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04
리처드 D. 앨틱 지음, 이미애 옮김 / 아카넷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왓슨,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다단한 존재 아닌가.”

 

- 셜록 홈즈 -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식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해 가는 사람들의 의식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방어적인가를 우리는 동시에 경험한다. 새것과 옛것 사이에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로운 현실은 이미 다가와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낡은 부대를 버리지 못한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의 역사를 살펴보면 새 시대의 희망을 감지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 수 있다. 자본과 노동력에 바탕을 둔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그 변화의 충격을 피부로 느꼈다. 소용돌이치는 문명의 변화 가운데서 솟아나는 끊임없는 과제들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그런데 그것에 응전할 사람들은 소극적이었다. 새 포도주는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을 담을 새 부대가 많지 않았다. 옛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총체적 변화의 상황을 위기의 상황으로 파악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하는 가치 혼란의 시대였다.

    

리처드 D. 앨틱(Richard D. Altick)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총체적 변화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의 바람을 일으키며 산업화, 도시화의 선봉을 달렸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과 상공업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됐고, 부유한 중산층들은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다. 이때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 누구나 어려움에 부닥칠 때 떠올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경구는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자조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에게 자수성가를 이룰 수 있는 꿈과 용기를 심어줬다. 하류 계층에 속한 노동자들은 이 책을 읽고 스마일스처럼 되기로 결심했다. 그들도 계층이 세습되는 구시대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밋빛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두드러질수록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영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복음주의자들은 신앙생활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 그들은 성서를 글자 그대로 해석했고 결혼과 가족제도를 중시했다. 복음주의자들은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욕구를 규제했다. 각기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해도 도덕성 결여는 복음주의자와 공리주의자들도 똑같이 경멸한 사회악이었다. 공리주의자들은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며, 좋은 삶의 판단 여부는 그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행위를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천국에 가서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근면과 금욕을 강조했다. 엄격한 복음주의자들은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박성 오락을 금지했고, 아이와 여성이 보는 책에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구절이 있으면 검열 · 삭제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양분했던 두 세력은 부분적으로 호흡이 척척 맞는 사이였다. 복음주의자와 공리주의자 들은 개인의 자조(自助)를 강조하면서 도덕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오래된 부대를 고집하는 기득권층의 극심한 텃세로 인해 새 시대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신선한 새 포도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노오력의 배신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기득권층에 향한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 뿌리박힌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과 감정 표현을 절제해야 하는 과묵한 성격때문에 계급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품위 유지를 강조하는 사회는 여성의 삶을 제약했다. 신사들은 여성에게 생산적인 활동을 요구하지 않았고, 여성이 스스로 경제권을 획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을 간단하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그 시대 사람들의 면보가 보수적이긴 해도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들로 규정할 수 없다. 새 포도주를 오래된 부대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과감히 오래된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빅토리아 시대에 옛것과 새것이 공존했다. 낡은 부대든 새 부대든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부대에 담은 새 포도주의 맛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생동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의 흐름에 맞게 적절히 처신했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다. 이 책의 역자는 빅토리아 시대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본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말이 맞았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존재들이었다.

    

 

 

홈즈가 했던 말은 셜록 홈즈의 회상록(백영미 역, 황금가지)에 수록된 단편 증권 거래소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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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7-06-0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체의 관성처럼 인간에게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타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혁을 추구하는 인간들도 있거든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가 되고 싶은데, 참 어렵습니다. 사람도, 사람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도. .^^

cyrus 2017-06-03 21:4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한 사회에서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주류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동시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변화의 갈림길에 서면 고민이 많아져요. 낯선 변화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익숙한 길을 그대로 갈 것인지 고민해요. 정말 머리 아픈 상황이라서 결국은 익숙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변화를 추진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이교도 회사
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수첩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태어날 때부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오랫동안 무국적자 신분으로 프랑스에 거주했고, 36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포기했고 많은 일을 전전했다.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에 전시된 모나리자(Monna Lisa)가 도난당했을 때 아폴리네르는 그림을 훔친 절도범으로 연루되어 5일간 옥살이를 했다. 포병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나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아 생사를 오가는 위험에 처했다. 쓰라린 사랑의 실패를 여러 번 겪은 아폴리네르는 드디어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과 스페인 독감이 그를 괴롭혔고, 끝내 죽음을 비껴가지 못했다.

     

저주받은 시인의 불행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은 아폴리네르에게 명성을 안겨다 줄 뻔했던 작품이다. 1910년 아폴리네르의 단편소설집 이교도 회사는 공쿠르 상(Le Prix de Goncourt)의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또 다른 최종 후보작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두 작가는 수상 실패라는 고배를 마셨다. 루이 페르고(Louis Pergaud)의 단편소설집 De Goupil à Margot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오늘날에는 1910년 공쿠르상 수상작이 뭔지 관심이 없다. 다행히 루이 페르고를 모르는 프랑스인은 없다. 그가 1912년에 발표한 단추 전쟁(낮은산, 2004)은 청소년 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이교도 회사. 제목이 독특하다. 이 책에 수록된 총 23편의 글은 아폴리네르가 1899년부터 1910년까지 써왔던 것들이다. 그의 글에 소설 작법의 미숙함이 조금 남아 있다. 그래도 이교도 회사는 재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아폴리네르의 똘끼충만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폴리네르는 타데 나탕송(Thadée Natanson, 상징파 문예 잡지 르뷔 블랑슈(Revue Blanche)발행인)에게 바치는 헌사에 이 책을 몽환의 미약(媚藥)’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표현이 과장스럽게 보이겠지만,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아폴리네르는 처음에 환각들(Phantasmes)’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 그만큼 이교도 회사약을 빤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 수록된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프라하의 보행자

* 신성 모독

* 라틴계 유대인

* 교황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다

* 세 개의 천벌 이야기

  1. 미소년

  2. 춤추는 여자

  3. 리용의 괴물

* 마법사 시몬

* 오트미카

* ‘거시기 뭐여?’

* 힐데스하임의 장미, 혹은 동방박사의 보물

* 피에몬테의 순례자들

* 오브레 쉬브락의 실종

* 암스테르담의 선원

* 명문가(名門家)와 방광 결석 이야기

* 시인들의 냅킨

* 가짜 메시아 앙피옹, 혹은 도르므상 남작의 황당무계한 모험담

  1. 관광 안내인

  2. 잘 만든 영화

  3. 기상천외한 여송연

  4. 문둥병

  5. 콕스-시티

  6. 원격 감응

    

 

몇 몇 글 제목이 평범하지 않다. 거시기 뭐여?’의 원제는 무엇을 원해?(Que vlo-ve?)’이다. 사투리가 심한 주인공은 항상 말할 때마다 무엇을 원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그래서 특이한 말버릇이 있는 주인공의 별명이 무엇을 원해?’이다. 소설을 번역한 성귀수 씨는 해학적인 묘미를 살리기 위해 원어를 거시기 뭐여?’라고 옮겼다. 세 개의 천벌 이야기는 에로틱한 요소가 있는 작품이다. 첫 번째 이야기 미소년은 퇴폐적인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름다운 소년이 죽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항문으로부터 말뚝이 박힌 미소년은 그렇게 해서, 모르긴 몰라도, 쾌감에 겨워 죽어가고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은 정녕 아도니스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무수한 반딧불들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95)

    

아도니스(Adonis)는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사랑을 받은 아름다운 소년이다. 아폴리네르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죽어가는 소년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에 의하면 인간이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존재이다. 독자가 보기에 소년이 죽어가는 장면은 수치심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성도착증 환자가 아닌 이상 그가 처한 상황의 고통을 절대로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폴리네르는 생과 육체를 파괴하면서 얻는 쾌락을 예찬한다. 그는 프로이트(Freud)보다 한발 앞서 죽음의 충동적 본능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유행했던 데카당스(Décadence)의 영향이 남아 있다. 작품의 결말에는 세기말을 지배했던 퇴폐적이고 탐미적인 분위기가 반영되었다.

 

 

 

 

     

오브레 쉬브락의 실종은 묻히기 아까운 작품이다. 오브레 쉬브락은 위장술에 능한 인물이다. 그가 벽에 딱 달라붙어 서 있으면 벽화 한 몸이 된다. 주변 물체와 똑같은 상태로 변하는 의태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이 신기한 능력으로 자신의 몸을 숨긴다. 아폴리네르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을 선호했고, 그것을 주제로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동물의 의태 능력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제작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인간의 형체가 사라지고, 배경 화면의 일부가 된 불가사의한 신사가 등장한다.

 

시인들의 냅킨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사용한 자동기술법’의 과정을 보여주는 짤막한 이야기. 자동기술법은 의식이나 의도 없이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살아가는 화가 쥐스탱 프레로그와 그의 친구들은 냅킨 한 장을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그렇게 사용된 냅킨은 음식 찌꺼기 자국과 타액 등이 잔뜩 묻어 있다. 그런데 쥐스탱 프레로그는 이 더러운 냅킨의 얼룩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적이 빚어낸 아름다운 작품으로 생각한다. ‘자동기술법’의 무한한 상상력이 냅킨의 더러운 얼룩을 '예술 작품'으로 다시 보게 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아폴리네르의 독특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아폴리네르의 작품들을 번역한 황현산 교수님이 《이교도 회사》를 번역해주면 좋으련만, 내 기대감이 너무 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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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6-0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시기 뭐여?ㅎㅎㅎㅎ
성귀수 번역가가 그 말 한마디 뽑아 내기위해
머리털 좀 뽑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아폴리네르는 소설 보단 시가 더 나은 걸까?
책이 복간된 적도 없는가 보군.
어쨌든 똘끼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이 똘끼만으로도 그 존재감은 충분하지 않을까?^^

cyrus 2017-06-03 14:47   좋아요 0 | URL
아폴리네르가 음악 빼면 다방면의 천재에요. 그가 남긴 작품 중에 정상적(?)으로 시도한 장르가 시입니다. ^^;;
 

 

 

눈으로 인지한 사물이나 현상은 우리에게 단단한 믿음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믿음에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내가 본 것이 진짜라는 환상에 속는 것이다. 착시는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인 인지 양식의 결과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눈과 뇌는 불완전하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는 형태가 모호한 대상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욕구가 빚어낸 착시 현상이다. 뇌는 사람의 얼굴 모양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두운 밤 형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발견하면 뇌는 즉각 반응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뇌의 인식 오작동 때문에 우리는 뚜렷하지 않은 형상을 귀신이라고 믿는다.

   

 

 

 

 

 

 

 

 

 

 

 

 

 

 

 

 

*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 아니물라(바른번역, 2016)

 

 

파레이돌리아 현상은 자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게 지나친 자기 확신이다. 과잉 확신의 늪에 빠지면 정확한 분석이 어려워진다.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Fitz James O’Brien)아니물라(원제: 다이아몬드 렌즈)에 등장한 린리(Linley)의 직업은 과학자다. 하지만 그는 과학자가 경계해야 할 인식의 오류에 빠질 정도로 미숙한 면모가 있다. 현미경 렌즈 너머로 보이는 미세한 세계(micro world)에 푹 빠진 린리는 물방울 속에 보이는 불가사의한 형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착각한다. 린리는 물방울의 우연한 형태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 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문학과지성사, 2001)

* 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지만지, 2011)

     

 

호프만(Hoffmann)의 소설 모래 사나이에는 왜곡된 시각적 기억 때문에 엄청 고생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린 나타나엘(Nathanael)은 변호사 코펠리우스(Coppelius)의 흉측한 외모를 잊지 못한다. 코펠리우스는 나타나엘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악한 존재다. 어린 나타나엘은 밤마다 찾아와 잠자는 아이의 안구를 훔친다는 모래 사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코펠리우스에게 투영한다. 그가 코펠리우스와 닮은 청우계 장수 코폴라(Coppola)를 만나게 되면서, 유년 시절에 느꼈던 그것과 유사한 두려움에 빠진다. 코펠리우스와 코폴라의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coppo-’잔 모양의 물건또는 눈구멍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코펠리우스와 코폴라를 만나면 자신의 안구가 강탈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나타나엘은 비슷한 것만 봐도 겁을 낸다. 그는 자신의 과장된 공포를 망상이 아닌 실제라고 확신한다. 모래 사나이, 코펠리우스, 코폴라가 자기에게 적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그때부터 편집증적 환상이 구체화하기 시작된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의 초고에 코펠리우스와 코폴라가 동일 인물임을 알려주는 대목이 있었다고 한다. 인쇄하기 위해 정리한 원고에 이 문장이 삭제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질서한 사실들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기를 쓴다. 그리하여 그 의미를 근거 삼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거나 불안한 미래를 예견해 보려 한다. 모르면 모르는 것으로 놔두든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급해서 뭐든 빨리 확신한다. 끝내 의미를 찾지 못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걸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가짜 뉴스와 조작된 사진을 검증 없이 사실인 양 믿는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선입견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탐색하는 경향이다. 우리 사회에 파레이돌리아, 과잉 확신 그리고 확증편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손가락으로 어두운 거짓의 그림자를 가리켜 진짜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그림자는 착각과 지나친 망상이 만들어낸 아주 위험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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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2 12:11   좋아요 1 | URL
사진에 속지 않으려면, 결국 사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사진을 보는 법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진 관련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책을 미리 사두길 잘했어요. ^^

2017-06-02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2 19:40   좋아요 0 | URL
사진 책을 안 보던 사진가가 일반인들이 사진 감상하는 것에 따진다면, 정말 가관이겠어요. 맹탕인 사진가들한테 무시 받지 않으려면 사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어요. ^^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박숙자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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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공부하지 않고 재미있는 책만 읽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소중한 보물이 있었다. 책장에 가득 채워놓은 오래된 책들이었다. 나는 곰팡내가 풍기는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거기에는 현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일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데 지루할 틈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지경이다. 책 속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존경하는 과학자, 작가, 정치인 그리고 한 시대를 살다가 간 뛰어난 선인들도 있다. 노력에 따라서 그들을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성을 쏟아 읽은 책마다 번호를 매겨 나갔다. 그때는 읽은 책의 권수에 집착했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도 포함했다.

     

어느새 십여 년이 지났다.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먹고사니즘에 치여 비타민처럼 필요한 책들을 외면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책을 읽던 친구들은 책과 담쌓은 지 오래다. 경쟁사회에서 낙오는 인생의 실패와 다름없이 여겨진다. ‘먹고사니즘의 열망이 클수록 민주적 가치고 나발이고 돈벌이에 도움만 된다면 뭐든지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사니즘은 단순히 생존본능을 위한 투쟁 의식이 아니다. 지나친 경쟁 심리가 만들어낸 이기주의의 극치다. 이 세상에 낙오하지 않고 한가롭게 독서를 하는 일은 진정 불가능한 일인가. 잠시라도 책에 한눈을 팔면 우리 삶이 정말 불행해질까.

     

잠재했던 유전인자가 몇 대를 뛰어넘어 불쑥 나타나는 것을 격세유전이라 한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를 읽으면 그 말이 실감 난다. 노후를 걱정하는 오늘의 6, 70. 이들을 ‘4 · 19세대라고 부른다. 그들에게도 사회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 인생의 꽃이라 불리는 20대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는 문학청년, 문청(文靑)의 연대였다. 젊은이들의 관심은 시와 소설, 그리고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었다. 대학생들은 <사상계>를 끼고 다녔고, 그들의 문화적 영웅은 김승옥이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표현대로 4 · 19세대는 4 · 19혁명과 5 · 16 군사쿠데타 사이에서 20년간 방황했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젊은이들은 가능성과 좌절사이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답답하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을 손에 쥐었다. 그렇지만 책이 민주주의에 대한 허기, 미래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했다.

     

광장(최인훈의 소설)()준은 밀실도 광장도, 그것이 상징하는 남한도 북한도,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다 거부하고 나섰다. 결국,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 뒤 배를 타고 가다가 숨 쉬는 바다로 몸을 던진다. ()혜린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독일 유학생이다. 그녀는 자기가 독일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실 어리게 글을 쓰고 싶어 했다. 환상수첩(김승옥의 소설)의 정우는 보다 나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문학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정우를 어쭙잖은 아이로 여겼다. 정우의 귓가에 울리는 무관심 하라라는 말은 혁명에 갈망한 청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독일 유학생 (전)혜린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실 어리게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아무리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도 번역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번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괴리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소설을 쓰겠다는 소망을 채 이루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쉽게 알려줄 대학생 친구를 만나지 못해 종이에 적힌 법 한 글자 한 글자 보듬느라 힘겨워했다. 이 네 명은 젊은 4 · 19세대들의 사회적 · 심리적 한계상황을 겪었다. 네 명의 젊은이들은 답답하고 허무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들의 삶과 희망은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생애로 종이에 남게 되었다.

     

그 뒤로 80년대 사회변혁의 맹렬한 주역으로 대학생들이 나섰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절망에 빠진 오늘, 50년 전의 그 암담한 심경은 격세유전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상황은 고뇌의 진원지가 정치가 아닌 경제라는 점이다. 60년대에는 노력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팽배했다. 학생들은 짜장면을 먹지 않고, 버스 등교 여덟 번 포기하면 200원짜리 삼중당 문고를 내 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200원짜리 책을 읽었고, 책을 통해 희망으로 이어줄 삶의 길을 찾고 싶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독서는 사치다. 그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힘들게 모은 돈은 입시 참고서, 어학 학습서, 취직 수험서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 된다. 한가롭게 소설을 읽을 수 없다. 독서하는 세대가 사라지면서 교양의 의미도 점차 희미해진다. 4 · 19세대가 공유한 교양은 삼중당 문고라면, 삼포세대의 교양은 취업상식 사전이다. 취업상식 사전은 내 책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취업을 목표로 상식을 달달 외운다. 취업만 성공하면 지긋지긋한 책을 안 봐도 된다.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은 삼포 세대의 독서문화사를 어떻게 기록할까. 삼포세대가 역사로 기록될 앞날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앞선다. 삼포세대가 겪은 좌절과 모멸감이 다음 세대에 이어질까 봐 걱정된다. 이 세상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이 더 많아지면 안 된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의 저자는 서문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를 기억하는 일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아물지 않는 상처라고 말한다.

     

살아남지 못한 자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들씌워진 가면을 잠시 벗겨낸 자리에 남아 있는,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그래서 우리 삶과 역사는 그 상처와 고통에 빚지고 있다. (8)

 

아주 오랫동안 깊게 파인 역사의 상처를 직면하는 일은 무척 괴롭고 아프다. 그렇지만 이 상처와 고통의 연속을 끝내려면 과거의 기록에서 교훈을 찾아내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아픈 역사를 잊고, 덮는다고 해서 무너진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픈 역사가 만들어 낸 상처가 덧난다. 그 상처가 덧나면서 생기는 통증이 다음 세대에 이어진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는 과거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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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2 07:02   좋아요 1 | URL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시는군요. 시험 공부할 때 틈틈이 보는 글이 재미있어요. ^^
 

 

 

 

 

 

 

 

“어서 오세요, 주인님!”

 

검은색 원피스, 흰색 두건에 흰 앞치마를 두른 하녀 복장의 종업원이 카페 문을 열며 인사한다. 오타쿠의 성지로 유명한 도쿄 아키하바라(Akihabara, 秋葉原)에 여러 개의 메이드 카페(Maid cafe)가 들어서 있다. 메이드 카페는 코스튬플레이 레스토랑(Costume play restaurant)의 일종이다. 유럽풍 하녀 복장을 입은 종업원들이 손님을 극진히 대한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메이드 카페가 들어선 적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 시선이 만만치 않다. 성 상품화 등을 이유로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아무리 좋게 봐도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다.

 

 

 

 

 

 

 

 

 

 

 

 

 

 

* 이케가미 료타 《도해 메이드》 (AK커뮤니케이션즈, 2010)

 

 

하녀를 뜻하는 ‘메이드’라는 단어 자체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메이드는 ‘여성 사용인(Maid servant)’, ‘가정부(housekeeper)’를 의미한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는 메이드 전성기였다. 상류층 사람들은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다양한 가사 일을 전담하는 사용인(집사, 하인, 마부, 보모, 가정부, 하녀 등)을 고용했다. 경제 소득이 늘어난 중류 계층 사람들은 상류층 사람들처럼 호화롭게 살고 싶어 했다. 중류층 사람들도 사용인을 고용하게 됐다.

 

가사 사용인으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하층 사람들이다. 하류층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한정되었다. 잡일이나 바느질일, 공장 노동 같은 육체노동에 종사했다. 그나마 가사 사용인이 하류층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가사 사용인으로 일하게 되면 먹을 것과 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하녀가 해야 하는 일이 아주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고, 커다란 저택 내부를 청소한다. 사용인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직업이 집사와 가정부다. 이들은 고용주를 보좌할 뿐만 아니라 남녀 사용인의 노동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사와 가정부는 안주인의 지시를 받고, 하녀에게 지시받은 업무를 하달한다.

 

 

 

 

 

 

 

 

 

 

 

 

 

 

 

 

 

 

 

 

 

 

 

 

 

 

 

 

 

 

 

 

 

 

 

 

 

 

 

 

 

 

 

 

 

 

 

 

* 《셜록 홈즈의 모험》 (구판, 시간과 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모험》 (2판, 황금가지, 2015)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모험》 (동서문화사, 2003)

* 《셜록 홈스의 모험》 (엘릭시르, 2016)

* 《셜록 홈즈의 모험》 (문예춘추사, 2012)

* 《셜록 홈즈의 모험》 (개정판, 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즈의 모험》 (구판, 더클래식, 2012)

* 《셜록 홈즈의 모험》 (개정판, 더클래식, 2014)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친구 존 왓슨(John Watson)은 의사 일로 충분히 먹고살 만한 중류층에 속한다. 그와 메리 모스턴(Mary Morstan)과 함께 사는 신혼집에도 하녀가 있었다. 홈즈가 처음 등장한 첫 번째 단편소설 『보헤미안의 스캔들(A Scandal in Bohemia)』에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왓슨은 홈즈와 함께 살던 베이커가 221B 하숙집을 떠나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한다. 그래도 홈즈의 근황이 궁금할 때마다 하숙집을 방문한다. 홈즈는 오랜만에 하숙집을 찾은 왓슨의 복장을 관찰하면서 추리한다.

 

 

 “얼마 전에 비를 많이 맞았고, 자네 집에는 몹시 솜씨 없고 조심성 없는 가정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네.”

 

“이것 봐. 자네한텐 못 당하겠어. 사실, 목요일에 시골길을 가다가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왔네. 그러나 옷도 갈아입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추리를 했지? 그리고 가정부 메리 제인에게는 두 손 들었다네. 아내도 고개를 저으면서 곧 내보내야겠다고 하더군.”

 

(《셜록 홈즈의 모험》, 시간과공간사-구판, 13쪽)

 

 

홈즈는 왓슨의 구두만 보고 메리 제인(Mary Jane)‘몹시 솜씨 없고 조심성 없는 하녀(a most clumsy and careless servant girl)’라는 점을 알아낸다. 메리 제인의 직업은 ‘servant girl’이다. 사실 ‘servant girl’은 ‘하녀’로 번역해야 한다. 가정부는 가사 경험이 풍부한 여성이다. 메리 제인이 몇 살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지위를 생각하면 확실히 젊은 나이는 아니다. 나이 많고, 가사 경험이 풍부한 하녀가 가정부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왓슨의 구두를 닦는 일은 하녀가 담당하는 잡일 중 하나다.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면 런던 베이커가 221B 하숙집 주인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다. ‘허드슨 부인(Mrs. Hudson)’은 괴팍한 성격의 손님인 홈즈를 너그러이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보헤미안의 스캔들』에서 홈즈는 하숙집 주인을 ‘허드슨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원문 :

 

“When Mrs. Turner has brought in the tray I will make it clear to you. Now,” he said as he turned hungrily on the simple fare that our landlady had provided.

 

 

* 시간과공간사 (구판, 33쪽) :

터너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면 이야기하지.” 그는 부인이 준비한 간단한 식사를 들면서 말을 이었다.

 

* 황금가지 (2판, 35쪽) :

허드슨 부인이 음식을 가져오면 그때 자세히 말해 주지. 저기 오는군.” 홈즈는 말하고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가져다준 간소한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현대문학 (주석판, 110쪽)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갖다 놓았으니, 슬슬 먹으면서 얘기할게.” 그는 우리의 하숙집 주인이 차려준 소박한 음식에 게걸스럽게 달려들었다.

 

* 동서문화사 (32~33쪽) :

터너 아주머니가 식탁을 준비하고 나면 이야기하지.” 그는 하숙집 여주인이 차려준 간단한 식사를 급히 먹으면서 말을 이었다.

 

* 엘릭시르 (35쪽)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니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홈스는 하숙집 주인이 가져다준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문예춘추사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가져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홈즈는 부인이 가져온 간단한 요리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며 말을 했다.

 

* 코너스톤 (개정판)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갖다 놓았으니 이제 더 자세히 말해줄게.” 허기가 많이 졌던지 주인아주머니가 간단히 차려준 한 끼에 맹렬히 달려들며 홈즈가 말을 이었다.

 

* 더클래식 (구판, 개정판) :

허드슨 부인이 음식을 가지고 오면 자세히 알려 줄게. 저기 왔군.” 홈즈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가지고 온 음식을 허겁지겁 입속에 밀어 넣었다.

 

 

 

허드슨 부인은 어디 가고, 어째서 이름이 낯선 ‘터너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는 걸까? 홈즈 연구가와 셜로키언 들은 ‘터너 부인’의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는다.

 

 

첫 번째 가설 :

홈즈가 맡은 사건을 글로 기록한 왓슨의 실수다.

 

 두 번째 가설 :

터너 부인이 부재중인 허드슨 부인을 대신해 잠시 일을 해준 것이다.

 

세 번째 가설 :

터너 부인은 하숙집에서 일하는 하녀다. 그녀의 고용주는 허드슨 부인이다.

 

 네 번째 가설 :

‘터너’는 허드슨 부인이 홈즈와 밀회를 즐길 때 사용한 가명이다. 

 

 다섯 번째 가설 :

아이린 애들러(Irene Adler)가 변장한 가짜 인물 혹은

홈즈의 강적 제임스 모리어티(James Moriarty)가 보낸 스파이다.

 

 

허드슨 부인이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 홈즈 시리즈의 두 번째 장편소설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이다. 이 소설 발표 이후에 나온 작품이 『보헤미안의 스캔들』이다. 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이 하숙집 주인의 이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두 번째 가설과 세 번째 가설을 지지한다. 터너 부인은 허드슨 부인이 고용한 하녀이고, 그녀가 잠시 허드슨 부인을 대신해 임시로 하숙집 주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허드슨 부인은 중류층 여성이다. 그녀의 경제적 수준이라면 충분히 하녀를 고용할 수 있다. 하녀의 일은 업무에 따라 세분되어 있다. ‘주방 하녀(Kitchen maid)’는 항상 주방에서 일해야 한다. 주방 하녀는 주방에서 식재료를 준비하고, 음식 만드는 일을 한다. 가끔은 완성된 음식을 고용주의 식탁 위에 차리는 일도 했을 것이다. 허드슨 부인이 홈즈와 왓슨을 위해 차린 음식들은 터너 부인이 직접 만든 것일 수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열망이 컸던 상 · 중류층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서 여가 생활을 즐기길 원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삶은 ‘일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허드슨 부인은 19세기 중기 중류층 여성들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외출하고, 쇼핑을 즐겼을 것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 허드슨 부인은 ‘백인 중산층 여성’이다. 같은 여성일지라도 사회 계급에 따라 맞닥뜨리는 상황이 달랐으며 그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은 심각했다. 19세기 후반에 상 · 중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적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빈곤층 여성들의 삶에 결코 와 닿지 않는 ‘그녀들만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고용주의 위치에 오르면 사용인을 당장 해고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왓슨과 메리 모스턴은 새로운 하녀를 고용하기 위해 하녀 메리 제인은 쫓아냈을 것이다. 실직자 메리 제인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 그녀가 하녀 일을 원한다면, 또 다른 고용주가 자신을 선택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녀 일을 구하지 못하면 공장에 들어가야 한다. 정말 궁핍한 생활을 해야 하는 그녀가 딱하다. 왓슨과 모스턴이 하녀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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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6-0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한 문장 속에서도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군요. 때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편이 사실을 밝히는 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7-06-01 18:57   좋아요 1 | URL
주석판을 읽으면서 홈즈 시리즈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 이런 책을 계속 보면 질리지 않습니다. ^^

2017-06-0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1 18:59   좋아요 0 | URL
책이 숲이고, 그 책 속에 있는 글자를 나무로 비유하면 저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잘 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치밀한 페이퍼군요..

cyrus 2017-06-01 18:59   좋아요 0 | URL
일주일동안 준비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