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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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장밋빛 인생> 등 정미경 소설에 대한 주변의 호평을 여러번 들었지만, 정미경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이번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처음 만난 정미경의 소설.
아쉬웠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정미경의 소설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그러니까..."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라는 말이 아니라,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라는 말이다.

가볍게 슬슬 읽히면서도, 잠복하고 있던 몇몇 독한 문장들이 펀치를 날린다.
잠시도 긴장을 풀수 없는 스릴러...가 아니라,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리듬을 타게 한다.

허구한 날 주인공은 출판사 직원이나 잡지 기자, 그것도 아니면 방송 작가나 소설가,
소재는 불륜, 배경은 지방 소도시....
이런 여자 작가들의 고만고만한 소설에 언젠가부터 시큰둥했다.

그런데....정미경의 소설은 삶은 계란 세개를 연거푸 먹고 마시는
차가운 "칠성 사이다" 같았다. 그 통쾌함과 후련함이란!
정미경이 옆에 있다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고맙다"라는 생각이 든건 처음이다!)

대상수상작인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의 자선 대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
우수상 수상작인 김영하의 <아이스크림>,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를 읽고 독서의 "양극화" 또는 "빈익빈 부익부"를 생각했다.

<개그콘서트>를 50~60대가 보면 별 재미가 없다.
왜? 패러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친절한 금자씨>를 꼬아서 웃기고 있는데,
<친절한 금자씨>를 보지 못한 사람은 웃기지가 않는다.

김경욱의 소설 <위험한 독서>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소설들을 읽었거나,
최소한 그 소설들을 쓴 작가의 스타일을 아는 사람에게만 웃기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대담하게 표현했던 D.H.로렌스였다면 어땠을까.....
하드보일드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적 방식은 어떤가...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방식은 어떨까...
-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中 -

이런 식이니 읽는 이에 따라서 유머가 될수도 있고,
한 없는 지루함이 될 수도 있다.
(후자라면 다시는 김경욱의 소설을 읽지 않을 것이다!)

심사평에서 은희경은 김경욱의 소설을 평하며
"유머도 강해져서 소설을 잘 받쳐준다." 라고 했는데,
김경욱의 유머는 제목 <위험한 독서>만큼이나 "위험한" 유머다.

나머지 우수상 수상작인
구광본의 <긴 하루>, 함정임의 <자두>, 전경린의 <야상록>,
윤성희의 <무릎>도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 주었다.

구광본의 <긴 하루>는 몇장 안되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제목 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내겐 상당히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정미경, 김경욱의 단편집을 읽어볼 계획이다.
살짝꿍....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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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08-1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선님. 너무 반가워요. 정미경을 좋아하게 되셨다니 말예요. [나의 피투성이 연인]도, [장밋빛 인생]도 정말 너무너무 좋아요. 특히 [장밋빛 인생]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을 만큼 맛있는 소설이예요. 수선님 말씀처럼 불륜이 배경인것은 흔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남다르다고 할까요. '김경욱'이라면 제가 잘 모르지만, '정미경'에게 설레이신다면 반드시 만족하실거예요. 아, 기쁘다, 정말 :)

잉크냄새 2006-08-1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란 세개 후의 칠성 사이다라면.......트림 같은 소설이군요.^^

moonnight 2006-08-18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게 재미있나요? 제가 모르는 작가인데. 저도 읽어볼래요!! >.<

kleinsusun 2006-08-18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다락방님도 정미경을 좋아하시는군요. <장밋빛 인생> 빨리 읽어봐야 겠어요. 요즘 제가 읽는 책들이 다락방님의 환영을 받네요.^^ 호홋 언젠가 다락방님과 술을 마신다면 정말 술 안주가 필요 없겠어요. 기대만빵!^^

잉크님, 음하하, 네....트림 같은 소설이예요.^^

달밤님, 네...정미경 소설 강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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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지금 그 원고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꽤 확실히 기억난다.

제목은 <겨울바다> (유치찬란!)
원고지 83장.
공부는 잘하지만 자신의 가정과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중학교 2학년 소녀가 가출을 해서 "겨울바다"를 본다는, 참으로 진부하면서도 유치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소설, 그 83장의 원고지 더미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허접하고, 유치하고, 진부하고...그 모든 것을 떠나
원고지 83장을 쓴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원고지 83장을 쓴다는 것은 뭔가 간절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레포트 쓸 때 인터넷을 떠돌며 이리저리 자료들을 복사해서 붙이고
요리조리 편집하고 글자 크기를 키우고 하는 분량 늘리기가 아니라,
소설로 원고지 83장을 쓴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단편 소설 하나의 분량이다. A4지 10장!

만약 그 때, 옆에서 관심을 가져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쩌면 난 소설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 후, 소설을 쓴 적이 딱 한번 더 있다.
대학 2학년 겨울 방학 때. 제목은 <빛 바랜 사진 한장>.
그것도 원고지 80장이 조금 넘었던 것 같다.
할머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학 2학년 이후로 한번도 소설을 쓴 적이 없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지금 쓰면 원고지 80장을 쓸 수 있을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2학년 때나, 대학 2학년 때나
그 당시 내겐 너무너무 하고 싶은 얘기,
누굴 붙잡고라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소설 쓰기가 무슨 숙제라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

그렇다면 대학 2학년 이후 내가 단 하나의 짧은 꽁트도 쓰지 않았던것은
그만큼 "절실한" 얘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잘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 했기 때문일까?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을 쓰고 있는 습작생들,
소설을 써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
그리고...일기를 쓰며 울컥한 마음을 달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문창과나 국문과 이런데서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이상,
일반인들이 문우(文友)나 문학스승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우는 커녕 회사에서 책 좋아하는 동료 만나기조차 힘들다.)

뭔가 끄적 거려놓고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괜히 술 마시다 말 잘못 꺼내면 "정신 차려라!" 이런말 듣기 쉽다.

이럴 때,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늘어지는 잔소리 대신 지친 당신의 어깨를 도닥도닥 두들겨 준다.

작가가 된 순간 나는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이 사실은 글쓰기의 숨은 동기가 무엇인지를 유추하게 한다.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은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일기를 대신하였기 때문이다. 괴롭거나 억울하거나 부끄럽거나 참담한 것들이 일기에 적힌다. 사랑하고 있는 동안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롭거나 사랑을 잃고 슬퍼지면 일기를 쓴다. 이것은 일기 쓰기가 곧 나름대로의 견디기의 처세, 치유의 방편이었음을 상키시킨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시 소설 역시 그것을 쓴 작가 자신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세상을 견디는 방편이며 나름의 치유책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소설은 가장 먼저 그 글을 쓴 작가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유익하다.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을 견딜 힘을 얻는다. 세상의 불합리와 파렴치와 몰인정을 이길 힘을 얻는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그 힘을 얻는다.

(프롤로그 '이야기를 위한 몇 개의 이야기' 中)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콩콩 뛰었다.
이승우 선생의 글을 읽으며
왜 내가 일기를 쓰고 소설을 쓰려 했는지,
그 욕구의 정체가 어떤 것들 이었는지,
그렇게 끄적거리면서 느꼈던 배설과 정화의 효과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요즘 내 인생 세번째 소설을 쓰려 한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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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6-08-0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문과에 다니는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굶는과라고 해서 글쓰고 책읽는 걸 피해요.
저도 국문과를 나왔지만.. 풋.. 제가 대학교 다녔을 때도 국문과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책을 읽고, 진지한 글 한편 쓰는 사람 몇 없었어요. 그게 대학다니는 내내 아쉬움이었죠. 국문과를 나왔다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잘 안되거나 자신의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방법이 아주 서툰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았죠. 그런데 님의 말대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더더욱 그걸 많이 느꼈죠.
살면서.. 인문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함께 글을 나누며 산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그런데 문창과는 제가 듣기로 체계적인 글쓰기 방법을 배운다지만 국문과에서는 창작에 관련된 건 사실 잘 안배워요. 돌아서면 금방 까먹어버리는 아주 어려운 이론 위주의 수업을 많이 하죠..그래서 글쓰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기냥 모여서 주로 하죠^^)

kleinsusun 2006-08-0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 국문과도...ㅠㅠ
하긴 독문과, 불문과 나온 애들이 영어 보다도 독어,불어가 서툰 경우가 대부분이예요. 요즘 대학들은 예체능 제외하면 1학년 때 부터 Toeic이 교과서라는... 삭막한 현실이네요.

다락방 2006-08-0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그 세번째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지는데요 :)

kleinsusun 2006-08-0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초고가 완성되면 살짝꿍 말씀드릴께요. 옛날에 83장을 어떻게 썼나 몰라요. A4 한장 쓰기도 힘들다는...^^

비로그인 2006-08-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댓글 쓰려는데 저 위에 댓글이 눈에 팍! 들어왔어요...;;;
어찌아셨는지요? 불어 서툴어요..T^T

바람돌이 2006-08-0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로 하고싶은 절실한 이야기 궁금하네요. ^^
기대하고 있어도 되죠?

kleinsusun 2006-08-0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어떻게 알았냐면요.... 전 독어가 서툴어요.ㅎㅎㅎ

바람돌이님,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양치기 소녀 될까봐 ㅎㅎ) 나중에 살짝꿍 알려드릴께요.^^

moonnight 2006-08-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선님의 세번째 이야기. 저도 기대 많이 된답니다. 하고픈 이야기, 하나도 남김없이 쏟아부어주시길 바래요. ^^

icaru 2006-08-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 님 중학교 때 습작품 보면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생각했어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동해 바다로 향했던가 그 쥔공은....

kleinsusun 2006-08-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네...소설 미학, 구성... 뭐 그런 건 없어도 하고 싶은 얘기는 한번 속 시원하게! 근데 왜 갑자기 "속청"이 생각나죠? ㅎㅎㅎ

icaru님, 네....칼바람이 몰아치는 건 똑 같은데... <겨울바다>는 진짜 유치뽕짝이예요.ㅎㅎ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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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으면서 끊임 없이 미소가 지어지는 소설집.
버스에서 읽으면서 키득키득 거리다가 갑자기 가슴 한켠이
짜~안 한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은 이야기들.
맥주 캔 하나를 훌짝이며 읽으면 더더욱 재미있는 작품들.
(주인공들이랑 같이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술을 마시고 있고, 몇몇 작품의 주인공은 알콜중독자다.)

단편집을 읽고 이렇게 열광한 건
아사다 지로의 <장미도둑>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내 침대 옆 벽에는 커다란 갈색 보드가 걸려 있다.

앙코르왓트에서 뭔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캄보디아 할머니 사진도 있고,
석모도 가는 배에서 새우깡을 들고 너무도 밝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아빠 사진도 있고,
빨간 치파오를 입고 싼타 모자를 쓴 내 사진도 있고,
울고 있던 나를 꼭 안아 주셨던 텐진 빠모 스님 사진도 있다.

그 사진들 옆에는 <장미도둑> 책 표지도 턱~하니 붙어 있다.
언젠가 그런 소설을 썼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사다 지로의 <장미도둑>에 있는 단편들을 읽으면서 생각했었다.
이렇게 위안이 되는 글들을 쓸 수 있다면,
사는 게 헛되지 않겠다....라고.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이 어수룩하고 모자란 인간들의 총집합,종합선물세트인 것처럼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에서도 잘난 인간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주인공들은 패배자들이다.
이제 거의 외래어로 쓰이는 단어 "loser".

키득키득 거리면서 읽다가
'근데...웃어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그런 상황들.

이 소설집의 맨 뒷부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레이몬드 카버의 생애와 작품해설>이 부록처럼 들어 있다.

하루키는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 중 개인적 "베스트 4"를 이렇게 뽑았다.
<깃털>,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 <대성당>.

아....이럴 때 빙고! 하면 따라쟁이 같지만,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최고의 작품은 (내게!) <깃털>이었다.

<깃털>을 읽으면서 그렇게 낄낄거리며 웃었으면서도
행복은 나눠줄 수도, 흉내낼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거라는
참으로 "당연한" 사실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들에 나오는 커플들은 거의가 재혼한 부부들이다.
전남편과 현재 남편의 장단점을 친절하게 비교설명해 주기도 하고(그것도 손님들 앞에서!),
옆에서 자고 있는 부인과 전처의 잠버릇의 공통점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에서는 두 부부가 술잔을 기울이며 마주 앉아 사랑에 대해 썰을 푼다.
전 남편, 전 처 얘기를 안주 삼아, 현재의 사랑에 대한 닭살 돋는 자랑들을 입가심 삼아...

레이몬드 카버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88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소설들에 나오는 가족들은 이미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있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81~86년에 쓴건데도 방금 구워져 나온 빵들처럼 따끈따끈하다.

이 책을 읽으며 2주 전 헝가리로 장기 출장간 후배 C가 자꾸 생각났다.
C가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텐데....

C가 다시 헝가리로 떠날 때 이 책을 선물해야 겠다. 
공작 깃털 몇개를 선물하는 것처럼
내게 기쁨이 되는걸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딴지) 이 책은 다 좋지만...
번역의 "양심", 출판사의 "윤리" 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책은 단편집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를 번역한 책이 아니다.
※ 이 단편집은 작년에 문학동네에서 번역해서 펴냈다.(정영문 옮김)

집사재의 책 제목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oubt love]에 수록된 작품은 달랑 2작품 실려 있다.

이 책은...한마디로 유명한 작품만 쏙쏙 골라 "짜집기" 편집한 책이다.

번역서가 원서가 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이건 정말 심각하다!!!)
책 뒷부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해설까지 있으니까,
혹시...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한 건 아닌가...하는 의혹도 살짝꿍 들었다.

번역서가 어떤 책을 번역했는지 밝히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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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1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8-01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추천이라면 바로 보관함에 들어갑니다.

마태우스 2006-08-0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몬드 카바가 저랑 안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님의 리뷰 덕분에 보관함에 넣습니다.

stella.K 2006-08-0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우리나라에선 명암이 뚜렷한 거 같네요. 저도 오래 전 제목이 좋아서 이 책 읽었는데 억지로 읽었지요.^^

kleinsusun 2006-08-0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전 정말...오랜만에...잼나게 읽었어요.^^

마태님, 네...취향이 아닐 수도 있죠. 저도 그런 작가들이 몇 있어요. 남들은 다 좋다는데 전 읽어내기가 힘든...

stella님, 아....그러셨군요. 문체 자체가 앉아서 술 마시며 얘기하는 그런 분위기쟎아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moonnight 2006-08-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수선님의 리뷰를 읽으니 저도 막 읽고 싶네요. 보관함으로. ^^ 그런 원서를 번역한 것이 아니었군요. 그건 전혀 몰랐어요. 이런. -_-+

kleinsusun 2006-08-0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오랜만이여요.^^
네... "짜집기" 편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잼 있어요.^^

천리향 2006-08-0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역시 선님의 취향은 저랑 약간 비스무리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실용경제서적은 절대 안 읽는데 요즘은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뭔소리냐-.-

저는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보다는 숏컷에 더 마음에 드는 단편이 많았는데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도 좋고...암튼 저는 카버와 체호프의 책을 좋아하는데 카버가 아직 산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ㅠ.ㅠ

다락방 2006-08-0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중에서 [대성당]을 정말 인상깊게 봤어요. 왜 그 부분 있잖아요. 눈먼 남편을 보면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장면요. 아내가 어쩌다 루즈를 색다른걸 발라도 알아챌 수 없을거라는 표현말예요. 너무나 씁쓸하지 뭐예요. 아무리 예쁘게 입고, 아무리 예쁘게 웃어도 이 남자는 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가슴 뭉클해지는 그런 단편이었어요.
수선님. 이 단편집이 좋으셨다면 혹시 체호프의 단편선은 어떨까, 싶네요. 체호프의 단편중에서도 특히 [드라마]는 정말 인상깊었거든요.

아, 오랜만에 너무나 반가운 리뷰예요 :)

kleinsusun 2006-08-0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미역님, 다락방님 두분 다 "체호프"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래서...벌써 보관함에 담았지요. 호홋^^

미역님, 알라딘에서 정말정말 오랜만에 봐요.
출근하시니까 잠시 짬이 나시죠? 주부들이 더 바쁘다고 들었어요.
운동은 열씨미 하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알라딘에서 만나니 디~따 반가워요.^^

다락방님, 드뎌 긴 장마가 끝났어요. 그동안....잘 지내셨어요???
<대성당> 저도 정말...인상 깊게 봤어요. 아내가 어떤 립스틱을 발라도, 어떤 옷을 입어도, 아무리 예쁘게 웃어도 볼 수 없는 남자도....또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여자도....

체호프 <드라마> 정말 기대되는되요. 보관함에 담았어요. 내일 살 계획이예욤^^

비로그인 2006-08-02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레이몬드 카버가 참 어려워요..;;;

kleinsusun 2006-08-0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제가 한권 밖에 아직 안 읽어서...^^
근데 캐리커쳐요, 비숍님이 직접 그리신거예요?

비로그인 2006-08-0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요!?!!?^^;;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강석경 외 지음 / 열화당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02년 3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 71명의 글을 엮은 책이다.

가나다 순으로 '강석경'부터 '황석영'까지 71명의 작가들이 쓴 4페이지씩의 산문이 촘촘히 담겨있다.
71명의 작가들이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똑같은 분량으로 쓴 글이라... 쓰면서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71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한 신문사의 원고청탁에 응하다니...
한국일보 참 대단하다!
또는 작가들 참 말 잘 듣는다! 라는 생각도 든다.

71명의 작가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글은
안정효 선생의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다.

문학작품이란 쓰는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나 다 같이 하나의 배설작용이다. 영화 또는 연극을 보거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프로이트의 설명을 따르면 작중인물과 동일시를 통해 가슴에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 버리는 작용이 되겠다.
하지만 배설작용은 일차적으로 쓰는 사람의 몫이요 특혜라고 믿는다. 글쓰기는 어차피 일종의 고백행위요, 궁극적으로는 자아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벌써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던 솔 벨로의 말처럼 작가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이 먼저이고, 읽는 사람은 공감을 통해 모방 배설을 하는 셈이다.
생리적으로 인간은 배설을 못 하면 죽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그런 현상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정리하고, 정화하고, 그래서 삶을 계속하게 된다.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

끄적끄적 허접한 잡문을 쓰는 주제에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이라는 문학의 기능에 공감한다고 하면
참으로 건방진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접한 잡문이건 일기건 뭐건 글을 쓸때면(보고서, 품의서 빼고!)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것 까진 아니지만 후련해 지는 그런 느낌,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정화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기를 쓰는,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쓰린 속을 부여 잡고 후회한다.
왜 그렇게 마셨을까?
그런 쓸데 없는 말은 왜 했을까?
술김에 털어 놓은 치기 어린 고백들이 옮겨지지는 않을까?

글쓰기는 이런 역효과 없이 자기고백을 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가장 가깝고도 고마운 친구였다.
빡세고 드라이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상당 부분 글쓰기를 통한 "배설"에 의존한 것 같다.

서른세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전경린의
<작가에 대한 일곱 가지 기대에 관한 추억>이라는 글도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때 작가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첫째, 몇 시간이든, 몇 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나의 방, 나의 집에 틀어박힐 명분을 가질 수 있다.
.......
넷째, 현실을 벗어나 버린 듯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듯한 사색의 시간과 책 읽을
시간에 대한 직업적인 권리를 확보하고 싶다.
.......
여섯째, 모든 성가신 의무를 글쓰기로 대신하고, 그로써 삶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작가가 되기 전에 작가에 대해 품었던 "기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가끔 상상하는 작가에 대한 기대와 너무 비슷해 읽으면서 혼자 껄껄 웃었다.
사람들은 항상 남의 직업을 훔쳐볼 때, 좋은 점만 쏙쏙 골라 본다.

배수아 또한 <엄격에 사로잡힌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것이 혼자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해 있을 이유가 전혀 없으며 단어 그대로,
원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상대해야 할 일도 없다."
는 말로 작가가 된 이유를 말했다.

나 또한 "혼자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강한 로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은 없다.

71편의 글을 다 읽지는 않았다.
잠들기 전 한편씩 읽어보려 한다.
왜 그들은 글쟁이가 되었는지
한명 한명의 사연들을 읽으면서 당분간 잠들어야 겠다.

사족 1) 이 책의 편집은 정말....엉망이다.
표지 디자인도 정말....성의 없다.

별도로 기획한 책도 아니고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묶어서 펴 내면서 어쩜 이렇게 성의 없을 수가 있을까?

열화당의 "무임승차"를 의심하게 된다.

사족 2) 심상대의 <문학이 나를 탐낸다>는 읽다가 짜증나서 그만 뒀다.
4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이라 왠만하면 참고 읽으려 했으나...

진짜...양아(양아치)스럽다. 어찌 그리 겉멋 들고 껄렁껄렁한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징~하게 끈적거리는 남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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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7-1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로서 배설합니다. 머리 속의 생각, 현재의 감정, 뱉어내고픈 응어리, 발산하고픈 욕망 등등. 제 글은 뭐 문학작품은 아니지만, 일단 글이란건 그런거 같아요.

마태우스 2006-07-18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린이 서른셋에 작가되기를 결심했군요. 굉장히 늦네요 생각보다.

kleinsusun 2006-07-1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아....님도 글로서 배설을 하시는군요. 맞아요...쓰다보면 풀어지는...그런게 있어요. 전 오늘 출근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한 난폭한 버스가 튀긴 물벼락을 맞아 아침부터 우울했답니다.ㅠㅠ 뭔가...구차한 느낌 같은게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up 시켜야 겠죠?^^ 아프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태님, 네...마태님은 20대에 첫 책을 내셨죠?^^ 오늘 좀 우울해서 내일 하루 휴가를 냈어요. 마태님의 방학은 어떠세요?

잉크냄새 2006-07-1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글을 쓴다는 표현은 너무 거창하고 서재에 몇자 남기는 것은 다시 못올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뒤돌아볼 한때로 남기 바라는 마음으로요.

kleinsusun 2006-07-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못올 시절.... 맞아요, 한 순간 한 순간이 다시 못올 순간이죠.
아...잉크님의 말을 들으니 우울했던 오늘 아침도 다시 못올 순간이란 생각이 드네요.^^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난 잡지를 거의 읽지 않는다.
김경이 기자로 있는 <바자>(Bazaar Korea)도 읽은 적이 없다.
미장원에서 몇번 본 적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보그나 다른 잡지들이랑 구분이 되지 않을 뿐.
당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경'이 누군지도 몰랐다.

이 책에 실린 22편의 인터뷰는
잡지 <바자>에 실렸던 인터뷰 모음집.
사실....읽으면서 좀 놀랐다.
패션지에서 연예인 아닌 사람들하고도 인터뷰를 하네?
특히 2001년 8월, 대선주자였던 노무현 '고문'과의 인터뷰를 읽으면서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외국 패션쇼 사진이랑 화장품 광고만 잔뜩 실리는게 패션지인지 알았는데,
정치인들도 예술가들도, '주성치'까지도 <바자>랑 인터뷰를 하는구나....

솔직히 '패션지에 다이어트 노하우 외에 읽을만한 기사가 있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 책에 실린 첫번째 인터뷰, <김훈 - 저기, 한 사내가 있다!>를
읽으면서 명함에 있는 김경의 본명은 '김경숙'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이름에서 한 글자만 빼도 정말 느낌이 다르다!
'김경숙'이라면 정말 흔한, 이웃집 언니 같은, 평범하고 얌전한 느낌인데,
한 글자를 빼고 '김경'이라고 하니까 뭔가 재기발랄해 보인다.

동시에...비약이겠지만, 뭔가 자신의 정체성을 쿨하게 꾸미는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존경하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약간의 배신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김경이 쓴 <서울을 축제의 도시로>란 칼럼을 봤다.

"그렇다면 4년 전에 비해 한층 더 요란해지고 적나라해진 월드컵 패션이 은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2002년 이후 이 도시와 이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믿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진실에 대한 은폐가 아닐까? 나는 그 책임을 젊은이들이 온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열망을 가득 담아 표를 던졌던 대통령에게 묻고 싶지만(그의 당선도 젊은이들에겐 하나의 축제였다), 지금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돼 그 일은 그만둔다."

바로 5일 전, 6월 20일자 칼럼이다.

5년 전, 그러니까 2001년 8월,
김경은 지금은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된다는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는....인터뷰라기 보다는 차라리 '헌시'에 가깝다.
누군가 노무현은 '어딘지 눈물 나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p315)

똑 같은 사람이 쓴 5년 전의 인터뷰와 5년 후의 칼럼을 보니
참....착잡하다.

이 책에 실린 22편의 인터뷰에서 김경의 일관된 자세는
인터뷰 대상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거다.
어떤 인터뷰를 읽으면서는 <성공시대> 나레이션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자신이 반한, 사랑에 빠진 사람을 인터뷰 대상으로 감수성 넘치는 글을 쓰는 건 좋지만,
지금도 22명의 인터뷰 대상에 대해 김경이 그런 감정을 유지하고 있을까?는 의심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불편함'은
정혜신의 [남자 vs 남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비슷하다.

정혜신이 분석의 대상을 선정한 기준은
정혜신이라는 한 개인의 'preference'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preference'는 대중의 인기와 그대로 부합한다.
그 대상과 비교하는 'negative'한 대상은
비판을 하면 일반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사람들로 선정되어 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게 쓰는 것.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 대중의 지지도 변화에 따라
저자의 관점도 같이 변한다는 것.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애매한 불편함을 글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인터뷰의 미덕이 톡톡 튀고, 재미있는 거라면
김경의 인터뷰는 최고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대상과의 거리 두기', '공정한 시각'을 인터뷰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마지막으로 김경의 글쓰기 뿐만 아니라 요즘 많은 칼럼리스트들에게 느끼는 불만 하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글쓰기를 할 때,
그러니까 전문지가 아닌 잡지나 일간지, 사보들에 글을 쓸 때,
제발 니체나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지 마시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가?
글의 완성도를 위해서 꼭 필요한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꼭 필요한가?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로 꼭 필요한가?

도대체 왜, 왜 쌩뚱 맞게 '니체'가 툭툭 튀어 나오는가?
무슨 리어카에서 파는 '체 게바라' 면티도 아니고 도대체 니체가 웬 유행인지?

이 책의 두번째 인터뷰 [DJ DOC 네 멋대로 놀아라]에도 니체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니체처럼 나타났다.
" 죽여 없애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욱 강해질 뿐이다
(What doesn't kill them makes them stronger)."
(p34)

<씨네21>의 영화 리뷰들에서도 이런 식의 인용을 쉽게 볼 수 있다.
외래어 남용과 함께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얻은게 있다면 이상일,양혜규,조성룡 등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에 대해
단편적으로 나마 알게 되었다는 거다.

소개팅할 땐 넘넘 재미있었지만 다시 만나기엔 긴가민가한 남자 같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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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6-2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할 건 추천밖에 없습니다. 김경이란 이름이 주는 느낌과 대상자에 대한 저자의 느낌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에도 감탄을 하구요, 그보다 더, 니체랑 하이데거를 인용하는 풍조를 비판한 것에 더 큰 찬사를 보냅니다. 이상 하이데거와 니체를 인용하고싶어도 무식해서 인용 못하는 마태 드림

로드무비 2006-06-2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요, 어찌 이리 콕 집어주셨나이까.
인터뷰 할 때는 열광해 놓고, 바로 딴 얼굴을 할 것 같다고 느꼈어요.^^

nada 2006-06-2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뜻하는 바는 뭘까... 궁금해지네요. 어쨌든 어딘가 눈물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던 노무현의 배신은.. 안타깝습니다.

끼사스 2006-06-2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를 구독하면서 김경씨 칼럼을 종종 읽는데, 뭐랄까, sensitive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적인 글을 쓰는데 명분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도 차마 감정을 주체 못하겠다는 태도. 확실히 읽는 재미는 있죠.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kleinsusun 2006-06-2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저도.....인용을 못해요. ㅎㅎㅎ
그런데... DJ DOC이 '니체' 처럼 나타났다는 표현은 넘 웃긴 것 같아요.
요즘 외래어를 남용하듯이 인용을 남발하는 칼럼리스트들이 많아요. 아마도...몇줄 쉽게 더 쓰기 위해서? ㅋㅋ

로드무비님, 네....쉽게 열광하면 그 만큼 쉽게 식죠. 열광이 습관적이라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꽃양배추님, 제목이 뜻하는 바는.....대조되는 두 인물의 이름을 반복, 대비함으로서 강한 impact → 판매량 증대???

훈성님, 닉네임을 바꾸셨군요. 누군가 했어요. 앞으론 끼사스님이라고 부를께요.^^
강준만 교수가 말했죠. 글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 과잉을 경계해야 된다고...

글샘 2006-06-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인데, 노무현은 놈현됐고 김경은 김경숙이었군요. 결국.
앙녕하세요~ 드자이너예요, 레 이름은, 김봉남이에요.ㅋㅋㅋ
하던 산뜻한 개그 만큼이나 <본질>과 <이름>은 착각과 오해로 일관하는 관계 아닐까요?

잉크냄새 2006-06-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문회가 밝혀낸 지상최대의 진실...
"저 아아아앙~ 앙드레 김의 본명은 김봉남이에요."

2006-07-03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6-09-26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보자면 전 지승호씨 인터뷰 책 말인데요, 물론 성실하고 훌륭하지만, 선생님에게 강의듣는 듯한 태도가 다소 부담스럽더군요

2007-01-08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