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반 고흐 그림은 가짜요."

 

로맹 가리의 단편 소설 『가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진짜와 가짜. 이 둘 사이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음모와 협잡과 긴장과 속임수가 있었을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진짜로 보이기 위한 가짜가 어느 시대에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는지를 제대로 헤아려 본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대체로 가짜는 결국 언젠가는 들통나게 마련이다. 진짜를 닮은 가짜는 그 종류도 너무 많다. 무슨 유명한 화가의 그림뿐일까. 값진 보석들만 하더라도 진위를 가리기 힘든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책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왕의 특명으로 '희귀한 책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을 때, 몰래 그 틈을 타서 그 유명한 도서관에 자리잡게 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은 가짜로 판명되기까지 무려 수백 년이 걸렸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책들이 모두 진짜였던 것은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이 고전을 열정적으로 수집한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위조범들이 왕들에게 가짜 아리스토텔레스 논문을 팔았는데, 그 논문들은 학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연구한 끝에야 가짜로 판명되었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

 

 

그런데 가짜는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에만 판을 치는 것도 아니다. 온갖 생물들에도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기 마련이다. 값비싼 산삼이나 녹용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으며, 우리가 흔히 먹는 광어조차도 양식을 자연산으로 속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홍어 또한 흑산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진짜는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의 5%에도 미치지 못할 거라고 한다. 국산이 아닌 게 국산으로 버젓이 유통되는 수많은 농산물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사람의 경우에는 어떨가. 사람에 대해서도 진짜와 가짜에 대한 구분이 필요할까. 물론이다. 사람도 얼마든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도리어 진짜가 가짜 행세를 하기도 한다. 작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검찰총장의 아들'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자신의 진짜 아들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사코 부정하느라 그 아들의 친부는 온갖 '거짓말'을 다 지어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진짜와 가짜, 참말과 거짓말 사이에는 무한히 가깝고도 먼 어떤 '거리'가 있다. 진실은 단 하나밖에 없지만, 거짓말은 무한대로 그 모양을 지어낸다.

 

글뭉치들이 담긴 자루를 꺼내며 드는 생각

 

다시 로맹 가리의 소설 『가짜』로 되돌아 오자. 내가 다루고 싶은 진짜 얘기는 그 단편 소설과 그 작품을 읽으며 저절로 떠오르던 내 생각이니까. 그가 다루는 소재는 딱 둘이다. 가짜 그림과 가짜 인간. 정말 탁월한 조합이다. 그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 중개상 바레타는 '반 고흐의 가짜 그림'을 진짜로 인정받기 위해 거물급 화상(畵商)인 주인공 S···에게 협조를 간청하지만 끝내 거부당하고 만다. 결국 바레타는 훗날 주인공 S···에게 치명적인 복수를 한다. 바로 주인공 S···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보다 가장 확고하게 믿었던 미모의 아내가 바로 '가짜'였음을 밝히는 방식으로. 그러니 그 소설이 얼마나 자기전복적이고 짜릿할지는 말로 형언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 언젠가 쇼펜하우어가 했던 말이 비수처럼 파고드는 순간이다.

 

온갖 협잡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이 세계에서 사람은 강철같은 의지를, 운명의 일격을 막아낼 갑옷을, 사람들을 밀치며 나아가기 위한 무기를 지녀야 한다. 인생은 하나의 기나긴 전투다. 인생의 매 단계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테르가 정확히 말했듯이, 우리가 성공할 때는 칼날 바로 끝에서 성공하며, 우리가 죽을 때는 손에 든 그 무기로 죽는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내가 이 단편 소설을 읽으며 떠올린 '숱한 가짜'를 다 들춰내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그 가운데 딱 하나만이라도 소개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건 바로 사이버 세상에도 숱한 '가짜'가 존재하고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고, 거기서 범위를 훨씬 좁혀 나가다 보니 최근에 론칭된 어플 가운데 하나인 '북플'에 등장한 '수많은 마니아'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북플을 통해 '떠오른' 숱한 마니아들을 보면 그 정도(굳이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가짜'라기 보다는 진실에서 벗어난 정도?)가 너무 심하다 싶다. 우선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내가 무슨 무슨 마니아에 도대체 얼마나 많이 올라 있는지를 보면 나 자신조차 너무 당혹스럽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여러 권의 책에서 '1번째 매니아'에 오른 것도 모자라, 분야별 마니아에도 민망할 정도로 여러 곳에 랭크되어 있다. 이게 과연 '내가 맞나' 싶다.

 

서양고전문학 4번째 마니아(3015점) 

생명과학 2번째 마니아(1953점)

심리학/정신분석학 6번째 마니아(1659점)

뇌과학 2번째 마니아(1468점)

신화/종교학 2번째 마니아(1301점)

서양고전사상 2번째 마니아(1260점)

자연에세이 2번째 마니아(908점)

사회운동 4번째 마니아(754점)

 

더욱 놀라운 건 저자/아티스트 분야에도 '마니아'라는 딱지가 여기 저기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에 나오는 '저자'들에 대해서 내가 모두 '5번째 이내에 드는 마니아'라니. 정말 낯이 화끈거릴 지경이다.(그런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몽테뉴, 아담 스미스, 찰스 다윈, 쇼펜하우어 등은 정작 '매니아 리스트'에 아예 뜨지 않는다. 이 분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건가? 도대체 뭘 보고 마니아라는 딱지를 붙이는지 모르겠고, 대략 난감하다.)

 

 

 

 

 

어쨌거나 이건 좀 너무 심하다 싶고,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싶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북플 마니아는 '무늬만 매니아'인 경우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싶고, 심지어는 '가짜 매니아'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기서 다시 로맹 가리의 작품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다. 우리의 주인공 S···가 단정적인 어조로 내뱉은 "당신의 반 고흐 그림은 가짜요."라는 말에 뒤이어, 그 말을 듣고 있는 그림 중개상 바레타의 모습이 '그림처럼' 소개된다.

 

회색 넥타이에 흑진주 장식, 순백의 머리칼, 은근한 품위를 풍기는 단정하게 재단된 정장, 살집 좋은 체격과 어룰리지 않는 외알박이 안경, 지중해의 역동성이 어린 통통한 이목구비를 한 바레타는 소파 깊숙이 앉아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반 고흐의 그림'을 경매를 통해 여러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꽤나 비싸게 사들인 바레타가 S···의 날카로운 지적에 진땀을 흘리며 애원 섞인 반론을 가한다. 그에 뒤어이 나오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결코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이오? 그런 걸작을 소유했다는 걸 행복해하면 될 텐데."

 

"내가 선생한테 바라는 건 떠들고 다니지만 말아달라는 거요. 압력을 가하지 말란 말이오."

 

'북플 마니아'에 대해서도 혹시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걸 옹호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런 '훈장'을 소유했다는 걸 행복해하면 될 텐데 뭐가 문제냐 할 수도 있겠고, 나같은 경우라면 그게 가짜처럼 보인다고 좀 떠들고도 싶고, 또 '진위'를 밝혀야 한다며 어딘가에 압력을 가하고도 싶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반 고흐의 그림 경매에서 어렵사리 그 그림을 차지한 바레타는 S···가 제발 그 그림에 대해 더이상 위작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그런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이보시오, 우리 진지해집시다. 내가 반 고흐 작품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진품임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부상한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내가 저 작품을 샀다면, 당신은 그걸 손에 넣지 못했을 거요. 그러면? 당신은 내가 정확히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시오?"

 

"선생은 이 그림에 맞서 온갖 권위 있는 견해를 동원했소." 바레타가 말했다. "난 알고 있소. 선생이 자신의 영향력을 모두 동원해서 저 그림이 가짜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는 걸 말이오. 선생의 영향력은 막강하오. 당신이 한마디만 해도 ······."

 

이런 대화에 뒤이어 우리의 주인공 S···가 바레타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대목이 정말 압권이다.

 

"유감이오, 친애하는 선생. 정말 유감이오. 당신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건 원칙의 문제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오. 난 사기 사건에 공범이 될 순 없소. 암묵적인 동의를 통해서라도 말이오. 당신은 정말 멋진 소장품들을 갖고 있소. 그러니 이번엔 솔직하게 당신이 속았다는 걸 인정해야 하오. 난 작품의 진위 문제에 대해 타협 같은 건 하지 않소. 속임수와 거짓된 가치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확실성이 있다면 걸작의 그것 아니겠소. 우리는 온갖 위조범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하오. 내게 예술작품이란 신성한 거요. 나에게 작품의 진위는 종교라고 할까 ······. 당신의 반 고흐 작품은 가짜요. 그 불행한 천재는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배반을 맛보았소. 적어도 사후에는 우리가 그를 배신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잖소."

 

"말 다했소?"

 

"놀라운 일이오. 당신처럼 명망 있는 사람이 내게 그런 조작에 공범이 되어달라고 하다니······."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지난 여름에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서 직접 느꼈던 그 '불행한 천재'의 눈물겨운 그림들을 여러 장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가짜 그림이 비싸게 팔린다 하더라도 최소한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서만은 제발 가짜를 그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게도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Shooting Date/Time 2014-07-07 오후 11:41:01, 한국시간)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심각한' 대화는 계속해서 좀 더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어쨌든 선생이 불길한 말을 내뱉은 후, 내 그림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취하는 당혹스런 태도라니······. 어쨌든 선생이 이해를 해줘야······."

 

"이해하오." S···가 말했다. "하지만 인정할 순 없소. 그 그림을 태워버리시오. 그거야말로 당신 수집품의 진가를 높이는 것은 물론 명망 높은 인사인 당신의 평판까지 높이는 일이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을 문제삼는 게 아니오. 반 고흐의 작품을 문제삼는 거지."

 

바레타의 얼굴이 굳어졌다. S···가 늘 보아오던 표정이었다. 자신이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칠 때면 그들의 얼굴에 어김없이 떠오르던 표정. 좋은 기회이긴 한데, 하고 그는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건데······. 하지만 문제는 그가 진정으로 애착을 갖고 있고, 그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건드리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인 작품의 진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욕구를 갖고 있는지 자문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기묘한 동경이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환상을 전혀 갖지 않은 데서 연유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 모든 것이 자신의 놀라운 재정적 성공과 누리고 있는 권력과 돈 덕택이라는 것, 자신이 아첨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 작품 속 주인공인 S···는 사실 출신이 좋지 못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항구에서 에로 엽서나 팔던 스미른의 부랑자'가 온갖 노력 끝에 '벼락 출세'한 처지의 인물이었다.

 

정체성이 분명한 예술작품은 불안정한 영혼 속에서 절대적인 확실성만이 일깨울 수 있는 그런 경건함을 그에게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성 두 채와 뉴욕과 런던의 최고급 거처, 흠잡을 데 없는 취향,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장식품들, 영국 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곱 개 국어에 배어 있는 리듬 섞인 억양의 흔적과, 수메르에서 이집트, 아슈르에서 이란까지 예술이 융성했던 시기의 조각상에서도 확인되는, 편의상 '중동인'이라고 불리는 신체적 특징만으로도, 그가 짙은 사회적 열등감-차마' 인종적' 열등감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에 시달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수집품들은 그리스 미술 작품들만큼이나 막강했고, 그의 집 거실에는 반 미게렌의 위작 이후 발견된 유일한 진품인 베르메르의 그림과 티치아노의 그림들과 벨라스케스의 그림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머잖아 또다른 대가의 작품이 걸린다면 정말 벼락부자처럼 보이리라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S···는 자기 등뒤에서 난무하는 이런 피곤한 독설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경의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그의 융숭한 대접 때문에라도 파리의 명사들이 그를 위해 '정보 제공자' 역할을 마다할 수 없었던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의 과시적인 사치를 앞장서서 비웃는 사람들이야말로 열심히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런 사치를 조바심내며 이용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아첨하고 빌붙고 있다는 사실도, 자기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좀 모호한 자신의 허영심도 그는 알고 있는 터였다. 그는 그들을 '내 가짜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자기 집 탁자에 앉아 있거나 자신이 제공한 고속 모터보트가 이끄는 수상스키를 타고 있는 것을 빌라의 창을 통해 바라보며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만족의 빛이 역력한 눈길로, 의심의 여지 없이 진품인 자신의 가장 귀한 수집품들을 바라보곤 했다.

 

'가짜 그림'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바레타와 그 작품이 위작임을 기어이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S···· 사이에 결국 파국이 찾아온다. 그 장면에 대한 작가의 묘사 또한 일품이다.

 

그는 바레타가 소장하고 있는 반 고흐 작품의 진위를 밝히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긴 했지만 바레타에게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나폴리의 작은 식품점에서 출발해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의 대표가 된 그 사내는 오히려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인물이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가문(家紋)인 거장들의 그림을 동원해 자기 집 벽에 남아 있는 살라미 소시지와 고르곤졸라 치즈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그런 욕구를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 고흐 그림은 가짜였다. 바레타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전문가의 승인이나 묵인을 돈으로 사서 그 그림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바람에 그는 도리어 타협의 여지 없이 힘의 영역으로 들어선 셈이었다. 게임의 법칙을 엄격히 지키는 이들에게서 교훈을 얻는 것이 마땅했다.

 

"내 책상 위에는 팔켄하이머의 감정보고서가 놓여 있소." S···가 말을 이었다. "그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했는데 당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늘부터 그 보고서를 신문사에 돌려야겠소. 친애하는 선생, 좋은 그림을 살 능력이 있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소. 우리 둘 다 돈이 있소. 진품에 대해 소박한 경의는 표해야 하오. 진정한 경애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예술품이란 경배의 대상이니 말이오."

 

마침내 바레타는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S···는 그런 위협적이고 원한에 찬 표정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반드시 복수하겠소." 이탈리아인은 이를 갈며 말했다. "내 말을 믿어도 좋소. 우리는 비슷한 삶의 여정을 거쳤소. 나폴리 거리에서도 스미른 거리에서만큼이나 치사한 짓거리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요."

 

바레타는 서재를 나갔다. S···는 자신을 그 무엇에도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상대가 아무리 부자라 해도 자신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의 두뇌는 그의 재산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인 기민함을 동원해 자신이 하고 있는 거래들을 검토했고, 모든 구멍들이 잘 막혀 있다는 것, 어디에도 물 샐 틈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쯤에서 소설은 다시 무대를 바꾼다. 그가 '피우던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빛의 응접실에 있는 아내에게로' 다가가는 장면으로. 단편 특유의 빠른 전개와 경쾌한 필치도 인상적이지만, 우리의 주인공 S···의 아내에 대한 '탁월한 미모'를 묘사한 대목이 아주 절창이다.

 

그는 이 년 전 로마의 레바논 대사관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성장한 시칠리아에 있는 집안 소유의 영지를 처음으로 떠나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온 참이었는데, 유난히 권태로워진 사교계에 몇 주에 걸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그녀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귀한' 것이었다. 마치 자연이 자신의 전지전능한 권위를 과시하고,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그녀를 창조한 것 같았다. 빛을 받는다기보다는 빛에게 자신의 광채를 빌려주는 듯한 검은 머리채 아래 이마와 눈과 입술은 예술에 대한 생명의 도전인 양 조화로웠고, 개성과 꿋꿋함까지 갖춘 섬세한 코는 그 얼굴에 경쾌한 터치를 부여함으로써, 위대한 영감의 순간이나 우연의 신비로운 작용 가운데 자연만이 도달하거나 피할 수 있는, 지나친 완벽 추구와 거의 언제나 짝을 이루는 그런 차가움으로부터 그 얼굴을 구해 주고 있었다. 걸작, 그것이야말로 알피에라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만난 지 삼 주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전 세계 증권거래소와 연결된 전화에 줄곧 매달려 있는, 이유는 모르지만 '모험가'라고 불리는 '해적' S···가 그렇게 빨리 '얌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것, 사업이나 수집품보다 젊은 아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친절하고 헌신적인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세계 각국에 있는 그이 대리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물건과 계획되고 있는 굵직한 매매에 대한 보고서를 줄곧 그에게 타전했지만, 그 무엇도 그를 알피에라에게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은 명백했다. 행복감 때문에 세상이 멀고 재미없는 위성 정도로 축소되었던 것이다.'

 

"당신, 걱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오. 개인적으로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어떤 사람의 최대 약점인 허영심을 공격하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게 이제 내가 하려는 일이오."

 

"어째서요?"

 

S···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고, 짜증이 날 때면 늘 그렇드싱 가락 있는 억양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드러났다.

 

"원칙의 문제라오, 여보. 위조된 작품에 대해 수백만 달러를 동원해 묵인의 공모를 얻어내려 하고 있소. 만약 우리가 거기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품과 가짜를 가려내는 일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될 테고, 그러면 최고의 수집품도 의미가 없어질 테니······."

 

이제 소설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만 남겨 두고 있다. '반 고흐의 알려지지 앟은 걸작'을 둘러싼 논쟁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은 뒤 약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무런 설명도 들어 있지 않은 사진 한 장'이 S···에게 배달되었고, 똑같은 사진을 담은 우편물은 그 후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에게 전해졌다. 그때마다 그는 '흉물스런 매부리코의 그 얼굴'을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사진과 함께 동봉된 짤막한 쪽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용은 물론 간단했다. "당신이 소장한 걸작은 가짜요." 이쯤 되면 그 이후의 전개는 불보듯 뻔하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로맹 가리의 기가 막힌 묘사들만 다를 뿐.

 

모든 것이 다 들통난 이후 '성형 미인' 알피에라는 '한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애원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울고 있었고····· 하지만 주인공 S···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알피에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알지도 못하는, 위조범의 노련함이 그의 눈길로부터 영원히 감춰버린 다른 낯선 여자였다. 거역 못 할 어떤 힘이 그를 밀어붙여 그 사랑스러운 얼굴 위에다 딱 벌어진 탐욕스런 콧구멍이 달린 끔찍한 매부리코를 되살려내고 있었다. 그는 예리한 눈길로 구석구석을 살피며 가짜임을 나타내는 흔적, 간사한 중개상의 손길을 드러내는 표시를 찾고 있었다. 가혹하고 가차없는 무언가가 그의 마음속에서 움직였다. 알피에라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오, 제발, 절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진정하시오. 당신도 알 거요. 이런 상황에서 ······"

 

S는 이혼 결정을 내리기까지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처음에 내세운, 언론에서 논란이 된 이혼 사유, 곧 아내의 얼굴이 가짜라는 사실은 법정의 빈축을 샀고 예심에서 기각되었으므로, 알피에라 일가와의 은밀한 협상-정확한 금액은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끝에야 그는 진품만을 원하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

 

로맹 가리의 작품 소개에만 너무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함께 떠올렸던 '가짜스러운' 북플 매니아 얘기를 쏙 빼먹고 한 걸음도 더 전개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아마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들은 이 글을 읽는 동안 나처럼 계속 '북플 매니아'를 머릿속에 오버랩시키면서 읽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수많은 얼굴을 지닌 '가짜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 정도면 나로서는 이 글을 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가짜'가 지닌 '치명적인 위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로맹 가리의 이 단편이 나에게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언뜻 스치는 '껍데기는 가라'던 어느 시인의 절규까지 이 글에 덧보태는 건 아무래도 좀 지나친 비약이겠지 싶어 이쯤에서 내 글을 마무리짓고 싶다. 아무튼 북플 매니아는 '비록 악의는 별로 개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여러모로 좀 '가짜'스러운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더군다나 무슨 분야에서는 내가 '1363번째 마니아'라는 사실까지도 친절히 알려 주던데, 그게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필요하단 말인가. 무슨 '레이스'를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이쯤 하자. 내 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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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1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12-12 02:19   댓글달기 | URL
북플 마니아... 이야기 공감해요!
뭔 앱인가를 안 깔아서 내 기록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컴터에서 보여지는 마니아를 보면 좀 황당했어요.

oren 2014-12-12 11:55   URL
`마니아`라는 타이틀을 너무 졸속으로 꾸미다 보니, 온갖 책들과 분야와 저자들에 대해서 `마니아` 타이틀을 주렁 주렁 달아 붙여 놓은 꼴이 너무 우습다 싶은 생각부터 앞서더군요. 만든 취지는 수긍할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과 같은 방식은 좀 아니다 싶어요.

yamoo 2014-12-16 00:11   댓글달기 | URL
<가짜>를 보니 전에 이 페이퍼를 볼 땐 생각이 나지 않았던 영화였었는데...혹시 안보셨다면 <베스트 오퍼>를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쓰신 페이퍼를 보니 이 영화 생각이 계속 났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oren 2014-12-16 15:27   URL
<베스트 오퍼>라는 영화도 있었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꼭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야무 님~
 

 

(어제 북플로 글작성)

 

지금은 인터미션...

감동을 잠시 누그러뜨릴 시간...

 

 

 

 

 

 

 

 

 

 

 

 

 

(오늘 약간 보충, 프로그램북이 너무 비싸서 이 공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피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정말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뛰어가서 또 보고 싶은 멋진 뮤지컬이다.

오랫동안 결코 잊지 못할 '깊은 감동'을 안겨준 걸작이다.

 

 

 - 프로그램 안내 팜플렛 1

 

 

 

 - 프로그램 안내 팜플렛 2

 

 

 

 - 프로그램 안내 팜플렛 3

 

 

 

 - 등장 인물들

 

 

 

 - 캐스팅

 

 

 

 - 공연 장면

 

 

 

 - 관련 동영상 링크(아직까지 동영상을 알라딘에 직접 올릴 방법을 못찾겠다.)

 

http://youtu.be/6vqTcrgE9u4

http://youtu.be/4-L6rEm0rnY

http://youtu.be/FWNWt3kiT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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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06 22:33   댓글달기 | URL
캣츠 보셨군요~~ 저도 몇년전에 봤는데 럼 텀 터거는 정말이지 섹쉬했어요^^
얼마전 청주에도 하길래 두 아이 보여줬더니 밤마다 CD 들으며 자네요.
감동이었다고...

oren 2014-12-08 11:53   URL
럼 텀 터거.. 정말 대단한 고양이더라구요. 춤뿐만 아니라 노래와 얼굴 표정 연기 등등이 모두 완벽하다 싶더군요. 캣츠와 같은 대작의 경우, 오리지날 공연팀이 내한공연을 할 때마다 꼭 놓치지 말고 봐야겠다 싶더군요. 무대장치와 조명, 음향, 연기, 댄스 등등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특히 배우들의 노래 실력은 정말 놀라운 차이를 보여주니까 말이지요. 저는 《지킬 앤 하이드》같은 뮤지컬도 몇 번 봤는데, 오리지날 공연님이 들려주던 폭발적인 노래를 직접 한 번 들어보니 작품 자체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더군요. 앞으로 언젠가는 오리지널 『캣츠』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지요. 그때 또다시 느끼게 될 진한 감동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ㅎㅎ
 
데모크리토스에 대하여...

 

 

어젯밤에 어떤 책을 읽다가 묘한 구절을 발견하고는 어느날 갑자기 눈덩이처럼 불어난 '북플 친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까지도 혹시 페북이니 북플이니 하는 SNS 서비스의 등장을 미리 내다본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북플이라는 어플에서 여태껏 '친구 신청' 버튼 한 번 누른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북플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쇄도하는 '친구 신청'을 넙죽넙죽 받아들이다 보니 어느새 '북플 친구'가 엄청 늘었다. 어느새 북플은 나에게 '우정상'까지 쥐어 주었다. 갑자기 '술' 생각도 나고, 서로 '술 한 잔' 사주지도 못하는 '친구'도 친구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안치환의 노래가 저절로 떠오른 탓이다.

 

마침 잘 됐다. 오늘 저녁 망년회에 가면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고, 서로 '친구답게' 술잔을 쎄게 부닥치고 싶다. 그리고 모처럼 거나하게 취하고도 싶다. 술도 한 잔 나오지 않는 '북플의 세계'는 좀 잊고.

 

친구(philos)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친구가 아니며,

친구처럼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친구이다. 

 

이해 깊은 한 사람의 우정(philia)이 어리석은 모든 사람들의 우정보다 더 낫다. 

 

 - 데모크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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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4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연변이 2014-12-04 23:30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그 시 맞나요?

oren 2014-12-05 11:39   URL
맞습니다, 돌연변이 님.
* * *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빈호주머니를 털털 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한번도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빈호주머니를 털털 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한번도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sky100000 2014-12-05 11:56   댓글달기 | URL
가슴깊이 공감됩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oren 2014-12-05 12:10   URL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ky100000 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대우고전총서 12
김인곤.강철웅.김재홍.김주일.양호영.이기백.이정호.주은영 옮김 / 아카넷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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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가 데모크리토스를 두고 한 말들

 

그러므로 대중적인 명성은 그것 자체를 위해서 추구되어서도 안 되고 명성을 얻지 못한다고 크게 안달이 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데모크리토스는 "내가 아테네에 왔는데, 거기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견실하며 진중한 사람, 그런 사람은 명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투스쿨룸 논쟁집』)

 

나는 데모크리토스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는 재능의 크기에서 뿐만 아니라, 사고력의 크기에서 그를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그는 대담하게도 "나는 우주(universum)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라는 말로 시작했던 자이다. 그는 자신이 취급하지 않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nihil)으로 배제한다. 우주를 제외하고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아카데미카』)

 

그래서 내가 보기에 플라톤과 데모크리토스가 하는 말은 시행의 형식은 결하고 있으나, 시보다도 더 기운차고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한 어휘의 광채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극 시인들의 시보다도 오히려 더욱 시다운 시로 여겨지고 있다.(『연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데모크리토스를 두고 한 말

 

일반적으로 사물의 생성소멸과 운동변화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관해서 데모크리토스 이외의 그 어떤 사람도 피상적인 것 이상으로 깊이 고찰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문제에 대해 고찰했으며, 그 당시에 이미 고찰 방식에서 아주 남달랐던 것이다.(『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데모크라테스 교훈집의 격언들*

(* 데모크라테스의 격언들은 12세기 필사본에서 뽑은 것으로, 스토바이오스가 인용하는 것들과 종종 일치하며, 따라서 분명 데모크리토스의 것으로 돌려져야 한다. ······)

 

만약 누구든 지성(nous)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나의 판단(gnōmē)에 귀 기울인다면, 훌륭한 사람에게 걸맞은 많은 행동들을 하게 될 것이고, 많은 나쁜 행동들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혼의 좋은 것들을 선호하는 사람은 더욱 신적인 것들을 선호하지만, 몸의 좋은 것들을 선호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것들을 선호한다.

 

나쁜 짓을 하는 자를 못하도록 막는 것은 훌륭한다. 그러나 만약 막지 못한다면, 같이 나쁜 짓을 하지는 말아라.

 

휼륭한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훌륭한 사람을 모방하거나 해야 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몸도 재물도 아니고, 올바름(orthosynē)과 폭넓은 분별력(polyphrosynē)이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그러지 말아야하기 때문에 잘못에서 벗어나라.

 

불행(symphora)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분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수치스러운 행위들에 대한 후회는 삶을 구제해 준다.

 

참된 것을 말해야 하며,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

 

나쁜 짓을 하는 자가 나쁜 짓을 당하는 자보다 더 불행하다.

 

잘못(plēmmeleia)을 온화하게 참아주는 것이 관대함(megalopsychiē)이다.

 

법(nomos)과 통치자(archōn)에게, 그리고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절도 있는 행동이다.

 

훌륭한 사람은 하찮은 사람들이 책잡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보다 더 열등한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재물에 완전히 노예가 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닐 것이다.

 

설득하는 데는 말(logos)이 여러모로 황금보다 더 강하다.

 

분별(nous)을 지녔다고 자신하는 자에게 훈게하는 사람은 헛수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치(logos)를 배우지 못했으면서도 이치에 따라서 산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말들을 해댄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불행을 겪고서야 분별을 갖추게 된다.

 

훌륭한 말이 아니라 훌륭한 일과 행위를 추구해야 한다.

 

아름다운 것에 걸맞은 성품을 타고난(euphyees)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보고 추구한다.

 

가축의 우수함(eugeneia)은 신체의 강건함에 있고, 사람의 우수함은 좋은 성향(eutropiē)과 품성(ēthos)에 있다.

 

바르게 분별하는 자들의 희망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들의 희망은 그럴 수 없다.

 

기술(technē)도 지혜(sophiē)도 누군가가 그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남의 실수보다는 자신의 실수(hamartēma)를 따지는 것이 더 낫다.

 

잘 정돈된 성품(tropos)을 가진 사람들이 삶도 짜임새 있게 꾸려간다.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훌륭하다.

 

아름다운 행위들(ergmata)에 대해 칭송하는 것은 아름답다. 나쁜 행위들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자와 협잡꾼의 행위(ergon)이기 때문이다.

 

박식한(polymatēs) 많은 사람들이 분별(nous)을 갖고 있지 않다.

 

박식(polymathiē)이 아니라 높은 분별(polynoiē)에 힘써야 한다.

 

뉘우치기보다는 행하기에 앞서 미리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모든 사람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들을 신뢰하라. 전자는 어리석은(euēthes) 일이지만, 후자는 분별 있는 사람(sōphroneōn)의 일이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사람과 믿을 만하지 않는 사람은 행하는 일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들을 통해서도 판별될 수 있다.

 

좋은 것(agathon)과 참된 것(alēthes)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만, 즐거운 것(hēdy)은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과도하게(ametrōs) 욕구하는 것은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른이 할 바가 아니다.

 

때에 맞지 않는 쾌락(akairoi)은 불쾌를 낳는다.

 

어떤 것에 대한 강렬한 의욕(orexis)은 혼을 눈멀게 하여 다른 것들을 봇 보게 한다.

 

올바른 사랑(erōs)은 아름다운 것들을 방자하지 않게(anybristōs) 갈망하는 것이다.

 

이롭지 않다면 어떤 쾌락도 받아들이지 말아라.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다스리는 것보다 다스림을 받는 것이 더 낫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nēpioi)에게는 말(logos)이 아니라 불행(symphorē)이 선생이다.

 

평판과 부(富)는 사리분별(xynesis) 없이는 안전한 재산이 못된다.

 

돈을 버는 일이 쓸모없지는 않지만, 부정하게 돈을 버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쁘다.

 

못된 자들을 모방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훌륭한 자들을 모방하려 하지 않는 것도 곤란하다.

 

남의 일로 분주하면서 자신의 일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매번 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은 행위를 마무리 짓지 못한다.

 

말로는 모든 것을 다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하며 겉보기만 훌륭하다.

 

재산과 분별을 모두 가진 사람이 복 있는 자다. 그는 재산을 마땅히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것에 대한 무지가 잘못의 원인이다.

 

부끄러운 짓들을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반대를 일삼고 말을 많이 늘어놓는 사람은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데 걸맞은 성품을 타고난 자가 아니다.

 

모든 것을 말하면서 아무 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거만(倨慢, pleonexiē)이다.

 

못된 자가 호기(好期, kairos) 잡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질시하는 자는 적을 괴롭히듯 자신을 괴롭힌다.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자가 적이 아니라, 저지르려 마음먹는 자가 적이다.

 

친척들의 적의가 타인들의 적의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자가 되지 말고, 신중하며(eulabēs) 흔들림 없는 자(asphalēs)가 되라.

 

그보다 더 나은 보답을 하기로 마음먹고 호의(charis)를 받아들여야 한다.

 

호의를 베풀 때 그대는, 받는 자가 사기꾼이어서 좋은 것 대신 나쁜 것으로 갚지나 않을지, 받는 자를 미리 살펴보라.

 

작은 호의도 때가 적절하면 받는 이들에게 지극히 큰 것이다.

 

명예는 분별 잘 하는 사람들에게서 큰 힘을 발휘한다. 그들은 명예를 얻으면서 그 까닭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보답에 눈독들이는 이가 아니라, 잘 해주려고 마음먹는 이가 후한 사람이다.

 

친구(philos)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친구가 아니며, 친구처럼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친구이다.

 

이해 깊은 한 사람의 우정(philia)이 어리석은 모든 사람들의 우정보다 더 낫다.

 

쓸만한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믿을 만한(peiranthes) 친구들이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 사람들은 성미가 까탈스럽다.

 

많은 사람들은 친구들이 부유하다가 궁핍해지면 외면한다.

 

균등(to ison)은 모든 것에서 아름답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지나침(hyperbolē)과 모자람(elleipsis)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매력 있는 노인은 감미로운 말로 마음을 사로잡으며(haimylos)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spoudaiomythos)이다.

 

신체의 아름다움은, 지성(nous)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동물적인(zōōdēs) 것이다.

 

운이 트일 때[일이 잘 될 때]는 친구를 찾기 쉽지만, 불운할 때는 무엇보다 힘들다.

 

친척들 모두가 친구는 아니고, 유익한 것에 관해 같은 견해를 갖는 사람들이 친구이다.

 

우리가 사람인 한에서는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 비웃지 않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 온당하다.

 

좋은 것들은 그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힘들게 생기지만, 나쁜 것들은 그것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생긴다.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정에 걸맞은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여자가 말(logos)을 연습하지 않게 하라. 그것은 무서운 일이니까.

 

여자의 지배를 받는 것은 남자에게는 극도의 모욕(hybris)일 것이다.

 

아름다운 어떤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은 신적 지성(nous)의 일이다.

 

만일 누구든 신들이 모든 것을 살피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숨어서든 드러내 놓고든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해력이 없는 자들을 칭찬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큰 해를 입힌다.

 

자신에게서 보다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받는 것이 더 낫다.

 

칭찬받는 이유를 네가 알지 못한다면, 아첨받고 있다고 생각하라.

 

세계(kosmos)는 연극무대(skēnē), 삶은 한편의 연극(parodos), 그대는 와서, 보고, 떠나네.

 

세계는 변화(alloiōsis)에 불과하고, 삶은 상념(hypolēpsis)일 뿐이네.

 

작은 지혜(sophia)도 큰 어리석음(aphrosynē)으로 인한 평판보다는 가치가 있다.

 


 



  1. '술 한 잔' 사주지도 못하는 '친구'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4-12-04 16:28 
    어젯밤에 어떤 책을 읽다가 묘한 구절을 발견하고는 어느날 갑자기 눈덩이처럼 불어난 '북플 친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도 페북이니 북플이니 하는 서비스의 등장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북플이라는 어플에서는 여태껏 '친구 신청' 버튼 한 번 누른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북플은 나에게 '우정상'까지 쥐어 주었다. 갑자기 '술' 생각도 나고, 서로 '술 한 잔' 사주지도 못하는 '친구'도
 
 
2014-12-04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4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다시 읽을 때에는 얼굴을 붉힌다.
왜냐하면 많은 문장이 작가인 내가 판단하기에도
마땅히 삭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오비디우스

 

 * * *

  

아리스토텔레스의 저 유명한 말, 즉 '자기 작품을 경멸하며 박대하는 것까지도 모정다운 뽐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말인가. 그리스 철학자의 그 말을 인용했던 몽테뉴는 또 얼마나 재치있게 그 자신의 허물을 용케 피해 갔던가.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내 책 이야기를 하느라고 내 책을 늘려 간 것인가! 어리석고말고,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자들을 두고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이 자기 작품에 그렇게도 자주 곁눈질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작품을 위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이고, 자기 작품을 경멸하며 박대하는 것까지도 모정다운 뽐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를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일은 흔히 똑같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다른 점에서보다도 이 점에서 내가 더 자유로워야 하지만, 내가 나의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 하는 식으로 나와 내 문장에 관해서 쓰고 있는 이상 내 제목은 그 자체로 뒤집히는 터이니, 모두가 이 변명을 받아 줄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옛사람들의 글을 여기에 내 멋대로 끌어들임으로써 그저 나의 '곁눈질'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울 수 있을까를 궁리해 보며, 서둘러 옛 사람들의 등 뒤로 내 꼬랑지(혹은 꼬라지?)를 감추고 싶은 마음 뿐이다.

 

(북플이 새로 등장하면서 여러 변화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공감' 단추가 사라졌고, 다들 '좋아요'가 좋으니 좋을 대로 하자고 '좋아요' 단추가 새로 도입되었다. 그런 건 다 좋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래 전부터 애써 공든 탑 쌓아 올리듯 쌓아 왔던 '추천 + 공감 + 좋아요'의 누적 포인트까지도 '좋을 대로' 차감당하는 건 뭔가 좀 억울하다 싶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사소한 '단추' 한 번 누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그 한 번의 '누름'을 당하기가 얼마나 더 어렵던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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