때의 눈이 완전히 다르며, 그때가 진짜로 마리아에게 빠진 순간이다.

 

** 이 영화의 히로인이었던 줄리 앤드루스는 그 이후 별다른 작품이 없다.

아내가 <메리 포핀스> 있잖아,라고 하기에 찾아보니까 그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보다 1년 전에 만들어졌다.

줄리 앤드루스가 노출을 한 <텐>을 비롯해서 그 후에 찍은 영화들은 정말 별볼일이 없는데,

아주 나이든 다음에 오히려 더 잘나가는 것 같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비롯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비로소 나타난다.

 


*** 반면 트랩 대령은 그 잘생긴 외모답게 그 후에도 계속 영화를 찍었고,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8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최근까지도 계속 영화를 찍은 그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못받은 오스카상을

2012년에 받았다고 한다.

1929년생이니 무려.... 83세, 최고령 아카데미 수상 기록을 세웠다고. 



 
 
soyo12 2015-02-22 02:11   댓글달기 | URL
줄리 앤드류스는 꾸준한 뮤지컬 배우였지요. 성대 수술한 후에 카메론 매킨토시의 생일 축하 공연-이것이 생일 파티의 끝이다을 보여주지요-에서 노래도 안하고 마이 페어 레이디 대사 하나 읊어주는대 눈물이 나게하는 그녀를 보고. 아. 진정한 꿀성대의 끝판왕이구나 했습니다. ^.^. 한때 사운드 오브뮤직은 어린이날. 설날 크리스마스 점령 영화였는대.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군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마태우스 2015-02-22 19:37   URL
소요님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서툴렀던 것이, 영화 찍던 사람이 갑자기 안보이면 인생이 실패했다고 단정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크 스카이워커로 나왔던 이도 위키백과를 보니까 영화 안찍는 동안 많은 일을 했더라고요. 그럼에도 그가 영화를 못찍어서 실패다,라고 단정을 짓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줄리 앤드류스가 뮤지컬로 활동했군요. 흠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moonnight 2015-02-22 12:36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들어서 영화를 다시 보니 남작부인이 너무 슬펐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트랩대령은 어리고 상큼한 여인에게 혹했던 거겠지요. ㅠㅠ 첨에 오드리햅번에게 의뢰된 역할이었는데 노래땜에 부담을 느껴서 고사하는 바람에 줄리 앤드루스가 맡게 되었다는 얘기 들었어요. 오드리 햅번이 마리아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해요. 첨 보자마자 트랩대령이 홀딱 반하게 되지 않을까요. ㅎㅎ

마태우스 2015-02-22 19:38   URL
달밤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드리헵번이 나왔다면...ㅎㅎ 남작부인을 호수에 던져버렸겠죠. 원래 이영화의 컨셉이 노래에 이끌려 좋은 여인을 찬다, 이런 거일텐데 오드리 헵번이면...호호호. 좋은 정보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