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이 대학에 들어가 집을 떠났던 그해, 다른 일도 일어났다.
부부 관계가 상당히 격조해지긴 했지만, 하먼은 이 점을 받아들이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꽤 오래전부터 그는 보니가 제게 '맞춰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밤, 침대에서 그가 다가가자, 보니는 하먼을 뿌리쳤다. 한참 후, 보니가 가만히 말했다. "여보, 나는 이제 그 짓은 끝난 거 같아요."
그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보니의 이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깨닫자 끔찍하면서도 공허한 마음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상실을 즉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나?" 하먼은 물었다. 보니의 그 말은 벽돌 스무 장을 그의 가슴에 쿵 얹어놓은 듯한 고통을 주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그냥 끝났어. 아닌 척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우리 둘 다한테 못 할 짓이지."
그는 자기가 뚱뚱해져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보니는 그가 그다지 뚱뚱해진 건 아니라고,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자기가 끝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르잖아, 그가 말했다. 당신을 기쁘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은 한 번도 이런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얼굴을 붉혔다.)
보니는 말했다. 내 말 모르겠어요? 당신이 아니라 내 문제라고요. 내가 그냥 끝났다고요. (굶주림, p.148-149)
하먼과 보니에겐 이미 성인이 된 자식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고, 자식을 키우는 낙으로 그동안 살았지만, 따로 떨여저 살고 있는 자식들은 아버지인 하먼이 기대하는만큼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자식들과 함께 살고, 늘 어떤 자식이든 데리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있던 하먼은, 이제 둘만 살고 있는 지금이 좀 쓸쓸하다. 게다가 이제 아내는, 자신에게 섹스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하먼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하먼은 사랑이 필요하다. 하먼은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더이상 자신에게 다정하지도 않고, 취미생활과 친구를 만들어 나름 잘 지내는 것 같다. 하먼의 마음은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렇게, 마을의 다른 여자와 섹스파트너가 된다. 일요일 오전이면 도넛을 사러 갔다가 그 여자네 집에 들러 만나고, 그리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삶. 그래도 이건 안되겠다 싶어 섹스 파트너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는데, 그의 섹스파트너 데이지는 '그냥 이야기만 하러' 자신에게 늘 오던것처럼 오라고 한다. 하먼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또 자신에게 이야기도 잘하는 데이지에게 변함없이 들르고, 그 이야기하는 시간을 즐겨한다. 그러는 사이, 그들에게는 서로의 이야기가 쌓이면서, 동시에 작고도 큰 사건들도 쌓인다. 그리고 같이 겪은 어떤 일은, 그들을 더 단단하게 결속시키고, 하먼은 이제, 데이지에게 사랑을 느낀다. 밤이 내린 마을에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하먼은 이제 일요일 아침 데이지와의 만남을, '친구'로 지냈던 이전 몇 달 동안처럼 은밀한 갈급함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고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순식간에 밤이 내린 마을에 전구가 켜지는 것만 같았다. (굶주림, p.164)
사랑이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나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낳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고, 그렇게 자식의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봐왔는데, 이제는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부부란, 어떤 기분인걸까. 그렇게 매순간을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제 끝난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이제 끝난 것 같아'라는 말을 하는 아내의 마음은 어떤 걸까. 그렇게 말하는 거, 자신에게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여전히 원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나는 끝났지만, 나는 이제 끝나버려서 더이상 속일 수도 없지만, 남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남편에게 섹스 파트너가 생기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까? 당신은 그걸 원하지만 나는 그걸 더이상 줄 수 없으니, 그걸 줄 수 있는 다른 상대를 만나는 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그래야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쉽게 용납할 순 없는 일 아닐까?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라면?
나는 여전히 나랑 함께사는 이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다. 밤이면 그의 옆에 눕고 싶고, 그렇게 가끔은 그랑 벗은 몸을 포개는 일을, 어제 그랬고 3년 전에 그랬고,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 하고 싶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나는 이제 끝난 것 같아' 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직 안끝났는데?
나는 아직 한창인데?
나는 아직 하고 싶은데?
어제처럼, 10년전처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당신을 안고 싶은데?
그런데...당신은 끝났다고?
남편이 내가 싫어져서가 아니라는 걸, 그저 자신의 노화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서 이제 성욕과 섹스가 빠져나갔음을 밝힐 뿐이라는 걸 알지만, 그러니 나는 '아, 그래 그렇구나, 알겠어' 입으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이 섹스에 대한 욕망은? 나는 어떡해? 그러면 나는, 여전히 이 남자에게 마음이 있는채로, 섹스를 할 다른 상대를 만들어 파트너쉽을 유지해야 하나?
내 남편은, 혹은 동거인은, 자신이 이제 끝나버렸으니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별 수 없지, 나는 안되는데 너는 하고 싶잖아,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이 혹은 동거인이 더이상 섹스는 무리라고 했을 때, 오케이, 너가 무리이니 이제 나도 하지 않도록 할게, 내 인생에 더이상 섹스는 없어, 섹스 바이바이... 할 수 있을까?
섹스 같은 거, 안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긴데, 그런데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해?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런데 섹스는 잠깐 나가서 다른 데서 하고 올게, 어차피 너는 안되니까... 라면서?
내 안에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으므로, 나는 행복한가? 행복해지나?
그렇지만... 죽을때까지,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제 더이상, 내가 하고 싶은데도 하지 못하고 산다면....그것도 너무 슬프지 않아? '나는 이제 끝났어' 라고 말하는 상대와 함께 산다면, 내가 다른 데서 파트너를 찾아도 되는 거 아닌가? 나도 살아야하잖아.....
그렇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이 책속에서처럼, 내가, 내가 끝났다면.
내 상대는 여전히 나를 원하는데, 내가 이제 끝나버렸다면, 더이상 할 수가 없다면, 아무 느낌도 없고 아무 욕망도 생기지가 않는다면, 속이는 게 의미 없어, '이제 나는 끝났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태라면, 그때의 나는, 당연하다는 듯, 아직 욕망이 남아있는 나의 상대에게, 다른 섹스파트너를 허락할 수 있을까?
난 끝났는데, 너는 안끝났잖아. 그러니까 나가서 너와의 섹스를 기꺼이 원하는 다른 사람과 하고 와. 앞으로 섹스는 그 사람하고 하도록 해.
라고 할 수 있을까?
오!
싫은데?
책 속에서의 하먼은 섹스로 데이지와 사랑이 싹튼 건 아니었지만, 같이 겪게 되는 사건으로 인해 어쨌든 데이지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일을 함께 겪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함께 하는 이상 감정이 생겨나기는 너무 쉽다. 함께하는 게 있다면, 거기에서 둘만의 어떤 것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것이 생겨나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도 또 순간인지라, 내가 '머리로는' 허락해서 상대에게 '나는 끝났으니까 다른 사람하고 섹스하고 와' 라고 받아들였다가, 그걸 계기로, 섹스를 나누는 파트너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올리브에게도 일흔 넘어 사랑이 찾아온 것처럼, 내 애인이라고 해서 일흔 넘어 사랑이 찾아오지 말란 법이 없잖아. 나랑 여태껏 다정하게 지내놓고, 다른 사람하고 섹스하고 나더니, 나 그사람하고 남은 생을 살고 싶어, 이래버리면,
나는?
아........험한 말 쓰고 싶지만, 참겠어....금요일 저녁이니까....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머리로는 다 알고 또 그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다 괜찮은 게 아니다. 따지고 들면 콕 집어서 잘못한 게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럴 수 있지' 하는 일이라도, 내가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서 펑펑 울 정도로 슬픈 일이 될 수도 있다. 며칠 전에 여자1이 내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며 분하고 억울해서 울었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걔한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잖아요, 뭐라 그래요' 하더라. 여자를 울게한 사람은 여자에게 딱히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 그건 여자도 알고 있었다. 여자에게 따지고들면 여자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억울하고 분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면서, 그러면서 눈물이 나는 거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어 빌려줬다. 눈물 닦아, 라고 말하면서. 여자는 처음엔 거부하더니 손수건을 받아들고 눈물을 닦으면서, '손수건에 향수 뿌렸네요' 하더라. 아니야, 땀나서 닦았는데, 귀 뒤에서 향수가 묻었나봐, 라고 말했다, 라고 끝맺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구먼.....
그러니까, 나는 끝나버렸으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상대에게 섹스 파트너를 허락하는 건, 당연한 건가? 그래야 하나? 그렇지만, 그러면 내가 서운하지 않나? 그런데 내가 서운하다고 상대에게 그걸 하지 못하게 해야하는건가? 이걸..어떻게 조율해야 하지?? 이 모든 걸 다 노화 탓으로 돌리면서 그냥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견디고, 남은 생을 견뎌야 하는건가? 그러니까 섹스가 아니라 그게 뭐든 그렇다. 함께 하던 게 있었는데 어느 한쪽은 이제 끝나버렸고, 한쪽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면, 그걸 대체 어째야 하나..... 그게 뭐가 됐든, 함께 해서 즐거운 거였다면, 끝날 때도 같이 맞춰 끝나면 좋을텐데....아, 이거 너무 슬프네.
다시 읽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는, 몇 년전에 읽었을 때보다, 가끔 훑어봤을 때보다 훨씬, 훠어얼씬 좋다. 맨 앞의 단편인 <약국>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당장 페이퍼를 쓰고 싶었는데, 그 다음 단편 <밀물>이 너무 쎄서, 완전 강력해서, 책장을 덮고서는 정말이지 '와, 대단하다' 이렇게 여운을 가져가느라고, <약국>에 대해 페이퍼 쓰는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여러분, <밀물> 읽자. 꼭 읽자. 이거 진짜 대단한 단편이다. 이건 전체적으로 긴장되고 묵직한 단편인데, 마지막까지 읽으면 진짜 막 묵직한 감동이랑 여운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서, 뭔가 되게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어가지고, 어제 이 단편을 읽고서는 그런 결심을 했다. 만약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이 어떠한 일로 인해 좌절과 절망을 겪어 한층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면, 그때 내가 조용조용히 이 단편을 읽어줘야지, 하고. 아, 근데 그런 단편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도 있긴한데... 럼주 나오는 단편....흐음......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읽어주자. 어쨌든. 진짜 대단한 작가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직 내게는 이 책의 절반 이상이 남아있다. 매 단편마다 페이퍼를 쓰고 싶은데,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고, <약국>에 대한건 진짜 할말이 많은데, 어쩌면 조만간 또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애인의 '타인에 대한 자상함'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그여자에게 일어난 어려운 일에 니가 그렇게 발벗고 나서는거야?' 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한계선은 어디일까? 여기에 대해 막 생각해보게 됐는데, 음, 역시 약국에 대한 페이퍼 써야겠어... 근데 오늘은 여태 길게 썼으니까 그만써야지.. 약국, 너 딱 기다려. 내가 쓴다.
아무튼지간에, 그 뒤의 단편 하나 더 읽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