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만화 교양지 Sync 공식 페이스북에서 공유한 사진과 글이다.

잊힐 만하면 나오는 간윤의 ‘이현령 비현령’식 결정에 또 한 번 실소하게 된다.

간윤의 논리대로 남녀 간의 성행위 장면을 문제 삼아 음란성이 있다고 본다면 최근에 영화 흥행에 맞춰 복간한 <설국열차>도 청소년 유해매체 도서로 선정되어야 한다. <설국열차>에서도 성행위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청소년 유해매체'라니요.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에서 보내온 공문에 따르면 그러하답니다.

 

작품의 맥락을 보고 하는 얘긴지 의심스럽습니다. 노출 장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주인공 안토니오의 날것 그대로의 역사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고 독자가 안토니오를 더 깊이 이해하게끔 배치된 장면들이, 음란하다는 게 '간윤'의 결정입니다.

 

스페인에서 상 많이 받은 문학성 있는 작품이란 건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국의 눈밝은 독자분들이 저희의 증인입니다. 독자분들이 지금껏 약 30건 이상의 리뷰를 써주셨지만, 이 작품이 야하다거나 음란해서 걱정된다고 단 한 줄이라도 언급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없지 않나요?

 

* 저희는 '간윤'의 결정에 반대하며 재심의를 청구할 계획입니다. 보도자료도 준비하고 만화계 및 표현의 자유 관련 전문가의 자문과 지원도 얻을 겁니다.

 

* 그리고 '청소년유해매체'에는 19금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데, 저희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재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시품절 시킬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재심의 결과가 여전히 '청소년 유해매체'라면 절판까지도 감안하고 있습니다.

 

* 아직 효력 발생일(공식적으로 '청소년유해매체'로 유통되어야 하는 시점)을 명기한 관보 고시는 올라오지 않았는데요, 보통 고시일로부터 효력발생일 사이의 기간은 2주입니다. 따라서 8월 9일 경이 효력발생일이 될 예정입니다. 아마 일시품절은 그때부터가 될 것 같습니다.

 

* '좋아요'는 응원이고 '공유'는 연대입니다. 좋아요와 공유로 이 상황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은 다 아실 거예요. 지금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당한 일이 얼마나 부당한지.. 작가 알타리바 씨가 요양원으로부터 당한 그 무자비한 관료주의를, 한국에서 다시 당하게 되는 이 일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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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8-0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에 또 생각이 나는군요...때론 간윤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3-08-05 14:47   좋아요 0 | URL
쿠르베 논란.. 잊고 있었네요. 그 때도 어이가 없던지.. 그래도 간윤 덕분에 쿠르베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었죠 ㅎㅎㅎ

수이 2013-08-0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뭐가 유해하고 유익한지 아무것도 모르나봐- 간윤은 -_-

cyrus 2013-08-05 14:48   좋아요 0 | URL
전체는 안 보고 일부만 보려고하는거 같아요
 

 

 

 ♣ 자살 예고가 현실로

 

에펠탑,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세계를 대표하는 명소 세 곳의 공통점은? 명소를 보려고 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살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자살자의 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339번째 자살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사복을 입은 순찰대원이 증원되고 높은 난간이 설치됐다고 한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1937년 건설된 이래 자살자가 500명을 넘어서자 다리 주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이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양되지 못한 시신들을 감안하면 실제 자살자수는 2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자살자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한강에 뛰어내리는 자살자수가 많다.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심심찮게 투신 소식이나 자살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서울 마포대교에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재기 대표는 하루 전날 자신이 대표로 있는 남성연대 운영 자금을 모으겠다며 “한강 24개 다리 중 경찰, 소방관 분들에게 폐 끼치지 않을 다리를 선택해서 기습적으로 투신하겠다"고 예고했다. 성 대표가 투신 장소로 택한 다리는 마포대교. ‘자살 다리’라는 오명이 붙어 있는 곳이다. 그는 오후에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 부끄러운 짓입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반성하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다리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성 대표의 모습이 있는 사진이었다. 전날 트위터에 예고한대로 한강에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남성연대’가 뭐길래 성 대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남성 인권 향상을 위해 2008년에 발족되었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다. 병역의무, 부양의무, 생물학적 성 관점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대한민국 남성들이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연대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 회원들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 대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영하고 있는 단체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 한 몸을 바치는 자살을 예고한 것이다.

 

전날 성 대표의 자실예고가 SNS상에서 확산되자 누리꾼들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는 꼼수라며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성 대표는 남성연대의 열악한 재정 사정은 물론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기 위해 투신하는 것이라며 ‘자살 소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하는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 싶었던 성재기

 

성 대표가 정말로 자살할 생각으로 뛰어들었는지 아니면 자살 소동을 염두하고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으나 정말 의도치 않게 실현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후자일거라 생각한다. 성 대표의 한강 투신 이후 남성연대가 불고기 파티를 예정했던 걸로 봐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 마포대교 주위에 경찰과 소방당국이 헬기까지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성 대표가 남성연대 회생과 여성 인권에 억눌리고 있다는 남성 인권의 부활을 위해서 남성연대 대표, 아니 대한민국 남성의 대표로써 정말 한강에 뛰어내렸다면 그의 의도와 선택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의 최후는 흡사 일본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를 보는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1925~1970)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문학계에서도 독특한 작가다. 그는 애국심과 군국주의에 매혹돼 전후의 일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서구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일본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전통 무술인 가라테와 검도를 연마하고, 천황제를 수호하겠다며 사병대를 만들기도 했다. 1970년 11월, 도쿄 육상자위대 동부총감 사령관실 본부를 점거하고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로의 회귀를 외쳤다. 한물 간 군국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안 미시마는 사무라이 같은 죽음을 택했다. 할복자살이었다. 미시마의 할복사건은 전후 일본 사회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군국주의의 촉수를 건드려 구심점을 잃고 있던 보수우익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성 대표는 ‘남성 인권 부활’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의 주장은 반 페미니즘에 가깝다. 그를 옹호하는 남성들도 존재하지만 여성 인권에 대한 도발적인 발언이 문제를 일으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한강 투신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남성연대 사이트를 통한 후원모금이 최근 이틀 사이 크게 늘었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전 날까지만 해도 하루에 후원 한 건 있을까 말까한 남성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이 이틀 새 후원하겠다는 글로 새까맣게 뒤덮일 정도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자살(또는 퍼포먼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마지막 트윗이 의미심장하다.

 

‘믿고 싶다. 남성을 일으킬 수 있다니.. 허허’

 

그렇다면 성 대표가 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 행동을 사진으로 촬영하면서까지 트위터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에펠탑에서 투신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곳에서 일어난 자살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자살을 연극적 행위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관객 또는 뉴스의 시청자를 향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당신들에게도 있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미시마는 세계대전 패퇴 이후 무기력한 일본을 지탄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을 일본 사회로 돌린 것이다. 성 대표도 기 눌린 채 살아가면서도 저항하려는 마음 한 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성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무작정 비난하고 반대하는 여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연극적 심리가 있었지 않았을까?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치고 싶었으니 거대한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해 비장미가 느껴지는 최후를 선택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어제, 오늘 우리 모두는 제노비스였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성 대표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은 성 대표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방관했던 우리들이다. 오늘 성 대표의 자살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한 사람들은 자살방조죄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 대표가 투신할 당시 남성연대 관계자들과 KBS 카메라 기자, 시민 등 최소 4명. 자살 방조 논란이 이어지자 KBS는 구조신고를 두 번 했으며 현장 취재에 나선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추락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든 간에 (성 대표가 자살로 판명된다면) 자살 방조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살 방조 논란에 대한 비난 여론의 불을 지피기 전에 전날 성 대표의 자살 예고를 방지했던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도발적으로 남성 인권을 옹호하는 글을 남기는 트위터라인에 집중하고 지금도 그의 트위터를 검색하고 있는 우리들 말이다. 어제, 오늘 우리 모두는 제노비스가 되고 말았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미국 뉴욕 주택 골목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한 여성이 귀갓길에 괴한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여인은 괴한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에 살인극은 30분가량 이어졌고 비명에 놀란 이웃주민 38명이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창가에서 범행 현장을 지켜만 볼뿐, 아무도 위기에 처한 제노비스를 돕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괴한에 의해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 다른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할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범죄심리학에서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 한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행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데 흔히 '방관자 효과'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SNS 세계에서도 제노비스 신드롬의 영향력은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작은 무관심과 방관은 의도치 않게 한 남자의 자살 쇼를 기획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비극

 

 

 

 

 

 

 

 

 

 

 

 

 

 

 

 

나는 편협되고 잘못된 여성의 심리에서 기인한 불합리한 남성 인권의 실태에 분노한다. 다만 성 대표의 반페미니즘 사상과 상대방을 언어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공격적인 발언 태도는 옹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무모한 행동이 안타깝다. 자살 예고 트위터 전에 우울증 앓는 아내가 자살하겠다고 집을 나간 사건 때문에 새까맣게 속을 태운 그였다. 남성연대의 운명이 사랑하는 아내보다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미망인이 될 수 있는 성 대표의 아내가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이 심히 걱정된다.

 

자살의 역사에 관해 기술한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투신 자살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람보다 장소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사회적 불명예를 감내하기 어려웠던 것인지, 죽은 자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비극이라는 점만은 분명할 듯싶다.

 

싸움에 패한 사무라이는 할복자살을 가장 고귀한 의무로 생각했다. 사무라이처럼 자살은 아침햇살을 받고 벚꽃이 떨어지듯 화려한 미학이 아니다. 아무런 동요 없이 존재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움은 더욱 아니다.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요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든 자살은 윤리적 관습이 금기하는 행위이다. 사회는 인간에게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자살은 염세주의자에게 허용된 ‘최후의 만찬’이 될지 모르지만 최악의 자해행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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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7-2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기뻐해야할까요,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요....

cyrus 2013-07-27 23:51   좋아요 0 | URL
성재기를 싫어했던 페미니즘에게는 기쁨을, 그를 옹호했던 남자들은 슬퍼하겠죠? 본인이 의도한대로 그에 대한 남자들의 애도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과연 포스트 성재기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반짝 관심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 Scene #1 

어제 성적석차가 공개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타 대학 성적 공지가 늦어지는 바람에 성적석차가 7월 17일 이후로 공개되기로 했다.

오늘 석차 공개하는 날인지 정확하게 아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또 석차 공개 날을 알고 있는 학생들 중에서 공지가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수업학적팀은 사소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제대로 공지한 적이 없다. 심지어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날짜가 연기된 점도 역시 공지하지 않았다. '학사공지'라는 공지 관련 게시판이 떡 하니 있는데도 말이다.

수업학적팀은 미리 방학 전에 석차를 공개할 수 있는 충분한 예상 기간을 공지했어야 한다. 수많은 재학생들의 성적이 모두 확인하고 난 뒤에 석차를 계산하는 기간을 충분히 고려하면 정확한 일수는 아니더라도 예상 기간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이 오매불망 그 날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 Scene #2

지금까지 4년째 학교생활을 하면서 수업학적팀이 성적석차 공개하는 날을 공지한 적을 본 적이 없다. 공지를 하지 않으니까 일부 학생들은 '묻고 답하기' 게시판(일종의 Q&A)에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올린다. 학생이 석차 공개 날짜를 물어보면 수업학적팀 이름으로 답글이 올려진다. '묻고 답하기' 게시판답게 충실한 문답 역할을 잘 하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한 주에 이와 같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 두, 세 명 정도 있다. 수업학적팀이 일일이 똑같은 답변을 달아주는 건 시간 관리 측면에서는 불필요한 낭비다. 차라리 질문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답글을 다는 것보다는 미리 공지문 하나 올려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인 업무 진행이다.

방학 업무는 정규 학기 일정보다 한가하다. 방학 기간이 되면 학생들의 학교 게시판 접속 및 확인 빈도는 학기 일정 때보다 줄어드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가하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중요한 정보사항을 알리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학교 게시판을 수시로 접속 확인하는 일부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불만이 폭주하면 사과문과 함께 늦게서야 공지한다. 사과문으로 빙자한 늑장 공지가 따로 없다.

수업학적팀의 침묵 공지 또는 늑장 공지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정규 학기 때도 아무런 공지 없이 학사 일정이 진행되는 바람에 학생들 사이에 불만스러운 잡음이 많았다. 일정이 많고 업무상 가장 바쁜 정규 학기임을 고려한다면 행정상 실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로운 방학 기간에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건 실수가 아니라 실착(失錯)이다.


* Scene #3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건물 주인이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건물을 관리를 포기한 건물로 판단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리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그 건물에서는 절도나 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즉, 깨진 유리창과 같은 일의 작은 부분이 도시가 무법천지로 변할 수 있음을 뜻한다.

공지사항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학생들이 겪는 한 번의 불쾌한 경험, 한 명의 불친절한 행정직원, 학교의 사소한 실착은 결국 업무 진행에 방해되며 학교 이미지만 나빠진다. 졸업생은 모교를 불만족스러운 행정 업무 서비스로 운영되는 학교로 기억될 수도 있다.

지금 대학교는 미래의 교육 전략이나 원대한 비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대학 내부를 갉아먹고 있는 사소하고도 치명적인 것, 즉 깨친 유리창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제때 공지를 못해서 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이를 방치해둔다면 이게 진정한 '학생이 행복한 대학교'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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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오지 않은 새벽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 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박노해."

 

이와 같은 짤막한 서문이 수록된 시집 <노동의 새벽>이 1980년대 중반 무렵 발간되면서, 박노해라는 이름은 당대의 문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출현은 우리 문학사에 비로소 '노동자에 의한 노동 현실을 노래한 시'가 등장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고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민중들의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여전히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노동의 형상'이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노동자였던 박노해는 작품에서 몸소 체험했던 노동의 현실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인간은 매일매일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노동은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전태일이 살던 시절의 노동은 비인간적 삶 그 자체였다.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10년이 지난 1980년대 초반, 박노해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중략)

  

늘어 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이 시가 발표된 이후로 세월은 흘렀다. 시인이 노래한 노동현실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가 절규하던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밤 깊은 어둠은 여전하다.

 

객관적 지표만이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다시 박노해 시를 하나 더 인용하면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중략)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 나는 ET가 되어 /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 연장노동 도장을 찍”(‘손무덤’)어야 하는 게 바로 노동자의 삶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갖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경제적 생활 조건은 그 기본 중 기본이며,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것은 또 다른 기본이다.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수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 여전히 어둡기만한 노동의 미래

 

 

 

 

 

 

 

 

 

 

 

 

 

 

 

 

전태일이 분신한지 40년이 지난 현재 노동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만큼 노동 문제에도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해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실업 문제는 그 중핵을 이룬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비정규직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대체로 30%인데 반해 우리나라처럼 50%를 넘어서는 국가는 매우 드물다.

 

문제는 이렇게 대규모임에도 임금 수준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과연 전태일 시대로부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발전해 온 것일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야말로 바로 선진화의 현주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점증하는 세계화 시대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미래는 우울하기 이를 데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국가적 이슈라는 점에서 노사관계를 넘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그 어떤 주체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슈화하지 않고 있다. 세계화가 강제하는 불가피한 결과로만 인식하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해법을 마련하기 어렵다.

 

 

 

 

 

 

 

 

 

 

 

 

 

 



청년실업은 노동이 처한 또 하나의 우울한 미래다. 그동안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는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썩 신통치 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생각한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임시직 고용으로는 젊은 세대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5210원

 

중소기업 근로자, 아르바이트생 시급(時給)의 기준이 되는 최저임금이 내년 시간당 5210원으로 결정됐다. 1988년 최저임금이 처음 도입되고 27년 만에 처음으로 5000원을 넘어섰다. 올해보다 350원, 비율로 따지면 7.2% 인상됐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주 40시간, 월 209시간 기준 108만8890원이다. 올해 101만5740원보다 7만3150원 올랐다. 혜택은 주로 저임금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최저임금을 심의ㆍ의결한 최저임금위원회는 전체 근로자 1773만4000명 중 14.5%에 달하는 256만5000명이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저임금이 결정되기까지 노사 간 협상은 쉽지 않았다. 당초 재계는 동결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이보다 훨씬 높은 5910원을 주장했다. 노사는 각각 50원을 올리고, 120원을 낮춘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법정 논의 시한인 지난달 27일까지도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결국 공익위원의 중재안 표결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5년째 반복되는 모습이다.

어렵게 인상됐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영세 사업자의 부담을 늘려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고 결국 일자리 총량이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 개선을 위해 인상된 최저임금이 되려 이들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어려운 경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만큼 최저임금 문제는 노사 양쪽에 미치는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임금의 최저 수준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소득의 양극화를 줄인다는 취지에서 결정한 것이다. 최저임금은 저임금근로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3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중국도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15년까지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40%로 높이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3.3%로 1년 새 4.3% 포인트가 떨어졌다. 지난 대선에서도 최저임금은 화두였다. 국민 대부분이 2017~2018년 기준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50% 수준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정계, 기업 그리고 국민들은 좀 더 관심과 성의를 보일 때다.
 

‘노동의 새벽’을 지나 ‘인간의 새벽’이 오는 그 날은 언제 찾아올까? 희망 없는 노동자들의 불안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자살로 이어지곤 한다. 지금처럼 ‘새벽’이 절실한 적은 없었다. 힘들어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 깊은 밤 어둠 속에서도 노동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새벽’ 같은 희망이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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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7-0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참 웃긴 것 같아요.
1년에 한번씩 경영자와 노동자 대표가 만나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 말이예요.
늘 칼자루는 경영자에게 쥐어져 있고,
언제나 현실은 돈과 힘을 가진 자의 뜻대로 굴러가게 마련이죠.

그래도 5,000원대가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만족해야 할까요?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비정규직도 문제이고, 최저 임금도 문제이인데,
그 틀에만 묶여 있는 것도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과 적은 임금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별개로
그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도 필요하고,
아예 자본이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는 상상력과 실천도 필요하죠.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방식의 저항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3-07-09 16:18   좋아요 0 | URL
은빛님 댓글을 읽으면서 제가 노동 문제와 현실에 대해서 많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소식이 나오면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빛님 말씀처럼 진부한 관점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 때문에 여전히 만족할만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알라딘 중고매장 대구점 내부소개

 

 

 ♣ 왜 이제야 왔니?

 

 

 

 

 

서울 매장에 많이 가본 탓일까?

처음으로 대구점 입구에 들어서는데도 낯설지가 않다.

오랫동안 멀리서 지내고 있던 친구가 처음으로 우리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달에는 중간고사 시험공부에 매진하느라 블로그에 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달 받은 알라딘 신간평가 도서 두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서평도 정해진 기간 안에 쓰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험 끝나고 부랴부랴 번갯불 콩 구워 먹듯이 읽고 서평을 작성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라딘 서재를 기웃거리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로 놀라운 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드디어 대구에도 알라딘 중고매장이 생긴 것이다!

 

 

4월 1일, 거짓말 같이 대구에 알라딘 중고매장이 처음 문 열게 되었다. 4월 초부터 중간고사 시험 공부하기 시작했고 블로그 방문이 뜸하기 시작할 때였다. 하필 그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알라딘 중고매장이 열린 것이다. 시험 끝나고 난 뒤에 접한 소식이라 믿기지 않으면서 얼마나 반갑던지...

 

대구점이 개장하지 않았던 몇 달 전에 알라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부천, 전주에서도 매장이 열리는 소식을 접할 때 한 번 이런 농담 반 진심 반 댓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아... 언제 대구에도 알라딘 중고매장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ㅠ_ㅠ”

 

 

올해 서울에 갈 일이 잦았는데 꼭 알라딘 중고매장을 방문하고 책을 구입했다. 강남점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위치한 전 지역 매장은 두 번 이상은 다 가봤다. 한 번 매장이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세 시간 정도는 잡는 편이다. 왜냐하면 책 한 권 구입하는데 꽤 꼼꼼하게 고르기 때문이다. 알라딘 중고서점 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수중에 있는 돈으로 구입한 뒤에 후회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게 고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을 구입할 때 책을 구입하는 나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여윳돈이 다 쓸 때까지 책을 구입한다. 여분의 돈이 남으면 그 가격에 맞는

시집 한 권 구입할 것.

2. 도서관에 읽었던 책들 중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구입한다.

3. 시중에는 구할 수 없는 절판, 품절된 책을 구입한다.

 

 

이러한 기준을 삼아 책을 고르고 구입하고 나면 보통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책을 구입하고 매장을 나오면 알라딘 비닐에 담은 책 한 보따리 정도 손에 들려 있다. 매장 한 번 가면 5권 이상 구입한다. 적게 구입한 때가 5권이고 가장 많이 구입한 권수는 7권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가는 길은 좀 피곤하다. 한 손에 책 보따리를 들고 있어야하니까. 그래도 매장을 떠난 뒤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돈이 조금 만 더 있었으면 그 책을 살 수 있었을텐데...’, ‘아.. 그 책 절판본일텐데.. 다른 사람이 구입하면 어쩌나..’ 마음 같으면 10권 정도 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대구에도 알라딘 매장이 생겼으니까. 그것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학교 가기 전이나 학교 갔다 오고 집에 가는 길에 종종 들리게 될 것이다. 이러다가 매장에 몇 시간 동안 책 읽고 고르는 ‘매장 죽돌이’가 되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앞날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서와.. 알라딘 대구점은 처음이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 한가?)

 

- <논어> ‘학이편’ 중에서 -

 

 

 

 

대구점 매장이 처음인데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낯선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서울 매장을 많이 가본 탓일까? 멀리서 살고 있던 친구가 나를 만나러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친구야, 왜 이제야 왔니?’

 

 

분야별로 배치된 책장을 둘러보면서 책 한 권을 신중히 고르는 손님, 고른 책을 책상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손님,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손님들의 귀에 속삭이는 음악. 지역만 다를 뿐 매장 풍경은 서울이나 대구나 비슷했다.

 

 

 

 

 

 

 

 

 

대구점이 다른 지역 매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외부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와 지하철에서 들어오는 입구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건물에 입구가 두 개 있는 셈이다. 그래서 건물 전체 분위기가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 개의 입구가 있는 서울 매장들이 폐쇄적인 건물 구조 때문에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대구 매장은 두 개의 입구가 있어서 개방적인 건물 구조로 만들어졌다. 지하철로 향하는 입구 쪽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있어서 독서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하철 입구 쪽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매장 건물에까지 들리기 때문이다. 스피커에 울려 나오는 음악 소리로도 지하철의 소음을 덮지 못한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고를까?"

가장 집중력이 가장 최고조로 높아지는 순간이

아마 바로 알라딘 매장에 책을 고르는 시간이지 싶다. 

이런 집중력으로 열심히 공부했다면

시험 치고 난 뒤에 후회감에 땅을 치지 않았을텐데... 

 

 

 

나는 책을 고르기 위해서 읽을 때 꼭 책장 주변에 서서 읽는 편이다. 앉아서 읽기 보다는 서서 읽으면서 책 고르는 걸 선호한다. 오히려 독서에 더 집중이 잘 된다. 그래서 세 시간동안 매장에 있어서 다리가 아픈 걸 느끼지 못한다. 구입할 책이 다 고르고 나서야 다리가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역시 집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매장에 있어서 그런지 책을 고르는 데 여유가 생겼다. 아마도 네 시간 정도 책을 골랐을 것이다. 의외로 대구 매장에도 절판본 몇 권이 발견된다. 그것도 서울 매장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책들이 눈에 띄었다.

 

 

 

 ♣ 절판본 득템하기

 

 

 

 

 

 

보통 5권 이상 책을 구입하면 매장 직원은 알라딘 비닐 두 장 정도 혹은 대형 비닐에 담는다. 마침 공돈이 있어서 12권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총 구입 가격은 5만 원 밖에 안 들었다. 책 5권 구입 가격으로 산 것이다. 그런데 대구 매장에 이 정도 책을 구입하는 손님이 내가 처음인가 보다. 대형 철제 바구니에 담은 책을 한 권씩 계산하는 여성 매장 직원(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어린 대학생일 것이다)이 놀라움이 섞인 미소로 웃었다. 하긴 젊은 대학생이 책 10권 한꺼번에 구입하는 경우는 흔지 않지...

 

 

 

 

 

 

 

 

 

 

 

 

 

 

 

이번에도 절판본 위주로 책을 샀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목록에 포함된 책 세 권을 구입했는데 모두 다 현재 절판, 품절 상태다.

 

 

 

 

 

 

 

 

 

 

 

 

 

 

 

 

 

 

 

 

 

 

 

체코의 작가라면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카렐 차페크 정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체코 출신 작가 중에 이반 클리마(1931~   )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1995년에 솔출판사에서 <하룻밤의 연인, 하룻낮의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장편소설이 번역된 적이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을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으며 이 때의 불안과 죽음의 체험은 그의 작품의 핵심적 분위기로서 반영된다. (중략) 70년 이후부터 89년까지 '체제 비판적 경향'을 이유로 창작 발표를 금지당했다."

 

 

 

책 뒷표지 소개에 의하면 '카프카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반 클리마의 소설을 접할 수 있는 책은 단 세 권 뿐인데 솔출판사에서 번역한 장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두 권은 체코 출신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이므로 클리마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1617년에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필하고 난 뒤에 사망한다. 그 작품은 <사랑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2000년 바다출판사에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품절이며 다행히 E-Book 버전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종이책도 다시 출간해주면 좋겠다)

 

 

 

 

존 클레랜드의 <내 사랑 패니 힐>은 <소돔 120일> 프랑스의 사드 후작, <채털리 부인의 사랑> 영국의 D.H. 로렌스 그리고 <북회귀선> 미국의 헨리 밀러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던 에로티즘 문학 작품이다. 존 클레랜드는 18세기 영국에 살았던 문필가다. 번역본에 작가의 생애가 상세하게 소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작가가 빚을 갚지 못해 투옥되었는데 감옥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변태적인 성추문 사건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된 사드는 그 곳에서 <소돔 120일>을 완성했다. 사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클레렌드의 <내 사랑 패니 힐>도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인해 금서로 지정되었고 초판이 나온 지 무려 250년에

세상을 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에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알라딘에 '피에르 드리외라로셸'이라고 검색하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도깨비불>이 나온다. 그러면 이번에 검색창에 '삐에르 드리외 라 로셸'이라고 검색해보시라. 그러면 표지가 없는 두 권의 절판본이 나올 것이다. 그 책이 인화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로 된 장편소설 <몽롱한 중산층>이다. 초판은 1995년에 출간되었다. <도깨비불>은 1931년에 처음 출간했고 <몽롱한 중산층>은 1937년에 완성되었다. 이 소설은 프랑스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묘사하고 있다.

 

읽을 책이 너무 많다보니 정작 구입한 책을 펼치지 못한 채 책장에 모셔 두고 있다. 이제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느끼기에 왠만하면 구입한 책은 바로바로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심심하면 중고매장에 들려서 6권 이상 구입한다면 서점에 꽂히는 책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방문 횟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만 들려야겠다. 한 달에 두 번 방문하는 것도 많은 것일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마음 내키는대로 매장에 찾고 돈 있으면 읽고 싶고 마음에 드는 책이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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