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사회(과)학계에는 오래전부터 베버의 지적 세계를 카를 마르크스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이 두 거장을 비교하려는 시도가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아니 그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전통'과 '강박관념'의 근저에는 마르크스냐 베버냐 또는 베버냐 마르크스냐 하는 양자택일적 태도와 베버의 지적 세계는 마르크스의 '망령'과 싸우는 과정에서 발전했다는 지성사적 전제가 깔려 있다.

 

물론 베버를 마르크스와 비교하는 것이 역사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 모두에서 좁게는 베버 연구에 그리고 넓게는 사회(과)학 연구에 결정적으로 기여해온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마르크스냐 베버냐 또는 베버냐 마르크스냐 하는 논의의 축이 사회(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틀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두 거장의 비교는 사회(과)학적 인식과 사유를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게 해주었고 해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러한 방식의 접근에는 베베의 지적 세계를ㅡ그리고 사회(과)학적 발달 과정을ㅡ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도식화할 위험ㅡ 이른바 '베버의 마르크스화'ㅡ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베버의 마르크스화는 그의 진정한 이론적·실천적 문제의식이 무엇이며 그의 지적 세계가 구축되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철학적·과학적 조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다.

 

베버의 마르크스화가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ben Ökonomie)을 비교하는 경우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유뮬론적 해석을 제시했으며 베버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상주의적 해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시도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실상 베버가 보기에 상품, 가치, 화폐, 자본 등을 인식 도구로 해서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 즉 자본주의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를 분석하는 『자본』은 매우 탁월한 과학적 업적이었다. 사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고전 중의 고전을 비교하는 것이 의의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보다 더 사회(과)학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비교연구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베버는 유물론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매우 생산적인 원리라고 확신해 마지않았다. 그는 다만 도그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즉 형이상학이나 세계관 또는 역사철학적 예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베버는ㅡ그의 제자이자 역사학자이며 사회학자인 파울 호니스하임(Paul Honigsheim, 1885∼1963)에 의하면ㅡ독일의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인 한스 델브뤽(Hans Delbrück,1848∼1929)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제시된 칼뱅주의·자본주의 이론을 반(反)마르크스주의적, 즉 이상주의적 역사관으로 해석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델브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물론적이다.

 

아무튼ㅡ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ㅡ「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과 전혀 다른 문제 영역과 문제 의식 및 문제 해결 그리고 전혀 다른 지성사적 맥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자본주의 연구에 자극을 주거나 영향을 끼친 것은 마르크스가 아닌 다른 여러 지식인들로서, 우선 이미 앞에서 논한 에버하르트 고트하인, 베르너 좀바르트, 게오르그 짐멜, 게오르그 옐리네크, 에른스트 트뢸치를 언급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신학자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22∼89),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제자 마르틴 오펜바허(Martin Offenbacher, ?∼1942) 그리고 부인 마리안네 베버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중략)

 

1902년 좀바르트의 주저 『근대 자본주의』가 출간되었다. 이 저서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권 제목은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의 기원』(Die Genesis des Kapitalismus)과 『자본주의 발달 이론』(Die Theorie der kapitalistischen Entwicklung)이다. ······ 좀바르트의 『근대 자본주의』에서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곳은 제1권 제3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Die Genesis des Kapitalistischen Geistes)이다. 이는 다시 '영리욕의 싹틈'(Das Erwachen des Erwebrstiebes)을 다루는 제14장과 '경제적 합리주의의 형성'(Die Ausbildung des Ökonomishen Rationalismus)을 다루는 제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좀바르트는 자본주의 정신을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로 파악하고 있다. 즉 그에게 자본주의 정신은 좀바르트에 따르면 중세 말경부터 일종의 집단 현상이 되었으며 주로 유대인에 의해 발전했다. 그리고 좀바르트는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를 특정한 종교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찾는 것을 불충분하다고 보며, 또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 정신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인과관계를 주장할 수 있고 이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리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처럼 좀바르트는 종교가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별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어떤 의미에서 좀바르트가 『근대 자본주의』에서 제시한 자본주의 정신과 그 형성 과정에 대한 답변과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베버가 전적으로 좀바르트의 테제를 논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논문을 썼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물론 안 된다. 다만 베버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좀바르트와 상이한 테제를 내세웠으며, 또한 이 과정에서 좀바르트를 비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좀바르트가 비판적으로 응답하고 다시 베버가 그에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이 지속되면서 두 거장은 아주 풍요로운 논쟁을 전개했다. 아무튼 베버의 '주적'은ㅡ적어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한ㅡ일반적으로 표상하는 바와 다르게 마르크스가 아니라 좀바르트였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연구의 전체적인 실마리가 되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윤리적으로 채색된 생활양식의 준칙이라는 성격"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글의 문제설정이 좀바르트와 다른 근거이다. 그 차이점이 갖는 아주 현저한 실제적 의미는 후술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좀바르트도 자본주의적 기업가의 이러한 윤리적 측면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두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사유 맥락에서는 이 윤리적 측면이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결과물로 나타나는 반면, 우리는 우리의 연구 목적상 그와 상반되는 가설을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적인 입장은 연구가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베버에게 자본주의 정신은 좀바르트와 근본적으로 달리 영리욕, 이윤 추구 또는 돈을 벌려는 욕구가 아니라 윤리이고 의무 이행이자 금욕적 생활양식이다. 그것은 오히려 좀바르트가 말하는 욕구의 합리적 조절이자 억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에는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그중에서도 특히 칼뱅주의가 인과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 베버의 견해이다.

 

그후 좀바르트는 다양한 저작을 통해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자본주의 테제에 응답했다. 이 두 거장과 더불어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저널』의 공동 편집인이던 에드가 야페에 따르면, 좀바르트는 베버의 비판에 자극을 받아 1911년 『유대인과 경제적 삶』(Die Juden und das Wirtschaftsleben)을 그리고 1913년 『부르주아: 근대 경제인간의 정신사에 대하여』(Der Bourgeois: Zur Geistesgeschichte des modernen Wirtschaftsmenschen)를 썼다. 이들 저서와 또 다른 일련의 저작에서ㅡ이를테면 1912년에 출간된 『사치와 자본주의』(Luxus und Kapitalismus)등에서ㅡ좀바르트는 베버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비판했다.

 

베버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좀바르트는 유대교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인과적 요소임을 광범위하게 입증하고자 시도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돈을 벌려는 욕구인 자본주의 정신은 바로 유대인들의 특성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인간의 정신이 자연적인 상태를 벗어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획득해야 한다. 즉 '모든 경제적 가치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정신적 단계의 인간이 '자본주의 인간'(homo capitalisticus)인데, 이 유형의 인간은 '유대인'(homo Judaeus)과 '동일한 종'에 속한다. 양자는 '인위적인 합리적 인간들'(homines rationalistic artificiales)인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활양식이 합리화한 데는 유대교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가장 중요한 인과적 요소는 베버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라 유대교라는 것이 좀바르트의 확신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좀바르트는 사치 등의 경제적 행위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테제를 내세우는데, 이는 금욕적 생활양식에서 그 결정적 요소를 찾는 베버의 입장과 근본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에 대해 베버는 『종교사회학논총』제1권, 『경제와 사회: 이해사회학 개요』, 『경제사: 보편 사회사 및 경제사 개요』등에서 좀바르트를 비판했는데, 그 강도가 1904∼1905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예컨대 베버는 『부르주아: 근대 경제인간의 정신사에 대하여』를 좀바르트의 "가장 보잘것없는 책"이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유대교에 의해 발전한 자본주의는 합리적 근대 자본주의가 아니라 천민자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베버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유대교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갖는 결정적인 의미는 기독교에 주술에 적대하는 태도를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즉 탈주술화 과정의 종교사적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유대교의 문화의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베버와 좀바르트가 자본주의 정신을 둘러싸고 거의 20년에 걸쳐 주고받은 비판은 논쟁인 동시에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즉ㅡ역사학자 오토 힌체(Otto Hintze, 1861∼1940)의 표현을 빌리자면ㅡ"보다 르네상스적 색채를 띤 좀바르트의 자본주의 정신과 보다 종교개혁적 색채를 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 사이의 논쟁이자 대화였던 것이다. 양자는 이 장기간의 논쟁을 통해 상대방에게 통렬하고 파멸적인 비판을 가한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의 지적 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맥락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인 루요 브렌타노(Lujo Brentano, 1844∼1931)가 191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Die Anfange des modernen Kapitalismus)에서 베버와 좀바르트를 동시에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브렌타노는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3세대를 대표하는 두 학자를 비판했던 것이다. 먼저 브렌타노에 따르면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카톨릭이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갖는 의미를 간과했다. 그리고 브렌타노는 좀바르트의 『유대인과 경제적 삶』을 독일 과학의 가장 불행한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혹평했으며, 자본주의 발전에서 유대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좀바르트의 주장을 논박했다. 베버는 브렌타노의 비판에 대해 1920년판의 여러 곳에서 답했다.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근대 자본주의와 선택적 친화력을 가진 정신과 행위에 끼친 심리학적 동인 때문이라는 것이 베버의 논지였다. 또한 베버는 중세 가톨릭 수도회의 문화의의를 잘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비세속적인 수도승적 금욕주의와 세속적인 직업적 금욕주의 사이의 내적인 연속성을" 강조했다. 사실 그의 전체적인 논의가 깔고 있는 기본 전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둘 사이의 연속성이었다. "즉 종교개혁은 합리적인 기독교적 금욕주의와 조직적인 생활양식을 수도원에서 끌어내어 세속적인 직업 생활의 영역으로 전파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베버는 브렌타노가 자본주의를 화폐 획득 및 화폐경제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좀바르트와 같은 범주로 분류했다. 베버가 보기에 게오르그 짐멜의 철학적 주저 『돈의 철학』(1900)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 우리의 존경하는 스승 루요 브렌타노와 ······ 견해를 달리한다. 우선 용어상 그러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보기에 전리품의 획득을 통한 영리와 공장의 성과를 통한 영리처럼 아주 이질적인 개념들을 동일한 범주에 넣는 것은 유용치 못하다. 그리고 화폐 획득에 대한 모든 추구를 자본주의 '정신'으로ㅡ다른 영리 형태들과 대비하면서ㅡ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유용치 못하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으로는 전자에 의해서는 모든 개념적 엄밀성이 상실되고, 후자에 의해서는 무엇보다 서구 자본주의가 다른 영리 형태들에 비해 지니는 특성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또한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에서도 '화폐경제'와 '자본주의'가 너무나도 동일시되어 객관적 논증을 손상시킨다. 베르너 좀바르트의 저술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탁월한 주저인 『근대 자본주의』최신판에서는ㅡ적어도 내 문제의 관점에서 보자면ㅡ서구의 특수성, 즉 합리적 노동조직이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반면 세계 도처에서 작동한 발전 요소들이 중시되고 있다.138)

 

역자 주

138) 베버의 생각과 달리 짐멜은 실제로 자본주의를 화폐경제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돈의 철학』은 돈이라는 외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이 현대 사회, 현대 문화 그리고 현대인의 삶과 숙명에 끼치는 영향, 즉 현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문화적 의의를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돈과 영혼의 관계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의 책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78쪽 이하, 354쪽 이하 참조.

 

이렇게 보면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연구에서 싸워야 했던 '망령'은 자본주의를 유물론적으로 분석한 마르크스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을 화폐 획득 및 화폐경제와 동일시한 좀바르트와 브렌타노 그리고 짐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베버는 1920년의 『종교사회학논총』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리욕', '이윤 추구', 화폐 취득,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화폐 취득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자본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러한 추구는 웨이터, 의사, 마부, 예술가, 매춘부, 부패한 관리, 군인, 도적, 십자군, 도박사, 거지들 사이에 존재했고 또한 존재한다. 이는 그러한 추구의 객관적 가능성이 어떻게든 주어졌고 또한 주어진 동서고금의 "모든 종류와 상황의 인간들" 사이에서 그래왔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개념 규정은 이미 육아실에서 배우는 문화사 수준에서 영원히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무제한적으로 영리를 탐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자본주의 '정신'과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본주의는 오히려 이러한 비합리적인 충동의 억제, 또는 적어도 합리적 조절과 동일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경영을 통한 이윤 추구, 즉 끊임없이 재생되는 이윤인 수익성의 추구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 전체가 자본주의적인 질서 안에서는, 수익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지향하지 않는 자본주의적 개별 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와 그 정신에 대한 베버, 좀바르트, 브렌타노 그리고 짐멜의 이론과 이들 상호 간의 영향과 수용 그리고 비판과 논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보면 좁게는 근대 자본주의와 그 정신을, 넓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의 판도를 보다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베버는 마르크스의 '망령'과 싸우지 않았다.「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은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으로서 상호 배척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런 한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한에서만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근대 경제에 대한 유심론 또는 이상주의로 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버가 마르크스의 '망령'과 싸우지 않았지만 다른 '망령들'과는 싸웠다는 사실이다. 즉 마르크스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폄훼하거나 부정하고자 하는 '망령', 자신의 연구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유산을 극복하고 청산하려는 시도로 보고자 하는 '망령', 그리고 유물론을 엄격한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이 아니라 형이상학과 세계관 그리고 예언의 수단으로 만들고자 하는 '망령'과 싸웠다. 그리고 특히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해서는 이를 화폐 획득 및 화폐경제와 동일시하려는 '망령'과 싸웠다. (588∼599쪽)


 - 막스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옮긴이 해제 <종교·경제·인간·근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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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1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 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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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근대적 직업노동이 일종의 금욕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전문 노동에 한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다방면에 걸친 삶을 살려는 파우스트적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치 있는 행위를 위한 일반적인 전제 조건이 되며, 따라서 '행위'와 '체념'은 오늘날 불가피하게 서로를 조건 짓고 제약한다. 시민계층적 생활양식의 이러한 금욕주의적 기조─이 생활양식이 무(無)양식이 아니라 어떻게든 양식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기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는 이미 괴테도 그 삶의 지혜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통해 그리고 희곡의 주인공 파우스트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괴테에게 이러한 인식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인간성의 시대로부터 체념 어린 작별을 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고대 아테네의 전성기가 되풀이될 수 없듯이, 그러한 시대 역시 우리의 문화 발전 과정에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다. 청교도들은 직업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 반면 우리는 직업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금욕주의가 수도원의 골방에서 나와 직업 생활 영역으로 이행함으로써 세속적 도덕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또 공장제·기계제 생산의 기술적·경제적 전제 조건과 결부된 저 근대적 경제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건설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우주는 그 추진력에 편입된 모든 개인들의 생활양식을 ─ 비단 직접적으로 경제적 영리 활동에 종사하는 자들의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 엄청난 강제력으로 규정하며 아마도 그 마지막 톤의 화석연료가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규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스터의 견해에 따르면, 외적인 재화에 대한 염려는 마치 "언제든지 벗어버릴 수 있는 얇은 외투"처럼 성도들의 어깨 위에 걸처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은 이 외투를 쇠우리로 만들어버렸다. 금욕주의가 세계를 변형하고 세계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이 세계의 외적인 재화는 점증하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역사에서 결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오늘날 금욕주의의 정신은 그 쇠우리에서ㅡ 영구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ㅡ사라져버렸다. 아무튼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적 토대 위에 존립하게 된 이래로 금욕주의 정신이라는 버팀목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정신을 웃으면서 상속한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마침내 빛이 바래가고 있는 듯하며, 또한 '직업 의무' 사상도 옛 종교적 신앙 내용의 망령이 되어 우리 삶을 배회하고 있다. '직업 수행'이 최고의 정신적 문화가치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질 수 없는 경우ㅡ혹은 역으로 말하자면 직업 수행을 심지어 주관적으로는 단순히 경제적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ㅡ현대인들은 대개 직업 수행이 지니는 의미의 해석을 완전히 포기한다. 그 종교적·윤리적 의미를 박탈당한 영리 추구 행위는 그것이 가장 자유로운 지역인 미국에서 오늘날, 드물지 않게 그것에 직접적으로 스포츠적 특성을 각인하는 순수한 경쟁적 열정과 결합하는 경향이 있다.111 미래에 누가 저 쇠우리 안에서 살게 될는지,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발전 과정의 끝자락에 전혀 새로운 예언자들이 등장하게 될는지 혹은 옛 사상과 이상이 강력하게 부활하게 될는지, 아니면ㅡ둘 다 아니라면ㅡ일종의 발작적인 자기 중시로 치장된 기계화된 화석화가 도래하게 될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만약 기계화된 화석화가 도래하게 된다면, 그러한 문화 발전의 '마지막 단계의 인간들'41)에게는 물론 다음 명제가 진리가 될 것이다.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ㅡ이 무가치한 인간들은 그들이 인류가 지금껏 도달하지 못한 단계에 올랐다고 공상한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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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

 

111 "그 노인은 연 7만 5천 달러의 수입으로 만족하고 은퇴할 수는 없는 것일까?ㅡ없다! 상점의 전면을 400피트 확장해야 한다. 왜?ㅡ그는 말하기를, 그것으로 만사가 잘 될 것이다.ㅡ저녁에 부인과 딸들이 모여서 독서를 하면, 그는 한시라도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어한다. 일요일에 그는 이제나저제나 하루가 저물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5분마다 시계를 쳐다본다ㅡ이 얼마나 잘못된 삶인가!"ㅡ이렇게 오하이오 강변에 위치한 한 도시의 (독일에서 이주해온) 어떤 굴지의 포목상(dry-good-man)의 사위가 장인에 대한 평가를 요약했다ㅡ이 판단은 그에 반해 '노인'의 입장에서는 분명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독일인의 무기력이 표출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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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41) 여기에 언급된 '마지막 단계의 인간들'(die letzten Menschen)이라는 용어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니체가 사용한 die letzten Mensch와 그 복수형인 die letzten Menschen은 철학계에서 지금까지 '마지막 인간(들)', '최후의 인간(들)', 또는 심지어 '인간 말종(들)'이나 '말종 인간(들)' 등으로 번역되어왔다. 이 가운데서 '인간 말종(들)'이나 '말종 인간(들)'이 주는 메시지가 가장 강력한 것이 사살이다. 그리고 니체의 철학적 사유가 시적이고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중립적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을 추구하는 베버의 경우에는 '인간 말종'이라고 옮기는 것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연구가 근대적 직업윤리와 노동윤리, 그러니까 근대의 합리적 문화와 정신의 발달사임을 감안해 '마지막 인간들'이나 '최후의 인간들'보다는 '마지막 단계의 인간들'로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장기간에 걸친 서구 합리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날 (수도 있는) 인간 유형이라는 의미가 확연해진다.

 

니체의 저서에서 '마지막 인간들', '최후의 인간들' 또는 '인간 말종'에 대한 부분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보라! 내 그대들에게 마지막 인간[최후의 인간, 인간 말종, 말종 인간]을 보여주리니.


'사랑은 무엇인가? 창조는 무엇인가? 동경은 무엇인가? 별은 무엇인가?'ㅡ마지막 인간은 이렇게 묻고는 눈을 깜박인다.


그런데 대지는 작아졌고, 그 작아진 대지 위에선 만물을 왜소화하는 저 마지막 인간이 날뛰고 있다. 그 족속은 벼룩과도 같아서 박멸할 수가 없다. 마지막 인간이 누구보다도 오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ㅡ마지막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인다.

 

저들은 살기 힘든 고장을 버리고 떠났다. 따스함이 필요해서이다. 게다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댄다. 따스함이 필요해서이다.

 

병에 걸리거나 의심하는 것이 저들에게는 죄악이 된다. 그리하여 조심조심 걸어다닌다. 아직도 돌이나 사람에 걸려 넘어지는 자는 바보일 뿐이다!

 

이따금씩 얼마간의 독을 마시고는 아늑한 꿈을 꾼다. 그리고 끝내 많은 독을 마시고 아늑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저들은 여전히 노동을 한다. 노동 자체가 일종의 소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소일거리로 인해 몸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한다.

 

저들은 더 이상 가난해지거나 부유해지려 하지 않는다. 둘 다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다스리려는 자가 있는가? 아직도 복종하려는 자가 있는가? 둘 다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다.

 

돌보아줄 양치기는 없고 가축떼만 있을 뿐! 모두가 평등하기를 원하고 모두가 평등하다. 그 누구든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자는 제 발로 정신병원으로 가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세상이 온통 미쳤었지'ㅡ더없이 명민한 자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깜박인다.

 

저들은 영리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조소에는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저들은 다투기도 하지만 이내 화해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위에 탈이 나기 때문이다.

 

저들은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조촐하게 즐긴다, 그러면서도 건강은 끔찍이도 챙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ㅡ마지막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4∼15쪽)

 

 

42) 이 구절은 그동안 베버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철저하게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고, 미학자 프리드리히 테오드르 피셔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베버가 인용한 구절 Fachmenschen ohne Geist, Genussmenschen ohne Herzen은 우리말로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이 아니라 "영혼 없는 전문인, 감정 없는 향락인"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러한 표현이 한국인의 언어 감각에는 더 잘 와 닿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어에서 '정신없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경황이 없다' 또는 '몹시 바쁘다'의 의미를 지니며, 또한 영혼은 인간 내면의 저 깊은 지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버가 이 논의의 맥락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원성, 내면성, 순수성 등을 뜻하는 '영혼'(Seele,soul)이 아니라, 각 개인이 이 세상에서 주관적으로 입지를 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과 행위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영위하며 또한 그에 대해서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의지와 능력을 뜻하는 '정신'(Geist, sprit 또는 mind)임을 감안해 이렇게 옮기기로 했다. 사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베버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정신이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삶과 행위의 영역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는 종교적 이념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문화사적·사회학적으로 추적한 것이다. 그리고 Henzen은 감정, 정서 그리고 마음을 모두 포괄하며 이를 상징하는 '가슴'으로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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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1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 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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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따라서 시간 낭비야 말로 모든 죄 가운데 제일가는 그리고 원칙적으로 가장 무거운 죄가 된다.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각자의 소명을 '굳게 하기'에 너무나도 짧고 소중하다.9) 사교, '쓸모없는 잡담', 사치를 통한 시간 낭비 그리고 심지어 건강 유지에 필요한 시간ㅡ6시간에서 아무리 길어도 8시간ㅡ이상의 수면에 따른 시간 낭비도 절대적인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아직 프랭클린의 경우처럼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제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이라는 것은 무한히 귀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낭비한 모든 시간은 신의 영광에 봉사하는 노동의 기회를 상실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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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

 

14 "시간을 아주 존중하고 네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보다 주의한다면 너는 너의 금과 은을 조금도 잃지 않을 것이다. 만일 헛된 오락, 치장, 축연(祝宴), 쓸모없는 잡담,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교 또는 수면, 이 가운데 어느 것이라도 너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유혹한다면 더욱더 주의하라." 박스터, 앞의 책, 제1권, 79쪽.ㅡ"시간을 마구 낭비하는 자는 그 자신의 영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매튜 헨리는 말했다(「영혼의 가치」,『청교주의 신학자 문집』,315쪽). 여기서도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예로부터 검증된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다'는 것이 현대 직업인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며, 또한 예컨대ㅡ이미 괴테가 자신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52)에서 그랫듯이ㅡ자본주의 발달의 정도를 시계가 매 15분마다 종을 치는지 여부에 따라 측정한다(좀바르트도 자신의 저서 『근대 자본주의』에서 그리했다).ㅡ그러나 우리는 (중세에) 분할된 시간에 따라 산 최초의 인간은 수도승들이었고, 교회의 종은 원래 시간을 분할코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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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9) 이 문장에서 '굳게 하기'(festmachen)에 인용부호가 있는 것은 이 단어를 성서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제1장 10절).


52)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을 둘 썼는 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1795∼96)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에서 괴테는 개인의 주관적·인격적 유일성에 토대를 둔 세계를 문학적 형식을 빌려 형상화하고 있다. 거기에서 개인이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혼동할 수 없으며 교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후자에서 괴테는 사회적으로 분화되고 직업적으로 전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숙명을 문학적 형식을 빌려 형상화하고 있다. 베버가 보기에 괴테가 문학적으로 묘사한 세계, 즉 직업적 전문가의 행위와 체념의 조합 위에 기초하는 세계는 베버 자신이 이 연구에서 문화사적으로 추적한 바로 그 세계이다. 이 두 거장은 상이한 경로를 통해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베버는 1917년에 행한 강연 '직업으로서의 과학'에서 괴테같이 위대한 예술가의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는 예술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행위와 체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베버에 따르면 예술가의 인격도 이 행위와 체념에서 나온다. 베버, 『과학방법론 논총』, 591쪽

 

그리고 괴테의 대표적인 희곡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연구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려 24년 동안 온갖 체험을 한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파우스트는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고 부자가 되어 향락을 누리며 잠시나마 신에 비견될 강력한 자가 되기도 한다. 이로부터 '파우스트적'(faustisch)이라는 형용사가 파생되었는데, 이 형용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체험과 자극 및 지식 등을 추구하는'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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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에 있어서 ‘남천참묘의 공안’이 갖는 의미



yamoo 님께서 이번에 소설 『금각사』를 무려(?) 세 번째로 읽고 나서 쓰신 '남천참묘의 공안'이라는 글 내용이 한동안 제 머리를 떠나지 않네요. 비록 그 소설을 전혀 읽어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yamoo 님께서 올려주신 흥미로운 글들을 읽으니 마치 그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금방이라도 제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그런데 저는 yamoo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뚱맞게도 (제가 최근에 읽었던) 막스 베버의 글 내용 가운데 일부가 희미하게 겹쳐 떠올라 약간은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막스 베버 또한 '근대적 인간의 삶'을 바로 '행위와 체념'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개념쌍'에 입각해서 접근했는데 바로 그 부분이 우연하게도 yamoo 님의 글 내용과 갑작스레 어떤 연관을 맺게 된 모양이니까 말이지요. 더군다나 베버가 그렇게 꿰뚫어 본 내용 가운데 일부는 그 유명한 '괴테의 걸작 소설들'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서 yamoo 님의 글과 일말의 '선택적 친화력'을 지닌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yamoo 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막스 베버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신 기억도 새삼 떠오르고 해서 이렇게 무턱대고(?) 먼댓글 형식으로나마 제가 떠올린 그 부분을 '밑줄긋기' 하듯이 올려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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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에 따르면 칼뱅주의자들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에 의해 자신의 구원의 확실성을 스스로 창조하는데, 이는 괴테가 『잠언과 성찰』에서 한 다음과 같은 격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을까? 관찰을 통해서는 결코 안 되고, 행위를 통해서나 가능하다. 네 의무를 이행하도록 애써라. 그러면 너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 그런데 너의 의무는 무엇인가? 일상의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 베버는 계속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 칼뱅주의는 다른 어떤 신앙 형태보다 사경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이 역시 수동적인 관조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에 칼뱅주의 윤리의 핵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뱅주의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은 괴테의 명제가 적용되었다. "행위하는 자는 언제나 비양심적이다. 양심을 가진 자는 관망하는 자뿐이다." 결국 베버는 칼뱅주의의 행위윤리와 괴테의 행위윤리 사이에 근본적인 유사성이 존재함을 확인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는 근대인의 인격 및 근대의 문화와 윤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근대 세계에 대한 베버의 논리 전개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즉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마지막 부분에서 '행위'(Tat, Handeln)를 '체념'(Entsagen)과 결합하고 있다. 체념이란 개인의 삶을 전문적 직업노동에 한정하며 다방면에 걸쳐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인간성을 포기함을 의미한다. 행위와 체념은 근대인의 특성이자 숙명으로서 서로 밀접한 관계이다. 베버가 보기에 이 둘의 관계는 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와 희곡 『파우스트』에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근대적 직업노동이 일종의 금욕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전문 노동에 한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다방면에 걸친 삶을 살려는 파우스트적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치 있는 행위를 위한 일반적인 전제 조건이 되며, 따라서 '행위'와 '체념'은 오늘날 불가피하게 서로를 조건 짓고 제약한다. 시민계층적 생활양식의 이러한 금욕주의적 기조─이 생활양식이 무(無)양식이 아니라 어떻게든 양식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기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는 이미 괴테도 그 삶의 지혜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통해 그리고 희곡의 주인공 파우스트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괴테에게 이러한 인식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인간성의 시대로부터 체념 어린 작별을 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고대 아테네의 전성기가 되풀이될 수 없듯이, 그러한 시대 역시 우리의 문화 발전 과정에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다. 청교도들은 직업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 반면 우리는 직업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금욕주의가 수도원의 골방에서 나와 직업 생활 영역으로 이행함으로써 세속적 도덕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또 공장제·기계제 생산의 기술적·경제적 전제 조건과 결부된 저 근대적 경제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건설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우주는 그 추진력에 편입된 모든 개인들의 생활양식을 ─ 비단 직접적으로 경제적 영리 활동에 종사하는 자들의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 엄청난 강제력으로 규정하며 아마도 그 마지막 톤의 화석연료가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규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5)

35) Max Wever,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P. 203[364∼365쪽]

 


베버에 따르면 행위는 각 개인이 세계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정립하고 이 세계에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전제한다. 그는 이러한 의지와 능력을 인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의 인격은 불가피하게 분화되고 전문화되어 한정적이고 일면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바로 괴테가 그의 문학 작품에서 형상화한 내용이다. 이처럼 베버의 인격 개념과 괴테의 인격 개념은 본질적으로 '선택적 친화력'을 보여준다. 선택적 친화력에 대해서는 바로 아래에서 논의할 것이다.

 

그 밖에도 베버는 1917년의 강연 '직업으로서의 과학'(Wissenschaft als Beruf)에서 괴테같이 위대한 예술가의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는 예술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행위와 체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예술가의 인격도 이 행위와 체념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베버에게 괴테가 가지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방법론적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 방금 언급한 ─ '선택적 친화력'(Wahlverwandtschaften)이라는 개념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인식 과제를 "일정한 형태의 종교적 신앙과 직업윤리 사이에 과연 그리고 어떤 점에서 특정한 '선택적 친화력'이 인식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경우 종교적 이념이 생활양식의 하부구조를 구성한다. 사실 일견 하등의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 이 범주 사이에 이처럼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진술일 따름이다. 인간의 문화적 삶에서는 내적·정신적 요소들과 외적·물질적 요소들 사이에 아주 다양한 관계가 성립한다. 즉 저해하는 관계, 중립적인 관계 또는 정초하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으며, 또한 일방적 관계나 상호적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이처럼 경험적으로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 다양한 양태의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역사적 개연성에 대한 방법론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베버가 도입한 것이 바로 '선택적 친화력'인 것이다.

 

선택적 친화력이란 개념이 처음 사용된 곳은 화학이다. 화학자들은 이 개념으로 원소들 사이의 결합 관계를 설명했다. 그러다가 1809년에 출간된 괴테의 소설 『선택적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에 의해 인간 세계에 적용되었다. 베버는 바로 이것을 역사적 연구에 대한 방법론적 사유에 도입했던 것이다.

 

 -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옮긴이 해제 <종교 ·경제 ·인간 ·근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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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 몽테뉴

 

 * * *

책읽기 혹은 책 구매에도 엄연히 '순위'가 있다는 걸 늘상 잊지 않도록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다그치기도 하는, 그런 곳이 다 있을까? 정말 있다. 바로 이곳 알라딘이다. 잊을 만하면 '결코 잊지는 말라'고 애써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게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그 '순위표'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거나 혹은 실망한다. 설마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들까지야 없으리라 믿고 하는 얘기다.

'책읽기'를 둘러싼 (알라딘 내에서의) 제반 활동에 대한 '종합 명세서'는 아무래도 연말이 가장 알찬(?) 듯하다. 그렇다고 제 생일에 슬며시 내미는 중간 명세서가 그리 허접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기도 전에 뜬금없이 펼쳐보게 된 '중간 정산 내역'이 무려 16개 항목에 이른다. 그 가운데 내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항목 몇 가지만 '나'를 기준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싶다.

①  599권, 247,178페이지

 

대략 2003년에 알라딘에 둥지를 튼 셈 치고는 그리 많은 책을 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사들인 책을 모조리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대로는 책을 사는 데 꽤나 신중한 편이어서 '읽지도 않을 책'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평균 쪽수가 412쪽에 이르는 점도 그리 기분나쁜 수치는 아니고.

 

 

② 8,380,120원, 7,530번째




책을 사들인 금액이 '많다'는 생각은 여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늘 적으면 적었지 많다는 쪽으로는 좀처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 책에 대해 지출하는 비용이라 여긴다. 그러니 저 금액에 대해서 내가 무슨 특별한 느낌이 들 리 있을까. 그런데 7,530번째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1번째(전국 수석?)일 테고, 또 분명 어느 누군가는 100,000번째일 텐데, 각자 자신의 '순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궁금하다. 나는? 글쎄? 이 순위가 하필이면 왜 학력고사때 받아든 실망스러웠던 전국 석차와 비슷할까?


③ 50대, 1,494번째


나는 아직까지도 '50대'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책 구매 금액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노년의 주름살

우리의 심령은 노년기에는 젊은 시절보다 더 번거로운 폐단, 불완전과 질병에 매이기 쉬운 것 같다. 어리석고 노쇠한 자존심과 진력이 나는 잔소리, 사귈 수 없는 가시 돋친 성미, 미신, 그리고 사용할 기회도 없는데 재간에 관한 꼴같잖은 걱정 따위 말고도 더 많은 시기심과 부정과 악의를 발견한다. 노년은 우리의 이마보다도 정신에 더 주름살을 붙여 준다. 그리고 늙어 가며 시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심령이란 없으며,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 사람은 그 전체가 성장과 쇠퇴로 향해 간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④ 일산동구, 563번째


연령대별 분석에 뒤이어 지역별 분석까지 내놓으니 마치 '지역별 투표 성향'을 보는 듯하다. 어쨌든 내가 사는 동네라고 해서 다른 동네와 특별히 다를 건 없지 싶다.



⑤ 북플 마니아


북플 마니아에 대해서는 대체로 '신뢰도'를 매우 낮게 평가하는 입장이어서 뭐라 말하기 곤란한데, 유독 생명과학/심리학/정신분석학/뇌과학 분야에서 '한 손' 안에 든다고 한다. 내가 저런 분야의 책을 그토록 열심히 읽었었나 싶다.

 


⑥ 80세까지 1,590권


이번에 알게 된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다. 나는 대략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1,000권의 책도 읽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굳이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보다도 '독서 의욕'이 차츰 떨어질 테고, 언젠가는 눈도 침침해 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계속 책을 읽는다면 무려 1,59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도 기쁘다. 아직도 늦지 않았구나, 앞으로 죽기 전까지 '이름만 들었던' 숱한 명저들을 차례차례 섭렵해보자, 이런 생각부터 앞선다. 알라딘이 아니라면 쉽게 내밀 수 없는 '잔존 독서량 예측'이 아닐 수 없다 싶다. 결론은 매번 뻔한 데도 이렇게 불쑥 내미는 명세서가 매번 궁금하니 나 원 참...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고백록』의 어느 중요한 단락에서 두 가지 방식의 독서법-소리를 내는 방법과 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난 나머지, 또 자신의 과거 죄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그때까지 자신의 여름 정원에서 (큰 소리로)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친구 알리피우스 곁을 빠져 나와 무화과 나무 밑으로 몸을 던져 흐느껴 울었다. 바로 그때 근처의 어느 집에서 어린이(소년인지 소녀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노래의 후렴이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였다. 그 노랫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리피우스가 아직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곳으로 다시 달려가 미처 다 읽지 못했던 바울의 『사도행전』한 권을 집어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그 책을 집어 펼친 뒤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은 첫 부분을 소리내지 않고 읽었다"고 말한다. 그가 소리내지 않고 읽은 단락은 로마서 13장으로, "육신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지 말고 그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갑옷처럼' 걸쳐라"라는 훈계였다. 혼비백산한 그는 문장의 끝에 이른다. '믿음의 빛'이 그의 가슴에 충만하고 '회의의 어둠'은 말끔히 걷힌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중에서

 

http://www.aladin.co.kr/events/eventbook.aspx?pn=150701_16th_records&custno=64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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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7-03 00:02   댓글달기 | URL
멋진 분석이십니다. 80세까지 쭈욱! 같이 읽어요^^

oren 2015-07-03 08:44   URL
보물선 님의 `명세서`는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님께서 80세까지 쭈욱 `지금처럼` 읽으시면 아마 100층도 쉽게 넘길 듯해요! 화이팅입니다.

2015-07-03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3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8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8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