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절반정도 읽은 지금, 계속 읽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갈등중이다. 작가소개만 읽어도 스트레스가 작렬해서 내가 이걸 계속 읽으면서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무언가 싶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내용들이 모르는 내용들도 아니고.


사람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듯이더 예민한 지점, 더 날카로워지는 지점들이 다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나를 괴로운 상태에 두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이다. 스트레스 받는 것도 너무 싫고, 나는 나를 최대한 편한 상태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서, '행복과 더행복'에 있어서 더행복을 선택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슬픔과 슬픔'이 있다면 이중에 어느것이 '더슬플'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최대한 나를 밝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사람이야.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봐도 내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게다가 나는 잔소리를 싫어한다고 이곳에서도 수차례 얘기한 바 있다. 나는 잔소리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서, 잔소리 듣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던 이유는 선생님들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였고(숙제를 해오면 되지, 왜 안하고 잔소리 들을까 나는 늘 궁금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좀 더 일찍 도착하는 것은 늦은 뒤 변명하는 게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난 약속 시간에 늦게 오면서 변명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늦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 상대여도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왜 미리 준비해서 시간 맞춰 나오지 않고 늦은 뒤에 변명을 할까, 라고. 물론 저마다 늦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긴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도 늦은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늦는 사람은 항상 늦는다. 지금은 퇴사한 동료중에 친구들과 약속을 해놓고서도 항상 시간 맞춰 나가지 않는 동료가 있었다. '약속시간 다 됏는데 왜 안가?' 라고 하루는 내가 답답해 물어보니, '여러명 만나는건데 지들끼리 놀고 있겠죠~' 이러는 거다. 나는 그런 반응에 좀 기절하는 사람이야... 너는? 너는 약속 당사자가 아니야???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만큼 꼭같은 크기로 잔소리를 하기도 싫다. 그래서 잔소리 하게 만드는 상대를 가급적 연인으로도 친구로도 두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잔소리라는 게 하면서도 스트레스 받는 거거든.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상대는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사람. 잘 챙겨먹고 잘 챙겨입고 그러니까 자기몫의 삶을 충실히 잘 살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월등히 돈이 많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한 달에 얼마라도 자기 밥먹을 돈을 벌어서 그 안에서 자기 삶을 계획적으로 꾸려나가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은 것이다.


스트레스는 반드시 잔소리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왜 나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지, 왜 나는 이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진이 빠지지, 왜 이친구를 만나면 감정이 너덜너덜해지지, 같은 경우가 당연히 생긴다. 내가 누군가와 만난다는 건 나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고. 이것들을 동등하게 상대와 내가 쓰면 괜찮은데 한쪽이 늘상 더 많이 쓰게 되면 그 관계는 문제가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한쪽이 늘상 더 많이 쓰는 게 감정일 때 생겨난다. 만나고 나면 내 감정을 탈탈 털어가버리는 것. 그게 바로 만남에서의 감정노동 아닌가. 나와 너가 좋자고 만나서 함께 웃고 에너지를 얻어가는 관계여야 하는데, 앞으로의 시간들에 힘이 되어주는 만남이어야 하는데, 나를 지쳐버리게 하는 만남, 내 에너지 쏙 빨아가는 만남. 나는 싫다. 친구란 이름으로, 연인이란 이름으로 한쪽의 일방적 에너지를 끌어모아 쓰는 일.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이 책,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의 저자 '제마 하틀리'는 가정 내에서의 '감정노동'에 대해 말한다. 감정노동이라는 것이 승무원이나 간호사같은 서비스업종의 경우 매우 심하지만, 이렇게 공적으로 드러나는 감정노동이 아닌, 가정을 잘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쓰는 것. 내 가족과 친척들의 행사를 챙기고, 아이들의 유치원이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학부모 행사에 참가하고,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병원을 예약하는 그 모든 일들. 이것이야말로 가정내에서의 '감정노동'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대체적으로 여자의 몫이다. 아마 여자들은 대부분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냥 듣는 순간 알 것이다. 제마 하틀리도 여자들과 가정 내에서의 감정노동에 대해 얘기할 때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상대와 대화가 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들은 말해주고 말해주고 또 말해줘도 대화가 통화지 않는다고. '나 잘하는데 왜그래?'라는 반응일 뿐.



그러니까, 이 책의 작가소개만 읽고서도 나는 급피로가 몰려오는 것이다.





모든 노동으로부터 쉬고 싶었던 아내를 이해하지 못해 '내가 욕실 청소했어, 잘했지 우헤헤헤' 하는 남편이라니, 정말이지 끔찍하다. 어질러진 거실에서 세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내가 욕실 청소를 하진 않았으니까' 나는 편안하고 행복한가. 나는 이 작가소개만으로도 너무 빡이 친거다. 아내가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있는데 굳이 저러는 건 또 뭐람. 본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일화가 나온다. 저 날 남편은 청소업체를 부르는 대신 자신이 청소를 했고 어머니날 선물로는 아내에게 반지였나 팔찌였나..목걸이었나..뭐 그런 걸 선물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기뻐하지 않으니 남편은 어리둥절.


그냥 원하는 걸 해주면 되잖아. 왜 원하는 걸 말했는데도 그대로 안해주고 그러면서 '왜 안기뻐해?' 이러는 거 너무 진짜 개어리둥절...







절반까지 읽었는데 책속 등장하는 여성들, 저자와 인터뷰하거나 대화한 모든 여성들이 하나같이 가정 내에서의 감정노동 때문에 지쳐한다. 바로 위의 111 페이지에서는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하는 아내에게 응 시간 잡아 얘기해줘~ 라고 한다. 어떤 상담사가 좋을지 알아보고 전화를 걸어 시간을 예약하는 일 모두, 자연스레 아내의 몫이다. 이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아내에게 '니가 상담받자고 했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잖아, 뭐가 문제야?' 가 나오겠지. 정말로 절대 이해못하는건가. 절대 이해못해서 이해 못하는건가, 아니면 이해할 필요가 없는 건가.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사례는 무수히 나온다. 그러니 나는 너무 피로하고 지친다. 이런 걸 굳이 읽어 뭐하나 싶다. 저자는 그런 사례들을 얘기하면서 '그러므로 여자는 감정노동의 크기를 줄여야 하고, 남자는 지금보다 더 감정노동을 하도록 애써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한다. 나 이거 아는데, 굳이 읽어야 하나.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그리고 이 사연들의 여자들은 놀랍게도 자기 남편이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는 더 착하고 좋은 남편이라고 한다.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설거지도 잘하고,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기타 등등. 그렇게 다른 남자들보다 더 좋은 남편인데 이 아내들은 지쳐있어.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1. 다른 남자들보다 더 다정하고, 더 집안일 많이하고, 더 자상해도 왜 아내들은 지치는가.

2. 다른 남자들보다 더 좋은 남편이라고 이 모두가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다른남자들'은 누구의 남편인가? 어쨌든 내 남편 아닌데, 그러면 누구의 남편이 그 '다른 남자들'이란 말인가.


어차피 내 남편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남자들'중 하나가 아닌가. 그렇다면 '더 좋은 남편'은 대체 무슨 의미이고 어디에 있나? 대전에 있나 대구에 있나 부산에 있나.....



고등학교때 사회문화 선생님이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어릴 적에 우리는 아빠로부터 '아빠 빼고는 남자들은 다 늑대야'라는 말을 듣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그 아빠는 내 아빠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빠는 아니지 않냐, 어차피 나가면 그냥 남자다, 라고 한거다. 뼈를 때리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뭐, 아빠라고 해도 짐승이 되기도 하는 게 현실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감정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편이고, 그래서 스트레스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물론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그런 상황에서 나를 빼내오고 싶은 사람이다.


저자는 사실은 이 가정내에서의 감정노동이, 돌이켜보면, 결혼하기 전에 그러니까 연애때부터 시작되온 거라고 말한다. 연애를 할 때부터 우리는 상대방의 기분을 캐치하려고 노력하고,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심하면서, 그러니까 상대보다 내가 훨씬 더 그런 것들을 따져가면서 감정노동을 시작하고 있었다고. 이 책에서의 저자는 결혼 전부터 그리고 결혼 후에도 친척들의 행사나 친구들과 함께 모이는 만남의 스케쥴이나 가져갈 음식, 선물들을 자신이 챙겼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게 연애시절, 그리고 결혼 초기에도 으레 그렇게 해오면서 그것이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고 쌓일수록 이것들은 내 안에 그대로 축적된다. 그래서 '더 좋은 남편'이라고 하면서도 펑- 상담이 필요한 아내가 되어버리는 거다.



나는 나의 연애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이내 괴로워졌다. 그 안에서 나에게 기대되었던 것이 감정노동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의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그 연애로부터 빠져나왔다. 김 숨이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라고 말한 것처럼, 나에게 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좋아 신이지, 후훗, 그야말로 내 감정노동을 바랐던 게 아닌가. 그를 만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내 진이 빠졌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점점, 점점 감정이 너덜너덜해졌었다. 내 에너지를 너무 쪽쪽 빨아먹어서, 헤어지기 전에는 결국.... 그만두자.



인정하기 싫지만, 좋은 연애가 뼈에 새겨지듯이 나쁜 연애도 뼈에 새겨지는 것 같다.



책속의 아내들이 얘기하는 이 '좋은 남편이 있지만 감정노동으로 지치는' 얘기들을 내가 계속 읽어내야 할까. 절반 읽었는데 이지경이면, 앞으로 남은 절반에서 내가 얻어갈 것은 무엇인가.. 아 진짜 졸라 지쳐버려.. 버터링쿠키나 먹어야겠다. 휴..




어제 트윗을 통해 '뭘 해도 잘 안 되는 사람의 습성'에 대해 보게 됐다.


늘 주의가 산만하다

지금 뭘 하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뭘 할 거란 얘기만 한다

부정적인 것만 본다

시한 안 지킨다

조언 안 듣는다

게으르다

호기심이 없다

불친절하다

쉽게 포기한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소일한다.



이거 보면서 '아, 나는 뭘 해도 될 사람이다 진짜' 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냐하면 내가 어제부로 드디어!! 플랭크 한달 도전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꺅 >.<





으앗 진짜 멋지다. 나는, 나도 몰랐는데,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할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해내는 사람. 우후후훗. 몇 해전에 한 알라디너로부터 '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댓글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 댓글을 읽고 '응?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하고 갸웃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해에는 유독 내가 말만으로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1년간 완독해온 것도 그렇고, 이렇게 플랭크도 한달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해온 것도 그렇고. 진짜 짱이다.


게다가 한달째인 어제는 꽉채운 2분이었고, 나는 그 2분을 무려 두 세트나 해냈다. 흑흑 ㅠㅠ 두세트 째에서는 땀을 비오듯 흘렸어. 정말이지 너무 고생많았고 흑흑 장하다 ㅠㅠ

나는 네이버에 따로 일기도 쓰고 있는데, 거기 보면 1분10초를 하던 때에 '내일은 어쩌나, 이걸 할 수 있나' 두려움 가득한 일기를 써두었더라. 그런데 이거봐라, 2분도 해내는 사람이 되었어. 흑흑 ㅠㅠ


사실 라운드 숄더 때문에 시작한 플랭크였고, 그리고 한달간 시간 늘려가며 꼬박꼬박 했으니 뭔가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몸이 뭐 변한건지는 모르겠어? 그치만 윗배가 늘상 긴장해있는 상태인 것 같다. 약간의 긴장을 가진 상태. 오늘 회사동료에게 말하니 '차장님 복근 생긴 거 아니에요?' 하는데,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에 거울 봤는데 그냥 배만 많더라고' 답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짱멋져. 한달간의 스스로 내린 미쎤이었고, 그리고 잘 해내었으니 이제 나는 더이상의 도전을 하진 않겠다. (응?) 그래도 오늘 아침에는 이 윗배의 약간의 미미한 긴장감이 썩 마음에 들어서, 이걸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분은 빡세고, 앞으로도 시간 나는대로 1분 플랭크는 해주자, 라고 마음 먹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 출근 준비 하다말고 갚자기 엎어져 1분 플랭크 하고 왔다는 사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육맨 되자, 빠샤!!




몇해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사주 봐주던 쌤은 남자분이셨는데, 나에게 그런 얘길 했더랬다. '너는 너에게 나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가급적 뒤로 미룬다, 너의 우선 순위는 자아이지 결혼이 아니다' 라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그런 니가 만약 결혼한다면, 너는 행복하게 잘 살거다, 왜냐하면 너는 너에게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라고. 뭔가 말장난 같지만 또 뭔지 너무 잘알겠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선택 앞에 있어서 항상 '이것이 나를 괴롭힐 것인가', '나는 후회하지 않을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고, 그런 내가 내리는 선택이 대체적으로 나에게 나쁠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때 사주쌤은 결혼에 대해 얘기했지만, 나는 결혼이 아닌 무엇을 넣어도 내게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쁜 것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 나를 고통과 괴로움에 놓지 않기 위해 살아갈테다.


내가 내 선택을 신뢰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맨날 내가 나한테 근사하다고 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터링쿠키 너무 맛있는 부분.. *^^*



남편이 뒷마당을 청소해주었으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집안의 평화를 유지하고 싶고, 그러려면 나의 짜증이 드러나지 않도록 목소리 톤을 조절해야 한다. 남편은 일일이 짚어주지 않고서는 해야 할 일을 먼저 알아내지는 못한다. - P17

롭은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결혼은 낡은 관습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은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난 언젠가는 하고 싶은데." 나는 건조하게 말하면서 트럭의 바닥 깔개에 내 하이힐을 묻었다. 나는 무표정으로 내 앞의 도로만 바라보았다. - P60

감정노동은 그 일 자체로 보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감정노동을 원하면서 그것을 우리 성품이나 성격의 일부로 보고 싶어 한다. 우리를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피곤한 노동이 아니라 애쓸 필요 없고 즐겁고 수월하게 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65

의식적이건 아니건 남성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반면, 여성들은 존재의 한 방식으로서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등한 관계에서 행복하게 시작했다가 몇 년 후 서로를 향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품게 되는 것이다. - P75

임신을 하면 신체적으로도 피로하지만 정신적·감정적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모든 세세한 사항들, 즉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뭐가 필요할지 고민하는 건 모두 내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정보들로 가득한 백과사전을 이고 다니면서 나의 임신한 뇌가 그 정보를 절대 잊지 않도록 해야 했다. 롭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그도 신생아 준비를 도와주는 잡지 기사를 읽을 수도 있고 홈메이드 이유식 요리법과 저장법을 배울 수도 있고 내가 산후조리를 할 때 필요한 패드시클Padsicles(회음부 콜드팩) 만드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의 머리를 스친 적도 없었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을 대신해 나 혼자 공부해야 했다. - P83

나는 남편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통솔권을 위임하려 했고 내 기대치를 조정하고 내 기준을 낮추려고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둘의 기준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균형을 찾으려 하지만 균형은 늘 우리 손을 빠져나가고, 그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다. 신경 쓰는 사람이 나라서 그렇다. - P109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그는 나에게 완벽한 남자이고,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자발적으로 결혼이라는 노예 상태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루피 소프Rufi Thorpe는 <엄마, 작가, 괴물, 하녀>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P129

얼마 안 되는 수입을 아껴 저축하고 빚까지 갚아 나갔다. 전심전력을 다해 육아와 살림에 매진했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할 것만 같았는데, 캐치에서 아르바이트로 벌던 적은 보수마저 없었으므로 내 자아 가치는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물론 전업맘은 퇴근이 없는 일이기에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나를 소진시켜가며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 일에 아무리 많은 감정노동을 들인다 해도 남편의 일과 같은 방식으로 보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내 평생 이보다 더 열심히 일한 적은 없었지만 나의 사회적 위치는 이보다 더 낮을 순 없었다. - P174

"평등한 커플이라 해도 그들의 사고는 이 사회에 종속되어 있어 감정 교환 면에서 남녀는 동등해질 수 없다. 남편만큼 수입도 많고 존경도 받는 여성 변호사의 남편은 아내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진보적인 관점과 자신의 가사노동 참여에 대해 아내가 고마워해야 한다고 느낀다. 아내의 주장이나 바람은 언제나 과해 보이고 그의 바람은 낮아 보인다. 더 큰 시장에서 대체로 남자는 무료 가사노동을 공급받는다. 그녀는 제공받지 안는다. 사회적 맥락에서 그녀는 그런 남자를 만났으니 운이 좋은 것이다. 따라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오는 억울함을 참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우리는 도움을 받고 있으니 운이 좋다. 남자는 이미 갖고 있는 자격이다. - P181

여성에게 일을 그만두는 건 선택이 아니지만 감정노동에서 벗어나는 것도 실행 가능해 보이지 안는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성에게 떨어진다. 어떤 일을 하건, 경력을 쌓는 데 총력을 기울이건, 가정을 위해 희생하건, 모두 감정노동과 관련하여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유예를 용납하지 않는, 이 보이지도 않지만 에너지를 모두 소짙시키는 일을 해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우리의 시간, 정신적 용량, 감정적 에너지를 끝도 없이 요구한다. 우리는 이 일을 웃으면서 해내야 한다. 여자들이 "원래" 그런 일을 잘한다고 말하니까. 하지만 어떤 일을 원래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감정노동이 우리 품에 떨어진 이유는 수 세기 동안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진 사회적 관습 때문이다. 그 관습은 전업맘, 워킹맘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여성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해친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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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9-12-17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락방님! 한다면 하는 사람!!
조금 다른 얘기지만, Infp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가치 판단에 있어 실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버터링 맛있나요? 저는 아직도 시험기간 ㅠ

다락방 2019-12-17 14:12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님, 저는 ESFP 입니다. ㅋㅋㅋ 가치 판단에 있어 실수가 없는 부분은 아마 FP 가 가져오는 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건 믿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터링 맛있어서 흡입했어요. 헤헷.
시험 잘 봐요, 클래비스님!

2019-12-17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9-12-1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출간 됐을 때 제목만 보고도 뒷목 잡게 되더라고요.
근데 이런 류의 제목 좀 별로에요. 뭐랄까, 남자들은 원래 그래~ 남자들은 원래 철이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그들의 그런 못된 속성을 오히려 정당화해주는 느낌???

암튼 저자 소개에 실린 글만 봐도 딥빡이네요.

플랭크 한 달 도전 축하해요. 이분 뭘해도 성공하실 분이여... ㅋㅋㅋㅋ

다락방 2019-12-17 14:15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이 이 책의 제목으로 어떤 걸 느끼신건지 충분히 짐작하지만, 이게 그런 내용이 아니기는 합니다. 아니지만, 저는 절반쯤 읽은 지금 이 책 읽기를 중도포기 하렵니다. 제가 대체 이걸 왜 읽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스트레스만 가득해지는 글을.. 그냥 여기 나오는 아내들 어깨 붙들고 흔들고 싶어요. 왜 결혼했냐고.. 아 너무 빡쳐. 뭐, 그런 거 말고도 기쁨과 즐거움이 그 안에 있겠지요. 어쨌든 저는 더이상 감정노동하지 않는 남자들에 대한 이 이야기를 읽지 않겠습니다. 저자 소개에 실린 저런 사례들이 꼭지마다 나와서 저를 빡치게 해요 ㅋㅋㅋㅋㅋ


네, 저는 뭘 해도 성공할 사람입니다. 으하하하. 어떻게 플랭크 한달을 해낼 수 있을까요? 진짜 대단해...(제삼자화 시키기 ㅋㅋㅋㅋㅋ)

심술 2019-12-1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터링쿠키는 최고의 진통제입니다.

다락방 2019-12-17 15:37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쿠키류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미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맛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ㅜㅜ
 

주말에 치킨을 시켜두고 와인을 마시면서 텔레비젼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볼 게 없었다.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세계여행 프로그램이나 보자' 라고 했고, 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대신 <세계견문록 아틀라스>를 선택했다. 먹는 거 보고 싶은데 뭐 있을까 고르다보니 '국가비'가 '페루맛기행'을 했단다. 사실 이거 예전에 한 번 본건데, 그래도 이거 보자 엄마, 하고는 페루 맛기행을 틀어두었다. 국가비는 쉐프이고 요리를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페루의 전통 음식점에 들러 페루 사람들이 권하는 음식을 먹는다. 총 3부작이었는데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본 건 3부였고, 거기에서는 아주 통통한 애벌레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꿈틀꿈틀 살아있는 애벌레를 기름을 두른 팬에 튀기는 거였다.


이 장면의 모든 게 끔찍했다. 커다란 애벌레도 싫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도 싫고, 그걸 뜨거운 기름에 넣고 튀기다니, 애벌레한테 대체 왜이러는가 싶었다. 엄마랑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끔찍하다고 했다.


으앗, 끔찍해, 저런것까지 먹으면서 살아야해? 라고 투덜거리는 내 앞에는 치킨이 놓여있었다.



그 회차를 마치고 선택한 2부였는지 1부였는지에서는, 하아, 기니피그를 구워 먹는 게 나왔다. 기니피그를 통째로 구워서 기니피그 형태가 그대로 있었다. 마치 생쥐같기도 하고 토끼같기도 한 기니피그를, 페루 사람들은 길렀다가 먹는다고 했다. 먹기 위해 기르는 거였다. 아니, 자기가 길러놓고 어떻게 그걸 구워 먹을 수가 있어. 통째로 구워진 기니피그를 앞에 두고 국가비는 좀 망설였지만, 이내 고기 냄새도 나지 않고 먹을만하다고 했다.


엄마, 저렇게 통째로 그 모양이 그대로 보이는 걸 대체 어떻게 먹어. 그렇지만 또 먹다보면 고기 맛있다 할지도 모르지..



라고 말하는 내 앞에는 치킨이 놓여있었다. 닭을 튀긴거였다. 닭을 죽이고 털을 뽑아 뜨거운 기름에 넣고 튀긴 치킨. 나는 닭을 죽여 만든 치킨을 먹으면서 저기 저나라의 기니피그를, 애벌레를 먹는 게 끔찍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술안주로 치킨을 먹고 있었던 거다.



페루의 시장에서는 소의 혀를, 불알을, 심장을 팔고 있었다. 이야, 인간들 진짜 별 걸 다 먹는다, 하면서, 나는 치킨을 먹고 있었다.




나는 뭐야?

나는 도대체 뭐야?

내가 어떻게 감히, 애벌레를 먹는게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어? 기니피그를 먹는 게 끔찍하다고 말하는 게 나한테 가당키나 해? 닭튀김을 먹고 있으면서?

나는 뭐야?



'멜라니 조이'는 닭튀김을 먹으면서 기니피그 먹는 걸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인식'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쇠고기와 개고기에 대해 이처럼 완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인식(perception)'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종류의 고기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그것들 간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다. (p.13)


















이 책을 사둔지 오래였는데 읽기를 주저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도 역시 사둔지 오래인데 저 멀리 밀쳐두다가 중고로 내놨다.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 싶은 마음 그만큼 읽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아직 사지도 않았다. 그렇다. 나는 이것들의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제대로'알기 싫었다. 아는 것은 고통이고, 알게된 후에 그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알아, 아는데, 알아서 알기 싫어' 라는 마음이 있었던거다.


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이런 나의 마음까지도 간파했다. 짐작하지만 알기 싫지, 그러니 고기를 먹어도 되는 이유들에 대해 합리화 하고만 싶지, 하고 자꾸 나를 쿡쿡 찌른다. 이 책에서만큼은 그렇게 찌를 때마다 어김없이 아팠고, 여기저기 찔리고 말았다. 기니피그를 어떻게 먹냐고 야유하면서 나는 닭을 뜯고 있었다. 그뿐인가, 며칠전에는 양꼬치도 먹었는걸. 양도 먹고 닭도 먹고 돼지와 소 먹기를 사랑하면서, 그런데 왜 기니피그는 안된다고 하는가. 기니피그를 먹는다면 '덜 도덕적'인가. 나는 기니피그랑 애벌레를 먹지 않으니 그들보다 뭔가 더 나은 것인가?


그럴 리 없잖아?



그러나 어느 수준에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다. 식육 생산이 깔끔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업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고기가 동물에게서 나오는 줄은 알지만 동물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단계들에 대해서는 짚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을 먹으면서 그 행위가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는 수가 많다. 이처럼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만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는 의식을 못하는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도록 조직되어 있는 게 바로 폭력적 이데올로기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이 같은 현상은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육식주의의 요체다.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무언의 계약이 이런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내재한다. 물론 축산업계도 자기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그 일이 쉬워지도록 우리 스스로가 돕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야외의 평화로운 농장에서 산다고 그들은 말하는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임에도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처럼 행동하는 까닭은 우리 대부분이 의식의 어느 차원에서는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p.95)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더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진실을 애써 보려 하지 않았다. 들여다보면 내가 불편할까봐 그랬다. 그래서 애써 고기를 먹는 나를 합리화했다. 침묵은 억압하는 쪽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랬다. 폭력에 눈감았다. 계속 고기를 먹고 있는 나인채로, 불편함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느 부분에서 분명한 약자이다. 여자라는 입장에서 그렇고 그래서 평등해야 한다며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니, 평등주의자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너는 성차별주의자야? 라고 반문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역시 그런 질문이 되돌아올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너는 육식주의자야?


성차별주의자냐는 물음에 대부분이 아니라고 펄쩍 뛰는것처럼, 나 역시 '육식주의자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라고 펄쩍 뛰겠지만, 그러나, 육식주의자가 아니라면,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침묵하면서,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알려 하지 않으면서 동물에 대한 폭력에 눈 감고 있는, 뒤돌아 서 있는 나는, 그렇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내가 육식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아니, 나는 고기를 먹기는 하지만 육식주의자는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나? 이건 마치 나는 성평등을 주장하진 않지만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야, 하는 것고 다름없잖아? 내가 그들과 다를 게 뭐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성차별주의자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육식주의자다, 라는 것에도 역시 동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기 먹는 일을 비윤리적이라고 믿는 사람을 채식주의자라고 한다면, 고기를 먹는 일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채식주의자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면, 고기를 먹는 쪽을 선택한 사람은 무엇이냐는 얘기다.

현재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이를 때 '고기 먹는 사람(meat eater, 한자로는 '육식자[肉食者]'라 할 수 있겠다.-옮긴이)'이라는 말을 쓴다. 한데 이 용어는 과연 정확한가?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식물(植物)을 먹는 사람(plant eater)'이 아니다. 식물만을 먹는 것은 신념체계에 바탕을 둔 '행동양식'이다. '채식주의자'라는 용어는 핵심적 신념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주의자'라는 접미사는 일정한 주의, 즉 일련의 원칙을 주장하고 지지하며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기 먹는 사람'이라는 말은 육류 소비 행위와 그 행위자를 분리한다. 고기 먹는 일이 당사자의 신념이나 가치관과는 무관한 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고기를 먹는 사람은 신념 체계의 '바깥에서' 그것과 무관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일이 진정 신념체계와는 별개의 행위일까?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는 게 우리에게 동물을 먹는 일에 관한 신념체계가 없기 때문인가?

산업화한 세계의 대부분에서 육식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선택이다. 생존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고기는 필수적이 아니다. 수백만명의 건강하고 장수한 채식주의자들이 이를 증명했다. 우리가 동물을 먹는 것은 단지 늘 그래왔기 때문이며, 그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동물이란 먹도록 되어 있는 게 아니냐, 즉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먹는다.

우리는 고기 먹는 일과 채식주의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다. 채식주의에 대해서는, 동물과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일련의 가정들을 기초로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식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왜 그러는지 이유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고기를 먹는다. 그 행위의 근저에 있는 신념체계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 신념체계를 나는 '육식주의(carnism)' 라고 부른다(carnism은 저자가 만들어낸 용어다-옮긴이).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다. 육식주의자(carnist), 즉 고기를 먹는 사람은 육식동물(carnivore)과 다르다. 육식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육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육식주의자는 또 잡식동물(omnivore)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인간을 포함한 잡식동물은 식물과 육류를 모두 섭취할 수 있는 생리적 능력을 지닌 동물이다. 그러나 '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잡식동물'이라는 용어도 개체의 생물학적 특징만을 기술하지 철학적 선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육식주의자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는데, 선택은 항상 신념에서 비롯된다. (p.35-37)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육식주의자였다. 그리고 육식주의자다. 이것은 내 인식에 따른 것이었고 또한 내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어떤 동물을 먹는 것은 끔찍하지만, 그러나 어떤 동물은 '자연스럽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먹는 것. 선택에 따라 어떤 고기를 먹는 나는 육식주의자였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주변에 반려견,반려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에서는 나아졌지만, 나는 어떤 동물이든 나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내가 앞으로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그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공동체를 이루든 동거든, 그 사람 역시 어떤 동물과도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이 내 집안에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털을 떨어뜨리고 나에게 그 몸뚱이를 비비는 것은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고양이랑 함께 사는 친구네 집에 가면 고양이가 나에게 올까봐 더럭 겁이 나는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해 나도 이제는 길고양이에게 소세지를 챙겼다 주는 사람이 되었지만(이마저도 그것이 길고양이에게 좋은 게 아니라고 해서 안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동물의 고통을 짐작조차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걸 알기 때문에 더 같이 살기를 꺼려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낚싯바늘이 붕어의 입에 꽂히는 걸 어릴 때부터 자주 봐왔는데(아빠가 낚시를 너무 좋아하셨다), 그 때마다 저 붕어의 입은 저 바늘이 뚫고 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했다. 키우던 병아리가 닭이 되는 시점에 죽었을 때 아빠가 뜨거운 물에 넣었다 털을 뽑는 걸 보고는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먹는 닭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내게 오는 것인가, 아무리 죽었다한들 뜨거운 물에 담가지는 것인가. 동물 학대 영상은 차마 보지 못하고, 얘기로만 들어도 너무 끔찍하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생명에게 그토록 가혹하고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수정 교수님은 일전에 [동백꽃 필무렵]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어릴 적에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아이가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 데리고 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 아이가 앞으로 범죄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동물학대를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동물학대를 끔찍하게 여기면서,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은 과연 '괜찮은' 것이 되는가.



'멜라니 조이'는 우리가 진실에 눈을 감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동물의 고통을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고통스러워질테니까. 그러니 자기합리화로 애써 눈을 돌리며 어떤 동물들을 먹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이 고기가 되는 과정을 읽다보니, 그 과정이, 이미 짐작했다 하더라도,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알겠다. 나는 그 폭력과 학대에 가담한 사람이었다. 동물을 때리고 가두고 고통을 주는 모든 순간들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 개별적 존재들에 대한 고통에 더해, 어미와 자식을 떨어뜨리는 고통까지 더했다. 우유를 먹을 때 우리는 기꺼이 어미와 자식을 떼어놓는 고통을 그들에게 주고 있었다.




소들은 본디 길게는 1년까지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서 대단히 친밀하게 지낸다. 그러나 낙농공장 에서는 보통 송아지를 생후 몇 시간 만에 어미에게서 떼어 놓는다. 젖을 인간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송아지가 어미 소 눈앞에서 끌려갈 경우, 어미는 흥분하여 큰소리로 울어댄다. 그래서 어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가 젖을 짜고, 그 사이에 송아지를 끌어가기도 한다. (p.82)



이 지점에 대해서는 이미 샬롯 퍼킨스 길먼이 [허랜드]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먼저 샬롯 퍼킨스 길먼이 말했더랬다.




"우리는 고기는 물론이고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거든요. 소의 우유는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음식이죠. 우유를 모아서 유통하는 사업의 규모도 상당하고요."

그녀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그린 소를 가리켰다. "농부들이 소의 젖을 짭니다." 그러고는 우유 통과 의자를 그리고 몸짓으로 소 젖을 짜는 모습을 재연해 보였다. "그러고 나면 우유 배달원이 도시로 가져와 운반하지요. 모두가 아침이면 집 앞에 놓인 우유를 받아볼 수 있답니다."

소멜이 진지하게 물었다. "소는 새끼가 없나요?" (허랜드, 샬롯 퍼킨스 길먼, p.88)







동물들이 학대되는 과정, 죽어가는 과정을 맞닥뜨리면서 이제 나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채식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즐겁게 먹고 마시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나와 어떻게 타협해야 할까. 당장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머릿속에 떠올려도 죄다 고기들이었다. 하다못해 쌀국수를 먹으려고 해도 그 안에 고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먹는 일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채식주의자들로부터 채식주의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육식주의를 멈춰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런 내가 뭘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좀 줄여나가는 걸로 일단 선택하기로 했다. 오늘 점심은 무얼먹을까, 고민하고 떠오른 게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었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자고. 그러면 내가 일곱번 고기 먹는 걸 네 번으로 그리고 세 번으로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혼자 먹는 밥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기는 좀 더 쉬울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자리라면 메뉴 선택에 조금 더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겠지만, 혼자 먹는 자리라면 아마 좀 더 쉽겠지. 혼자 먹을 때는 가급적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메뉴로 선택하자. 선뜻 그런 메뉴를 떠올릴 수 없어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차돌된장찌개도 탈락, 김치찌개에도 돼지고기에서 탈락, 순대국도 탈락, 뼈해장국 탈락, 쌀국수 탈락... 죄다 탈락이네. 쌀국수 먹을 때는 아마 주문전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빼고 주세요, 라고. 물론 육수는 고기 육수겠지만.. 그러다 떠오른 게 콩나물국밥이었다. 그래, 콩나물국밥이 있다. 하루는 콩나물국밥으로 된다, 그러나 다음은? 생각하다 보면 하나씩 떠오르겠지. 줄여가보자. 줄여나가 보도록 하자. 그리고 줄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학대받고 폭력에 노출된 동물들의 개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멜라니 조이는 말하고 있다. 나는 힘을 얻는다.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기만 해도 동물과 자신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두 차례 고기를 먹는 사람은 매일 먹는 사람 보다 훨신 적은 수의 동물을 소비한다. 이것은 확실히 동물들에게 도움이 된다. 동시에 당신 자신에게도 유익하다. 가치관과 행동이 전보다 훨씬 조화를 이루는 걸 느낄 테니까. (p.202)



나는 폭력이 싫다. 폭력적인 것과 먼 삶을 살겠다는 내 가치관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려면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동물들의 고통을 짐작한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단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이 부조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동물들의 존재 의미가 자신들의 존재 그 자체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아직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면서 살아가겠다.




이 책에는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책이 언급되는데, 그 내용이 좋아서 읽고 싶어졌다. 내 책장 아직 읽지 않은 책들중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아는 나는, 얼른 가서 책을 꺼내들고 이 트라우마가 그 트라우마인가, 그러니까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인가를 확인해 보았다. 맞았다. 와-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준비해둔 나란 녀자.. 역시 책은 일단 사두고 볼 일이다.


















인식에서의 이런 차이점들은 우리의 ‘스키마(schema, 圖式)‘ 때문이다. 스키마란 우리의 신념과 생각, 인식, 경험을 구조화하는-그리고 역으로 그것들에 의해 형성되는 -심리적 틀을 이른다. 스키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자동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한다. 예컨대 ‘간호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마도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간호사 중에는 남자도 있고 흰 가운을 안 입는 사람도 있으며 병원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잖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유형의 간호사들을 자주 접하지 않는 한 우리의 스키마는 이런 일반화된 이미지를 고수한다. 일반화는 스키마가 자기 고유의 기능을 해낸 결과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드는 엄청나게 다양한 자극들을 검토하고 해석한 뒤 일반적 범주(category)들에 나누어 넣는 일 말이다. 스키마는 요컨대 정신적 분류체계다.
- P16

우리는 동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에 관해 스키마를 갖고 있다. 가령 동물은 포식동물과 그 먹이가 되는 동물, 유해동물, 애완동물, 또는 식용동물 따위로 분류된다. 우리가 특정 동물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그것의 관계-사냥할지, 도망칠지,박멸할지,사랑할지,아니면 먹을지-가 결정된다. 이 범주들 사이에 중복이 있을 수도 있다(포식동물의 먹이인 동시에 우리의 식용동물일 수 있다). 그러나 고기와 관련해 생각하는 한 대부분의 동물은 식용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 P16

어떤 면에서, 채식주의가 육식주의보다 먼저 이름을 얻은 것은 당연하다. 주류에서 벗어난 이데올로기들은 알아보기가 더 쉬우니까. 그러나 육식주의보다 채식주의에 먼저 이름이 붙은 데는 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확고히 들어선 이데올로기가 그 상태를 유지하는 주된 방법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아 있는 주된 방법은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으므로. - P40

우리는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생활방식이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또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수의 신념과 행동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과학혁명 이전에 유럽의 주류를 이룬 신념 중에는 하늘이 지구를 에워싸고 도는 천구(天球)들로 이루어졌으며 지구는 우주의 고귀한 중심이라는 믿음이 포함되었다. 이 믿음은 너무나 확고해서 코페르니쿠스나 그 후의 갈릴레오처럼 반대 주장을 펴려면 죽음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르는 바 주류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지극히 광범하게 퍼지고 확고히 자리 잡아서 그 가정과 관행들이 상식으로 여겨지는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다른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의견이 아니라 사실로 간주되고, 그 관행은 선택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규범이며, ‘원래 그런 것‘이다. 육식주의가 지금까지 이름을 얻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38

이데올로기가 확고히 자리 잡았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 한 예가 가부장제다. 이는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여성보다 남성이 사회적 권력을 많이 갖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다. - P39

채식주의자들은 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먹는 음식을 옹호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보면서 히피나 섭식장애자로 규정하는가 하면, 심지어 반인간적인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채식주의자가 가죽 제품을 걸치면 위선자 소리를 듣고, 일절 착용하지 않으면 순수주의자나 극단주의자로 치부된다. 이처럼 그들의 깊은 감수성은 육식주의 세상의 온갖 편견과 도발에 끊임없이 부대끼고 상처받는다. 육식주의에 순응하여 가장 저항이 적은 길로 가기를 거부하고 소수자로 사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 P146

궁극적으로, 증언하는 일에는 어느 한쪽을 편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규모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희생자 아니면 가해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주디스 허먼은 모든 방관자는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으며, 도덕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이렇게 지적한다.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는다." 증언하는 행동을 통해 우리는 주어진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역할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희생자와 함께 서기를 택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지라도, 허먼이 말하듯이 그들에게 "더 이상의 영광은 없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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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1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한동안은 고기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채식과 관련한 책 중 이 책이 저를 가장 오래 반육식주의자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휴....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회생활하는 동안 꺾이고 말았습니다. -_-;;;

우리나라처럼 경직된 사회에서는 회사에 채식주의자가 있다는 건 다른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더라고요. 저 사람 때문에 회식 메뉴도 마음대로 못 정하고, 점심 때도 눈치봐야 하고 등등. 다들 무언의 압박! 페미니즘처럼 채식주의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를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만들기에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가아지요.그 불편함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든다면야..... 그러나 저도 다시 고기를 먹고 있어서... 채식주의자의 길은 너무나 힘드네요. 하하하;;;

고기 먹고 싶을 때 가끔 이 말을 떠올립니다.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에 나왔던 표현 같은데, 그의 접시에 담긴 비프스테이크를 바라보며 한 채식주의자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은 상처를 먹는군요.˝

다락방 2019-12-16 12:13   좋아요 1 | URL
다른 책을 더 안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이 책은 강력했어요. 굳이 알고 싶지 않아 외면했는데 이렇게 알게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저 역시 채식주의자가 있다고 하면 메뉴 선정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거든요. 너 때문에 이것도 못먹고 저것도 피해야 하고.. 하면서요. 이 책 읽으면서 그건 제가 사회에 페미니스트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수에게 불편한 존재. 그러나 저는 제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요.

저는 잠자냥 님처럼 반육식주의자로 지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주 그렇게 되지는 못할것 같고, 그러나 인지하는 만큼 지금보다 좀 더 멀어지는 삶을 사는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또 희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 때는 육식의 성정치를 사서 읽어보면... ( ˝)

저는 지독한 육식주의자여서 채식주의자들을 되게 불편해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이제는 그 신념에 동의하는 사람 정도로 저를 조절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온 것 같아요. 그래도 갈 길이 멀죠. 아무튼 학대와 폭력을 좀 더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멀어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저는 스테이크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 너무 괴롭네요 ㅠㅠ

2019-12-16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12-1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이치킨버거랑 만두, 치킨 때문에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수는 없겠지만
삼겹살과 스테이크, 삼계탕은 조금씩 줄여가고 있어요, 저는요.
우유랑 달걀이 최우선 과제인데 그건 아직 성장기 아롱이 때문에 자꾸 미뤄지네요 ㅠㅠ
쉽지 않은 일이고.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일이기는 해요. 하지만 사회가 변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건 제 자신의 실천인데, 저도 <육식의 성정치> 읽고 한 두주 열심히 실천하다가.... 에궁...

다락방 2019-12-17 08:05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로 만들지는 못할것 같고요,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도 저한테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할 수 있는만큼만 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 읽다 보면 소는 소대로, 닭은 닭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계란은 계란대로 못먹겠는데 말이죠 ㅠㅠ
저는 그나마 우유는 안먹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유는 제가 소화를 못시켜서..
아무튼 혼자 먹는 점심에는 항상 고민을 해서 메뉴를 선정해야겠어요. 어제도 고민하다가 마라탕 먹었고, 오늘은 콩나물국밥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메뉴는 더 뭐가 있는지 차근차근 봐야겠어요. 저는 최소한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 라고는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도 스테이크가 포기가 안될것 같아요. 저는 혼자 먹는 스테이크를 너무 좋아해서 ㅠㅠ

저도 육식의 성정치 읽고 싶으면서도 계속 구매를 망설이는 게, 그거 읽고 나면 또 후폭풍이 장난 아닐까봐..

육식의 성정치 아직 읽지도 않았지만, 이 책만 읽고서도 채식주의자와 페미니스트를 따로 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휴...

clavis 2019-12-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지기 든 생각인데, 논술보는 친구들이 락방님 글을 많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12-17 14:17   좋아요 1 | URL
아니 클래비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논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고 스스로도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갑자기 논술 보는 친구들이 읽어야 한다 하시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감동이네요. 오늘의 감동 스티커 드립니다. 클래비스님은 항상 저를 너무나 좋게 봐주시지만 아무튼 오늘의 감동 ♡

심술 2019-12-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읽었는데 앞으로 생명공학이 조금만 더 발달하면
세포분열 기술로 고기를 인공생산할 수 있다고 하네요.

동물 죽이지 않고서도 안심,등심,삼겹살,닭다리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게 된다고요.

그 때가 오면 맘놓고 죄책감 없이 스테이크와 삼계탕을 먹게 되겠죠.

다락방 2019-12-17 16:38   좋아요 0 | URL
그 때가 빨리 와서 스테이크 좀 자주 먹고 싶네요 ㅠㅠ
전 지금 간짜장이 너무 먹고싶어서 .. 내일은 간짜장 먹을건데, 그런데 고기를 빼달라고 할까, 그 정도쯤은 그냥 허락할까 엄청 고민중이에요. 어차피 소스에 들어있는건데 뭘 빼달라고 해, 그냥 먹자.. 로 기울고 있긴 하지만.. 하아- 간짜장이 너무 먹고싶어요 엉엉 ㅠㅠ

Jeanne_Hebuterne 2019-12-22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고양이들과 함께 살다가 보니 채식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고기를 확 줄였는데요, 이 글 반가워요. 오랜만에 와도 등대처럼 늘 있는 다락방님 서재도 좋고요.
주변환경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제가 고기를 줄이게 된 건. 대체품이 있다는 것, 같은 지점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 등의 환경의 역할도 있어요. 유제품을 넣지 않는 음식,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내가 장악할 수 있는 정도의 식단이요.
네,, 전 스테이크도 먹고, 생 굴도 먹고, 연어도 먹고, 하프앤 하프를 커피에 곧잘 넣어 먹는 사람이지만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뉴요커에서 했던 말, 요즘 사람들은 고기를 너무 자주 많이 먹는다, 이 말이 엑셀이 되었달까요.
타자의 고통을 내가 감수한다는 그런 문제로 식단과 동물실험, 동물보호 문제를 생각중인 요즘이어요.

다락방 2019-12-22 17:29   좋아요 0 | URL
쟌님, 저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아갈방향은 채식이 아닌가 합니다만, 그러나 제가 너무 약하고 간사한 인간인지라 제가 거기까지 닿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고통스러웠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삼겹살 먹고싶다는 욕망은 불쑥 튀어 나오거든요. 그래서 이 글에 쓴것처럼, 줄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보고자 해요. 의식적으로 혼자 먹는 식사에서는 고기메뉴를 좀 삼가해볼 예정입니다. 그정도쯤은 조금의 노력으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뉴요커에서 했다는 말은 저를 겨냥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너무 고기를 많이 먹어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아예 안먹는 건 아니더라도 조금 줄이는 것으 해볼만하지 않은가, 그래야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곳에 오래 있으면요, 쟌님, 좋은게, 오랜만에 오는 누구와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쟌님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noomy 2019-12-2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이 듬뿍(?) 느껴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의식과 영혼에 큰 균열이 간 후로 나름 채식과 절식을 하려고... 하려고... 하려고... 매 찰나 노력하는 중입니다.-_-;; 마치 죽비를 든 싱어 형님이 떠오르는 그의 글은 ‘고기를 먹는 이유는 단지 고기 맛을 즐기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인 육식을 꼭 해야 하냐며 어제도 식탁 위 제육볶음으로 가는 저의 손끝을 사정없이 내리 치십니다. 아~ 정말 미칠 듯이 힘듭니다. 이놈의 식탐, 육식... 인식과 실천의 공극은 짧을수록 좋다지만 이 문제는 죽기 전까지 실천해야 할 일이니 조금 느긋하게 천천히 같이 갑시다~^^ 기회가 되면 저 책도 한번 읽어볼게요. 그나저나 클린미트는 언제쯤 실용화가 될까요?

다락방 2019-12-24 12:24   좋아요 0 | URL
조금 느긋하게 천천히 가야 저도 엇나가지 않게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며칠전에 콩나물국밥집에 가서는 수란을 주는데 안먹었어요, 하고 바로 반납했습니다. 만약 제가 반납하지 않고 그대로 식탁에 둔다면 어차피 그것은 소비되는 것일테니까요. 소비를 줄여야 결국 학대되는 동물들이 줄어들테니, 아예 식용되기 전에 삼가야 할 것 같아서요. 어제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집에 가서 ‘고기 빼고‘ 달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두부랑 김치를 더 많이 넣어주셨어요. 하하하하.

저는 제가 삼시세끼 매번 다 잘 지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일단 혼자 식사할 때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엊그제는 징버거버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신 진미채김밥을 사먹었습니다. 극히 미미하겠지만, 그래도 제가 혼자 먹는 밥에서라도 소비를 줄이면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천천히 꾸준히 가려고 해요. 기운냅시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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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느껴야 되는지를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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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2-16 11:0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오히려 ‘이상한 남자들만 있는 건 아니야‘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장인물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는데 단편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하게 되더라고요. 뭘 말하는지를 모르겠어요. 단편들이 죄다 그랬어요. -.-

2019-12-1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2-1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사랑 금희언니 ㅜㅜ 세상의 다양한 취향은 참 놀랍고 신기하고 그래요.

다락방 2019-12-17 08:02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올해 사람들이 좋아하든 김초엽 작가에 대해서도 읽고 ‘대체 왜..‘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취향이란 이렇듯 모두가 좋아한다고 나도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흐흣

졔졔 2020-01-0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ㅋㅋㅋㅋ정말ㅋㅋㅋ정확하게 공감해요ㅋㅋ 독서모임에서 읽어가지구ㅋㅋㅋ꾸역꾸역 독후감을 쓰기는 했지만ㅋㅋㅋㅋ정확한 감상은 확실히ㅋㅋㅋ모르겠눼? 였어요ㅋㅋ

다락방 2020-01-03 17:23   좋아요 1 | URL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몰라서 물음표 열 개 되었어요. 저처럼 느끼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라니.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얼음장수 2020-03-0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떠들석해서 김금희를 읽었는데, 좋다 싫다 이전에, 밋밋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문체도 서사도 인물도. 저는 좀 더 팔딱거리고 열기건 냉기건 내뿜는 쪽이 좋아요.

다락방 2020-03-05 14:11   좋아요 0 | URL
얼음장수 님은, 그래서 제 글을 좋아하시는거군요!!! (맘대로 결론내리기 ㅋㅋㅋㅋㅋ)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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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9세의 여자 '브리짓'이 주인공. 그녀는 FBI요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했고, 재혼남 남편에게는 자신이 조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숨겼다.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는 그녀의 상황(그녀의 세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前)남편이 떠났기에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채 실제 자신이 했던 일을 감추었던 것. 상처는 깊었고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으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늘상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솔직하게 보일 수 없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고통이다.



그녀를 닮고 싶고 그녀의 뒤를 잇고 싶었던 현재 FBI 요원 '콜먼'은 FBI가 잡아들인 연쇄살인범의 자백이 거짓일거라 의심하고, 이에 이미 은퇴한 브리짓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브리짓과 콜먼 모두 연쇄살인범을 의심하고 증거를 찾아내지만, 그녀들 주변의 모든 남자들, 똑똑하고 경력도 있고 신뢰도 가졌던 그 모든 남자들은 누구도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들은 위험한 상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소설의 첫시작부터가 59세의 브리짓이 젊은 남자 범죄자와 싸우는 장면이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 마구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브리짓, 싸워서 이겨버렷! 그리고 이 싸움은 내 기대이상으로 브리짓의 승리가 된다.




"경찰 가족이었어요. 아빠와 남동생은 시 경찰이었고, 여동생은 CIA에 있었죠. 여동생인 애리얼과 나도 어렸을 때는 바비 인형을 잘 갖고 놀았는데, 파티에 가는 대신 켄을 약물 중독 혐의로 체포하곤 했어요."
콜먼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은 듯했다. - P198

"…최대의 선은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던데요."
"재미있네요. 맥스 비어봄을 잘 아나 봐요." - P312

꼴이 더 우스워지기 전에 마침내 택시가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내가 택시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사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지나는 모든 모퉁이를 헤아리며, 부디 택시 기사가 암살범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으로 다소 슬프졌다. 기사가 우회전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을 경우 곧장 택시에서 뛰어 내릴 요량으로 나는 차 문의 손잡이를 점검했다.
기사는 무사히 나를 호텔 앞에 내려주었고 난 누구의 도움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 P317

전날 밤에 쏟아낸 자기 연민의 잔여물 위를 뒹굴며 뷔페에서 가져온 것을 먹는 동안 나는 한 주의 날씨를 알려주는 날씨 채널을 켰다(더움, 더움, 더움, 비, 비, 더움, 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지 생각했다. - P319

"데이비드 바이스가 당신에 대해 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고 난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꿈을 꾸게 된다고 하더군." -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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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브리짓과 그녀의 남편이 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였구요. 저희 남편도 책은 읽는데 저랑 선호하는 분야가 달라서 같이 책 이야기 하는 일은 없고, 집에 쌓이는 책만 늘어갈 뿐이네요. ㅎ 연애할 때는 하루키도 좋아한댔으면서..

다락방 2019-12-15 12:00   좋아요 1 | URL
훌쩍 나이를 먹은 후에도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게다가 브리짓은 직업도 직업이지만 스스로 강한 여자라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누군가에게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그런 강한 여자라는 게 참 좋았어요.
 

전(前)애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었으나 언젠가부터 책을 한 권도 안읽는 사람이 되었어. 나를 처음 만나던 그의 나이 스물일곱에도 그는 책을 읽었었고, 책 때문에 나랑 만나게 된거였는데, 그런데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세월이 흐르고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가 내 글만큼은 항상 읽어왔다. 나와 연애하던 시절 그의 아이폰에는 다락방 폴더가 따로 있었다. 거기에는 나의 알라딘과 SNS 그리고 개인 블로그까지 즐겨찾기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내 글들을 빠짐없이 다 읽었고, 그래서 내가 읽은 책을 그가 읽지는 않았어도,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인용해둔 밑줄긋기를 읽고, 그 내용으로 농담을 하는 것까지 우리에게는 가능했다.


어제 페이퍼를 쓰고 나서도 생각한건데, 이렇게 내 글만 읽어도 어느 만큼은 아는 것이 가능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서 잘난척할 만큼은 전혀 안되겠지만(그건 나도 못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안읽었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읽을 수 있잖아. 게다가 얼마만큼은 또 머리에 넣을 수도 있고. 내가 쓴 글에서야 정보값이 별로 없다 해도, 인용문들에서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으니. 그러니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공부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말로 써머리잖아? 그렇지만 지극히 글쓴이의 주관이 담긴 것일테니, 그건 읽는이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고.


전애인은 내가 쓴 글을 읽고 쭉쭉 빨아들이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의 특징을 말하자면, 그것의 출처가 내 글인지 간혹 까먹는다는 데 있었다. 어쩌면 이건 남자들의 특징인건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특징인걸지도 모르겠고. 가끔 내 글에서 읽고 알아놓고서는 나한테 마치 전혀 새로운 걸 얘기하듯해. 나는 혼자 속으로 '그거 내 글에서 본거잖아, 내가 쓴거잖아' 했더랬다. ㅎㅎ


아, 그러니까 무슨 얘길 하려는 거냐면,

책을 읽기 싫다면 책을 읽은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이 좋은 써머리가 될 거라는 것. 물론 '좋고 나쁜'건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지만.



















'이라영'의 《정치적인 식탁》을 읽었다. 내용으로 보자면야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글들이 이 안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이 정갈하게 정리해둔 글을 읽는 것은 또 그대로의 의미가 있고, 정치적인 식탁은 나에게 써머리가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예술을 공부한 사람이라서인지, 본문에 맞는 그림(혹은 사진)들을 삽입했다는 데 있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그걸 보는 게 좋더라. 그러다가 이런 사진을 만났다.





'차별'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실린 저 사진. 아니, 저것은 내가 얼마전에 맥키넌의 책에서 본 바로 그 사진이잖아. 마침 책상에 맥키넌의 책도 있던 터라, 휘리릭 책장을 넘겼다. 자, 여기있다!




'엘리엇 어윗'의 저 사진은 차별, 불평등에 말하는 대표적인 사진이로구나. 엘리엇 어윗의 이름을 내가 외우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이 사진을 본다면 불평등과 차별에 관해 말하는 대표적인 사진이며, 맥키넌과 이라영이 모두 가져왔던 그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크- 너무 좋아. 나 똑똑해... 여기 나온 사진 저기 나온 사진 막 알아가지고 이렇게 다 찍어서 가져와. 세상 똑똑해.. 천재천재...



그러니 책 읽기 싫으신 분들이여, 써머리라도 읽자. 내가 작성한 써머리. 이렇게 천재가 작성한 써머리가 알라딘에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정치적인 식탁 읽다가 빡친 부분을 가져와보겠다. 오늘은 또 오늘의 빡침이 있는 거잖아?

'허난설헌'과 '허균' 평전 모두에 들어있다는 '화담 서경석'의 일화이다.




나의 선친께서는 화담(서경덕의 호) 선생에게서 가장 오래 배웠다. 한번은 7월에 선생 댁을 찾아가니 화담으로 떠난 지 이미 엿새나 되었다 하므로 즉시 화담 별장으로 가는데 가을장마에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여울물이 조금 줄었으므로 겨우 건너서 화담에 이르니 선생은 거문고를 타며 큰소리로 읊조리고 있었다.

선친께서 저녁밥을 짓기를 청하니 선생은,

"나도 먹지 않았으니 내 몫까지 함께 짓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하인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이끼가 솥 안에 가득하였다. 선친이 이상히 여기고 그 까닭을 묻자 선생이,

"물이 막혀서 엿새를 집사람이 오지 못했기 대문에 내가 오랜 동안 식사를 못하였다. 그러니 분명 솥에 이끼가 끼었을 것이다."

하므로, 그 얼굴을 바라보니 조금도 굶주린 기색이 없었다. (정치적인 식탁 재인용,P.53-54)



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쳐돌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집사람이 안오면 솥에 이끼가 끼도록 밥도 안해쳐먹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자라지만 집에 온 손님한테 밥하라고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배가 안고파도 솥은 씻어서 좀 말려둬야지 이끼 끼게 내버려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 진짜 대박 상실했다. 이라영도 지적하지만, 이 평전에서의 저 일화는 '엿새를 굶고도 굶주린 기색이 없는' 화담의 굳건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P.54) 것이지만, 이라영도 빡치고 나도 빡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험한 말 나온다.



그러고보니 최근 지인이 겪은 일화도 생각났다. 열흘간 여행을 마치고 들어왔더니 남편이 열흘동안 설거지를 안하고 그대로 쌓아두었다는... 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이거 실화고 리얼이고 팩트야. 참나원. 열흘동안 설거지 쌓아두는 그 마음은.. 뭐야? 아내가 없다고 밥을 안해먹으면 안해먹는대로 꼴보고 싫고 걍 굶어죽어라 이런 마음 되지만, 설거지를 안했다니 또 그건 그것대로 살겠다고 쳐먹긴 하고 씻지는 않냐, 또 이런 마음 되는 것이다. 하아-


















얼마전에 '임지연'의 필모를 보고 원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 《럭키》를 보게되었다. 임지연의 등장부터 나는 너무 실망했다. 가슴골이 보이는 옷을 입고 요가를 하면서 임지연은 등장했다. 하아- 왜 임지연을 저렇게밖에 쓰지 않는가. 왜 저런식으로 등장하는가. 끝까지 임지연이란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범죄를 목격한 목격자로 숨어 살고 있는데, 그녀를 지키기 위해 킬러인 형욱(유해진)이 애쓰는 거다. 그러나 형욱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재성(이준)이 형욱 행세를 하며 형욱의 집에 살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임지연을 보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휴...

임지연 좀 그렇게 예쁜 여자로만 쓰지 말아라, 영화들이여.. 좀 제대로 좀 해봐요, 좀.... 이 사람에게 좀 생생한 캐릭터 좀 부여해줘!!


그건그렇고,


이준 나오는지 모르고 봤는데 이준 나오네? 이준이라면, 그 엠블랙이었나, 한창 내가 군무 즐겨보던 시절에 Y 좋아했었는데...그때 이준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극중 형욱은 유능한 킬러이며 돈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산다. 재성은 무명의 엑스트라 배우이며 매우 가난해서 월세도 내지 못하면서 산다. 월세 재촉도 힘겹고 가난한 것도 힘겹고 재성은 죽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월세 재촉하러 왔던 집주인이 냄새난다고 하는 말에, '씻고 죽자' 면서 대중목욕탕을 향한다. 거기에서 목욕탕 바닥에 미끄러져 기억을 잃게 된 형욱을 알게 되고, 그사람의 옷을 입고 그 사람의 차를 타고 그 사람의 집에 가 그 사람인듯 부자의 맛을 즐기며 살게 되는 거다.


재성이 가난했기 때문에 우울했을 것이고 그것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까지 심각해보였기에, 그래서 재성의 집에 쓰레기통 이백개 엎어놓은 것처럼 지저분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청소의욕을 느끼지 못한채로 살았을 것이다. 자기 몸도 씻지 못하는데야 뭐 집 청소를 하겠어. 그러나 재성은 크고 잘 정리된 집에 들어가 어마어마한 현금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집도 아닌 남의 집에 들어가 남의 돈을 쓰면서, 거기서도 그 깔끔한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쓰레기통 엎어놓은 것처럼 만들어. 반면, 형욱은 늘 깔끔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재성이려니.. 생각하며 옥탑방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너무 더럽고 지저분한거다. 그는 그 집을 싹 치우고 깨끗하게 지낸다. 기억은 안나지만 나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게다가 형욱은 자신이 단역 배우라길래 드라마 촬영장에 갔다가 처음에 연기를 못한다고 엄청 잔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의 성공을 바란다는 걸 알게 되고는 미친듯이 노력한다. 발음교정부터 시작해서 연기에 필요한 것들을 습득해서 노력노력노력해서 인기있는 배우가 되어버리는 거다. 뭐, 노력한다고 갑자기 무명의 배우가 유명한 배우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설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성격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가난해서만이 아니라 그냥 크고 깔끔하고 돈 있는 집에 가도 지저분하게 만들어버리는 재성의 성격. 어느 집에 살든 깔끔하게 정리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하고자 하는 바를 최선을 다해 하려고 하는 형욱의 성격. 외모로만 보면 더 젊고 잘생긴건 이준이지만, 나는 극중 이준이 너무 싫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것도 안하면서 불평불만만 하는 캐릭터 너무 싫어. 진짜 저런 외모라도 싫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이렇게 된것이야.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극속으로 들어가 내게 유해진과 이준 중에 누구를 선택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고민없이 유해진이다. 어휴, 어떤 집이든 청소 안하는 거 너무 진짜 꼴보기 싫음 ㅋㅋㅋㅋㅋ


누군가 뭔가 잘한다면, 거기에 대해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너는 그거 잘하는 거 부러워'하는 거 진자 세상 부질없지 않나. 극중 형욱은 김밥집 알바조차도 현란한 칼솜씨 덕에 잘해낸다. '너는 칼질 잘하니까 김밥집알바를 해도 돈을 잘벌고 부러워' 라고 부러워만 하기전에, 칼질을 연습하는 것이 더 소용있는 것이다.



















어제는 치킨을 포장해 가서 와인을 따랐다. 그리고 무얼 볼까 하고 텔레비젼 리모콘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볼 게 없어. 그래서 나의 사랑 '맥켄지 데이비스'의 작품 중 아무거나 하나 보자, 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다.


철없는 남자 세 명의 이야기여서 빻은 대사나 행동들도 나오고.. 그래서 으윽 보지말까,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그래도 '맥켄지 데이비스가 나오니까...' 하면서 봤단 말이야? 그런데 이 영화에서 무려, 아이고, 보기를 잘했지, 맥켄지가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다.


맥켄지님..

맥켄지여..

님은.. 누구십니까. 사랑합니다.

파티에 가서 눈맞고 싶어요, 맥켄지 당신과. 눈 맞아서 서로 오래 응시하다가 '나갈까요' 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나서고 싶어요. 파티에서 눈맞자요, 맥켄지님.. 흑흑 ㅠㅠ


내가 맥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영화속 맥켄지는 너무 아깝다. 이 영화속 여자들 캐릭터는 다 너무 아까워. 다들 자기 일 가지고 있고 어른스러운데 사랑에 빠지는 남자들이 다 개같이 한심해. 아무리 이 사랑을 통해 성장할 거라고는 하지만 진짜 개한심하다. 하아. 뭐랄까. 전체적으로 덜자란 어른 남성들이 철들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랄까. 나였으면 용서하지 못했을 머저리같은 잘못들을, 영화속 여자들은 잘도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들여 준다(여러분, 천사입니까? 천사여서 좋을 게 뭐에요? 철없는 남자들이나 구원하고!). 나라면 용서 못해! 용서 안해!!


맥켄지 아니었으면 끝까지 안봤을 영화다 진짜.





플랭크 한달챌린지 앱을 깔고 매일 도전중이었다. 비기너 모드로 시작해 처음엔 15초 플랭크를 하였지만, 25일째를 맞는 오늘은 무려1분45초다. 매일 밤에 꼬박꼬박 해서 여기까지 잘 해왔는데, 오늘 퇴근 후 저녁 약속이 있었고, 아마도 나는 술을 마실텐데, 술을 마시고 들어와 플랭크를 할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한거다. 그동안에도 술 마시고 한 적이 있긴 했지만, 으, 오늘은 혹여라도 많이 마시게 된다면... 못하고 곯아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24일을 해온 나의 기록에 흠이 생긴다. 나는 삐끗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아침밥을 포기하고 플랭크에 도전했다. 일어나자마자 매트를 깔고는 1분45초 플랭크를 했다. 힘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일어나자마자 하는 게 딱히 좋을 리도 없을 터. 나는 롤링을 20회 하고, 소고양이 자세를 5회 하면서 몸을 좀 풀어주었다. 나비자세를 하고 스트레칭도 좀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여 2세트의 1분 45초까지도 해냈다. 으윽. 장하다, 잘했어. 멋지다 나여.


15초 20초는 괜찮았지만, 40초를 넘겨가면서부터는 다음날의 플랭크가 매우 두려웠다. 내일은 못할거야, 내일은 못버틸거야, 그런 두려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오늘 1분 45초까지 완성해냈고. 물론 중간에 1분30초였을 때였나, 2세트째를 끊어간 적이 있다. 50초-40초 로. 이제 5일 남았고, 어느날엔가는 아마 또 끊어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달챌린지를 무사히 마치고 싶다. 무사히 마치기만 해봐, 내가 플랭크 시늉도 안한다!!





그러나, 아침을 늘 먹던 사람이 안먹으면 어떻게된다?

배고프다.


그래서,

출근길에 스벅에 들렀다. 샌드위치랑 커피를 주문해두었다. 정치적인 식탁을 읽으며 아침 식탁을 맞이한 것. ㅋㅋㅋ 그러니까 나는 아침을 안굶었지롱? 아침밥도 챙기고 오늘의 플랭크도 챙긴 나란 여자! 황홀해!





나는 어쩌면 이렇게 늘 반할 요소가 많은지.

오늘도 나는 나한테 반해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판 위키 사이트 ‘나무위키‘에서 ‘김치녀‘의 정의는 ‘권리는 챙기려고 하면서 의무는 안 한다‘로 요약된다. 특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신앙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의식이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석이 따로 생기면 여성의 특권처럼 인식하지만, 여성이 명절 노동을 거부하면 의무와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한다. - P24

여자의 몸/무게는 나이와 함께 적을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뚱뚱한 여성이 예쁘게 보이더라도, 뭔가 더 예뻐질 수 있는데 불필요한 살이 미모를 가리고 있어 안타깝다는 듯 "살 빠지면 예쁘겠네"라고 한다. 마치 나이 든 여성에게 "젊었을 때 미인이셨겠다"라고 하듯이. ‘젊고 날씬함‘의 범주를 벗어나면 ‘아쉬움‘이 있는 몸이 된다. 뚱뚱하고 늙은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 - P31

어떤 세계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는 때로 사소한 낯설음에서 출발한다. "없든 혐오가 생기려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변태하기를 거부하고 무지에 양분을 주어 혐오를 발아시켰을 뿐, 없던 혐오가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때로 불편하다. 나는 모를 것이다, 몰라도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차라리 몰라도 되는 권력을 지향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자신의 세계에 그 낯선 세계가 스며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때문에 조롱해 멸시하거나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다. - P213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남에게 신세지는 것에 대해 너무 결벽증적으로 어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거리를 두면서도 대로 우리는 침투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산다. 내가 신세를 질 수도 있고, 나에게 신세 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성격인지,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좀 강한 편이다. 나는 이를 조금씩 흐트러뜨리려 애쓴다. 영원히 젊지 않으며, 영원히 건강하지도 않다.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극적인 순간 나를 구출하는 존재도 인간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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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12-1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다락방님께 반해버렸어요~~~ 이렇게 마력적인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안 받알수 있겠습니까?

다락방 2019-12-11 13:38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저한테 반했다고 쓴 글이긴 하지만 다른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되게 부끄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아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1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적 식탁> 저 인용한 부분 진짜 빡치죠.
휴.... 읽으면서 저는 걍 뒤져... 걍 굶어 뒤져 하고 중얼중얼.........

암튼 출근길에 스벅에 들러서 무려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그 부지런함이 참 대단하십니다.
전 늘 5분 지각 인생인데;

다락방 2019-12-11 13:39   좋아요 0 | URL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죠. 그런데 엿새를 굶어도 굶지 않은 것 같은 상태였다니. 영양상태도 좋았나봐요. 아내가 엄청 잘 챙겨준 모양. 아 진짜 꼴도보기 싫어요. 지가 안먹을 거면 솥에 이끼 끼지 않게 씻어 말려두든가요. 아 너무 싫어요.

저는 저 스스로가 지각하는 거를 좀 못견뎌하는 사람이라서요. 항상 미리미리 가 있는 편이랍니다. 아하하하하.
부지런하다.. 가 맞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미리미리 가있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이런 편이라서요.
결정적으로 먹는 걸 좋아합니다. 매우..매우... 이만 총총.

blanca 2019-12-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플랭크를 하는 다락방이라니. 이렇게 근사해도 되는 겁니까? 나도 따라 할래요.

다락방 2019-12-11 13:40   좋아요 0 | URL
그러나 아침 플랭크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휴 힘들었어요.
저 어깨가 굽어 등에 힘이 없는데 플랭크가 도움이 된다고 요가쌤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말듣고 바로 한달플랭크 시작한거거든요. 그런데 뭐 ..딱히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흐음..

아무튼 블랑카님도 플랭크 화이팅요!

단발머리 2019-12-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찾아봐야겠어요, 이책.

반해 버렸어요,에 1인 추가요!!!

다락방 2019-12-11 13:41   좋아요 0 | URL
네, 도서관 가시면 정리 차원으로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물론 최근의 저는 이 책 보다는 맥키넌의 책에 더 마음이 기웁니다만...

앞으로도 반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slobe00 2019-12-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올 때마다 반하는 사람들 천지일 걸요.. 정보만 있는 게 아니라 감성마저 흘러넘치는 완벽한 써머리~
저희 남편은 저 어디 가면 설거지하기 싫어서 전부 시켜먹고 사 먹고 냉장고 안은 썩어가게 두더라고요.

다락방 2019-12-11 13:43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이러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끄럽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지마세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너무나 좋아하며 말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게 상식적인 문제잖아요. ‘내가 하기 싫은 거 남도 하기 싫다‘ 이거요. 아내 없는 동안 밥 안하면서, 설거지 안하면서, ‘으 이 싫은 거 그동안 아내가 혼자 다 하고 있었구나‘ 이런식으로까지는 생각을 못하는걸까요? 히융-

비연 2019-12-12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나는 나한테 반했다 라는 말에 아침부터 빙그레 웃게 되네요 ㅎㅎㅎ
저도 출근하면서 스벅 들르고 싶어요 ;;; 지금 프로젝트 사이트 주변에는 도대체 스벅이 없다는. 슬픕니다. 아흑.

다락방 2019-12-12 14:40   좋아요 1 | URL
어제는 의욕에 가득찼으나 오늘은 또 다른 기분이네요 ㅠㅠ
오늘 집에 가서 26일차의 플랭크를 하여야하는데 갑자기 회사 동료가 술을 마시자고 해서 몹시 흔들립니다. 술을 마시고들어가면 플랭크를 하기 힘들고 그간 잘 지켜왔는데.. 아아.... 그래서 일단 못마신다고는 해두었으니 자꾸 생각나는 술.. 저 그래서 지금 사무실 바닥에서 플랭크할까.. 이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미쳤어 진짜.. ㅋㅋ

저는 오늘 아침에도 스벅에 들러 아메리카노 마시고 토스트도 먹었습니다. 토스트 속에 치즈랑 계란이랑 베이컨이 잔뜩 들어있어서 맛있어요 ㅜㅜ


그런데 비연님, 단발머리님 제2의성 완독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비연 2019-12-12 16:23   좋아요 0 | URL
으악. 으악. 완독하셨다구요? ㅡㅡ;;;;;;
전 아직입니다. 일더미에 쌓여 잠시 접어두고 있었지요.
(회사는 제게 정말 돈 이외에는 주는 게 없네요. 흠. 돈이 크겠지만ㅜ)
이러다가 제... 오만원이.. 불쑥 나가버리는 건가요?
다시금 정비하여 다음주까지 다 읽어버리겠습니다. 불끈!

비연 2019-12-12 16:23   좋아요 0 | URL
그리고 .... 자꾸 생각나는 술은... 먹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플랭크는.. 내일 두배로.

다락방 2019-12-13 08:11   좋아요 1 | URL
ㅎㅎ 비연님의 제2의성 화이팅입니다! 빠샤!!

저는 어제 술을 참고 플랭크를 하였습니다. 음화화핫.

단발머리 2019-12-18 09:06   좋아요 0 | URL
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예정보다 한 달이 늦었는데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그 책이 <제2의 성>이기 때문이죠!

비연님 얼른 일 마무리 하시고 완독하시길 기원합니다!!

다락방 2019-12-18 09:08   좋아요 0 | URL
비연님, 시간이 자꾸 흐르고 있습니다. 벌써 12월 18일 이라고요..... 3=3=3=3=3=3=3=3=3=3=3

공쟝쟝 2019-12-13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이끼.....ㅋㅋㅋ 솥뚜껑으로 뚝배기 깨고 싶은 일화네욬ㅋㅋㅋㅋㅋ
그리고 맥켄지... 맥켄지여 ㅠㅠㅠ(잠시 바빠 잊엇다)

다락방 2019-12-15 12:01   좋아요 0 | URL
저는 한순간도 맥켄지를 잊어본 적 없습니다. 이것은 찐사랑 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맥켄지 너무 아까워요. ㅠㅠ

솥에 이끼 끼게 두는 남자라니, 왜 사는 걸까요? 아 너무 싫어요 진짜 ㅋㅋㅋㅋㅋ

clavis 2019-12-1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적인 순간에 나를 구출하는 존재..인간.. 요즘 레포트를 쓰고 있는데(영어ㅠ)그래서 이런 문장을 보면 한국어만 더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다락방 2019-12-17 14:18   좋아요 1 | URL
그러합니다, 클래비스님.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도 구렁텅이로 밀어떨어뜨리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런 인간을 끌어 올리는 것도 인간인 것입니다. 영어 레포트라니, 으으 듣기만 해도 너무나 힘들지만, 화이팅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