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자극적이며 매력적인 
광고 문구인가. 이 책의 띠지에 붙은 저 글은 아마도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이방인>의 놀라운 첫 문장 만큼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충격적이다. 카뮈의 <이방인>만 하더라도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데,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저런 '외관'을 지니고 새롭게 번역되어 나타난 책을 어느 누가 쉽게 외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은 적지 않은 독자들에게 '책을 미리 사서 읽기도 전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미리보기'를 듬뿍 제공한,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낯설게 다시 다가온 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이렇듯 매우 어리둥절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방인>이라는 소설 자체가 기묘한 성격을 지녔다 싶어 더욱 흥미롭다.

<이방인>을 둘러싼 '뜨겁게 불타오른' 오역 논쟁을 한동안 두루 살펴본 덕분에, 이정서 님이 번역한 새움판과 김화영 님이 번역한 민음사판의 차이를 어느 정도 미리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새움판 <이방인>'을 둘러싸고 대판 벌어진 '칼날이 번쩍이는 듯한' 격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일이 어느새 '소설 이방인' 못지 않게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싸움의 배경에 '어떤 전리품'이 깔려 있든지에 관계없이, 나같은 독자로서는 이미 그 치열한 싸움에 자칫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무슨 화를 입을지도 모르겠다 싶었고, 이러다 무슨 큰 사단이 나지나 않을까 싶어 슬쩍 겁부터 났다.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모두 끝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햇볕으로 이글거리는 해변 전체가 뒤에서 나를 압박했다. 나는 샘을 행해 몇 걸음 내디뎠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아직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85쪽)



나는 아마도 새움판 <이방인>을 미처 읽기도 전에 '이방인 오역 논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어떤 압박감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잠시나마 떠올렸을 생각이 아마도 <이방인> 속에 담긴 앞의 인용문과 닮았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앞에서 인용한 대목은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가 '홀로' 다시 '아랍인'에게로 다가가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방인>이라는 책을 둘러싼 '이글거리는' 논쟁으로부터 나는 '그냥' 돌아서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의 호기심이란 그리 쉽게 억눌려 있기가 어려운 성질이었던지, 나는 결국 지난주 어느날 퇴근할 무렵에 일부러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겨 이미 눈에 익은 이 책을 집어들고 책값을 계산했고, 결국 <이방인>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도대체 <이방인>을 둘러싼 번역 논쟁이 왜 그토록 뜨겁게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지, 나는 무엇보다도 그 실체적 진실이 궁금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단편적인 조각들' 말고 '하나의 덩어리 전체'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이방인』을 집어들자 말자 그 소설은 정말 단숨에 읽혔다. 그 소설을 읽던 날 밤엔 '온갖 부조리'로 가득찬 엄청나게 우울한 '세월호 참사' 소식이 벌써 사흘째 생방송 중일 때였다. 가슴이 먹먹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연신 훌쩍거리는 아내와 함께 그 참담한 소식을 두 시간 이상씩이나 계속 지켜보는 일이 영 마뜩찮아 TV에서 물러난 나는, 그저 퇴근길에 사 온『이방인』이라도 붙잡을 도리밖에 없었다. 그 책을 금새 읽고 나서도 '극심한 우울 모드'는 여전히 지속될 뿐이어서 언제 글 한 줄 쓰고 싶은 생각조차 도무지 들지 않았다. 이런 글은 써서 도대체 뭐하나 싶은 자괴감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 뿐.

 

그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햇볕이 내 뺨을 불태웠고, 눈썹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 특히나 그때처럼 나는 이마가 지근거렸고, 피부 밑에서 모든 정맥이 울려 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뜨거움이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 나도 알았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한 걸음 더 옮겨 봤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85∼86쪽)



방금 인용한 대목은 소설 <이방인>의 '1부'를 장식하는 결정적 장면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 책의 역자를 떠올렸다. 카뮈의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한 역자는 아마도 (그가 보기에는 '부조리한' 오역으로 가득찬 김화영 번역본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어떤 뜨거움에 내몰려, 한 걸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던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오역 논란을 새까맣게 잊을 정도로) 정말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미 책을 읽기도 전에 얼마간 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역자 노트'도 그에 못지않게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번역판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카뮈의 소설『이방인』은 그동안 결코 쉽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역자 노트'에서 예시된 이전의 번역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수긍하게 되면 '그런 사정'을 얼마간 이해할 만하다 싶기도 했다. '역자 노트'에서 이 책의 저자가 상세히 밝힌 대로 '새로운 번역'에 따라 이 소설을 읽으면 <이방인>은 그렇게 어렵게만 읽히는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매끄럽게 읽히고, 카뮈가 치밀하게 배치해 놓은 소설 속 문장들이 저마다 절묘한 호응을 주고받는 느낌마저 생생했다.

'새로운 <이방인>'과 '역자 노트'를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카뮈가 『이방인』을 통해 그토록 함축적이고도 절묘하게 그려낸 '부조리'가 '역자노트' 속에 기이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듯한 착각조차 들 정도였다.

 

우리는 마침내 저 멀리 해변 끝의 커다란 바위 뒤에서 모래 사이로 흐르고 있는 작은 샘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두 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누워 있었는데, 기름때 전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평온하고 거의 만족스러워 보였다.  우리가 왔음에도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81쪽)



기존의 번역이 정말 역자의 주장대로 '인물들의 성격과 특성'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카뮈 작품에 대한 권위자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온 김화영 님의 번역이 정말 '<이방인>이라는 걸작 소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읽는 일개 독자로서 함부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싶다. 그래서 역자가 심혈을 기울인 '작가 노트' 내용들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수긍할 수는 있지만, 기존 번역에 대한 너무 지나친 비판을 담은 그의 주장에 대해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결코 적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번역'에 명쾌한 정답이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식의 과격한 주장에는 누구라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역자의 지나치게 확신에 찬 주장들에 대해선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느낌부터 앞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기존의 번역'이 '작품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엉터리 번역'이라는 주장은 누가 뭐래도 너무 심했다 싶다.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번역은 기존의 번역보다 정말 매끄럽고 설득력이 넘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 그저 단순하게만 읽히던 문장들이 하나 하나 긴밀한 연계성을 띄고 되살아나 서로를 이끌고 잡아당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확인시켜주기까지 한다. 물론 수준높은 독자라면 '기존의 번역'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방인> 속에 담긴 '작품의 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자의 열의에 가득 찬 새로운 번역을 따라가다보면 평범한 독자라 하더라도 카뮈의 문학적 천재성을 금새 느껴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느닷없이 낯선 외국의 여행지를 홀로 다녀오고 난 뒤에, 뒤늦게 그 여행지를 안내하는 어느 여행 전문가의 친절한 TV 해설을 듣는 듯한 느낌마저 들지 모르겠다. 그만큼 역자의 설명은 그동안 이 작품의 해석을 어렵게 만든 여러 대목들을 환하게 밝힌 부분들이 적지 않다 싶고, 그래서 이 책은 기존의 번역 작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번역들과 역자가 새롭게 찾아낸 여러 확신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의 설명은 '기존의 번역들'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그가 내뿜는 입김은 불에 데일 듯 뜨겁다.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86쪽)



카뮈의 <이방인>을 아주 오래 전에 '어렵게' 읽은 기억이 어렴풋한데 뒤늦게나마 '새로운 번역'으로 단숨에 읽고 나니 개운한 느낌조차 없지 않다. 이 책이 아무리 '오역 논란'으로 여전히 시끄럽다고 하지만, 일개 독자로서는 그게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가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기존의 번역에 결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다는 점에 얼마쯤 동감하고, 새로운 번역으로 카뮈의 훌륭한 문학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면 나로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내 변호사는 인내심이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올리며 소리쳤고, 그로 인해 그의 소매가 아래로 처지면서 풀 먹인 셔츠의 주름이 드러났다. "도대체 이 피고가 기소된 것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입니까, 사람을 죽여서입니까?"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검사가 다시 일어서더니, 그의 법복을 바로 잡고는 선언했다. 이 두 사실의 범주 사이에 있는 깊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를 지각하지 못하려면 존경하는 변호사님처럼 순진해야 할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는 힘주어 소리쳤다. "나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묻었음을 고발합니다." (133쪽)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도 다시 한번 엄청난 궁지에 내몰린 '새움판 <이방인>의 번역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일을 아주 단순하게만 바라본다면, 그는 기존의 번역상의 오역들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번역을 내놓은 죄밖에 없다. 그런데 역자에게는 이미 '번역상의 문제' 말고도 다른 수많은 '나쁜 혐의'가 잔뜩 추가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역자는 어느새 카뮈의 <이방인> 속에 나타난 '부조리'를 얼마쯤 닮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새움 번역판의 역자를 둘러싼 논란'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독특한 감정들이었다.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 '부조리'는 도처에 깔려 있다. <이방인> 속 부조리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부조리는 결국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생각이었다. '엄마의 죽음'과 '아랍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연장되고, 어떻게 예기치 않게 일찍 마무리되든 주인공 뫼르소는 그에 대해 '일반의 보편적 인식'과는 크게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을 보여준다. 그게 무에 그리 큰 대수로운 차이란 말인가 하는 식이다.

 

그걸 마치고는 나를 "여보게"라고 부르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사형수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사형수인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가로 막고는 그건 같은 게 아니라고, 더구나 어떤 경우라도 그건 위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158∼159쪽)



이 짧은 대목 속에서도 '부조리'는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부조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결국 교도소의 간수가 '호출'하는 순간에 삶을 마감하게 되어 있는 사형수를 닮았다.(쇼펜하우어는 '시간은 교도관처럼 우리 등 뒤에서 회초리를 들고 감시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천 년이라도 살 듯이 악착스레 삶에 매달린다. 그런 '부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뫼르소가 오히려 사제에게 '그건 같은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습조차 내겐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내놓은 <이방인>을 두고 화끈하게 불붙은 '오역 논쟁'을 지켜봐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떠올렸을 법하다. 그 가운데 내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본 일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이미 단단하게 뿌리내린 '기성 권력이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한 고려였다.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힘과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혹은 거기에 돈키호테를 닮은 무모한 용기는 또 얼마나 필요하며, 슬기로운 지혜는 또 얼마만큼 요구되는 것일까.

이번의 오역 논쟁을 지켜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찰스 다윈을 잠시 떠올렸었다. 비록 이번 일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례이고 서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여길지 몰라도, 나는 '기독교의 창조론'이라는 난공불락의 '기성 권위'를 무너뜨린 찰스 다윈의 '위대한 도전'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참고할 만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자연선택 이론'은 '인간의 유래'에 관한 '신의 권위'마저 완전히 박탈하고야 말겠다는, 일찌기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만큼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어려운 일을 너무나 아름답게 성취해 냈다. 그가 그토록 힘든 일을 그토록 손쉽게(?) 이뤄낸 비결은 과연 무었이었을까. 내 생각으로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평생을 바친 철저한 연구.
둘째,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한' 표현.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는 우리가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말했다. 바로 '태양과 죽음'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딱 어울릴 만한 명언이 아닐까 싶다. 이 말을 남긴 라로슈푸코를 무척이나 존경하며 그를 자주 인용했던 철학자는 쇼펜하우어였다. 그 또한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헤겔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웠다. 그가 보기엔 헤겔의 철학이 엉터리로 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가 말년에 이르도록 '당대 철학계의 거두'였던 헤겔을 뛰어넘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철학에 매진한 끝에 얻어낸 훌륭한 결실들은 결국 훗날에 이르러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쇼펜하우어가 '논쟁'의 대가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도 쇼펜하우어가 했던 인상적인 말들을 몇 번씩이나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 철학자만큼 이번 '새움판 이방인 ' 논쟁에 어울릴 만한 적절한 표현들을 두루 언급한 인물도 드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내가 떠올리고 새삼 찾아봤던 '쇼펜하우어의 글들'은 어쩌면 '새움판 이방인'에 딸린 '역자 노트'처럼 어딘가 본궤에서 너무 벗어난 '사족'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숨겨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관심있게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서는 이런 사족도 전혀 값어치가 없지는 않을 듯싶어 덧붙여 본다. 아무쪼록 '접힌 부분'까지 펼쳐 읽으시는 분들이 적지 않았으면 좋겠다.

 

 

접힌 부분 펼치기 ▼

 

 

긍정적인 것을 보라


불평하지 마라. 모든 것을 악으로 몰아가는 음울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저주한다. 이는 통찰과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비열한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눈 속의 티끌을 대들보로 과장해 비난하는 것과 같다. 불평하는 자는 맡은 일마다 천국을 지옥으로 바꾸고, 더욱이 비열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아붙인다. 반대로 고귀한 심성을 지닌 자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려 한다. 일부러 잘못을 눈감아주고 의도는 좋았다고 말해줌으로써 모든 일에 용서할 줄 안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나를 만들어가는 지혜' 中에서

 


 

 

증오와 아첨 


증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첨이다. 증오는 오점을 씻어내려 하나 아첨은 그것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남의 원망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 이는 호의보다 더 충실하다. 강력한 역풍은 맥빠진 순풍보다 낫다. 적의 덕택에 행운을 얻은 사람들도 많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경쟁자를 이기는 지혜' 中에서

 

 


예의는 호의를 얻는 마법약이다 


예의를 지켜라. 그것만으로 호감을 얻는 데 충분하다. 예의는 교양에서 나오며, 모든 사람의 호의를 얻을 수 있는 묘약이다. 반대로 무례함은 사람들의 경멸과 반감을 산다. 무례함이 자만에서 오면 혐오스럽고, 조악함에서 오면 경멸스러우며, 무지에서 오면 유감스럽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혜' 中에서


 


진실을 말할 때는 말을 신중히 골라서 하라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때는 신중히 말을 고르고 예의를 잊지 않기 바란다. 똑같은 진실이라도 말하는 방법에 따라 기분좋은 보고도 되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음이 되기도 한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혜' 中에서

 


 

시간으로 자기를 길들이라


기회가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계절은 숨어 있던 것을 무르익게 하고 완성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시간의 버팀목은 헤라클레스의 쇠곤봉보다 더 강하다. 신은 채찍이 아닌 시간으로 인간을 길들인다.

'시간과 나는, 또 다른 시간 그리고 또 다른 나와 겨루고 있다'는 위대한 말을 상기하라.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행운을 불러들이는 지혜' 中에서

 


 

대적하는 자에게 그대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는가?


누가 공격하면 공격을 받은 사람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명예 회복의 절차에 따라 자기 손으로 되찾지 않으면, 그 명예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절차는 아무래도 그 생명, 자유, 재산, 마음의 평정 등에 위험이 닥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남자의 행위가 성실하고 고귀하며, 심성이 순결하고, 두뇌가 대단히 뛰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비방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사람은 그저 지금까지 이 명예의 법칙을 어긴 일이 없으면 되고, 그 외에는 보잘것없는 인간 쓰레기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짐승 같은 자이건, 게으름뱅이, 도박꾼, 빚쟁이라도 무방하다)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곧 명예를 잃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을 즐기는 자는 대개 앞에서 말한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세네카가, "경멸해도 싼 놈팡이일수록 그 혓바닥이 고약하다"라고 한 것도 적절한 표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인간이야말로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상하는 모양이다. 됨됨이가 상반된 사람은 서로 미워하게 마련이며, 볼품없는 자가 뛰어난 사람을 은근히 경멸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와 비슷하게 괴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적하는 자에게 그대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는가?
      그대와 같이 성품이 뛰어난 자는

      영원히 그들의 눈에 난 가시로다.
      어찌 이들이 그대의 벗이 되랴!

                                                                           《서동시집》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명예에 대하여' 中에서

 


 

각자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것 


이것은 누구나 자기와 동질적인 것만을 이해하고 평가할 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이, 저열한 사람에게는 저열한 일이, 그리고 머리가 명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혼돈이,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각각 동질적인 것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자신이 제작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바로 그것이 그와 가장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의 전설적인 인물인 에피카르모스(그리스의 희극 시인)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조금도 놀랄 건 없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고,
      그들은 자기 자신이 제 마음에 들어 의기양양한 것뿐이다.
      그들은 자기가 실로 훌륭하게 보이는 것이다.
      개에게는 개가,
      그야말로 제일 아름다운 것 ······. 역시 그렇다, 소에게는 소가,
      노새에게는 노새가, 돼지에게는 돼지가.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명예에 대하여' 中에서

 

 

 

남의 견해를 반박하지 마라.


남의 견해를 반박하지 마라. 그가 믿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완전히 그에게 납득시키려고 하면, 므두셀라만큼 오래 살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남하고 이야기할 때 아무리 호의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바로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치에 닿지 않더라도 제3자인 우리는 개입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들이 서투른 연극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세상에 진리나 교훈을 전하려는 사람이 그 임무를 무난하게 마쳤다면 그것은 하나의 요행이며, 오해와 푸대접과 반항, 그리고 학대를 받게 마련이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권고와 잠언' 中에서

 

 

 

격한 어조로 말하지 마라


'격한 어조로 말하지 마라'는 오랜 처세의 가르침은 해야 할 말만 요령 있게 하고 그 해석은 남에게 맡기라는 뜻이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력이 부족하므로, 그 자리를 떠난 뒤에야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격한 어조로 말하는 것'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되며, 그때 모든 것은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잖은 태도로 조용히 말하면, 무례한 말이라도 당장 눈앞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권고와 잠언' 中에서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거울을 향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짓을 곧잘 한다

선생이 학생에게 악기에서는 운지법을 가르치고, 검술에서는 장검 사용법을 가르친다고 하자. 학생은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만 배운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훈련을 거듭하면서 쓰러지고 일어나고 하는 동안에 차츰 익숙해진다.

라틴어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기 위해 문법 규칙을 배울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다. 교양 없는 자가 관리가 되거나, 신경질이 심한 자가 사교가가 되거나, 대범한 자가 소심하게 되는가 하면, 고귀한 자가 익살꾼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은 오랜 습관에 의해 얻은 자기 훈련은 언제나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강제에 대항하는 것을 자연은 결코 중지하고 있지 않으며, 가끔 뜻하지 않은 때에는 이 강제를 물리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추상적인 법칙에 의한 모든 행위와 천성에서 비롯되는 행위의 관계는, 마치 형태나 움직임이 서로 상관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시계와 같은 인위적인 제작품과, 형태나 재료가 서로 융합되어 하나가 된 산 유기체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천적으로 얻은 성격을 선천적인 성격에 비추어 나폴레옹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불완전하다"고 한 말이 정당함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육체적 및 정신적인 모든 일에 타당한 하나의 규범으로서, 이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가 알기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광물학자들에게 알려진 천연 수정이 인공 모조품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허식을 경계해야 한다. 허식은 언제나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첫째는 거짓으로서이며, 거짓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비겁한 것이다.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탄핵선고로서이며, 이것은 자기가 아닌 것, 즉 자기를 더 과장해 돋보이려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특질을 내세워 자랑삼는 것은, 그가 그 특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이 용기건 학식이건, 또는 정신, 기지, 여자에 대한 인기, 재산, 고귀한 신분, 그 밖의 무엇이건 간에 그것 하나를 자랑한다면, 그에게 그 특질이 결여되어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특질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내세우거나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므로, 그는 자신이 가진 특질에 대하여 담담한 심정으로 있을 수 있다. '쩔렁쩔렁 소리를 내는 말굽쇠는 못이 하나 빠져 있다'는 스페인의 속담은 이를 가리킨다.

(중략)

그리고 어떤 사람이 가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은 곧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가장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며, 언젠가는 탄로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두고자 한다. "아무도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있을 수는 없다. 위장은 곧 자기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이다."(세네카 《관용에 대하여》제1권 제1장)

인간은 자기의 몸무게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탱하고 있지만 다른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그 무게를 느끼는 것처럼, 자기의 결점이나 부덕은 의식하지 못하고 남의 것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대신 모든 사람들은 타인 속에 하나의 거울을 갖고 있어 그 거울 속에 자기의 온갖 부덕과 결함, 무례 및 고약한 성질 등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누구나 거울을 향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짓을 곧잘 한다. 개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이 다른 개인 줄 알고 짖어대는 것이다.

남의 결함을 들추는 것은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도 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자기 혼자만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취미와 습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결함을 시정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이처럼 자주 엄격하게 비난하는 일이라면, 자기 스스로도 이를 피하려는 정의감과 긍지와 허영심까지도 충분히 지니게 될 테니 말이다.

관대한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서로 눈을 감아 준다"(호라티우스《시론》)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들어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가"하고 적절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인간의 눈은 본래 외부의 사물은 잘 보지만 자기 자신은 잘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자기 결점을 돌이켜보기 위해서는 남이 갖고 있는 결점을 찾아내어 비난하는 것이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 하나의 결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쇼펜하우어,『삶의 예지』, '권고와 잠언' 中에서



 

항상, 가끔, 대체로

'모든 오류는 귀결에서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추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그 귀결이 그 해당 근거에서 생긴 것이지 다른 근거에서 생길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타당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타당하지 않은 추리다. 오류를 범하는 사람은 하나의 귀결에 그 귀결이 전혀 가질 수 없는 근거를 설정한다. 이 경우 그에게는 오성이 실제로 부족하다.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와의 결합을 직접 인식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또한 더 빈번한 경우이긴 하지만,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귀결에 어떤 근거를 규정하는 경우, 물론 그 근거는 가능하지만, 귀결에서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추리 전체에 첨가하여, 그 해당 귀결은 '항상' 그가 진술한 근거에서만 생긴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완전한 귀납을 행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전제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항상'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광범한 개념이며, 그 대신 '가끔'이라든가 또는 '대체로'라고 말하기만 하면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결론은 미결정의 것으로 되며, 그러한 결론으로서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상술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추론하는 것은 조급한 탓이 아니면 가능성에 관한 지식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 때문에 행해야 할 귀납의 필연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류는 가상과 유사하다.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 이유율에 따른 표상, 경험과 학문의 목적> 中에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내가 스토아학파의 윤리학 정신을 이해한 것에 의하면, 그 근원은 다음과 같은 사상에서 나오고 있다. 이성은 인간의 커다란 특권이며, 간접적으로 계획적인 행동과 거기에서 생기는 결과에 의해 인생과 그 무거운 짐을 현저하게 가볍게 하는 것이지만, 이 이성은 또 직접적으로, 즉 단순한 인식에 의해 인생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고뇌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구출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이성을 부여받은 인간이 이성으로 무한한 사물이나 상태를 포괄하고 전망하면서도 현존에 의해 아주 잠시 동안, 불안한 인생의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다거나 격한 욕구나 도피에서 생기는 큰 불안과 고뇌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이성의 장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성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인간은 틀림없이 이러한 고뇌를 초월하고 불사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안티스테네스는 "이성과 목을 맬 밧줄,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플루타르코스, 《스토아학파의 모순에 대하여》, 제14장)고 말했다. 그 의미는 인생에는 실로 많은 괴로운 일과 번거로운 것이 있기 때문에 사상을 정돈하여 이것들을 초월하거나, 인생을 버리는 것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결핍이나 고뇌는 직접 또는 사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핍을 느끼게 하고 고통을 일으키게 하는 유일하고 필연적인 조건이다. "가난함이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고통을 가져온다."(에픽테토스, 《단편》, 제25)


희망을 낳고 키우는 것은 기대나 요구

그뿐만 아니라 희망을 낳고 키우는 것은 기대나 요구라는 것이 경험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은 많은 사람, 또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피할 수 없는 악도 아니고, 도저히 수중에 넣을 수 없는 재물도 아니며, 인간이 피할 수 있는 것이나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많으냐 적으냐 하는 문제이다. 또 절대적으로 수중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수중에 넣었을 때나 절대적으로 피하기 힘든 것을 피할 때만 우리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수중에 넣기 힘든 것을 손에 넣고 상대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것을 피할 때도 우리의 마음은 아주 평안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성에 이미 깃들어 있는 악과 그 개성이 단념해야만 하는 재물과는 상관 없이 고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희망도 만약 그것을 기르는 기대가 없다면 곧 소멸하고 더 이상 고통도 생기지 않는다.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이 모든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행복은 오직 우리의 요구와 우리가 얻는 것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 관계는 둘 다의 양을 감소하는 것으로도 다른 쪽의 양을 증대하는 것으로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고통은 본래 우리가 욕망하고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과의 불균형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불균형은 확실히 인식에 존재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으며, 더 높은 식견이 생기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시포스는 "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한 경험에 따라 살아야 한다"(《스토바에오스 선집》, 제2권, 제7장, p.134)고 했는데, 그 의미는 세계 속에 있는 사물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어떤 일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불행을 당해 실신하고 화를 내고 기가 꺽이는 일이 종종 있다. 그것은 사물이 자기의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가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무생물은 우연에 의해, 생물은 반대로 목적이나 악의에 의해, 어떠한 개인의 의지도 매사에 방해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의 인생은 이러한 상태를 일반적으로 알기 위해 그의 이성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대체로 알고 있어도 하나하나에 관해 자세하게 재인식하지 않아서 이에 놀라 마음의 평정을 잃는 경우 판단력이 부족했거나 어느 한쪽이다.*

* "일반적인 개념을 개별적인 것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인간 악의 원인이므로"
   (에픽테토스의 《
논문집》
, 제3권 26장)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 이유율에 따른 표상, 경험과 학문의 목적> 中에서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

'이데아'는 개념의 적절한 대표라고 정의할 수는 있지만, 순수하게 직관적이고 무수한 개체를 대표하면서도, 또한 철저하게 규정된 것이다. 이데아는 개체에 의해서는 결코 인식되지 않고, 모든 의욕과 개성을 넘어서 순수한 인식 주관에까지 올라간 사람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따라서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천재와 많은 경우 천재의 작품에 자극되어 자기의 순수한 인식력이 고양된, 천재적인 정서를 갖게 된 사람만이 가진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약 밑에서만 전달될 수 있다. 즉, 예술 작품으로 재현된 이데아는 사람의 마음을 각자의 지적 가치의 정도에 따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즉 천재의 가장 고귀한 작품은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영원히 닫혀진 책으로 머물러야만 하고, 또 폭넓은 심연으로 갈라져 접근할 수 없어서, 마치 왕들의 교제가 서민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정평 있는 걸작의 권위를 인정하여 자기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몰래 언제나 그러한 걸작에 유죄 선고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자기를 노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만 서면, 전부터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을 굴욕스럽게 한 위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해, 또 이것들을 창조한 사람들에 대해, 오랫동안 억눌려 온 증오심을 터뜨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타인의 가치를 자유롭게 인정하고 반대하지 않으려면, 자신도 가치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미 중에서도 겸손이 꼭 필요한 것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것과 유사한 덕 가운데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뛰어난 사람을 찬양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덕을 그 사람에 대한 찬사에 덧붙여서, 타인의 환심을 사고 무가치함에 대한 노여움을 진정하려고 한다. 비열한 질투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겸손이란, 장점이나 공적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걸하는 수단으로 취하는 거짓 겸손 외에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예술 작품의 개념과 이데아' 中에서


 

 

펼친 부분 접기 ▲


 




 
 
함께살기 2014-04-23 00:42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번역이 예전보다 나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기 마련입니다.
다만, 처음 번역된 책과 꾸준히 다시 번역되는 책들이 있기에
나중에 번역하는 이들은
앞선 이들 열매를 받아먹으면서
다시금 새로운 번역을 할 수 있기도 해요.

앞선 번역이 없었으면 '새로운 번역'이란 없겠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비판에 앞서 존경과 고마움을 내비치면서
즐겁게 '새 번역'을 우리한테 선물하려는 마음이었으면
오래도록 사랑받는 실마리를 열었으리라 느낍니다.

번역은 '읽어서 풀어내는 이야기꾼'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옛이야기도 '구술자마다 다 다른 입맛'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로 들려주지요.
설화와 신화와 민담에 '정답이 하나'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답이 하나이길 바란다면
외국말을 배워서 외국책으로 읽어야겠지요.

oren 2014-04-23 11:01   URL
이번 새움판 이방인을 둘러싼 논란 덕분에 저도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 듯해요.

똑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수많은 감상평이 존재하듯이, 외국어로 쓰여진 원작에 대해서도 번역자에 따라 온갖 다양한 번역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텐데, 새움판의 역자가 너무 '정답'에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더군요. 그렇지만 제 판단으로는, 새움판 <이방인>이 기존에 나온 번역판보다 훨씬 더 잘 읽히는 번역판임은 분명한 듯해요.

애써 번역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외국어를 잘 몰라도 우리말로 그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독자들은 늘 번역하시는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비록 번역자들마다 '번역의 질'은 다소 다르더라도, 우리말로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분명 번역하신 분들에게 '결정적 도움'을 받는 셈이고, 그래서 저는 웬만해서는 '번역의 품질'을 따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라구요. 다양한 번역본이 존재할 경우, 부지런한 독자들이라면 따로 비교해가며 읽어도 '번역의 질'은 충분히 헤아려볼 수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마립간 2014-04-23 09:36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쇼펜하우어를 멋있게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많은 명언 감사합니다.^^ 저도 겸손에 관해서는 부족한 사람이라...

알라딘에서 '쇼펜하우어 삶의 지혜'가 검색되지 않는데, '행복한 내일을 위한 삶의 지혜' '인생을 보는 지혜' '나를 만나는 지혜' '꿈을 찾아가는 지혜'가 모두 같은 책인가요?

oren 2014-04-23 11:25   URL
쇼펜하우어의 <삶의 지혜>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라는 사람이 쓴 원작을 편역한 작품입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17세기에 신학을 공부한 신부이자 철학자였는데, 쇼펜하우어가 그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편역'을 내놓으면서 유명하게 된 작품이지요. 그러고 보면 쇼펜하우어도 자신의 주저이자 걸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내놓고 나서도 꽤나 오랫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한 대신에, 그라시안의 작품을 편역한 <삶의 지혜>를 계기로 비로소 전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된 인물이니, 번역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인 셈이네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지혜>는 여러 권의 작품이 담긴 '쇼펜하우어 전집'과도 비슷한 책입니다. 그 가운데 맨 앞부분에 담긴 <삶의 지혜>가 바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작품을 편역한 책이고, 그 작품은 단행본으로 나와 있는 다른 판본도 많은데 거의 대부분 '쇼펜하우어'가 편역한 책이지 싶습니다. 그 작품은 쇼펜하우어가 원작을 단순히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글도 제법 포함시킨 덕분에 어느 정도는 '쇼펜하우어의 책'이 되다시피 한 작품이지요.

(마립간 님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제 글에 담아 놓은 <세상을 보는 지혜>를 클릭하셔서 그 책의 '목차'를 한번 살펴보시면 금방 이해되실 겁니다.^^)

마립간 2014-04-23 11:51   URL
oren님, 감사합니다. (우선 동서문화사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어야겠네요.^^)
 



"신화는 당신이 걸려 넘어지는 곳에 당신의 보물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이미지』中에서

 * * *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용감했던 그리스군 장수, 아킬레우스 
기원전 450년경, 항아리 세부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일리아스』에서 인용)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살펴보면 꼭 인간들만 전쟁에 열중한 게 아니었던 듯하다. 신들끼리 맞서 싸운 전쟁도 많았고, 인간과 신들이 한데 뒤섞여 전쟁을 벌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인간들이 벌인 수많은 전쟁 가운데 신들까지 덩달아 나서서 치열하게 다툰 전쟁으로 말하자면 트로이아 전쟁만큼 유명한 전쟁도 드물지 싶다. 그 전쟁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온통 '신들의 개입' 없이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여서, 인간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조차 '신들의 대리전'쯤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도대체 그리스의 그 수많은 장군과 병사들과 일천 척의 함선들은 무엇을 위해 머나먼 바다 건너 트로이아 벌판 위에서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가족들과 고향을 등진 채 자신들의 목숨을 적군들의 목숨과 맞바꾸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써야만 했던가. 트로이아의 이름난 장수들과 수많은 백성들과 이웃나라에서 모여든 동맹군들은 또 무엇 때문에 머나먼 바다에서 건너온 그리스 동맹군들에 그토록 오래 시달린 끝에 '완전한 파멸'에 이르고야 말았는가.

이런 궁금증을 누구라도 한번쯤 가져 본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입심좋고 재치있기로 소문난 인물인 몽테뉴가 짐짓 모른 체하고 넘어갔을 리 만무하다. 그가 트로이아 전쟁을 두고 넉살좋게 너스레를 떨며 뇌까린 대목 하나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파리스의 심판(우테웰 작)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새긴 황금 사과를 잔칫상에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간 중에 제일 미남자인 파리스에게 심판받자며 그를 찾아간다. 파리스는 절세미인 헬레네를 품에 안겨주겠다는 아프뢰테에게 사과를 준다.
(천병희 옮김,『에우리피테스 비극전집1』에서 인용)



신들과 인간들은 도대체 왜 트로이아 전쟁이 몽테뉴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 무려 10년이나 계속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싸우기를 그치고 서로 화해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그렇게 '기가 막힌 전쟁'을 서로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내게는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진다.(물론 전쟁의 핵심 당자사인 두 사람, 즉 파리스와 메넬라오스가 서로 '일대일 대결'을 벌여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을 종식'하자며 '담판'을 벌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메넬라오스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파리스가 비겁하게 도망치고, 신들이 다시 전쟁을 부추기면서 그런 '전쟁 중단 시도'는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만다.)

물론 전쟁이 한번 제대로 불붙고 나면 그게 어디 중간쯤에서 서로 어중간하게 타협하고 쉽게 물러설 만큼 간단한 일이던가. 더구나 트로이아 전쟁의 경우 역사적으로 따져 보더라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3,000년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그 전쟁의 흔적이나마 엿볼 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오래 전에 벌어졌던 일이었으니만큼 우리의 순진하고도 박애주의적인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생결단의 끝장을 보는 전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싯구로 시작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 호메로스,『일리아스』


그렇다. 분노라는 격정이야말로 한번 터져 나오면 기어이 끝장을 봐야 하는 성질임을 그 누가 모르랴. 그래서 트로이아 전쟁 역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혹은 '전쟁의 원인'에 대해 '확실한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전쟁을 쉽게 멈출 수 없었으리라는 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분노라는 격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굳이 『일리아스』를 들추고 아킬레우스를 만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쉽게 그런 격정에 빠지게 되는가는 우리의 경험만 되돌아 본더라도 충분하며, 나는 그저 여기에 심리학의 대가와도 같은 몽테뉴가 들려주는 얘기를 조금 덧붙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한 호메로스를 거들어 주고 싶다.


분노라는 격정, 격정이 갑자기 꾸며낸 궤변

분노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아부하는 격정이다. 얼마나 여러 번 우리는 그릇된 원칙 아래 혼동되어서, 누가 와서 우리들 앞에 정당한 변호와 변명을 제시하면, 우리는 진리나 실속 없는 일에 대해서 분개하는가!

 * * *

이렇게 힘든 것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

 * * *

분노라고 하는 무기

다른 무기를 가지고는 우리가 그 무기를 움직이지만, 분노라고 하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우리의 손이 무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손을 조종한다. 이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그런데 호메로스가 무사 여신께 노래해 달라고 간청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일리아스』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에 가볍게 요약하고 넘어갈 문제가 결코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킬레우스의 분노'야말로 결국 『일리아스』에 담긴 이야기의 '전부'라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일리아스』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이 전횡을 일삼으며 그를 모욕하고 그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마저 빼앗아 가자 '전쟁 참가에 대한 동기'가 적잖이 부족했던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아킬레우스는 그 후 전쟁터에서 철수하게 되고, 그후 그리스 군대는 연전연패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다른 지휘관들의 여러 충언을 듣고 나서 마침내 아가멤논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결국 스스로 체면을 구기는데 그 장면이 볼 만하다. 오만했던 아가멤논은 저자세로 돌변하여 자신이 어거지로 빼앗은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에게 돌려줄 뿐만 아니라 많은 보상금까지 덧보태서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 때 아가멤논이 늘어놓은 휘황찬란한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대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이름난 선물을 열거해보겠소.
아직 불이 닿지 않은 세발솥이 일곱 개, 황금 열 탈란톤,
번쩍이는 가마솥 스무 개 그리고 잰 걸음으로
경주에서 상(賞)을 탔던 힘센 말 열두 필.
그리고 훌륭한 공예에 능한 여인 일곱 명을 주겠소.
이들은 그 자신이 잘 지은 레스보스를 함락하던 날
내가 고른 여인들로 아름다움에서 모든 여인들을 능가하오.
이들을 그에게 줄 것이며, 또 이들 속에는 얼마 전에 그에게서
빼앗아 온 브리세우스의 딸도 끼어 있을 것이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남녀간에 으레 그러하듯 그녀의 침상에 오르거나
그녀를 가까이한 적이 없음을 엄숙히 맹세하겠소.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그는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앞으로
신들께서 프리아모스의 큰 도성을 함락케 해주신다면,
아카이오이족이 전리품을 분배할 적에 그도 안으로
들어가 황금과 청동을 배에 가득 싣게 하고
또 아르고스의 헬레네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트로이아 여인 스무 명을 손수 고르게 하시오.
또 우리가 축복 받은 땅인 아카이오이족의 아르고스에 돌아가면,
그는 내 사위가 될 것이며 나는 그를 넘치는 풍요 속에서
자라는 내 귀염둥이 아들 오레스테스와 동등하게 대우할 것이오.
훌륭하게 지은 나의 궁전에는 딸이 셋 있소.
크뤼소테미스와 라이디케와 이피아낫사 말이오.
그중에서 그가 마음에 드는 애를 골라 구혼 선물 없이 그냥
펠레우스의 집으로 데려가게 하시오. 게다가 일찍이 어느 누구도
출가하는 딸에게 준 적이 없는 많은 지참금을 주겠소.
그리고 나는 그에게 번화한 일곱 도시를 줄 것이오.
······
그가 분노를 거둔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행하겠소.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9권 121∼157행

 


그때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사절단 멤버는 오뒷세우스, 아이아스, 포이닉스였는데, 이 역사의 현장을 솜씨좋은 화가들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아가멤논의 사절단을 맞는 아킬레우스>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9세기 

저토록 애를 썼지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전세가 점점 트로이아 쪽으로 기울어 마침내 해안에 올려 놓은 함선을 둘러싼 방벽이 뚫려 그리스 군대의 함선마저 불에 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네스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그의 무구를 빌려 입고 잠깐만이라도 나서 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파트로클로스가 울며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자 그때서야 겨우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는 자신의 무구와 함께 부하들을 내주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걸친 파트로클로스가 갑자기 나타나자 트로이아 군은 혼비백산했고, 그걸 보고 신이 나서 적진 깊숙이 쳐들어간 파트로클로스는 결국 적장 헥토르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만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친구의 시신과 마주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얼마나 세게 불타올랐을지는 여기서 내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의 통곡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바다의 여신이었던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나타날 정도였고,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달래며 '솜씨 좋기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여 무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와 그의 일꾼들(로마의 돋을새김)
(천병희 옮김,『소포클레스 비극전집』에서 인용)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마침내 친구를 죽인 헥토르에게 닿았고, 그가 헥토르를 죽인 뒤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녔으면서도 그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친구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인 헥토르를 죽이고 난 이후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경기까지 치르고 나서도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었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이윽고 경기도 끝나고 백성들은 각자 자신의 날랜 함선들로
돌아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저녁 식사와
달콤한 잠을 즐길 참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전우를 생각하며 울었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잠도
그만은 붙잡지 못했다.
그는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파트로클로스의 남자다움과 고상한 용기를 그리워했다.

아아, 전사들의 전쟁과 고통스런 파도를 헤치며 그와 더불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고, 얼마나 많이 고생했던가!

그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때로는 모로 누웠다가
때로는 바로 누웠다가 또 때로는 엎드리기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바다의 기슭을 정처 없이 거닐었고, 새벽의 여신은
그가 모르게 바다와 해안 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러면 그는 날랜 말들에게 전차 밑에서 멍에를 얹고는
끌고 다니기 위해 헥토르를 전차 뒤에 매달았다.
그러고는 헥토르를 끌고 죽은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세 번
돌고 나서 다시 막사로 돌아와 쉬었고, 헥토르는 먼지 속에
엎드러져 길게 누워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아폴론이
헥토르를 불쌍히 여겨 죽었어도 그의 살을 온갖 손상에서
지켜주었으니, 그는 황금 아이기스로 그의 온몸을 덮어
아킬레우스가 끌고 다녀도 그를 찢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1∼21행

 
이처럼 '아킬레우스의 분노' 때문에 헥토르의 시신이 열흘이 넘도록 수습되지 못하자 트로이아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아폴론이 마침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아폴론은 포세이돈과 함께 제우스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그 벌로 트로이아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성벽을 쌓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폴론이 여러 신들과 대책을 나눈 끝에 트로이아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애끓는 심정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자 그도 마침내 분노를 가라앉히며, 우선 전사한 자신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부탁한다.

"파트로클로스여! 하데스의 집에서라도 내가 고귀한 헥토르를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내주었다고 듣거든 나를 원망 마시오.
그는 욕되지 않을 만큼 몸값을 바쳤으니까요.
그대에게도 나는 그중에서 적당한 몫을 나눠줄 것이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592∼595행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다.
 기원전 480년경, 술잔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이런 말로 친구를 달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저녁과 포도주까지 대접하고 잠자리를 내주었을 뿐 아니라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열하루 동안 서로 휴전을 약속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혀 프리아모스에게 넘겨 주었다. 새벽이 밝을 무렵 헥토르의 시신이 마침내 트로이아 성으로 돌아오자 온 도성이 비탄하며 애도했고, 시신이 침상에 눕혀진 뒤로 만가(輓歌)를 선창하는 여인들의 애절한 노래와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미망인이 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맨 먼저 호곡을 선창했고 뒤이어 자식을 잃은 그의 어머니 헤카베가 뒤를 이었고 세 번째로 전쟁의 불씨나 마찬가지 신세였던 헬레네가 다음과 같이 호곡을 선창했다.
 

"헥토르여, 모든 시아주버니들 중에서도 내가 마음속으로
가장 아끼던 분이여! 내 남편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이며
그이가 나를 트로이아로 데리고 왔지요.
아아, 그전에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그곳 고향을 떠나온 지도 어언 스무 해가 되었어요. 하지만
혹시 시아주버니든 시누이든 고운 옷을 입은 동서든 시어머니든
- 시아버지께서는 친아버지처럼 늘 상냥하게 대해주셨지요-
다른 사람이 나를 집 안에서 꾸짖기라도 하면, 그대는 언제나
그대의 상냥한 마음씨와 친절한 말로 그를 좋게 달래며
그러지 못하게 말리곤 했지요. 그래서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대와 함께 내 자신의 불행을 슬퍼하는 거예요.
이제 드넓은 트로이아에는 내게 상냥하고 친절히 대해줄 사람은
달리 아무도 없고 모두들 나를 보고 몸서리치니 말예요."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762∼775행

 

트로이아 사람들은 아흐레 동안 수많은 장작들을 날라 왔고, '열 번째로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새벽이 밝았을 때' 헥토르의 시신은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졌다. 마침내 헥토르의 시신을 불태운 장작불마저 모두 꺼지고 그의 뼈가 수습되어 항아리에 담긴 뒤 땅 속에 묻히고, 그 위로 큰 돌들을 촘촘히 쌓아 올린 봉분마저 다 만들어지자 헥토르의 장례가 모두 끝났다. 그와 동시에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도 15,693행의 맨 끝에 닿는다.

『일리아스』는 짧게 요약하자면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리아스』만 살펴봐서는 '전쟁의 원인'과 '전쟁의 결말'을 소상하게 알기가 어렵다.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른바 서사시권(敍事詩圈 epikoskyklos)이라는 더 큰 전체를 살펴야 한다.『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결국 8편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아 서시시권'의 일부인 셈인데, 호메로스가 쓴 두 작품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이야기에 해당된다.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의 심판'과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을 다루는『퀴프리아』(Kypria)가 첫 번째 이야기이고, 『일리아스』에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인『아이티오피스』(Aithiopis)에서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맞아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을 노래하고,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들을 놓고 다투는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 목마'에 의한 일리오스의 함락은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스』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에 담긴다. 전쟁을 노래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은 전쟁이 끝난 뒤의 '귀향'을 다루는데, 여섯 번째가 『귀향』(Nostoi), 일곱 번째가『오뒷세이아』, 여덟 번째가 아들 텔레고노스에게 살해되는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텔레고노스 이야기』(Telegoneia)이다.

'트로이아 서사시' 가운데 유독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이 온전히 전해진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 어려운 연구과제에 도전하는 사람도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그 풀기 어려운 비밀 가운데 하나의 단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조금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 책에서 저자는 수많은 시인들의 여러 작품들을 예로 들어가며 '시학'을 강의하는데, 작시(作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을 무엇보다도 '플롯의 통일'에서 찾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뒷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뒷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8장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8  그리고 『소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주석
 

8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군의 집결』, 『스퀴로스의 아킬레우스』, 『텔레포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등 많은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 하더라도 '너무 길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트로이아 서사시' 8편이 지금까지 온전히 모두 남아 있었더라면 사정이 어땠을까. 아마도 그 작품들을 모두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도전이었을 게 틀림없다. 이런 사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소위 '그리스 3대 비극작가'가 쓴 작품만 하더라도 수백 편에 달하는데 그나마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작품은 고작 33편에 불과하니 얼마나 다행(?)인가.(참고로,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리는 소포클레스의 경우, 총 123편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작품명이 알려진 것은 114편이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후기작들인 비극 7편뿐이다.)





이처럼 '트로이아 서사시'도 방대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비극' 또한 엄청난 수의 작품이 쓰여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호메로스의 두 작품과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33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들만 읽어봐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우리는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온갖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고대 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호메로스의 두 작품 말고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33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트로이아 서사시'를 다룬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참고로,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오이디푸스왕』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또다른 '서사시권 서사시'인 '테바이권 서사시'를 다룬 작품들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 개요>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점을 이번에 내친 김에 한번 정리해 봤더니 33편 가운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16편의 작품이 '트로이아 서사시'를 다룬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을 대략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해 본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아가멤논 가문(아가멤논,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의 비극.
둘째, 전쟁 영웅들(아이아스, 오뒷세우스,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등)의 이야기.
셋째, 트로이아 여인들(헤카베, 안드로마케, 헬레네 등)의 비극.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술잔(기원전 550년경)

법도 도시도 없이 흩어져 유목 생활을 하는 야만적인 거인족 퀴클롭스들 중에서도 폴뤼페모스는 가장 힘이 센 데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폴뤼페모스가 아무렇지 않게 동료들을 잡아 먹자 오뒷세우스가 포도주를 권해 취하게 만든 다음, 발갛게 단 말뚝을 박아 눈멀게 하고는 도망친다. 『오뒷세이아』에서 그것은 동굴에 갖힌 자들의 정당방위지만, 『퀴클롭스』에서는 전우들을 잡아먹은 데 대한 보복이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에서 인용)


그런데 이제껏 살펴본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고대 그리스의 문학 작품들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 여인의 행방'이 몹시 궁금하다. 그녀는 바로 '헬레네'다. 그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또 결과적으로 그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그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송두리째 뒤바뀌었으니, 그녀의 행방뿐만 아니라 그녀의 '언행과 처신'에 대해서까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다시금 뒤졌더니 깜짝 놀랄만큼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흐리멍덩한 기억력도 때로는 몹시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처음으로 헤로도토스를 읽을 때 접했던 이야기를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그대로 기억했더라면 '깜짝 놀랄만큼' 흥미로울 일도 아예 없었을 뻔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아예 거기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매우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상당한 신빙성을 지니고 있어서 결코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헬레네의 행방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굳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너무나 당연히' 트로이아에 있었다고 그동안 철석같이 믿어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파리스가 그리스로 건너가 헬레네를 납치해 오기로 결심한 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행(?)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오 공주'와 '에우로페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에 대한 납치 사건이 있었고, 파리스는 단지 그런 '선행 사례'를 보고 배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즉,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살펴 본다면),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이나코스의 딸 이오는 해외무역에 종사하던 포이니케(페니키아)인들에게 납치되었는데, 그들이 아이귑토스(오늘날의 이집트)와 앗쉬리아의 화물을 싣고 여러 곳을 들르다가 그중 한 곳인 아르고스에 들러 물건을 팔다가 '이오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 아르고스의 많은 여인들과 함께 이오 공주도 해변으로 내려왔는데, 그때 포이니케인들이 서로 부추기며 여인들을 덮쳤고, 이오는 몇몇 여인들과 함께 사로잡혀 포이니케인들의 배에 태워져 아이귑토스로 끌려갔다는 것이다.(그게 사실이라면 '이오 신화'에 바탕을 둔 '암소가 건넌 여울'이라는 뜻의 '보스포러스 해협'은 뭐가 되는가.)

어쨌든 그 뒤 몇몇 헬라스인들이 포이니케의 튀로스에 상륙해 에우로페 공주를 납치하면서 그들(헬라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사이는 서로 '장군멍군'이 되었다고 한다.



분노하는 메데이아(외젠 들라크루아 작)
헌신과 사랑의 대가로 남편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남편을 지식 잃은 아비로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에서 인용)

 

그러나 그 뒤 페르시아인들에 따르면, 헬라스인들이 두 번째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헬라스인들은 전함을 타고 콜키스의 아이아와 파시스 강으로 가 일단 그곳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서 메데이아 공주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콜키스의 왕이 헬라스로 전령을 보내 납치 행위에 대해 보상금을 지불하고 딸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헬라스인들은 "당신들도 아르고스의 공주 이오를 납치하고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우리도 당신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기를, 그로부터 한 세대 뒤 프리아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헬라스에서 아내를 납치해 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먼젓번 납치 행위들도 벌 받지 않았으니 그도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헬레네를 납치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헬라스인들은 처음에 사절단을 보내 헬레네를 돌려주고 그녀를 납치한 대가로 보상금을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에 대해 트로이아인들은 메데이아를 납치해 갔던 일을 들먹이며 "당신들도 보상금은커녕 메데이아도 내주지 않았거늘 상대로부터 정녕 보상금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로?" 라고 말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中에서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공주 혹은 미녀 납치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심찮게 일어났던 '유서깊은 내력을 지닌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펼치면 '헬레네의 행방'이 여러 권에 걸쳐 상세하게 나오는데, 앞서 잠깐 소개한 이야기에 뒤이어 '헬레네'가 다시 등장하는 무대는 아이귑토스이다. 프로테우스라는 멤피스 출신의 남자가 페로스의 왕위를 계승했는데, 시설이 잘 갖춰진 프로테우스의 성역 안에 있는 '이방의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신전이 바로 '헬레네에게 바져진 신전'이라는 것이 헤로도토스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헬레네가 한동안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들었으며, 특히 그 신전이 '이방의 아프로디테'의 신전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그렇고, 아프로디테의 수많은 신전들 가운데 여신에게 '이방의'라는 별칭이 붙은 곳은 그곳뿐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헬레네에 관해 묻자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에서 헬레네를 납치하여 고국으로 항해하던 중 아이가이온 해에서 폭풍을 만나 아이귑토스 앞바다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바람이 불자 결국 아이귑토스의, 지금은 카노보스 하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물고기 염장(鹽藏) 업소들에 상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 바닷가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집 노예든 그곳으로 피신하여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표시로 몸에 신성한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무도 그에게 손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몇몇 하인들이 이 신전에 그런 법이 있음을 알게 되자 그의 곁을 떠나 신의 탄원자들로서 신전 안에 눌러앉았다. 그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해코지하려고 그를 고발하며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와 그가 메넬라오스에게 저지른 부당 행위를 남김없이 일러바쳤다. 그들은 사제들뿐 아니라 네일로스 강의 이 하구의 간수인 토니스란 자에게도 그를 고발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3장



 

그들의 고변을 들은 토니스는 즉시 멤피스에 있는 프로테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한 이방인이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자는 테우크로스의 자손으로 헬라스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나이다. 그자는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의 아내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막대한 제물을 싣고 도망가던 중 바람에 떠밀려 전하의 나라로 표류하였였나이다. 저희는 그자가 벌 받지 않고 배를 타고 떠나게 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그자가 갖고 가던 것을 빼앗아야 하나이까?" 이 전갈에 대해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에게 불경한 짓을 했다는 그자가 누구이건, 그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으니 그대들은 그자를 붙잡아 내 앞에 데려오도록 하라!"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4장



 

이 말을 듣자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체포하고 그의 함선들을 억류했다. 그리고 헬레네와 재물들과 탄원자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를 멤피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모두 대령하자 프로테우스가 엘렉산드로스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서 배를 타고 왔는지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선조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고향 이름을 말하고 어디서 배를 타고 오는 길인지도 말했다. 프로테우스가 그에게 어디서 헬레네를 손에 넣었는지 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더듬대며 사실을 말하지 않자, 탄원자가 된 하인들이 그의 말을 반박하며 그가 저지른 불의한 짓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이윽고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만약 내가 바람에 떠밀려 내 나라로 표류해 온 어떤 이방인도 죽이지 않는 것을 내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저 헬라스인을 위해 그대를 응징했을 것이오. 악당이여, 그대는 그에게 환대를 받고도 그에게 가장 불경한 짓을 저질렀소. 그대는 그의 아내를 유혹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정열의 날개를 타고 그대와 함께 도망치도록 그녀를 꼬드겼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로 오기 전에 그대는 그대를 환대한 주인의 집을 약탈했소.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방인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여인과 재물은 그대가 가져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그대를 환대한 그 헬라스인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맡아둘 것이오. 그대와 그대의 일행에게 이르노니, 3일 안으로 배를 타고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들을 적으로 취급할 것이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5장



 

사제들에 따르면, 헬레네는 그렇게 해서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호메로스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가 채택한 다른 이야기만큼 그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이야기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다가 표류하여 포이니케의 시돈에 갔었다고 알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데서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디오메데스의 무훈'에서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시행은 다음과 같다.

    그곳에는 시돈의 여인들이 온갖 솜씨를 다 부려 만든 옷들이
    간직되어 있었으니, 이 여인들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헬레네를 데리고 오던 길에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시돈에서 손수 데려왔던 것이다.

이 시행들을 보면 호메로스가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쉬리아는 아이귑토스의 이웃 나라고, 시돈 시를 건설한 포이니케인들은 쉬리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6장



 

이 시행들과 이 구절은 『퀴프리아』118 가 호메로스가 아닌 다른 시인의 작품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퀴프리아』의 시인은 순풍이 불고 바다가 잔잔하여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테를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일리온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표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메로스와 『퀴프리아』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

118 『퀴프리아』(Kypria)는 단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른바 '서사시권 서사시'들의 하나로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그리고 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7장



 

내가 사제들에게 일리온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헬라스인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묻자, 그들은 메넬라오스에게 직접 물어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헬레네가 납치된 뒤 헬라스인들의 대군이 메넬라오스를 돕기 위해 테우크로스의 나라로 가서 그곳에 상륙한 다음 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리온으로 사절단을 보냈는데, 메넬라오스도 그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사절단은 성내에 들어오자 헬레네와, 알렉산드로스가 훔쳐 간 재물들을 돌려주고 범죄행위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테우크로스 자손들은 맹세를 하든 않든 후일에도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는데, 자기들은 헬레네도 문제의 재물들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은 모두 아이귑토스에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귑토스 왕 프로테우스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기들이 보상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헬라스인들은 자기들이 우롱당하고 있다고 믿고는 포위 공격 끝에 결국 도시를 함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함락해도 헬레네는 보이지 않고 종전과 같은 말을 듣게 되자, 헬라스인들은 처음 들은 말을 믿게 되었고 메넬라오스를 프로테우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8장



 

아이귑토스에 도착한 메넬라오스는 네일로스 강을 거슬러 멤피스까지 올라가 사건의 전말을 사실대로 말하고는 큰 환대를 받았고, 무탈한 헬레네와 자신의 재물들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환대받았음에도 아이귑토스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그는 출항하고 싶었지만 역풍이 계속 불어 발이 묶이자 몹쓸 짓을 생각해내어, 그곳 주민들의 아이 두 명을 붙잡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의 비행이 탄로 나 아이귑토스인들이 분개하여 추격해 오자 그는 함선들을 이끌고 곧장 리뷔에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어디로 갔는지 아이귑토스인들도 내게 말해줄 수 없었다. 사제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런 일들의 일부는 탐문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9장



 

이상이 아이귑토스의 사제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헬레네에 관해 그들이 한 말에도 동의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헬레네가 일리온에 있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동의하든 말든 헬라스인들에게 반환되었을 것이다. 프리아모스도 그의 다른 친척들도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와 동침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자기 몸과 자식들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러고 싶었겠지만 수많은 트로이아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우다 전사하고, (우리가 서사시를 믿어야 한다면) 프리아모스 자신의 아들들도 교전 때마나 두세 명씩 죽게 된다면, 생각건대 프리아모스는 설사 그 자신이 헬레네와 동거한다 해도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헬레네를 아카이오이족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는 왕위 계승자가 아닌 만큼 노왕 프리아모스를 대신해 전권을 휘두를 처지도 아니었다. 그의 형님으로, 그보다 더 남자다운 헥토르가 프리아모스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과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불행 때문에라도 말썽꾸러기 아우를 비호해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만에. 트로이아인들에게는 내줄 헬레네가 없었던 것이고, 사실을 말해도 헬라스인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된다면, 신께서 트로이아를 쑥대밭을 만드신 것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큰 악행에는 엄한 신벌(神罰)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간들에게 명명백백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내 생각이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그것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20장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헤로도토스의 이러한 주장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 바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이다. 여성들의 심리묘사에 대해 유달리 탁월한 면모를 보였던 그가 '헬레네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노래하기에는 아무래도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트로이아 보다는 아이귑토스에 머물고 있는 헬레네를 그리는 것이 맞춤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여기서 잠깐 '헬레네가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헬레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헬레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더 이상 지난 일을
탄식하며 슬퍼하지 않을래. 내 남편을
되찾았으니까. 그이가 트로이아에서 돌아오기를
여러 해 동안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메넬라오스

당신은 나를 갖고, 나는 당신을 갖고 있소. 긴긴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여신의 속임수를 알 수 있었소.
 

         헬레네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나요.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눈물이 아니라, 환희의 눈물이에요.

 

    메넬라오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누가 이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소?

         헬레네

천만뜻밖에 나는 당신을 가슴에 안고 있는걸요.

   메넬라오스

나도 마찬가지요. 나는 당신이 이데 산 기슭의 도시로,
일리온의 불행한 성탑으로 도망간 줄 알았소.
정말이지, 어떻게 당신이 내 집을 떠날 수 있었소?

         헬레네

아아, 쓰라리도다. 당신이 거슬러 올라가는 그 재앙의 근원은!
아아, 쓰라리도다, 당신이 캐묻는 그 이야기는!

    메넬라오스

말해보시오. 신께서 주신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야 하오.

 - 《헬레네》648-663행



에우리피데스는『메데이아』를 비롯하여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여인'을 유난히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그가 '트로이아 전쟁 때문에' 돌연 비극적 운명의 급류 속으로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던 여러 여인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일일이 따로 등장시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의 작품 가운데 '헬레네의 언행과 처신'과 관련하여 특히 인상적인 대목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은 『트로이아 여인들』을 빼놓기 어려운데, '전쟁이 끝난 뒤 전리품이 된 트로이아 여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드물지 싶다.

그런데 우리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헬레네'에게 쏠려 있으므로 그녀와 관련된 인상깊은 대목 '두 장면'만 간략히 소개해 보고 싶다. 우선 첫 번째로는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가 주된 화자로 나오는 장면이다. 그녀는 '전쟁에서의 패배'에 따른 후속 조치로 그리스 군의 손에 곧 죽게 될 자신의 어린 아들 때문에 비탄에 빠진 채 울부짖으면서도 끝내는 결국 그런 비극을 초래케 한 근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인 '헬레네'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한다.


     안드로마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아, 둘도 없이 소중한 내 아들아!
네가 이 불쌍한 어미 곁을 떠나 적의 손에 죽게 되다니.
네 아버지의 용맹이 네게는 아무런 덕이 되지 못하는구나.
아아, 내 불행한 결혼 침상과 결혼식이여,
너희들이 전에 나를 헥토르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은
나로 하여금 다나오스 백성들을 위한 제물이 아니라,
풍요한 아시아의 왕이 될 아들을 낳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내 아들아, 울고 있구나. 네 불행을 느끼는 게냐?
너는 왜 나를 꼭 붙잡고 내 옷에 매달리며,
새끼 새처럼 내 죽지 밑으로 파고드느냐?

헥토르는 너를 구해주려고 그 이름난 창을 집어 들고
지하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네 아버지의 친척들도,
프뤼기아인들의 군대도 마찬가지다.
너는 비참하게도 높은 곳에서 거꾸로 떨어져
애도해주는 이도 없이 숨을 거두게 되는구나.
오오, 내 품에 안긴 이 어린 것, 어미에게 더없이 귀여운 것!
오오, 달콤한 체취! 내 이 가슴으로 포대기에 싸인
너를 기른 것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고,
지치도록 걱정하고 애쓴 것마저 허사가 되었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네 어미를 사랑해다오! 너를 낳아준
이 어미에게 바싹 붙어 네 두 팔로 내 목을 껴안고
내 입에 네 입을 맞추어다오!
헬라스인들이여,
그대들은 야만족에게나 어울릴 잔혹한 짓을 생각해냈구려.
그대들은 왜 아무 죄 없는 이 애를 죽이는 거요?
오오, 튄다레오스의 딸이여, 그대는 결코 제우스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단언하건대 수많은 아버지한테서,
말하자면, 먼저 악령과, 다음은 질투와 살육과 죽음과 대지가
기르는 온갖 재에서 그대는 태어난 거예요.
제우스께서 그대를 낳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해요. 그대는
수많은 이민족들과 헬라스인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어요.
그대에게 화 있어라! 그대는 더없이 아름다운 그 눈으로
프뤼기아인들의 이름난 도시를 수치스럽게 파괴해버렸어요.

자, 그대들은 이 애를 데려가고 끌고 가서 던지세요.
그게 좋겠다 생각되면, 이 애의 살점으로 잔치를 벌이세요.
 

     코로스장

가련한 트로이아여, 너는 한 여인과
그녀의 가증스런 결혼 때문에 수만 명을 잃었구나!


 - 《트로이아 여인들》740-781행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대목은 '트로이아의 함락' 뒤에 마침내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때 그곳에는 두 사람 뿐만 아니라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도 함께 있었는데, 헬레네와 헤카베, 즉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헬레네의 잘못'에 대해 서로 격렬하게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헬레네의 억지스런 궤변과 그런 헬레네를 꾸짖는 헤카베의 반론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뒤의 '헬레네의 행방'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일부 대목들은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핵심이므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헤카베 

메넬라오스여, 아내를 죽이려는 그대에게 찬사를 보내요.
그녀를 보는 것을 피하시오. 애욕의 포로가 되지 않게.
그녀는 남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도시들을 파괴하고,
집들을 불태워요.
그녀에게는 그런 마력이 있지요.
나는 그녀를 아오. 그대도, 그리고 당해본 사람들도.
 

         헬레네    (천막에서 끌려 나오며)

메넬라오스여, 당신의 첫 인사는 겁주기에 충분하군요.
나는 당신의 하인들의 손에 억지로 이 천막 앞으로
끌려 나왔으니 말예요. 당신이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고 싶어요. 헬라스인들과
당신은 내 목숨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지요?

   메넬라오스 

당신 착각하고 있구려. 당신을 죽이도록 전군(全軍)이 당신을
내게 넘겨주었고. 당신은 내게 부당한 짓을 했던 것이오.


         헬레네
 

그런 처사에 내가 반론을 제기해도 될까요?
내가 죽는다면, 나는 부당하게 죽는 것이니까요.
 

    메넬라오스 

나는 논증하러 온 게 아니라 그대를 죽이러 왔단 말이오.


         헤카베
 

메넬라오스여, 그녀의 말을 들어보시오. 그럴 기회도 없이
그녀가 죽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반론을 제기하게
해주시오. 그대는 그녀가 트로이아에서 저지른 악행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오. 양쪽 말을 다 들어보면,
그녀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오.

(이어서 전개되는 '헬레네와 헤카베 사이의 긴 논쟁'은 생략)

      코로스장 

메넬라오스 님, 그대는 조상들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아내를
벌주세요. 그리하여 그대가 유약하다는 헬라스 쪽 비난을 막고
그대의 적들에게는 그대가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메넬라오스 

그대의 생각은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오. 이 여인은
제 발로 내 집을 떠나 외간 남자의 잠자리로 갔던 것이오.
그리고 그녀의 퀴프리스 이야기는 허구요 핑계에 불과하오.
(헬레네에게)
당신은 가서 돌에 맞아 죽으시오! 그리하여
아카이오이족의 긴 노고를 짧은 죽음으로 보상하시오!

그리고 나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시오.
 

         헬레네    (그의 발 앞에 쓰러지며)

당신의 무릎을 잡고 빌고 있어요. 제발 신들의 잘못을
내게 돌리지 마세요! 나를 죽이지 마시고, 용서해주세요!

         헤카베 

그대는 이 여인이 죽인 전우들을 배신하지 마세요.
내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의 이름으로 간청해요.

    메넬라오스

관두시오. 노파여! 나는 이 여인의 청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이 여인을 데려가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것이오. 그녀가 배로 운반될 수 있도록 말이오.

          헤카베    

그녀가 그대와 한 배에 오르지못하게 하세요!

    메넬라오스

그건 왜요? 그녀가 전보다 더 무거워지기라도 했나요?

         헤카베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게 되지요.

 - 《트로이아 여인들》890∼1051행



이제껏 살펴본 대로 '헬레네의 행방'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뿐만 뿐만 아니라 설사 같은 작가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쓴 작품들이 바뀔 때마다 또다시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작가와 작품에 따라 그녀의 '언행과 처신' 또한 '사실(史實)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점들은 아마도 신들이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모습들과도 일견 닮은 듯한데, 결국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상상력'이 그만큼 자유롭고 풍성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이오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 등에 얽힌 신화조차도 일단 '역사'로 되돌려 놓고, '헬레네 납치 사건' 또한 그러한 선행 사례들을 모방한 것으로 보는 헤로도토스의 이야기까지 들으면,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인간들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조차도 '불멸의 존재인 신들의 다툼'으로 격상시키고, 온갖 신들과 인간들이 한데 뒤섞여 벌였던 끔찍한 전쟁을 그토록 장대하고도 치밀한 서사시로 꾸며 노래한 호메로스의 재주가 새삼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 주사위놀이를 하는 아킬레우스(왼쪽)와 아이아스.
    기원전 530년경, 손잡이가 둘 달린 항아리 세부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입심좋은 몽테뉴가 호메로스를 두고,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왔다.'고까지 말한 것도 이쯤되면 지나친 과찬이 아니라 진실로 아름다운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호메로스이다. ······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이제 긴 글을 맺을 차례다. 신화 작가로 널리 알려진 고(故) 이윤기 님은 2002년에『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제1권의 100쇄 출간을 기념하여 발행된 <신화, 그 황홀한 눈뜸의 순간들>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자면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헬레니즘(그리스 문화)과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헤브라이즘(히브리 문화) 이해를 길잡이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서양 문화를 보는 눈길이 사뭇 달라집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신화 독자들이 늘어가는 사태가 나로서는 여간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기쁨과 자랑스러움은, 신화 읽기를 통하여 이 세계를 대하는 독자들의 눈썰미가 날로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라는 데 대한 기쁨이자 자랑스러움일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조차 이렇게 '신화'에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 길게 늘어놓아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나마 내가 이쯤에서 어디 궁색한 변명거리라도 없을까 하고 돌아보니 마침 6년 전 봄에 고대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에 들렀던 일이 떠오른다. 글쎄, 저 전설적인 인물인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바로 그곳을 다녀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이런 글을 써 볼 욕심을 부렸더라도 너무 주제넘은 일이라고 타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물론 내가 멤피스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그 유명한 부부가 그곳에 꽤나 오랫동안 머물다 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 도시에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스스로 위안을 삼을 거리를 하나 더 발견했다. 정작 '신화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이윤기 님조차도 적어도 1999년까지는(그가 우리 나이로 '쉰 셋'이 될 때까지) 그리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단다. 내게도 이윤기 님처럼 어느날 불쑥 '그리스로 함께 떠나자'는 말을 걸어오는 후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나도 만사 제쳐두고 훌쩍 '신화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리스에 가게 되면 나도 이윤기 님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신화 속 주인공'을 찾아 그리스 전역을 마구 헤집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신전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가끔씩 돌부리에 채여 좀 넘어지기도 하면서 또 거기에 무슨 보물이라도 없나 좀 살펴보기도 하고. 


"형, 그리스 가봤어요?"
"아직 못 가봤어."
"그리스에도 안 가보고 그리스 신화 책을 줄줄이 써요? 터키와 그리스를 아우르는 꾸러미 여행을 기획하고 있는데 동행하지 않겠어요? 형은 신화를 좋아하니까 어차피 그리스와는 낯을 익혀야 하지 않소?"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들어가는 말> 중에서

 

 

접힌 부분 펼치기 ▼

 

 

 



























 












 







































 

펼친 부분 접기 ▲

 

 

 

 




 
 
야클 2014-04-11 22:48   댓글달기 | URL
ㅎㅎ 역시 oren님 글 답게 엄청난 분량과 내용의 페이퍼네요. 오늘은 추천만 누르고 다음에 여유있을 때 차분히 읽어보겟습니다. ^^

oren 2014-04-12 15:28   URL
책들끼리 연결된 보이지 않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다보니 글이 한정없이 길어지더군요. ㅎㅎ
공감 눌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야클님.
 



 - 아직도 벚꽃이 한창인데 어느새 양지바른 화단엔 철쭉 꽃망울이 방긋~




 - 호수공원은 이제사 벚꽃이 모두 터졌다.





 - 벚꽃은 터졌으나 바람끝은 거꾸로 차갑다.





 -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봄이다.





 - 봄바람이 불어도 꽃잎들은 아직 제몸에 딱 붙어 있다.





 - 목련은 어느새 터진 지 오래다.





 - 땅 속에선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기 바쁘고.





 - 처녀들은 일찌감치 꽃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 저마다의 봄.




 - 하늘의 별을 담은 벚꽃.





 - 무지개가 걸린 봄.





 - 온통 봄빛.





 - 고목에 핀 봄.





 - 여름이 엿보이는 봄.





 - 만개한 봄.





 - 꽃보다 처녀.





 - 팝콘처럼 터지는 봄.





  - 붐비는 봄.





 - 봄소풍.





 - 바람에 흔들리는 봄.



 

 




 
 
사마천 2014-04-06 19:44   댓글달기 | URL
눈부신 사진들이 정말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감사 ^^

oren 2014-04-07 11:32   URL
어제는 날씨가 청명했던 덕분에 꽃들도 더욱 화사한 모습으로 보였어요.
오랜만에 댓글 남겨주셔서 더욱 반갑습니다.^^

야클 2014-04-09 13:31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빠서 봄을 느낄 겨를도 없었는데 벌써 봄이 가고 있네요. oren님 서재 사진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그간 안녕하셨나요? ^^

oren 2014-04-09 22:26   URL
바쁘다는 건 좋은 일이지 싶어요. 봄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면 더더욱 좋은 현상이 아닐까 싶네요.ㅎㅎ

아무튼 오랜만이고, 이렇게라도 소식을 주고 받으니 반갑네요. 바쁘시더라도 가끔씩 계절에 흠뻑 빠져 보는 즐거움도 누리시길 바랄께요. 야클님~
 

 

 “역사상 살라미스 해전만큼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낸 적은 없었다.”
 - 헤겔


 * * *


 


<살라미스 해전> (빌헬름 폰 카울바흐, 1868년)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지휘했던 몽고메리 장군은 알라메인 전투(1942년)에서 '사막의 여우' 롬멜을 이집트에서 몰아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기도 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여러 번 쌓은 인물이지만 전쟁의 이론과 역사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집필했다.

그가 쓴 1,038쪽에 이르는 몹시도 두툼한 책인『전쟁의 역사』를 펼쳐보면 인류의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왔는지 보다 더 생생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그가 찾아낸 '초기 시대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들어 보자.

인간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역사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우리는 인간 사회가 전쟁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원전 7000년경으로 돌아가 예리코를 둘러보면, 1만여 평 지역이 높이 6미터가 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아주 튼튼한 요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해자(垓字)는 단단한 바위에 약 4.5미터의 폭과 2.7미터의 깊이로 패어 있다. 아마 2,500명쯤의 주민 가운데 500∼600명은 전사였을 것이다. 이들 주민들은 공학이나 요새 건축에 능하고 경험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돌로 만든 화살촉 유물로 보아 활과 화살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지역을 잘 알고 있고, 1931년에는 사해의 골짜기에 있는 고대 도시들의 성벽과 동굴을 탐사하며 여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처럼 대규모의 군사적 대비를 한 것으로 보아 그들에게는 무섭고 강력한 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79쪽)


1908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그가 평생 동안 수많은 전쟁을 두루 겪는 와중에도 꾸준히 '전쟁의 역사'를 고찰하고 '역사의 현장'을 직접 두루 살펴본 덕분에 그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현장감'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잠시나마 우리와 함께 살았던(그의 생몰연대는 1887∼1976년이다)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서양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꿀 뻔했던 '마라톤 전투'와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벌어졌던 그 유명한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제법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오래 전에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고 나서 한동안 '레오니다스 왕'이 이끈 300인의 전투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두루 찾아본 일이 있었는데, 심지어는 마침 그때 그리스의 아테네 무역관에서 몇 년째 근무중이던 고교 동창 녀석과도 '테르모퓔라이 협곡'과 '레오니다스 왕'에 대한 이야기를 꼬치꼬치 물어볼 정도였었다.(그 친구는 테르모퓔라이 협곡을 '당연히' 가봤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그 책을 다 읽은 직후에 바로 그 유명한 전투를 다룬 영화『300』이 개봉되는 바람에 나에겐 그 영화가 무슨 '특별한 선물'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내가 책으로만 접했던 그 유명한 협곡에서의 전투 이야기가 그 '영화'를 통해 과연 얼마만큼 생생하게 재현되었을까를 남달리 유심히 살펴보는 일도 몹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를 읽어보면 그가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느꼈던 감상이 너무나 무미건조한 듯해서 나로서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의 글을 여기서 약간 인용해 둘 필요가 있다.
 

······ 그때 그리스군에게 테르모필라이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7,000명의 장갑 보병 - 그 중 스파르타인은 300명뿐이었다 - 을 이끌고 사흘 동안 페르시아의 전 병력을 저지했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에게 산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반역자가 있어 스파르타 왕의 군대는 모두 죽음을 당했다. 페르시아는 그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아테네를 향해 남진했다. ······

나는 1933년에 테르모필라이를 방문하여 그 산길을 방어하다 죽은 스파르타군을 애도하는 기념비를 보았다. 비문을 번역하면 이렇다.

      이곳을 지나는 자, 가서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말하라,
      우리는 스파르타의 군법에 복종해, 여기 누워 있노라고. (134쪽)


그런데 몽고메리가 들려주는 '테르모퓔라이 전투'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내가 꼭 되짚고 넘어갔으면 싶은 게 한 가지 있다. 그 유명한 전투에서 300인의 전사가 결정적으로 패배한 원인은 '협곡에 이르는 또다른 샛길' 때문임이 명백하지만, 정작 그 샛길을 가르쳐 준 사람은 몽고메리가 말한 '그리스군 진영의 반역자'가 아니라,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양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이미 페르시아 군대의 수중으로 떨어진 '현지 사정에 밝은' 멜리스 토박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멜리스인의 고자질 때문에 난공불락의 협곡에서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무려 엿새 동안이나 끈질기게 버텨내며 페르시아를 곤경에 빠뜨린 일도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고, 그 멜리스인을 앞세우고 오솔길을 통해 느닷없이 나타난 페르시아군들 때문에 결국 스파르타의 용맹무쌍한 300인의 전사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멜리스인들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페르시아에 부역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을 때, 에우뤼데모스의 아들 에피알테스라는 멜리스인이 그와 면담하러 왔다. 왕이 크게 포상하리라고 기대하고 그는 테르모퓔라이에 이르는 산속 오솔길을 알려주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곳 고갯길을 지키고 있던 헬라스인들을 죽였다. 나중에 그는 라케다이몬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텟살리아로 도망쳤는데,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인보동맹 회원국 대표들이 퓔라이에서 모임을 갖고 그의 머리에 현상금을 걸었다. 그 뒤 그는 안티퀴라로 돌아갔다가 아테나데스라는 트라키스인에 의해 살해되었다.(744쪽)
  - 헤로도토스, 『역사』



레오니다스의 영웅적 면모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다시금 새삼스럽게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고 남겼던 리뷰 가운데 한 대목만은 여기서도 다시금 인용하고 싶다.



아래의 그림은 1814년에 다비드가 완성한 <테르모필라이에서의 레오니다스>라는 작품이다. 당시 나폴레옹은 레오니다스가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는 전쟁에서 패한 자라며 전쟁에 지는 장면을 그리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다비드에게 충고했다고 한다. 역사를 움직인 수많은 인물 가운데 예수 다음으로 많은 전기가 씌어졌다는 나폴레옹 조차 이 그림이 전시되던 바로 그 해에 엘바 섬으로 유배되고 만다.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배를 떠난 나폴레옹은 과연 영웅다웠다. 그는 이듬해 2월에 엘바섬을 탈출했으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에 걸맞게 결국 위대한 황제 폐하로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Leonidas at Thermopylae(1814, Musée du Louvre, Paris)

여행자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들의 명을 수행하고 여기에 누워 있다고.
(스파르타 전사자를 위해 세운 시모니데스의 비문) 

 - 헤로토토스의 『역사』에 대한 리뷰, 인류 최초의 동서간 대전쟁을 다룬 역사의 원전 中에서



레오니다스 왕에 얽힌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마도 2,0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책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 틀림없겠지만, 내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발견한 몇몇 대목을 여기에서 인용하고 싶은 욕심도 억누르기 어렵다.
 

가장 용감한 자

가장 용감한 자는 때로는 가장 불행한 자이다. 그러므로 개선 못지않은 패배도 있는 것이다. 태양이 그의 눈으로 보아 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승리인 살라미스·플라타에아·미칼라·시칠리아 등 4대 승리의 영광 전부를 뭉쳐 보아도, 테르모필레 협곡에서의 레오니다스와 그의 부하들이 전멸당한 영광에 감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234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레오니다스의 딸

나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이며 딸인 켈로니스의 아름다운 마음을 얼마나 존경하고 싶은지. 그의 남편 클레옴브로토스가 혼란의 틈에 부친 레오니다스에게 대항해서 우세하던 동안, 그녀는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추방당한 부친의 어려움 속에 그의 편을 들며 승리자에게 반대했다. 그런데 운이 뒤집힌 다음 이 여자는 행운의 편을 들려고 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기 남편의 편을 들며 그가 패하여 달아나는 뒤를 따라간다. 그녀는 자기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자기가 가련하게 보아 주는 편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선택의 길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세도가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약한 자들에게는 거만하게 굴던 피로스보다는 당연히 플라미니우스의 본을 더 좇고 싶다. 그는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빌려 주었다. (1230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그런데 키케로가 『법률론』에서 '역사의 아버지'라고 추켜세운 헤로도토스는 왜 그토록 드넓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역사』라는 방대한 책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을까? (그는 '여행 사정이 극도로 열악하던 그 시기에' 흑해 연안을 거쳐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지역과 에우프라테스 강과 바뷜론은 물론, 페르시아 전쟁과 관계가 있는 그리스 본토의 모든 지방과 소아시아, 남이탈리아, 시칠리아를 비롯한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가 쓴 책의 서언은 다음과 같다.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非) 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그래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인들과 비그리스인들 사이에 있었던 오래된 갈등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소개되는데, 그때마다 각각의 민족들에 대한 지리학적·인종학적·민속학적·역사적 자료들이 수없이 덧붙여져 소개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방대하게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994쪽에 달하는 이 두터운 책의 백미에 해당하는 부분은 결국 마라톤 전투, 테르모퓔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이 전투이며, 이 책의 중심 인물들 또한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와 크세르크세스 두 대왕으로 모아지며, 그들의 탐욕과 교만이 결국 전쟁의 원인이었음을 헤로도토스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나 또한 이 글을 통해 헤로도토스의『역사』에 나타난 3차레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의 '발발 원인 그 전개 과정'들을 얼마간 자세히 살피고 싶은 욕심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올해 초에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아이스퀼로스가 쓴 『페르시아인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을 읽어보고 나서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싼 풍경들이 새삼 눈앞에 생생히 떠올라 그 전쟁의 영웅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플루타르코스가 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물론,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새롭게 펼치게 되었는데, 특히『역사』에 기록된 여러 인상적인 대목들은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생생하고 놀라운 장면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이런 책들을 읽고 있을 무렵엔 마침 <살라미스 해전>을 다룬『300, 제국의 부활』이라는 영화가 조만간 개봉될 예정이라는 희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러니 나로서는 영화 『300』에서 맺었던 (책을 읽고 나자 곧바로 영화가 개봉되는) 묘한 인연을 다시금 반복해서 얻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만간 개봉될 그 영화를 좀 더 흥미롭게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되살펴볼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제목의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절로 생겼던 것이다.(보름쯤 전에 이 글을 쓰다가 잠시 게으름을 피운 사이에 이미 영화가 개봉되고 말았다. 아직 그 영화를 못 봤지만 아마 며칠 이내로 영화관으로 달려가지 싶다.)

다시 페르시아 전쟁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 왕은 분에 못이겨 더욱 큰 전쟁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대 왕이었던 퀴로스의 바빌로니아 정복과 캄뷔세스의 아이귑토스(현재의 이집트) 정복으로 크게 영토를 확장한 페르시아 제국이 도시국가 수준이었던 아테나이에게 어이없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페르시아 왕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출처:두산대백과)

그리하여 다레이오스는 '대규모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 관습대로 자신의 후계부터 지명해야 했는데, 왕권의 향방을 두고 배다른 형제들인 그의 아들들 사이에 큰 분쟁이 벌어지는 등 혼란스러웠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왕위에 오른 뒤 새로 얻은 부인인 '아톳사'가 낳아준 네 명의 아들 가운데 맏이였던 크세르크세스를 페르시아의 왕으로 지명했다. 크세르크세스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 데는 퀴로스의 딸이었던 아톳사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다레이오스는 한동안 열심히 원정 준비에 열중했으나, 아이귑토스와 아테나이를 응징하기도 전에 재위 36년 만에 사망(기원전 486년)하고 만다. 뒤이어 왕위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는 정작 헬라스 원정에는 애당초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자신의 고종사촌이자 다레이오스의 생질인 마르도니오스와 같은 인물들의 끈질긴 부추김 때문에 결국 대규모 전쟁을 일으킬 결심을 굳힌다.

페르시아인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르도니오스는 제1차 페르시아 전쟁때 대군을 이끌고 유럽 원정에 나선 총사령관이었는데, 그가 육군과 함께 마케도니아에 진을 치고 있던 중 페르시아의 함대가 아토스 곶을 우회하려다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맹렬한 북풍이 덮쳐 수많은 함선들을 아토스에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3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2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자, 원정에 완전히 실패하고 아시아로 군대를 철수한 경험이 있었다. 그가 훗날 살라미스 해전에서 또다시 대패하자 '전쟁을 부추긴 주범'으로 몰려 처형될까 두려워 크세르크세스에게 '정예병 30만 명을 뽑아주면 헬라스를 빼앗아 왕께 바치겠다'고 선수를 친 뒤, 전쟁터에 남아 크세르크세스의 탈주를 돕는 것과 동시에 이듬해 재차 아테나이를 함락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결국 플라타이아이 대전투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번에 3차 헬라스 원정에 나서기에 앞서 그가 크세르크세스를 전쟁에 나서도록 부추긴 여러 말들 가운데 한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전하, 페르시아인들에게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아테나이인들을 응징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옵니다. 지금 당장은 전하께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아이귑토스의 콧대를 꺽어놓으신 다음에는 아테나이로 진격하소서. 전하께서 후세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으시고,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전하의 나라로 침공할 엄두를 못 내도록 말이옵니다." (633쪽)


이밖에도 크세르크세스에게 전쟁을 부추긴 인물들은 여러 사람이 더 있었지만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기는 힘들다. 그대신 크세르크세스가 선왕이 죽은 이듬해 아이귑토스를 정복한 뒤 아테나이 원정에 착수하기 직전에 페르시아의 요인들을 회의에 소집한 후 자신의 의도를 직접 밝힌 대목도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
 

"페르시아인들이여, 나는 여기서 새로운 관행을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옛 관행을 따르고자 할 뿐이오. 옛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퀴로스께서 아스튀아게스를 권좌에서 축출하시고 왕권이 메디아인들에게서 우리에게 넘어온 뒤로 우리는 한시도 무위도식하지 않았다고 하오. ······ 그래서 나는 왕위에 오르자, 어떻게 하면 내가 선왕들에게 뒤지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페르시아인들의 권력을 그분들 못지않게 늘려줄 수 있을지 고민했소.  ······

나는 헬레스폰토스에 다리를 놓고 에우로페를 지나 헬라스로 진격하여, 아테나이인들이 페르시아인들과 내 선친께 저지른 모든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할 참이오." (635∼636쪽)


그의 말에 이어 마르도니오스가 왕의 제안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다음과 같은 말을 덧보탰다.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까지 태어났던 페르시아인들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페르시아인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분이시옵니다.  ······  듣자 하니 헬라스인들은 무식하고 무능하여 아주 어리석게 교전하는 버릇이 있다 하옵니다. ······  하거늘 전하, 전하께서 막강한 육군과 전 함대를 이끄시고 아시아에서 진격하신다면 누가 전하에 맞서 싸우려 하겠사옵니까?"

이런 말들을 듣고 아무도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할 용기가 없어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자신이 크세르크세스의 숙부라는 것을 믿고 아르타바노스가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그러실 필요도 없으신데 그런 위험을 자초하시지 마시고 제 진언을 받아들이오서. 지금은 이 회의를 파하소서. 그리고 혼자 심사숙고해보시고 적기라고 여겨질 때 전하께서 상책이라고 생각하시는 바를 저희들에게 통고해주소서. 심사숙고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좋은 계획을 세운 자는 설사 어떤 방해를 받는다 해도 계획이 휼륭했다는 사실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계획은 우연에 의해 좌절된 것이옵니다. 하오나 나쁜 계획을 세운 자는 설사 행운의 도움으로 횡재를 한다 해도 계획이 나빴다는 사실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사옵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는 마르도니오스에게도 경고를 잊지 않았다.

"자네는 헬라스인들을 비방하기를 삼가시게. 그런 비방은 그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네. 자네는 헬라스인들을 폄하함으로써 그자들을 징벌하시도록 전하를 부추기고 있으며, 자네의 모든 열성이 노리는 것도 분명 그것이네. 제발 그러지 마시게. 모함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네. 모함은 두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한 사람을 그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네. 모함하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그 자리에 없는 자를 고발하기 때문이며, 그의 말을 믿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아보기 전에 판단하기 때문이네. 그 자리에 없는 자가 두 사람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한 사람은 그를 모함하고, 다른 사람은 그를 나쁘게 여기기 때문이네."

이밖에도 여러 우여곡절이 더 있었지만 크세르크세스는 아이귑토스를 정복한 뒤 만 4년 동안(기원전 484∼481년) 모병을 하고, 아토스 곶을 우회할 필요가 없도록 3년에 걸쳐 대규모 운하를 파는 등 원정에 필요한 준비를 갖춘 후 5년째 되던 해, 대군을 이끌고 마침내 원정길에 올랐다. 헤로도토스의 표현대로 '그것은 우리가 아는 한 가장 규모가 큰 군대'였다.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에서 헬라스로 이끌고 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던가? 큰 강들을 제외하고 그들이 마셔버려 고갈되지 않은 물이 있었던가? (648쪽)


페르시아의 대군이 진군하는 길목에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이 있었는데, 페르시아 왕은 그 해협에 포이니케인들과 아이귑토스인들을 동원하여 다리를 놓도록 했다. 그런데 해협에 다리들이 놓였을 때 세찬 강풍이 일더니 다리를 덮쳐 산산이 부숴버리고 말자, 크세르크세스는 노발대발하며 헬레스폰토스에게 매 300대를 치고 바닷물에 족쇄 한 쌍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이 일이야말로 크세르크세스가 얼마나 오만한 인물이었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가 헬레스폰토스에 낙인을 찍도록 낙인 찍는 자들도 보냈다고 들었다. 아무튼 그가 헬레스폰토스에 매를 치며 다음과 같은 야만스런 말을 하게 한 것은 확실하다. "이 쓴 물아, 네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으신 우리 주인께 네가 해코지를 한 죄로 우리 주인께서 네게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대왕께서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너를 건너가실 것이다. 너처럼 탁하고 짠 강물에 아무런 제물을 바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크세르크세스는 바다를 그렇게 응징하게 하고 나서 헬레스폰토스에 다리를 놓는 일을 감독하던 자들의 목을 베게 했다. (655쪽)


군대가 아뷔도스에 도착하자 크세르크세스는 전군을 관병(觀兵)하고 싶어 언덕에 특별히 마련된 흰 대리석 단에 앉아 해안을 내려다보며 육군과 함대를 관병했는데, 그때 헬레스폰토스가 온통 함선으로 덮이고 아뷔도스의 해안들과 들판들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자 그는 처음엔 자신을 행복하다고 기리다가 나중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헬라스 원정을 만류했던 그의 숙부 아르타바노스가 그의 행동을 보고 놀라서 물었는데, 그들이 나눈 대화가 자못 인상적이다.
 

크세르크세스가 대답했다. "인생이란 얼마나 짧은 것인가 생각하다가 비감에 잠겼다오. 여기 있는 저토록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앞으로 100년 이상 살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오." 아르타바노스가 대답했다. "살다 보면 그보다 더 슬픈 일도 많사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저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 중에 더 오래 사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싶은 생각이 한 번이 아니라 가끔씩 들지 않을 만큼 행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죽음이 인간에게는 괴로운 인생으로부터의 가장 바람직한 도피처가 되는 것이옵니다. 그것을 보면 신께서 시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사옵니다. 신께서는 인생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맛만 보여주시기 때문이옵니다."
(660쪽)


페르시아의 대군이 어느 부족에서 얼마나 참가했고, 함대는 어느 부족에서 얼마나 제공했는지,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누가 맡았는지를 헤로도토스가 꼼꼼하게 기록한 건 제쳐두더라도 여자의 몸으로 헬라스 원정에 참가한 '여전사 아르테미시아'에 대해서는 나도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밖에 다른 지휘관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으나, 아르테미시아만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여자의 몸으로 그녀가 헬라스 원정에 참가한 것은 감탄을 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사후(死後) 정권을 장악했고, 다 자란 아들이 있고 전혀 강요받지 않았음에도 자진하여 용맹심에서 원정에 참가했으니 말이다. 이름이 아르테미시아인 그녀는 뤽다미스의 딸로 친가 쪽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이고, 외가 쪽은 크레타 출신이었다. ······ 그녀의 함선들은 시돈인들의 함선들 다음으로 전 함대에서 가장 훌륭했다. 크세르크세스의 동맹군 중에 그에게 그녀보다 더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681∼682쪽)


페르시아의 대군들이 육지와 바다 양쪽 방향으로 거침없이 진격해 오자 전 헬라스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음은 말할 필요가 없는데, 아테나이에서 델포이로 파견된 사절단이 '신탁'을 통해 예언녀로부터 들은 대답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련한 자들이여, 왜 여기 앉아 있는가? 그대들은 집과,
그대들의 도시로 둘러싸인 높은 언덕들을 떠나 대지의 끝으로
도망쳐라. 머리도 몸도 굳건하게 버티지 못할 것이며,
아래쪽의 두 발과 두 손과 그사이에 있는 어떤 것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불과 쉬리아의 전차를 타고 질주하는
날카로운 아레스가 모든 것을 끌어내리리라.
그는 그대들의 성채뿐 아니라 다른 성채도 수없이
파괴하리라. 그는 수많은 신전을 파괴적인 불에 넘겨줄 것인즉,
신전들은 지금 벌써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서서
두려움에 떨고, 지붕에서 검은 피를 쏟고 있으니,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예견했기 때문이니라.
자, 그대들은 이 신전에서 나가 마음속으로 실컷 슬퍼하라!
(701∼702쪽)


그런 신탁을 듣자 아테나이인들은 크게 낙담했고, 델포이에서 명망 있는 사람의 조언을 듣고 재차 신탁에 물어본 끝에 '조금 더 나은' 두 번째 예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신탁은 먼젓번 신탁보다 더 온건했기에 사절단은 그걸 적어서 아테나이로 돌아갔다.
 

······
그래서 나는 재차 그대에게 강철처럼 단단한 말을 하리라.
케크롭스 언덕과 신성한 키타이론 산 골짜기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지만 트리토게네이아여, 멀리 보시는 제우스께서는 그대에게
나무 성벽을 주실 것인즉, 이 나무 성벽만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와 그대의 자식들을 도와주게 되리라
. 그대는 대륙에서
기병과 보병의 대군이 다가오기를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등을 돌려 도망쳐라. 언젠가는 적군과 맞설 날이 다가오리라.
신성한 살라미스 섬이여, 데메테르가 씨를 뿌리거나
수확할 때, 너는 여인들의 자식들을 죽이게 되리라.
(702∼703쪽)


이 신탁의 해석을 둘러싸고 온갖 해석이 난무했지만, 그 무렵 아테나이에서 요인들 중의 한 명으로 부상하던 테미스토클레스는 '나무 성벽'이 함선들을 가리키는 만큼 '해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에도 테미스토클레스의 판단은 중요한 순간에 최상의 판단으로 인정된 적이 있었다. 라우레이온 은광에서 국고로 큰 수입이 들어오자 그 돈을 분배하는 대신 전쟁에 대비해 함선 200척을 건조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헬라스인들이 '어디서 어떻게' 전쟁을 할 것인지를 의논한 뒤 육군은 '테르모퓔라이 고갯길'을 지키고, 해군은 아르테미시온에 배치하기로 했는데, 육군과 해군이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페르시아의 대군이 여러 지역들을 두루 거쳐 세피아스와 테르모퓔라이에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았는데, 이때 그들의 병력 규모를 자세히 언급해 놓은 대목을 보면 페르시아 대군의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던가 새삼 놀라게 된다.

추산컨대, 이때 그들의 병력 수는 여전히 다음과 같았다. 아시아에서 온 함선들은 1,207척인데, 함선당 200명으로 계산하면, 원래 각 부족들로부터 차출한 선원은 241,400명이다. 이들 함선들마다 토착민 선원들 외에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과 사카이족 선원이 30명씩 타고 있었는데, 이들 추가 인원을 합하면 36,210명이 된다. 이 수치에 나는 오십노선의 선원을 추가할 텐데, 1척당 약 80명으로 산정하면, 앞서 말했듯이 오십노선은 3,000척이 집결했으므로 이 함선들의 선원 수는 240,000명쯤 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온 해군의 수는 총 517,610명에 이른다. 보병은 1,700,000명이고, 기병은 80,000명이었다. 여기에 나는 아라비아의 낙타 기수들과 리뷔에의 전차병을 추가할 텐데, 그들의 수는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해군과 육군을 둘 다 합하면 2,317,610명에 이른다. 이는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에서 데려온 전투원들만 언급한 것이고, 종군한 하인들과 군량 수송선 선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 에우로페에서 징용되어 온 군사들도 가산되어야 하는데, 그 수는 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트라케와 트라케 앞바다의 헬라스인들이 120척의 함선을 제공했으니, 이 함선들의 승선 인원은 24,000명이다. 트라케인들, 파이오니아인들, 에오르디아인들, 봇티아이아인들, 칼키디케인들, 브뤼고이족, 피에리아인들, 마케도니아인들, 페르라이비아인들, 에니에네스족, 돌로피아인들, 마그네시아인들, 아카이아인들, 그리고 트라케의 해안 지대에 사는 자들이 제공한 보병들이 짐작컨대 300,000명에 이를 것이다. 이들을 아시아에서 온 자들에 보태면 전투원은 총 2,641,610명이 된다.

전투원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종군한 하인들과 군량 수송용 소형 선박들의 선원들과 그 밖에 군대와 동행한 다른 선박들의 선원들도 전투원들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전투원들과 동수였던 것으로 잡더라도 그 수는 전투원들과 마찬가지로 수백 수십 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다레이오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세피아스 곶과 테르모퓔라이까지 인솔해 온 인원수는 5,283,220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729∼730쪽)


이상이 크세르크세스 원정대 전체의 '남자들' 숫자고, 여자 요리사, 첩, 내시의 수는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헤로도토스는 말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어마어마한 병력을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에 다가서는 도중에 페르시아로서는 첫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어이없는 큰 손실을 입었는데, 페르시아 함대의 규모가 너무나 컸던 탓에 안전하게 정박할 항구조차 없었던 탓으로 보인다.

그들의 함대가 '카스타나이아 시와 세피아스 곶 사이의 마그네시아 해안'에 도착했을 때, 구름 한 점 없던 날씨가 갑자가 돌변하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들끓기 시작하여 페르시아의 함대들이 도저히 손쓸 겨를도 없이 세피아스 곶과 카스타나이아 해안에 내동댕이쳐졌던 것이다. 이때의 조난으로 최소 400척의 함선이 침몰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막대한 재산이 없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크세르크세스와 육군은 멜리스에 도착했고, 뒤이어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진을 치고 있던 헬라스인들과 충돌했다. 헤로도토스는 그 유명한 전투에 참가한 '300명 전원의 이름'까지 낱낱이 알고 있었던 만큼 그 전투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20쪽 가까이 자세히 밝혀 놓았지만 나로서는 앞에서 미리 꺼내놓은 이야기도 적지 않은 만큼, 레오니다스가 일부 동맹군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전사한 이들을 위해' 직접 세운 기념비에 새겨진 명문 하나만 더 소개하고 다음 전투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다.
 

이곳에서 전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4,000명이
3백만의 적군과 맞섰노라.

(751쪽)


테르모퓔라이에서 헬라스인들이 그렇게 싸우는 동안, 페르시아군에 맞서 아르테미시온에 포진한 그리스군의 함선은 스파르테인 에우뤼비아데스가 최고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는데 그 수는 총 271척이었다. 두 진영의 해군은 처음에 아르테미시온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페르시아인들은 200척의 함선을 따로 파견하여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본 함대는 정면공격을 함으로써 그리스군을 함정에 빠뜨릴 참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에우보이아 섬을 우회하도록 파견된 페르시아 함선들은 적들 몰래 움직이려다 난바다에서 밤을 맞게 되었고, 항해하던 중 폭풍과 폭우를 만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밀려 다니다가 대부분 바위들에 좌초했기 때문이었다. 

첫 교전 이후 3일째 되던 날에도 해전이 벌어졌는데 그리스 함대는 에우리포스 해협을 지키려 애썼고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을 섬멸하려고 선제공격에 나섰는데, 함선과 인명 피해는 페르시아 측이 훨씬 더 컸으나 그리스도 많은 함선들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컸다. 그리스군 진영에서 좀 더 헬라스 안쪽으로 후퇴하는 방안을 고민하던 사이에, 테르모퓔라이에 있던 정찰병이 도착하여 레오니다스와 그의 부대가 당한 일을 알려주었고, 이 소식을 듣자 그리스 함대들은 서둘러 철수를 시작하였다.

그때 아르테미시온에서 페르시아인들의 함대와 싸운 전투는 전쟁 전체의 결과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헬라스인들은 이 전투에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고 플루타르코스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몸소 싸워봄으로써 그들은 육박전을 벌이며 용감하게 싸울 줄 아는 전사들에게는 수많은 함선도, 찬란한 선수(船首) 장식도, 요란한 호언장담도, 야만적인 전투가도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핀다로스는 아르테미시온 해전에 관해 다음의 시를 지었을 때,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아테나이인들의 아들들은 자유의 찬란한 초석을 놓았도다.

승리는 역시 용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크세르크세스와 육군은 테르모퓔라이에서 전사한 약 2만 명의 전사들을 구덩이에 파고 묻은 뒤 포키스를 비롯한 그리스 북부의 여러 지역을 지나가며 닥치는 대로 태우고 베었고, 도시와 신전들에 불을 지르며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델포이의 성역을 향했는데, 그곳에 봉헌된 보물들을 약탈하여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델포이의 전 주민이 도시를 떠나고 60명의 남자와 신탁 사제 한 명만 남아 신전을 지키고 있을 때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고 헤로도토스는 전하고 있다.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나 프로나이아의 신전으로 서둘러 다가왔을 때 이미 일어난 것보다 더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무기들이 저절로 신전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도 실로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일어난 놀라운 일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나 프로나이아의 신전에 접근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파르낫소스 산에서 바위 봉우리 두 개가 떨어져 나와 굉음을 내며 그들에게 돌진해 그들을 상당수 죽이는가 하면, 프로나이아의 신전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쟁의 함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778쪽)


헤로도토스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으나 그가 일부러 지어낸 얘기 같지는 않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곤혹스럽다. 그의 말을 마저 들어보면 '파르낫소스 산에서 굴러떨어진 바윗덩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아테나 프로나이아의 성역에 보존되어 있는데, 페르시아인들 사이를 휩쓸며 그곳으로 굴러 내려왔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함대는 아르테미시온을 떠난 뒤 살라미스로 뱃머리를 돌렸는데, 아테나이 본토에 있는 아이들과 부녀자들과 노인들을 피난시킬 필요도 있었고, 상황이 뒤바뀐 만큼 새로운 작전 계획을 세울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초의 예상대로였다면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총동원되어 보이오티아에서 페르시아인들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만, 그 대신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이스트모스를 가로질러 방벽을 쌓고 있으며 그들은 펠로폰네소스만 지키려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이무렵 테미스토클레스는 여러가지 꾀를 내어 아테나이 시민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포기하고 피난을 떠나도록 설득했는데, 그가 앞서 얘기했던 그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을 다시 들먹이며, 그 신탁에서 말하는 '나무 성벽'이란 자신들의 함대를 두고 하는 말이며, 아폴론 신이 이 신탁에서 살라미스를 '무섭다'거나 '잔인하다'고 하지 않고 '신성하다'고 한 것은 이 섬이 언젠가는 헬라스인들에게 큰 행운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단 자신의 의견이 우세해지자 그는 '장정들은 삼단노선에 오르게 하자는 법안'을 제출했고, 이 법안이 통과되자 아테나이인들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도시 전체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니, 참으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용감한 행위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부모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눈물과 포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라미스 섬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인들이 여행하기에는 너무 늙어서 뒤에 남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이 배에 오르는 주인 옆을 뛰어다니며 애타게 짖어대는 광경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헬라스인들의 함대가 살라미스에 도착하자 나머지 도시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속속 살라미스에 함대를 보내 그곳에 집결했다. 그리하여 살라미스에는 아르테미시온 해전 때보다 더 많은 도시들에서 파견된 훨씬 더 많은 함선들이 집결했는데, '함선의 수는 오십노선들을 제외하고 모두 378척'이었다.

 

<그리스의 주력 함대였던 삼단노선> (출처 : 위키피디아)


앞서 말한 도시들에서 파견된 장군들이 살라미스에 모이자 일단 회의를 열었다. 에우뤼비아데스는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헬라스인들이 장악한 지역 중 어느 곳이 해전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지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라고 제안했다. 앗티케는 이미 포기한 상태라 제외되었다. 발언자 대부분은 이스트모스로 항해해 가서 펠로폰네소스 앞에서 해전을 벌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들의 논지는, 그들이 살라미스에 머물다가 패하면 섬에서 포위 공격당해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지게 될 것이나, 이스트모스 근처에는 자신들의 해안으로 피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783쪽)


회의가 열리는 중에도 새로운 소식들이 속속 들어왔는데, 페르시아군이 이미 앗티케 전역에 불을 지르고 있고,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군대는 여러 도시를 불지르고 나서 아테나이에 도착하여 닥치는 대로 유린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이 도성을 점령했을 때 도시는 비어 있었고 소수의 아테나이인들만이 신전 안에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들은 어렵사리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발견함으로써 이들을 모두 도륙한 뒤 신전을 약탈하고 아크로폴리스 전체에 불을 질렀다.
 

아테나이의 아크로폴리스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살라미스에 있던 헬라스인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몇몇 장군은 작전 계획에 관한 최종 결정을 기다리지도 않고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신속히 철수하려고 돛을 올렸다. 한편 남아 있던 장군들은 이스트모스 앞에서 해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밤이 되자 그들은 회의를 파하고 각자 자기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786쪽)


일이 그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아마도 그리스 군대는 지리멸렬하고 말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아찔한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드디어 영웅이 등장하고 놀라운 묘책이 나오게 되는데, 페르시아군 앞에서 꽁무니를 내뺄 궁리만 하던 그리스 해군을 그곳에 붙잡아 두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테미스토클레스'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살라미스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은 정작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회의를 파하고 자기 함선으로 돌아오자 므네시필로스라는 아테나이인이 '장군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냐'고 그에게 물었는데, 함대를 이스트모스 쪽으로 이끌고 가 펠로폰네소스 앞에서 해전을 벌이기로 결정되었다고 테미스토클레스가 말하자, 므네시필로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안 됩니다. 함대가 일단 살라미스를 떠나게 되면, 장군님께서 해전을 벌여 지켜야 할 조국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각기 제 고향으로 흩어질 것이며, 에우뤼비아데스도 그 밖에 어느 누구도 함대가 분산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작전 때문에 헬라스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방책이 있다면, 어떻게든 에우뤼비아데스가 마음을 바꿔 이곳에 머물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787쪽)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제안에 마음이 크게 움직여 곧바로 에우뤼비아데스의 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사령관과 면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므네시필로스가 한 말을 마치 자기 의견인 양 되풀이하며 거기에 살을 붙였고, 에우뤼비아데스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여 장군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거기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사태가 다급한 만큼'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고, 그리스 연합군이 '살라미스'에서 싸워야 할 이유들을 조목조목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동맹군 함대의 일부라도 이탈한다면 아테나이 함대들도 '이탈리아의 시리스로 도망갈 것'이라는 협박까지도 곁들였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이 말을 듣고 에우뤼비아데스는 결국 생각을 바꿨다. 만약 그가 함대를 이스트모스로 이동시키면 아테나이인들이 그들 곁을 떠나지 않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고, 아테나이인들이 떠난다면 나머지 헬라스인들만으로는 도저히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기 대문이었다. 여러 논쟁 끝에 살라미스에서 싸우기로 결정되자 그들은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크세르크세스의 함대가 에우리포스 해협을 경유하여 팔레론에 입항했을 때, 크세르크세스는 여러 부족의 왕들과 함장들을 한데 모아놓고 마르도니오스를 보내 '자기가 해전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차례차례 묻게 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싸우라고 말했으나, 아르테미시아는 유독 의견이 달랐다.
 

"마르도니오스여, 에우보이아 앞바다의 해전에서 결코 비겁하지도 않았고 전공(戰功)이 가장 미약하지도 않았던 내가 이런 진언을 하더라고 전하께 전해주시오. '전하, 전하께 가장 이롭다고 생각되는 바를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이 제 의무이옵니다. 하여 드리는 말씀이온데, 함선을 아끼시고 해전을 피하소서. 바다에서는 마치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강한 것만큼이나 이곳 백성들이 전하의 백성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옵니다. 전하께서 굳이 해전을 하셔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나이까? 이번 원정의 목표였던 아테나이는 전하의 수중에 있으며, 나머지 헬라스도 전하의 것이 아니옵니까? 전하의 길을 가로막을 자는 이제 아무도 없나이다. ······

하오나 전하께서 당장 해전을 벌이려 하신다면 함대의 패배가 육군의 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나이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이 점을 명심하소서. 좋은 주인의 종은 나쁘고, 나쁜 주인의 종은 대개 좋은 법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주인이시지만, 전하의 동맹군으로 자처하는 자들은 나쁜 자들이옵니다. 이들 아이귑토스인들, 퀴프로스인들, 킬리키아인들, 팜퓔리아인들은 아무 짝에도 못 쓸 자들이옵니다."
(793∼794쪽)


크세르크세스는 이런 훌륭한 조언을 듣자 아르테미시아의 의견이 마음에 들어, '전에도 그녀를 현명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녀를 더욱 존중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전쟁을 주장하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러는 동안 페르시아 육군은 펠로폰네소스로 진격했고,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전사한 레오니다스의 동생인 클레옴브로토스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스트모스를 가로지르는 방벽을 쌓는 일에 밤낮으로 매달렸다. 그들은 살라미스의 함대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살라미스의 펠로폰네소스인들 또한 방벽 공사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자 가족들이 남아 있는 후방이 염려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회의가 소집되어도 수많은 이견들이 노출되었는데, 그곳에 머물러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진 아테나이를 위해 싸우느니 차라리 펠로폰네소스로 물러나서 거기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테미스토클레스는 몰래 회의장을 빠져나와 페르시아안들의 군영으로 자신의 하인이었던 시킨노스를 밀사로 보냈다.
 

시킨노스는 그때 작은 배를 타고 건너가 페르시아 장군들에게 말했다. "저는 아테나인들의 장군께서 다른 헬라스인들 몰래 보내신 밀사입니다. 그분께서는 저더러, 헬라스인들은 겁에 질려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으니, 그들이 도망치도록 수수방관하지만 않는다면 그대들이 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그대들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분열되어 있어 그대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97쪽)


페르시아인들은 이 전언이 사실인 줄 알고 '살라미스와 본토 사이에 있는 작은 섬 프쉿탈레이아'에 다수의 페르시아인들을 상륙시켰고, 한밤중이 되자 헬라스인들을 포위하기 위해 함대의 서쪽 날개를 살라미스로 진출시키는 한면, 케오스와 퀴노수라 가까이 포진하고 있던 함선들도 전진하여 무니키아에 이르기까지 해협 전체를 봉쇄하게 했다. 그들은 헬라스인들이 도주하는 것을 막고, 적군을 도륙하기 위해 밤새 한잠도 못 자고 이런 준비들을 했던 것이다.



『전쟁의 역사』135쪽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무수한 신탁들을 들려주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사의 일들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다. "나는 신탁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신탁의 말씀이 명명백백한데 내가 어찌 불신하고 싶겠는가! 다음의 시행들을 생각해보시라"고 말하며 다음의 신탁을 들려주는데, 그는 "이 말의 진실성을 나는 감히 부인하고 싶지 않거니와 남이 부인하는 것도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아테나이를 함락하고 나서 광기 어린
희망에 들떠 황금 칼을 차신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해안과
바다로 둘러싸인 퀴노수라 섬을 선교(船橋)로 연결한다면,
고귀하신 정의의 여신께서 교만의 아들을, 무엇이든
할수 있다고 믿고 광란하는 강력한 포만(飽滿)을 제압하시리라.
(798쪽)


살라미스의 그리스 함대가 밤 사이에 페르시아 함대에 포위된 줄도 모르고 여전히 격론을 벌이고 있을 무렵에, 민중에 의해 도편추방되었던 훌륭한 인물 아리스테이데스가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살라미스로 찾아왔는데, '헬라스 함대가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걸 자신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그에 대비하라'고 조언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사주하고 바라던 대로 일이 진척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리스테이데스더러 직접 그 상황을 회의장에 들어가 전하도록 했다. 

헬라스의 장군들은 대부분 그의 보고를 의심하였지만 나중에 탈주해온 테노스인들의 '진상 보고'까지 듣고 나자 꼼짝없이 살라미스에서 결전을 벌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비로소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날이 새자 전 해군이 소집되었고,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때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시종일관 인간 본성과 기질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대비시키며 그들에게 좋은 면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나서 승선하라는 명령으로 연설을 끝냈다. ······ 그러자 헬라스인들의 전 함선이 발진했고, 그러자 페르시아인들이 즉시 그들을 공격했다. (801쪽)


그렇게 시작된 살라미스에서의 해전은 널리 알려진 대로 페르시아의 참패로 끝났는데, 헬라스인들은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해전을 벌였지만, 페르시아인들은 무엇보다도 교만에 가득찬 상태에서 자신들의 함대 숫자만 믿고 대열이 무너진 채 어느새 작전 계획도 없이 싸웠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해협이 좁아 페르시아 함선들은 모두가 한꺼번에 공격하지 못하고 서로가 방해가 된 까닭에, 나머지 헬라스인들은 대등한 싸움을 벌이며 저녁이 될 때까지 저항하던 적군을 물리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모니데스의 말처럼,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라스인들이든 해전 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더없이 찬란한 업적이라고 할 저 멋지고 유명한 승리를 쟁취했으니, 이는 해전에 참가한 전사들의 용기와 하나로 뭉친 열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의 현명한 판단 덕분이기도 했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이 해전에서 페르시아인들이나 헬라스인들 개개인이 어떻게 싸웠는지 확실히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은 그만큼 혼전의 연속이었고 수많은 전사들이 제각기 자신의 조국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가 결국 거기에서 죽고 또 더러는 살아남아 돌아왔을 것이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었던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맞은편 이른바 아이갈레오스 언덕의 기슭에 앉아' 편안하게 관전했지만 말이다. 헤로도토스가 해전의 결과를 두루 요약한 여러 대목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해전에서 헬라스인들 가운데 가장 이름을 날린 것은 아이기나인들이었고, 그 다음이 아테나이인들이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가장 이름을 날린 것은 아이기나의 폴뤼크리토스와, 아나퀴로스 구역의 에우메네스와 팔레네 구역의 아메이니아스라는 아테나이인들이었는데, 아메이니아스는 아르테미시아를 추격했던 자다. 아메이니아스는 그 배에 아르테미시아가 타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녀를 사로잡든지, 아니면 자신이 사로잡힐 때까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아테나이의 함장들에게는 그녀를 생포하라는 특명이 내려졌고, 그 밖에 그녀를 생포하는 자는 10,000드라크메의 상금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인들은 한갓 여인이 자신들의 도시를 공격하는 것에 분개했던 것이다.(806∼807쪽)


해전이 끝난 뒤 자신의 실패에 여전히 분통을 터트리고 있던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로 건너갈 둑길을 만들게 했다. 해협을 막은 다음 살라미스로 육군을 이끌고 가 헬라스인들을 모조리 도륙할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실 그는 헬라스인들이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거나 스스로 생각해내어 '헬레스폰토스'로 가서 다리들을 해체하지 않을까 겁을 먹은 나머지 자신의 안위가 너무나 걱정되어 몰래 퇴각할 계획을 세우는 한편 적군에게도 아군에게도 자신의 의도가 노출되지 않도록 다시 전쟁 준비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도니오스만은 크세르크세스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터라 거기에 속지 않았다. 크세르크세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자들'을 시켜 '아테나이를 점령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페르시아에 전한 이후에 뒤이어 충격적인 두 번째 소식을 다시 전하자 페르시아인들은 모두들 입고 있던 옷을 찢고 하염없이 울며불며 마르도니오스에게 책임을 돌리기 바빴다. 마르도니오스는 크세르크세스가 해전의 결과에 몹시 상심해 있는 것을 보고 '헬라스를 원정하도록 자신이 왕을 설득한 만큼 처벌받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번 기회에 헬라스를 정복하든지, 아니면 큰일을 위해 명예롭게 생을 마감하는 모험을 시도하는 쪽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크세르크세스에게 "전하께서 이곳에 머물지 않기로 결심하셨다면, 군대의 대부분을 이끌고 귀국하시되, 제게 30만 정병을 뽑게 해주신다면 헬라스를 노예로 만들어 전하께 바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크세르크세스는 이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보고' 결과를 알려주겠다면서 회의를 열었고, 도중에 아르테미시아도 회의에 소집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녀를 불러들였다. 그가 마르도니오스의 제안을 그녀에게 들려주며 조언을 청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하, 어느 것이 상책인지 전하께 말씀드리기가 어렵사옵니다. 하오나 현재 상황에서는 전하께서는 철군하시고, 마르도니오스에게는 그가 자원해 그렇게 하겠다면 그가 원하는 병력과 함께 이곳에 남게 하시는 것이 상책인 것 같사옵니다. 그가 정복하고 싶어 하는 것을 실제로 정복하고, 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전하, 그것은 전하의 업적이 될 것이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전하의 종들이기 때문이옵니다. ······ 마르도니오스에게 불상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헬라스인들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없앤 것은 전하의 종이므로, 승리한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께서는 아테나이를 불태우시겠다는 원정의 목적을 이미 달성하셨으니 귀국하셔도 될 것이옵니다.(812쪽)


크세르크세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르테미시아를 칭찬하고 나서 그녀로 하여금 '원정길에 동행한 자신의 서자 몇 명'을 데리고 에페소스로 돌아가게 했다. 이때 크세르크세스는 자기 아이들을 돌보도록 '헤르모티모스'라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페사다 출신 내시를 딸려 보냈다. 그런데 이 내시가 자신에게 가해진 모욕(거세당한 일)에 대해 얼마나 무섭게 복수를 했는지는 한 번쯤 들어볼 만하다.

헤르모티모스가 내시가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그는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가 억세게도 운이 나빠 '파니오니오스'라는 키오스인에게 팔렸는데, 그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시들이 온전한 남자들보다 값이 더 나가는 점'을 이용해서 '거세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그에게 걸려든 많은 노예들 가운데 한 명이 헤르모티모스였던 것이다. 그는 파니오니오스에게 거세당한 후 내시로 팔렸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모든 내시들 중에 크세르크세스에게 가장 총애받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군을 아테나이로 출동시키기 위해 사르데이스에 머물고 있는 동안 헤르모티모스는 공무(公務)로 뮈시아 지방의 아타르네우스라는 지역에 갔다가 그곳에서 파니오니오스를 만났다. 헤르모티모스는 그를 알아보고는 정담(情談)을 길게 늘어놓으며 먼저 그의 덕분에 받게 된 여러 가지 혜택을 열거하더니 이어서 그가 가족들을 데리고 아타르네우스로 이사해 오면 그의 은혜에 빠짐없이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니오니오스는 헤르모티모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식들과 아내를 데려왔다. 헤르모티모스는 그와 그의 전 가족이 수중에 들어오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 너만큼 불경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나 내 가족 가운데 한 명이 너나 네 가족 가운데 한 명에게 대체 무슨 몹쓸 짓을 했기에 네가 남자였던 나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단 말이냐? 그 당시 네가 한 짓을 신들께서 모르실 줄 알았더냐? 하지만 불경한 짓을 한 너를 정의와 법을 따르시는 신들께서 내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네게 복수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마라." 헤르모티모스는 이렇게 꾸짖고 나서 아이들을 방 안으로 데려오게 하더니 그에게 네 아들을 손수 거세하도록 강요하자,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헤르모티모스는 아들들을 강요하여 아버지를 거세하게 했다. 헤르모티모스는 파니오니오스에게 그렇게 복수했던 것이다. (813∼814쪽)


크세르크세스가 자기 아들들을 아르테미시아에게 맡긴 다음 마르도니오스를 불러 '원하는 만큼' 인원을 선발해 그곳에 남겨 놓고 난 후 크세르크세스와 측근들은 밤에 몰래 헬레스폰토스로 회항하기 시작했는데, 철군하는 왕이 건널 수 있도록 선교를 지키기 위해 각자 최대한 빨리 달렸다. 헬라스의 함대가 뒤늦게 안드로스 섬까지 추격했는데도 크세르크세스의 함대가 눈에 띄지 않자 테미스토클레스는 '곧장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가서 그곳에 놓여 있는 선교를 파괴하자'고 제의했다. 그때 테미스토클레스의 정적이자 도편추방되었다가 되돌아온 아리스테이데스는 그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야만인과 싸웠소.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많은 군세를 거느린 자를 헬라스에 가두고 두려움 때문에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그는 더 이상 황금 일산(日傘) 아래 편안히 앉아 전쟁을 구경만 하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무슨 짓이든 감행하고, 위험 때문에 만사를 친히 감독하고, 이전의 잘못을 바루고 , 매사에 더 나은 조언에 귀를 귀울일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테미스토클레스여, 우리는 그곳에 이미 놓여 있는 다리를 끊을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그 옆에 다리 하나를 더 놓아야 할 것이오. 그자를 되도록 빨리 헬라스 땅에서 내쫓으려면 말이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테미스토클레스도 이 말에 곧바로 동의했는데 그들 두 사람이 똑같이 현명했다는 것은 나중에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입증되었다. 왜냐하면 펠라스인들은 플라타이아이에서 마르도니오스가 지휘하던 크세르크세스 군대의 일부와 싸웠을 뿐인데도 자칫 모든 것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마르도니오스는 '30만 정예군'을 선발하고 나서 텟살리아에서 겨울을 보낸 이듬해 전쟁을 재개했다. 마르도니오스가 마케도니아인을 아테나이로 보내 '강화 조약'을 맺자고 제의했으나 아테나이인들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결사항전할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는 페르시아와 강화조약을 맺도록 우리를 설득하려 애쓰지 마시오. 우리는 그대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마르도니오스에게 아테나이인들의 전언을 전하시오. 태양이 현재의 궤도를 유지하는 한 우리는 결코 크세르크세스와 강화조약을 맺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그가 무엄하게도 그 신전과 신상들을 불태워버린 신들과 영웅들의 도움을 믿고 나가서 그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킬 것이오."(836∼837쪽)


이런 회답을 전해듣자 마르도니오스는 곧장 군대를 이끌고 텟살리아를 출발하여 신속히 아테나이로 진격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에게 자신이 재차 아테나이를 함락했음을 알리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번에도 아테나이인들은 대부분 살라미스로 가 있거나 함선 위에 있어서 마르도니오스는 빈 도성을 손쉽게 함락했는데,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나이를 함락한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때 마르도니오스는 살라미스로 재차 사절을 보내 강화조약을 맺자고 제안했는데, 그때 의회 의원들 중 한 명인 뤼키데스가 마르도니오스의 제안을 '민회에 회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은 이 말에 격분하여 뤼키데스를 애워싸더니 돌로 쳐 죽였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아테나이 여인들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떼 지어 뤼키데스의 집으로 몰려가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돌로 쳐 죽였다.

앗티케에 머물며 아테나이인들이 강화조약을 맺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던 마르도니오스는 결국 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깨달은 데다가, 스파르테인들이 파우사니아스를 지휘관으로 삼아 아테나이를 돕기 위해 스파르테에서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서둘러 아테나이를 불태우고, 성벽이건 집이건 신전이건 똑바로 서 있는 것은 모조리 부수고 허문 다음 철수했다. 그들은 전투를 벌이기 유리한 플라타이아이의 아소포스 강을 따라 포진했다. 라케다이몬인들도 이스트모스에 도착하자 그곳에 진을 쳤고 나머지 펠로폰네소스인들도 그 소문을 듣고 합류했다. 그들은 진격을 계속한 끝에 엘레시우스에 도착했고 거기서 살라미스에서 건너온 아테나이인들과 동행했다. 그리고 페르시아군이 아소포스 강변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맞은편 키타이론 산기슭에 진을 쳤다. 페르시아 대군에 맞선 헬라스인들은 중무장보병들이 38,700명, 경무장보병들이 68,700명으로 도합 107,400명이었다.

플라타이아이 평원에서 벌어진 대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정예 보병들과 맞선 그리스 육군의 총지휘관은 스파르테의 파르사니아스였는데, 그는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퓔라이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 스파르테를 이끈 클레옴브로토스의 아들이었고, 클레옴브로토스는 레오니다스의 아우였다. 그 전투에서 격전 끝에 마르도니오스가 전사하고 그를 에워싸고 있던 '불사 부대'로 불리던 1,000명의 최정예부대마저 궤멸하자 나머지들은 결국 등을 돌려 뿔뿔이 도주했는데, 숫적으로 월등히 우세했던 그들이 궤멸한 것은 결정적으로 중무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페르시아 전쟁의 대미를 마무리짓는 역할은 파우사니아스에게 주어졌고, 그 전투의 더없이 영광스러운 승리 덕분에 파우사니아스는 결국 큰아버지였던 레오니다스 왕의 원수를 몇 배로 되갚을 수 있었던 셈이다.
 

침략군의 승패는 전적으로 페르시아인들에게 달려 있었음이 분명하다. 동맹군들은 페르시아인들이 달아나는 것만 보고 적군과 맞붙어보지도 않고 달아났기에 하는 말이다. ······ 헬라스인들은 승승장구하며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크세르크세스의 군사들을 도륙했다. ······

······ 일단 방벽이 무너지자 침략군은 대열을 재정비하기는커녕 항전할 생각도 않고 좁은 공간에 수만 명이 갇힌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래서 헬라스인들이 마음껏 도륙할 수 있게 되자, 아르타바조스가 달아날 때 데려간 40,000명을 빼고 300,000명 중에서 3,000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881∼882쪽)


플라타이아이의 빛나는 승리 뒤에 람폰이라는 아이기나의 요인 가운데 한 명이 파우사니아스를 찾아와 실로 불경하기 짝이 없는 제안을 했다. "마르도니오스와 크세르크세스는 테르모퓔라이에서 전사하신 레오니다스의 목을 베어 장대에 꽂았나이다. 마르도니오스에게 똑같은 벌을 내리신다면 그대는 전 스파르테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헬라스인들에게 칭송받게 되실 것이옵니다." 이런 제안을 하면 파우사니아스가 좋아할 줄 알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기나 친구여, 그대의 호의와 배려는 고마우나 그대는 잘못 판단했소. 그대는 처음에 나와 내 조국과 내 업적을 치켜세웠다가, 나더러 시신을 모욕하라고 권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명성이 드높아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비하하고 말았으니 말이오. 그런 짓은 헬라스인들이 아니라 야만인들에게나 어울리며, 야만인들이 그런 짓을 저질러도 우리는 불쾌하오. 그런 짓까지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아이기나인들과 그런 짓을 좋아하는 자들의 칭찬은 포기하겠소. 도리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한다고 스파르테인들이 나를 칭찬해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오. 그리고 일러두건대, 그대가 나더러 원수를 갚아드리라고 하는 레오니다스 님의 원수는 충분히 갚았소. 그분과 테르모퓔라이에서 전사한 모든 분들은 여기 누워 있는 무수한 목숨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오." (887∼888쪽)


크세르크세스는 헬라스에서 도주할 때 자신의 집기들을 마르도니오스에게 남겼다고 한다. 파우사니아스는 마르도니오스의 빵 굽는 하인들과 요리사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마르도니오스에게 올리던 것과 똑같은 식사를 차리게 했다고 한다. 화려한 덮개로 덮은 금과 은으로 만든 긴 의자들과 금과 은으로 된 식탁들과 진수성찬을 보고 파우사니아스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장난 삼아 자신의 하인들에게 명하여 라코니케식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고 한다. 식사가 준비되자 파우사니아스는 두 가지 식사가 판이한 것을 보고 웃으며 헬라스 장군들을 불러오게 하더니 그들이 모이자 두 가지 식사를 가리키며 말했다고 한다.
 

"헬라스인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이리로 불러 모은 것은 페르시아 왕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대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오. 그는 이런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의 이런 빈약한 식사를 빼앗으러 왔으니 말이오." (889쪽)


페르시아인들은 플라타이아이에서 패하던 바로 그날 이오니아의 뮈칼레에서도 패했다. 그 전투에서 도망친 페르시아인들은 사르데이스로 돌아갔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패배를 현장에서 목격했던 다레이오스의 아들 마시스테스도 있었다. 그런데 사르데이스에는 해전에서 패하여 아테나이에서 도망쳐 온 페르시아 왕이 줄곧 체류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중에 커다란 화근이 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사르데이스에 체류하는 동안 역시 그곳에 와 있던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그녀를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자 결국 자기의 아들을 그녀의 딸과 결혼시켰다. 그렇게 하면 그는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더 쉽게 유혹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을 약혼시킨 다음 왕궁이 있던 수사로 돌아가서 며느리를 집 안으로 맞아들이자 그는 마시스테스의 아내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마시스테스의 딸을 사랑하기 시작해 그녀를 손에 넣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타윈테였다.

그러나 그 일은 얼마 뒤 결국 탄로가 났는데, 왕비인 아메스트리스가 다채롭고 멋진 옷을 한 벌 손수 짜서 크세르크세스에게 선물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그 옷을 입고 아르타윈테를 찾아갔고, 그녀가 베푼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했을 때 아르타윈테는 겁도 없이 그 겉옷을 요구했던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선물로 받은 그 옷을 그녀에게 내주고 말았다.

아메스트리스는 아르타윈테가 그 옷을 입고 뽐내며 다니는 걸 보고 모든 걸 눈치챘으나,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어머니인 마시스테스의 아내 탓이자 소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녀의 목숨을 노렸다. 그녀는 매년 한 번씩 개최되는 왕의 생일에 열리는 '튁타'라고 하는 연회가 열리기만 기다렸는데, 왕은 그 연회에서 어떤 요구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관습이 있었고, 아메스트리스는 그날 크세르크세스에게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선물로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왕은 결국 마지못해 승낙할 수밖에 없었고, 아우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시스테스야, 너는 다레이오스의 아들이자 내 아우일 뿐 아니라 신사야. 너는 지금의 아내와 헤어지도록 하라. 그 결혼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시스테스는 그 말을 듣고 제발 자신의 아내와 계속 살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크세르크세스가 아우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아메스트리스는 크세르크세스의 호위병들을 불러와 그들의 도움으로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절단했다. 아메스트리스는 그녀의 두 젖가슴을 잘라내어 개 떼에게 던져주고, 그녀의 코와 두 귀와 두 입술과 혀를 잘라낸 다음 절단된 그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마시스테스는 아직 이 일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가 망가진 것을 보자 그는 먼저 아들들과 의논한 다음 아들들과 몇몇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박트라로 출발했는데, 반기를 들도록 그곳 주민들을 선동해 왕에게 되도록 큰 피해를 안겨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제때에 박트리아인들과 사카이족에게 도착했더라면 아마도 그의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좋아했고, 그는 박트리아의 태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가 그의 의도를 알고는 그가 그곳으로 가고 있을 때 군대를 보내 그와 그의 아들들과 추종자들을 죽이게 했다. 이것이 크세르크세스의 사랑과 마시스테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906∼907쪽)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는 도무지 끝이 없을 듯해도 결국 이쯤에서 끝난다. 사실 나는 헤로도토스의 <살라미스 해전>에 얽힌 이야기를 얼마만큼 짧게 압축해서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적잖이 고민해 봤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일을 시도할 능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줄이다 보면 결국 숱한 사람들이 '살라미스 해전'을 두고 쓴 다른 글들과 별로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던 탓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 글을 마무리짓자니 적잖이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꾀많은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해서도 제법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전 헬라스인들로부터 엄청난 영광을 누렸으나 '너무나 잘난 체하는 버릇 때문에' 결국 정적들로부터 도편추방을 당했는데, 그때부터 펼쳐진 제2의 인생이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그가 추방을 당한 후 온갖 난관과 누명과 모함을 신출귀몰한 솜씨로 극복하고, 끝내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지로 자신을 철천지 원수로 여길 게 너무나도 뻔한 페르시아로 건너가는 모험은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처세술과 말솜씨를 믿었던 게 틀림이 없었다. 페르시아 왕이 엄청난 현상금을 그의 목에 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으로 건너가 '차일을 치고 사방에 장막을 친 사륜거를 타고' 왕궁 앞까지 이동했다. 그의 수행원들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물어올 때마다 '자신들은 이오니아 출신의 헬라스 계집을 왕의 조신 가운데 한 명에게 데려가는 중'이라고 대답하게 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뱀같이 교활한 이 헬라스 놈아, 대왕의 수호신께서 너를 이리로 데려온 것이로구나!"라고 소리치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페르시아의 조정 대신들을 간신히 지나쳐 왕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그때는 이미 크세르크세스가 죽은 뒤여서 테미스토클레스가 만난 것은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였다고 한다. 그는 전매특허인 '기막힌 말솜씨와 꾀'를 통해 결국 페르시아에 눌러 앉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사냥 나갈 때나 실내에서 소일할 때도 함께 시간을 보냈고, 모후(母后)도 알현하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후의 페르시아 왕들은 자신들의 재위 기간 동안 페르시아와 헬라스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자, 헬라스인 조언자를 구할 때마다 각자에게 궁정에서 테미스토클레스보다 더 유력한 지위를 보장해주겠다고 서면으로 약속했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 자신도 이때 이미 거물이 되어 많은 사람이 그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한번은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들아, 우리가 전에 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에 따르면, 빵과 포도주와 고기를 대주도록 그에게 세 개의 도시, 즉 마그네이아와 람프사코스와 뮈우스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퀴지코스 사람 네안테스와 파니아스는 두 개의 도시, 즉 페르코테와 팔라이스켑시스를 덧붙이며, 이 도시는 그에게 침구와 의복을 대주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 플루타르코스, 『플르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내가 이 긴 글의 마지막에 덧붙일 이야기는 아이스퀼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비극 『페르시아인들』이다. 사실 그 작품이야말로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믿기지 않는 참패 직후에 있었던 '역사적으로 기억될 만한 최고조의 멘붕'에 빠진 페르시아 왕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있었던 '비탄에 빠진 왕궁 풍경'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서, 설사 페르시아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전쟁에 패배한 느낌'이 얼마만큼 비통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데,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트로이아 여인들』과도 일견 닮았다.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이 끝나고 8년이 지난 뒤인 기원전 472년에 공연된 작품으로, 아이스퀼로스는 이 작품이 포함된 4부작으로 경연에 참여하여 우승을 차지한다. 비록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의 왕궁을 무대로 그린 작품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 그만큼 깊은 공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코로스의 의상과 훈련 비용을 담당하는 후원자를 일컫는 '코레고스'는 25세의 페리클레스였던 점도 흥미롭다.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中에서


신화가 아닌 당대의 역사에서 비극의 소재를 구하는 일은 아이스퀼로스 이전에도 있었는데, 프뤼니코스는 기원전 476년에 살라미스의 패전이 페르시아 궁정에 불러일으킨 충격을 주제로 한 『포이니케 여인들』이란 작품을 써 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고, 그 작품의 코레고스는 다름 아닌 테미스토클레스였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 나타난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자세한 전황 보고'를 들으면 일견 헤로도토스의 『역사』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들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은 아마도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책을 쓸 때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을 어느 정도 참고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의 그런 '사실적 일치'보다 더욱 중요하면서도 명백한 공통점 하나는 결국 '페르시아의 파멸은 분수를 모르는 오만, 즉 히브리스(hybris)의 결과이며, 이러한 히브리스의 의미는 자연의 질서를 바꾸어 바다를 육지로 만들고 강력한 선교(船橋)의 사슬로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제압하려던 크세르크세스의 오만방자한 행동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아이스퀼로스는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던 기원전 480년에 45세의 나이로 그 해전에 직접 참가하여 조국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고, 또 그보다 10년 전에는 마라톤 전투에서 감격적인 승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가 직접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묘비명에는 '마라톤 전투 때 페르시아인들과 싸운 사실만' 언급되는데, 그가 시인으로 기억되기보다 '마라톤의 전사'로 기억되기를 원했다는 것은 조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이 위대한 전쟁에 참가한 것을 그가 평생 동안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는지를 짐작케 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작품과 시인 아이스퀼로스의 세계관은 앞서 얘기했던 '히브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많은 공통점이 느껴진다. 그것은 주로 '그리스의 승리를 힘에 대한 정의의 승리로, 굴종에 대한 자유의 승리로, 교만에 대한 자제의 승리로 보았다는 점' 등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도 '승리에 대한 도취'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의의 실현을 체험한 한 인간의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신과 인간 사이의 깊은 연관성, 국가와 개인 사이의 의미심장한 연대, 신과 인간이 공생 공영하는 세계 내에서의 신의 의미' 등은 비단 두 작가의 작품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의 여러 다양한 작품 속에 폭넓게 나타난 공통점이기 때문에 '그리스 정신의 위대한 유산'이라고까지 부를 만하다.

이미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정신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 철학자의 유명한 언급을 일찌감치 내세웠지만, 『전쟁의 역사』에서 발견한 영국 철학자의 얘기도 <살라미스 해전>에 더없이 어울린다 싶어 덧붙이며 긴 글을 마친다.

높이 둘러친 성벽, 그득한 병기고, 혈통 좋은 말, 전차, 코끼리, 대포와 포병 등 그 모든 것은 단지 사자의 탈을 쓴 양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품종과 기질이 호전적이고 용맹스럽지 않다면.

 - 프랜시스 베이컨


 

접힌 부분 펼치기 ▼

 

(다음은 아이스퀼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비극『페르시아인들』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목들을 모은 것이다.)
 

        코로스

신의 뜻에 따라 운명은 먼 옛날부터
권세를 휘두르며, 페르시아인들에게는
성벽을 허무는 지상전과, 싸움터로
말을 내닫는 일과, 도시들을
함락하는 일에 전념하게 했노라.


- 《페르시아인들》103∼107행 


 


        코로스

침상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에 젖고,
저마다 용감한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페르시아의 부인들은 남편이 그리워

부드럽게 흐느끼며 독수공방하고 있구나.

- 《페르시아인들》134∼137행 


 
 

           아톳사  누가 그들의 목자(牧者)로서 군대를 지휘하지요?
        코로스장  그들은 누구의 노예라고도, 누구의 신하라고도 불리지 않사옵니다.
           아톳사  그렇다면 적군이 쳐들어올 경우 그들은 어떻게 대항하죠?

        코로스장  다레이오스의 잘 훈련된 대군이 그들에게 패할 정도로요.

                           - 《페르시아인들》241-244행



 

 

              사자 

오오, 전 아시아 땅의 도시들이여!
오오, 페르시아 나라여, 부의 큰 항구여!
어떻게 단 일격에 너의 막대한 부가 무너져 내리고,
페르시아의 꽃이 져서 사라졌단 말인가!
아아, 맨 먼저 불행을 알려야 하는 이 괴로움!
그래도 우리가 당한 일을 모두 털어놓지 않을 수 없구나.
페르시아인들이여, 우리 편 군대가 전멸했사옵니다.

 

           코로스

쓰라리고 쓰라린 이 고통, 자꾸 도지는 파괴적인
이 고통. 페르시아인들이여,
이런 흉보를 들었으니 눈물을 흘려라!


            사자

그 모든 것이 철저히 파괴되었사옵니다. 나 자신도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사옵니다.

 - 《페르시아인들》249-261행

 


 

 

            코로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소중한 이들의 시신이 바닷물에 잠겨
소용돌이치며 페르시아의 겉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밀려 다닌단 말인가?
 

             사자

활은 아무 쓸모가 없었사옵니다. 군대가
함선들의 충각에 제압되어 전멸했사옵니다.


          코로스

오오, 가련한 페르시아인들을 위해
비통한 곡소리를 울려라.
그들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아아 슬프도다, 군대는 전멸했구나.


             사자

오오, 살라미스, 내게는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이여.
오오, 아테나이여, 너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는구나.


 - 《페르시아인들》274-285행

 


 

          사자

수만 따진다면 우리 함대가 틀림없이
이겼을 것이옵니다. 헬라스인들의 함선은
모두 합하여 열 척의 서른 배밖에 안 됐고,
그 외에 열 척의 별동대가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휘하에는, 제가 알기로, 일천 척의
함선이 있었고, 그 밖에 쾌속선이 이백하고도
일곱 척이었사옵니다.
셈을 하자면 그러하옵니다.
이 전투에서 우리가 열세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천만에. 어떤 신이 불공평한 무게로 우리의 저울접시를
기울어지게 함으로써 우리 군대를 망가뜨린 것이옵니다.


- 《페르시아인들》337∼346행 


 

 

          사자

마마, 이 모든 재앙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복수의 정령이나 악령에 의해 시작된 것이옵니다.
아테나이인들의 군대에서 찾아온 한 헬라스인이
마마의 아드님 크세르크세스께 말했사옵니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이 내리자마자
헬라스인들은 이곳에 머물지 않고
함선의 노 젓는 자리로 달려가서는 각자 은밀하게
뿔뿔이 달아나 제 목숨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 《페르시아인들》353∼360행 

 

 

          사자

그러나 낮이 백마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나타나
온 대지를 찬란히 빛나는 빛으로 채웠을 때,
맨 먼저 헬라스인들 쪽으로부터 노랫소리와도
같은 함성이 들려왔는데, 거기에 화답하여
섬의 바위들로부터도 메아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왔사옵니다.
크게 실망한 우리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사옵니다. 헬라스인들은 도주하려고
신성한 전투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싸움터로 돌진하며 불렀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요란한 나팔 소리가 그들의 전 대열을
활활 타오르게 했사옵니다. 즉시 노들이 요란하게 물에
잠기며 그들은 박자에 맞춰 깊은 바닷물을 쳤사옵니다.
그리고 금세 그들 모두가 눈에 환히 보였사옵니다.
먼저 우익이 질서정연하게 앞장서서 이끌었고,
그 뒤로 전 함대가 공격하러 다가왔는데,
그와 동시에 요란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사옵니다.
"오오, 헬라스인들의 아들들이여, 진격하라!
우리의 조국을 해방하라! 우리의 자식들과, 아내들과,
조국의 신들의 처소들과, 조상들의 무덤을 해방하라!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물론 우리 쪽에서도 페르시아 말로 요란하게
응수했사옵니다. 이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사옵니다.
곧장 전함들이 청동 부리들로 서로 들이받았사옵니다.


- 《페르시아인들》386∼408행 

 

 

 

          사자

원정에 참가했다가 살아남은 페르시아의 함선은
저마다 노를 저어 무질서하게 황급히 도망쳤사옵니다.
마치 다랑어나 그 밖에 다른 물고기를
잡을 때처럼 헬라스인들이 부러진 노와
난파선의 부서진 잔해로 줄곧 우리를 치고
찔러대니 온 바다에 신음 소리와 곡성이
가득했사옵니다. 밤의 어둠이 가려줄 때까지.
우리가 당한 재앙으로 말하자면 하도 많아
열흘 동안 이야기해도 못 다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명심해두소서, 단 하루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적은 없기 때문이옵니다.


- 《페르시아인들》422∼432행 

 

 

 

          사자

마지막에는 헬라스인들이 일제히 돌격하여
마구 치며 불쌍한 적군의 사지를 난도질했사옵니다.
모든 적군이 완전히 숨을 거둘 때까지.
재앙의 심연을 보시고 크세르크세스께서는
통탄하셨사옵니다.
전군을 볼 수 있게 바다 가까운
높은 언적에 옥좌를 갖다놓게 하셨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입고 계시던 옷을 찢고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시더니, 급히 보병부대에 명령을 내리시고는
황급히 도주하셨사옵니다.

- 《페르시아인들》462∼470행 

 


 

          아톳사

오오, 가증스런 악령이여. 어찌 페르시아인들을
그렇게 속인단 말인가. 이름난 아테나이를 치려다
내 아들이 쓰라린 복수를 당하는구나. 전에 마라톤이
죽인 페르시아인들로는 충분하지 않더란 말인가!
이들을 위해 내 아들은 배상을 요구하려다가
그토록 엄청난 화를 스스로 불러들였구나.

- 《페르시아인들》472∼477행 

 

 

 

          코로스

수많은 여인들이
슬픔을 함께하며
부드러운 손으로 면사포를 찢으니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적시는구나.

갓 결혼한 신랑이 보고 싶어
부드럽게 흐느끼는 페르시아 여인들,
이불이 푹신한 침상과 잠자리를 잃고,
청춘의 환희와 환락을 잃고
괴로워 하염없이 울고 있구나.
나도 고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진심으로 만가를 부르노라.

이제는 전 아시아 땅이

텅 빈 채 탄식하는구나.
크세르크세스가 인솔해 가서, 아아,
크세르크세스가 도륙했고, 아아,
크세르크세스가 지각없이 모든 것을
함선들에 태워 보내 다 잃고 말았구나.

- 《페르시아인들》537∼553행 

 


 

          아톳사

그만큼 나는 재앙에 놀라 제정신이 아니오.
그래서 나는 아까처럼 성장도 하지 않고
마차도 없이,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길이오.
내 아들의 아버지에게 사자(死者)들의 마음을
달랠 만한 헌주의 선물을 바치려고 말이오.
흠 없는 암소의 마시기 좋은 흰 우유와,
꽃에서 일하는 벌의 분비물인 반짝이는 꿀과,
정결한 샘에서 길어 온 정화수와, 들판의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대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이 오래된 포도덩굴의 영액 말이오.

- 《페르시아인들》606∼615행 

 


 

                         (다레이오스의 혼백이 무덤에서 일어선다.)
     다레이오스 

오오, 심복 중에 심복들이여, 내 죽마고우들이여,
페르시아의 노인들이여, 도시에 무슨 어려움이 닥쳤기에
온 도시가 비탄하고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고 있소?
나는 아내가 내 무덤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휩싸여 아내의 헌주를 자애롭게 받아들였소이다.
한데 그대들은 내 무덤 옆에 서서 비찬하고
사자를 깨우려고 큰 소리로 통곡하며
애처로이 나를 부르는구려. 하지만 이리로 올라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오. 그리고 지하의 신들은
놓아주기보다는 붙잡는 데 더 능한 편이라오.
하나 나는 저들 사이에서 힘이 있는지라 이렇게 왔소이다.
자, 서두시오. 내가 지체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무슨 새로운 재앙이 페르시아인들을 짓누르고 있지요?

- 《페르시아인들》681∼693행 

 


 

       다레이오스 

마음속의 오래된 경외심이 그대를 제지한다고 하니,
(아톳사에게) 내 침상의 연노한 동반자여, 고귀한 부인이여,
당신이 비탄과 울음을 그치고 내게 분명히 말하시오.
인간이면 누구나 고통 받기 마련이오, 인간이니까.
필멸의 인간들은 너무 오래 살다보면 바다로부터도,
육지로부터도 숱한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지요.

           아톳사

복을 타고난 당신은 모든 인간들 중에 월등히 행복하셨고,
햇빛을 보고 계시던 동안에는, 페르시아인들의 눈에
신이 누릴 복된 삶을 사셨으니 부러움을 사셨지요.
지금은 당신의 죽음이 부러워요. 고통의 심연을 보시기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모든 것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페르시아인들의 나라가 완전히 망했어요.

 - 《페르시아인들》703∼714행


 

          아톳사

담찬 크세르크세스는 못된 자들과 사귀다 그렇게 배우게
된 것이지요. 그자들의 말인즉, 당신은 창으로 큰 재산을
모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으나 그 애는 비겁하게도
집 안에서나 창을 휘두르며, 아버지의 유산을 전혀 늘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못된 자들의 입에서 그런 비난을 듣게 되자
그 애는 헬라스로 원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거예요.


- 《페르시아인들》753∼758행 

 


 

     다레이오스

플라타이아이 땅에서 도리에이스족의 창에 의해
그만큼 큰, 핏방울이 듣는 제물용 케이크가 마련될 것이오.
그리고 뼈 더미들은 죽게 마련인 인간들 눈에
다음 세 세대에 이르기까지 말없이 증언해줄 것이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제우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불손한 마음의
응징자이시자 준엄하신 판관이시기 때문이오.

- 《페르시아인들》816∼828행 




                         (크세르크세스, 소수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등장)
  크세르크세스

아아!
나야말로 불운하구나. 생각도 못할 가증스런 운명이
내게 주어지다니!
한 악령이 얼마나 잔인하게
페르시아인들의 종족을 짓밟았는가!

- 《페르시아인들》908∼912행 


 

    크세르크세스  우리는 얻어맞았소.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만큼.

           코로스  우리는 얻어맞았나이다. 그것은 확연하옵니다.

           아톳사  생소하고도 생소한, 고통스러운 고통이지요.

                           - 《페르시아인들》1008∼1010행

 

 

           코로스  아아, 슬프도다.
   크세르크세스  그것은 '슬프도다'보다 더한 것이었소.
           코로스  그럼 두 배 세 배로 슬프도다.
   크세르크세스  우리에겐 슬픔이지만 적군에게는 기쁨이었소.

                           - 《페르시아인들》1031∼1034행



    크세르크세스  이제 내 외침에 화답하여 그대도 외치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크세르크세스  울면서 집으로 가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크세르크세스  온 도성이 울리도록 '아이고 아이고' 외치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외쳐야지요. 그렇고말고요.
   크세르크세스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통곡하시오.
           코로스  아아, 페르시아 땅을 밟기가 뭣하구나.
   크세르크세스  아아 아아, 삼단노선들과 함께
                           아아 아아, 그들은 전멸했구나.
           코로스  이제 나는 음울한 곡소리로 전하를 호송하겠나이다.
                           (코로스와 크세르크세스 퇴장)

                           - 《페르시아인들》1067∼1077행(마지막행)


 

펼친 부분 접기 ▲



 

 































 


















 



 
 
saint236 2014-03-10 21:31   댓글달기 | URL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서는 베리 스트라우스의 책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과 전투에 관한 책은 스피디한 전개가 생명인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너무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이...신탁이나 기타 부분이 다 들어가 있으니 말입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육군국 페르시아와 해군국 그리스의 전쟁이었고, 결국 수적으로는 열세이나 함선을 유기적으로 활용한 그리스가 승리하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르지요. 세계의 역사를 바꾼 4대 해전 가운데 하나로 꼽느니만큼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지요.

oren 2014-03-10 23:22   URL
저는 아직 베리 스트라우스의 『살라미스 해전』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읽어보니 평가가 매우 좋더군요. 그래도 저는 헤로도토스의 '신탁'을 곁들인 얘기가 여전히 재미있더군요.

saint 님의 말씀처럼 절대적 우세에 있었던 육군의 전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페르시아의 치명적인 실수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살라미스 해전>에서 여러모로 불리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성급하게 그리스 함대에게 덤벼든 실수도 크지만요.

그런데, 크세르크세스가 아르테미시아의 훌륭한 조언('전하, 함선을 아끼시고 해전을 피하소서. 바다에서는 이곳 백성들이 전하의 백성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옵니다. 전하께서 굳이 해전을 하셔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나이까?')을 받아들였다면 과연 그리스가 '바다에 둥둥 뜬 상태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었을까 싶은 아찔한 생각도 들긴 합니다.

saint236 2014-03-20 20:16   URL
아마도 크세르크세스의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겠지요.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만심이 아마도 패인이지 않을까요? 다리우스가 그리스를 침략하게 된 것은 그가 캄비세스의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 캄비세스의 이집트 점령에 비견할 수 있는 그리스 점령은 그에게 혈통이 아닌 실력이라는 정당성을 제공해 줄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oren 2014-03-24 16:08   URL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원정을 떠나기 전부터 마음 속에 '교만'이 가득 차 있었던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반면, 그리스 연합군들은 도시와 신전들을 모두 포기하면서도 끝까지 결사항전으로 버티며, '자유 아니면 죽음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맞서 싸운 게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아이스퀼로스가 《페르시아인들》에서 '다레이오스'의 입을 빌어 노래한 대목은 <살라미스 해전>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전쟁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익숙한 패턴이라고도 생각됩니다.
* * *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제우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불손한 마음의
응징자이시자 준엄하신 판관이시기 때문이오.

pek0501 2014-03-16 14:11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을 보니 책이 참 잘 생겼어요. ㅋ

"가장 용감한 자는 때로는 가장 불행한 자이다." -『몽테뉴 수상록』
이 문장을 읽으니 에밀 시오랑의 말이 생각나네요. "지식이 적으면 즐겁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이 뒤집어 보면 말이 되는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죠.^^


oren 2014-03-19 23:12   URL
pek 님 오랜만에 찾아와 주셨군요. 사진에 담은 책이 가끔씩은 실물보다 더 멋지게 보일 때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 저는 책의 겉모습뿐 아니라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까지도 사진으로나마 얼마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답니다. 혹시라도 저런 사진을 보고 '책의 무게'까지도 어렴풋이 짐작하시는 분이 더러 계신다면 기대밖의 소득일 수도 있겠구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자신이 참전한 전쟁에 대해 쓴 기록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 * *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잉태할 때는 물론이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온갖 믿기 어려운 전설들을 쏟아낸다. 전쟁터에서의 기적같은 활약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그들이 최후에 이르러 자신들의 찬란했던 생을 마감하는 절정의 순간은 위대한 시인과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재료가 되기에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에서도 독자의 감정을 가장 고양시키는 순간들은 대개 영웅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고대 그리스의 몇몇 영웅들의 죽음은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말한 '역사의 피뢰침이 작동하는 순간들'에 해당하는-보다 훨씬 더 어두운 종말을 맞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영웅들의 운명과 영광은 다소 역설적이다. 그들이 엄청나게 운이 좋아 결정적 대전투를 아무리 멋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전쟁이 그치고 평온한 일상이 한참이나 지속된 이후에 고요히 맞게 되는 영웅들의 죽음엔 희미한 어둠만이 깃들 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로마의 영웅들은 대부분 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비록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안토니우스의 죽음은 '본받지 말아야 할 영웅의 표본'답게 너무 찌질하다보니 그가 죽은 후 뒤따라 세상을 버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 훨씬 더 극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그는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에 포위되자 자살 직전에 "클레오파트라여, 나는 그대를 잃었다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아니오. 내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명색이 원수인 내가 한낱 여자보다 용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오."라고 말한 직후 자신의 칼로 배를 찔렀지만 자신이 방금 했던 말마따나 결국 마지막까지 '용기 부족'을 드러낸 셈이 되고 말았다. 자신을 노린 최후의 일격이 치명적이지 못했던 탓에 그는 몹시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가 시종에게 이끌려 클레오파트라한테 옮겨진 끝에 그녀 앞에서 죽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겨왔듯이 나 또한 고대 영웅들의 죽음 가운데 가장 극적이었던 장면은 카이사르의 암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주된 이유도 결국 그의 죽음을 둘러싼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들 속에서 뭔가 새삼 느껴지는 바를 얘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지만, 그 '유명한 장면'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익히 알려진 터여서 갑자기 불쑥 내놓기엔 어딘가 민망하다. 내 생각으로는 '카이사르의 죽음'이 그토록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보다 앞선 영웅들, 곧 아킬레우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이 그보다 훨씬 '덜' 극적이었다는 점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참에 그들의 얘기를 '카이사르의 죽음'에 앞서 얼마간 펼쳐 놓음으로써 이 글의 진부함을 얼마쯤 희석시켜보려는 헛된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다.

서양 문학의 최고봉에서 영원히 내려올 줄 모르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닐까 싶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이고, 그를 가장 닮고 싶어했던 영웅은 알렉산드로스다. 그의 영웅적 면모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그려지는데, 그가 무수한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즐겨 읽으며 '전쟁의 교범'으로 삼은 얘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2천 번의 여름' 이 지난 지금도 좀체로 그칠 줄 모른다.


하루는 다레이오스의 재물과 짐을 맡고 있던 자들이 그중에서 가장 값져 보이는 작은 상자 하나를 그에게 보내왔다. 그래서 그는 측근들에게 어떤 값진 물건을 그 안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견이 분분하자 알렉산드로스는『일리아스』의 팔사본109을 그곳에 안전하게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다수의 신뢰할 만한 역사가들이 이 일화가 사실임을 증언하고 있다. 알렉산드레이아110인들이 헤라클레이데스를 근거로 내세우며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면, 알렉산드로스에게 호메로스는 게으르거나 쓸모없는 원정길의 동반자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아이귑토스를 정복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크고 인구가 많은 헬라스의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 건축가들의 조언에 따라 부지를 선정하여 측량하고 울타리를 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점잖게 생긴 한 백발 노인이 다가서더니 다음의 시행을 낭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귑토스의 맞은편 큰 너울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섬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그 섬을 파로스라고 부르지요.
111

 그러자 알렉산드로스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금은 제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카노보스 하구 조금 북쪽에 있는 섬이었던 파로스113로 갔다. 그리고 그곳 지형의 빼어난 점을 보고-그곳은 바다와 커다란 석호(潟湖) 사이로 뻗어 있는, 널찍한 지협과도 비슷한 길고 가느다란 지대로, 끝 부분은 큰 포구를 이루고 있었다-그는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서도 찬탄받아 마땅하지만 더없이 현명한 건축가라고 말하며, 이 지형에 맞는 도시의 설계도를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282∼284쪽)

주석

109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열본을 말하는 것 같다.
110 알렉산드레이아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어 이름이다.
111 『오뒷세이아』4권 354∼355행
113 파로스는 나중에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팔각 등대가 세워졌던 곳이다.



어려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신 덕분에 철학을 깊이 공부했던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길에 나서며 여러 권의 책들을 챙겼음은 불문가지다. 그가 아시아 내륙으로 건너간 이후 다른 책들을 구할 수 없게 되자 하르팔로스에게 명해 책을 좀 보내오게 했는데 거기엔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도 포함되었다. 그만큼 학구열이 뜨거웠던 그가 전쟁 중에도 자주 마음 속으로 『일리아스』를 떠올리고, 또 그 작품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를 얼마나 여러 번 떠올렸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가 마케도니아를 떠나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킬레우스의 투구와 방패가 번쩍였던 바로 거기, 트로이아 벌판에 도착했을 때의 심정은 또 얼마나 감개무량한 것이었을까.


일단 일리온에 도착하자 그는 아테나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영웅들에게 헌주했다. 그는 몸에 기름을 바르고 측근들과 함께 관습에 따라 알몸으로 경주를 한 다음 아킬레우스의 비석에 화환을 바치며 아킬레우스야말로 살아서는 성실한 친구66를 만나고,죽어서는 위대한 전령67을 만났으니 행복하다고 찬양했다. 그가 돌아다니며 시내를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알렉산드로스68의 뤼라를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그 뤼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아킬레우스가 영웅들의 명성과 행적을 노래하던 뤼라69를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264쪽)

주석

66 파트로클로스를 말한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퓔라테스는 서양 문학에서 우정의 본보기다.
67 호메로스를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주인공이다.
68 여기서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감으로써 트로이아 전쟁을 일으킨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의 별명이다.
69 아킬레우스가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 영웅들의 행적을 노래하던 일에 관해서는 『일리아스』9권 185∼191행 참조.

 


기원전 334년 봄에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로 건너갈 때만 하더라도 그의 나이는 22세에 불과했다. 그가 트로이아를 지나 잇소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이집트로 건너가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기원전 332년), 다시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바빌론을 지나고 카스피해를 거쳐 인도의 탁실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때까지도 그의 나이는 서른을 넘어서지 못했다. 갠지스 강까지 건너려던 그가 결국 부하들의 만류에 발길을 되돌려 인더스 강을 따라 귀향길에 오르고, 파키스탄의 황무지를 통과하는 험난한 여정 끝에 마침내 바빌론에 안착했지만, 결국 그는 거기서 열병 때문에 고열에 시달리다가 갑작스레 죽고 만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셋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에도 몇 가지 의혹이 없었던 건 아니나 다른 영웅들의 죽음에 비해서는 매우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그를 몹시도 닮고자 했던 대표적인 영웅이었던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다. 그의 최후에 관한 그 유명한 얘기로 재빨리 넘어가기 전에, 나는 기원전 61년 봄으로 이야기의 무대를 슬쩍 옮길 필요를 느낀다. 그때 카이사르는 히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를 통치하라는 명을 받고 알프스를 넘어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아주 초라한 야만족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한 번은 히스파니아에서 여가 시간에 알렉산드로스의 전기를 읽다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측근들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묻자,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는 내 나이에 이미 그토록 많은 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다 할 위업을 이룩하지 못했으니 이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477쪽)



서른아홉 살에 알프스의 산자락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던 그는 결국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그의 조국이자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로 진군하는 결단을 내린다.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의 행위를 결코 '잘한 짓'으로 보지 않았다.


마침내 카이사르가 심사숙고하기를 그만두고 자신을 운명에 내맡기는 양 일종의 격정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절망적인 모험을 감행하기 전에 흔히 내뱉곤 하던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남기고는 서둘러 강을 건넜다. 그때부터 그는 줄곧 전속력으로 행군하여 날이 새기 전에 아리미눔으로 쳐들어가 점령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강을 건너기 전날 밤 해괴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가 친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꿈을 꾸었기에 이르는 말이다.125 (506쪽)

주석

125 친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꿈은 장차 나라를 얻을 것임을 뜻하는 꿈이라고 한다. 헤로도토스『역사』 6권 107장 참조. '친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을 플루타르코스는 arrhetosmixis('언어도단의 교합'이라는 뜻)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모국으로 쳐들어가는 행위를 일종의 폭행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매료되어 『수상록』을 썼던 몽테뉴는 확실히 플루타르코스의 견해에 동조한다. 몽테뉴는 자신의 책에서 옛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꺼내 놓는데, 그 가운데서도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를 비교한 대목'이 내겐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경우라면 그는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수로 보아야 한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하고, 역사를 만들고 이름을 남기려면 "한 제국이나 한 왕국을 정복하는 데에 대장이 되어 보았어야 한다. 카이사르 같이 늘 상대편보다 약한 군대를 가지고 52회의 지정된 전투에 승리를 거두었어야 한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탁월한 인물에 대하여>라는 장(章)에서 몽테뉴는 호메로스와 알렉산드로스를 불러낼 뿐 끝내 카이사르는 곁다리로 제쳐 놓는다. 여기서 몽테뉴의 길고 긴 '알렉산드로스 우위론'을 적잖이 소개했다가는 '카이사르의 죽음'을 제때 만나기도 여려울테니 그 가운데 극히 일부만 소개하고 다음 무대로 넘어 가겠다.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그의 학문과 능력의 탁월성, 그 순수하고 명쾌하고 오점과 시기심으로 더럽혀진 일이 없는 오랜 영광의 지속과 위대성,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의 메달을 몸에 지닌 자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경건한 신념으로 되었던 사실, 다른 역사가들이 어느 왕이나 왕공들의 공훈을 두고 쓴 것보다도 더 많이, 왕들과 왕공들 자신이 그의 공훈에 관해서 기술하였고, 다른 역사를 경멸하는 마호메트 교도들이 지금까지도 다만 그의 역사에는 특권을 주어 이것을 용인하고 숭앙하는 사실들을 고찰해 본 자이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단 하나 내 선택에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보다도 내가 역시 그를 택한 것이 옳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카이사르의 공훈에는 그 자신의 힘이 더 많았고, 알렉산드로스의 공훈에는 운의 힘이 더 많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몽테뉴는 어떤 판단에서건 어느 한쪽으로 명백히 기우는 일을 몹시도 어리석은 일로 여겼기 때문에 항상 그 반대의 이면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만큼 그가 이 두 영웅을 두고 내리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자꾸만 토를 다는 이유를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

그들이 여러 면에서 대등하였고, 카이사르가 어느 점에는 아마도 더 위대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여러 군데에서 황폐시켜 나간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였다.

소리내며 타는 마른 숲과 월계수 숲 속에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번지는 화염과도 같고
신속히 고산 준령에서 떨어져 내려
물거품 던지는 급류가 소란스레 대해로 달려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여 그 통로를 터 나가듯. 
                     (베르길리우스)


그러나 카이사르의 야심엔 더 많은 절제가 있었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나라의 궤멸과 세계의 전반적인 악화에 그의 낮고 추한 목적을 두었던 만큼, 너무 심한 불행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모든 점을 종합해 저울질해 보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편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내 얘기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동안, 우리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넜고, 트로이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와 강과 황야를 지났고, 로마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내가 다른 책에서 끌고 나온 인용문들까지도 헤쳐 나왔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마지막 '사다리'(그리스어로 klimax, 영어 'climax'의 어원)에 다다랐다. 나도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 원래 이 글은 '사다리' 부분만 쓸 작정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덜컥 내놓는 '뻔한 사다리' 하나를 어디에 걸친다 한들 도대체 누가 무슨 새로운 흥미가 생겨 그 사다리에 올라타 보겠는가 싶어 이렇게 멀고도 험난한 길을 내 스스로 꾸며본 것이다.
 

내가 만약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인『줄리어스 시저』를 미리 좀 읽었더라면 이 클라이맥스 부분을 훨씬 더 장황하게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극에 나온다는 '브루투스의 명언'을 다른 책에서 몇 차례 접했으나 다행히 그게 전부였다. 몽테뉴가 유달리 좋아했던 브루투스를 위해서라도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나오는 그의 연설만은 여기에 다시 한번 인용하고 싶다. 내 이야기의 나머지는 고스란히 플루타르코스에게 맡긴다.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카이사르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카이사르는 나를 사랑했기에, 나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행운을 타고났기에,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연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 마르쿠스 브루투스(기원전 85∼42년)


바로 그러한 자질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민중은 대부분 마르쿠스 브루투스 쪽으로 돌아섰다.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부계로는 왕정을 종식시킨 브루투스의 후손이고, 모계로는 또 다른 명문가인 세르빌리이가(家)의 후손으로 카토237의 사위이자 조카였다. 브루투스는 새로운 독재를 자진해 철폐하고 싶었지만 그러한 열망은 카이사르에게서 받은 여러 가지 명예와 혜택 때문에 무너졌다. 파르살로스에서 폼페이유스가 도주한 뒤 카이사르는 그의 목숨은 물론이고 그가 탄원한 친구들의 목숨도 많이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특히 신임하고 있었다.

브루투스는 그해에 법정관들 중에서도 가장 요직에 있었고, 3년 뒤에는 같은 후보인 캇시우스에 앞서 집정관이 되게 되어 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이 문제와 관련해 캇시우스의 후보의 변(辯)이 더 옳기는 하지만 자기로서는 브루투스를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음모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을 때 몇몇 사람이 브루투스가 음모에 가담했다고 고발하자 카이사르는 그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으로 자기 몸을 만지며, 브루투스는 통치자가 될 만한 좋은 자질이 있지만 바로 그러한 자질 때문에 배은망덕한 악당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브루투스는 내 이 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오."라고 말했다.(543∼544쪽)


237 로마의 공화정을 사수하려던 스토아 철학자 소 카토를 말한다. 브루투스가 원로원을 중심으로 공화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카이사를 암살하게 된 데에는 그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 왕정을 종식시킨 브루투스의 조상, ‘땅바닥에 입을 맞추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세바스티아노 리치, 1700~1704년

 

 


 -
브루투스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카토(기원전 95∼46년).
   그는 탑수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에게 패한 후 플라톤의 《파이돈》을 읽으면서 자살했다.


어떤 죽음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냐는 문제

운명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것인 듯하다. ······

어떤 예언자가 카이사르에게 로마인들이 이두스라고 부르는, 3월의 그날 큰 위험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그날이 다가와 카이사르가 원로원으로 가던 도중 그 예언자를 만나 인사하며 농담 삼아 "3월의 이두스가 다가왔구려." 라고 말하자, 예언자는 "네,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지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나직이 대답했다.

이두스 전날 카이사르는 마르쿠스 레피두스 집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대받아 갔다가 긴 의자에 반쯤 기대 누운 채 여느 때처럼 서찰들에 서명하고 있는데, 어떤 죽음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냐는 문제가 갑자기 화두가 되자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예기하지 않은 죽음이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집에 돌아온 카이사르는 여느 때처럼 아내 곁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침실의 문과 창문들이 활짝 열리는 바람에 그 소음과 쏟아지는 달빛에 놀라 잠을 깨어보니 아내 칼푸르니아가 깊은 잠에 빠져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신음 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죽은 남편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는 꿈을 꾸었던 것으로 밝혀졌다.(545∼546쪽)




 -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17세기 경



 - 붉은색 망토를 입은 카이사르에게 항복하는 켈트족의 수장 베르킨게토릭스



저 유명한 살인극과 사투가 벌어진 장소를 보게 되면

······ 이런 일들은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원로원 회의가 개최되고 저 유명한 살인극과 사투가 벌어진 장소를 보게 되면 하늘의 어떤 힘이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그곳으로 카이사르를 인도하고 소환했음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폼페이유스의 입상이 있었고, 또 그곳은 폼페이유스가 자신의 극장에 딸린 장식 건물의 하나로 지어 봉헌했기 때문이다.
······

체격이 건장한 카이사르의 심복 안토니우스를 브루투스 알비누스가 일부러 장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깥에 붙들어두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안으로 들어갔고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편 브루투스의 측근들은 더러는 카이사르의 의자 뒤에 둘러섰고, 더러는 틸리우스 킴베르가 추방당한 형을 위해 카이사르에게 탄원하는 것을 지원하려는 듯 덩달아 탄원하며 카이사르의 의자가 있는 데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자리에 앉은 뒤에도 여전히 그들의 탄원을 거절했고, 그들이 더욱더 뻔뻔스럽게 졸라대자 그들 중 몇 명에게 역정을 냈다. 그러자 틸리우스가 카이사르의 토가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목덜미 부분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것이 공격 신호였다. 단검으로 맨 먼저 카이사르의 목덜미를 가격한 것은 카스카였다. 그러나 카스카는 이런 엄청난 거사를 시작하면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그의 가격은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경미했다. 카이사르는 몸을 돌려 단검을 잡고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소리쳤는데, 가격당한 자는 로마 말로 "카스카! 이 악당 놈아, 이게 무슨 짓이야?" 라고 소리쳤고, 가격한 자는 헬라스 말로 자신의 형에게 "형님, 도와주시오!" 라고 소리쳤다.

 

이렇게 사건이 시작되자, 음모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당황하고 놀라 도주하지도 카이사르를 도우러 가지도 못했다. 아니, 그들은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들은 모두 칼을 빼어들었고, 카이사르는 사방으로 에워싸인 채 어느 쪽으로 돌아서든 그의 얼굴과 눈을 겨냥한 단검과 마주칠 뿐이었다. 카이사르는 야수처럼 이리저리 쫓기다가 결국 그들 모두의 손에 걸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제물 바치는 일에 참가하여 피맛을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브루투스도 카이사르의 아랫배에 일격을 가했다. 일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항하며 그들의 가격을 피해 이리 저리 몸을 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으나 브루투스가 단검을 빼어든 것을 보자248 머리에 토가를 뒤집어쓰고는 우연이었는지 살해자들에게 그리로 밀려갔는지 폼페이유스의 입상이 서 있던 대좌에 쓰러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좌가 카이사르의 피로 흠뻑 젖었으니, 수많은 상처를 입고 부들부들 떨며 자기 발 앞에서 쓰러져 있는 정적에 대한 이 복수극을 다름 아닌 폼페이유스 자신이 연출한 것처럼 보였다. 카이사르는 스물세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암살자들도 한 사람의 몸을 그토록 많이 가격하려다 서로 부상을 입혔다.(548∼550쪽)

 

248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내 아들아, 너머저?"(kai su, teknon?)라는 유명한 그리스 말은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중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 82장에 기록되어 있다.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말은 셰익스피의 사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온다.




 - 원로원에서 암살당하는 카이사르

 

카이사르가 거둔 결실은 허명과 동료 시민들의 시기를 산 영광뿐

카이사르는 56세에 죽었으니, 폼페이유스보다 4년 조금 넘게 산 셈이다. 카이사르는 평생 동안 그토록 큰 위험들을 무릅쓰며 권력과 통치권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간신히 목표를 달성했으나, 카이사르가 거기에서 거둔 결실은 허명(虛名)과 동료 시민들의 시기를 산 영광뿐이었다. 그러나 생전에 그를 도와주던 위대한 수호신은 사후에도 암살의 복수자로서 그를 따라다니며 모든 육지와 모든 바다에서 암살자들을 색출하여, 마침내 암살에 직접 가담했거나 음모에만 가담한 자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처벌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중에 가장 놀라운 일은 캇시우스에게 일어났다. 그는 필립포이에서 패한 뒤 카이사르를 찔렀던 바로 그 단검으로 자살했던 것이다. 초자연적인 사건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거대한 혜성이었는데, 그 혜성은 카이사르가 죽은 뒤 이레 밤을 밝게 빛나다가 사라졌다. 햇빛이 희미해진 일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해 내내 해는 창백하고 흐릿했으며, 해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약하고 무기력했다. 해의 열기가 증기를 흡수하여 공기를 정화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자 대기는 침울하고 무겁게 대지를 짓눌렀다. 그러자 찬 공기 때문에 열매들이 시들어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졌다.(553∼554쪽)


 

"브루투스여, 나는 네 악령이다."

그러나 브루투스에게 나타난 환영이야말로 카이사르의 암살을 신들이 달갑잖게 여긴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브루투스는 아뷔도스에서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군대를 에우로파 대륙으로 인솔하려던 참이었는데, 밤에 여느 때처럼 자신의 천막에 누워 잠은 자지 않고 미래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브루투스는 장군들 중에 가장 잠이 적어 가장 오래 깨어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막 입구에서 무슨 소음이 들리는 것 같아 그가 등불 쪽을 바라보는데, 등불이 천천히 꺼지면서 엄청나게 크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의 무시무시한 환영이 보였다.

처음에 브루투스는 겁이 났으나 방문객이 행동도 않고 말도 않고 조용히 자기 침상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그가 누군지 물었다. 그러자 환영이 그에게 "브루투스여, 나는 네 악령이다. 내일 필립포이에서 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브루투스가 용기를 내어 "나는 너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지 방문객은 곧 사라졌다. 그 뒤 때가 되어 브루투스가 필립포이에서 안토니우스와 젊은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에게 맞서 진을 쳤다. 첫 번째 전투에서 브루투스는 자기 앞에 버티고 섰던 적군을 무찌르고 뿔뿔이 패주시킨 다음, 젊은 카이사르의 진영으로 쳐들어가 약탈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에 같은 환영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브루투스는 자신의 운명이 임박했음을 알아차리고 무턱대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투 중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그의 군대가 패주한 뒤 가파른 언적으로 물러나 칼을 빼어들고 가슴을 찔러 자살했다. 이때 칼이 그의 몸에 제대로 꽂히도록 친구 한 명이 그를 도와주었다고 한다.(554∼555쪽)

 

 

 - 칼을 거꾸로 꼽아 놓고 그 위에 쓰러져 자살하는 브루투스



이제 클라이맥스도 모두 지났다.  결국 이 대목에 이르러 케인즈가 말했던 그 유명한 말인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를 내 글의 결론으로 삼아야 할까. 그건 너무 싱거운 결말이다. 내가 몇몇 영웅들의 죽음을 장황하게 언급한 건 결국 애초부터 '그들의 운명'이 '운명'에 의해 미리 틀림없이 정해져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플루타르코스의 일관된 서술 태도 때문이었다. 영웅들의 운명은 확실히 필부들의 삶과는 너무 다르다. 어쩌면 그들은 정말로 하늘이 내린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물에 대한 지식이 그토록 풍부했다는 플루타르코스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무슨 수로 거기에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고대의 영웅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놀랍도록 해박한 지식으로 가득 풀어낸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대한 몽테뉴의 판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하나만 더 소개하고 이 글을 맺고 싶다. '운명'에 관한 몽테뉴의 생각은 이 글의 적잖은 분량을 고려해서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숨겨서 덧붙였다.


플루타르크는 보다 만족을 주며 교양을 준다

세네카의 경우는 그 시대 황제들의 포학을 좀 옹호하는 것 같다. 그가 카이사르 살해범들의 장한 거사를 비난하는 것은 확실히 강제당한 판단으로 보인다. 플루타르크는 모든 면에 자유롭다. 세네카는 풍자와 재기에 충만하고, 플루타르크는 사물의 지식이 풍부하다. 플루타르크는 보다 만족을 주며 교양을 준다. 그는 우리를 지도한다. 세네카는 우리를 밀어 보낸다.


 

『몽테뉴 수상록』에서 찾은 '운'에 대한 생각

접힌 부분 펼치기 ▼

 

 

 

운은 우리에게 단지 재료만 제공하는 것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고 아무것도 우리들을 강제하지 않는다면, 병이나 궁색, 경멸 같은 것에도 좋은 맛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은 우리에게 단지 재료만 제공하는 것이고 형체를 지어 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괴로운 편으로 자기를 연결시키며, 그런 것에 쓰고 나쁜 맛을 준다는 것은 괴상하게도 어리석은 수작이다.(58쪽)
 


 

 

행복 또는 불행한 조건의 유일한 원인

운은 우리들을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 운은 우리들에게 그 재료와 씨를 제공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은 운보다도 더 강하며, 행복 또는 불행한 조건의 유일한 원인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운을 돌리며 적용한다. (76쪽)
 



 

 

한순간에 둘러엎는 힘

운은 어떤 때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을 정확히 노리고,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건설해 준 것을 한순간에 둘러엎는 힘을 보여준다. 라베리우스(기원전 2세기의 로마의 풍자극 작가) 말처럼 "정히 나는 살아야 할 일보다 쓸모없이 하루를 더 살았다"(마크로비우스)라고 소리치게 하는 것 같다. (87쪽)
 



 

 

운에 매이는 수가 많다

나는 의술뿐 아니라 더 확실성 있는 여러 기술도 운에 매이는 수가 많다고 본다. 시상이 떠올라 작가가 황홀한 무아경에 실려가며 시를 읊는 경우에는 왜 운을 탔다고 하지 못할까? 이러한 영감은 자기 능력과 힘에 넘치는 일이며, 그것은 자기 자신 밖에서 오는 힘인 것을 작가 자신도 인정한다. 웅변가들도 비상한 동작과 흥분에서 자기가 의도하던 것보다 넘치는 말을 할 때에 그것이 자기 능력이 한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술도 그와 같으며, 때로는 화가의 필법을 벗어나서 그의 구상과 지식을 초월하는 작품이 나오면 화가 자신도 감탄과 경악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운은 이런 모든 작품들에 그가 차지하고 있는 몫을 작가의 의도뿐 아니라 지식 없이 이루어지는 그 작품의 우아성과 아름다움 속에 더 명백하게 보여 준다. 능력 있는 독자는 흔히 다른 사람의 문장 속에 작가 자신이 그런 점을 알아보며 거기 넣은 것과는 다른 완벽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 풍부한 의미와 양상을 찾아 준다. 군사적인 작전으로 말하면, 운이 거기에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가는 각자가 보는 일이다.

우리의 충고와 고찰에도 그 속에 운과 요행이 섞여 있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것이 못되며, 예지는 예민하고 생동할수록 그 자체에 더욱 허약성을 발견하며, 그 자체를 경계하게 되기 때문이다. (141쪽)
 



 

운명에 패한 것

한 인간의 품위와 가치는 그 마음과 의지로 이루어진다. 여기 그의 진실한 영광이 있다. 용감성은 팔이나 다리가 아니고, 마음과 심령의 견고성이다. 그것은 우리의 말이나 무기의 가치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자기 용기에 고집하여 쓰러지며, '쓰러져도 무릎으로 서서 전투하는'(세네카) 자, 아무리 죽음의 위험이 임박해도 태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 자, 숨을 넘기면서도 경멸하는 확고한 눈초리로 적을 쏘아보는 자는 패하여도 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명에 패한 것이다. 그는 살해당한 것이지 패한 것은 아니다. (234쪽)
 



 

성격과 운

"각자의 성격이 각자의 운을 만드는 것이다."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291쪽)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결과는, 특히 전쟁에서는 대부분 운에 달려 있고, 그 운은 우리 생각이나 조심성에 따라서 도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다. 다음 시도 그것을 말한다.

흔히 소홀한 조치가 성공하고, 조심하다가 실수한다.
운은 반드시 행운을 받을 가치 있는 자에게
승인과 원조를 주는 일 없이, 피차를 가리지 않고 돌아간다.
그것은 우리들 위에 군림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특별한 힘이 있어
모든 인생의 사물들을 그의 법 아래에 두기 때문이다.
      (마닐리우스)
                                         (308쪽)
 



 

운명의 화살이 쏟아져 와도

현자들은 사건들의 성질을 잘 저울질해 보고 고찰하고 나서 건강한 용기의 힘으로 그 위를 뛰어넘는다. 그들은 강력하고 견고한 심령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의 재앙들을 경멸하며, 발밑에 짓밟는다. 그들에게는 운명의 화살이 쏟아져 와도 도로 튀어서 끝만 뭉툭해지고, 그 신체에 아무런 자국도 남겨 주지 않는다. (333쪽)
 



 

우연의 힘

어느 옛 사람(세네카를 말함)은 우리는 우연 속에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 미치는 우연의 힘이 크다는 것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하였다. (357쪽)
 



 

탁월한 경지에 이르고자 원하는 자들은

사색과 교양은 기꺼이 신임하는 것이지만, 그것 외에도 경험에 의해서 우리 마음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훈련시키지 않으면, 이 사색과 교양이 우리를 행동하게 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심령이 실제 행동에 들어선 때에, 탁월한 경지에 이르고자 원하는 자들은, 싸움에 서투른 상태에서 경험 없이 세파에 뜻하지 않게 습격당할까 봐, 혹독한 운명에서 은신하여 편안하게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운명의 앞에 나가서, 진짜로 어려운 시련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어떤 자들은 자진하여 춥고 배고픔에 단련받기 위해서 부귀를 버렸고, 어떤 자들은 불행과 노고에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힘든 노동과 혹독한 고생을 찾아 행동하였고, 또 어떤 자들은 신체의 어느 부분이 너무 유쾌하고 즐겁기 때문에 그들의 심령이 해이해질까봐 두려워하며, 시각이나 생식기관 같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끊어 버렸다. (391쪽)
 



 

세평보다 더 운에 매인 일이 어디 있는가?

세평보다 더 운에 매인 일이 어디 있는가? "진실로 운은 모든 사물들에 지배력을 갖는다. 실제보다도 그의 변덕에 따라서 어떤 자는 올려 주고 어떤 자는 끌어내린다."(살루스투스) 행동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린 일이다.

자기 변덕대로 우리들에게 영광을 붙여 주는 것은 운이 하는 것이다. 나는 영광이 진실한 가치에 앞서 나가며, 흔히 상당한 거리로 가치를 초과하는 것을 보았다. 영광이 그림자를 닮았다고 맨 먼저 생각해 본 자는, 자기 생각보다 더한 일을 하였다. 이런 것은 두드러지게 헛된 일들이다.

영광은 어느 때는 본체보다도 훨씬 앞서 나간다. 그리고 어느 때는 본체보다 길이로 많이 넘친다.
 (686쪽)
 



 

출세하려면 운이 와서 내 손목을 끌고 갔어야 할 일이다

야심으로 말하면 교만과 이웃 간이랄까, 그보다는 딸 뻘이긴 하지만, 출세하려면이 와서 내 손목을 끌고 갔어야 할 일이다. 불확실한 희망 때문에 수고하며 인생 행로의 첫머리에 남의 신용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겪어 내는 일 따위는 나 같으면 못해 냈을 일이다.
 (713쪽)
 



 

행운과 불운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 보며, 자기 손으로 자기 사업의 진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의 기도는 허황된 일이다. 특히 전략의 고찰에 있어서 허황되다. 우리들 사이에 가끔 보이는 군사상의 예보다도 더 용의주도한 신중성은 없었다. 그것은 이 대도박의 마지막 결판에 대비해서 중도에 패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예지와 사고력 자체가 대부분은 우연에 매여 있다. 내 의지와 사유는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움직이며, 그 중에도 많은 움직임은 나 없이도 되어 간다. 내 이성에는 매일 돌발적인 충동과 동요가 있다.

심령의 모양은 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은 이때는 이 생각,
한 가닥 회오리바람이 구름을 밀고 가면,
그때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베르길리우스)
                                                        (1035쪽)
 

 


펼친 부분 접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