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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이 대학에 들어가 집을 떠났던 그해, 다른 일도 일어났다.

부부 관계가 상당히 격조해지긴 했지만, 하먼은 이 점을 받아들이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꽤 오래전부터 그는 보니가 제게 '맞춰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밤, 침대에서 그가 다가가자, 보니는 하먼을 뿌리쳤다. 한참 후, 보니가 가만히 말했다. "여보, 나는 이제 그 짓은 끝난 거 같아요."

그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보니의 이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깨닫자 끔찍하면서도 공허한 마음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상실을 즉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나?" 하먼은 물었다. 보니의 그 말은 벽돌 스무 장을 그의 가슴에 쿵 얹어놓은 듯한 고통을 주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그냥 끝났어. 아닌 척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우리 둘 다한테 못 할 짓이지."

그는 자기가 뚱뚱해져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보니는 그가 그다지 뚱뚱해진 건 아니라고,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자기가 끝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르잖아, 그가 말했다. 당신을 기쁘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은 한 번도 이런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얼굴을 붉혔다.)

보니는 말했다. 내 말 모르겠어요? 당신이 아니라 내 문제라고요. 내가 그냥 끝났다고요. (굶주림, p.148-149)



















하먼과 보니에겐 이미 성인이 된 자식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고, 자식을 키우는 낙으로 그동안 살았지만, 따로 떨여저 살고 있는 자식들은 아버지인 하먼이 기대하는만큼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자식들과 함께 살고, 늘 어떤 자식이든 데리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있던 하먼은, 이제 둘만 살고 있는 지금이 좀 쓸쓸하다. 게다가 이제 아내는, 자신에게 섹스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하먼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하먼은 사랑이 필요하다. 하먼은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더이상 자신에게 다정하지도 않고, 취미생활과 친구를 만들어 나름 잘 지내는 것 같다. 하먼의 마음은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렇게, 마을의 다른 여자와 섹스파트너가 된다. 일요일 오전이면 도넛을 사러 갔다가 그 여자네 집에 들러 만나고, 그리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삶. 그래도 이건 안되겠다 싶어 섹스 파트너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는데, 그의 섹스파트너 데이지는 '그냥 이야기만 하러' 자신에게 늘 오던것처럼 오라고 한다. 하먼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또 자신에게 이야기도 잘하는 데이지에게 변함없이 들르고, 그 이야기하는 시간을 즐겨한다. 그러는 사이, 그들에게는 서로의 이야기가 쌓이면서, 동시에 작고도 큰 사건들도 쌓인다. 그리고 같이 겪은 어떤 일은, 그들을 더 단단하게 결속시키고, 하먼은 이제, 데이지에게 사랑을 느낀다. 밤이 내린 마을에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하먼은 이제 일요일 아침 데이지와의 만남을, '친구'로 지냈던 이전 몇 달 동안처럼 은밀한 갈급함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고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순식간에 밤이 내린 마을에 전구가 켜지는 것만 같았다. (굶주림, p.164)









사랑이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나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낳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고, 그렇게 자식의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봐왔는데, 이제는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부부란, 어떤 기분인걸까. 그렇게 매순간을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제 끝난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이제 끝난 것 같아'라는 말을 하는 아내의 마음은 어떤 걸까. 그렇게 말하는 거, 자신에게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여전히 원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나는 끝났지만, 나는 이제 끝나버려서 더이상 속일 수도 없지만, 남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남편에게 섹스 파트너가 생기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까? 당신은 그걸 원하지만 나는 그걸 더이상 줄 수 없으니, 그걸 줄 수 있는 다른 상대를 만나는 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그래야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쉽게 용납할 순 없는 일 아닐까?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라면?

나는 여전히 나랑 함께사는 이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다. 밤이면 그의 옆에 눕고 싶고, 그렇게 가끔은 그랑 벗은 몸을 포개는 일을, 어제 그랬고 3년 전에 그랬고,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 하고 싶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나는 이제 끝난 것 같아' 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직 안끝났는데?

나는 아직 한창인데?

나는 아직 하고 싶은데?

어제처럼, 10년전처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당신을 안고 싶은데? 

그런데...당신은 끝났다고?


남편이 내가 싫어져서가 아니라는 걸, 그저 자신의 노화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서 이제 성욕과 섹스가 빠져나갔음을 밝힐 뿐이라는 걸 알지만, 그러니 나는 '아, 그래 그렇구나, 알겠어' 입으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이 섹스에 대한 욕망은? 나는 어떡해? 그러면 나는, 여전히 이 남자에게 마음이 있는채로, 섹스를 할 다른 상대를 만들어 파트너쉽을 유지해야 하나?

내 남편은, 혹은 동거인은, 자신이 이제 끝나버렸으니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별 수 없지, 나는 안되는데 너는 하고 싶잖아,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이 혹은 동거인이 더이상 섹스는 무리라고 했을 때, 오케이, 너가 무리이니 이제 나도 하지 않도록 할게, 내 인생에 더이상 섹스는 없어, 섹스 바이바이... 할 수 있을까?

섹스 같은 거, 안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긴데, 그런데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해?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런데 섹스는 잠깐 나가서 다른 데서 하고 올게, 어차피 너는 안되니까... 라면서?

내 안에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으므로, 나는 행복한가? 행복해지나?

그렇지만... 죽을때까지,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제 더이상, 내가 하고 싶은데도 하지 못하고 산다면....그것도 너무 슬프지 않아? '나는 이제 끝났어' 라고 말하는 상대와 함께 산다면, 내가 다른 데서 파트너를 찾아도 되는 거 아닌가? 나도 살아야하잖아.....




그렇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이 책속에서처럼, 내가, 내가 끝났다면.

내 상대는 여전히 나를 원하는데, 내가 이제 끝나버렸다면, 더이상 할 수가 없다면, 아무 느낌도 없고 아무 욕망도 생기지가 않는다면, 속이는 게 의미 없어, '이제 나는 끝났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태라면, 그때의 나는, 당연하다는 듯, 아직 욕망이 남아있는 나의 상대에게, 다른 섹스파트너를 허락할 수 있을까?



난 끝났는데, 너는 안끝났잖아. 그러니까 나가서 너와의 섹스를 기꺼이 원하는 다른 사람과 하고 와. 앞으로 섹스는 그 사람하고 하도록 해.


라고 할 수 있을까?

오!



싫은데?




책 속에서의 하먼은 섹스로 데이지와 사랑이 싹튼 건 아니었지만, 같이 겪게 되는 사건으로 인해 어쨌든 데이지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일을 함께 겪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함께 하는 이상 감정이 생겨나기는 너무 쉽다. 함께하는 게 있다면, 거기에서 둘만의 어떤 것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것이 생겨나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도 또 순간인지라, 내가 '머리로는' 허락해서 상대에게 '나는 끝났으니까 다른 사람하고 섹스하고 와' 라고 받아들였다가, 그걸 계기로, 섹스를 나누는 파트너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올리브에게도 일흔 넘어 사랑이 찾아온 것처럼, 내 애인이라고 해서 일흔 넘어 사랑이 찾아오지 말란 법이 없잖아.  나랑 여태껏 다정하게 지내놓고, 다른 사람하고 섹스하고 나더니, 나 그사람하고 남은 생을 살고 싶어, 이래버리면, 



나는?




아........험한 말 쓰고 싶지만, 참겠어....금요일 저녁이니까....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머리로는 다 알고 또 그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다 괜찮은 게 아니다. 따지고 들면 콕 집어서 잘못한 게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럴 수 있지' 하는 일이라도, 내가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서 펑펑 울 정도로 슬픈 일이 될 수도 있다. 며칠 전에 여자1이 내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며 분하고 억울해서 울었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걔한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잖아요, 뭐라 그래요' 하더라. 여자를 울게한 사람은 여자에게 딱히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 그건 여자도 알고 있었다. 여자에게 따지고들면 여자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억울하고 분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면서, 그러면서 눈물이 나는 거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어 빌려줬다. 눈물 닦아, 라고 말하면서. 여자는 처음엔 거부하더니 손수건을 받아들고 눈물을 닦으면서, '손수건에 향수 뿌렸네요' 하더라. 아니야, 땀나서 닦았는데, 귀 뒤에서 향수가 묻었나봐, 라고 말했다, 라고 끝맺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구먼.....



그러니까, 나는 끝나버렸으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상대에게 섹스 파트너를 허락하는 건, 당연한 건가? 그래야 하나? 그렇지만, 그러면 내가 서운하지 않나? 그런데 내가 서운하다고 상대에게 그걸 하지 못하게 해야하는건가? 이걸..어떻게 조율해야 하지?? 이 모든 걸 다 노화 탓으로 돌리면서 그냥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견디고, 남은 생을 견뎌야 하는건가? 그러니까 섹스가 아니라 그게 뭐든 그렇다. 함께 하던 게 있었는데 어느 한쪽은 이제 끝나버렸고, 한쪽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면, 그걸 대체 어째야 하나..... 그게 뭐가 됐든, 함께 해서 즐거운 거였다면, 끝날 때도 같이 맞춰 끝나면 좋을텐데....아, 이거 너무 슬프네.




다시 읽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는, 몇 년전에 읽었을 때보다, 가끔 훑어봤을 때보다 훨씬, 훠어얼씬 좋다. 맨 앞의 단편인 <약국>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당장 페이퍼를 쓰고 싶었는데, 그 다음 단편 <밀물>이 너무 쎄서, 완전 강력해서, 책장을 덮고서는 정말이지 '와, 대단하다' 이렇게 여운을 가져가느라고, <약국>에 대해 페이퍼 쓰는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여러분, <밀물> 읽자. 꼭 읽자. 이거 진짜 대단한 단편이다. 이건 전체적으로 긴장되고 묵직한 단편인데, 마지막까지 읽으면 진짜 막 묵직한 감동이랑 여운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서, 뭔가 되게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어가지고, 어제 이 단편을 읽고서는 그런 결심을 했다. 만약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이 어떠한 일로 인해 좌절과 절망을 겪어 한층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면, 그때 내가 조용조용히 이 단편을 읽어줘야지, 하고. 아, 근데 그런 단편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도 있긴한데... 럼주 나오는 단편....흐음......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읽어주자. 어쨌든. 진짜 대단한 작가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직 내게는 이 책의 절반 이상이 남아있다. 매 단편마다 페이퍼를 쓰고 싶은데,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고, <약국>에 대한건 진짜 할말이 많은데, 어쩌면 조만간 또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애인의 '타인에 대한 자상함'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그여자에게 일어난 어려운 일에 니가 그렇게 발벗고 나서는거야?' 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한계선은 어디일까? 여기에 대해 막 생각해보게 됐는데, 음, 역시 약국에 대한 페이퍼 써야겠어... 근데 오늘은 여태 길게 썼으니까 그만써야지.. 약국, 너 딱 기다려. 내가 쓴다.





아무튼지간에, 그 뒤의 단편 하나 더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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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2017-06-02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의 마음은 변해요. 왜 그러느냐고 묻지는 마세요. 이것은 물이 높은대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 입니다.
변한 당신을 받아들여야 해요.

다락방 2017-06-05 10:25   좋아요 0 | URL
아, 이 비슷한 말이 어딘가에서 나왔는데...그게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원더북 2017-06-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국 딱 기다리겠습니다.^^

다락방 2017-06-05 10:25   좋아요 0 | URL
아아, 제가 써야할텐데, 계속 머릿속에서 약국 써야지~ 이러고만 있네요.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불끈!

망고 2017-06-0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하는 책인데 다락방님 글 읽으니 다시 읽고 싶어져요 벌써 두번 읽었었거든요^^ 약국은 벙어리장갑 끼워주던 장면이 오래기억에 남아요.ㅎㅎ그냥 좀 아련한 느낌으로..육체적인 바람은 아니지만 마음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그런 바람의 이미지요*^^*참 이 소설로 만든 미드도 있는데 보셨나요? 소설보다 훨씬 못미치지만 화면으로 배경 마을을 보는것도 괜찮더라구요 상상하던 이미지라서~

다락방 2017-06-05 10:27   좋아요 0 | URL
아, 망고님! 벙어리 장갑 끼워주던 그 장면, 좋죠? 은근하게 에로틱하고요. 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좋아한다는 것도 생각나고요. 미드가 있다는 건 아는데 보지는 못했어요. 화면으로 배경 마을 보는 건, 기대되네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요, 다시 읽는데 처음보다 더 좋아요! 처음하고는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돼요. 아픈 장면이 다르고 좋은 장면이 또 달라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책이 변색되고 있어서 슬퍼요. ㅠㅠ
 
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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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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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6-0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이 그리 평하시니... 전 바로 보관함에 푱... 이제 책사기 몇달간 금지라고 결심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ㅠㅠ

다락방 2017-06-02 08:25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을 때는 만족감 높고 작가의 ‘팬서비스‘ 같은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이번에 읽으니 진짜 완벽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ㅎㅎㅎ
 

직장생활을 하면서 견딜 수 있는 모멸감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나는 어제 저녁에, 아마도 여기까지가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이 들기 전까지 했다. 어제는, 정말이지, 너무 치욕스러웠다. 제대로 고용주한테 갑질을 당했고, 이걸 내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당장 드럽다고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또 너무 부끄러웠다. 저녁 밥도 건너뛰는, 아주 늦은 퇴근을 하고, 이 상황에 같이 맞닥뜨린 다른 직원들과 소주를 한 잔 하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혼자 울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답이 나오질 않아서. 그냥 나가버리는 게 누가 봐도 속시원한 답인데, 그건 그냥 일시적인 답일 뿐이었다. 내가 지금 당장 나가면 저 꼴을 다시 안봐도 되지만, 이 자리의 누군가와 다른 직원들은 계속 볼 것이고, 또 내가 다른 직장을 들어간다면, 아마도 다른 형태의 갑질에 노출되겠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산다는 게 뭐지?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나는 계속 이런 감정을 수시로 느껴야 하나? 이렇게 바닥에 쳐박힌 것 같은 느낌을 견뎌야 하고, 너덜너덜해진 자존감을 부둥켜 안으며 살아야 하나?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 밖에 없는건가? 

어제 택시 안에서 줄줄 눈물 흘리면서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갑자기 '아나스타샤'와 '그레이'가 생각났다. 아, 그레이... 그레이를 만나고 싶다.



일전에 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두 번째 편을 보고서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fallen77/9135173


요약하자면, 그레이는 아나스타샤가 일하지 않아도 될만큼 아주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서 아나스타샤한테 사고 싶은 거 사라고 막 돈도 주고, 아나스타샤가 다니는 회사도 살 수 있고 그런 사람인데, 이런 사람하고 결혼했다가 경력단절 온다, 나중에 헤어져도 나는 먹고 살아야 되니까 내 능력이 있어야 된다, 뭐 이런 얘기였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레이를 선택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써놨더랬다. 

어제 택시안에서 이 글 생각이 났던 거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을 뒤집었다.

나한테 그냥 꼼짝없이 집에만 있으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어떤 조건이 됐든 다 들어줄테니,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계약하자고 했던 그런 계약서에도 싸인할테니, 주인으로 받들어 모실테니, 경력단절 걱정 안할테니, 말대꾸 하지 말라면 안할테니, 나를 소유물로 간주한다면 그것도 내버려 둘터이니, 그레이랑 결혼하고 싶어졌다. 그레이랑 결혼해서 그레이가 주는 큰 돈 받아 쓰면서 살고 싶어졌다. 생각 같은 거 안하면서, 고민 같은 거 안하면서, 그러면서 그냥 주는 돈이나 쓰면서 살고 싶어진 거다. 그리고 조금 더 큰 바람이 생겼는데, 그레이랑 결혼해서 그레이한테 우리 회사를 사라고 하는 거다. 내가 다녔던 회사 사버려, 그리고 오너를 내쫓아버려!! 그러면 나를 니 맘대로 해도 내버려둘게. 니가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까, 나를 밥벌이의 전쟁터로 보내지 말아줘.... 



이런 마음이 된거다.



어제의 나를 아는 엄마는 오늘 내게 잘 잤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코피를 멈추느라 코에 휴지를 돌돌 말아 꽂고 있었다. 엄마는 너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어떡하냐 물으셨고, 나는 엄마한테, '엄마 나는 나 돈만 안벌게 한다면 그게 누가 됐든 결혼하고 싶어졌어, 아무 생각 없이 살테니까, 아무 말없이 살테니까, 돈 많은 놈한테 시집가고 싶어' 라고 했다. 엄마는 '그래, 잘생각했다' 하시면서, '너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중에 그런 남자 없어? 연락해봐' 하시는 거다.



"엄마, 없어...다 꼴도 보기 싫어..."




이러고 나는 또다시 회사로 출근한 것이다.............................인생............................내게는 그레이가 없어........................그레이 같은 놈 만나본 적도 없어..........................내가 아나스타샤가 아니기 때문인거야? 세상의 모든 그레이들은 어디에서 아나스타샤를 찾는거지?






어제 점심엔 혼자서 좀 먼 데 있는 식당으로 눈누난나 걸어갔다. 이어폰에서는 심규선의 새로운 앨범이 재생되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차돌박이를 먹으러 갔다. 차돌박이를 앞에 두고 먹으면서 심규선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아아, 이건 뭐지, 갑자기 구슬픈 가사가 귀에 쏙- 박히는 거다.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행복…. 하소




뭐라고??? 어떻게 그래???? 어떻게 가라고 하고, 발병도 나지 말고, 행복하라고 할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 뭐야? 이건 바보야 미치게 착한 거야? 이것이 소위 말하는 그 진정한 사랑...뭐 그런 거야? 그러면 나는 진정한 사랑 안할래. 이게 뭐야 등신같이... 어떻게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하라고 해!! 난 못해!!! 네가 불행하길 바라진 않지만, 나랑 지낼 때보다는 덜행복해야해!!



막 이런 마음이 되어가지고 울먹울먹 차돌된장찌개를 떠서 밥 그릇에 넣고는 슥슥 비벼서 밥을 먹는데, 어라? 얘 좀 보소? 글쎄, 이러는 거다. 그러니까, 저렇게 말하면서, 안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짜 마음'은, 이렇다는 거다.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 멀리 저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끝내 떨치고 가신 임아
돌아보소…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속으로는 저러고 있었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심규선, 당신은 또 한 곡 해냈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또 내 가슴을 찢어놓는구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심규선 콘서트 예매해놨는데, 아아, 정말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 가기 전에 신곡 들어보고 가야지, 했던 거였는데, 아아, 이런 보석 같은 노래가 있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규선은 진짜 ㅠㅠ 가끔 완전 내 안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을 정도의 노래를 만들어내는데, 그래서 여전히 내 아이폰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곤 하는데, 콘서트도 내가 다 갔는데, 아아, 이번에 또 한 번 해냈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 노래를 심규선이 부르는 걸 듣노라니, 콘서트에서 꼭 보고 싶어졌고, 아아, 어쩐지 이 노래 부르다 심규선 울지 않을까 싶은 거다. 심규선이 이 노래 부르다 울면...나도 울어야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같이 울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규선 진짜 내 영혼의 썅둥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출처] 심규선(Lucia) - 아라리(2017)|작성자 열혈공부part2

막 이런 마음이 되어가지고 울먹울먹 차돌된장찌개를

막 이런 마음이 되어가지고 울먹울먹 차돌된장찌개를



그래서 이 노래 들으며 멍하니 창밖을 보고, 아아, 가지 마소... 막 이러다가 정신 차려보니, 내 앞에는 차돌된장찌개가 놓여있었고, 아아, 이미 슬픈 감성에 쩔어버린 나는 밥맛이 훅- 떨어져버린 거다.



어라? 어쩌냐..밥맛이 훅 떨어져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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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돌된장찌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흐음, 밥맛이 떨어졌어, 어떡하지....하다가, 다시 슥슥- 밥을 비볐고, 그렇게 남김 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 노래를 들으면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도 찬, 서리 같은 마음 어찌 품었나

너는 하오에 부는 바람만큼 온화했는데

우는 날 떼놓고 걸음 어찌 걸었나

하염없이 비 내릴 때 너도 억수처럼 울었나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행복. 하소

 

연무처럼 흩어지는 맘 어찌 붙잡나

너는 그믐에 피는 손톱달처럼 저무는데

기어이 돌아서는 널 어찌 탓할까

너는 아무도 몰래 받을 벌을 다 받았는데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언약과 증표 가련한 맹세여 다시없을

사람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 멀리 저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끝내 떨치고 가신 임아

돌아보소

 

간 밤에 꾼 꿈결인 듯 전부 다 잊고 행복 하소

나를 두고 가신 임아 누구보다 더 행복 하소

행복. 하소.






어젯밤에 집에 돌아가서 남동생과 맥주를 한 잔 하고, 내 방에 돌아와서는 내 소중한 책장 앞으로 가서 《올리브 키터리지》를 꺼내두었다. 내일 출근길에 읽어야지, 하고 가방 옆에 두었고, 오늘 가지고 나왔는데, 오늘 출근길에서는 한 장도 읽지 않았다. 오늘부터 읽어야지. '우리 심장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마' 라고 했던, 그 대사가 나오는, 그런 책이다. 



















"말해요." 몹시 침착했다. 그녀는 한숨마저 내쉬었다. "제발, 얘기해줘요." 제인이 말했다.

어두운 차 안에서 가빠진 그의 숨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녀의 숨결도 거칠어졌다. 제인은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일을 겪기엔 우리 심장이 너무 늙었다고. 이런 일을 계속 우리 심장한테 시키면 안 돼. 당신 심장이 이런 일을 견뎌낼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 (p.246)




6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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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6-0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란게.. 신기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모멸감이든 안도감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온다죠.. 하아 고생하셨어요. 비록 그레이는 없어도.. 그 그레이가 돈을 주면 결국 그가 갑질 상사가 되어버릴테니.. 그냥 잊어요ㅠㅠ 망각은 신의 선물 같으네요ㅜㅜ

저도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어요ㅠㅠ 다만 다락방님이 힘을 내면 좋겠어요~

다락방 2017-06-01 15:1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레이랑 결혼하면 또 그레이한테 속박당하겠죠. 내가 네 덕에 밥벌이에서 벗어났다...라면서 그레이에게 구속감을 느끼겠죠. 아아, 인생에는 진짜 정답이 없는가봐요, 꼬마요정님.

고마워요. 힘내라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기운낼게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거니까요.... 아하하하하.

2017-06-01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이슨 2017-06-0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소한의 돈으로 최소한의 삶을 살면 됩니다
저처럼요
 

















열네 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수업이었다. 콜먼은 처음 몇 강 동안은 학생들 이름을 익히고자 강의 시작 전에 출석을 불렀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된 지 오 주가 다 되도록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이 없는 학생이 두 명 있었다. 육 주째에 콜먼은 이런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 두 학생에 대해 아는 사람 없나요? 이 학생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나요, 아니면 유령spooks 인가요?" (p.19)



콜먼은 대학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있고, 그의 강의는 인기가 많았으며 대학내에서 단단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학장을 지내기도 했고 학교 분위기를 싹 바꿔놓기도 했던 것. 그런데 인종차별 혐의로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중 '유령 spooks ' 가 유령과 '흑인'을 가리키는 단어였고, 공교롭게도 오 주가 다 되도록 출석을 부를 때 대답하지 않았던 학생이 흑인이었던 것. 보이지 않는 존재, 출석하지 않았던 학생에 대해 유령이냐, 물은 것이, 흑인이었던 당사자들에게는, '흑인이냐'로 들렸던 것이고, 이에 해당학생은 교수를 학교에 고발해버리는 것이다. 



콜먼은, 문맥상으로 봐서 어떻게 내가 흑인을 혐오하는 뜻으로 저 단어를 썼겠냐며 열심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변호한다. 그러나 한 번 인종차별로 낙인찍힌 이상 그의 편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만약 우리가 사전에서 'spooks'라는 단어를 찾아본다면 첫번째 의미로 뭐가 나올까요? 일차적 의미는 이것입니다. '1.<구어>유령이나 귀신.'" "하지만 실크 학장님, 그 말은 그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두번째로 나와 있는 의미를 읽어드리지요. '2. <경멸조> 검둥이.' 그 단어는 이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학장님도 논리적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아시잖아요.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그 학생들은 여러분이 모르는 흑인인가요" "만약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할 작정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그 학생들이 흑인이라서 여러분은 그들을 모르는 건가요?'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아무도 그 학생들을 모르는 것은 혹시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인가요?'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그 학생들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흑인인가요?' 만약 내가 그런 의미로 말하려는 거였다면 바로 이런 식으로 말했을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출석부에서 이름을 본 것 말고는 그 학생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들에 대해 아는 바도 전혀 없는데, 그 학생들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p.139)



나는 콜먼(실크 학장)이 자신을 변호한 대로, 유령을 빗대어 저 단어를 쓴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초반부터, 그의 입장은 상당히 억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콜먼이 운이 나빴네, 라고 생각했던 거다. 물론, 나는 콜먼이 운이 나빴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흑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태였던 게 아닐까. 늘상 흑인이어서 차별을 받고 혐오와 비하 발언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매번,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저 학생은 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었고, 그러므로 저 단어에 대해서는 그 강의를 들었던 다른 학생들로부터 전달받았던 바, 그 학생은 당연히 저 단어에서 유령을 유추하기 보다는 '검둥이'라는 단어를 캐치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늘상 들었던 말이었으니까. 물론 그 수업에 들어가서 저 문맥을 그대로 다 들었다고 해도 나는 그 학생이 '으응, 이건 내가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령을 뜻하는 하고 많은 단어중에 왜 하필이면 흑인을 비하하는 뜻을 함께 가진, 그 단어를 썼을까, 당연히 확, 그 단어가 기분 나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콜먼이 굳이 '인종차별 해야지' 라고 다짐하며 저 단어를 쓴 것은 아니었어도, 이미 인종차별과 흑인 혐오가 퍼져 있는 상황에서, 그의 상황이 면죄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비하와 혐오를 함께 가진 단어에 대해 입밖에 내려면,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콜먼의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적극적으로 콜먼을 변호할 수 있었을까? 아니, 난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은 거다. 콜먼에게 '이 인종차별주의자야!' 라고 손가락질하며 등을 돌리진 않았겠지만, '너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썼겠구나' 생각은 했겠지만, 좀 실망을 하긴 했을 것 같다. 말은 한 번 입밖으로 낸 이상 돌이킬 수 없고, 게다가 이미 아주 오래 혐오와 비하에 노출됐던 사람이라면, 숱한 단어들을 그냥 무심히 넘기는 것이 혐오에 힘을 실어주는 것쯤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 학생은 저 문맥을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왜그렇게 예민해?' 혹은 '피해의식이다' 라고 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만, 그 학생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리액션이 아니었을까.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하고.




아직 1권도 다 읽지 못해서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1권의 절반을 넘긴 즈음, 콜먼 역시 '옅은 색의 흑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콜먼의 아버지는 항상 백인 사회에서 흑인을 혐오하는 것에 대해 콜먼에게 말해주곤 했는데, 혐오와 비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백인이 너희를 대할 때는 항상." 아버지는 가족을 모아놓고 늘 말했다. "그 백인이 아무리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가정을 깔고 있기 마련이다. 말이나 표정, 말투, 조바심 같은 것으로, 심지어 정반대의 관대함으로, 자비심을 한껏 드러냄으로써 직접 표현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아무튼 백인은 늘 너희가 멍청이라고 생각하며 너희에게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러다 너희가 멍청이가 아닌 것 같으면 놀랄 거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빠?" 콜먼은 묻곤 했다. 혐오감도 혐오감이지만 그보다는 자긍심 때문에 아버지는 좀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p.167)




상대방이 나보다 멍청할거라고, 나보다 아는 게 적을 거라고, 당연히 너는 그걸 모를 거라고, 니가 그걸 알 리가 없다고, 내가 너보다는 모든 걸 많이 알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격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능의 문제인 것 같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전제하지 않는 건, 멍청이다. 지능이 딸리는 거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알 수 있다, 라는 것쯤을 미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배려심이 없는 게 아니라 진짜 무식하고 무지한 거다. 뇌에 그런 게 들어가있지 않은 것이므로, 무식의 또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네가 그걸 알 줄 몰랐지', '네가 그걸 잘할 줄 몰랐지' 라니, 뭘 그렇게 다 몰라. 그렇다면 너는 모자란 인간인거야.





이 책에서 콜먼은 아내가 죽은 후에 34살 차이나는 여자와 섹스파트너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학장으로 있었던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여자인데, 여자는 30대이며 남자는 70대인 것. 남자는 이 여자와 섹스파트너를 유지하며 삶을 지속시키고 싶기 때문에, 비아그라를 복용한다. 비아그라는, 뭐지? 아니, 성욕..뭐지? 그보다는 섹스가 뭐냐 물어야 하는걸까. 일흔이 넘어도 변함없이 섹스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혹은 40년이 지나도, 섹스하고 싶다고 매일 욕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면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뭐가 나쁠까. 그런데, 섹스 뭐길래, 약까지 먹어가면서 해야되나...막 이런 생각도 들고.... 비아그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만 하는걸로... 이건 좀 생각이 복잡하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골절로 인한 수술 때문인데, 때문에 울엄마는 옆에서 내내 병간호 중이시다. 수술은 잘되었고, 나는 어젯밤 아홉시 넘어 할머니가 입원하신 병실을 찾았는데,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병실 호수는 알았지만 할머니 침대가 어디인지를 모르겠는거라.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있고 조용해서, 아아, 여기서 내가 울할머니랑 울엄마를 어떻게 찾나 싶은 거다. 만약 내가 "엄마!" 하고 부른다면, 6인실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 중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내밀 것 같은 거다. 흐음. 그러다 퍼뜩 생각난 게 이름이었다. 다른 사람은 안내다보고 우리 엄마만 내다볼 수 있는 호칭! 이름!! 그래서 나는 나지막하게 엄마의 이름 석 자를 불렀다.



"권**!"




그러자 이내 '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우리 엄마 목소리였다. 어라? 근데 첫번째 침대인지 두번째 침대인지 살짝 헷갈리는데? 그래서 다시 한 번 불렀다.



"권**!"



그러자 첫번째 침대에서 엄마가 네~ 이러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야, 너 오지말라니까 왜왔어, 누가 내 이름 부르나 했네,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나는 너무 천재적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똑똑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름 부를 생각을 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영특하다 영특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똑똑함에 내가 반했다! 아아, 나는 나한테 이렇게 수시로 반해... ♡♥♡♥






양재역에는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우동집이 있다. 매번 저거 한 번 먹어봐야지, 했다가, 드디어 오늘! 주문을 하고 내 번호가 뜨기를 기다렸다. 공부할 때는 1등 한 번도 못해봤지만, 우동을 주문하는 데는 1번이었다.





히힛. 우동이 나왔다. 김밥도 시키고 싶었는데 김밥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더라. 흐음. 나는 먹고 얼른 출근해야 하는데? 그래서 우동만 하나 간단하게 시켰다.




아아 좋아. 내가 딱히 우동을 좋아하진 않는데, 양재역 모닝우동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 나는 후루룩 후루룩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국물도 떠 먹으면서. 마침 아주 배가 고팠다고. 이거 먹을라고 집에서는 아침을 안먹었다. 도넛츠만 조금 먹었어.. ( ")



그리고, 클리어!!! 클리어했다!1



난 저렇게 핑크빛 들어간 예쁜 어묵 싫어한다. 아니, 어묵 자체를 별로 안좋아해. 그래서 어묵은 빼고 다 먹었다. 헤헷. 히죽히죽. 절로 웃음이 나와... 역시 사람은 배가 불러야 되는구나. 배가 부르다며, 둥그렇게 나온 배를 쓰다듬으면서, 출근을 위한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후 버스가 왔는데, 환승이 되더라. 아아, 지하철역에 내려 환승 가능한 시간안에 우동을 먹고 그렇게 환승을 해서 버스를 타다니.... 좋구먼...... 행복하다 ♡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지내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는 문득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건..집에 있나?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가 나오던, 맨 앞의 단편, <약국> (맞나?)을 읽고 싶다. '너의 손을 놓지 않을게' 라고 말했던 그 뒤의 단편도, '우리 심장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마' 라고 말했던 또 그 뒤의 단편도...아아, 나는 새로운 책이 쌓여있는데, 왜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 또 읽고싶은 거지?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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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5-3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저 핑크 우동 좋아해요. 모닝우동 좋네요. 난 모닝볶음밥 먹었어요! ^^ 휴먼스테인 저런 내용이었어요?!!!! 근데 필립 로스 불편하고 무서워요.

다락방 2017-05-31 10:45   좋아요 0 | URL
저는 어묵도 별로 안좋아하고 우동도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우동 클리어 ㅋㅋㅋㅋ
휴먼스테인은 사실 노인과 젊은 여자의 육체적 사랑..에 대한건가 싶어 읽었는데(응?), 다른 내용들이 굵직하게 나오네요. 꼼꼼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유부만두 2017-05-3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닝 운동 대신 모닝 우동....의도적이죠? 메뉴선택?

다락방 2017-05-31 10:45   좋아요 0 | URL
모닝 운동은...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네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05-3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모닝 독서 모닝 운동으로 읽은걸까요...
모닝마다 지덕체를 고루 단련하는 깨치신 분이시다ㅡ하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우동사진이 등장해서 제목 다시 한번 확인하고 왔어요ㅎ

다락방 2017-05-31 10:46   좋아요 0 | URL
아마도 모닝 우동 보다는 모닝 운동이 더 익숙한 표현이어서가 아닐까요. 살면서 모닝 우동이란 말, 몇 번이나 들어보셨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처음....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닝마다 지덕체..라뇨. 무슨 말씀을. 지덕체..같은 걸 제가 가지고 있을리 없잖아요. ㅋㅋㅋㅋㅋ

별족 2017-05-3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혐오표현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모른다,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 걸 아는데도, 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맥락들조차 혐오스러운 것들 말이죠. 게다가 가끔은 그저 우리말이 혐오표현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벙어리는 혐오표현이라 언어장애인,이라고 해야 한다더라구요.

다락방 2017-05-31 10:48   좋아요 0 | URL
저는 ‘병신‘이요. 병신이란 걸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욕이라고 생각해서 내뱉었었는데, 그게 장애인 혐오라고 해서 스스로 부끄럽고 당황하고 그랬었어요. 제가 또 알게모르게 그런 걸 얼마나 쓰고있는걸까 싶고요. 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거기에 얼마나 많은 혐오가 있을까 생각하면 아득해져요. 네, 맞아요, 모른다는 게 면죄부가 되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혐오인가를 알고 배워야 한다는 것은, 뭔가 절망스럽기도 하죠. 그 좌절이 이해됩니다.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는데도 아득히 멀게 느껴져요.

단발머리 2017-05-3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정하는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을 읽고 계시군요!
완전 반갑고 완전 멋짐요~~
32-3쪽의 콜먼의 등판에 대한 묘사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오늘은 제목이 짱이예요!
모닝 독서 모닝 우동이라니~~
모닝 독서 모닝 커피에 버금가는
이 화사하고 충만한 느낌적 느낌이라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5-31 12:11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던 내용이 아니라서 당황했지만, 이 내용은 또 이 내용대로 아주 깊고 진해서 꼼꼼하게 읽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이에, 오늘 밤이나 내일엔 올리브 키터리지가 새치기를 할 것 같아요. 친구랑 같이 읽기로 해서요. 후훗. 저는 이렇게 필립 로스가 이 책에서 그러듯이, 이런 소설 너무 좋아요. 뭐라고 해야하나. 가볍지 않은? 묵직한? 깊은? 이런 거요. 너무 좋아요!! 책이 이렇게나 좋습니다, 단발머리님!!


모닝 우동 너무 좋죠! 제가 모닝 우동 하면서도 좋았고 쓰면서도 좋았어요. 역시 음식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배부르게 먹는 것은 저를 행복하게 해요. 맛있는 것,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지내자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어요. 뭐, 그동안 못한 것도 아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 충만한 느낌이 좋은데, 벌써 배가 고픕니다. 이제 점심 먹으러 가야겠어요. 차돌된장찌개 먹으러 갈거에요. 이히힛

2017-05-31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7-05-3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저도 내일 모닝 우동을 먹을까..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페이퍼네요 ~ ㅎㅎㅎ
아 배고파요... 지금 이걸 보고 있자니... 머리 속에서 우동이 자꾸 떠올라서.

다락방 2017-06-01 08:59   좋아요 0 | URL
지금은 벌써 다음날이 되었고 게다가 오전 아홉시가 되려는데, 어떻게, 비연님, 그 사이에 우동은 드셨습니까? 저는 아침에 카레에 비벼서 밥 먹고 왔어요. 점심은 뭘 먹어야 할지..
책상위엔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가 있습니다. 샷도 추가했어요! >.<

붕붕툐툐 2017-05-3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겟아웃‘이 생각나네요. 일상적으로 만연한 인종차별이라니.... 자신에게 반하시는 락방님 모습 넘나 귀엽고 사랑스러우세요~ 저도 반함~♡♥♡♥

다락방 2017-06-01 08:57   좋아요 0 | URL
전 아직 겟아웃 못봤거든요. 저도 꼭 보고 싶어요.

아하하하. 반하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븅븅토토님. 히히히히히. 씐나요~ 얼쑤~

레와 2017-06-0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스테인]의 이야기는 결국 어디로 향할까, 다락방?! ㅎㅎ
진도가 팍팍 안 나가서 답답합니다.

얼른 읽고 영화 보고 싶은데.. 나는 영화가 더 보고 싶은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다락방 2017-06-01 16:21   좋아요 0 | URL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데, 이게 또 나름 괜찮아요.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라서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데, 또 이렇게 막 명확하지 않은? 이런 내용이 마음에 들고요. 저도 또 올리브 키터리지가 새치기를 해서 진도가 언제 나갈지 알 수가 없숑. 그렇지만 어쨌든 끝까지 읽어보려고요. 어떤식으로 이야기가 끝날지 궁금해요!

clavis 2017-06-0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덕분에 삽니다♥진짜로요..나한테 잘 해줘야겠다,싶어요..또 많이 먹었다고 동그랗게 나온 배를 쓰다듬어 주기는 커녕 미워했는데..잘 해줘야죠^^!!!락방님..페미니즘이 따로있나요~인간해방=여성해방♥♥또또 배우고 갑니다♡생에 대한 사랑과 지혜가 가득하신 우리의 락방님♥그대의 모닝 우동을 축복합니당♡♡♡

다락방 2017-06-02 08:58   좋아요 1 | URL
아 클래비스님... 세상 소중한 존재네요 ♡
안그래도 칭찬 너무 듣고 싶었는데, 칭찬에 목말랐는데, 클래비스님이 막 나 쓰담쓰담 해주고 좋아해줬어. 아아, 감사합니다. 게다가 축복해주시다니, 아아, 클래비스님은 사랑의 화신인 것입니다. 사랑덩어리!! ♡
 
너에게 간다
















나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결말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토록 긴 여운을 줄 수 있는 거라고. 다른 결말이었다면 그 소설을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순 없었을 거다. 그래서 오래전, 그 소설의 후속편이 나왔을 때, 읽지 말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읽었지만.


그런데 며칠전 다시 읽은 새벽 세시의 결말은,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나는 이미 후속편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그 뒤의 이야기를 읽어야만했다. 그렇게 어제 배송되어진 《일곱 번째 파도》를 읽는데, 아아, 나는, 답 없는 레오에게 집착하는 에미가 되어서... 몇 장 읽지도 않은 채로 눈물이 났다. 이미 보스턴으로 가버린 레오에게 메일을 보내보지만, 시스템 관리자로부터만 답장을 받는 거다. 얘랑은 연락 안돼..하면서. 새벽 세시의 나는 '레오'라는 남자를 사랑하는 '에미' 였는데, 일곱 번째 파도의 나는, 이미 어떤 선을 넘어가 버린 것 같다. 에미가 나의 현실이 되었고 내가 에미가 되었고, 그렇게 날 두고 떠난 레오에게 계속 말을 거는, 그런 에미가 되어서... 초반부터 눈물이 ㅠㅠ 



(자, 이제 스포일러 팡팡 터집니다!!!!!)



그런 에미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레오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보스턴에 가있는 9개월동안, 레오는, 현실을 살았다면서, 그래서, 현실의 여자친구를 만들었단다. 파멜라...



파멜라...



아, 이름부터 너무 육감적이야.... 싫어........아무 잘못도 없는 파멜라가 싫어. 파멜라를 싫어할만한 이유는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파멜라가 나에게 잘못한 거 진짜 1도 없어. 파멜라는 심지어 나의 존재 조차도 몰라. 그런데 나는 파멜라가 끔찍하게 싫다. 파멜라라니... 파멜라는 나의 존재도 모르고, 그러므로 나에게 해를 끼친 게 1도 없고, 잘못한 게 1도 없는데, 나는 파멜라가 너무 싫어.... 신경질나! 울고 싶어! 눈물나! 



왜?




나는 에미니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에미니까!! 나는 레오의 옆집 여자가 아니라, 에미니까! 레오의 동창1이 아니라, 에미니까!!!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쉐키가....파멜라를 사랑한대!!! 파멜라랑 사귄대!!!!!! 그러니까 내가 눈물이 나, 안나!!!!! 훌쩍 ㅠㅠ




일곱 번째 파도에서의 에미는 굉장히 레오에게 집착한다. 도대체 왜이러나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집착했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그렇게 집착할 수 있었던 건, 그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레오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에미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니가 원하는 게 뭔데? 니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거야?' 하고. 에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기 위해 액션을 취한다. 대답없는 메일을 계속해서 보내고, 답을 보내라고 재촉한다. 끊임없이 기다리고,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바를 레오에게 알린다. 그런 한편,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걸 싫어하고, 자신이 무얼 싫어하고 무엇을 끔찍하게 생각하는지를 당당하게 밝힌다. 새벽 세시에서 자신의 남편인 베른하르트가 레오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알게 된 에미는, 당연히 분노한다. 내가 분노한 그 이유로, 에미도 분노한다. 나는, 내가 결혼했어도, 내 남편의 소유가 아니며, 너희들은 나를 '소유할 수 없고!', 자신이 아무리 레오를 사랑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비록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기 위해 애를 쓴다. 




레오, 당신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당신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배신당한 느낌, 물건이 되어 팔려버린 느낌이에요. 내 남편과 애인이 나 몰래 협정을 맺다니! 둘 중 한 사람이 나를 생상하게 느끼고 싶다면 다른 한 사람이 특별히 눈감아준다고요? 그러고 나서 한 사람이 영원히 사라져주면 다른 한 사람이 나를 영원히 갖는다고요?

어디서 주운 물건인 양 한 사람은 나를 원래 소유주인 내 남편에게 돌려주고, 다른 한 사람은 일종의 보상금으로 환상 속 인물과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만남', 성적 모험을 허락하는군요. 정확한 분배, 완벽한 이별, 비열한 계획이에요. (p.150-151)




나는 에미의 이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내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분노는 마땅한 것이며, 표현되어져야 했다. 또한, 자신이 한 짓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레오와 베른하르트를 그려준 것에도 매우 고맙다. 자신들이 한 짓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스스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작가인 다니엘 글라타우어에게 매우 고맙다. 베른하르트는 자신이 '사랑해서' 한 짓이라고,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에서 저지른 짓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봤자, 자신이 한 짓이 옳지 못한 행동이란 걸 알고 있다. 




일전에, 《비를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읽으면서도 썼었지만, '내가 혼자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은 한계가 있다. 고작해야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만 답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고민을 풀어나가고자 하면, 그 답은 내가 생각해내지 못한 부분에서 나올 수도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아주 좋은 답.

레오는 에미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에미의 곁을 떠나는 거였다. 에미를 두고 떠나는 거. 그리고 이제, 시간이 아주 흐른 후에, 자신이 다른 여자를 사귀고, 그 사귀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므로 노력하고 있는' 이 때에, 자신이 뭘 잘못한건지를 알게 된다. 내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한 부분이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자기가 아는 장면.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적절한 때에 언제나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니까. 우리는 모두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


레오, 당신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야.




나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 자신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어요. 유감이고 불행이에요. 기회를 놓쳤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p.242)




자, 이 미안함은 어디에 가 닿을까? 레오는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려고 해봤지만, 자신이 내내 에미랑 살고 있었음을, 내면에 에미를 간직하고 있었음을, 힘겹게 인정하고 만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고? 자신이 파멜라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다. 레오의 이런 실수는, 이미 나 역시 현실에서 해본 바가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누군가의 옆에 있었던 일. 그렇지만 결국은, 그래서는 안됐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 




파멜라가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보냈어요. 그사이에 내가 공간을 떠나 누구 곁에 있었을까요? 에미 당신 곁에 있었어요. 내가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에서는 누구랑 살았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살았어요. 언제나, 오로지 당신과 함께 였어요.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환상에 등장하는 하나의 얼굴 또한 당신 얼굴이었어요. (p.334-335)




레오는 에미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 에미를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이었으며 응당 그랬어야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면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고, 그 내면은 자꾸만 수시로 레오와 파멜라 사이로 끼어들며 튀어나오려고 한다. 매일 파멜라와 섹스할 순 있었지만, 파멜라가 닿을 수 없었던 어떤 지점이 레오에게 있었다. 레오는 에미에게 가기 위해서는 베른하르트가 있다고 자꾸만 생각을 했고 의식을 했으므로, 자신이 느끼는 진짜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에미는, '베른하르트의 에미'가 아니다. 에미는, 에미다. 에미는, 에미 자신이다. 에미는,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있고, 자신을 치료하려 하고 있고, 자신의 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려 하고 있고, 정확히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있는건지를 자꾸 보려고 한다. 그래서 에미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 대로를 실행할 수가 있다. 에미는, 기다린다. 에미는 기다리지 않는다. 에미는 끊임없이 다가서고, 집착하고,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리 당신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얘기할 테니 두고 보라고 해도 이제 나는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알고부터 나는 줄곧 기다렸어요. 최근 이 년 반 동안 기다린 게 그 전 삼십삼 년 동안 기다린 것의 세 배는 될 거예요.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데 질렸어요. 정말로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요. (p.327)




레오는 이제 '베른하르트 없이' 에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Aw:

에미, 나는 기꺼이 당신과 함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30초 뒤

Re:

무엇을요?



40초 뒤

Aw:

앞날을. (p.374-375)





아아, 그래서 어찌되었냐고? 이들이 어찌 되었냐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된거냐고?

그건 책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아주 좋은 독서였다. 처음엔 울면서 시작했지만, 그리고 분노도 화르르 타올랐지만, 그러나 좋은 독서였다. 몇 년전에 그저 에미로 읽었을 때보다, 지금은 '에미인 나'가 읽어서 더 좋은 독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아주 아주 좋은 독서였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은 독서였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 아침엔 공대생 출신의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공대생 판타지가 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러니까 일전에 공대생 前애인을 사귀면서, 수학 노트 같은 거 사진 찍어주면 좋아했던 일 같은 거. 그와 나는 얼마나 달랐는지(나는 개구리가 되어 볼 수 있었다니까?), 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가 고통을 수치화 시킨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니까 아프다고 하면,

-설마 1부터 10까지?

-응.



그렇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했더니, 다정한 나의 공대생 前애인은, 고통을 1부터 10까지라고 했을 때, 어느 지점인 거냐 물은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거기다 대고 또 얌전하게, '어제는 7쯤이었는데 오늘은 4쯤이야' 라고 대답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하다가 또 빵터졌네. 그래서 오늘 대화한 사람이 '그게 좋냐' 물었는데, 나는 '어 난 너무 좋았어'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랬더니 그건 페티시 같다고 했다. 아아, 어쩌면 그런건지도... 나의 페티시...뭐지....역시 나는 변태인건가.....그렇지만, 누구나 가슴속에 변태기질 조금쯤은 가지고 있는거잖아요?



아무튼지간에, 나는 지금 세상에서 일곱 번째 파도가 제일로 좋다. 



음..아무 맥락 없는 글을 써버리고 말았군.

뭐, 내가 언제는 맥락 있는 글을 썼나...





아침에 출근하는데 8살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꺅 소리지르며) 타미야!!!!!

-이모 어디야?

-이모 회사 가는 길이야. 타미는 학교가?

-아니, 지금 일어났는데?

-아 그래?

-응, 이모 끊어.

-타미야! 전화 왜 했어?

-이모 보고싶어서.



꺅 >.<



아, 너무 소중하다. 보고싶을 때 보고싶다고 전화하고, 보고싶다고 말하는 존재. 진짜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 소중해 ♡ 일어나자마자 이모한테 전화하는 조카라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소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대치, 의도, 목적. 정사는 즐기려고만 하죠. 함께 지내기는 언젠가 정말 아름답게 같이 살기 위해 함께 머물고자 하는 거예요. (에미,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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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ould I be worried, or can I be hopeful?
    from 마지막 키스 2017-12-18 16:30 
    번역본은 집에 있고 지금 내게는 원서뿐인데, 내가 가진 원서는 링크한 것들과는 표지가 다르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던 5월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가끔, 불쑥불쑥, '에미는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에미는, 레오로부터 응답이 없는데, 시스템관리자만이 계속해서 답장을 보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끈질기게 메일을 보낸다. 답 없는 레오에게.Three weeks laterHalf a year laterThree days
  2.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from 마지막 키스 2018-01-10 11:11 
    어제 퇴근길과 오늘 출근길에 읽는 고미숙 쌤의 책이 좋아서 그 책에 대한 글을 쓰려고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뭐가 어떻게 어디서 꼬인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왜때문인지, 《일곱번째 파도》에 대해 내가 쓴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미숙 쌤 책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리뷰로 쓸까-아직 다 안읽었으니 보류-, 페이퍼로 쓸까) 이런고 고민하다가, 아, 요즘 너무 힘들어 밤에 잠을 못이루는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하고는, 장바구니에 머그컵 두개를
 
 
제이슨 2017-05-3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타미 초등학교 갔어요?

다락방 2017-05-30 16:52   좋아요 0 | URL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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