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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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의 신비, 산문의 아름다움을 향한 소설의 길 위에서, 플로베르는 거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 밀란 쿤데라, 『배신 당한 유언들』중에서

 

 * * *

 

오늘날 압도적인 기세로 쏟아져 나오는 문학 장르는 단연 소설이다. 기나긴 문학의 역사 위에서 보면 가장 오랫동안 명함도 제대로 못 내민 장르가 바로 소설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소설의 홍수 시대'는 분명 문학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옛날 옛적에도 '이야기'는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거북이 등껍질이나 양피 가죽 혹은 파피루스 종이 위로도 끊임없이 옮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형식은 주로 시(詩)였다. 그게 설화시(說話詩)가 되었든 서사시(敍事詩)가 되었든 서정시(敍情詩)가 되었든. 어쨌든 시로 노래하듯 '이야기'를 전달했던 것이다.

 

영원한 인류의 고향으로 대접받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숱한 신화들이 음유시인들의 암송으로 '노래처럼' 불려졌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퀼로스가 지어낸 '오이디푸스 왕'이나 '아가멤논 왕'의 비극도 모두 시였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조차도 모두 시로 불렸다. 중세의 이름난 문학 작품들 가운데 시(詩)로 쓰인 작품이 많았던 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단테가 100곡에 걸쳐 노래한 Divina commedia는 말 그대로 신곡(神曲)이다.

 

이런 전통은 셰익스피어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문학장르 상으로는「희곡」을 많이 썼지만, 작품들마다 상당 부분을 '노래처럼' 운율을 갖춘 시(詩)로 썼다. 대략 4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처럼 '노래하듯이' 전달되어 왔던 셈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겐지 이야기』나『천일야화』같은 작품들은 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문학'은 꽤나 오랫동안 소수의 천재들이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야기를 노래로 전달하는 능력은 시인이 아니라면 결코 아무나 쉽게 창작할 있는 기술이 아니었으니까.

 

숱한 이야기를 시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학 형태인 '소설'을 제쳐 주고 왜 옛날 사람들은 그토록 어려운 '시의 형식'을 택했을까. 오랜 문학적 전통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중세의 암흑 시대를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 말고는 달리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듯이 말이다. 이런 답답한 문학적 전통에 반기를 들고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새로운 문학 형식이 바로 소설이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기폭제 역할을 떠맡았다.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제약이 갑자기 사라진다. 주제든, 형태든, 구성이든, 화자(話者)든, 시점(視點)이든, 길이든. 라블레와 세르반테스가 근대소설의 서막을 열었다면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로 현대소설의 등장을 알렸다. 결국 이들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은 후세의 작가들은 온갖 형태와 구성을 갖춘 다양한 소설을 쏟아냈다. 이제 와서는 '소설의 형식' 마저도 무너진 소설을 쓰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어떤가? 보르헤스는? 밀란 쿤데라의 몇몇 소설은 에세이와 구분하기 어렵다. 소설 속에 문득 작가 자신이 불쑥 등장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 작품들은 탁월한 소설로 대접받는다. 모름지기 소설은 '이야기'일 뿐이고, 이제 '이야기의 전달 방식'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설『마담 보바리』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걸작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먹고 살 걱정이 별로 없었던 플로베르는 아버지의 끈질긴 권유로 '법학도'가 되지만 결국 '발작'을 일으킨 끝에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에겐 법학 공부가 몸에 너무나 맞지 않는 옷이었던 셈이다. 어릴 때부터 『돈키호테』에 심취했었고, 이미 여러 차례 습작을 썼던 플로베르는 작심하고 완성한 첫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보였지만 혹독한 비판에 직면한다. 그가 문단에 몸담은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평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원고를 불에 태우고 다시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

 

<루앙 옆, 크루아세 지방의 센 강가> 샤를 알베르 르부르(1849∼1928,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그는 『마담 보바리』에도 자주 등장하는 '루앙'은 제쳐 두고, 그 근처 센 강가의 크루아세에 거처를 마련하고 은둔에 들어갔다. 무려 4년 반을 절치부심 문장과 싸운 끝에 내놓은 소설이 '현대 소설'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제친 『마담 보바리』였다.

 

“나는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세르반테스를 다 암송했다”고 뻥(?)을 쳤던 플로베르가 '통속 소설'이나 다름없는 진부한 소재와 주제의 소설을 썼음에도 그토록 높은 '문학적 가치'를 획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두고 "나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돈키호테 이야기"라고 고백한 데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이야기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담는 그릇에 하나의 혁명을 시도했다. 문학에서 언제나 중요한 건 둘 중의 하나다. '이야기' 이거나 '이야기의 전달 방식' 이거나. 플로베르는 바로 '이야기의 전달 방식'에서 '새로운 이상'을 꿈꿨고 그 꿈을 이뤄냈다. 그는 어찌보면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한 '간통 소설'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불어넣기 위해 '단말마적 고통'을 겪었다. 돈키호테가 늙은 로시난테를 타고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모험에 나서는 동안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숱한 고통을 겪었듯이.

 

"이 빌어먹을 보바리 때문에 나는 괴롭다 못해 죽을 지경이다 …… 나는 지겹고 절망적이다 …… 기진맥진한 상태다 …… 보바리가 나를 때려눕힌다 …… 태산을 굴리는 듯 지겹다 …… 정말이지 보바리는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 1852년 6월에 쓴 <편지> 중에서

 

그는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깊숙히 내려갔다. 친구들로부터 '작가로서의 파산 선고'를 받았던 그가 바닥까지 추락한 뒤에 마침내 발견한 탈출구가 바로 그 질문 속에서 희미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던 셈이다. '소설의 형식과 내용은 어떻게 다른가?' 그가 『마담 보바리』를 쓰면서 천착했던 질문이 바로 그런 데로 모아졌다. 그는 궁극적으로 '외부 세계와 의 접착점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쯤에서 소설 속 보바리 부인이 살았던 동네 근방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마담 보바리』에서 '사건들'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엠마의 이야기 속에서도 숱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등장 인물들은 격렬한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그런 '격변' 조차 소설 속에서는 '음악적 고조' 이상으로는 격앙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많은 장면들에서 마치 '세밀화'를 들여다 보는 듯한 이미지 묘사로 가득하지만, 그 저변을 잔잔히 흐르는 선율은 도리어 '음악'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제1주제와 제2주제가 번갈아 등장했다가 차츰 사라지고, 일정한 변주가 울리고, 빠르게 흐르던 주제에서 벗어나 잔잔한 안단테의 평화롭고도 고요한 악장이 연주되고, 그런 장면들이 다 끝나면 어느새 다시 '격렬하게'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숨가쁘게 빠른 속도로 치솟듯 연주되다가, 마침내 피날레에 이르고 난 뒤의 긴 침묵과 잔잔한 여운으로 끝나는, 그런 음악을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루앙 근처 시골에서 평범하게 자란 샤를르 보바리는 간신히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동네 근처 시골에서 '의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60리나 떨어진 마을 베르토로 급히 왕진을 떠나게 된다. 시골에서 제법 번듯한 농가를 꾸리고 사는 루오 영감이 다리를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 영감은 '문학적 낭만'으로 머리 속이 가득 찬 꿈 많고 아름다운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왕진이 거듭 되자 샤를르는 환자의 딸인 이 시골 처녀에게 점점 이끌리지만 부모의 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다행히(?) 돈은 별로 없고 나이만 많았던 과부가 일찍 죽는 바람에 샤를르는 운 좋게도(?) 루오 영감의 딸 엠마에게 청혼할 기회를 다시 얻게 되었고, 엠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시골 의사의 부인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엠마 보바리는 '꿈 많은 처녀'에서 '시골 의사 부인'으로 바뀐 자신의 처지에 차츰 실망한다. 따분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 엠마는 어느새 '병든 닭'처럼 시들어 간다. 이 원인 모를 병세를 치유하기 위해 샤를르는 조금 더 큰 마을인 '용빌'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그녀는 읍내 공증인 사무실의 서기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레옹에게 끌린다. 갑자기 반한 엠마는 그와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 둘의 관계는 그야말로 싱겁게 끝나고 만다. 새로 이사를 온 의사 마누라의 미모가 뛰어나다는 풍문을 들은 홀로 사는 돈 많은 후작이 어느 날 하인을 데리고 의사 보바리에게 '진찰'을 받으러 온다. 엠마를 직접 한 번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엠마는 이내 로돌프의 노련한 공작에 넘어가고 둘은 '불륜'에 빠진다. 시골 의사 샤를르는 그런 사정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다. 도리어 어느 날 갑자기 활기를 되찾고 행복에 겨워 하는 아내의 모습 때문에 자신마저도 행복에 젖는다.

 

보바리와 로돌프의 '밀회'는 갈수록 대담해 지고, 엠마는 정부(情夫)에게 '둘 만의 머나먼 여행'을 제안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환상'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보바리슴' 환자이다. 점덤 더 부담으로 다가오는 유부녀의 도발을 견디다 못한 로돌프는 '이별 편지'를 보내고 갑자기 도망치듯 사라진다. 엠마는 비탄에 빠져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 오랜 실의를 딛고 간신히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엠마를 결정적으로 되살린 사람은 '루앙 시내 극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레옹이었다. 3년 동안 '파리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는 어느새 '유부녀를 농락할 정도'의 세련된(?)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날이 갈수록 보바리 부인과 레옹의 밀회는 잦아지고 대담해 진다. 엠마는 차츰 '외박'까지 일삼는다. 시골 의사는 걱정이 태산이지만 '아내의 부정'을 결코 의심하는 법이 없다. 오로지 '그녀의 안위'만 걱정한다.

 

레옹과의 밀회가 거듭될수록 모든 게 거꾸로 뒤바뀐다. 남편과 어린 딸아이는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고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점점 더 엉망이 된다. 불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엠마의 씀씀이도 갈수록 헤퍼진다. 노련한 마을 포목상 뢰르가 엠마의 허영과 사치에 부채질을 한다. 마침내 엠마는 자신의 주체하기 힘든 소비욕 때문에 밀린 결제대금을  '어음'으로 돌려 막기에 이른다. 시골 의사의 보잘 것 없는 수입에 의존하는 그녀는 남편 몰래 환자의 '외상 진료비'까지 당겨 받아 쓴다. 마침내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상환할 의욕마저 포기한 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던 중 법원의 '차압 명령'이 들이닥친다. 절망 끝에 사방팔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고, 레옹은 물론이고 이미 헤어진 옛 애인 로돌프까지 찾아가지만 도움을 거절당한 그녀에게 더 이상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마침내 맞닥뜨린 '절망' 앞에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음독 자살하고 만다.

 

보바리 부인이 느끼는 일상에 대한 권태는 한편으로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하나일 수 있다. 일상이 따분하지 않고 늘 새롭고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구나 때로 극심한 권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보바리 부인이 지닌 결정적인 문제다. 그녀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현실' 보다 '소설 속 이야기'를 더 갈망한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탈출구는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 뿐이다. 그녀가 선택한 남편 이외의 남자와의 외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 외도가 결국은 자신의 파멸을 재촉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그 시절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많은 자유! 희망! 얼마나 풍성한 환상에 차 있었던가! 지금은 이미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녀는 처녀 시절, 결혼, 연애, 이렇게 차례로 모든 환경들을 거치면서 갖가지 영혼의 모험들에 그걸 다 소비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제2부 제10장)

 

이 소설을 쓴 플로베르는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무척이나 다의적이다. 작가 자신이 결코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가 그만큼 소설 창작에 있어서 '낭만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고, 거기서 부단히 탈출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말이기도 하고, 바로 그런 결과가『마담 보바리』라는 작품이 되었다는 뜻기이도 하다.

 

『마담 보바리』는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엠마는 결혼하기 전까지 온갖 희망에 들뜬, 모든 가능성에 온전히 열려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이내 '시골 의사 부인'으로 한정되고, 집안의 가구 하나,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남편의 출퇴근 시간에 구속받는 존재로 지극히 한정된다. 그녀는 '외출'할 기회도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점점 자신의 방으로 틀어박힌 채 '소설 읽기'에 빠진다. 따분하고 고리타분하기만 한("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남편에게 실망한 끝에 곧 태어날 '사내 자식'에게 기대를 건다. '사내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은 지난날의 모든 무력함에 대하여 희망으로 앙갚음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제2부 제3장)

 

이 소설 속에는 독자가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수많은 장치들이 가득 숨겨져 있다. '우리들'로부터 시작했다가 '샤를르 보바리'에게로 건너가고 다시 '엠마 보바리'로 건너가는 시점(視點)의 변화는 마치 '영화 카메라'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멋진 풍경화를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듯한 장면 묘사에서도 어디선가 자연스레 들려오는 온갖 '음향들'은 끊임없이 독자들의 청각을 자극한다. 로돌프가 엠마를 유혹하는 '농업 공진회 장면'에서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참사관의 연설과 로돌프의 유혹하는 대사에 끼어드는 온갖 주변의 잡다한 소음들은 마치 독자들이 바로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다. 루앙의 대성당 앞에서 질주하는 마차의 행진은 또 어떻고.

 

오늘날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마담 보바리』가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에서도 발견되는 '오래된 진부한 주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서 그토록 끊임없이 언급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가운데 하나는 분명 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온갖 '소설이 지닌 놀라운 가능성과 탁월한 예술성'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사실주의'로 불리든,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로 불리든, 혹은 작품 전부에 짙게 깔린 '음악성이'나 '미술성'이나 심지어 '아이러니'로 불리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의 소설들이 단순히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전달 방식'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 또한 연원을 따지고 보면 플로베르가 최초였다. 비록 그는 이 소설을 발표하자 말자 '도덕과 종교를 문란하게 한 혐의'로 곧장 재판정에 불려 나가 자신을 변호하기에 바빴지만 말이다. 하필 보들레르도 똑같은 해에 똑같은 일을 당했다. 『악의 꽃』으로.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 1857년의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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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7-2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이네요. 저는‘성 앙뚜안느의 유혹‘을 재밌게 봤어요.

oren 2017-07-22 23:28   좋아요 0 | URL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무척 놀랍습니다!
무려 32 시간에 걸쳐 친구들에게 낭독해 줬다가 저 끔찍한 평을 들었다는 바로 그 작품을 재밌게 읽으셨군요!
 
간통 같은 독서

 

 

자신만만하고 못하고는 스스로가 처한 환경 나름인 것이다.

 - 구스타프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중에서

 

 * *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같은 날 죽었다는 건 흥미로운 문학적 우연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와 생몰연대가 가장 가까운 작가가 도스토예프스끼(1821∼1881)라는 사실도 '흥미'를 가지고 살피면 약간은 흥미롭다. 그러면 이 두 사람과 생몰연대가 가장 가까운 대문호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톨스토이(1828∼1910)?

 

플로베르와 톨스토이는 '간통 문학'의 대표작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문학적 연관성을 갖는 듯하다. 비록 잘은 모르겠지만 숱한 문학 전공자들이『마담 보바리』(1857년)와 『안나 까레니나』(1873년)를 두고 숱한 비교 분석을 쏟아냈으리라는 점은 누구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 싶다.(『안나 까레니나』를 '영화'로만 봤지 여태까지 '책'으로는 읽지 않은 나도 태연스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혹시 톨스토이가 쓴『전쟁과 평화』(1869년) 속에서도『마담 보바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톨스토이가 워낙 플로베르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하니 그런 궁금증을 품는 사람도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작가들 사이에 일어났던 '내밀한 교감'을 어찌 일반 독자가 시시콜콜 다 알아챌 수 있으랴만 그래도 『마담 보바리』의 다음 대목을 읽은 나로서는 두 사람 사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한 듯한 짜릿한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과연 톨스토이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마차 장면'에 영향을 받아서 『전쟁과 평화』의 일부를 썼을까.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구상한 것은 1856년이었다. 플로베르가 무려 5년 동안에 걸쳐 '납덩이같은 펜과의 처절한 싸움' 끝에 마침내 『마담 보바리』의 탈고를 끝낸 게 그해 봄이었다. 톨스토이는『전쟁과 평화』의 <제1부>를 완성하는 데만 무려 6년이 걸렸다. 그 작품을 쓰기 위해 그가 모은 자료들만 하더라도 '도서관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일단을 보여주는 편지가 그 사정을 엿보게 해 준다.

 

"나는 우수(憂愁)에 휩싸여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오직 괴로움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거친 땅을 깊이 갈아엎는 이 예비적 노작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당신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제부터 착수하려는 훌륭한 대작 가운데 나오는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날 모든 사건을 구상하고 고쳐 생각하고, 그러한 여러 인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백만의 관계를 고려하고, 그 가운데서 백만분의 일을 골라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런 일에 착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 A.A. 페뜨에게 보낸 편지(1864.011.1) 중에서

 

톨스토이가 『전쟁의 평화』를 쓰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책들 가운데 『마담 보바리』도 끼어 있었으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그가 골라낸 '백만분의 일' 가운데 하나가 과연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은 나의 합리적인 의문까지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어차피 최종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 * *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성당 앞 광장에는 어린애가 하나 놀고 있었다.

 

「마차 한 대만 불러다오!」

 

어린애는 카트르 방 거리로 총알처럼 뛰어갔다. 그러자 그들은 한동안 얼굴을 마주한 채 어색한 기분이 되어 서 있었다.

 

「아, ……레옹! ……. 정말 …… 몰라요 …… 어쩌면 좋아요 ……!」

 

그녀는 선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건 아주 못할 짓이에요, 알아요?」

 

「뭐가 어때서요?」하고 서기는 되물었다.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그러자 이 한마디 말이 거역할 수 없는 논거인 양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353∼354쪽)

 

 

뒤이어 마차가 나타나고, 레옹과 엠마는 그 유명한 '마차 안에서의 한낮의 질주'를 벌인다. 사실 방금 인용한 문장 보다는 곧이어 이어지는 장면이 훨씬 더 압권이다. 이왕에 내친 김이니 나도 그 유명한 대목까지 인용함으로써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내달리게 만들고 싶다.

 

 

「가시더라도 북쪽 문으로 나가주세요!」하고 아직도 문간에 서 있던 성당지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부활, 최후의 심판, 낙원, 다윗왕, 그리고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을 보실 수 있으니까요」

 

「나리, 어디로 모실깝쇼?」하고 마부가 물었다.

 

「아무데라도 좋아!」하고 레옹은 엠마를 마차 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355쪽)

 

 * 강조한 부분은 번역문을 따랐다. 곧 있을 '엠마와 레옹의 마차 안에서의 정사(情事)'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 달렸다. 마부가 멈출 때마다, 마차 안에서는 "계속 가요!" 라는 대답만 들려왔다. 마차가 세 번째로 멈추었을 때도 마부는 "그냥 가라니까! 라는 더 거센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마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목마름과 피로와 근심으로 거의 울상이 되어' 마차를 몰았다. 이제 마차는 이쯤에서 세우자.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내가 '두 작가와의 교감'을 의심하는 『전쟁과 평화』속 대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니꼴라이는 '로스토프 노백작 집안'의 맏아들이자 순박한 다혈질의 청년이다. 그는 어릴 땐 집에서 함께 자란 사촌 누이동생 쏘냐를 좋아했지만, 군대에 입대하고 '도시 생활'을 겪고 나서는 차츰 '도회지 사람'으로 변모한다. 심지어 '유부녀'를 능란하게 유혹할 정도로 점점 더 까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이 바로 '파리 물을 먹은 레옹'과 너무나도 닮았다. 레옹 또한 엠마를 처음 만났을 땐 순진하기 그지 없었으나 '파리 생활'을 겪은 뒤 3년 만에 나타난 모습에선 어느새 '선수'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골마을 용빌로 돌아가야 할 유부녀인 엠마를 한낮에 '마차'에 태울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이쯤에서 톨스토이의 펜으로 그려진 '유부녀 유혹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내가 '파리와 서울 사이'에서 뭔가 유사한 낌새를 발견했다면 그게 오로지 나만의 느낌일까, 나는 그게 너무나 궁금하다.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까쩨리나 뻬뜨로브나가 왈츠와 에꼬쎄즈를 타기 시작하고 댄스가 시작되자 니꼴라이는 그의 민첩한 동작으로 더욱더 이곳의 상류 사회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그는 독특하고 분방한 댄스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니꼴라이 자신도 이날 밤의 자기 춤솜씨에 약간 놀랐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는 이렇게 추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같이 너무나 분방한 춤 태도는 버릇없는 악취미라고까지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을 무엇인가 기발한 것으로,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시골에 사는 자기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니꼴라이는 현의 어느 관리의 아내이자 파란 눈의 살이 찐 귀여운 금발 미인에게 가장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남의 아내는 자기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신멋이 든 젊은이들의 순진한 신념으로, 니꼴라이는 이 부인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남편에 대해서도 마음을 터놓고, 그러면서도 속에 무엇인가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 즉 니꼴라이와 그 남편의 아내는 서로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말로는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남편 쪽은 그러한 신념에는 동감이 가지 않는 듯, 애써 니꼴라이에게 언짢은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니꼴라이의 사람이 좋은 순진성에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남편은 저도 모르게 니꼴라이의 매우 들뜬 기분에 끌려들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티가 끝날 무렵에 아내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상기되어 생기를 띠어 가자 남편의 얼굴은 더욱더 침울하고 창백해졌다. 그것은 마치 활기의 분량이 두 사람에게는 일정하고, 그것이 아내 쪽에서 증가함에 따라서 남편 쪽에서는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니꼴라이는 얼굴에 미소를 계속 띠고 안락의자에 약간 몸을 숙이고 앉아, 금발의 여인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그녀에게 뮤즈네 비너스네 하며 겉치레의 말을 하고 있었다.

 

다리의 위치를 힘차게 바꾸기도 하고 향수 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상대방 부인과,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승마 바지에 싸인 자기의 아름다운 다리 모양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니꼴라이는 금발의 여성에게, 자기는 이 보로네시에 있는 어느 여성을 유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은 어떤 분이에요?"

 

"매력적이며 여신 같은 분입니다. 그분의 눈은(하고 니꼴라이는 상대 여성을 바라보았다) 파랗고, 입은 산호 같으며, 하얀 살결 ……" 그는 어깨를 보았다. "어깨나 가슴은 다이애나 여신입니다 ……."

 

남편이 두 사람한테로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어두운 얼굴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 니끼따 이바노이치." 니꼴라이는 예의 바르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리고 니끼따 이바노이치도 자기의 농담에 참가해 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에게도 어떤 금발 미인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들려주었다.(1293-1294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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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1818~1883)는 플로베르보다 3년 일찍 태어나서 3년 늦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19세기 유럽 문단은 정말 ‘별들의 전쟁‘이었습니다. ^^

oren 2017-07-22 09: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투르게네프는 플로베르보다 앞뒤로 3년씩 늘려 살았군요.^^
 
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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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왔던 길을 되짚어 용빌로 돌아왔다. 그들은 진흙 위에 나란히 찍힌 그들의 말 발자국, 그리고 아까 보았던 관목, 풀숲의 같은 조약돌들을 다시 보았다. 그들 주변에는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산이 자리를 바꾼 것보다도 더 엄청난 무슨 일인가가 갑자가 일어난 것이었다. 로돌프는 때때로 몸을 굽혀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를 했다.

 

말을 탄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날씬한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말갈기 위에 무릎을 접은 채 바깥 공기에 조금 상기된 얼굴이 붉은 저녁 노을빛에 젖어 있었다.

 

용빌에 들어서자 그녀는 말을 탄 채 포도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사람들은 저마나 창문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저녁 식사 때 그녀의 얼굴색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산책이 어땠느냐고 묻자 그녀는 못 들은 체했다. 그리고 타고 있는 두 자루의 촛대 사이에서 잠시 옆에 팔꿈치를 짚은 채 앉아 있었다.

 

「엠마!」하고 그가 불렀다.

 

「왜요?」

 

「실은 말이지. 오늘 오후에 알렉상드르 씨한테 들렀더니 그 집에 나이가 좀 먹은 암말이 한 마리 있더군. 무릎에 상처가 조금 있을 뿐 아직은 참해. 백 에퀴 정도면 틀림없이 양보해 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걸 맡아놓았어…… 이미 사버렸어…… 잘한 일일까? 말을 해봐」(234∼235쪽)

 

 

 

 * * *

 

 

로돌프와 만나면 그것이 언제나 변함없는 화제였다. 그의 어깨에 기대면서 그녀는 속삭이는 것이었다.

 

「저기요! 우리가 역마차를 타게 되면!…… 당신도 그 생각해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마차가 내닫는 걸 느끼는 순간은, 그건 마치 기구를 타고 붕 떠오르는 것 같고 구름을 향해서 떠나는 기분일 거예요, 내가 날짜를 손꼽아 세고 있는 걸 아세요?…… 당신은 안 그래요?」

 

이 무렵만큼 보바리 부인이 아름다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녀는 환희와 열광과 성공이 가져다주는 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한 몸에 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기질이 처지와 맞아떨어진 조화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비료와 비와 바람과 햇빛이 꽃에 작용하듯이 그녀의 갈망, 슬픔, 쾌락의 경험, 언제나 젊디젊은 환상이 그녀를 점점 발전시켜 가지고 마침내는 그 천성을 충분히 살린 풍만한 모습으로 꽃피워 놓은 것이었다. 그녀의 눈꺼풀은, 사랑에 빠진 나머지 눈동자가 꺼져들어간 기나긴 시선을 위해서 일부러 새겨놓은 것 같았고 한편 뜨거운 숨결로 인하여 그녀의 작은 콧구멍이 벌름거렸고 약간 거뭇한 솜털에 빛이 닿아 그늘진 두터운 입술 끝이 위로 당겼다. 목덜미를 덮은 머리칼은 마치 음탕한 분위기의 표현에 능란한 화가가 손질해 놓은 것 같았다. 그 머리털은 간통의 몸부림으로 매일같이 풀어졌다가 묵직한 다발을 이룬 채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려 있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나긋나긋한 억양을 띠었고 몸매도 그러했다. 그녀의 주름지는 옷자락이나 발을 굽히는 태도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야릇한 그 무엇이 발산되고 있었다. 샤를르의 눈에는 그녀가 신혼 때와 마찬가지로 감미로워서 감당 못할 지경이었다.(281∼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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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처지'를 몽테뉴만큼 재치있게 묘사한 사람도 찾기 어렵다. 샤를 보바리의 말과 행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을 모르는 자의 아이러니'는 '징벌을 주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오쟁이진 남편의 '사실에 대비하는 자의 아이러니'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

사실을 밝혀 주는 자가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방법과 도움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알려 주는 일이 큰 해독이며, 사실을 밝힌 공로보다도 더 마땅히 칼을 맞을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자와 마찬가지로 애써 가며 사실에 대비하는 자를 비웃는다.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수치는 지워질 수 없다. 한번 걸리면 영원히 걸린 것이다. 그것에 징벌을 주면 잘못한 일 자체보다도 더 사실을 드러내 놓게 되는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의문을 풀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불행을 드러내고 비극의 무대 위에 나발을 불어 대면 보기 좋은 꼴이다. 그것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착한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롭고도 쓸모없는 지식은 피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는 먼저 집에 사람을 보내서 아내에게 자기의 도착을 알려 주며 엉겁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나는 점잖게 그리 꼴 흉할 것 없이 아내에게 속고 있는 사람 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활달한 대장부는 그 때문에 동정을 받아도 경멸은 받지 않는다. 그대의 인격이 불행을 틀어막게 하라. 점잖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정을 저주하게 하라. 그대를 모독한 자는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게 하라. 그리고 천한 자, 귀한 자 할 것 없이 이런 의미에서 소문나지 않은 자인가?

수많은 군대를 지휘한 장군까지도 ······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나은 자들도 그렇다, 이 못난아.    (루크레티우스)

그대 앞에 하고많은 점잖은 인물들이 이런 책망에 걸려 드는 것을 보는가? 다른 데서는 그대 일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마 부인들까지도 그대 일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여자들은 금실 좋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 말고, 다른 무엇을 조롱하기를 더 즐기는가? 그대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마누라를 건드렸다. 그런데 본성은 모두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로 변화무상하다. 이런 사건이 잦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고민거리가 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다. 못난 격정이지만, 그것은 또 남에게 상의할 수 없는 일이니 딱하다.

운명은 우리에게 불평을 들어 줄
귀마저 내주기를 거절한다.    (카툴루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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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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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러나 누구도 결코 자기의 욕망, 자기의 관념, 자기의 고통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내보이지는 못하는 법이고 사람의 말이란 깨진 냄비나 마찬가지여서 마음 같아서는 그걸 두드려서 별이라도 감동시키고 싶지만 실제는 곰이나 겨우 춤추게 만들 정도의 멜로디밖에 낼 수가 없는 것이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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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써낸 50 내지 60편의 장편소설들을 모두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할 일은 너무 많고 인생은 너무 짧다. 다만 힘차고 다양하게 사회를 묘사한 작가라는 점에서는 발자크를 따를 자가 없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

 

1834년에 발자크가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의 웅대한 구상을 보면 톨스토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나폴레옹과 러시아가 벌였던 전쟁을 배경으로 불멸의 거작인『전쟁과 평화』를 썼지만, 그의 초기 구상은 그 소설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이었다.(그는 1825년의 데까브리스뜨 반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의 1813년 러시아 원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1805년에서 1812년까지를 제1부, 1825년 데까브리스뜨 반란을 제2부, 185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오기까지를 제3부로 하는 거대한 장편을 구상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전쟁과 평화』로 개작했다. 시대 배경 또한 1805년에서 1820년까지로 대폭 축소했다.)

 

발자크는 톨스토이보다 '집필 환경'이 훨씬 열악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풍속 연구」,「철학적 연구」,「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걸쳐서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고 했다니 그의 포부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계획대로 끝마치지는 못했으나 91편까지 쓴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들을 한데 묶어 통칭하는 소설 제목이 『인간 희극』이다.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소설로 그려내고자 열망했던 작가는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기법을 평생 즐겨 사용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얼마나 될까. 대략 2,0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세익스피어가 37편의 희곡 작품을 통해 대략 1,100명의 인물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발자크는 그보다 한 술 더 뜬 셈이다. 그런데 애당초 발자크가 구상했던 인물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리속이 어떻게 구성되었길래 그 많은 인물들을 창작하고 소설에 녹여낼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힌다.

 

발자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를 세다가 세월 다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애쓴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증장하고 있다. 한편 75편 가운데에서 36편의 소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편은 파리와 지방을, 21편은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지방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무대로 삼고 있다. 또한 460명 가운데 167명은 직업이 없다. 이들 중에서 55명은 귀족 출신이거나 신사이며, 62명은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고, 나머지 50명은 부르주아 출신 부인들이다. 다른 293명의 직업은 다양하다. 공무원, 법률가, 군인,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 사업가, 예술가 등이다.(400-401쪽)

 

프랑스 문학에서 발자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문학사가들의 관심사일 뿐 평범한 독자들한테까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실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만은 미리 알아둬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그는 몇몇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엉터리 작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며, 프루스트와 같은 작가로부터는 심지어 프랑스어를 더럽힌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에게 '저질 작가'라는 오명을 씌운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살아 남았다. 『인간 희극』의 서문에서 미리 밝혔던 '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국에서 홀대받은 그는 도리어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에서 훨씬 더 나은 평가와 존경을 받는다. 발자크만큼 가장 예리하고도 능숙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사회'를 그려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예술가적 신념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발가벗겨서 독자들에게 당차게 들이댔고, 그런 진실성과 역사성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이다.

 

"귀족은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귀족일 수 있으나 부르주아지는 모든 성공과 실패의 유동성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근거를 만들어가야 할 긴박한 사회적 투쟁 속에 휘말려 있다. 발자크는 안정되고 교양 있는 전통적인 부르주아지에 속하지 않았으며 바로 대혁명에 의해서 창출된 서민적인 부르주아지에 속하였다. 그는 수세기의 성장 끝에 비로소 19세기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부르주아 세계를 표현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작가인 동시에 이 계급의 철저한 자기 인식과 탐구 그 자체에 의하여 이 계급에 대한 최대의 비판자가 되었던 작가였다.".(405-406쪽)

 

문학계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던 그는 어쨌든 '고상한 문학 풍조'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했으나 '황제'에 오를 만큼의 위엄과는 사뭇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무한히 샘솟는 풍요로운 상상력 때문에 '작품의 구성이나 플롯의 정연한 전개'는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꾸며내고 과장하는 습관 탓에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아하고 재치있는 솜씨를 부려야 마땅할 장면에서도 허풍을 치고 속임수를 부린다는 점 때문에 '그는 남에게 학자나 철학가의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에 구역질나는 사기꾼이 된다'(플로베르)는 혹평까지도 듣게 된다. 그러나 그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누가 당대의 사회를 구성했던 인물들을 그토록 익살맞고 재치있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낼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는 '소설을 쓴 셰익스피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묘사의 달인'이었다.

 

발자크는 작가 자신이 남들로부터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글쓰는 일 말고도 수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판판이 망하고 큰 빚을 졌다. 그 때문에 평생 '돈 문제'에 시달렸다. 그의 작품이 그만큼 작가를 반영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돈'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작가도 드물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훌륭한 전기로 만나는 게 마땅하다. 더군다나 걸출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에 대해 '불멸의 평전'을 남겨 놓았으니, 그에 대한 얘기로 자꾸만 글줄을 늘린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작가 얘기를 계속 쓰다 보면 그가 쓴 탁월한 작품은 계속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고리오 영감 얘기로 넘어 가자.

 

고리오 영감도 『고리오 영감』이 아닌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서 '다시' 여러 번 등장할까? 용케도 이 영감은 『고리오 영감』이라는 소설에만 등장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너무 안심하긴 이르다. 다른 작품에도 등장했다가 『고리오 영감』에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35명이나 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다른 소설에도 끊임없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은행가인 뉘싱겐은 서른한 번, 의사인 비앙숑은 스물아홉 번, 장관인 라스티냐크는 스물다섯 번이나 다른 작품에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다 만나 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또 그럴 수도 없다. 평생 발자크의 소설만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고리오 영감』만 읽어도 발자크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발자크의 천재성을 흠씬 느낄 수 있다. 그러나『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작품들이 그려낸 거대한 벽화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엄청난 작품들을 쉬지 않고 계속 써낸' 작가였고, 그 작품들을 두루 접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그의 천재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리오 영감』은 '고전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돈키호테』를 읽을 때처럼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까지 읽을 정도의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된 흥미는 '인생의 출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고리오 영감'과 '인생의 입구'에서 점점 사회 한가운데로 깊숙하게 진입하는 '라스티냐크 학생' 사이의 선명한 대비에서 주로 비롯된다. 두 사람은 과부 보케르가 운영하는 파리의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 두 사람 말고도 그 하숙집엔 다섯 명이 더 있다. 그들은 장차 어떤 식으로든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하숙생들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떠맡는 인물은 고리오 영감이 애지중지 키워서 귀족사회로 편입시킨 두 딸이다.

 

발자크는 이 소설을 쓸 때 '창작 노트'에 미리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의리 있는 사나이, 하숙집, 6백 프랑의 연금, 5만 프랑의 연금을 가진 딸들을 위해 스스로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남자, 개처럼 죽어가는 그 모습"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비교적 단촐하고, 장소는 파리의 어느 골목 하숙집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좁다. 이야기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극히 재미있으면서도 불멸의 고전이 된 까닭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로는 발자크 특유의 놀라운 입담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낼 작가는 찾기도 어렵다.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꼭 닮았다. 그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 겪은 후에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해서 번 상당한 재산을 두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다 쏟아 붓는다. 자신의 노후대책이라고 해봐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연금이 고작이었다. 두 딸을 시집 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그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하숙방에서 생활하는 외롭고 불쌍한 노인으로 빠르게 쇠락해 간다. 그런 그에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젊은 귀부인이 가끔씩 몰래 드나든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생들은 그 노인네가 '돈'을 주고 그 여자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녀들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백작 부인과 은행가인 남작 부인이자 영감의 사랑하는 두 딸이다. 그녀들은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 말고 따로 사귀는 정부(情夫)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 남자들이 떠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딸들은 친정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린다. 영감은 그런 두 딸을 위해 마지막 남은 은식기마저 우그러뜨려 내다팔아 돈을 보태준다.

 

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주는 부성애(父性愛)가 참으로 눈물겹다. 고리오 영감은 끝내 빈털털이로 '두 딸 조차 외면한 상태로' 쓸쓸하게 죽지만 아주 잠깐 딸들을 욕할 뿐이다. 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못지않게 감동적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과 영지를 아양 떠는 두 딸에게 내주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데 막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두 딸은 이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내쫒지만 정작 막내딸 코델리아는 불쌍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황야에 버려지다시피 한 리어 왕은 일견 고리오 영감과 닮았다.

 

그러나 리어 왕의 비극이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과 동시에 파국에 이르렀다면, 고리오 영감은 스스로 아낌없이 두 딸들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도, 그런 도움을 줄 능력이 고갈되는 걸 도리어 안타까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한다는 점에서 리어 왕 보다는 훨씬 덜 비극적이다. 그러나 두 딸들이 '파리 사교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났던 '익숙한 패턴'에 따라 '파멸'로 치닫는 동안, 고리오 영감의 삶 또한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두 딸이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두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을 끝끝내 외면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인 두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부름에 응하지 못한 이유 또한 그 중간에 낀 인물인 학생 라스티냐크가 볼 때는 너무나 어이없으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큰 딸은 정부(情夫)와 함께 저지른 대형 사고가 들통나는 바람에 남편으로부터 '외부인 접견 금지'를 당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딸은 자신의 크나큰 목표였던 '더 큰 사교모임'에 진출하기 위해 기필코 그날 밤 초대장을 받은 '무도회'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감기'에 걸려 몸이 몹시 불편하기도 했고.

 

고리오 영감과 두 딸과의 관계가 이 소설의 밑바닥을 흐르는 주조저음(主調低音)이라면, 시골 출신의 대학생인 라스티냐크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꿈에 부풀어 '파리 생활'을 배우느라 몹시 바쁜 학생이라는 점에서 고리오 영감과는 사뭇 대조적인 울림을 준다. 시골에서 얼마 안 되는 밭뙈기를 붙이는 부모님이 보내 주는 빠듯한 돈으로는 보케르 아줌마에게 하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훗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은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만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모습을 슬쩍 엿보게 된 이 청년은 그만 마음이 세차게 흔들려 곧장 그리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온갖 수소문을 다해 집안의 친척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파리의 부유한 주택가에 사는 먼 친척인 '자작 부인'에게 찾아간다. 그는 대저택에 출입할 때 마땅히 타고 가야 할 '이륜 마차'는 커녕, 마부에게 줄 몇 푼 안 되는 '택시비'마저도 아껴야 할 형편이다. 사교계에 드나들 때 갖춰야 할 맞춤복이나 구두나 장갑을 마련할 비용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눈물 겨운' 편지를 쓴다. 이유는 제발 묻지 마시고 최대한으로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시라고 말이다. 나중에 기필코 성공해서 꼭 되갚아 드리겠노라는 철석같은 약속과 함께.

 

마침내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으로부터 거금 1,200프랑과 350프랑이 보태져서 그의 주머니에 미끄러져 떨어지자 그가 보인 반응이 놀랍다. 발자크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이런 곳에서 유감없이 번쩍인다.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제멋대로 모든 것을 갈망했다. 그는 쾌활하고 너그러우며 감정이 풍부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날개가 없던 새가 크게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뼈다귀 하나를 훔쳐낸 개처럼, 돈 없는 이 학생은 한 가닥의 쾌락을 꽉 붇잡았다. ……

 

파리 전부가 그의 것이었다. 모든 게 빛나고 번쩍이며 이글거리면서 불타는 나이이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젊은 사람 아니고는 아무도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힘이 넘쳐흐르는 나이!  빛과 격렬한 격정마저도 모든 기쁨을 열 배로 만들어줄 수 있는 나이! 센 강 왼쪽 언덕배기와 생 자크 거리로부터 생 페르 거리 사이를 지나다녀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 파리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사랑을 구걸하려고 달려올 텐데!> (133∼134쪽)

 

청년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겪는 고뇌와 방황은 시골에서 도회지로 '청운의 꿈'을 안고 진학했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그렇게 읽었다. 시골에서 한 해 동안 땀흘려 농사 지어서 버는 돈이라는 건 전세계 어디서나 액수가 뻔하다. 그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4년간 등록금 전액 면제'를 받고 대학을 다녔어도 '비밀 과외'를 해서 하숙비에 보태야 했다. 그런데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보니 서울은 정말 거대하고도 휘황찬란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첫날 저녁에 '명동'으로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롯데쇼핑센터에서 번쩍거리는 불빛에 정신이 아득했고, 명동 일대의 고층 빌딩들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혔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영화를 보러 시내의 영화관만 들어가 봐도 화면이 초대형에다 돌비 사운드 시스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향이 죽여줬다. 어쩌다 시내에서 직접 보게 된 여배우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내가 잠시 과외를 했던 중학생의 집도 저택 수준이었다. 아이를 가르칠 때 항상 과일을 내주시던 학생의 어머님은 TV 연속극에서나 봐왔던 사모님 같았다. 8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그 집안이 아직도 한국에서 여전히 손에 꼽히는 재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라스티냐크도 시골에서 상경하여 '파리 생활'을 익히느라 바빴다. 그가 머무는 하숙집엔 수백만 프랑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처녀인 빅토린 양도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은근히 라스티냐크에게 호감어린 눈길을 자주 보내온 터였다. 보케르 아줌마네 하숙집에서 지내는 가장 독특한 인물인 보트랭이 어느 날 라스티냐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빅토린 양이 '수백만 프랑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 줄 테니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서 갑부가 되고 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라스티냐크는 보트랭의 제안에 몹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용케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관념을 지켜내면서 보트랭의 제안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낸다. 보트랭이 제안의 말미에 라스티냐크에게 '한 수' 가르치는 기분으로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치'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어느 한쪽이지. 단 푸아레라고 불릴 때는 전무이지. 그런 놈은 빈대 새끼처럼 짓이겨 놓지. 그야말로 납작해져 냄새를 풍기겠지. 하지만 인간도 자네를 닮은 경우에는 하나님이지. 이젠 인간 가죽을 쓴 기계가 아니고 아름다운 감정이 약동하는 하나의 무대라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정으로만 살고 있네. 하지만 감정은 사상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닐까? 고리오 영감을 보게나. 그의 두 딸은 노인에게 우주 전체이지. 그녀들은 실이지. 그 실로 노인은 만물에 파고들 수가 있지. 자, 그런데, 인간을 깊이 파고들어 가본 내겐 단 하나의 현실적 감정만이 존재하네. 즉 남자와 남자 사이의 우정이지. 」

 

보트랭의 '인생 강의'는 여러 날에 걸쳐 라스티냐크를 계속 흔들어 댄다.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는 사정, 파리 사회를 이루는 계층 구조, 파리에 도사린 온갖 지옥 같은 함정들까지도 보트랭은 훤히 꿰고 있다. 라스티냐크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부른다는 말까지, 그의 강의는 참으로 친절한 데가 있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149쪽)

 

다시 고리오 영감으로 되돌아 오자. 완전한 빈털터이가 된 노인의 장례를 치를 인물은 이제 라스티냐크 밖에는 없었다. 해가 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페르 라셰즈의 묘지에 시신은 안장되었다. 아주 헐값으로 사들인 극빈자용 관을 덮으려고 흙을 몇 삽 퍼서 던지던 두 명의 매장꾼이 라스티냐크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하숙집에서 영구차가 떠날 때부터 동행했던 사람은 하숙집 심부름꾼인 크리스토프 밖에 없었다. 라스티냐크는 그에게 일 프랑을 빌렸다. 그는 너무나 슬퍼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그가 매장을 마치고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내가 오래 전에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여튼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였다. 시골 고향에서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술을 마시며 놀던 방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하루 종일 걸리는 버스를 탔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어느새 거대한 도시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한강을 따라 온갖 불빛들이 거대한 띠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시골 고향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에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몸을 고쳐 앉았다. "여기가 바로 서울이군,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속으로 떠올린 혼잣말 속에는 '대결'의 뜻도 아예 없지는 않았으리라.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속에서 그토록 오래된 희미한 기억과 풍경과 다짐들을 다시 찾아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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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글을 읽으니까 아직 안 읽은 발자크의 작품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

oren 2017-07-15 12:23   좋아요 0 | URL
발자크의 작품들 가운데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의외로 그리 많지 않더군요. 발자크와 관련된 이런 저런 리뷰와 페이퍼들을 찾아 읽다가 ‘발자크를 유난히 애정하시는‘ cyrus 님의 글도 여럿 구경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되었고요^^

꼬마요정 2017-07-1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리오 영감 내용만 대충 알아서 안 읽을까 했는데, 꼭 읽어야겠습니다. 발자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츠바이크의 평전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oren 2017-07-15 12:40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평전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발자크 평전‘인 모양입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츠바이크라면 믿음이 확 가는 전기작가이니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습니다. 발자크를 읽으면서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아마도 ‘돈‘일 꺼에요. ˝돈이 바로 인생이야˝(315쪽), ˝잉여 인간˝(370쪽)이라는 유명한 문구들도 인상적이고요. 방금 경제학 서적에서 간신히 ‘다시‘ 찾아낸 ‘발자크‘를 재미삼아 덧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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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