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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당신의 신》을 읽는 중이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인데 단편 세 편 실린 게 전부이다. 그중 첫번째 단편 <이혼>을 읽는데, 여기에는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구절이 나온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p.64)



남편은 해고노동자들의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 며칠씩 집에 안들어오기도 한다. 아내가 유산을 했을 때, 그리고 항암 치료할 때를 포함해서 아내가 힘들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순간마다 남편은 곁에 없었다. 결혼해서 남편이란 존재가 있으되, 남편과 아내로 불리고 있으되, 그러나 혼자인 것과 별다를 게 없는 시간. 가끔 '인간 뭘까?' , '인생 뭘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게 하는 일이 생기는데, 바로 이럴 때가 그렇다. 해고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들의 곁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남편은, 그러나 가장 가까운 아내의 고통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하지 않는다. 


그래놓고서는 아내가 이혼을 하자 말했을 때, 그것을 남편의 영혼을 내치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혼을 원한다는 그녀의 요구를 그는 번번이 묵살했다. 혀가 꼬이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밤, 마침내 따지듯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무엇을 위해 시를 쓰지?"

"무슨 말이야?"

"시 말이야. 무엇을 위해 쓰지? 응?"

그녀가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하자 감정이 격해진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아니었어?"

"영혼­……? 나는 당신과 이혼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날 버리겠다는 거 아니야?"

"버리다니? 누가 누구를?"

"네가, 나를!"

"나는 지금 당신을 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당신과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억지 부리지 마!"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p.58-59)





위 부분을 읽다가 '나였어도 이혼했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혼하자는 아내에게 자신을 버리는 거라고 말하다니. 대체 무슨 심뽀인줄 모르겠다. 그리고 이혼하는 게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거라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지?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애인이 되려고 했던 거고, 아내가 되려고 했던 거지, 당신의 신이 되려고 했던 게 아니다. 마치 나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해줄 사람으로 여기는 게 나를 뭔가 되게 크게 소중하게 여기는것마냥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다. 나는 동등한 관계이길 원하지 당신의 위에서 당신을 끌어올리려고 당신을 만나는 게 아니다. 


위 부분을 읽는데, 여자를 김치녀나 된장녀, 김여사로 표현하는 것만이 혐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위치에 두지 않는 거, 한없이 높은 곳에 두려하는 거, 그거 한다고 내가 좋아할 것 같냐. 나는 그냥 너랑 같은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고, 너의 여자친구이고, 애인이고, 아내야. 신이 아니야. 내가 신이라면 인간인 너와 어찌 함께 걷니... 

너는 나를 신이라 칭하고 니 영혼을 구원해줄 사람이라 여기면서 너랑 헤어지지 못하게 만들려하지.

노노, 그런 건 노노해... 노노.


안녕... 세이 굿바이.....





여성혐오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개념입니다. 무엇보다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여성을 추켜세워 숭배(성녀와 개념녀, 미녀 등) 하거나,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여 낙인(창녀와 보슬아치, 김치녀, 추녀 등)을 찍는 행위-을 통해 여성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도입하는 권력기제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혐오는 숭배의 자리를 환상으로 남겨놓고 여성을 자기 착취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할 통치 방식으로 가부장제는 지금껏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미소지니를 여성비하나 멸시로만 번역하는 것은 여성혐오 개념의 다층적 층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습니다. 여성멸시와 여성비하는 여성혐오의 하위범주일 뿐입니다. (p.144)









회사 동료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E 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한다. 인스타에서 고양이 사진 자주 올라오는 계정들을 팔로우 해놓고 자주 들여다보곤 하는데, 그렇게 내게 《히끄네집》이란 책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이 책이 요즘 엄청 잘 팔려서 벌써 5쇄를 찍었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면서, 굿즈 영향도 있는 것 같다는 거다. 이 책의 굿즈가 히끄의 등신대라는 것. 





히끄의 등신대 덕에 히끄네집 이 더 잘 팔리는 것 같다면서, 내게도 굿즈를 만들 것을 권했다. 아마 내가 내 책 안팔린다고 징징대서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차장님, 차장님도 책 잘 팔리게 굿즈 만들어 보시는 거 어때요?

- 뭐로? 등신대?

- 네, 차장님 실물 사이즈와 똑같은 등신대요.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아무리 나지만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깝깝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등신대 있으면 그걸 뭘해 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히끄 등신대는 귀엽기라도 하고 책상에 두기라도 할 수 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등신대로 뭐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대체 뭘 어째야 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락방 등신대를 굿즈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어사시미나 먹으러 가야겠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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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1-2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어 사시미 좋네요. 빠샤.
근데 락장님 등신대를 굿즈로.. ㅎㅎㅎ;;;; 그것도 실물 사이즈와 똑같은... 허허;;;;

다락방 2017-11-22 10:50   좋아요 0 | URL
아아 E 에게 그렇게 물을 걸 그랬어요.

˝내 등신대가 굿즈면 너는 내 책을 사겠니?˝ 라고요.

그러면 아마 E 도 흔쾌히 산다는 대답을 못하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

syo 2017-11-2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등신대 ㅋㅋㅋㅋ
저도 만약 책 나올 일이 있다면 등신대 홍보전략을 써야겠어요.

교보문고에 들르신 고객님들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지금 매장에 계신 고객님들 중 syo의 책을 사지 않은 분들께 강제로 syo의 등신대를 줘버릴 예정이오니, 그 꼴 당하기 싫으시거든 책을 사가시기 바랍니다.

다락방 2017-11-22 10:5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등신대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미치겠어요. 등신대가 너무 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관리가 안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방에 놓으면 무섭고 거실에 놓기 부끄럽고 바깥에 세워두면 등신대가 추울거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쇼님은 책 나오면 최초로 작가 등신대 한 번 갑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1-22 11:07   좋아요 1 | URL
syo등신대는 작아서 휴대가 간편합니다

-_ㅠ

다락방 2017-11-22 11:16   좋아요 1 | URL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면서 왜 울기만 하는가..)

에이바 2017-11-22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김숨 작가 책이 두 권 나왔잖아요. 염소랑 당신의 신 둘 중에 뭘 읽어야 하나 했는데(저는 김숨 글을 처음 읽거든요. 이름은 알지만...) 저 이혼이라는 글 때문에 당신의 신을 읽기로 했어요. 그런데 다락방님도 그렇다고 하시니 반가와 댓글을 남깁니다. 문제는 책을 사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거... 흑흑 참 비겁해요. 맨 정신으로 문제를 마주칠 용기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선 너의 시는 쓰레기라고 비난하는 모습이요. 히끄 책 잘 팔리는 거 등신대 덕분 맞아요 ㅋㅋㅋㅋㅋㅋ 넘넘 귀엽죠. 요즘 조금 지나긴 했지만 대세는 미니멀리즘이니까 다락방님도 귀여운 미니 다락방 등신대를...

다락방 2017-11-22 11:18   좋아요 1 | URL
안녕, 에이바님?

저는 김숨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내심 기대하는 작가예요. 일전에 비..를 소재로 한 단편집에서 김숨 글을 읽고 ‘이 작가 챙겨봐야지‘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최근에 [한 명]인가 그 책도 사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했거든요. 그러다 이혼의 인용구를 보고는 읽자!! 하고는 냉큼 사서 냉큼 읽고 있답니다. 후훗.

말씀하신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저는 남편이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너랑 헤어지기 싫어‘라고 차라리 솔직히 감정을 인정하는 편이 나을텐데 ‘내 영혼을 버리는거야‘ 라고 말하다니, 이혼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여자에게 물고 또 그렇게 해서 여자의 죄책감을 건드리려고 하는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강하게 내쳐버려야 하는 것 같아요. 어휴 너무 싫음요...


미니 다락방 등신대......라면 조금 팔리려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니 다락방 등신대 보다는 히끄 등신대가 이천배쯤 더 잘팔릴 것 같은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쩐지 슬퍼한다)

단발머리 2017-11-22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위치에 두지 않는 거, 한없이 높은 곳에 두려하는 거... 에서 <제2의 성>의 체취를 느낍니다. ^^

저도 다락방님 미니 등신대에 한 표요~
근데 진짜 이름이 이거예요?
등신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11-22 11:34   좋아요 1 | URL
네, 그러고보니 제2의 성 생각도 나네요. 저 제2의 성 3편 신화부분 읽고 있어요. 어휴 진도 안나가요 ㅋㅋㅋㅋㅋ

진짜 이름이 이거예요. 등신대. ㅎㅎㅎㅎㅎ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아래와같이 나옵니다.

등신대 (等身大) [등ː신대]
[명사] 사람의 크기와 같은 크기.

유부만두 2017-11-22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부분 남편은 자기가 사진 찍으며 해고노동자들을 구원한다고 여기는가봐요. 아우 싫다!!!

다락방 2017-11-22 16:11   좋아요 2 | URL
음. 그러게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걸까요?
어제 어딘가에서 김숨 작가 되게 조용하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작가의 성격은 소설에 드러나는가 봐요. 책 속 등장인물들도 되게 조용해요.
 


토요일엔 영화 《리빙 보이 인 뉴욕》을 봤다. 극장에는 나를 포함해서 여자 일곱명이 관객의 전부였다. 그 중에 다섯명은 나처럼 혼자온 사람들이었고 커플이 한 쌍. 우리 모두 여자들... ㅎㅎㅎㅎ 상영관은 1관으로 컸는데 주말에 이렇게 관객 일곱명이어서 어쩌나..라는 전혀 내가 할 필요 없는 걱정을 잠깐 오지랖 넓게 해보았다.


영화는 추천할만한 건 아니다. 영화 평에 보면 막장이란 말이 많이 보이던데, 음.. 막장이라면 막장이랄 수 있겠다. 어쨌든.

추천할만하진 않지만 나는 나름 여러가지가 인상깊었는데, 그중 하나가 주인공인 '토마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내연녀인 '조한나'가 토마스에게 하는 말이었다.


니가 아는 게 다가 아니야.

니가 아는 게 잘못된 걸 수도 있어.



토마스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으로 아직 이렇다할 직업을 가진 것도 없고, 애인이 있는 '미미'를 짝사랑하고 있다. 미미와 자기 사이에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미는 자신에게 '그저 실수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 거라고 한다. 그런 참에 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함께 있는 장면을 보게된 것.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떠나 내연녀와 결혼할 생각까지 갖고 있단 걸 알게된다. 이에 토마스는 조한나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랑 헤어지라 말한다. 이미 안그래도 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너질 거라는 것. 그때 조한나가 토마스에게 '니가 아는 게 다가 아니야, 오히려 네 엄마가 원하는 걸 수도 있어'라는 말을 하는 거다. '어쩌면 네 엄마도 네 아빠랑 헤어지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지' 라고. 토마스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그녀를 말리고자 하는데, 토마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랑 헤어지는 것이 어머니에겐 무너질만한 일일 수밖에 없는 거다.









물론 시간은 흘러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헤어지자고, 다른 여자가 있다고 얘길 한다. 이 사실을 알고 토마스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부랴부랴 찾아가지만, 어머니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한나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어머니 역시 나름의 비밀을 숨기고 25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것.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다. 혹여라도 그것이 밖으로 꺼내어지면 토마스에게 상처가 될까봐 꾹꾹 숨기고 참고 살았던 거였는데, 이제 그 비밀까지도 토마스가 다 알아버렸다. 반드시 그것만이 이유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들과 자주 교류하고 넉넉하게 살았음에도 계속 우울해했고, 오로지 토마스만을 바라보며 살았더랬다.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데 두고 다른 사람과 사는 것은 내내 삶을 우울하게 만들수도 있어...



그런 한편 어머니가 25년을 내내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던 남자도 마찬가지.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이기 때문에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홀로 그 긴 세월을 살아간다. 그렇게 허구헌날 술을 마시면서 그녀를 그리워만 한다... 나는 사랑에 미쳐서 사람이 한없이 우울해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버텨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내 바람일 뿐, 이렇게 내가 간절히 원하는 단 하나의 상대와 내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는 한없이 절망속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는 거다. 무엇보다 내가 그걸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나는 한 달 내내 울며 보낸 적이 있었다. 걷다가 울고 음악 듣다 울고 지하철 안에서 울고 산에서 울고.... 아아,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아픈 날들이었지. 나는 사랑을 잃고 씩씩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사랑을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마음도 너무나 잘 알겠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떡해야 한다? 사랑을 지켜야 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 둘 사이에 끼어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좀 애틋한 영화가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했을 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우울해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인생 뭐냐

사랑 뭐지?



그건그렇고, 남자주인공은 넘나 매력없어... -0-



보다가 케이트 베킨세일 머리 너무 이뻐서 아아, 나도 머리 길게 웨이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저 영화 보기 바로 직전에 컷트친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렇게 머리 기르려면 한 십 년 걸리려나.... 그러면 내 나이가 몇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내가 오늘 아침에 알라딘 주문해서 식판이 올 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간을 넣지 못했다는 게 넘나 슬프다.... 아니, 루시 바턴도 못샀는데 무슨 형제 또 나오고 그래? ㅜㅜ 좋으면서 싫고 싫으면서 좋고 그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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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1-2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니까 영화 보고 싶은대요.
영화 보러 자주 나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주에는 혼자라도 나가야겠어요. 매력적인 남주도 볼겸 겸사겸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신간들이 줄을 섰네요.
으흠... 저도 엘리자베스는 딱 한 권 읽었던 터라 뭘 먼저 읽을까~~ 행복한 고민중~~

다락방 2017-11-20 11:0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남주는 매력적이지 않아요. 아오 찌질하고 답답하고 제가 안사귀고 싶은 스탈의 남자사람 ㅋㅋㅋㅋㅋ
이 영화가 아니라도 다른 영화라도 보러 훌쩍 나갔다 오세요, 단발머리님. 맛있는 것도 사 드시고요. 저는 육개장칼국수 사먹어봤는데 다시는 안사먹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경험이 중요해요. 헤헷.

저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키터리지] 딱 한 권 읽은 게 전부라 저 두 책 모두 사고 싶어요! 앗! 에이미와 이사벨은 가지고 있는데 안읽었네요. 다른 많은 책들이 그렇듯이... 하하하하하

스윗듀 2017-11-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읽는 다락방님 페이퍼..역시 재밌어 크으 ㅠㅠ 다락방님 저는 얼마전에 <뉴니스>라는 영화를 혼자 봤는데 넘나 잼났어요. 현실 모던 러브의 반영이랄까. 조금은 유치하고 어리고 우리가 아는 그 얘기긴 하지만 여주 남주 모두 매력적이었더구욧! 특히 니콜라스 홀트 너...하아 ㅋㅋㅋ 다락방님도 만약 보시게되면 같이 감상 나눴으면 해요. 히힣

다락방 2017-11-20 13:12   좋아요 1 | URL
아니, 스윗듀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대체 그동안 뭐하시느라 이렇게 오랜만에 나타나신 거예요?! 안그래도 며칠전에 문자메세지함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던에 스윗듀님과 나눴던 문자메세지가 보관되어 있는 걸 봤답니다. 아아, 스윗듀님 요즘 뭐하고 지내시나... 생각했던 참이었어요. 생각만 하면 이렇게 똭- 나타나는 마법! 매직! ㅎㅎㅎㅎㅎ

뉴니스 라는 영화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데이트앱을 통해 만난 커플의 이야기네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상영시간이 저랑 안맞아서..흐음... 다운 받아 보든지 해야겠어요. 후훗.

비연 2017-11-2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달달한? 영화 안 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이거 (제목 때문에) 볼까 했더니 그런 내용이 아니었네요..ㅜ
저스티스 리그나 봐야겠어요 ;;;;

다락방 2017-11-20 15:56   좋아요 0 | URL
주인공 토마스는 아버지의 내연녀와 섹스하고 그런데 그 아버지가 사실 알고보니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었고...같은 내용이 나와요. 로맨스랑은 좀 거리가 멀어요. 하핫.

비연 2017-11-21 08:19   좋아요 0 | URL
헐... 로맨스 아니군요 ㅠ

다락방 2017-11-21 08:37   좋아요 1 | URL
영화 카피에 썸머가 가고 가을이 왔다 이래가지고 달달이 로맨스인줄 알고 가서 봤네요. -_-
막장+로맨스 코딱지만큼+성장드라마=딱히 안봐도 된다
이런 공식이 나옵니다. ㅎㅎ
 

무거운 책이라 독서대를 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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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1-20 07:05   좋아요 0 | URL
딩동댕!!

비연 2017-11-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공부? 하는 포스심다..^^

다락방 2017-11-20 08:21   좋아요 1 | URL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하는 책임엔 틀림없습니다!! ㅎㅎㅎㅎㅎ

비연 2017-11-20 15:14   좋아요 0 | URL
저도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독서대를 오늘 꺼내볼까 하는 마음이 몽실몽실 올라오네요 ㅎㅎ
(흠흠.. 그럼 공부를 해야 하나요 ㅜㅜ)

다락방 2017-11-20 15:5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냥 책만 읽으세요. 두껍고 무거운 책은 들고 보면 모가지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래요 ㅠㅠ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일단 페미니즘 소설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선택가능한 책이 되니 좋을 것이고, 페미니즘은 걸러가자,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걸러내버릴 책이 되니 단점이 될 것이다. 실상 페미니즘에 관련된 입문서, 안내서, 소설까지, 정작 읽어야 할 사람은 '페미니즘은 걸러가자'고 하는 사람들 쪽일테니까. 접근을 용이하게 한 것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작가들에게 주어진 순간, '페미니즘 페미니즘' 하고 머릿속에 가득차서 글을 풀어내는 게 좀 자유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달아 세 편이 '사실의 기술'에 가까우며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다른 버전들을 만나는 것 같았으니까. 애인에게 파혼을 선언하는 여자, 집에서 장녀인 여자, 아들을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나온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집에서 딸로 자라면서 겪었던 것들이 이야기되어지고, 그리고 결혼해 남편과 살면서 자식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 삶 속에서 '어 이건 아니지 않나' 했던 것들 혹은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되뇌었던 것들. 그 의문과 불안,걱정은 어느 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끊기는 것이 아니고 여자로서 살아가는 평생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의 실린 단편의 순서는 어쩌면 의도적인 것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설 혹은 문학에 기대하는 바는 사실 기술 그 너머에 있다. 단순히 현실과 사실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내가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이것 말고 조금 더, 를 바라게 하는 거다. 이건 사실 소설을 대하는 독자의 개인적 취향일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의 의미가 바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데 있다 할 것이고, 내 경우엔 그걸 넘어서 '그 무엇'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더하기 1은 2다', 라고 말해지고 그걸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앗! 1더하기 1은 2인거구나, 2일 수 있는 거구나!' 하게 만들어지는 걸 원한달까.  '김이설' 작가가 자신의 단편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망치로 남자 머리를 깨부수는 여자가 등장하는 십 년 전에 쓴 소설이 더 페미니즘적인 소설이었나 싶고(p.122)'라고 한 것처럼, 이 책속의 작가들이 그저 자연스레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쪽에 더 페미니즘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 '페미니즘' 이라고 주제를 딱 던져놔 버리니 오히려 너무 전형적으로 되어버리는 것 같은 거다.


그래서 내게는 좀 아쉬움을 주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것이 페미니즘이든 혹은 또다른 무엇이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가고자 하려면 일단 지도를 펴고 내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오른쪽으로 가야할 지 사거리를 건너야 할지 뒤를 돌아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점에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자,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파악하자' 하는 것을 권유하는 느낌이다. 자, 우리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봐야 하지, 라고. 이 책에 단편을 써낸 작가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보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윤김지영 쌤은 '헬페미'로서 자신의 역할은 바로 지금의 학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헬페미들의 언어와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다고 했었더랬다. 바로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로서 같은 운동을 할 수만은 없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환경이란 것이 있으니까. 그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중요할텐데, 이 책을 써낸 소설가들은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표현한 것일 테다. 사실의 기술이든 그 너머를 나아가든 나는 이 소설가들이 앞으로도 부지런히 소설을 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굳이 '페미니즘'으로 소설을 써보자, 하는 게 아니어도, 그들이 쓰고 싶은 바로 그 글을 쓰더라도 그 안에 페미니즘이 자연스레 깔려있기를 원한다. 성평등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가 그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성평등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것을 자연스레 읽어낼 수 있기를 원한다.



끝으로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를 다 읽고나서, 아, 이 여자 현남오빠(자꾸 한남오빠라고 쓰게 된다) 가 이 편지 읽고 찾아오면 어떡하지, 집 앞에서 기다리면 어떡하지, 스토킹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었는데, 이 걱정을 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쓴 조남주 작가 역시 그런 걱정을 했더라.



느낌표를 찍고 마지막 문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런데 강현남씨가 스토킹을 하면 어쩌지?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놓았으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p.39, 조남주, 작가의 말)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어떤 연애가 끝나고난 뒤,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로부터 해를 입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마지막에 자연스레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게 몹시 씁쓸하고 또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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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교수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식을 음미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고향 지방 풍습대로 수르콜(채썬 양배추에 향신료와 각종 양념을 넣고 삶은 요리)과 여러 채소, 감자, 말린 자두, 생크림 크랜베리 소스 등과 함께 돼지갈비구이를 먹었다. 식사 시간도 노르웨이 전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만찬을 먹는 오후 다섯시에서 일곱시 사이로 맞추었다. 다들 크리스마스가 아니면 잘 먹지 않는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흔히 곁들이는 맥주와 아쿠아비트(향이 가미된 독주로 주로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생산된다)도 마셨다. 그는 천천히 의식을 치르듯 음식을 먹었고 생각에 잠겨 술을 마셨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접시와 쟁반을 부엌으로 내간 다음 디저트로 리스크렘(쌀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죽처럼 끓인 요리)을 가지고 왔다. 이 디저트를 먹는 것 또한 그의 가족이 지켜온 전통이지만 그는 그것이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격식을 갖추어 디저트까지 먹었다. (p.9-10)

















55세의 혼자 사는 남자 안데르센 교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거실에 트리도 장식해 두었고 한 사람분의 상을 차려 만찬을 즐긴다. 이 책의 작가, 그러니까 안데르센 교수를 만들어낸 '다그 솔스타'는 노르웨이 사네피오르에서 태어났는데,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도 노르웨이에 사는 안데르센 교수의 혼자만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잘 살려냈다. 나는 사실 북유럽이란 곳에 딱히 로망을 가진 것도 아니고, 노르웨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저 도입부, 혼자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내고 한 사람분의 상을 차려내어 디저트까지 먹는 장면을 읽다보니 갑자기 가슴속에 꿈틀꿈틀... 노르웨이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거다. 딱 이만큼만 읽고서 아아, 이것들 다 뭐여, 무슨 음식이지? 노르웨이 음식 나 알지도 못하는데, 노르웨이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노르웨이 음식들 좀 먹어볼까?! 막 이렇게 되는 거다. 



때가 때이니만큼 안데르센 교수는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아 박싱 데이에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즐긴다.



그들은 전채 요리로 락피스크(송어 등의 생선에 간을 하여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발효시켜 그대로 먹는 노르웨이 전통 음식)를 먹었고, 주요리는 뇌조였다. 락피스크에는 맥주에 이어 체이서(약한 술 뒤에 마시는 독한 술, 또는 그 반대 순서로 마시는 술)로 아쿠아비트가 나왔고, 뇌조 요리에는 스페인산 고급 레드 와인 리오하가 나왔다. 전채 요리가 나오기 전에 여주인 니나는 메뉴를 정하면서 고민했단 난제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전채로 락피스크를 먹고 나중에 뇌조를 먹으면 잘 어울린다. 락피스크와 뇌조 둘 다 같은 지역인 발드레스산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음료를 생각하면, 맥주에 체이서로 아쿠아비트를 마신 뒤 레드 와인을 마신다? 자신이 생각할 때 그건 이상적인 조합이 아니었지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뇌조를 먹기 전에 다른 전채 요리를 먹는다? 아니, 그건 싫었다. 식품 저장실에 발드레스에서 만든 락피스크가 있고 같은 지역에서 난 뇌조가 있는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게다가 두 가지 모두 직접 나서서 구한 음식으로, 뇌조는 베른트가 발드레스에 가서 사냥했고 락피스크 역시 발드레스에 사는 가까운 지인에게서 구한 것, 그러므로 메뉴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p.37-38)



아, 진짜, 정말이지, 여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게 다 있다. 음식은 당최 어떤 것들인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크리스마스, 파티, 좋은 친구들, 맛있는 음식과 술... 아 너무 좋지 않은가. 내가 혼자 살게 된다면 나 역시 아주 친하고 소중한 사람 몇명만 불러서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싶은데, 내가 지금 엄마 아빠랑 같이 산다... 음..... 만약 내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파트너가 있다면, 파트너랑 만찬을 즐기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박싱 데이..(사실 박싱 데이에 우리는 쉬지 않지만...), 저녁마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두고 한 상 가득 기름진 음식들을 차려내어(물론 기름진 음식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날에도 잘만 먹지만...), 와인과 위스키를 꺼내놓고, 건배하고 이야기하면서(도란도란) 먹으면 너무 좋지 않을까. 진짜 행복이 폭발할 것 같은 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술 마시는 거고(응?), 크리스마스고, 좋아하는 사람인데, 아아, 나는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것이 마치 노르웨이여서 가능한 것마냥, 노르웨이에 가고 싶어지는 거다. 일단 혼자 가는 거지...노르웨이에는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내년에 나의 여행친구도 멀리 갈 수 없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혼자 갈 생각이고, 포틀랜드와 오클랜드 중에서 가야지 눈누난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슬로가 툭-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아, 오슬로여.....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크리스마스와 음식과 술과 파티에 취해있다고 해서 이 소설이 그렇게 훈훈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헤롱헤롱하는 내용인 것은 결코 아니다. 안데르센 교수는 한사람분의 식탁을 차려두고 혼자서 식사를 하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창밖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가, 이웃집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어엇, 하고 놀라서 밤을 꼬박 새고, 신고할까 주저하다 신고도 못했고, 그게 고민이 되어서 친구를 만나 얘기하려 했지만 파티 분위기에 그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찾지 못해 파티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안절부절... 그러는 동안의 안데르센 교수에게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이 이 소설의 내용인데, 안데르센 교수가 어떡하지, 어떡하지, 내가 진작 신고를 했어야 되는데, 이제와 신고하면 너무 늦었지, 내가 왜 신고를 안했지, 이러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나는 



크리스마스 좋아 홍야홍야 ♡

오슬로 가면 신기한 음식 많겠지? 헤롱헤롱 ♡

독주 마시고 싶어 힛힝~ ♡



이러고만 있었던 것이다. 아, 나여...




안데르센 교수에게 내가 막 공감하지 못한 건 그가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살아 있는 살인자를 신고하는 것이 어쩐지 꺼려진다고 하는 그 마인드가, 나는 알듯도 하지만 그것이 나의 마인드가 아니기 때문에, 좀 공감을 하려다가 튕겨져 나오고 공감을 하려다가 튕겨져 나오고..... 그래서 이 소설이 내게는 재미가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재미는 없는데..... 자꾸자꾸 술 마시는 거 나와서 넘나 좋고, 그 술을 마시는 데에 있어서 자기만의 철학이 있고(노란 탄산수는 안돼, 파란 탄산수여야 해!!), 크리스마스인 것도 넘나 좋은 것이다....... 누가 물어보면 '나는 그 책 별로였어' 라고 대답할 책인데, 책을 다 읽고 치워두고서도, 아아, 노르웨이에 가야겠구나.....하고 머릿속에 잔뜩 노르웨이에 대한 생각만 나는 것이다......



아아,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노르웨이 아름답다고 한 것도 아니고, 노르웨이 살기 좋다고 한 것도 아니고, 노르웨이가 지상낙원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아, 나는 그런데 어째서 ... 크리스마스에 기름진 음식에 술마시는 것만 읽고 이렇게 노르웨이를 앓게 되는 것인가.... 인간 뭐지? 나는 뭘까? 역시나 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것...




그런데 뇌조는... 먹기 싫어.....이름이........먹으면 안되는 이름같아..... 뇌조...........



저 음식들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이 책 읽으면 다 나와 있을까?















마침 이번 알라딘 굿즈 식판이던데...나 식판 탐나..... 해당도서는 다른 거 있으니까, 이 책 같이 사서 식판 받을까? 나는 요리 만들 줄도 모르면서 음식 사진 보면 왜이렇게 좋지. 내년 여름에 노르웨이 갈까?





지난 주말을 보내면서 토요일에 운동을 좀 격하게 해가지고 일요일에 근육통이 진짜 엄청 심하게 왔더랬다. 술병에 근육통까지 아주 그냥 돌아버릴 뻔 했는데, 마침 트위터를 보는데 생강이 그렇게나 근육통에 좋다는 거다. 오오? 생강차를 사다놓고 근육통 있을 때마다 마셔야겠네? 생각하면서 엄마한테 


'엄마, 나 지금 근육통 심한데 근육통에 생강이 좋대! 생강차 사다놓을게'



했더니 우리 엄마... 아아 우리 엄마.....진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가,



'야, 내가 어제 생강차 만들었어! 지금 끓여줄까?'



하시는 게 아닌가! 와!! 대박!! 아니 무슨 ㅋㅋㅋㅋㅋㅋㅋㅋ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짱이다 우리 엄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엄마가 생강차 끓여줘가지고 맛있게 마셨다. 움화화화핫. 이게 엄청 사랑하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같다. 후훗. 



그나저나 크리스마스...

나는 왜이렇게 크리스마스 다가오면 가슴이 벌렁거리지.

정작 그 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는데.

크리스마스가 특별했던 적은 진짜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늘 항상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고 그러지?

왜 이 나이를 먹어도 계속 그러지? 두근두근....




크리스마스 파티를 혼자 하든 둘이 하든 여럿이 하든,

노래는 이거 틀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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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7-11-1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노르웨이의 여름이라고 로맨스소설이 생각나네요.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판타지스럽긴 해요 ㅎㅎ 노르웨이 이야기는 별로 나오질 않는다는게 흠이죠... 노르웨이 노르딕... 락피스크 상상만 해도 소름이에요. 덴마크나 스웨덴에서 청어 소금에 졸여다 바로 먹는 그거 생각나는데요? 락피스크 먹으면 와인이 절로 들어갈 듯 ㅠㅠ 벌써 트리의 계절이... 오늘 아침은 미리 크리스마스입니다! ^^

다락방 2017-11-17 10:10   좋아요 0 | URL
아니 에이바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청어 소금에 졸여다 바로 먹는... 아 그거 너무 싫다 ㅋㅋㅋㅋㅋㅋ 저 어디꺼였지..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는데 샌드위치에 생선 넣는 거 나왔었거든요. 진짜 기절하는 줄 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 제가 락피스크를 먹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홍어 삭힌 것도 못먹는데 ㅋㅋ 냄새도 싫은데 ㅋㅋㅋㅋㅋ 락피스크 하나 먹으면 와인 한 병 마셔서 입 씻어낼듯요 ㅋㅋㅋㅋㅋㅋ

노르웨이의 여름 뭐지? 로맨스 소설이라니 제가 한 번 검색해보겠습니다. 안그래도 내일 로맨스 영화 하나 예매해뒀어요. 예매는 했는데 제목은 생각이 안나네요 ㅋㅋㅋㅋㅋ

자주 봬요, 에이바님. 완전 반갑잖아욧!! >.<

비연 2017-11-1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락방님은... 책을 지르게 하고 여행을 가고 싶게 하는 글을 자꾸만 올리셔서... 저를 혼란에 빠뜨리심다..ㅜ
내년엔 길게 어딘가 여행가고 싶어서 이것저것 생각중인데요..ㅜㅜㅜㅜ 스페인? 포루투갈? 이러고 있는데...
올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어디서 할까 이런 걱정까지 하게 되네요..ㅎㅎㅎ;;;

그나저나, 책 주문 또 했는데 요즘 책이 너무 안 읽혀요! ㅜ

다락방 2017-11-17 10:29   좋아요 0 | URL
저 10월달에 책 두 권 읽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진짜 너무 안읽히고 책을 펼치면 잠이 쏟아져요. 이래가지고 어떻게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나...스스로 참 거시기한 기분이예요. 하하하핫

저는 오늘 식판을 받기 위한 지름을 할겁니다. 하핫. 식판 넘나 탐나고요. 동그란 식판 받을까 네모난 식판 받을까 고민고민중입니다.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저 많은 책들중에 어떤 걸 선택해서 식판을 받을까요. 최종 승리자는 누구? 하하하하하.


저는 여름 휴가가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긴 휴가인데, 그 때 미국 갈까 뉴질랜드 갈까 고민중이었는데 노르웨이를 후보군에 또 넣어봅니다. 아, 하고싶은 거 많으니 회사를 계속 다녀야겠죠. 흙 ㅠㅠ

순오기 2017-11-1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욜에 북유럽에선 공간구성을 어떻게 하는지 강연 들으며 부러웠는데...음식 때문에 가고 싶은 나라에 등극하는 다락방님 페이퍼도 좋아요!!♥

다락방 2017-11-19 15:47   좋아요 0 | URL
북유럽에선 공간구성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강의라니.... 와- 세상엔 정말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강연이 많은가 봅니다. 저는 생각해보지도 못했어요. 하핫.
실제로 먹어보면 다 제 입맛에 안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북유럽에 가서 낯선 음식들 먹어보고 싶어졌어요. 언젠가는 갈 기회가 있겠지요.
추운데 잘 지내셔요, 순오기님!!

심술 2017-11-1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서 생강차 준비하셨다는 데서 나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옛날 어느 광고에서 많이 듣던 건데 하고 찾아보니 오리온 초코파이였군요. tv를 없앤 지 오래라 요즘 초코파이 광고에도 이 노래 쓰이는지는 모르겟네요.

다락방 2017-11-19 15:48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텔레비젼을 안봐서 초코파이 광고가 지금도 나오는지, 나온다면 이 노래가 쓰이는지는 전혀 모르겠네요. 그건그렇고, 이 페이퍼를 쓸 때 쵸코파이 광고의 그 부분을 생각하며 쓴 건 맞습니다. 후훗.

독서괭 2017-11-2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판 받으시면 감상 올려주세요! 저도 고민고민 중이라..ㅎㅎㅎ
그나저나 저번 오뎅탕도 그렇고 어머니 센스 최고시네요!!

다락방 2017-11-20 10:07   좋아요 0 | URL
그쵸. 저희 엄마 좀 짱인듯요. 저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그런데 식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술안주 담아 먹을까요...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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