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영화 《리빙 보이 인 뉴욕》을 봤다. 극장에는 나를 포함해서 여자 일곱명이 관객의 전부였다. 그 중에 다섯명은 나처럼 혼자온 사람들이었고 커플이 한 쌍. 우리 모두 여자들... ㅎㅎㅎㅎ 상영관은 1관으로 컸는데 주말에 이렇게 관객 일곱명이어서 어쩌나..라는 전혀 내가 할 필요 없는 걱정을 잠깐 오지랖 넓게 해보았다.
영화는 추천할만한 건 아니다. 영화 평에 보면 막장이란 말이 많이 보이던데, 음.. 막장이라면 막장이랄 수 있겠다. 어쨌든.
추천할만하진 않지만 나는 나름 여러가지가 인상깊었는데, 그중 하나가 주인공인 '토마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내연녀인 '조한나'가 토마스에게 하는 말이었다.
니가 아는 게 다가 아니야.
니가 아는 게 잘못된 걸 수도 있어.
토마스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으로 아직 이렇다할 직업을 가진 것도 없고, 애인이 있는 '미미'를 짝사랑하고 있다. 미미와 자기 사이에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미는 자신에게 '그저 실수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 거라고 한다. 그런 참에 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함께 있는 장면을 보게된 것.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떠나 내연녀와 결혼할 생각까지 갖고 있단 걸 알게된다. 이에 토마스는 조한나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랑 헤어지라 말한다. 이미 안그래도 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너질 거라는 것. 그때 조한나가 토마스에게 '니가 아는 게 다가 아니야, 오히려 네 엄마가 원하는 걸 수도 있어'라는 말을 하는 거다. '어쩌면 네 엄마도 네 아빠랑 헤어지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지' 라고. 토마스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그녀를 말리고자 하는데, 토마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랑 헤어지는 것이 어머니에겐 무너질만한 일일 수밖에 없는 거다.
물론 시간은 흘러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헤어지자고, 다른 여자가 있다고 얘길 한다. 이 사실을 알고 토마스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부랴부랴 찾아가지만, 어머니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한나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어머니 역시 나름의 비밀을 숨기고 25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것.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다. 혹여라도 그것이 밖으로 꺼내어지면 토마스에게 상처가 될까봐 꾹꾹 숨기고 참고 살았던 거였는데, 이제 그 비밀까지도 토마스가 다 알아버렸다. 반드시 그것만이 이유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들과 자주 교류하고 넉넉하게 살았음에도 계속 우울해했고, 오로지 토마스만을 바라보며 살았더랬다.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데 두고 다른 사람과 사는 것은 내내 삶을 우울하게 만들수도 있어...
그런 한편 어머니가 25년을 내내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던 남자도 마찬가지.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이기 때문에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홀로 그 긴 세월을 살아간다. 그렇게 허구헌날 술을 마시면서 그녀를 그리워만 한다... 나는 사랑에 미쳐서 사람이 한없이 우울해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버텨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내 바람일 뿐, 이렇게 내가 간절히 원하는 단 하나의 상대와 내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는 한없이 절망속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는 거다. 무엇보다 내가 그걸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나는 한 달 내내 울며 보낸 적이 있었다. 걷다가 울고 음악 듣다 울고 지하철 안에서 울고 산에서 울고.... 아아,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아픈 날들이었지. 나는 사랑을 잃고 씩씩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사랑을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마음도 너무나 잘 알겠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떡해야 한다? 사랑을 지켜야 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 둘 사이에 끼어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좀 애틋한 영화가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했을 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우울해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인생 뭐냐
사랑 뭐지?
그건그렇고, 남자주인공은 넘나 매력없어... -0-
보다가 케이트 베킨세일 머리 너무 이뻐서 아아, 나도 머리 길게 웨이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저 영화 보기 바로 직전에 컷트친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렇게 머리 기르려면 한 십 년 걸리려나.... 그러면 내 나이가 몇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내가 오늘 아침에 알라딘 주문해서 식판이 올 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간을 넣지 못했다는 게 넘나 슬프다.... 아니, 루시 바턴도 못샀는데 무슨 형제 또 나오고 그래? ㅜㅜ 좋으면서 싫고 싫으면서 좋고 그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