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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 여행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가자, 지구의 중심으로!”

(『지구 속 여행』 중에서, 157쪽)

 

 

 

 

호기심이 많은 열한 살의 소년 쥘은 동갑내기 사촌누이를 무척 좋아했다. 고운 빛깔이 나는 산호 목걸이를 누이에게 선물로 준다면 누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산호 목걸이는 무척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었다. 쥘은 산호 목걸이를 얻을 수 있는 인도에 가기로 했다. 마침 마을 주변에 있는 항구에 가면 인도로 가는 원양선을 볼 수 있었다. 쥘은 그 배를 타서 인도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동양의 세계로 향하는 쥘의 모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쥘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이때부터 쥘은 아버지에게 “앞으로는 상상 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약속한다. 어른이 된 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게 되고, 평범한 법률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쥘은 어린 시절에 활짝 펴지 못한 모험의 동경을 잊지 않았다. 무한한 상상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마음껏 탐험했다. 상상의 여행 속에서 그려지는 신비로운 장면 그리고 여행의 생생한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쥘은 펜을 잡았다. 그가 처음으로 여행을 한 곳은 아프리카.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고 있던 열기구를 탔다.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Voyages extraordinaires) 시리즈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만약에 쥘 베른이 인도로 떠날 수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항해사(Navigator)가 되었을 것이다. 베른은 상상의 여행을 하는 항해사가 되었고, 그가 쓴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꿈속에서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되었다. 베른이 없었다면, 모험심이 가득한 소년 쥘과 같은 어린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꿈속에서 여행하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실감 나게 소개하고 있다.

 

『지구 속 여행』(Voyage au centre de la Terre)은 ‘경이의 여행’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TV 드라마, 영화를 통해 약 10회 정도 영상으로 재탄생되었다. 2008년에 개봉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원작도 『지구 속 여행』이다. 아이슬란드의 사화산 분화구를 통해 지구 중심을 여행하며 지질시대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다.

 

 

 

 

 

 

원작과 영화는 지구 속으로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줄거리는 같지만, 내용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지질학자인 주인공 트레버와 그의 조카 션이 모험의 주인공이다. 오래전에 실종된 트레버의 형이 남긴 상자 속에 <지구 속 여행>이라는 고서를 발견하게 된다. 트레버는 조카인 션과 함께 암호를 해독하는데 그것은 지구 속 세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암호에 적힌 대로 트레버와 션은 사화산 분화구가 있는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트레버와 션은 지구 속 여행에 합류하게 되는 산악가이드 한나를 만나게 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원작에서도 지질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광물학 교수 오토 리덴브로크와 그의 조카 악셀이 등장한다. 리덴브로크 교수는 희귀본 수집광이다. 아이슬란드의 고대 학자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쓴 책을 읽다가 암호가 적힌 양피지를 발견한다. 양피지를 쓴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이자 학자인 아르네 사크누셈.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는 자신이 지구 속으로 여행한 사실을 기묘한 암호 형태로 남긴 것이다. 리덴브로크 일행과 함께 지구 속 여행을 함께하는 안내인은 한스 비엘케라는 남성이다. 과묵한 성격이지만, 무모하고도 위험한 여행에 끝까지 동행한다.

 

 

 

 

 

 

 

리덴브로크는 지구 속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무척 궁금해 한다. 그 곳을 진짜로 발견하면 과학의 역사에 새롭게 한 획을 긋는 동시에 기존의 학설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지구 속을 여행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지구 속으로 들어갈수록 마그마로 인해 지열의 온도가 높아진다. 지열은 인간과 기계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렇지만, 베른은 지구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상상력을 펼친다. 베른이 활동했던 당시 유럽은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이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지구 속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며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남극과 북극에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가설이 되었지만, ‘지구공동설’도 한 때 주류 과학의 화제였다. ‘핼리 혜성’의 등장을 예측했던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헬리가 지구 속 구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고, 수학자 오일러는 지구 중심에 1000km 직경의 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구공동설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새롭게 변형되어 대중 앞에 나타난다. 20세기 들어 지구공동설 학자 레이먼드 버나드 박사는 1969년에 쓴 『The Hollow Earth』를 통해 UFO가 지구 안에서 나오며, 고리 성운이 지구 속이 비어있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을 사칭한 트위터  UFO에 대한 극비 문서를 폭로하며 지구공동설을 주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만약에 베른의 소설 속 내용처럼 지구 속에 또 다른 지구가 있다면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리덴브로크 일행은 지중해와 비슷한 넓은 바다와 구름이 떠 있는 대기 그리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고대 동식물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지구 속의 또 다른 지구’는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사람도, 동물도 살 수 없는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에 불과하다. 또, 리덴브로크 일행은 절대로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걸을 수 없다. 뉴턴의 구각정리에 의하면 지구 속 공간에 작용되는 중력의 합이 0이기 때문에 그 곳에 들어간 인간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중력이 없는 세계는 곧 인간과 동식물마저 살 수 없는 죽음의 세계다. 

 

그렇다고 베른이 과학적 이론에 문외한 통속소설 작가 수준은 아니다. 지금도 베른의 작품이 널리 읽혀지고, 영화나 드라마도 재탄생되는 이유는 근대 과학적 지식에 모험과 판타지를 결합한 소설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베른의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독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흥미로운 관심사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첨가하는 스토리텔링이 만난 환상적인 작품이다. 독자는 베른이 창조한 세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짜 같은 허구’의 세계에 매료된다. 소설 속 세상을 마치 실존의 세상으로 믿는 ‘베르니안’(그의 넘치는 상상력에 심취되어 소설 속 세상을 마치 실존의 세상으로 믿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라 불리는 독자들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지구 속 여행』에 당대의 과학자 이름이 실명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지리적 환경과 화산 분화구 주변의 풍경을 장황하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기상천외한 지구 속 모험이 얼른 시작되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이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베른의 뛰어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을 읽었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전 4권 / 열린책들, 2013~2014년)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3인류』를 먼저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이 베른의 『지구 속 여행』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SF 소설과 과학소설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지금도 새롭게 변용되는 쥘 베른의 영향력은 경이적이다.

 

 


P.S. 다음 ‘경이의 여행’ 목적지는 달이다. 거대한 포탄을 타고 달에 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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