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투는 살아 있다?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좋은 점 한 가지는 '책 제목'을 슬쩍 비틀기만 해도 생각보다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는 점이다. 아무리 국어 시간을 재미 없게 보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까 하는 말이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우리를 단번에 까닭모를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 강렬한 문장들을 누가 모르겠는가. 어느날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 한 조각'과 함께 그 산문 속을 나뒹굴던 슬픈 구절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지 못한 사람 또한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을 바라보면서 문득 까닭모를 슬픔을 느낄 때, 우리가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를 떠올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안톤 슈낙의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는 문장까지 다 떠올릴 필요도 없다. 그럴 땐 그냥 아무렇게나 슬픔 속에 그저 잠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어느날 문득 방 한 켠에 잔뜩 쌓아둔 '책의 무덤' 속에서 발견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하릴없이 저런 이상한 제목을 내세워 그 이야기를 여기에 꺼내보는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알라딘 적립금'을 바라볼 때마다 슬픔에 잠길 때가 있었다. 사고 싶은 책들은 많은데 적립금은 늘 부족하기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은 적립금이 너무 풍족하게 쌓여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며칠 전부터 알라딘으로부터 이상한 문자가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라딘 마일리지 ***점이 곧 사라질 예정입니다.'

 

처음엔 무시했다. 그까짓 거 얼마나 된다고... 그런데 며칠 지나니 또다른 '소멸 예정 안내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래도 무시했다. 소멸 예정일이 아직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며칠 지나니 또다른 액수의 '소멸 예정 메시지'가 들어왔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칫 어영부영하다가는 '진짜로' 마일리지를 허공에 날리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마일리지'를 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일리지 등이 쌓인 적립금'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최근 몇 달 동안 책을 거의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제의 신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구매의욕을 느끼지 못하겠고, 오래된 책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으니, 새로운 책을 구태여 살피고 고를 생각도 별로 없었다.


이미 방 한켠에 쌓인 책탑도 늘 부담스러웠다. 나는 저 책들을 볼 때마다 '안정된 주거지'를 마련해 주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저 책들을 볼 때마다 조금 안쓰럽다. 어딘지 모르게 한 켠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도 들고, 가끔씩은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마저도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책들이 바로 '나를 슬프게 하는 책들'이라고 단정지을 정도는 물론 아니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언제부터 저 책들이 저기에 내려앉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책들은 아직도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늘 저기에 머무르고 있다. 주인이 자리를 잡아주기 전까지는 언제까지나 저기서 '하얀 탑'을 쌓아올리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설명글을 달고 나니 문득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슬쩍 비튼 느낌도 든다. 어느새 '슬픔'이 밀려온다.)

 

'전망 좋은'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꼿꼿이 서 있거나 혹은 (서 있는 책들 위에) 떠받들려 편히 누워 있는 다른 책들에 비해 저 책들의 신세는 얼마나 가련한가.


 

 

어쨌든 저렇게 책탑을 쌓고 누워 있는 책들 가운데서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한데, 또 책을 사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마일리지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서 억지로 책을 사야 하는 '이상한 처지'에 갑자기 내몰린 것이다.

 

나는 여태 한 번도 책을 억지로 강요당하면서 사 본 기억이 없다. 책을 고르고 사는 일은 늘 즐거웠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을 골라 사는 일이 고역으로 뒤바뀌었다. 어쨌든 나는 책을 골라야 했다! 푼푼이 모은 돈을 한 푼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너무 늦지 않게 필사적으로 책을 골라야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르고 고른 책들은 '언젠가는 내가 꼭 읽을 책들'이라고 기필코 확신하는 책들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다섯 권을 골랐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으로도 봤던 작품인데, 여태 읽어보지 못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을 읽을 때 사무엘 베케트가 마침 더블린 태생이자 제임스 조이스의 조수로도 일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랬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니체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인물이다. 그 두 사람은 한때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수로 함께 활동했었다. 니체는 그의 강의에 매료되어 교수 신분이지만 학생들과 함께 그의 강의를 찾아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부르크하르트의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정략론』을 살펴보다가 뜻밖에 다시 마주친 책이다. 부르크하르트는 마키아벨리에 대해 심도깊게 분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위인이란 무엇인가』는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번에『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으면서 에머슨이 바로 그 책에 완전히 매료됐던 사람이란 걸 발견하고 결국 구입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젠가는' 읽을 책이라서 아직은 틈나는 대로 계속 모으고 있는 중이다. '먼 훗날 읽을 책들'을 느릿느릿 장만해 가는 즐거움도 맛볼 겸.)


이렇게 심사숙고한 끝에 다섯 권을 골랐고 오래도록 쌓아놓기만 했던 적립금 잔액(83,930원)도 한 순간에 5,420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겨우 책 한 권 살 형편도 못 되는 적립금 잔액은 나를 다시 슬프게 한다! 'TTB 광고 간판'까지 만들어 몇 달 내내 내걸어 봐도 고작 10원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니까 말이다.


내가 책을 주문할 때 'Thanks to' 버튼을 일일이 눌렀다는 점도 마저 밝히는 게 좋겠다. 비록 책을 구매하는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별다른 혜택이 없지만, 글 작성자에겐 '뜻밖의 소득'인 '땡스투 적립금'이 분명 쌓일 테고, 그 분들이 쓴 글 덕분에 내가 책을 구입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책을 구매할 때 '땡스투 버튼'을 눌러주는 정도의 서비스는 마땅히 해드려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땡스투 적립금'이 나도 모르게 불어나 있을 때 맛보는 기쁨을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1년 내내 쌓이는 적립금이라고 해봐야 『고도를 기다리며』한 권 사 볼 액수에 겨우 미칠까 말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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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쓴 글에 대해서까지 '땡스투' 버튼을 눌러준 분들께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고마움'을 느낀다. 알라딘에 글을 써 올린 보람을 새삼 음미하는 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내 방 한 켠에 쌓인 책들이 '다섯 권' 늘었다. 저 책들이 서로 누르고 눌리며 낑낑거리는 듯한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가끔씩 저 책들이 내게 전해주는 알 수 없는 '무게'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내 방안에 머물고 있는 책들 가운데 저 책들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하는 책들은 별로 없다.

(가장 무거운 책들을 맨 아래에 쌓아 두는 게 맞겠다 싶지만 그게 뜻대로 지켜질 리는 없다. 아직은 책탑이 안정적인 자세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짓눌리는 책들한테 미안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쌓아올리기엔 무리다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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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2-16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굉장합니다.
저두 한달에 한번은 구입해요. 언젠가 읽겠죠?

oren 2017-02-16 16:00   좋아요 2 | URL
언젠가는 읽히겠죠?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요.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왕창 내다버릴 궁리도 하고 있답니다^^

qualia 2017-02-17 14:05   좋아요 0 | URL
oren 님, 책 내다버리지 마세요. 헌책방에 갖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헌책방에 갖다주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면 도서관에 기증하면 웬만한 책들은 거의 다 폐기처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한 대학도서관에 가서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고물폐지로 처분해 커다란 트럭으로 실어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이 좁아 소장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울나라 도서관 대부분이 자료 보관/기록 보존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책들을 땅 속에 묻어 폐기처분한 도서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러나 헌책방에 갖다주시면 언젠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사다가 읽게 될 것이란 얘기죠. 헌책방에선 폐기처분되는 불상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헌)책들이 폐기처분되는 비극을 면하고 새 주인을 만나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oren 2017-02-17 15:43   좋아요 0 | URL
‘책의 보고‘여야 할 도서관에서 책을 그토록 야만스런 방식으로 매장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끔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내다버릴 책들은 ‘사 두고도 오래도록 읽지 않은 책들‘인데, 한때 화제를 모으면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진 책들이 많습니다. 헌책방에 갖다주면 흔쾌히 받아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qualia 님 말씀대로 해봐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cyrus 2017-02-16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땡스투 적립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땡스투 적립금이 많이 받는 책은 독자들이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신간도서의 리뷰나 신간도서가 포함된 페이퍼가 땡스투 적립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간도서에 대한 소개가 한 줄 없는 페이퍼나 알라딘 책 소개를 똑같이 복사해서 붙여쓰는 페이퍼가 땡스투 적립금을 받는 상황이 솔직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올해도 미운 털 많이 박힐 겁니다. ㅎㅎㅎ

oren 2017-02-16 18:16   좋아요 1 | URL
구매자에게도 똑같이 지급했던 땡스투 적립금이 어느날 갑자기 글 작성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쪽으로 바뀐 건 지금도 여전히 아쉽더군요. 그렇게 제도가 절름발이 식으로 바뀌고 나서 ‘땡스투 적립금‘을 주목적으로 하는 불순한(?) 글쓰기가 많이 줄어든 점은 환영할 만했지만요^^

카스피 2017-02-1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책탑 대단하시네요.개인적으로 사진속으 마하바라타가 제일 탐나네요^^

oren 2017-02-16 18:18   좋아요 1 | URL
『마하바라타』는 큰 맘 먹어야 읽을 수 있는 작품일 듯해서 아직은 저도 구경만 하고 있답니다^^

[그장소] 2017-02-1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남의책장은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내려앉은 책들도 와~ 부럽고 좋네요. ( 응?) 내 책장도 아니건만..

oren 2017-02-16 18:20   좋아요 1 | URL
남의 책장 속에 담긴 책들은 슥~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더군요.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말이지요^^

양철나무꾼 2017-02-16 1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책들도 그렇지만 책탑을 저렇게 이쁘게 쌓을 수 있다니...
님을 존경하게 되는거 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거 반...그렇습니다.
전에 서재 공개하는 페이퍼 때도 눈이 호강했는데, 요번에도 호사를 누리네요. 고맙습니다, 꾸벅~(__)

oren 2017-02-17 12:24   좋아요 1 | URL
책탑이 평상시에도 저런 모습일 리는 없겠지요.
사진에 담기 위해 이번에 자세를 조금 가다듬었다고 보셔도 됩니다^^

책읽는나무 2017-02-16 2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늘 현학적인 리뷰를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내공들이 서재와 책탑을 구경하다보니 역시!! 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도 양철나무꾼님처럼 깔끔하고 예쁘게 쌓아놓은 책탑에 감탄했습니다.
부러운 책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구경하기 힘든 남의 귀한 책들 구경 잘하고 갑니다^^

oren 2017-02-17 13:28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 님 반갑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베어드는 ‘현학적인 냄새‘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는데, 그게 여간해선 고치기 힘든 악습으로 어느새 굳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한 권의 책과 새로운 기원



내가 한창 '청춘'을 보낼 때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나는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뭔가 모를 불안을 느끼곤 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갑작스레 병역을 마치기 위해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나만 혼자 전방부대에서 낙오자처럼 뒤로 처져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걱정을 했더랬다. 그래서 그때 갑자기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반쯤은 '공부삼아서' 그랬다고 쳐도 좋았다.


PX에서 구입한 대학노트를 낙서장 겸 '독서노트'로 삼았다. 언제 어디서 주워들은 문구인지는 몰라도 '칸트의 묘비명'까지 떡하니 내걸어 놓았다. 1984년 가을이었으니 상병 계급장은 달았을 듯하고, 전역을 1년 가량 앞둔 때였다.



(독서노트 앞표지를 넘기면 컬러 내지가 한 장 더 있었다. 거기에 내 소속/이름과 함께 저런 걸 적어 놓았었다.)


그 당시에 내가 주로 읽었던 책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이었다. 그 책은 내가 입대하기 전에도 가끔씩 들춰본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나와 함께 자취를 하던 형이 큰 맘 먹고 '전집'을 한꺼번에 마련해 놓은 덕분이었다. 나는 읽고 싶은 책들을 두어 권씩 골라서 형한테 편지를 보냈고, 형은 그때마다 그 책들을 어김없이 소포로 내게 보내줬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책들을 단 한 권도 간수하지 못했지만, 그 책들의 목록은 아직도 '독서노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서노트'에 기록해 놓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목록. 그 당시 책들은 대개 세로로 쓰여진 데다가 국한문 혼용이 기본이었다.)


이 때 읽었던 책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책들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Ⅰ,Ⅱ』, 플라톤의 『국가』,『소크라테스의 변명』, 홉즈의 『리바이어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분』, 막스 베버의『사회경제사』, 슘페터의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등이다. 그런데, 독서노트를 살펴 보면 내가 꼭 《세계사상전집》만 읽은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사상전집'보다는 '문학'이 훨씬 더 읽기 쉽고 재미있었으니 당연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독서 취향'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제는 어느덧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괜한 불안감도 다 사라지고 없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세계사상전집》류의 책들에 대해 좀처럼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2010.12.31 '독서노트'에 적어 놓은 메모이다.





오래 전에 내가 독파하리라 마음먹었던《세계사상전집(전32권)》은 어느새 홀연히 내 곁을 모두 떠나고 말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되찾지 못해 그렇게 안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다행히 그와 비슷한 역할을 떠맡아 주는 책들을 적잖이 갖고 있다. 그건 바로《동서문화사 월드북》이다.


여러 해 전에 나는 이 책들을 한꺼번에 몽땅 구입해서 동네 도서관에 기증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전집의 권수가 179권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살펴보니 그 목록이 무려 259권으로 불어나 있다. 대략 5년 만에 80권이나 불어난 셈이다.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을 책들의 목록'이 풍성해지는 걸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는 별로 없을 듯하다. 죽기 전에 다 읽으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 문득 심심풀이삼아 그 목록에서 내가 읽은 책들을 다시 꼽아 보니 대략 60권쯤 되는 듯하다. 까마득한 옛날 군복무 시절에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을 바라볼 때만 하더라도 저 많은 책들을 도대체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격세지감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저 목록에서 내가 숱하게 눈독을 들이고도 여태까지 읽지 못한 책들도 무려 200권 가량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과연 어느 세월에 나는 저 책들을 '제법' 읽을 만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 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그래도 나는 희망마저 버리지는 않겠다. 그리고 나는 이미 스스로 위안을 얻는 방법까지도 일고 있다. 내가 이번에 기댈 사람은 예전에도 여러 차례 불러냈던 클리프턴 패디먼이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2017년 2월 현재까지 내가 읽은 고전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겹치는 책들>
(다른 출판사의 판본을 통해 읽은 책들도 많지만 일부러 '월드북 시리즈'의 이미지와 상품으로 표시해 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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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깊은 독서 성찰은 시간의 깊이와 여러 분야의 폭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네요^^: 귀한 자료 통해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11 11:34   좋아요 1 | URL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니 문득 ‘가고 없는 날들‘과 ‘떠나고 없는 책들‘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그래서 옛날 추억을 더듬거리다가 이런 글까지 남겨보게 되는군요. ㅎㅎ

cyrus 2017-02-11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정도면 oren님 같은 애서가들이 한 번쯤 도전해볼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일부 어떤 책은 번역에 문제가 있고, 오자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특히 제가 읽은 동서문화서의 막심 고리키 선집은 최악이었습니다.

oren 2017-02-11 11:58   좋아요 3 | URL
저도 무작정 동서문화사 월드북을 추천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랍니다. 다른 훌륭한 번역본을 도저히 찾기 어려울 때 <동서문화사 월드북>이 훌륭한 선택지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답니다.(제가 지금 다시 살펴봐도 이 목록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으로 읽은 책들은 몇 권 되지 않네요. 몽테뉴의 <수상록>, 쇼펜하우어의 책,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 다윈의 <종의기원>, 아우렐리우스와 키케로의 책,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번역‘때문에 책을 읽는 데 곤란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데, cyrus 님께서는 밝은 눈으로 번역의 여러 문제점들을 찾아 주셔서 다른 독자분들이 책을 고르는 데 많은 도움을 드리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플라톤에게서조차도 흠을 찾아내는 사람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얘기는 이럴 때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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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티마이오스가 그런 말을 《역사》에 쓴 까닭은 필리스투스 글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 고치게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조차 흠을 찾아내는 그 사람의 글쟁이 기질 때문이리라.

나는 이처럼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다른 사람 책과 경쟁을 일삼는 일은 어떤 경우에든 학식이나 자랑하려는 천박한 짓이라 여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로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일 때에는 더 의미 없는 일이 되리라.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니키아스 편> 중에서

qualia 2017-02-11 21:49   좋아요 2 | URL
oren 님의 플루타르코스 경구 인용은 저한테도 뜨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철학자와 편집자들의 주된 관심사와 업무 중 하나가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흠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석과 비판, 교정과 완벽 추구의 정신입니다. 따라서 플루타르코스의 경구는 맥락과 문맥을 살펴 다중적 의미로 이해하고,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심지어 플루타르코스의 저러한 견해는 비판받을 여지도 있습니다.

철학자나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독자들 가운데는 아주 섬세하고 민감한 독서감각을 지닌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책을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읽게 됩니다. 단지 따지기 위해, 흠을 찾아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섬세하고 민감한 독서감각이 책이나 글을 그냥 읽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죠. 해서 그런 심성이 분석과 비판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겠죠.

oren 2017-02-12 00:49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제가 부분적으로만 인용했던 플루타르코스의 문장은 전후 맥락을 모두 생략한 채 인용하기에는 조금 무리다 싶어서, 저도 인용하기 전에 여러 번 망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역시나 제가 염려했던 대로 qualia 님께서는 바로 그런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구요. 어쨌든 플루타르코스가 저 문장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제가 여기서 다시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기는 힘들겠습니다만, 플루타르코스가 ‘티마이오스의 역사 서술 방식‘에 대해서 작심하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조차 흠을 찾아내는 그 사람의 글쟁이 기질‘이 아니었나 싶구요. 그런데, 전혀 다른 측면에서 제 인용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면, 플루타르코스의 티마이오스에 대한 비판은 사실 ‘번역 비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제가 인용했던 부분의 앞뒤 여러 문장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 보니, 맥락으로 보아 앞서 인용했던 저 문장들과 두루 함께 살펴봐야 할 부분들이 참 많네요.. 그 가운데 앞부분만이라도 조금 더 덧붙여 ‘넓은 이해‘를 구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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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투키디데스는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매우 처절하고도 생생한, 아름답고 세련된 묘사를 알맞게 사용해 읽는 이 마음을 움직였지만, 나는 그런 글재주와 다툴 생각은 없다. 또 나는 티마이오스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역사》를 기술해 투키디데스보다 뛰어난 문장력을 선보였고, 필리스투스를 군말이나 늘어놓는 초보자로 만들었다. 그는 두 역사가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썼던 육지와 바다에서의 싸움에 대한 기록과 그들의 공개 연설들 안에 자기 묘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시인 핀다로스 시구에 나오는 사람처럼 되었을 뿐이다.

맨발로 뛰며 리디아 전차와 경쟁하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치졸하고 어설픈 작가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치 시인 디필루스 시구와 같다.

시킬리아산 비곗덩어리로 가득찬 둔한 머리

캐모마일 2017-02-11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저도 독서 노트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위 사진처럼 멋있는 서채에 수준 있는 고전은 아닐지라도
조금씩 실천해 가야겠네요.
귀감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12 00:44   좋아요 0 | URL
제 경험에 비춰봐서는, 독서 노트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겨보는 것도 꽤나 유익하더군요.
 
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장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지 않은 채 뭔가 다른 방법으로 장래의 지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사리사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불명예스런 일을 설득하려 하며, 좋지 않은 일에 관해 교묘하게 잘 둘러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반대자나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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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조국을 함께 동시에 저울에 올려 놓고 그 무게를 서로 비교하는 경우란 흔치 않다. 우선 자신이 그런 중차대한 판단을 내릴 만큼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과 조국을 저울의 서로 다른 접시에 올려 놓고 나서, 자기 자신을 조국보다 더 중시하여 끝내 조국을 버리는 경우는 더욱 흔치 않다. 왜냐하면 대개 조국을 버리는 것이 결국 자신을 버리는 결과를 빚기 쉽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조국을 팔아넘기거나 심지어 조국에 엄청난 폭력을 가한 인물들이 예로부터 드물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조국을 서로 다른 접시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둘을 다른 접시에 따로 올려놓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나서, 조국을 위해 자기 자신부터 먼저 내려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어코 조국을 짓밟아야만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까?


눈치가 조금 빠른 사람이라면 그런 인물을 너무 멀리서 찾는 수고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이 시간까지도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바로 그와 비슷한 처지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살기 위해 검찰과 특검의 수사마저 갖은 핑계를 대며 회피한 채, 탄핵 심판마저 온갖 파렴치한 지연전술을 총동원하여 버티며 '기각 판정' 재판관들의 정족수 줄이기 게임에만 매달리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를 달리 더 좋게 평가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기각 정족수는 이미 네 명(4/9)에서 세 명(3/8)으로 줄어들었고, 3월 13일 이후에는 두 명(2/7)까지 줄어들게 된다. 재판관 두 명만 반대하면 대통령은 '탄핵'에서 벗어나 다시 권좌에 복귀한다!)

우리들의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온갖 만행에 가까운 어리석은 행동들은 아마도 두고두고 역사에 길이 남을 듯하지만, 정작 피소추인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그런 '먼 훗날의 평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듯하다. 우선 당장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기 바쁜 궁색한 처지에 내몰렸으니 일견 그럴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지극한 자기애(自己愛)'가 너무나 어이없게 느껴질 뿐이고, 대통령이 이미 저질러 놓은 추악한 범죄보다 그 이후에 조국과 국민을 대하는 반성없는 오만한 태도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듯하다.

오로지 자신만 살기 위해 조국을 향해 아예 대놓고 폭력을 행사한 인물은 없었을까? 고대 로마의 코리올라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비극적이면서도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까지 다시금 헤아리게 만드는 아주 희귀한 본보기라는 점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듯하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희곡 『코리올라누스』로 자신의 '최후의 비극'을 장식했고, 베토벤은 <코리올란 서곡>을 작곡했으며, T.S.엘리엇은 그 유명한『황무지』에 이 인물의 이야기를 기꺼이 담았을 정도였다.


코리올란 서곡(독일어: Ouvertüre Coriolan)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807년에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1804년 비극에 붙인 서곡이다. 코리올란 서곡의 주제와 구조는 보통 극의 진행을 따른다. C단조 주제는 코리올라누스의 결심과 호전성을 나타내며, E♭장조는 단념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원을 나타낸다. 코리올라누스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만 로마의 문으로 옛 적들을 이끌고 돌아올 수 없었기에 자살하고 만다. 이 곡은 1807년 3월에 프란츠 요제프 폰 롭코비츠 공의 저택에서 열린 사설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여기서 교향곡 4번피아노 협주곡 4번도 같이 초연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처음 들었는데, 몇 번이나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볼까 하다가 여태까지 미루고만 있었다. 『영웅전』을 마저 읽는 일이 훨씬 더 다급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다뤄볼까 한다. 왜냐하면 코리올라누스의 이야기를 너무 간략하게만 풀어 놓으면 자칫 '코리올라누스와 로마 사이의 갈등의 원인'에 대해 여러모로 미묘한 오해를 갖기 쉽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배경 설명과 몇몇 묘한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인물은 순식간에 '악인'으로 낙인찍히기에 딱 알맞다. 그 자신에게도 그 나름대로는 아주 딱한 여러 사정들이 있었던 셈인데 말이다. 그런 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비판적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이야기를 짧게 줄이지 못했으니 그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코리올라누스에게 간청하는 어머니(Coriolan supplié par sa mère)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1591∼1666년), 1643년, 캉 미술관 소장


그의 원래 이름은 카이우스 마르키우스였는데 '코리올리'에서 맹활약한 덕분에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덧붙이게 되었다. 로마의 귀족이었던 마르키우스 가문에서는 이미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 오고 있었다. 코리올라누스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지만 그 점이 출세를 가로막거나 덕을 갖추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즈음 로마에서는 무공을 가장 존중했는데, 마르키우스는 어릴 때부터 몸이 재빠르고 누구와 맞붙어 싸우더라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와 싸워서 패배한 사람들은 모두 마르키우스의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 때문이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 마르키우스는 아직 소년이었을 때부터 전쟁에 참가했는데, 그 무렵 크고 작은 전투 가운데 마르키우스가 월계관과 상을 받지 않은 싸움이 없을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다른 이들은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싸웠지만,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싸웠다. 영광의 관을 머리에 쓴 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이자 행복이었다.

 


에파메이논다스도 자신이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승리한 소식을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전할 수 있었던 게 생애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살아 있었으므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욱 행운이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밖에 안 계셨으므로, 아버지께 드릴 애정까지 모두 어머니에게 쏟았다. 그는 어머니 뜻에 따라 아내를 맞이했으며, 자식이 생긴 뒤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416쪽)


 - 플루타르코스, 『플르타르코스 영웅전 Ⅰ』, <코리올라누스 편>

 

마르키우스가 아주 큰 세력과 권위를 얻었을 때 로마에서는 귀족과 평민 사이에 갈등이 컸다. 평민들은 빚 때문에 귀족들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원로원은 부유한 귀족들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할 때 부유한 채권자들은 빚을 진 평민들에게 전쟁에 나가면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집정관도 원로원 명령에 따라 이를 보증했다. 그러나 평민들이 적을 무찌르고 돌아왔는데도 대우는 그대로였고, 원로원도 예전 약속을 잊은 듯 시치미를 뗐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선 싸움과 폭동이 일어났고, 이 혼란한 틈을 타 적들이 다시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


마침내 정부는 적령기의 남자를 모두 소집하는 공고를 냈으나 누구 한 사람 그에 응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당황했고, 정부 요인들은 법률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격렬하게 토론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경제적 어려움은 논쟁의 요점이 될 수 없으며, 법에 맞서 들고일어나려는 평민들 시위는 하루빨리 진압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도저히 구제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평민들은 한꺼번에 로마 시를 떠나 작은 산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행진하면서 외친 구호는 이랬다.


"우리는 끊임없는 귀족들의 참혹한 횡포에 못 이겨 로마 시를 떠났다. 이탈리아는 물과 공기과 뼈를 묻을 땅쯤은 줄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우리에게 귀족들을 위해 싸우다가 다치고 죽을 일밖에는 해준 게 없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원로원은 대중의 호감을 받고 있던 의원들을 보내 그들과 협상을 벌였다. 양쪽에서 의견 대립이 이어지다가 시민들은 마침내 원로원과 화해하기로 결정했다. 평민들 요구대로 해마다 평민 다섯 사람을 뽑아 호민관을 구성함으로써 평민들 권익을 지키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호민관이 다섯 명 뽑혔고 그 가운데는 먼 훗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살해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다. 이때 마르키우스는 귀족들이 민중의 뜻에 따라 한발 물러선 일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 무렵 로마는 볼스키와 싸우고 있었다. 로마 군대가 볼스키의 수도 코리올리를 포위했을 때, 마르키우스는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볼스키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카토가 전사의 모범이라고 칭송할 만큼' 힘과 용기와 체력이 뛰어났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마르키우스의 활약 덕분에 로마군은 마침내 성을 함락했고, 많은 병사들은 약탈을 일삼기 바빴지만, 마르키우스는 집정관 부대가 진격한 길을 따라 볼스키군을 추격했다. 몹시 호전적인 적군의 주력부대와 맞선 마르키우스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로' 적군을 무수히 베어넘겼다.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승리는 지치는 법이 없다"고 말하며 달아나는 적을 뒤쫓았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집정관 코미니우스는 전리품의 10분의 1을 그에게 상으로 내렸지만 마르키우스는 '명예는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없다'며 이 모든 재물을 사양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꼭 받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볼스키 사람 가운데 저와 가까운 친구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포로가 되어 노예 처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친구가 노예로 팔려가는 불행을 제 힘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심없는 고결한 생각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세운 어떤 공보다도 그의 덕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이 대목에서 플루타르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물을 옳게 쓰는 일은 무기를 잘 쓰는 일보다 어렵다. 하지만 재물을 바라지 않는 것은 재물을 옳게 쓰는 일보다 더욱더 어려우며 고귀하다.'


마르키우스를 향한 칭찬과 갈채의 소리가 가라앉자 로마 집정관이 조용히 꺼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전우들이여, 받기를 원하지 않는 이에게 억지로 선물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것을 하나 선물하기로 합시다. 다름이 아니라, 코리올리에서 그의 활약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선물하자는 것이오."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세 번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볼스키와 전쟁이 끝나자마자 평민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다툼이 시작되었다. 전쟁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올 길도 막혔고, 농토 대부분은 경작하지 않아 황무지가 된 상태였다. 먹을 만한 곡식이 없었으며, 곡식이 있더하더라도 그것을 살 돈이 없는 형편이었다. 선동가들은 귀족들이 일부러 민중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고 굶겨 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럴 때 마침 벨리트라이 시에서 사절단이 찾아와 자신들 도시를 로마 사람들에게 개방하겠으니 그곳에서 살 이주민을 보내달라는 말을 전했다. 최근에 전염병이 퍼져 시민이 전체 인구 가운데 10분의 1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로마 인구를 줄여야 했고, 또한 과격하게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내보냄으로써 나라 안의 걱정과 소란을 줄일 필요도 있었던 로마 정부는 불순분자들을 가려내 이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때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들은 이 계획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정계 주요인물이 된 마르키우스는 민중을 선동한 사람들과 맞서면서 귀족들 편을 들었다. 그러면서 제비뽑기로 이민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르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내릴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렇게 해서 이민 계쇡은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하지만 민중들은 볼스키와의 전투에 출전하는 일만은 한사코 거부했다.


마르키우스는 자기 부하가 된 평민들과 몇몇 귀족들로 군대를 이루어 전투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상당한 양의 곡식과 많은 전리품을 모았다. 값비싼 전리품들을 챙기고 돌아오는 병사들을 본 시민들은 전쟁터에 불참한 자기들 고집을 후회하면서도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와 더불어 마르키우스에게 반감을 가졌다. 그가 평민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얻는 데만 신경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머지않아 마르키우스는 집정관 후보로 나섰다. 그가 여러모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고, 민중들도 그가 나라를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관직에 입후보하면 속옷을 입지 않은 토가 차림으로 포룸에 나와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표를 부탁하는 게 그 당시의 관례였다. 마르키우스도 다른 입후보자들이 했던 대로, 17년간 치른 수많은 전쟁에서 얻은 상처들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였다. 민중은 그 공적의 증거를 보고 모두 놀라며, 그를 집정관으로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정작 선거일이 되어 마르키우스가 원로원 의원들의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공회당에 나타났을 때, 모든 귀족이 그에게 관심을 드러내며 호응하는 것을 본 민중은 갑자기 그에게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귀족들 세력을 등에 없은 자가 집정관이 되면, 그나마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조금의 자유까지 송두리째 빼앗길까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민중들은 끝내 마르키우스를 집정관으로 뽑지 않았고, 원로원 의원들은 마르키우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집정관에 당선되자 마치 자기들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괴로워했다. 마르키우스 자신도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격분했다.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고독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는 본디 강한 기질과 과격한 투쟁이 용기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정치가에게 차분함과 성실함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플라톤 말처럼, 정치가는 사람들 속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고독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하지만 마르키우스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몰랐다. 그는 천성이 단순해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를 쳐부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원한을 폭발시킨 원인이 자신의 약한 의지에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로마 귀족 청년들은 그의 권력에 마음이 뻇겨 언제나 마르키우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었다. 마르키우스가 집정관에 오르지 못했을 떄에도, 귀족 젊은이들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동정과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맹목적인 충성은 마루키우스의 노여움을 더욱 부채질해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 큰 해를 끼쳤을 뿐이다.(425쪽)


이렇게 한창 어수선한 상황에서 많은 곡식이 로마에 들어왔다. 시라쿠사를 지배하던 겔로가 선물로 보내온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식량으로 최악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고 기뻐했다. 이제는 물가도 내려갈 테고, 선물로 받은 곡식은 무료로 분배되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시민들은 원로원 주위로 떼지어 기다렸다. 몇몇 원로원 의원들이 시민들 희망대로 선물받은 곡식을 무료로 나눠주자고 제안했을 때 마르키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중을 편든 의원들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들은 평민들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아첨하는 자들이고, 귀족에 대한 반역자라고 주장했다.


마르키우스의 말에 따르면 원로원이 민중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들의 오만과 횡포를 더욱 부채질하는 짓일 뿐이었다. 평민들에게 호민관처럼 높은 지위를 허락하는 바람에 그들이 이처럼 두려움없이 마음대로 날뛰게 되었고, 원로원이 자꾸만 요구를 들어주면서 마침내 시민들을 국가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억제책은 시행되지 않아, 그들은 국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법을 무시하고 집정관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저 여기 모여 또다시 민중에게 곡식을 무료로 나눠줄 법령이나 결정하면서 마치 헬라스의 가장 민주적인 정권인 양 대처한다면, 민중의 오만은 더욱 자라나다 못해 끝내 나라를 파별로 이끌어 갈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귀족 젊은이들과 많은 부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여들였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어떠한 권력과 아첨에도 굴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초래할 결과를 내다보고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곧 민회가 열리고 심상치 않은 공기가 온 도시를 가득 채웠다. 마르키우스가 연설한 내용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몹시 흥분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호민관들은 마르키우스에게 대표를 보내 민중 앞에 나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소환장을 갖고 온 대표들을 무시하고 상대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호민관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다. 공회당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 날이 저물어 싸움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부터 흥분한 민중들이 곳곳에서 몰려드는 것을 보고 집정관들은 다시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시가지 전체에서 폭동이 일어날까봐 겁이 났다. 집정관들은 합리적인 제안과 적절한 결의로 성난 민중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아 평민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평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고 차츰 조용해지자 호민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로원이 생각을 바꾸었으니 민중도 원로원의 정당하고 공평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마르키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혐의에 답변하라고 했다. 첫째는 호민관 제도를 없애라고 원로원을 부추겨 민중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 사실, 둘째는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때 소환에 응하지 않은 사실, 셋째는 보안대원을 구타하고 모욕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마르키우스를 굴복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와 민중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르키우스는 이러한 사항을 해명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갔다. 민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며 마르키우스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마르키우스는 사과의 말은커녕 호되게 민중을 꾸짖었으며, 얼굴 표정이나 말투에서 무시와 경멸의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시민들은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르키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이때 호민관 가운데 가장 과격한 인물이었던 시킨니우스가 잠시 다른 호민관들과 모여 이 일을 의논하더니 갑자기 군중 앞에 나와 엄숙하게 마르키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보안대원들에게 그를 당장 타르페이아 바위로 끌고 가 절벽에서 던져버리라고 명령했다. 보안대원들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르키우스 몸에 손을 대자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평민들까지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427쪽)


이렇게 해서 귀족들과 호민관과 시민들 사이에 무질서와 혼란이 일어났고, 마르키우스는 귀족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재판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귀족들 가운데에 민중의 요구에 적대적이었던 강경파들과 민중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온건파들 사이에서도 크나큰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자 마르키우스는 스스로 호민관을 찾아갔다. 그는 호민관들에게 자기 죄목이 무었이며, 민중 앞에서 무엇을 변명하라고 강요하는지 그들 속내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호민관들은 그가 국가 찬탈을 기도했으니 탄핵받아 마땅하며, 독재정권을 세우려고 한 죄과를 고백하라고 말했다.


이윽고 재판이 열렸다. 호민관들은 마르키우스를 반역죄로 기소하려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죄목을 바꾸어 원로원에서 곡식의 시장가격을 낮추는 일에 그가 반대했던 것과 호민관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했던 일을 끄집어내어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국고로 들여오지 않고 부하들에게 나눠줬던 일을 들먹이며 새로운 죄목으로 덧붙였다.


웃음을 띤 사람은 평민이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귀족

마침내 사람들 대부분은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마르키우스는 나라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형벌을 받았다. 민중은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기뻐했고, 원로원 의원들은 슬픔과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평민에게 이토록 큰 권력을 줌으로써 무모한 힘을 행사하게 만든 것을 보고 그들은 후회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에는 귀족과 평민의 옷에 구별이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얼굴에 웃음을 띤 사람은 평민이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귀족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430쪽)

하지만 정작 마르키우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 어디에도 굴욕을 당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이 친구들 모두가 걱정하며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마르키우스 자신은 본인의 불행에 대해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고통에 불이 붙어 노여움으로 변할 때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평온해서도 아니고, 자기 행동을 반성하여 달게 받아들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르키우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엄청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냉정한 그의 태도가 큰 울분의 증후임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지만 고통에 불이 붙어 노여움으로 변할 때는 이미 좌절감이나 나약함이 사라지고 마는 것과도 같다. 열병에 걸린 사람의 정신이 갑자기 긴장되었다가 팽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르키우스가 이때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은 곧이어 행동으로 나타났다.(430쪽)

그는 집에 돌아가 슬픔으로 통곡하고 있는 아내와 어머니를 붙잡고 이 불행을 부디 잘 이겨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곧장 귀족들 호위를 받으며 성문으로 갔다. 그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은 채, 부하 서너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며칠 동안 그는 어느 시골 마을에 머무르면서 분노에 사로잡힌 채 온갖 계획에 골몰해 있었다. 그는 오로지 로마에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로 하여금 로마를 상대로 맹렬한 전쟁을 일으키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찾았던 나라는 다름아닌 볼스키였다. 그 나라는 지난번 전쟁에서 큰 패배를 당했으므로 로마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군대와 재물에 있어서도 막강하다는 사실을 마르키우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찾아간 인물은 툴루스 아우피디우스라는 사람이었는데, 훌륭한 가문에 재산도 많았고 볼스키인들 사이에서 국왕이나 다름없는 존경과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분노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마르키우스는 툴루스가 그 어떤 로마 사람보다 자기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전투에서 몇 번이나 두 사람이 맞붙어 싸웠기에, 나라끼리 원수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적개심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르키우스는 툴루스가 너그러운 성격을 지녔지만, 로마에 복수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어느 볼스키인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래 시에는 그 무렵 마르키우스 행동이 잘 표현되어 있다.

분노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일을 하기 때문이다.(431쪽)

마르키우스는 해질 무렵에 툴루스 집으로 숨어들어가 부엌 아궁이 앞에 얼굴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으나 그의 풍채에서 나오는 위엄에 눌려 감히 누구냐고 묻지도 못하고 툴루스에게 가서 이 일을 알렸다. 툴루스와 마주친 마르키우스는 그제야 얼굴을 드러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모조리 빼앗겼소

"툴루스 장군, 나를 알아보지 못하오? 아니면 알면서도 당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소? 그렇다면 스스로 정체를 밝히겠소. 나는 카이우스 마르키우스, 즉 볼스키 사람들에게 커다란 폐를 끼쳤던 장본인이오. 아마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내가 볼스키의 원수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오. 이 이름은 이제 내 몸에 착 들러붙어 좀처럼 떼어낼 수가 없소.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민중의 질투와 귀족들 배신으로 모조리 빼앗겼소. 나는 내 나라에서 추방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하지만 내가 장군을 찾아온 것은 나를 보호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죽음이 두려웠다면 내가 왜 하필 이곳에 찾아왔겠소? 나는 복수하기 위해 온 것이오. 당신에게 내 목숨을 밑기고, 나를 추방한 자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오. 그러니 툴루스 장군, 당신 적을 치려 한다면 여기 있는 나를 이용하시오. 그렇게 해서 나 한 사람의 불행을 볼스키 사람들 전체의 행복으로 바꾸시오. 나는 장군의 적으로서 싸웠던 것보다 장군을 위해 더 큰 승리를 거둘 것이오. 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유리한 법이니까 말이오. 그러나 만약 장군이 이제 전쟁을 더 할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나를 죽여주기 바라오. 과거에 장군의 적수였던 내가 이제 와서 충성을 보인다 해도, 그다지 이용 가치도 없는 사람을 오래 살려두는 것은 장군에게 쓸데없는 일일 것이오."(431∼432쪽)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툴루스와 함께 볼스키 군대를 지휘하는 총지휘관이 되었다. 마르키우스는 볼스키가 전쟁 준비에 너무 많은 시일을 들여 공격 시기를 놓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는 다른 준비를 행정관과 시장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가장 용감한 지원병들로만 군대를 조직해서 로마에 쳐들어갔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전리품을 얻어서, 진영에서 모두 써버릴 수도, 안티음으로 모두 가져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르키우스가 얻은 산더미 같은 전리품도, 그가 마음 내키는 대로 짓밟은 로마 영토도 그의 계획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과에 지나지 않았다.

귀족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그의 목적은 로마 민중으로 하여금 귀족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그들의 관계를 완전히 벌려놓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군인들을 보내 로마 시민들의 모든 농토와 재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한편, 귀족의 농장과 토지는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귀족과 민중 사이에 더욱 심한 비난과 다툼이 일어났다. 원로원은 마르키우스에 대한 억울한 판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다며 평민들을 비난했고, 평민들은 귀족들이 원한과 복수심 때문에 일부러 마르키우스를 시켜 전쟁을 일으켰다고 의심했다. 또한 시민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귀족들은 마르키우스에게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고서 편히 앉아 구경만 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전쟁 중임에도 토지와 재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흥분했다.(435쪽)

볼스키 사람들은 차츰 두려움이 없어져 많은 로마군을 물리쳤다. 볼스키에서는 시민들이 앞다투어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르키우스는 더욱 강력해진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식민지인 키르케이를 함락했고, 그곳을 지나 라티움 지방으로 들어가 마음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서 12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볼라이를 점령했다. 이때 마르키우스의 명성은 온 이탈리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였다.


라비니움은 아이네아스가 세운 최초의 도시

한편 로마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렸다. 시민은 전쟁할 의욕을 잃었고, 서로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라비니움 시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라비니움은 아이네아스가 세운 최초의 도시로, 로마 수호신들의 초상과 보물이 보존되어 있어서 로마의 요람이며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었다. 이러한 라비니움 시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은 로마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제껏 지니고 있던 생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436쪽)

민중은 마르키우스에게 내린 추방 명령을 취소하고, 그를 로마로 돌아오게 하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로원 의원들이 도리어 이를 반대하고 민중이 올린 제안을 거부했다. 마르키우스가 민중의 환영 속에 귀국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고, 민중에게서만 배척을 맏았으면서도 로마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마르키우스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마르키우스는 더욱 분노했다. 그는 곧 라비니움 포위를 풀고 로마로 달려가, 바로 5마일 앞까지 진출해서 그곳에 진을 쳤다. 그가 이렇게 빨리 눈앞에까지 쳐들어온 것을 보고 로마 시민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원로원 의원들은 마르키우스를 불러 화해하라고 했던 평민들의 제안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원로원과 평민, 그리고 집정관이 만장일치로 마르키우스에게 사람을 보내 귀국을 종용했다. 원로원은 마르키우스에게 가는 사절을 모두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 가운데에서 뽑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30일의 여유

사절단이 적의 진지에 안내되어 들어갔을 때, 그들은 볼스키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는 오만한 표정의 마르키우스를 발견했다.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자신들이 파견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마르키우스는 거만한 태도로 자기가 로마인들에게서 받은 학대를 신랄하게 늘어놓고 사절단들의 말마다 토를 달며 비꼬았다. 그러면서 지난번 전쟁에서 로마가 빼앗아 간 볼스키의 도시와 영토를 도로 내놓고, 로마에 있는 볼스키인을 라티움인과 똑같이 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두 나라가 공평하고 정당한 조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헀다. 마르키우스는 그들에게 30일의 여유를 주고 그동안 결정을 내려 회답을 보내라고 했다.(437∼438쪽)

마르키우스가 군사를 거두어 로마 영토에서 물러나자 볼스키 사람들 가운데 내분이 일어났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어떤 도시나 무기를 적에게 넘긴 것은 아니지만, 로마에서 철수한 일 자체가 실질적인 반역 행위라고 비난했다. 또한 30일의 시간을 로마에 주었는데, 그동안 적들이 방어 준비를 갖춰서 전세가 뒤바뀔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마르키우스는 그 30일 동안 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그는 로마 여러 동맹국을 공격하고 짓밟았으며,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일곱 도시를 빼앗았다. 그리고 30일이 지나자 마르키우스는 또다시 전군을 이끌고 로마 가까이 갔다.

로마에서는 서둘러 사절을 마르키우스에게 보내, 노여움을 풀고 볼스키군을 철수시키면 양쪽 모두 이로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3일 안에' 예전에 제시한 조건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사절 일행이 돌아와 원로원에 이를 보고하자, 로마는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는 위기를 느꼈다. 마침내 성직자와 사제들이 행사 때 입는 제복을 입고 마르키우스에게 찾아가서 전쟁을 멈추고 휴전 조건을 협의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되돌아갔다. 로마는 오직 혼란과 공포만이 떠돌았다.

이때 로마에서는 부녀자들이 날마다 신전에 나가 기도를 올렸는데, 그들 가운데는 로마를 위해 큰 일을 한 포플리콜라의 누이 발레리아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부인들과 함께 한달음에 마르키우스 어머니 볼룸니아의 집을 찾아갔다. 집안으로 들어간 여인들은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볼룸니아를 발견하자, 자신들과 함께 마르키우스 장군을 찾아가지고 간청했다. 이에 볼룸니아 또한 그 간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들을 찾아가서도 별 도리가 없다면 아들 발밑에 엎드려 로마를 위해 탄원하다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볼룸니아는 며느리 베르길리아와 손자들 손을 잡고 여인들과 함께 볼스키군 진영으로 걸어갔다. 볼스키군은 연민과 감동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들의 가련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들과 함께 단상에 앉아 있던 마르키우스도 마침내 맨 앞에 선 어머니를 발견하자 가슴 가득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급히 단상에서 뛰어내려가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끌어안았다. 그 다음 아내와 자식들도 껴안았다. 그는 가족들을 어루만지는 손길도, 흐르는 눈물도 참아내지 못했다. 또한 북받쳐 오르는 격정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때 마르키우스가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네가 끝내 한 나라의 파괴자가 되겠다면

아들아, 우리가 입은 옷이나 야윈 몸을 보면 네가 추방된 뒤로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네 앞에 있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불행한 여인들이다. 우리가 가장 기뻐해야 할 이 순간이 운명의 장난으로 가장 두렵고 비참하게 되어버렸구나. 내 아들인 네가, 베르길리아 남편인 네가 조국의 수도를 포위한 모습을 보고 있단다. 다른 사람들은 불행 속에서도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위로와 구원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기도조차 드릴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단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기고 너도 무사하라는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 너를 위해 기도드리는 일은 로마를 저주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네 아내와 자식들은 나라를 잃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를 잃어야 하는 슬픈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살고 싶지 않구나. 네가 너를 설득해 갈등과 적대감을 우정과 화합으로 바꿀 수 없다면, 네가 두 나라의 은인이 되기보다 끝내 한 나라의 파괴자가 되겠다면 널 낳아준 이 어미를 짓밟지 않고서는 로마로 들어갈 수 없다. 내 나라 사람들이 내 자식을 이기고 기뻐하거나, 내가 낳은 자식이 조국을 정복하고 기뻐하는 것을 살아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너에게 볼스키 사람들을 배반하고 조국을 구하라고 부탁한다면 네가 난처한 처지가 될 것임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동포에게 빈곤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야비한 짓이고, 우리를 믿는 사람들을 배반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재앙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볼스키나 우리 어느 한쪽만 이기거나 지지 않도록, 두 나라가 함께 살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일은 볼스키 쪽에 더 큰 영광과 명예가 될 것이다. 지금 볼스키 군 전세가 유리한 만큼 누가 보더라도 너그러움을 베푼 것이라고 여길 테니 그보다 더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만일 그런 영광을 얻게 된다면 두 나라 모두 너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너는 두 나라 국민들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전쟁의 결과란 늘 알 수 없는 법이지만 이번 전쟁에서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로마를 이기면 너는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가 되고, 볼스키가 지면 너를 아끼고 도와주신 이들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너 한 사람의 원한과 분노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442∼443쪽)

마르키우스는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마르키우스가 입을 열지 않자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왜 아무 말도 없느냐

"아들아, 왜 아무 말도 없느냐? 분노에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이런 중대한 일로 애원하는 어미 말에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냐? 지난날 받았던 학대를 기억하는 것은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고,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명예와 존경으로 바답하는 것은 선하고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느냐?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벌했던 너라면, 그 누구보다 은혜를 소중히 여겨야 옳다. 너는 이미 네 나라에 벌을 주었다. 그러나 이 어미의 은혜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구나. 너에게 아직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부디 내 청을 들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말로는 안 된다면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구나."(443쪽)

이 말과 함께 그녀는 아들 발밑에 엎드렸다. 마르키우스 아내와 자식들도 이를 보고 똑같이 따라했다.

"오, 어머니, 이게 웬일이십니까?"

마르키우스는 소리치며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키고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승리는 로마를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저에게는 파멸입니다. 그 무엇에도 지지 않던 어머니의 아들을 마침내 보기 좋게 꺾어놓으셨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가겠습니다."

어머니와 그의 아내에 의해 무릎을 꿇은 코리올라누스 (Coriolan vaincu par sa femme et sa mère)

니콜라 푸생(1594∼1665), 니콜라 푸생 미술관 소장


이렇게 해서 사태는 모두 해결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다시 로마로 돌아갔고, 볼스키 병사들은 로마에서 철수했다. 마르키우스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너그럽게 봐주었던 것이다. 그의 명령에 거역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까닭은 그의 권력에 억눌려서가 아니라, 모두 그의 덕망을 존경했기 때문이다.

한편 마르키우스가 군대를 되돌려 안티움으로 돌아오자, 오래전부터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던 툴루스는 그를 없앨 음모를 꾸몄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집회가 열리고 선동가들이 어리석은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마르키우스에게 좋지 않은 말들을 퍼뜨렸다. 그러자 마르키우스가 일어나 뛰어난 연설로 해명을 하자, 음모에 가담한 자들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마르키우스에게 달려들어 그 자리에서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로마는 어떤 슬픔이나 존경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대비 열전>(<영웅전>의 원래 제목)에서 코리올라누스와 비교한 인물은 알키비아데스였다. 두 사람 모두 조국을 배반했고, 또 국외로 추방되었을 때 조국을 철저히 파괴했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를 통해 '코리올라누스의 잘못'이 알키비아데스보다 훨씬 더 나빴다는 점을 매우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대목들을 살펴보면 플루타르코스가 얼마나 예리한 안목을 지닌 사람인가를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

아테나이 현명한 사람들이 알키비아데스를 멸시하고 싫어했던 까닭은 그가 정치 생활을 할 때,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열한 아첨과 저속한 유혹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키우스는 그의 자부심과 귀족적인 태도와 더불어 정치 생활에서 보여준 교만 때문에 로마 시민의 미움을 받았다.

이러한 둘의 태도는 모두 옳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민중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는 사람이 무례하게 구는 이보다는 낫다. 민중 앞에 머리를 숙임으로써 권력을 얻는 것도 수치스럽지만, 공포와 힘과 억압으로 권력을 지키는 일은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447쪽)


'고독의 친구'인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웠으므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안티파트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분은 여러 장점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남을 끌어들이는 힘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마르키우스에게는 바로 이런 힘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의 은혜를 받고 있던 사람들조차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플라톤이 말한, '고독의 친구'인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웠으므로 좋은 목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뭇사람들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449쪽)


어머니 말을 듣고 나라를 구할 게 아니라

알키비아데스는 자기 나라에 있을 때 정적을 눌렀기에, 비방하는 자들은 그가 없을 때에만 그를 공격할 수 있었다. 마르키우스는 로마에서 추방되고 볼스키에서 살해되었다. 부당한 죽음이긴 했지만 마르키우스 자신의 행동이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

만일 그가 전쟁을 시작함도, 그만둔 것도 자기 분노 때문이었다면 어머니 말을 듣고 나라를 구할 게 아니라, 조국을 구함으로써 어머니를 살리는 편이 훨씬 더 고귀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내도 그가 포위했던 로마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절단의 공식 제안과 사제들 기도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어머니 말만 듣고 군대를 철수시킨 것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마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는 로마를 한 국가로 생각해서 구한 게 아니라 한 여자의 눈물을 보고 구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에 베푼 은혜는 어느 쪽에서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고 무례한 일로 비칠 뿐이다.(449∼450쪽)

플루타르코스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부분은 '코리올라누스의 성격상의 결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대목을 옮기는 나 자신도 여기서 다시 한번 흠칫 놀라게 된다. 그의 지적은 탄핵 심판을 코앞에 둔 우리의 현직 대통령을 두고 판단해 보더라도 그다지 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마르키우스의 사교적이지 못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에 있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해 보인다. 또한 그 성격이 명예욕과 결합하면 화를 잘 내는 무자비한 사람이 된다.(450쪽)

플루타르코스가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에서 결론 삼아 지적하는 다음 대목은 한 나라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한 얘기로 들린다.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다른 이들 말에 무척 신경 쓴다. 그리고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면 화를 낸다. 메텔루스, 아리스티데스, 에파메이논다스도 모두 평판에 무관심했는데 그것은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든 빼앗든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몇 차례나 추방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조국에 대해 앙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중이 자신들에게 내린 처벌을 후회하고 다시 불렀을 때에는 곧바로 돌아와 민중과 화해했다. 대중의 평가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쁜 평가를 해도 쉽사리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예로운 자리에 앉혀주지 않는다고 앙심을 품는 것은, 오직 영예를 얻으려고 하는 탐욕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449쪽)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 담은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스스로의 감방에 갇힌 인간'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코리올라누스는 한때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으로 활약했지만 자신이 '집정관'에 뽑히지 못한 때부터 '민중들'을 미워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자신'을 위해 조국까지 배반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로마를 사랑했으나, 그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훨씬 더 중시했음에 틀림없다.(코리올라누스에 비한다면 브루투스는 그와 얼마나 달랐던가.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가장 중시하고 앞세우는 인간이야말로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코리올라누스는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다가 스스로 몰락했고, 세월이 그토록 오래 지났어도 두고두고 '자기애의 화신'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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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에 대한 추억......
플루타르코스의 작품들에 대하여...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몽테뉴

 * * *

 


몽테뉴가 가장 좋아한 작가는 누가 뭐래도 플루타르코스였다. 그에 관한 뚜렷한 증거를 나는 여럿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몽테뉴가 쓴『수상록』을 통해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그 두 사람 사이의 깊은 교감을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정작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에 대해서는 좀처럼 가까이 다가설 기회를 잡지 못했다.(한 가지 핑계를 대자면, 그가 쓴 작품들 가운데『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말고는 여태까지 국내에 제대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 몇 권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박영수 특검이 현직 대통령의 온갖 추악한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동안에 우연히 집어든『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그 책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거기에 담긴 '50명의 전기'가 오늘날의 정치 현실과도 너무나 자주 오버랩되는 바람에 한결 재미가 더해진 때문이었다. 그 속에 담긴 여러 인물들에 얽힌 온갖 생생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가 그토록 매혹적일 줄은 예전엔 미처 상상도 못했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속에는 우리가 이미 영화 등을 통해 어려서 부터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들도 꽤나 등장한다. 가령 테미스토클레스(영화『300』과 『제국의 부활』등에 나왔던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영화『알렉산더』에서 훌륭하게 묘사된 것처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웅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등등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이런 인물들을 플루타르코스의 '온전한 전기'를 통해 아주 디테일하게 만나는 반가움은 영화와는 또다른 묘미가 책 속에 숨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셰익스피어조차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고 그의 탁월한 문장력과 인간 심리 묘사 등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손길로『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라누스』등의 작품을 남길 정도였다. 영웅들의 전기 속에 등장하는 너무나 유명한 대목들, 가령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 너마저..." 등을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전체'를 통해 '각색없이' 아주 디테일하고도 생생하게 마주치는 기쁨은 때로는 격한 감동마저 불러 일으킬 때도 있었다.(나는『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두 번씩이나 읽는 동안에 일부러 책을 읽는 감동을 더하기 위해 '찰턴 헤스톤' 주연의 러닝타임 212분짜리 1959년판『벤허』를 VOD로 다시 봤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시 꺼내 봐야만 할 영화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출판 숲에서 펴낸『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영웅 10명'만 담은 발췌번역본이다. 주석도 풍부하고 번역도 훌륭하지만 '동시대에 활약한 여러 탁월한 인물들'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없다는 게 결정적 단점이다. 완역본을 읽으면 발췌본에서 모자이크식으로 따로따로 움직이던 인물들이 어느새 여기저기서 동시에 한꺼번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느낄 수도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하더라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루쿨루스, 세르토리우스, 술라, 키케로, 카토, 브루투스, 안토니우스 등과 동선이 겹치는데 『영웅전』에는 이들의 전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몽테뉴로 되돌아 오자. 몽테뉴가 쓴 수상록은 플루타르코스가 쓴『윤리론집』을 본따서 쓴 작품이지만, 그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들이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고 독특했기 때문에 플루타르코스의『윤리론집』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이 살던 세상이 대략 1,500년의 간극이 있을 만큼 서로 확연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루는 인물들과 작품들에는 겹치는 부분이 아주 많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인물과 작품들'에 너무나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물론 이에 대해 얼마쯤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르겠다. 플루타르코스는 스스로도 밝혔듯이 라틴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이상하리만치 베르길리우스나 오비디우스의 작품을 인용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에 비해 라틴어에 아주 능통했던 몽테뉴는 온갖 로마 시인들의 작품들을 자유자재로 끝없이 인용한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주 좋아한 인물들은 고대 그리스 시인과 철학자들이었으며,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대표적이었다.)


어쨌든 뒤늦게나마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두 번씩이나 거듭 읽고 나니 예전에『몽테뉴 수상록』을 읽으면서 내가 숱하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만났던 수많은 인물들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이 새삼 뇌리에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몽테뉴의 책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미처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던 여러 인물들을 이제야 비로소 제법 알 만하다고 여길 정도가 되니 문득 몽테뉴의 수상록 속으로 다시금 뛰어들고픈 충동마저 느낀다. 그런데 사실『몽테뉴 수상록』만 하더라도 그 분량이 결코 호락호락 하지도 않은 데다가, 내가 예전에 그 책을 두 번째로 읽고 난 뒤에 기어코 분별없는 욕심을 앞세워 낑낑거리며 필사까지 마쳤던 그 고된 기억 때문에라도 지금 당장은 그 책 속으로 곧바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혹여 이번 기회에 그 책 속으로 다시 붙잡혀 들어가게 된다면 나는 어쩌면 거기서 또다시 한참이나 침잠하면서 지낼지도 모르겠고, 설사 그 책에서 간신히 벗어나 다시 얼굴을 내밀더라도 곧바로 또다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속으로 도로 빠져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괜한 걱정마저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아주 오래 전에 몽테뉴 수상록을 통해 맨 처음으로 만났던 숱한 고대의 낯설고도 경이적인 인물들 가운데 지금껏 내 나름대로 이런저런 작품들을 통해 더러 낯을 익혀둔 인물들을 제외한 그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선 여전히 잘 몰랐고 알쏭달쏭한 점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연거푸 읽고 나니 그저 낯선 이름으로만 어렴풋이 그려지던 여러 인물들이 비로소 '그들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지닌 생생한 표정을 띤 인물'로 되살아나 내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해서 기분이 여간 흡족한 게 아니다.


사실 플루타르코스는 그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전기를 남긴 일만으로 그토록 유명한 인물이 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철학자였으며 문장가였다. 그의 책 속에는 숱한 인물들의 생애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격조높은 문장들과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유명한 일화들 말고도 아주 매혹적인 옛 시인들의 싯구들과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는 구수한(?) 속담들과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안목과 비판이 가미된 역사 비평들이 차고 넘친다. 몽테뉴가 쓴 수상록이 그토록 흥미진진한 옛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 책의 저자가 플루타르코스를 탐독한 데서 그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과장은 아닌 셈이다.


이들 두 사람이 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이쯤에서 그치고, 이쯤에서 나는 '플루타르코스의 프로필'이라도 여기에 다시 소개하고 싶다. 내가 읽은 동서문화사판『몽테뉴 수상록』에는 맨 뒷편에 아예 '인명 찾아보기'를 따로 싣고 있는데, 해당 쪽수는 1288∼1330쪽이다. 인명 소개만 무려 43쪽에 이른다. 거기에 수백 명의 실존 인물들이 잔뜩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물론『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온갖 인물들도 거의 망라되어 있을 정도다. 내가 여기서 인용하고 싶은 인물은 바로 그런 인물들의 전기를 남긴 '작가 플루타르코스'이다.


플루타르코스 Plutarcos, 45∼125 영어명 Plutarch(플루타르크), 고대 그리스 말기의 사가(史家) · 수필가. 고전 고대에 걸쳐 가장 유명한 전기 작가(傳記 作家). 중부 그리스 카이로네이아 출생. 플라톤 철학을 배웠고 자연 과학이나 변론술도 수학함. 카이로네이아 시정(市政)에 공헌해 명예 시민이 되었고, 만년에 델포이의 최고 신관(神官)으로 있으면서 아폴론 신역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카이로네이아에 사숙(私塾)을 열어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그 교양 속에 왕성한 수필 활동을 하고 방대한 전기를 씀은 그의 진목목이라 하겠다. 특히 부유한 생활에서 어려움 없이 지낸데다, 당시 로마 제국이 융성했던 시기의 배경에 있었으므로 작품에도 자신의 짙은 체험담 같은 건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플라톤 학파를 주로 하여 거기에 피타고라스파 사상을 가미했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는 철저히 반대했다. 미신을 반대하나 신비주의 사상이 엿보이고 로마 제국의 지배를 긍정하며 한 사람만의 지배를 인정하였음.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있음.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인명 찾아보기> 중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말미에 메모해 둔 내용들. 두 번째로 읽으면서도 여전히 메모할 게 많았다.)



(동서문화사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말미에 메모해 둔 내용들)



(동서문화사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말미에 메모해 둔 내용들)



(동서문화사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Ⅱ,Ⅲ』을 읽는 동안 '독서노트'에 따로 끄적거린 메모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덧붙일 게 있다면 그건 내가 앞에서 미리 얘기했던 '증거물'이다. 내가『몽테뉴 수상록』을 두 번째로 읽고 난 뒤에 아주 작심하고 방대한 분량으로 베껴 놓은 '필사 내용' 가운데 '플루타르코스'가 포함된 대목들만 검색해서 곧바로 뽑아낸 대목만 해도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니었다. 작가 몽테뉴가 플루타르코스를 얼마나 좋아했으며, 왜 좋아했는지를 이만큼 분명하게 드러내는 증거도 별로 없을 듯하다. 우연한 기회에 이런 내용들만 따로 발췌해서 읽는 재미도 나로선 여간 쏠쏠한 게 아니어서 이런 글까지 남겨보게 되었다.


 * * *

 


내 자신이 가련해지고 161

내게는 아직도 저 너머의 나라가 보이는데, 그 시야가 혼탁하고 몽롱해서 아무것도 풀어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 공상에 떠오르는 것을 아무것이나 무척대고 말하려고 하며, 여기 내 고유의 타고난 방법만 쓰기로 하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좋은 작품들 중에 내가 취급하려는 것과 같은 제재를 우연히 만나 볼 때에는(내가 방금 플루타르크에서 그의 상상력의 힘에 관한 설화에 부딪친 것처럼) 이런 사람들에 비하여 내가 얼마나 약하고, 허술하고, 둔하고, 잠들어 있는가를 깨달으며, 내 자신이 가련해지고 못나 보이게 됩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



철학의 분석을 공부하게 173

나는 티투스 리비우스의 작품 속에 다른 사람이 읽지 못한 수백 가지 사물들을 읽었습니다. 플루타르크는 이 작품 속에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 외에도 수백 가지 사물들을 읽었고,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던 것 이상의 사연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순수한 문법상의 공부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속에 우리들 천성의 가장 심오한 부분들이 침투되어 있는 철학의 분석을 공부하게 합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



요즈음 사람들 252

우리의 판단력은 병들어서 타락한 풍속을 좇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 시대의 정신들이 옛 사람들의 행동을 비굴하게 해석하고 그들에게 헛된 사정과 원인들이나 꾸며 붙이며, 고대의 아름답고 후덕한 행적들의 영광을 더럽히는 약은 꾀만 쓰는 것을 본다.

위대한 재간이지! 글쎄, 가장 훌륭하고 순결한 행동을 내놓아 보라. 그러면 나는 거기 그럴듯하게 50가지 나쁜 의향을 꾸며 댈 것이다. 거짓말을 펴 보려고 하는 자에 의해서, 우리 속마음의 의도가 얼마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해갈 것인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그들은 남을 모함하는 데는 심술궂기보다도 더 둔중하고 상스럽게 재간을 부린다.

사람들이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깎아 내리는 데 쓰는 수고로, 그와 똑같이 방자하게 나는 이런 이름들을 높이는 데 수고하며 어깨를 빌려 줄 것이다. 그 희귀한 모습들은 현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세상의 모범으로 추려낸 것이니, 나는 이 이름들에 영광을 다시 살려 주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능력을 다하며, 유리한 사정으로 해석해 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색 노력은 그들의 가치를 이해할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덕을 묘사하는 일은 착한 사람들의 임무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룩한 모범을 위해서 감격하며 열중하는 것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일도 아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이와 반대로 하는 수작은 악의로 하거나, 또는 지금 내가 말한 바 인물들의 신용을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악덕에서 하거나, 또는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 보고 싶지만, 찬란한 도덕을 그 소박한 순결성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만큼 이해력이 강력하고 명석하지 못하고 그러한 훈련도 받은 일이 없는 탓이다. 마치 플루타르크가 말하는 바, 그의 시대에 어떤 자들이 작은 카토의 죽음의 원인을 카이사르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하는 따위이다. 거기에 대해서 플루타르크가 분개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이 죽음을 야심뿐이라고 해석하는 자들에 대해 그가 얼마나 분개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답고 후덕하고 정당한 행동을 그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보다는 차리리 세상의 추악함을 더럽게 생각하여 버렸을 것이다.

이 인물은 진실로 인간의 도덕과 지조가 어느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대자연이 골라 놓은 시범이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작은 카토에 대하여>


플루타르크와 세네카 436∼438

다른 종류의 독서는, 쾌락에 좀더 내용을 섞어 주며 거기서 내 기분과 조건들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이런 데 내게 소용되는 작품들은 플루타르크와 세네카이다. 그들은 둘 다, 내가 거기에서 찾는 지식을 조각조각 풀어서 취급해 놓았기 때문에 오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내 비위에 맞는 특기할 장점이었다.

플루타르크의 《소품집》과 세네카의 《서한집》등이 그렇다. 이 《서한집》은 그의 작품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유익한 문장이다. 내가 이 공부를 시작하는 데는 큰 계획도 필요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덮어 둔다. 왜냐하면 이 문장들 사이에는 상호간에 연락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작가들은 대부분의 사상이 유익하고 진실한 점에서 일치한다. 그들은 같은 세기에 출생하였고, 둘 다 로마의 두 황제의 사부였으며, 외국에서 들어왔고, 다 부유하였고 세력도 누렸다. 그들의 가르침은 철학의 진수를 온당한 방식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플루타르크는 더 고르고 꾸준하며, 세네카는 더 파동이 있고 잡다하다. 세네카는 힘들고 굳어지며 긴장해서 허약과 공포와 못된 욕망에 대항해서 도덕을 무장시킨다. 플루타르크는 이런 성질의 영향을 그렇게 위험한 것으로 보지 않고, 자기 보조를 서두르거나 이런 일에 경계하는 태도를 경멸하는 것 같다. 플루타르크의 사상은 플라톤적이고 순해서 시민 생활에 조화될 수 있는데, 세네카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을 받아서 일반의 습관과는 융화되지 않으나 내 의견으로는 개인 생활에 더 편리하고 견실하다. 세네카의 경우는 그 시대 황제들의 포학을 좀 옹호하는 것 같다. 그가 카이사르 살해범들의 장한 거사를 비난하는 것은 확실히 강제당한 판단으로 보인다. 플루타르크는 모든 면에 자유롭다. 세네카는 풍자와 재기에 충만하고, 플루타르크는 사물의 지식이 풍부하다. 플루타르크는 보다 만족을 주며 교양을 준다. 그는 우리를 지도한다. 세네카는 우리를 밀어 보낸다.

키케로로 말하면, 그의 작품들 중 내 목적에 소용될 수 있는 것은 특히 도덕 철학을 취급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감하게 진실을 고백한다면(사실상 이미 건방진 한계를 넘은 바에 이것을 억제할 수도 없다), 그의 글 쓰는 방식이 내게는 지루하게 보이며 다른 점도 그렇다. 서문이나 정의·구분·어원 따위가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가 너무 긴 때문에 문장이 생기를 잃고 내용이 질식되고 있다. 한 시간 동안이라도 그를 읽는 것이 내게는 힘든 일이지만, 거기서 진짜 정수를 뽑아서 보아도 대개는 바람밖에 잡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때까지도 그의 사상에 필요한 논법이나 내가 찾고 있는 요점에 직접 관계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웅변가나 학자가 되기보다는 현명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터이니, 이런 논리학적이며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절차는 못마땅하다. 나는 마지막 요점부터 시작하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이나 탐락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것을 분석해 갈 필요는 없다. 나는 처음부터 이런 노력을 지탱해 나를 가르쳐 줄 진실하고 견고한 이치를 찾고 있다. 문법상의 미묘한 점이라든지, 말과 논법의 교묘한 구조 같은 것은 필요없다. 나는 가장 심각한 의문점에 첫 공격을 가하는 사색을 요구한다. 그의 문장은 뚝배기 주위를 돌다가 기운이 빠진다. 그런 수작은 학교나 재판정이나, 설교단에 맞는 일이다. 그런 데서 우리는 실컷 졸고 있다가 한 15분쯤 뒤에 보아도 말의 줄기를 잡을 여유가 넉넉히 있다. 옳건 그르건 자기가 승소하려는 때, 재판관 앞에서, 그리고 알아들을 수 있나 보려고 모두 말해 주어야 하는 어린아이와 속인들 앞에서 이렇게 말할 일이다.

나는 사람이 주의를 끌려고 포고를 큰 소리로 외치는 사령처럼, "내 말 들으시오!" 하고 5번이나 고함지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이런 것 모두가 내게는 쓸데없는 말이다. 나는 그것을 집에서 준비해 가지고 온다. 내게는 미끼도 양념도 필요치 않다. 나는 날것으로도 잘 먹는다. 이런 준비와 서곡으로는 내 식욕이 당기게 하기는커녕 거기 물려서 입맛을 잃게 만들어 놓는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서적에 대하여>


브루투스의 경우 439

나는 브루투스가 도덕에 관해서 쓴 저작이 소실된 것을 수백 번은 애석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실천을 잘할 줄 아는 인물의 이론을 알아두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와 설교자는 같은 것이 아닌 만큼, 나는 브루투스를 플루타르크의 저서에서나 그 자신의 저서에서나 마찬가지로 읽어 보고 싶다. 나는 차라리 그가 전투한 다음 날 자기 군대에게 해 준 언행보다, 전투하기 전날 자기 천막 속에서 친한 친구 하나와 흉금을 털어놓고 하던 이야기를 알고 싶으며, 그가 자기 사무실이나 방에서 하던 일을, 그가 광장이나 원로원에서 하던 일보다 더 알고 싶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서적에 대하여>


플루타르크는 특히 나의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440

역사가들은 내게는 입에 맞는 떡이다. 그들은 재미나고 평이하다. 그들은 또 인간의 내적 조건들의 잡다성과 진실성의 전부와 세부적인 것, 그가 총체로 가진 여러 방법의 다양성과 그를 위협하는 사건들, 즉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인간 전체가 다른 어떤 데서보다도 여기서 더 생기 있게 나타난다. 그런데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 자들은 그 인물들이 겪는 사건보다도 그 목적에, 또 외부에서 닥쳐오는 것보다도 그들 내부에서 나오는 것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에 플루타르크는 특히 나의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서적에 대하여>



심각한 연구와 자기 반성 497

그러나 플루타르크가 책임지고 말하는 까치에 관한 다른 이야기는 괴상하기까지 하다. 이 까치는 로마의 어느 이발사의 이발소에서 그가 듣는 모든 것을 목소리로 흉내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팔수들이 이 이발소 앞에 멈춰서 오랫동안 나팔을 분 일이 있었다. 그 이튿날은 이 까치가 사뭇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고 우울하게 지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놀라, 그가 나팔소리에 얼이 빠져서 귀가 먹고 그의 청각과 함께 목소리도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것은 심각한 연구이고 자기 반성이었으며, 그가 그 뒤 처음 낸 목소리는 이 나팔소리를 그 반복과 자태, 음조의 변화까지 완전히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공부로 그가 전에 말할 줄 알았던 것은 모두 버리고 경멸해 버렸던 것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레이몽 스봉의 변호> 중 [인간은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 중에서



갈증을 채우는 쾌감을 잃지 않으려고 549∼550

데모크리토스는 식탁에서 꿀맛같이 단 무화과를 먹어 보고는,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감미로움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근원을 밝히려고 식탁에서 일어나 무화과를 따 온 자리의 나무 생김새가 어떤가를 보러 갔다. 그의 하녀는 이렇게 소란을 떠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를 듣고, 그걸 가지고 그렇게 수고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무화과를 꿀그릇에 담아 두었던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탐구해 보려는 기회를 잃고 자기 호기심의 재료를 빼앗긴 것에 분개해서 "물러 가거라, 기분 나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본래 그런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끝까지 캐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잘못된 추측을 고집한 상태로 진실한 이유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이 유명하고 위대한 철학자에 관한 일화는, 우리가 어떤 사물의 원인을 탐구하여 알아내지 못하고 절망할 때에, 그 추구해 보는 연구에 대한 정열에서 느끼는 재미의 성질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플루타르크도 이것과 같은 예를 하나 들고 있다. 어떤 자는 탐구하는 재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그 원인을 캐고 있는 사물이 해명되기를 원치 않더라는 것이다. 또 어떤 자는 물을 마셔서 갈증을 채우는 쾌감을 잃지 않으려고, 의사가 그의 열병에서 오는 갈증을 치로해 주기를 원치 않더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기보다는 쓸모없는 사물이라도 배우는 편이 낫다." (세네카)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레이몽 스봉의 변호> 중 [인간은 지식을 갖지 않았다] 중에서



 

몽테뉴의 책이 금서로 지정될 만한 근거를 제공했던 대목들 559


 

마호메트가 신자들에게 비단이 깔리고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고, 천하일색의 미인들이 가득하며, 특이한 음식과 술이 가득한 천당을 약속할 때에, 그들은 죽어 갈 자기 인생의 욕망에 맞는 관념과 희망으로 꿀을 발라서 우리를 꾀려고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에 아첨하는 희롱꾼인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우리 중의 어떤 자들은 똑같은 잘못을 범하며, 우리가 부활한 다음에도 온갖 종류의 쾌락과 행복이 수반되는 이승의 현세적 생활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늘에서 내린 것 같은 거룩한 개념들로 하느님의 성질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거룩하다는 별명까지 얻은 플라톤이, 이 가련한 생령(生靈)인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힘(거룩한 세상의 힘)에 적응할 수 있는 무엇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고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허약한 이해력이나 감각의 힘이 영원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고 영겁의 고초를 당해 낼 만큼 강력하다고 생각했다고 믿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저승에 가서 얻으리라고 그대가 약속하는 쾌락들이 내가 이승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무한과 아무 공통된 점을 갖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오관(五官)의 감각들이 환희로 충만하고 이 영혼이 욕구하고 희망할 수 있는 모든 만족으로 잡혀져 있다 해도, 우리는 영혼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 속에 내 것이 무엇이든지 들어 있다면, 거기에 거룩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만일 그것이 현재 우리의 처지에 속할 수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사라질 인생들의 모든 만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친척과 자녀나 친구들의 선심이 만일 저승에 가 있는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면, 우리가 그때에도 그런 쾌락을 중히 여겨야 한다면, 우리는 이승의 제한된 재물들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저승에서 숭고하고 거룩한 약속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의 위대성을 당연하게 상상해 볼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며, 우리의 이 비참한 경험으로의 위대성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상상해 보아야 한다." "하느님이 신자들에게 준비해 놓으신 행복은 눈으로 볼 수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고린도서)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하게 하려고, 누가 우리 존재를 개조하고 변경하여 준다면(플라톤이여, 그대가 그대의 정화를 가지고 말하듯), 그것은 너무나 극단적이며 보편적인 변화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물리학의 학설에 의하면 그것은 이미 우리 자신이 아닐 것이다.

      격전 속에서 싸우던 것은 헥토르였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말에 끌려가던 시체는
      이미 헥토르가 아니었다.                        (오비디우스)

      변화하는 것은 모두 분해된다.
      그러므로 그는 멸한다.

      심령의 부분들은 사실 위치가 바뀌어지고,
      그 질서가 옮겨진다.                              (루크레티우스)

는 식의 보상을 받을 것은 다른 사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피타고라스의 윤회설에서, 즉 그가 우리의 영혼에 관하여 상상하던 그 영혼의 거주지가 변함에 따라, 카이사르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사자는 카이사르가 가지고 있는 심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그 사자가 카이사르라고 생각해야 할 일인가? 그 사자가 바로 카이사르라면 플라톤의 의견을 논박하며, 당나귀로 변한 어미를 아들이 타고 다닌다는 식의 어리석은 수작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동물들의 신체가 다른 종류의 동물의 신체로 변할 때에, 다음에 나온 동물은 그 전의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하는가? 페닉스의 재에서 벌레가 나오고, 다음에 다시 다른 페닉스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둘째 번 페닉스는 첫 번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명주실을 만들어 주는 벌레는 죽어서 말라 비틀어지는 것같이 보이는데, 바로 이 몸뚱이에서 나방이 나오면, 또 거기서 다른 벌레가 나온다. 이 벌레를 아마도 첫번 벌레라고 본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한번 존재하기를 그친 것은 이미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시간은
우리의 물질을 모아 지금 있는 질서로 부흥시키고,
생명의 빛이 다시 우리에게 주어진다 해도
한 번 우리의 추억의 선이 단절된 다음에는 적어도
우리는 이런 사건들에 관심이 끌리지 않을 것이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플라톤이여, 그대가 다른 곳에서 내세에 가서 보상을 누린다는 문제가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그럴 성싶지 않은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눈알이 뽑혀 신체의 다른 부분과 분리되면
눈은 단독으로는 어느 물체도 식별할 수 없다.      (루크레티우스)

"이 점에서 고려하면,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닐 것이며, 따라서 우리 자신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주요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의 분리는 우리 존재의 죽음이며 파멸이기 때문이다."

그 중간에 생명의 멈춤이 일어나고,
모든 동작은 감각을 떠나 흩어져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였다.        (루크레티우스)

"인간이 사용하며 살아가던 팔다리를 벌레가 파먹고 흙이 그것을 썩힐 때, 인간이 고통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가며,
그 집합체는 우리 개인을 구성하므로 그런 일은
우리와는 무관하다.                                            (루크레티우스)

그뿐더러 인간 속에 선하고 도덕적인 행동들이 들어가서 실현되게 한 것이 곧 신들이 한 일인 이상, 신들은 그들 정의의 어느 기반 위에서 인간이 죽은 다음 그의 선하고 도덕적인 행동을 알아보고 포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의지를 조금만 움직이면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들이 사람들을 그릇된 조건에 데려다 놓고, 이쩌서 인간의 악행에 분격하고 복수하는 것인가?

인간은 자기가 있는 것으로밖에는 있을 수 없으며 자기 능력의 한계 안에서밖에 상상해 볼 수 없다. 사람밖에 못 되는 자들로서 신과 반신(半神)들에 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음악을 모르는 자가 노래하는 자를 평가하거나, 진영(陳營)에 있어 본 일이 없는 자가 무기와 전쟁에 관해서 토론하려는 식으로, 경솔한 추측으로 자기가 알지 못하는 기술의 실체를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도 더 오만한 수작이라고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레이몽 스봉의 변호> 중 [인간은 지식을 갖지 않았다] 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 825∼828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호메로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바로가 그만큼 박식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고, 예술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그에게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 둔다. 한편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단지 내가 아는 한도로 시신(詩神)들까지도 이 로마 시인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에서도 베르길리우스가 그 재질을 주로 호메로스에게서 배워 온 것이었으며, 이 시인이 그의 안내자이며 스승이었고, 《일리아드》의 단 한 줄이 저 위대하고 거룩한 《아에네이스》에 본체와 재료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고찰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 이 인물을 감탄스럽고 거의 인간 조건 이상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을 섞어서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는 무엇이 명예롭고 수치스러우며
유용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크리시포스와 크란토르보다도 더 능란하게
더 완전하게 말한다.                                                                                                  (호라티우스)

그리고 다른 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무궁무진한 샘처럼
피에리아(詩神들의 고향)의 물에
시인들은 입술을 축이러 온다.                                                                                    (오비디우스)

또 다른 자는 말하기를-                            

헬리콘(보이오티아 접경의 산, 중턱에 시신(詩神)들의 제전이 있었다) 시신들의 길동무들을 더하라.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호메로스만이
별무리의 높이에 오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또 하나는 말하기를-

그의 풍부한 원천에서 후세의 시인들은 그들 시가에 물을 길었고
단 한 사람의 재보로 부유해져서
감히 수많은 작은 하류로
물을 끌어대는 큰 강이다.                                                                                           (마닐리우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중에서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 올리는 것이다 965


그들의 언어는 지조 있는 자연스러운 힘으로 충만하며 벅차다. 그들은 꼬리뿐만 아니라 머리와 배와 다리 전부가 풍자시이다. 거기에는 억지가 없고 길게 잡아 늘린 것도 없다.  모든 것이 같은 태세로 진행된다. "그들의 사상은 남성적 미의 상징이다. 그들은 단지 말을 꾸며서 희롱하는 것이 아니다."(세네카)

그것은 가시 없는 무른 웅변이 아니고, 힘줄이 박히고 담담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보다는 채워서 황홀하게 하며 가장 강력한 정신들을 감복시킨다. 이러한 훌륭한 문체가 그렇게 생기있고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말이 잘됐다고 하지 않고 생각이 잘됐다고 말한다.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올리는 것이다. "웅변을 만드는 것은 흉금이다."(뮌틸리아누스) 우리네는 속이 찬 개념들을 판단력이니 언어니 아름다운 문장이니 하고 부른다.

이러한 묘사는 숙련된 문장력으로써 되는 일이 아니고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더 생생하게 마음속에 받았기 때문에 되는 것이다. 갈루스는 단순하게 말한다. 그것은 그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까닭이다. 호라티우스는 피상적인 표현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가 마음먹은 것을 말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물을 더 명확하게 더 멀리 내다본다. 그의 정신은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말과 모양의 곳간 전체를 뒤져서 옭아내 온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이 예사로움을 벗어나므로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언어가 필요하다. 그는 사물들을 통해서 라틴 말을 본 것이라고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중에서



플루타르크의 저서 967∼968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중에서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 1019

우리가 명예에 관한 모든 장점을 그들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결함과 악덕까지도 옳은 일이라고 인정할 뿐 아니라, 모방까지 해가며 그런 일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주고 옹호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종들은 모두가 그를 본떠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이고 다녔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의 아첨꾼들은 그와 같이 근시안인 체하느라고, 그의 앞에서 잘 부딪치고 발끝에 걸리는 것을 차고 둘러엎곤 했다. 탈장(脫腸)까지도 때로는 으스대며 자랑할 거리가 되었다. 나는 귀먹은 것도 뽐낼 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플루타르크는 왕이 왕비를 미워하자, 궁신들도 덩달아 사랑하는 아내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

더 심한 것은 음탕한 버릇이 모든 버릇과 아울러 유행하고, 불충·모독·잔인성도 그렇고, 사교가 그렇고, 미신·무신앙·태만이 그렇다. 더 나쁜 일로, 도대체 더 나쁜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트리다테스의 아첨꾼들은 그들의 왕이 명의(名醫)라는 영광을 얻고 싶어하자 자기들 몸을 째고 지지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본보기로 다른 자들은 몸의 가장 미묘하고 고귀한 부분인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고귀한 신분의 불편함에 대하여> 중에서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은 남이 보지 못한다 1050

옛말에 나오듯,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⑵은 남이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그대 가정의 평화로운 질서를 꾸며 보이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는가. 아마도 그 살림을 유지하기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플루타르크의 이야기, 한 로마 인이 예쁜 아이까지 낳아 준 미모의 아내를 내쫓았다고 친구들이 책망하자 "이 구두는 새롭고 예쁘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발이 벗겨진 것을 그대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대답하였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허영에 대하여> 중에서


치명적으로 천한 것 1247


우리의 학문에서는 가장 높이 올라간 것이 가장 비천하고 세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애에서, 자기를 신격화하는 생각보다 더 치명적으로 천한 것을 알지 못한다.

필로타스는 이 대답으로 그를 재미나게 풍자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를 신들 축에 넣어 준 주피터 신 암몬의 신탁 편지를 가지고 그와 함께 즐기며 말했다. "그대를 위해서 내 마음은 대단히 기쁘오. 그러나 인간을 초월해서 인간의 척도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살며, 그에게 복종해야 할 자들을 가련히 생각하오." "그대는 신들에게 굴함으로써 세상에 군림하는 것이다."(호라티우스) 아테네 인들이 자기들의 도시에 폼페이우스가 왕림하는 것을 환영하는 얌전한 글귀는 내 뜻에 맞는다.

그대는 자기를 인간으로 인정하니,
그만큼 그대는 신이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아미오 역)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경험에 대하여>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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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2-08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논문 쓰셔도 되겠어요.

qualia 2017-02-08 10:08   좋아요 0 | URL
논문은 hnine 님이 더 쓰고 싶어 하셨던 것 같은데요. hnine 님 글에 간혹 드러나더군요. 지금이라도 전혀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만~

oren 2017-02-08 10:59   좋아요 1 | URL
(플루타르코스가 말하고, 몽테뉴도 그의 말을 다시 인용했듯이)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은 남이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제가 몽테뉴의 글을 필사할 때 끙끙댔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이 다시 아려오고 손가락이 욱신거리는 아픔이 남아있는 듯하답니다. 그러니 논문 같은 건 제겐 정말 언감생심이지요...

cyrus 2017-02-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미셸 푸코의 ‘자기 수양’ 개념에 꽂혀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이때처럼 한결같이 실천 의지가 유지된다면 몽테뉴의 <수상록>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

oren 2017-02-08 11:55   좋아요 1 | URL
저 또한 몽테뉴 수상록을 쉰 살이 다 되어서 다시 붙잡고 읽었는데, cyrus 님께서는 아직도 한창이시니 몽테뉴를 만날 기회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자주 생겨나리라 확신합니다^^
* * *
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호라티우스)

양철나무꾼 2017-02-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따라 읽었습니다.
귀한 페이퍼 감사합니다, 꾸벅~(__)

oren 2017-02-08 15:01   좋아요 0 | URL
(글뭉치에서 끌려나온 인용문들을 ‘생략‘ 없이 고스란히 다 옮기다 보니) 제가 다시 읽어봐도 글이 ‘너무 지나치게 길다‘ 싶은데, 양철나무꾼 님께서 열심히 따라 읽어주셨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2017-02-09 16:47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9 17:3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밑줄긋기)

정신적으로 초라하다는 증거


앞에서도 말했듯이, 디온은 디오니시우스 2세가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가장 뛰어난 철학자로 알려진 플라톤을 시킬리아에 초대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플라톤이 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전하의 성품은 덕의 원리에 따라 고양될 것이며, 어둡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질서를 바로잡는 가장 숭고한 본보기가 되실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하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위대한 행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왕권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복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위와 같이 하신다면 국민들은 전하의 정의와 사랑에 감동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으로써 전하를 아버지처럼 우러르게 될 것입니다. 결코 권력이나 위대한 해군, 또는 1만 명이 넘는 저 육군이 있다고 해서, 일찍이 부왕께서 말씀하신 왕권을 유지하는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덕과 정의로 민중들 마음속에 있는 선의와 충성심과 감사함을 이끌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슬이 됩니다. 이런 것들은 언뜻 보기에는 나약한 듯하지만, 사실은 왕권을 튼튼하게 만드는 강한 기둥입니다. 만약 통치자가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러운 궁전에 살면서도 평민들보다 어리석고 조리 없는 말을 한다면, 이는 정신적으로 초라하다는 증거이며 국왕의 위엄이 서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1733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디온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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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을 다물겠소

내가 시작한 이야기로 끝맺자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어떤 문자의 해석을 가지고 철학자 파브리누스와 토론하던 때에, 파브리누스는 바로 승리를 황제에게 양보하였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그런 말 마시오. 그래 30군단을 지휘하는 그가 나보다 박학하지 못하단 말이오?"라고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아시니우스 폴리오를 공격하는 시를 썼다. 그러자 폴리오는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물겠소. 나를 추방할 수 있는 자에게 대항해서 글쓴다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오." 그의 말이 옳았다.
왜냐하면 디오니시우스는 시로는 필로크세노스를, 산문으로는 플라톤을 당해 내지 못하자, 하나는 채석광으로 중노동형을, 하나는 노예로 팔아 아이기나 섬으로 쫓아냈다.(1019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고귀한 신분의 불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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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리더라도

플라톤디오니시우스를 만나자 그에게 인간의 미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사람은 독재자라 말했다. 그리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올바른 사람의 일생은 행복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의 일생은 비참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오니시우스는 이 말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오해해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더구나 같이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플라톤의 말에 감동하며 그를 우러러보는 것을 보고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디오니시우스플라톤에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킬리아에 왔느냐고 물었다. 플라톤이 덕망 있는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대답하자 디오니시우스가 말했다.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 것 같군요."

디온은 디오니시우스의 노여움이 이 정도로는 풀리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스파르타 사절로 왔던 폴리스가 돌아가려고 하자, 플라톤이 함께 배를 타고 갈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러나 디오니시우스는 폴리스를 몰래 매수해, 배를 타고 가다가 플라톤을 바다 위에서 죽이거나 노예로 팔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플라톤은 정의로운 사람이니 노예로 팔리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폴리스는 플라톤을 싣고 아이기나에 닿자 그를 노예로 팔아버리고 말았다. 아이기나는 마침 플라톤 나라인 아테나이와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테나이 사람이 발견되기만 하면 무조건 노예로 팔아버리라는 법이 공포되어 있었던 것이다.(172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디온 편>



http://blog.aladin.co.kr/oren/8977543

http://www.mediapen.com/news/view/57938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70122670&nidx=2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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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6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한이 정지된 지도자가 청와대 안에서 인터넷 녹화로 인터뷰하는 모습에 부끄러웠습니다. 분명 측근이 정규재TV와의 인터뷰를 주선했을 겁니다. 자신을 편드는 사람들과 같이 하려는 성격과 책임 회피는 여전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oren 2017-01-27 14:06   좋아요 1 | URL
옛날부터 권력자가 자신의 추악한 죄과들을 덮기 위해 온 국민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궤변만을 늘어놓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해 도리어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모습은 숱하게 봐왔습니다만, 막상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이 그런 폭군들과 너무나 쏙 빼닮은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일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그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뿐이고, 그런 폭군을 옹호하느라 여념없는 한심스런 아첨꾼들마저 득실대는 것도 어디서 많이 봐왔던 듯하고요. 이제와 돌이켜 보니, 오래 전에 박정희를 시해했던 김재규의 그 분노를 이해못할 바도 아니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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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음모를 꾸미게 된 까닭은 카시우스와는 좀 다르다. 그와 가까운 친구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익명의 편지들이 그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어떤 시민은 옛날에 왕정을 뒤엎었던 유니우스 브루투스(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선조) 동상에 이런 글을 새기기도 했다.

˝브루투스,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브루투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법무관인 브루투스가 법정에 나갈 때면, 그의 자리에는 다음 같은 글이 적힌 쪽지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브루투스, 아직도 잠자고 있는가?˝

˝당신이 진정한 브루투스인가?˝

하지만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하기로 마음먹게 된 결정적 까닭은 카이사르에게 아첨하는 이들의 경솔한 행동때문이었다. 이들은 민중의 이름을 빌려 카이사르에게 온갖 영광을 주려 했고, 한밤에 몰래 카이사르 동상 위에 왕관을 씌워놓아, 집정관을 넘어서 왕으로 내세우려 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