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 제2개정판 수정판
김수행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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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자본론 공부』(2014)가 아직 도서관에 도착하지 않아서(희망도서 신청이 한 달에 3권밖에 안된다는 비극!!! 갑자기 경제학 공부를 하게 될 지 몰라서 급하게 신청하느라;) 울며 겨자 먹기로 김수행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을 봤다. 김수행 교수 문체는 이 분야 책에서 보기 드물게 이해하기 쉬우면서 잘 정돈되어 있어 신뢰감을 준다.

이 책은 자본론 요약과 함께 김수행 교수가 자본론 챕터를 따라가며 현대에 대입해 오류를 지적하거나 부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대학 교재답게 뒤에 시험 문제도 있다; 이것까지 풀어야 되나...상당히 어렵다; 답도 안 나와 있어 정답이 뭔지도 모르잖아!

내가 읽은 것은 현재 판매 중인 제2판 수정판이 아닌 제1판 개정판이므로 아래 제시하는 본문 내용과 페이지는 상이할 것이다.  이 책에서 차후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것들만 가지고 오려 했고 흥미 있는 부분만 발췌했다.

어차피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최신판인 김수행『자본론 공부』를 읽을테니 참고 정도하면 되겠다.

김수행 교수가『자본론 공부』(2014)에서는 어떤 부분을 집중해 논의를 펼칠 지 궁금하다.

 

 

 

§ 기계의 뒷골목에서 우리는 지식을 사고판다.

처음엔 불가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발적으로 쉬고 있다. 책을 좀만 더! 좀만 더! 읽자 하다 보니……. 캥거루족도 아니고 물려받을 유산도 없으니 섣부른 편견은 사양한다. 편안한 노후 계획도 없으므로, 내게 일이란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다. 기술발전을 재빨리 따라가지 못한다면 내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겠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우리는 자본주의 분업화로 인한 한정된 기술밖에 없잖은가?

 

(p124) 기계제 대공업의 발달로 말미암아,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고 노동일이 연장되며 노동강도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생산적인 부문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오히려 하인 · 하녀 · 심부름꾼 등과 같은 '봉사자 계급' (servant class)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자본론 제1권 598~600쪽). 마르크스는 1861년의 영국 인구조사를 인용하고 있다.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의 결과가 얼마나 훌륭한가!"(600쪽)

 

 

(p130) 노동인구 중 생산적 노동자의 비율을 높이려는 것이 자본의 고유한 경향이다.

  1. 소농 · 소경영주 등 자영업주를 파산시켜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킨다.
  2. 가정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상당한 부분 상품화함으로써 주부를 생산적 노동자로 끌어낸다.
  3.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던 교육 · 의료 · 노후연금을 민영화(privatisation) 함으로써, 그리고 국영기관과 공익사업(public utiltties)을 민영화함으로써 상품시장의 영역을 확대하고, 거기에 종사하던 비생산적 노동자를 생산적 노동자로 전환시킨다.■

 

취업준비생을 겨냥한 취업컨설팅 뉴스를 접하니, '봉사자 계급'의 성질이 확장된 '서비스업 계급(취업준비생 상당수가 서비스업에 종사할 것이다. 학원과 공무원도 서비스업이다!)' 겨냥 산업도 막강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소개서 써주는 대가 40만원, 일대일과정 최대 230만원, 취업스터디 관리 비용 30만원, 상담은 최대 180만원, 자기소개서 수업 두 시간씩 2회 총 4시간 58만원, 자기 소개서 2회/면접 2회 도합 109만원……그 뿐인가, 취업 압박감으로 인한 각종 심리치료 상담과 의료비용까지 추가된다면 장기적으로 이 투자비용은 학자금 대출과 상응할 거 같다.

취업준비생 뿐만이 아니라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스트레스와 그로 인해 육체적· 가계적으로 무너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상황으로 봐서는 '서비스업 계급' 겨냥 산업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 호황 산업이다. 임금이 한정된 우리는 쇼셜커머스, 홈쇼핑, 공동구매, 해외 직거래, 중고 거래 모두 어떻게든 싸게 사려고 매일 난리다. 자본이 '가치증식' 속성이란 것에서 볼 때, 우리의 소비는 얼마나 협소한 '잉여가치'를 가진 가치증식인지……

나는 이 리뷰들을 순수한 지식 나눔의 행위로 시작했지만, 이곳 또한 thanks to니 TTB니 하는 경제시스템이 속속들이 들어차 있다. 이 시스템은 재미를 주면서 유혹까지 하고 있다! 이곳 서재 이용자들은 이 시스템을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할 것 없이 장바구니와 보관함은 연일 수북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책을 사지 않도록 최대한 구매의 효용을 따져 보라는 차원에서 리뷰를 올리고 있다. 베스트셀러일수록 더욱 경계하라! 유명 작가일수록 더더욱! 유명 작가 위주의 출판으로 더 많은 좋은 책들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독서가들이여, 시장을 사수하라!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부터 2005년까지의 영어 소설 100선'에까지 올랐다는 David Foster Wallace(1962~2008)의『Infinite Jest』(1996)가 국내에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번역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이 책 외에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적 작품도 많던데! 출판 관계자는 어서 그 책들의 출판을 모색하시길! 알라딘에는 북펀드라는 좋은 시스템도 있잖은가!

 

 

“Everybody is identical in their secret unspoken belief that

way deep down they are different from everyone else.”

 ㅡ David Foster Wallace 『Infinite Jest』

 

http://www.davidfosterwallacebooks.com/

 

 *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국내 서적

 

 

 

 

 

 

 

 

 

 

 

 

  

 

§§ 노동 문제와 관련해 노동조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본론 얘기하다가 너무 멀리 갔다. 돌아와서, 

나는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리뷰 결론으로 "공동(노동조합+정부+기업) 결정 시스템"의 저변화를 촉구했다.

http://blog.aladin.co.kr/durepos/7345084

최근 국내에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 생긴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알바연대알바노조 www.alba.or.kr)

기업과 정부 사이에 노동조합이 얼마나 중요한 역학 관계인지에 대한 이 책의 본문을 소개한다.

자본가 만큼이나 노동자도 탈주적인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에게 최선의 합리성을 요구해야 한다.

 

(p153) 산업예비군은 임금상승을 규제하고 자본의 독재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호황기에는 취업노동자들의 요구(예: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노동시간 단축, 인사권 또는 경영권 요구)를 억압하고, 불황기에는 자본가의 압력(예: 임금인하, 노동시간 연장, 해고)을 강화시킨다. 이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단결을 강화해야만 노동력의 판매를 독점할 수 있다. 예컨대 노동조합이 실업자에게 생활비를 보조하든지 정부로 하여금 실업수당을 주게 하든지 해야만, 실업자가 자기 마음대로 자본가에게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대공황시의 "임금인상에 의한 이윤압박설(profit squeeze theory)"을 제시받을 수도 있다.

 

(p241) 자본축적의 진행→완전고용 수준에 접근함→노동자들의 세력이 증대해 임금을 인상하고 신기술 도입을 저지함→자본의 이윤율 저하→불황.■

 

그렇다면 "공동 결정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막강하게 건재한 스웨덴과 독일은 어떤 방어 정책을 썼는지 살펴보면 될 일이다.

 

 

 

 

§§§ 헤겔과 마르크스 - '이념'이 아니라 '끝없는 운동상태'

마르크스만큼이나 우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헤겔에 대해 이 책에서 좋은 비교를 찾았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의 도래를 전망하긴 했지만 우리가 오해하듯 공산주의를 목적론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관계를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면 공산당 선언은 뭐란 말인가...자본론 이후 공산당선언까지 봐야 하나. 아아...

 

(p32~33) 헤겔은 "현실세계는 이념(idea)의 외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마르크스는 "관념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두뇌에 반영되어 사고(thinking)의 형태로 변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다. 물론 이렇게 대립시키는 것은 옳지만, 이 점만을 강조하면 마르크스를 포이에르바하(Feuerbach)와 같은 '기계론적 유물론자'로 간주할 위험성이 있다. 마르크스가 1845년에 쓴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을 참조하라.

헤겔의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찬미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며, 또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 · 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인 측면을 동시에 파악한다".

 

(p34) 헤겔은 역사가 절대정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프러시아 국가에서 종결한다는 '목적론'과 '종말론'을 제시했는데, 만약 마르크스가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의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역사는 공산주의에서 종결한다는 '목적론'과 '종말론'을 주장했다면, 마르크스는 결코 헤겔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새로운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이론적 · 정치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도래를 전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의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자들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공황(또는 경제적 위기)을 겪으면서 재편성을 거듭할 수 있다는 사실과, 역사의 동력은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이라는 객관적 정세와 계급투쟁이라는 주체적 정세에 따라 온갖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역사는 항상 끝없는 운동상태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자본론』이 묘사하고 있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급한 것에 불과하며, 역사의 '목적론'이나 '종말론'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 해석의 차이

(p163) "자본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다"(자본론 제1권 1054쪽)■

 

이 해석은 참 양가적이다. '자본은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본주의 몰락설의 도출은 맞지 않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자본은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의 압제 속에 노동자 계급의 혁명이 일어나며, "생산수단을 사회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확산되어 사회가 대자본가의 소유를 빼앗게 되"므로 자본주의는 몰락하게 된다는 역도 성립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명제를 통해 후자를 결과론으로 선택한 셈이다.

 

 

 

§§§§§ 대규모 공공산업은 근본적으로 공공을 위해서일까

(p191) 자본의 회전시간 · 생산시간 · 노동시간의 단축은 투하자본과 연간잉여가치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본가는 기술혁신을 통해 자본의 회전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노력한다. … (중략) … 유통시간도 회전시간을 구성하기 때문에, 자본은 유통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로 · 철도 · 항만 · 해상 · 수송 · 항공 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과 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물류비용의 절감'이 그것이다. 또한 상품매매시장의 현대화와 신속한 자금결제제도의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마르크스 사망(1883) 후 엥겔스가 유고를 편집한『자본론』제2권(1885) '자본의 유통과정' 중에 위 설명은 '자본의 회전시간과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한 설명이다. 식민지 시대 근대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기도 할 것이며, 현대에 노동 창출이란 명목으로 시행되는 공공산업들의 허수로 볼 여지도 상당하다. 즉, 토지 소유자가 산업자본가가 아닌 지,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이 결탁돼 있지 않은 지도 따져 봐야 한다. 안 봐도 비디오겠지만.

 

 

 

§§§§§§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의 관계

나는 이 예제에서 이상하게 휴대폰 3사와 판매 대리점이 단번에 떠올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 한 패일테지만...

(P252~253) 만약  세 상인의 연간판매액이 P(상업가격)과 같은데, 상인 갑은 투하자본(b+y)을 연간 2회 회전시켜 이것을 달성하고, 상인 을은 동일한 투하자본을 연간 4회 회전시켜 달성하며, 상인 병은 연간 6회 회전시켜 달성한다면, 각 상인의 1회전시간의 판매가격은 병, 을, 갑의 순서로 높을 것이다. 길목에 있으면서 고객을 많이 끄는 상점이 상품가격에 이윤마진을 적게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이 작용해, B의 상품가격이 시장가격으로 된다면, C는 초과이윤을 얻게 되고 A는 상품을 팔 수 없어 이윤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상인들 사이에서 고객 유치 경쟁이 일어나고, 상업노동자에 대한 잉여가치를 낳지 않지만, 상업자본 전체에게 배당된 잉여가치의 분할을 둘러싼 상인들의 경쟁에서는 상업노동자에 대한 착취(노동시간 · 노동강도 · 임금수준의 측면)가 상인들의 초과이윤 획득에 큰 역할을 한다.■

 

 

 

§§§§§§§ 경멸스러운 경제적 삼위일체 "자본-이윤, 토지-지대, 노동-임금" - 속류경제학

(p282) 토지의 비옥도나 위치의 차이라는 물질적 요소가 지대를 낳는 것이 아니라, 토지생산물의 생산가격이 결정되는 '자본주의적 방식'이 지대를 낳는다. 동일한 자본액을 투하하더라도 토지의 비옥도의 차이에 따라 노동자는 상이한 양의 토지생산물을 생산하게 되고, 따라서 토지생산물 한 단위의 개별가치가 달라진다. 이 경우, 시회 전체적으로 하나의 시장가치(또는 생산가격)가 형성되면, 비옥도가 높은 토지를 사용하는 자본가는 '초과이윤'을 얻게 되며, 토지쇼유자(또는 지주)는 이 초과이윤을 지대로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대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취하는 하나의 형태이다.

'노동ㅡ임금'이라는 공식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노동은 가치창조적 활동이며 그 자체는 다양한 가치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노동력이 상품이기 때문이다.■

 

 

(p281)  속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속류경제학은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사로잡혀 있는 부르주아 생산 담당자들의 관념을 교조적으로 해석하고 체계화하며 변호한다"(『자본론』제3권, 995쪽). 그런데 "만약 사물의 현상 형태와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995쪽)■

 

 

 

§§§§§§§§ 마무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하기 위해 여섯 권의 책을 계획했다.

'자본, 임금노동, 토지재산,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

그러나 완성본은 제1권『자본의 생산과정』 뿐이고, 마르크스 사망 후 엥겔스에 의해 편집 출판된 제2권『자본의 유통과정』과  제3권『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3권만 세상에 나와 있다. 제3권은 메모, 발췌 부분이라 앞선 논의와 중복도 많고 파편적이긴 한데, 내겐 오히려 제3권이 더 인상적이다. 정제되지 않은 인간적인 웅변이 주는 울림은 아포리아 같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완성하지 못한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 부분의 논의는,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대신 마무리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신기하다. 이제 슬슬 토마 피케티를 정리하러 갈 때인가. 토마 피케티 정리하려고 참고자료를 이렇게나 읽어야 하는 걸 알았다면 안 샀을 듯;; ... 자본론 원문 번역은 담에 시간날 때 읽어야겠다. 1월 내내 경제 공부만 한 기분; 으아~ 소설 읽고 싶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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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1-2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발적 지식 나누기 좋군요..
김수행 교수`가 강의도 그렇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말씀하셔서 듣기 좋습니다.

AgalmA 2015-01-21 08:16   좋아요 0 | URL
굿모닝입니다. 예, 김수행 교수 문체에서 아는 체, 잘난 체 없는 객관적인 자세가 느껴져서 읽기 편안했습니다.

antibaal 2015-01-2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꼭꼭 챙겨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요약하기 급급한데...참 대단하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 좋은 글 또 올려주세요

AgalmA 2015-01-21 08: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최대한 읽기 편하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하는데 잘 전달이 되고 있는지 걱정인데, antibaal님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5-01-2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강신준교수님의 자본2권을 다시 완독 했는데, 진짜 머리가 깨질 듯하더군요. 김수행 교수님 집필 열정 넘치는군요.

AgalmA 2015-01-21 22:19   좋아요 0 | URL
2권은 유통과정을 보여주는 게 많아 수식 투성이던데 대단하십니다!
강신준 교수의 자본을 읽다도 읽긴 해야할 거 같은데...김수행교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고 싶거든요. 헌데 제가 한번에 너무 몰아서 봐서 지치는 바람에 당장은 힘들듯;
자본론도 김수행 교수와 강신준 교수 어느 걸 사야되나 고민입니다a

만화애니비평 2015-01-2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간단합니다.
김수행 교수는 영어로 중역하여 자본을 번역하고, 강신준 교수는 독일어 직번역했습니다.
김수행 교수의 자본을 읽지 않고, 저는 강신준 교수의 서적으로 읽었습니다.
그 분이 부산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인데 저도 부산 살아요. 그래서 지역적인 조건에서
그분의 강연도 가보았죠. 당연히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강신준 교수가 좋지 않은가 싶네요.

AgalmA 2015-01-21 23:09   좋아요 0 | URL
김수행 교수 문체가 읽기 편해서 호감이었는데, 강신준 교수가 직역이라면 음, 확실히 신뢰가 더 가긴 하네요.

antibaal 2015-01-29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에서 공부하신 교수님, 미국에서 공부하신 교수님. 두 분께 같은 과목을 배운 적 있었는데요. 두 분 다 좋으셨지만,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막 교수로 오셨는데, 강의 자체뿐만 아니라 태도와 관점의 다양성과 깊이 있는 진중함을 몸소 보여주셨어요. 그 분의 강의가 너무 좋았어요. 갑자기 독일 말씀하셔서...저도 그럼 강신준 교수님 책을 먼저 봐야겠네요. 만화애니비평님 말씀 감사합니다.

AgalmA 2015-01-29 20:04   좋아요 1 | URL
저보다 더 말씀을 잘해주실 분이 너무 겸손하시네요. antibaal님의 강신준 교수님 리뷰 기대할께요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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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포인트: 손으로 무성의하게 그렸습니다]

[관람포인트: 발을 무성의하게 두고 보세요]

 

 

"알라딩동"  을 만들자~~~

 

"알라딩동"  을 만들자~~~ 

 

 

음... 알라딘에서 초상권 침해로 고소하는 건 아니겠죠? (소곤)

 

저는 당신의 書民입니다!

 

(김어준 / 주진우씨, 무죄 선고 축하해욥!)

 

 

 

§ 자본시 변두리구 알았동에 사는 Agalma씨

왜 우리동네 도서관엔 칼 마르크스 [자본](원문 번역본)도,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2014)도, 김수행 [자본론 공부](2014)도 없는가. 김수행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2010)이라도 보려 하니 대출중이다.

날 자꾸 희망도서 집착증 환자로 만들지 말라구!!!

임승수[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을 살펴보다가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죄송하지만 꼭 이렇게 했어야 했나요, 라고 묻고 싶었다. 이 경멸스럽기도 한 '자본'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든 유도해보자는 취지는 잘 알겠으나, 제목부터 원숭이… 촌스러운 그림들과 어색한 대화들…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거쳐간 흔적들-누군가의 코딱지와 온갖 얼룩으로 가득한…접근이 용이한 책의 문제점도 있다, 아니 더 많다…이 책을 들고 시내를 다녀야 하는 사람 생각도 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대출하는데 경쟁하듯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이 누군가의 대출 예약도서로 데스크 맨 위에 올려져 있다. 자본은 참 잘 팔리기도 하여라. 그래요, 저도 사고 빌리고 바쁘네요.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장 · 단점 고찰

  상당한 격찬을 받는 이 책에 나는 별 ★★★★ 를 주겠는데,

  비판부터 들어가서 미안하지만 별 1개를 빼는 이유부터 짚고 넘어가겠다.

 

 

『21세기 자본』을 통한『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비판 - 분석 vs 강의

 

1. 문제의 9장 - 불평등에 관해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수강신청 쇄도하는 강의답게! 흥미진진하면서도 잘 짜여진 경제학 개론서라면(이런 교과서 찾기 힘들지!),『21세기 자본』은 접근의 힘듦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학위논문 통과!할 것 같은 뛰어난 분석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21세기 자본』보다 경제 상식을 풍부히 담아내는 유쾌한 실용서다. 그러나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책의 지향점이 장점이면서 역으로 단점이기도 하다. 토마 피케티가 마르크스에 대해 안타까워했던 부분이기도 한, (이미 상당한 분량인데도!) 더 최대한의 자료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불가능하다고 미리 당부했지만 '과학보다 우위에 서려고 까지 한다는' 경제학이, 분석 바탕부터 헛점이 보인다면 이건 치명적이다.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까지 보일 정도면 더더욱…

장하준이 세계적 경제 전문가란 것엔 동의하지만 그래서 문제가 더 불거져보이는데,『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21세기 자본』이  1 ·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부터 현시점까지 철저히 통계를 분석해 거시적 안목으로 보려 했던 것을 하지 못했다. 아니, 간과했다. 자료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활용할 생각도 못했다면 더욱 문제겠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장하준의 발언은 둘 다를 말하고 있다.  

 

 

(p322) 소득 불평등에 관한 자료에 비해 부의 불평등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신뢰도도 그리 높지 못하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부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308) 불평등은 사람마다 생산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CIA에서 자료를 훔치거나 위키리크스와 거래를 한 것 같지도 않은『21세기 자본』은 상세한 그래프와 자료를 제시하는데, 소득의 불균형과 부의 불평등이 따로의 성질이 아니라 최상위층들에 의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세습자본주의와 결합된 최상위층의 위험성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근거있게 말하고 있다. 오래전 마르크스가 자본가 계급을 겨냥했듯 피케티가 그 지점의 심각한 사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피케티를 마르크스와 비교하는 것이 그저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사람만 바뀌고 모든 게 다 돌아온 셈인가.

때문에『장하준의 경제학 강의』9장이 나는 불만스러웠는데, 최상층과 최하층의 비교가 (비판적 경제학자라기 보다 고소득의 권위있는 경제학자 신분에서 나올 법하게) 상식선이며, 토마 피케티보다 문제의식이 약했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다','질투심','평등한 나라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한 사례가 많다',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너무 평등한 것도 좋지 않다' 식으로 운을 띄울 문제가 아니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마피아를 이기기 위해서 내가 마피아의 폭력구조를 따라야 한다는 아이러니 또한 수긍해야 된다. 실제로 많은 액션영화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니계수와 팔마 비율에 따른 각 나라별 불평등에 대한 계산에 있어 『21세기 자본』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객관적이며 치밀하다. 두 책을 다 보는 분이라면,『장하준의 경제학 강의』9장과 비교해 『21세기 자본』3부 불평등의 구조를 유념해서 보길 바란다. 토마 피케티와 장하준의 차이가 단번에 보일 것이다(안 보이면 안경을 써보는 것도 좋다). 분석 방법론의 차이로만 봐야 할까? 영국 케임브리지 실리적 보수성과 프랑스 자유·평등·박애 정신의 차이는 아닐까, 문득 나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

 

 

2. 능력주의 경제 방식의 시선

(p236~237) 우리는 왜 '중국의 경제 기적'만 귀가 닳도록 듣고 '적도기니의 경제 기적'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까?…(중략)… 경제 발전의 정의는 보편적으로 합의된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한 경제의 생산 능력이 증가하는 것에 바탕을 둔 경제 성장 과정이 경제 발전이라고 정의한다. 생산 활동을 조직화하는 능력, 더 중요하게는 그것을 탈바꿈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경제 발전의 외부성) 장하준이 가난한 나라에 '경제 발전'과 '핵 발전소' 권장하는 것을 올바른 경제 해법으로 봐야 하는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우려스럽게도 경쟁의 부추김으로 보이는데, 살아남기 위해 같이 죽이고 싸우란 말밖에 되지 않잖은가. 이 발상은 대단히 생산주의 사고방식이다. 피케티 조사에 따르면 "자본수익률" 상승선에선 "글로벌 생산율"은 하향선이다. 저성장 체제가 계속되는(이후로도) 지금에선 자본수익률 성장세일텐데, 피케티와 마찬가지로 기술개발을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장하준이 제시하는 경제 개발 발언은 생산률 향상 편향과 도박적인 성질이라는 게 문제다.

 

경제 발전의 내부성) 장하준의 경제 발전은ㅡ피케티가 문제적으로 본ㅡ능력주의, 성과주의식 경제발전이다. 그 '생산활동을 조직화하는 능력'과 기계화 때문에 사라지는 많은 직업군을 생각해보라. 필요없어졌다고 해서 가치마저 무시되는 상황. 이는 진화 진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논지이기도 하다.

 

세계가 함께 하는 보편적 해법 제시는 정녕 어려운 것인가. 지금은 이상적일 지 몰라도 피케티가 말하는 "글로벌 누진세", "글로벌 자본세"같은 걸 추구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탄소배출권 같이 전세계적으로 적용을 논의해 볼 수 있는 문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의 강력한 장점

 

1. 비장하면서도 뛰어난 유머와 현실 사이의 스케치

   (※『21세기 자본』에서 가장 아쉬운 점 - 그럴 만한 논지가 아니었다고 쳐도 피케티씨, 레크리에이션 강좌 수강 좀;...)

 

(p 69) 알렉산더 해밀턴(미국 최초 재무부 장관)은 1804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에런 버와의 결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현직 부통령이 전직 재무부 장관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도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으니 가히 거친 시대였다.)

 

(p238)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이 동시에 천 마리의 말을 몰고, 수백 권의 책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불길도 없이 뜨거운 열을 만들어 내고, 수천 리터의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고, 돌로 옷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 모두들 그 사람을 마법사라 불렀을 것이다.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던 20세기 초까지도 이런 일은 모두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대부분의 독자들은 무엇인지 짐작할 것이다. 이 중에 돌로 옷을 만드는 기술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북한에서 개발되었으며 석회석에서 비날론 혹은 비닐론이라고 부르는 섬유를 추출하는 기술이다.

 (다른 '마법'의 정체는 이렇다. (순서대로)1000마력이 넘는 가장 힘 좋은 스포츠카, USB 메모리스틱 혹은 주머니가 큰 사람의 경우에는 e북, 핵 발전소, 담수화 시설.)

 

(p250) 현악 4중주단이 27분짜리 곡을 빨리 연주해 9분에 해치웠다고 해서 생산성이 3배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p251) 제조업 분야에서 이룬 조직 혁신 또한 다른 부문으로 전이가 되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일조해 왔는데 특히 서비스 산업이 특히 큰 혜택을 봤다. …(중략)… 어떤 음식점은 음식을 고객에게 보낼 때도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한다(회전초밥집).

 

(p349) 이탈리아 볼차노시 단 한 명의 실업자 - 그가 직업을 갖게 되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구직 센터가 문을 닫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일하던 직원 네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에 자코모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계속 실업자로 남아 있는 게 좋겠다는 합의까지 했다. (※ Agalma - 그때가 2009년 즈음이었다니 지금은 어찌 되었을라나...) 

 

(p358~361)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은 '만들어 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고급 빌딩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문을 잡아 준다든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껌을 판다든지,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출 때마다 다가가서 운전자가 원치 않는데도 앞 유리창을 닦는다든지 하는, 잔돈 몇 푼이라도 받을 희망으로 하는 일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고용 인구로 봐야 하는지 실업 인구로 봐야 하는지는 정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문제이다. …(중략)… 이제 경제학에서 일은 정신이 이상해서 숨기고 싶은 창피한 친척 아저씨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p365) 전쟁부 … 독점 … 정치 경제학 … 가끔은 오래되고 잊힌 이름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보다 훨씬 더 사물의 본질을 잘 드러낼 때가 있다.

 

(p377) 권력 유지 정치인 … 비례 대표제가 아니라 지역구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노력할 것이다. 국가적 낭비이더라도 많은 나라가 실제 필요한 것보다 공항과 스포츠 경기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p415)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은 요즈음은 글로벌 의류 회사 갭에서 만드는 바나나 리퍼블릭이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어두운 출생 배경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 온두라스,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 중남미의 바나나 생산 국가들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FC)라는 기업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때에 나온 말이다. 가장 끔찍한 비극은 1928년 콜롬비아에 있는 UFC 바나나 농장에서 파업하던 노동자들이 대량 학살된 일이다. 당시 미국 해병대가 UFC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침공하겠다고 위협하자, 콜롬비아 정부는 자국 군대를 파견해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를 죽였다. (정확한 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콜롬비아의 위대한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작 『백 년 동안의 고독』에 소설화되기도 했다. 미국의 초국적 기업들은 미국 군부 우파 및 CIA와 손잡고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남미의 좌파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422) 이민 문제 … 이민자들에게 어떤 권리를 주어야 할까? 일단 국경 안으로 들어오고 나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이민을 받아들이는 많은 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특정 산업, 심지어 특정 고용주 밑에서만 일하게 해야 할까? 세금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자국민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기초 교육과 의료 등 특정 사회 서비스를 이민자들에게는 사용료를 받아야 할까?(사실 대부분의 시민이 결국 세금을 통해 이 서비스의 비용을 일부 지불한다) 이민자들에게 자국의 문화적 기준(히잡 착용 금지)을 따르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모두 답하기 쉬운 질문들이 아니다. 특히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이 질문들의 답은 정치적,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고, 따라서 경제학이 '가치 판단을 배제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2. 저자가 한국인이라 좋다 - 세계적 사례 비교에서 한국을 자주 언급해줘서 비교해보기 편했다.

 

 

3. 잘못된 고정관념 지적  

(p346 요약)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남미, 지중해의 게으른 인간형은 맞지 않다. 대체로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더 많다! 불완전 고용상태에 시달리며 오히려 집중할 생산 현장이 없어서 놀게 되는 점을 더 주목해야 한다.

 

(p366) 많은 사람들이 '국가'라는 용어를 '정부'보다 좀 더 넓은 의미, 그리고 '나라'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한다. 국가와 정부는 철학적, 정치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4. 경제학파에 대한 쉬운 접근

 

 

 

경제학파에 대한 쪽집게식 설명과 함께 저자는 경제학파 칵테일 표를 제시하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고를 유도한다.

그림 분포표로 작성해 수렴 점과 방향성까지 같이 보면 더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엑셀까지 동원할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아 그 작업은 다른 이가/ (『21세기 자본』를 읽고 난 뒤의 휴유증, 도표를 자꾸 그리고 싶어진다)

작가가 "지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사상의 이종 교배를 권장하자"고 이 장에서 맺음말을 했듯이

이 표의 경제학파 요소들을 섞어 각 개인들이 "휴리스틱스"(제한적 합리성 속에서 찾는 직관적 사고- 행동주의 학파  '허버트 사이먼') 방안들을 만들어 볼 수 있다.

경제學에서 약자인 우리에게 경제학에 직접 접근해보라는 저자의 혜안이 담긴 메시지 같기도 하다.

현재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경제 칵테일은, 표에는 없는 ABSM+(?)이다. S(슘페터)와 M(마르크스)은 큰 맥락에선 한 묶음으로 볼 수도 있을텐데 둘의 자본주의 몰락설은 결론으로 향하는 과정의 신뢰를 상실케 한다. 어떤 요소 +(?)가 더 있어야 될 것 같다. 제시된 학파들은 대안적이지 않다. 그나마 나은 게 개발주의? 아무튼 나머지를 생각해보는 건 내 몫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와 관련해 Agalma의 흥미로운 참고사항

 

▦  케인스 학파 관련

(p150) 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브리핑하는 기자 회견에서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는 이렇게 말했다. "알려진 기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미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들 말이다." 이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unknown unknowns)'라는 표현이야말로 케인스의 불확실성 개념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위와 관련해 언급되어야 할 다큐가 있어 개인적으로 첨부한다.

 

  ● 애롤 모리스 [The Unknown Known](2013)

 

 역사에서 가정과 상상은 원하는 결과와 부합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도널드 럼즈펠드의 인터뷰와 함께 그 당시를 잘 보여준다.

 가위손에서 눈 내리듯 음악을 흐르게 했던 대니 앨프먼이 이 영화에서도 OST를 맡았는데 역시나 음악이 역사의 눈보라처럼 흐른다.

   http://youtu.be/_a-iK3YCVeM?list=PLkjVlC_qt9FCMToR9eKiM4g1Dg0vVWBle

 우울과 심각성을 겸비한 OST라 이 책 읽을 때 배경음악으로 들으셔도~

 

 

 

 

● 케인즈학파의 금융이론과 관계해 금융의 투기 역사를 보여주는 책 :

    투기 성공가이기도 했던 케인스를 생각하며...

 

 

 

 

 

 

 

 

 

 

 

 

 

 

 

▦ 행동주의학파 '제한적 합리성' 관련 참고자료 - 경제 뿐만이 아니라 인간 사고에 대한 고찰도 되겠음

 

 

 

 

 

 

 

 

 

 

 

 

 

 

 

 

 

 

실업 관련 :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아무도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그렸다고 한다. "일을 통해, 얻는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이라는 존엄성을 빼앗겨서" 불행하다니...

  이것은 내 견해인데, <필경사 바틀비>와 정반대인 것이 흥미롭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례는 무궁하구나. <필경사 바틀비>가 1853년 발표되었고  <자동피아노>가 1952년 출간되었으니, 우리는 두 소설을 통해 100년 사이의 경제적 변화로 인한 인간 상황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헌데 절판! <자동 피아노>ㅠㅠ!

 

 

ps)그런데 커트 보네거크 『나라없는 사람』에서 언급하기론 장하준씨가 언급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기술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쓴 거라고...언젠가 책을 보고 내가 판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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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1-1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역사상 가장 공들인 포스팅 같습니다. 알라딘에서는 이런 수고까지는 안 합니다.
그나저나 빨갱이 서적은 하나도 없는 도서관이라니 깃발 부대 대구에 사시나요 ?

AgalmA 2015-01-17 16:24   좋아요 0 | URL
무슨 소리세요. 곰곰생각하는 발님 서재 좀 생각하시고 말씀하세요ㅎ...
아, 워낙 달필이시라 저보다는 술술 쓰시지, 참.
서울도 천차만별이잖습니까. 프랑스 거지로나 태어났어야 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8 00:26   좋아요 0 | URL
제가 무슨..... ㅎㅎㅎ
그나저나.. 아니 도서관에 자본론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마치 영국 국영 도서관에 섹스피어 책이 하나도 없는 것과 동일한 시츙에이션이군요..ㅎㅎㅎㅎㅎ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자본론 종류별로 다 있더군요.

AgalmA 2015-01-18 02:46   좋아요 0 | URL
자본론 빙빙 둘러서만 봤는데 이참에 구입해서 직접 보자 싶어요. 김수행씨 자본론 강독이나 피케티 봤더니 자본론도 이제 읽을 만한 것 같고....지난 달엔 하이데거-존재와 시간 원문 번역도 도서관에 신청해서 들여놨는데(신청거부해놓고 들여놓는 건 무슨 심산인지...) 동네도서관에 좋은 책 들여놓아도 이걸 누가 읽기는 하나 그런 생각도....이 동네도서관에서 바타유 <저주의 몫>이 얼마나 깨끗하게 보관되어 있는지 보고 깜짝. 모르긴 해도 제가 5번째 대출신청자 정도 될 거 같은...경제/자본론 코너에 고아처럼 그러고 있더란 말입니다? 오래전 남산인가 용산인가 사서 문의 상태로 걸레짝같이 된 책을 굽신거리며 빌렸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죠ㅎ 너무 깨끗해서 그 책 읽어줘야지 합니다. 도서관 취향이라는 것도 참;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8 08:50   좋아요 0 | URL
전 이상하게 책에 밑줄을 긋는 버릇 때문에
도서관 책을 애용하지 못하는데 안타깝네요.
하루 빨리 버려야 할 버릇 같습니다.
올해는 밑줄 긋는 버릇 버리기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AgalmA 2015-01-18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도서관 책 빌리면 있는 밑줄들 지우느라 너무 피곤합니다ㅜㅜ 지우개 가루까지 치워야되고!
그래서 되도록 희망신청으로 새책을 읽으려 합니다.ㅎ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고 다시 독서노트에 옮기고 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오래 볼 거 같은 책은 그냥 사는데 이눔의 도서정가제 때문에 압박이 심하네요ㅎ

[그장소] 2015-01-1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동안 행복했네요..^^
경제학쪽 주전공이시구나~!
장하준의..」읽지 않았는데 토마 피케티는
워낙 관심분야에 걸쳐진 시간을 언급한다는게 놀라워 볼 수 밖에..없었다.는 ... 장하준의 」 그가 경제 학자 라도..이른바 진보에서 보수가 되었다..손 쳐도..말이죠..좀 다르게 해석 해서...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전체 그림보기가 불가능 한것..정서상..말이죠.
철학이든 정의로든 국가와 나라 정부
를 의미 따지지만..장하준의」에서 이분이
실제 분리를 잘 할 수없기에..그만 두었지 않나.. 피케티의 겨우.. 아무래도 지리적 여건 상 우리 나라 보단 그러니까 「장하준의ㅡ」보다는.이 되겠네요. 개별로 놓고 취합하는 식의 데이터 도출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제 생각 일 뿐이지만.
우리 나라도 많이 개인화 되고있지만 아직
개인화..인 것..그게..국가적인 차원의 개인화는 아직 아니라고 본다고. 피케티의 의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볼 수있다고. 어떤 의미에서 뭣모르는 이른바 국내들어서자마자 생긴 그 열풍 같은..해프닝은..정말..주의해야할 일.중 하나.라고

AgalmA 2015-01-17 17:08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저 경제학 잘 몰라요. 주로 팟캐스트 귀동냥으로 배웠거든요. 책도 들춰보다 말다 해서 이번 기회에 장하준씨 책 통해서 정리가 많이 돼서 감사하다 말씀드려야 할 판입니다. 파생상품 같은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 등 유익했어요. 피케티는 읽지 않으시더라도 장하준씨 책은 꼭 읽어보세요. 쉽게 읽히고 이해하기도 정말 좋아요!
제 글은 장하준씨 비난글은 절대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되고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셨어요. 저도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누군가 제게 반박해도 귀담아 들을 겁니다. 그러라고 제 의견을 밝힌 것이기도 하고요. 틀렸다면 부끄러워할 필요없이 귀담아 들을 거예요.
두 사람의 문제 접근 방식은 참 흥미로웠죠. 암튼 토마 피케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협업의 능력으로 장하준씨랑 같이 공동작업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두 책을 나란히 보면서 두 책이 함께 묶이면 천하무적이겠구나 하기도 했어요^^

[그장소] 2015-01-1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난아니구..저도 아..이런게 아닐까 하는 견해ㅡ더구나..그 쪽 책은 뭐 읽지도 않은걸요..^^
지금 아갈마님..요목 조목 너무 잘 정리 해주셔서 그 것만 가지고 얘기하는 거니까.
저는 경제학 책..따로 보는 것..없거든요..어쩌다 읽으면..읽나보다..하니! ㅎㅎㅎ 팟캐스트 들으면..아..!저는 잘 못들어요..^^
요즘은 혼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ㅎㅎ

AgalmA 2015-01-17 17:15   좋아요 0 | URL
저도 열풍 도는 책이나 영화는 좀 피해가는 편인데...피케티 책은 인정 안할 수가...그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한 걸 생각하면 ... 여러 나라 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장하준씨가 경제학파 논점들을 정리를 잘해 주셔서 역으로 제가 장하준씨 단점들이 잘 보여서 장하준씨가 당하신 셈인지도;;;
장하준씨 책 챕터별로 짬짬이 읽기 좋게 배열 해놔서 간편하게 읽으시기도 좋아요. 중간중간 유머도 많이 섞으시고 노력 많이 하셨더군요.

수연 2015-01-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_ 어쩌죠, 감동 먹었어요. 집에 돌아가서 놋북으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AgalmA 2015-01-17 17:18   좋아요 1 | URL
에궁; 감사요... 장하준씨 책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좀 걱정은 했는데, 제 글보다는 책을 보시는 게 훨씬 훨씬 도움이 많이 되실 거예요^^
사실 제 글은 장하준씨 책 많이 보시라는 홍보예요 ㅎ

수연 2015-01-17 17: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일단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

AgalmA 2015-01-17 17:31   좋아요 1 | URL
잘 하셨어요!!! 얻을 게 참 많은 책^^

[그장소] 2015-01-17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만 공부했네요^^
저..시작부분..마지막부분..이런거 좋아..ㅎㅎㅎ직접 손으로 그렸어요?
난 발로 그리는데..완전 멋진사람이예요!
야나.님.빨리..와요~
아..전..아갈마..이리..부르는 것보다 Agalma님 꼬박꼬박 다 쓰는게 더 좋은데..
워낙 타자가 느린데..할 말은 많고..기다릴것 같아서..그냥..불러버리고..
이 네임은 이 렇게 ㅡ써야..맛이나요..

AgalmA 2015-01-17 18:40   좋아요 0 | URL
ㅎㅎ... 그장소님 웃으시라고 특별히ㅎㅎ
알라딘과 아랍권의 테러가 좀 두렵긴 하지만;

[그장소] 2015-01-17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그럴리가..! 요즘의 방식으로 부활
시켜줘 고맙다 하지않을까요?
전 좋던데.~ 놀랐네요.원래 그림그렸나봐요. 일러스트?

AgalmA 2015-01-17 17:30   좋아요 1 | URL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어요ㅡㅜ...글공부도 녹록치 않네요ㅎㅎ

[그장소] 2015-01-1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래...그럼 방향이 살짝 전환된거예요? 오래 하셨겠죠?^^ 감수성이..어쩐지...흐흣!!^^
글 정리 하시는 것도 그렇고..유머.재치를 잡아내는 개성도 본인만의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재주가 이것만 있는게 아닐거야.
분명..ㅎㅎㅎ.그래도 계속 가다보면 결국
한 길로.모이는 지점이 나오듯.. 실력이 두드러져 당신만 하게되는 뭔가..가 확~!!
눈에 띄게 될거라고..믿어요~!

[그장소] 2015-01-1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야나님..언제 올지 모르는데..ㅠㅠ;
오늘 친구 아가 돌 이거든요..근데..이거 보느라..이런다능...못말리죠?...살짝 가서 울 딸 바람쐬주고 와야될듯합니다.
Agalma님..자주 이런거..해줘요. 경제학도
이런식이면 뚝닥 배우겠어요..ㅎㅎㅎ
참..피케티 관련은..친구랑..책 돌려보고
토론하느라..!

AgalmA 2015-01-18 01:07   좋아요 0 | URL
오, 벌써 피케티 읽으셨어요. 고생하셨겠네요. 21세기 자본론 읽은 분들은 다 칭찬받아야 할 듯;
무거워서 무릎에 올려 놓지도 못해서 책상 정좌-_-;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그렸고 늘 놓치지 않으려하는 습관같은 게 돼서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 엉뚱한 걸 찾는 습관이 들어 버렸어요. 너무 제 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글도 자꾸 그림처럼 만들려고 해서;;;

그림도, 글도 다 재밌고 좋아요. 제 성장을 볼 수 있는 도구들이니까요.
장하준씨 책은 정리가 그나마 쉬운 편이었는데 피케티는 음.....

암튼 여러 분야 책은 꾸준히 읽을 생각입니다. 낯선 경험들이 많아 좋아요:)

antibaal 2015-01-18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학을 전공하셨는지요? 두 책을 분석 비교 하셨는데 대단한 노력이 들어가서 읽는데 감사했습니다.

AgalmA 2015-01-18 10:38   좋아요 0 | URL
전공자는 아닌데요, 요즘 중요하게 봐야할 분야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야겠다 싶어 부족하나마 정리했습니다. 팟캐스트로 제가 많은 정보를 알았듯이요. 전공자가 나서서 요목조목 더 자세히 말해주면 좋겠다 싶은데...본문 속 그런 말 생각나네요. 수많은 경제학과 학생들은 과 특성 때문인지 다른 전공 학생들보다 대체로 이기적이며 금융투자자로 진출한다...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피케티도 정리가 잘 돼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좀 됐음 하는 바람입니다.
좋게 봐주시고 격려 말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antibaal 2015-01-18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요하게 계속 주시하고 주의 경계해야 하는 이 분야의 좋은 글 계속 계속 부탁드려요. 제가 감사드립니다.

네오 2015-03-3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동주의학파요? 네, 조지 애커로프는 정보경제, 다니옐 커네만은 행동경제인데,.전자는 인간의 생각이 합리적으로, 그리고 행렬로, 후자는 비합리적으로 그리고 통계의 의해서 논증하는 경제분야거든요,,음,. 경제학는 원래 쉽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죠,.굉장히 어려워요, 지금시대의 유행조류는 게임이론인데 애커로프의 정보경제와 비슷하긴하죠, 그리고, 경제계보학이 있는데 피케티는 주류는 아니죠, 장하준도요,

AgalmA 2015-04-01 03:53   좋아요 0 | URL
게임이론은 경제학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 적용되던 것 같더군요. 1월에 경제학 공부하느라 머리 쥐나서 잠깐 쉬고 있는데, 다시 또 도전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읽을 책이 산더미라 당분간 도전은 어려울 듯^^;
네, 그들이 주류가 아닌 건 압니다. 그들이 국내/자국 중심적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장하준씨는 일천한 제가 감히 죄송하지만, 생각이 벌써 늙으셔서 주류로 이끄시긴 역부족일 거 같고요. 피케티는 향후 어떻게 나아가는지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높죠. 물론 경제학도 보수파들이 탄탄하니 어렵긴 하겠지만 말이죠. 네오님 서재에 올리신 피케티 반론쪽 글도 봤는데, 그 논지가 그리 타당해보이진 않았으나 제가 요목조목 따져 말할 정도의 수준도, 열의도 내기 힘들어서 아쉽더군요.
피케티가 주식 장사식으로 살지 않고 무리일지라도 비전을 제시라도 해주니 고마울 따름.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들 해대지만 피케티가 제시한 안들이 제겐 합리적이었지 혁명론으로 여겨지지 않았거든요. 하자고 들면 못할 건 없죠. 기득권과 국가화된 권력들이 현실적으로 막는다는 게 문제겠지. 여하간 피케티는 흥미로운 지식인이긴 합니다. 이론과 체계와 행동력을 다같이 보여주는 인물 흔치 않으니까요.
 

 

 

 

 

 

 

 

 

 

 

 

 

  

§ 나는 사유가 가장 무겁게 흘러가는 액체라고 생각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1932) , 조지 오웰 『1984』(1949)를 논하며 전자는 낙관적 디스토피아를, 후자는 부정적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며, 상당 부분 예지적이었지만 그것이 아직도 유효한가 묻는다. 특히나 『1984』에 대해서는 "플리니우스Gaius Plinius의 『박물지Historia Naturalis』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사이 어디쯤엔가 어중간하게 자리매김되었다"(p46)고 말한다. 이 시대는 더이상 '파놉티콘'과 '빅 브라더'로는 설명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율하며 『멋진 신세계』,『1984』를 읽었던 사람은 아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하며 이 책을 펼치면 된다.

그렇게 보무당당히 말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 책은 2000년도에 출간되었는데, 현시점(2015년 한국과 세계)에 대입해도 유효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유효하고 비껴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미 그런 책이 나왔나? 이 책에 대해 어떤 이들은 최종 해법은 안 나와 있잖아! 투덜대기도 한다. 사회학자는 진단가이지 (우리가 언제나 기다리는)지도자가 아니다. 바우만이 말하는 이 액체 시대는 지도자를 통한 혁명 시대도 될 수 없다. 우리는 예전 혁명 시대의 '시민'이 아니라 내·외적으로 아주 '개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래 요약들은 본문 중에 내가 눈여겨 보는 현재상황에 맞춰 발췌해 소제목과 공감 단상을 달았다. 이 리뷰는 책의 이해를 위함이 아니라 지극히 내 주관에 따른 정리다. 당신은 내 글을 의심해야 하며 자신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볼 필요를 느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 책을 쓴 의도이자 그 이전 테오도르 W. 아도르노의 뜻이지도 않을까 생각한다.

책읽기는 그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현실도피성 카니발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작가는 우리를 그러하게 이끌어주고 모이게 만든다. 그 이후는 우리 몫이다.

나는, 사유는 최대한의 검토(반드시 빈틈이 있겠지만) 끝에 육화되어야 하고 그를 통해 우리 행동이 조금이라도 나은(발전이 아니라) 세계를 만드는데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든 개인사든 이 헛점많은 독서기록이든 그 속의 많은 실패와 실수 또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지금 한국 현실은 어떤 보상도 불가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쓸모있는 생각을 최대한 모아야 할 때이며, 서로를 돕고 격려할 때다. 나는 뼈아프게 내 생각의 단점들을 고칠 것이다. 자신이 틀렸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하나의 반성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사유가 너무 버겁지만 이곳의 많은 이들 또한 그러했다고 말하고 있다.  

기 드보르 "인간은 자기 조상을 닮은 것보다 자신의 시대를 더욱 닮는다."(p207)는 말은 매우 끔찍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희망적이기도 한 주문 같다.   

 

 

ㅡAgalma

 

 

 (p8) 액체는 자신이 어쩌다 차지하게 된 공간보다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액체는 공간을 차지하긴 하되 오직 '한순간' 채운 것일 뿐이다. 어떤 의미로 고체는 시간을 무효화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액체는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고체를 설명할 때, 우리는 시간을 송두리째 무시할 수도 있지만, 유체를 설명할 때 시간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유체에 대한 설명은 하단에 날짜가 있어야 하는 사진들과 같다.(…중략…) 우리는 액체 일반반이 고체로 된 모든 것들보다 더 가볍고 덜 '무게가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벼움'이나 '무게 없음'에서 이동성과 무일관성을 연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험상 가볍게 여행할수록 더 쉽고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장 해방]

 

§  사회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길 멈춘 현대 액체성의 특징

 

⊙ 비판에 대한 호의 - 캠핑용 차량 캐러밴 단지의 방식(포드주의적 공장도 이에 해당)

운전자(사회 구성원-Agalma 임의)들은 관리자에게 (p42) 원하는 것이 것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다고 볼 수 있는 소망, 즉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고, 간섭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그들은 관리자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사용료를 제때 내겠다는 약속을 한다. 돈을 내기 때문에 때로는 요구사항이 있을 때도 있다. 제공받기로 한 것들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때 이들은 몹시 단호한 경향을 띤다. 그러나 그 외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지내고 싶어하며 그렇게 되지 못할 때는 화를 낸다. 가끔씩, 더 질 좋은 서비스를 목청껏 외치기도 하는데, 일단 목소리를 높이면 꽤나 떠들썩하고 단호하여 원하던 것을 얻기도 한다. 무시당했다고 느끼거나 관리자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캐러밴 생활자들은 불만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몫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동 주택 단지의 관리 철학에 질문을 던지거나 이를 두고 교섭하려고 마음 먹는 일은 결코 없다. 기껏해야 앞으로 이곳에 다시는 오나봐라 하며 친구들에게도 이곳이 좋지 않다고 말해주자고 마음먹는 정도이다. 각자 자신의 일정에 따라 단지를 떠날 무렵, 그곳은 이들이 도착했을 때 그대로 남아 있다. 뜨내기 야영꾼들에게 좌우되지 않고 또 다른 야영꾼들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것이다. 행여 뒤이어 도착한 여행자 무리들이 연이어 특정한 불만을 계속 품게 된다면, 차후에 똑같은 불평이 반복되지 않도록 편의제공 사항이 바뀔 수도 있다.

 

⊙ 성찰과 선택의 자유을 잃은 개인화 - 의자 빼앗기 놀이

(p55~56) 어떠한 '토대'도 '재구축'에 제공되지 않으며, 선결조건으로 추구되는 종류의 토대들은 무너져내리기 쉽고 '재구축' 작업이 완성되기 전에 종종 사라지기도 한다. 그 대신 의자 빼앗기 놀이에 사용되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지닌, 개수와 위치가 변화하는 의자들이 있다. 이 의자들로 인해 개개 남녀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 놀이는 결코 '성사'되는 법이 없다. 조금의 휴식도 없으며, 우리가 무장을 풀고 느긋하게 더 이상 조바심 내지 않을 수 있는 최종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만족감도 없다. 기반이 해체된 개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걸어온 길의 끝에 새로운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전망은 없다.

 

 

(p57) 운명으로서의 개인성과 자기 주장을 위한 실제적, 현실적 능력으로서의 개인성 간에 점차로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 공동화될 수 없는 무관심

(p58) 개인의 힘이 단독으로는 아무리 나약하고 무능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집단적 입장과 행동으로 결집된다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 착착 이루어질 것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문제는 개인 차원의 고충을 그런 식으로 집중시켜 모아서 공동의 관심사로 만들어 공동 행동을 취하는 것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과제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모든 개인의 운명이 떠안고 있는 가장 흔한 고충들은 더해질 수 없는non-additive'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고충들은 '전부 더하여' '공동의 대의명분'의 합으로 이끌어지지 못한다. 서로 나란히 놓일 수는 있겠지만 하나로 응결되는 법이 없다. 개인의 고충들은 그 발생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고충과 연계될 수 있는 접점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p59) 또 다른 장애물이 있다. 토크빌이 이미 오래전에 의심했던 것처럼,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을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암시하는 바, 개인은 시민의 최악의 적이다. '시민'은 시의 복지를 통해 각자의 복지를 추구하는 경향을 띤 사람이다. 반면 개인은 '대의명분' '공공의 선' '선의의 사회' 혹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미온적이거나 회의적이며 경계심을 갖는다. '공공의 이익'이란 것이 각 개인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 이외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개인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 이외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개인이 모여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들 공동의 노력이 어떤 다른 이득을 가져올 수 있든지 간에, 그것은 개개인이 각자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될 것이며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도 그러한 추구를 돕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의 힘'이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희망할 수 있는 유용한 것은 두 가지뿐인데, 그 하나는 개개인이 자기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인권'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것이 평화 속에서 ㅡ 실제 범죄자이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강도나 성도착자, 거지, 그 밖의 다른 불쾌하고 유해한 이방인들이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통해 개인의 신체와 재산의 안년을 수호해줌으로써 ㅡ 추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문제를 발견한 사유는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사유 속의 욕구가 우리를 사유하도록 만든다." - 테오도르 W. 아도르노『부정의 변증법』

사유를 통한 실행 명령은 지배로 변질되고, 실행 거부는 현상태의 방치가 될 것이다.

(p71) 사유하는 삶vita contemplativa과 행동하는 삶vita activa 사이의 딜레마는, 별로 탐탁지 않다는 점에서만 닮았다고 할 두 가지 전망 중 택일을 하는 문제로 응축된다. 사유를 통해 유지되는 가치들을 타락으로부터 잘 보호할수록 그들의 삶에 봉사해야 할 그 가치들이 그들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자꾸만 축소된다. 그 가치가 그들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클수록 혁신을 촉구하고 장려했던 가치들에 상응하는 개선된 삶을 떠올리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2장 개인성]

 

§ 자본주의 시간 속 삶의 딜레마 - 죽음의 방식만 다를 뿐이다

'무거운 자본주의'도 '가벼운 자본주의'도 우리를 구해주지 못한다. 뉴스에서는 침몰과 추락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세월호 사고'는 21세기 한국 자본주의 속 개인의 침몰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였다.

(p96) '무거운 자본주의'호에 올라탔던 승객들은 선장의 갑판 위에 오를 수 있는 선택받은 일부 선원들이 목적지로 배를 몰고 갈 것이라 믿었다(이것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승객들은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통로마다 큼지막한 글자로 내걸린 규칙들을 익히고 준수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써도 되었다. 이들이 불평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때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선장이 배를 빨리 항구에 대지 못했거나 승객의 편의를 지나칠 정도로 무시한 데 대한 항의였다. 반면 '가벼운 자본주의' 항공기에 탄 승객들은, 조종실은 텅 비어 있는 상황에서, 비행기가 어디로 날아가고 어디에 착륙하며 누가 공항을 선택하는지, 또한 도착할 때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규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등등의 정보를 '자동운항'이라고 적힌 정체 모를 블랙박스로부터 얻을 방도가 전혀 없다는 공포를 경험할 것이다.

 

 

§§ 소비라는 욕망의 경주트랙을 초월하는 '소망'이라는 시간의 출현

(p117~118) 욕망은 그 자체가 이의제기나 질문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목적이 된다. 다음 바퀴에서 포기되거나 그다음 바퀴에선 아예 잊혀지는, 뒤따르는 다른 모든 목적들은 주자를 계속 달리게 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다. 두어 바퀴를 있는 힘껏 최대 속도로 달려 다른 주자들이 기록을 경신할 만큼의 속도를 내도록 유도하고 경주에서 빠지는, 경주 운영진이 고용한 '선두 주자', 혹은 우주선이 일정한 속도 이상을 내게끔 한 뒤 분리되어 우주로 떨어져나가는 보조로켓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목적들은 위로가 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보다 광범위하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수단들의 크기와 효율성이다. 이때 경주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수단이, 그야말로 초월적인 수단이 된다. 다른 수단들에 대한 믿음과 필요를 살아 있게 만드는 수단 말이다.

 

(p121) "소비를 자기표현, 그리고 취향과 차별성이라는 개념과 연결 짓고 있다. 개인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상품의 지속적 확대에 전념하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입장에서는, 이는 매우 협소한 하나의 심리적 틀인 바, 결국에는 사뭇 다른 심리적 '경제'에 무릎을 꿇는다. 소망은 욕망을 대신하여 소비를 자극하는 힘이 된다."(Harvie Ferguson, The Lure of Dreams : Sigmund Freud and the Construction of Modernit, 1996)

소비자주의의 역사는 환상의 자유로운 비상을 가두고 '쾌락 원칙'을 깎아내려 '현실 원칙'에 지배받는 규모로 줄이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체' 장애물을 무너뜨리고 폐기해온 역사이다. 19세기 경제학자들이 '고체성'ㅡ불변하고, 영구히 제한되고, 유한한ㅡ의 진정한 결집체로 간주했던 '필요'는 폐기되었고, 표출되기만을 기다리는 '내면의 자아'의 진정성에 대한 변덕스럽고 유연한 꿈과 절반쯤 불법적 결탁을 한 탓에, 욕망은 필요보다는 훨씬 유동적'이고 널리 확산될 수 있었으며 한동안 필요를 대체하게 되었다. 이제 욕망이 폐기될 차례이다. 욕망은 그 유용성이 이미 끝나버렸다. 소비 중독을 작금의 상황으로 몰고 온 터라, 이제 욕망은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소비자 수요를 공급과 동등한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데는 더 강력하고, 무엇보다도, 더 기민한 자극제가 필요하다. 바로 '소망'이야말로 그토록 필요로 하는 대체품이다. 소망은 쾌락 원칙을 완성시키면서 '현실 원칙'이라는 장애물의 마지막 남은 찌꺼기까지 깨끗이 소각 처분해준다. 원래 가스처럼 형체없는 내용물이 마침내 용기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퍼거슨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욕망의 용이함이 비교와 허영, 질시, 그리고 자긱 찬미에 대한 '필요'를 바탕으로 하는 곳에서는, 그 소망의 즉시성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매는 우발적이고 예측을 불허하며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구매는 어떤 소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실현하는 환상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소망과 마찬가지로 진지하지 않고 유치하다."( Harvie Ferguson, "Watching the world go round: Atrium culture and the psychology of shopping." in Lifestyle Shopping: The Subject of Consumption,1992 

 

 

§§§ 자본주의 시간 앞에 몸이라는 허위성 또는 상품성

개인이라는 협소한 대지밖에 가지지 못한 우리에게 몸은 절대적인 자본이다. 우리는 이윤을 위해 이 몸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보물 '건강'의 적신호는 용납할 수 없다. 질병의 기미는 전쟁의 신호로 파악되고, 난무하는 건강 식단은 치료와 예방책이 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발병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의학의 활발한 개입은 치료를 넘어 더 큰 위험성을 불러온다(성형시술의 폐해와 각종 의료사고를 생각해보라).

(p125) '균형 잡힌 몸매'가 된다는 것은 유연하고 흡수력이 있으며 적응력이 있는, 아직은 겪어보지 못하여 미리 상술할 수 없는 정서들을 겪으며 살 준비가 된 몸을 가졌다는 것이다. 건강이 '더도 덜도 아닌' 식의 상태라면, 균형 잡힌 몸매는 구체적 기준의 육체적 능력은 전혀 지칭하지 않고, 그 능력(무한하면 더 좋고)의 확장 가능성을 지칭한다. '균형 잡힌 몸매'는 예외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평범치 않은 것들ㅡ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ㅡ을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건강이 '규범적인 것들을 고수라는 것'이라면, 균형 잡힌 몸매는 모든 규범을 깨고 이미 달성한 기준 일체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 쇼핑만큼이나 늘어나는 쇼핑의 의미들 - 액막이, 접착성, 일회성

(p130) 강박적/중독적 쇼핑이 정말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또한 밤잠을 설치게 하는 불확실성과 불안이라는 섬뜩한 유령을 몰아내는 대낮의 의식이다. 실상 이것은 매일매일의 의식이다. 슈퍼마켓 선반에 놓인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이 '유통기한' 도장이 찍혀 있는 한시적인 것이고, 상점에서 구매가 가능한 종류의 확실성들도 쇼핑을 하게 만드는 첫번째 이유인 불확실성을 확실히 뿌리뽑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액막이 의식은 매일같이 반복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이 게임이 계속되게끔 하는 것은ㅡ그 명백한 미결성과 전망의 부재에도 불구하고ㅡ액막이 의식들의 놀라운 속성이다. 즉, 이 의식들은 악령을 몰아내는 것(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이 아니라 그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효과를 지니며 만족을 준다. 액막이의 기술이 존재하는 한, 유령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개인화된 소비자 사회에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모든 일들은 '스스로 하라(DIY)'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쇼핑말고 다른 그 무엇이 '스스로 하는' 액막이 의식의 필요조건에 그토록 잘 부합할 수 있단 말인가?

 

(p133~134) 경험과 삶에서 얻은 정체성은 환상, 혹은 어쩌면 백일몽이라는 접착제가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전기적 경험이라는 완강한 증거처럼 너무나도 강력한 접착제가 있다면ㅡ쉽게 녹아버리고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는 환상이라는 접착제보다 접착력이 훨씬 뛰어난ㅡ그것이 보여주는 전망은 백일몽이 부재하는 것만큼이나 불쾌하다. 바로 이 때문에 에프라트 체엘론Efrat Tseelon이 언급한 대로, 유행이 그토록 기대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보다 더 약하지도 더 강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재료이다. 유행은 "행동에 참여하지 않고도 (……) 그로 말미암은 결과를 감당하지 않고도 그 극한을 밟아볼 수 있는 방법이다." 체엘론이 우리에게 일꺠우는 바, "동화에서 공주의 진정한 정체성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환상적인 복장이 핵심이다. 요정 대모가 신데렐라에게 무도회 드레스를 입힐 때 그녀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Efrat Tseelon, "Fashion, fantasy and horror",1998)

 

(p136~137) 엠마 로스차일드Emma Rothschild "마케팅에 대한 알프레드 슬론(1875~1966. 제너럴모터스의 총수를 지냄)의 혁신성 - 매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지속적으로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며, 상품을 사회적 지위와 연관시켜 변화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인위적으로 심어주는ㅡ은 생산에서의 헨리 포드의 혁신성과 분명한 한쌍을 이룬다. (……) 두 가지 모두 진취성과 독립적으로 사고하려는 의지를 저하시키고 심지어 자신의 취향의 문제에서도 스스로의 판단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기호들을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이를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알프레드 슬론은 이후 보편적인 추세가 된 경향의 개척자였다. 상품 생산 전반이 오늘날 '지속력이 있는 사물들의 세계'를 '즉각 구식이 될 수 있도록 고안된 일회용 상품들'로 바꾸었다. 그 결과를 제레미 시브룩은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상품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상품에게 배달되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성격과 감수성 자체가 상품들과 경험들, 감정들에 (……) 대략적으로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개조되어 (……) 이것들을 판매함으로써만 우리 삶의 윤곽이 드러나고 의미가 생기게 된 것이다."(Jeremy Seabrook, The Leisure Society,1988)

 

 

 

 

 

[3장 시·공간]

 

§ 배타적인 유토피아

수도원을 연상케 하는 부유층이 만들어가는 집단주거지, 타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이러한 도시 생활의 유형은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으며, 조정과 타협을 거부하는 특성으로 서로를 더욱 고립화시킨다.

 

§§ 수많은 이방인의 탄생들 - "공공의 가면"

도시 속에서 우리들의 만남은 노사연의 "우연이 아니야~" 노래가 아니라 (서로를 믿을 수 없는)"과거가 없는 사건"이며, 대개 (언제 끊어져도 아쉬울 것 없는)"미래가 없는 사건"이다. 우리는 잘못된 만남(김건모 곡은 알아서 생각하시고)이 되지 않도록 "예의"를 갖추며 항상 조심하며 경계한다. 그 "예의"는 양날의 검으로서 우리를 가깝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이상의 접근도 막는다. 

 

§§§ 구경거리 공간들 - 소비의 사원들

도시 속 멋진 경관의 빌딩들은 그곳에 입장할 수 있는 허용과 단지 구경만 할 수 있는 거부를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가 공유하는 "콘서트, 전시 공간, 휴양지, 스포츠 공간, 쇼핑몰, 매점"은 서로 상호적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제공하며 "개인적 소일거리" 속에 즐거움만을 찾는 소비자로 만든다. 이 시점에서 알라딘 북플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빈다!

 

§§§§ 교류 과잉으로 인한 이방인 너머 이방인과 우리의 파편적 집착

아래 본문은 많은 인종차별 사태와 국내 거주 외국인 살인사건들에서 나타나는 반응들과 관련해 좋은 돋보기 역할을 한다.

(p175~177)우리 시대에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공동체주의를, 이후 근대화 과정 속에서 무력화無力化 혹은 약화될 어떤 본능이나 습관이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데서 오는 거북한 딸꾹질 정도로 설명해버리는 것은 오류라 하겠다. 공동체주의를 잠시 합리성이 실패한 것으로ㅡ유감스럽지만 피하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일로, 합리적으로 지향한 '공적 선택'이 의미하는 것들과 노골적으로 대립되는 어떤 일로 치부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모든 사회 무대는 각각의 특정한 합리성을 고무하며, 이를 합리적 삶의 전략 개념으로 투사한다. 따라서 현재 공동체주의의 징후를 나타내는 것들은 '공적 공간'의 진정한 위기, 따라서 공적 공간이 본령으로 삼고 있는 인간 행위인 정치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합리적' 대응이라는 가설이 그 힘을 얻게 된다.

 

  정치 영역이 공적 심경 토로의 장으로, 친밀함을 공적으로  전시하거나 사적인 미덕과 악덕들을 공적으로 검토하고 검열하는 장으로 좁혀짐에 따라, 정치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려하는 대신 공적 무대에 모습을 비추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살기 좋고 정의로운 사회의 전망이 정치적 담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면서, (세넷이 이미 이십 년 전에 갈파했듯이 Sennett, The Fall of Public Man) 사람들은 "그들에게 행동이 아닌 의도와 감정만을 소비할 것을 권하는 정치적 배우를 바라만 보는 수동적 관객이 되었다." 그러나 요점은, 관객들이 멋진 구경거리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정치가로부터도 그다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현재 주목받는 다른 분야의 배우들한테도 괜찮은 구경거리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리하여 무대에 오른 다른 구경거리들처럼, 정치 무대 역시 이해관계를 초월한 정체성이 우선이라는 메시지가 무차별적으로 단조롭게 주입되거나, 혹은 진정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식, 혹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인가를 강조하는 끊임없는 공공 교육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문제가 더욱더 공적인 관계와 공적 삶의 실제 내용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자아 정체성은, 한때 이해관계로 항로를 삼던 배들이 침몰하자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자들이 가장 움켜쥘 법한 지푸라기가 되었다. 세넷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동체 유지 자체가 하나의 삶의 목표가 되고, 확실히 소속되지 않은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공동체의 주요한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협상을 거부하고 이방인을 끊임없이 제거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댈 필요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다르고 낯선 외래의 '타자'를 멀찍이 거리 두려는 노력, 소통하고 조정하고 상호간 충실할 필요를 사전에 없애는 결정은, 사회적 유대 관계에 새롭게 등장한 취약성과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실존적 불확실성에 대한, 상상 가능할 뿐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반응이다. 확실히 그러한 결정은 오늘날 오염과 정화에 대한 우리의 편집증적 관심, '외부인들'의 침입이 곧 개인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경향, 섞이지 않은 순수함이 곧 위협이 없는 안전이라고 보는 경향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우리 몸 주변으로 남몰래 스며드는 외부인들은, 마치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오는 물질들에 대해 우리가 신경을 곤두세우듯, 위협적인 이물질로 인식된다. 이 두 가지 모두 '나의(우리의) 체계로부터 그것(들)을 추방'하려는 유사한 욕구를 충동질한다.

  그러한 욕구는 인종 분리의 정치 속으로 수렴되고 뭉쳐지고 농축된다. 특히 '외국인들'의 유입을 반대하여 자신들을 지키자는 정치에서 특히 그러하다. 조지 벤코의 지적을 보자.(Benko, "Introduction")

  "타자들보다 더 타자인 타자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외국인들이다. 우리가 이제 타자를 구상해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외국인이라고 배제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 병리현상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병리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확고하고 신뢰할 만한 의미가 없는 세상에 헛되이 의미를 강제하려 애쓰는 정신적 병리현상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병리현상을 초래하는 공적 공간의 병리현상, 즉 대화와 조정의 기술이 시들고 쇠퇴하고, 참여와 상호 헌신 대신 도피와 생략을 하는 현상이다.

  "이방인에게 말 걸지 말라"ㅡ한때 근심에 찬 부모들이 자신들의 힘없는 자식들에게 건네는 충고였다ㅡ는 말은 정상적 삶을 사는 성인들의 전략적 교훈이 되어버렸다. 

 

 

§§§§§ 공간 정복

(p182~183) 이제부터 시간과 공간의 관계는 미리 정해져 있거나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이에 따르는, 가변적이며 역동적인 것이어야 했다. '공간 정복'은 더 빠른 기계를 의미하게 되었다. 가속화된 움직임은 더 넓은 공간을 뜻했고,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것이 공간을 확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쫓고 달리는 게임에 붙은 이름은 공간 확장이었고, 포상품은 공간이었다. 즉, 공간은 가치이고 시간은 도구였다.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도구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막스 베버가 시사했듯이, 근대 문명은 운영 원칙인 '도구적 이성'의 대부분은 업무를 더 신속히 수행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 초점이 주어진 반면, '비생산적'이고 한가하고 공허한,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들은 제거되었다. 혹은, 행동의 방법이 아니라 결과라는 측면에서 다시 풀이하자면, 도구적 이성은 공간 안에 사물들을 좀더 조밀하게 채워 넣고, 주어진 시간 내에 다시 채워지게 될 공간을 더 확장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근대적 공간 초입에서 데카르트는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듯, 존재와 공간성을 동일시하며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외연을 가진 실체res extensa'라고 규정하였다(롭 쉴즈(Rod Shields, "Spatial stress and resistance: social meanings of spatialization", in Space and Social Theory)가 재치 있게 표현했듯이, 데카르트의 유명한 코기토를 "나는 공간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 바꾼다 해도 그 뜻이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 소프트웨어적 세계의 '존재의 가벼움' '순간적인 삶'

(p192) 오직 존재하는 것은 일차워적 시간의 점들, 즉 '순간'뿐이다. 그렇다면 순간들을 모아놓은 형태들에 불과한 그러한 시간은, '우리가 아는 시간'임에 여전한가? '순간적 시간'은 최소한 어떤 긴요한 측면에서는, 모순어법이다. 혹시 공간의 가치를 말살시킨 뒤 시간은 자살을 해버렸을까? 시간의 광기 어린 자기파멸의 길에서 공간은 그저 첫 사상자였던 것은 아닐까?

 

 

 

 

 

[4장 일]

§ 진보 그리고 역사에의 믿음 - 요즘 내가 가장 아프게 느끼는 단어들 3개가 다 모였네;

현 상태에서는 비껴보이는 지점이 여기였다. 진보의 믿음은 인식으로도, 현실로도 지금 붕괴되어 가고 있다.

(p214) '진보'는 역사의 어떤 특징이 아닌, 현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가장 심오하고 아마도 진보의 의미는 두 가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믿음,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는 믿음과 그리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라는 믿음으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 믿음은 공존 공생한다. 그리고 이 둘의 공존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위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어떤 일을 이루어지게 할 힘이 있는 한 계속 유지된다.

 

(p218) 우리를 이끌어줄 목적지라는 개념이 없이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는데, 살기 좋은 사회를 찾으려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무엇이 우리를 정처 없이 질주하게 만드는지도 확실치 않다. " 더 이상의 사회적 구제는 없다. (……) 이십 년 전 린든 존슨 대통령이 하던 식으로 오늘날 '위대한 사회'를 주창하는 자가 있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이 비웃음감이 될 것이다"라고 한 피퍼 드러커의 평결(Peter Drucker, The New Realities,1989)은 이 시대의 분위기를 한치의 오차 없이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라는 근대의 로맨스, 즉 모든 것이 '잘되어가고' 있고, 지금보다 더 많은 만족을 얻게 될 것이며, 그렇게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믿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조만간 끝날 것 같지도 않다. 근대성은 오직 '만들어가는' 인생밖에 모른다. 근대의 남녀 개인들에게 삶이란 주어진 과제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혹독한 과제, 엄청난 집중과 새로운 노력을 요하는 과제인 것이다. '액체' 근대나 '가벼운' 자본주의 단계에 인간 조건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양식에 원기를 부여하였다. 진보는 최종적으로(그리고 곧) 완전한 상태(모든 일이 완성되고 더 이상 변화가 필요치 않은 상태)에 이르기 위한 임시적 수단이나 잠정적 현안이 아니다. 진보는 영원한, 아마도 끝이 없을 도전이자 '살아 있되 그것도 잘살아 있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현재 체현된 진보 개념이 너무나 생소하여 그것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있는지 궁금해진다면 이는 현대적 삶의 다른 매개변수들처럼 진보 역시 '개인화'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좀더 핵심을 말하자면 진보 개념에서 공적인 성격이 빠져나가고 사적인 것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 그것은 이제 공적인 성격이 사라졌다. 이는 지금 현실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제안들이 다종다양하졌기 때문이고, 기발하고 새로운 것이 정말 개선을 의미하는가라는 논쟁이 그것이 도입되기 전후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고 선택된 연후에조차도 논박당할 여지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개선이란 문제가 이제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기획이 되었기 때문에 사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자신들의 지혜와 자원과 근면함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좀더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끌어올리고, 불쾌한 현재의 조건들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바로 개개 남녀들이기 때문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한 사회』에서 이렇게 썼다.

  "개인화된 삶의 양식과 조건들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ㅡ살아남기 위해ㅡ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관리할 때 스스로를 중심으로 세우게 된다. (……) 개인은 실제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선택하거나 바꾸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일의 위험을 직접 감수해야 한다.  (……) 남녀 개인들이 생활 세계에서 사회적 재생산의 단위가 되는 것이다.

 

 

§§ 에피소드화된 삶 - 불가능한 목표

(p224) 타협의 여지가 없는 미로와도 같은 세상에서 인간의 노동은 사람의 다른 양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족적 에피소드들로 분할되어 있다. 또한 인간이 해야 하는 다른 행위들과 마찬 가지로, 행위자의 의도에 일치하는 목표는 자꾸만 회피하는 듯 물러나는데, 어쩌면 그것은 달성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일은 질서를 세우고 미래를 통제하는 세상에서 게임의 영역으로 떠내려왔다. 일하는 행위는 조심스럽게 단기적 목표를 세워 그저 한 두 걸음만 앞으로 내딛는 게임 참가자의 전략처럼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마다 얻게 되는 즉각적 결과로, 그것은 바로 그 현장에서 소비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

 

 

§§§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의심 - 국가의 포드공장화

푸코 '감옥'보다 한 발 더 나간 것 같은데!

(p234~235) 일부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불행에 대비한 이 집단 보험을 통해 가입자들이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과감하고 영리해지고 위험을 감수할 용기를 갖게 되면, 즉 보험 가입자들이 '자기 발로 서는 것'이 가능해지면 바로 파산선고를 내려야 하는 일시적 조치라고 보았다. 좀더 회의적인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집단이 기금을 모아 관리하는 공중위생 장치로 보았다. 자본가 기업 측에서 (꽤나 긴 앞으로의 시간 동안) 재활용할 자원도 의지도 없는 사회 폐기물들을 계속 배출하는 한, 계속 돌려야 하는 정화 및 치유 시설 말이다. 하긴 복지국가라는 것을, 예외들을 처리하고 규범에서 이탈하는 것을 사전에 막으며 그래도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 영향력을 최소화시키는 하나의 장치로 보는 데는 일반적인 합의가 있었다. 규범 그 자체는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자본과 노동의 일대일의 직접적인 상호 결합이었고, 모든 중대하고 어려운 사회 현안들은 그러한 결속의 틀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진보의 구호만 있었나? 아니 미루기도 있었어!

(p251) 근대 사회의 기초가 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근대적 방식을 가능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만드는 태도/행동의 가르침은 만족의 지연(필요 혹은 욕망의 충족, 즐거운 경험과 여흥의 순간의 지연)이었다. 미루기가 근대의 무대(혹은 근대적 무대라고 제시된 곳)에 진입한 것도 이런 체현 속에서였다. 막스 베버가 설명하듯, 볼거리가 가득하고 독창적인 근대의 발명품들이 한편으로는 자본 축적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의 윤리의 확산과 침투로 귀결된 것은 바로 서두름과 조급함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특정한 지연 때문이었다. 더 나아지려는 욕망이 이러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라는 경고가 그러한 노력이 예기치 못할 결과를 향하도록 이끌었고, 나중에 이는 성장, 발전, 가속화, 말하자면 근대 사회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 유대(紐帶)의 병리성 - 미래는 병리를 동반한다

(p256) 변덕스러움, 불안정성, 진입의 용이성은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퍼진 삶의 조건들의 특색이다. 프랑스 이론가들은 불안정성을 말하고, 독일 이론가들은 불확정성위험사회를, 이탈리아 이론가들은 불안을, 영국 이론가들은 불안정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경험되는 인간 곤경의 동일한 측면, 특히나 지구상에서 고도로 발전되고 풍요로운 지역에서 무기력과 의기소침이 야기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개념들이 파악하고 명확히 발언하고자 하는 현상은 (지위와 자격과 생계의) 불안정과 (이것들이 지속되고 미래에도 안정적일지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일신상의,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 즉 소유물, 이웃, 지역사회의) 불안함을 결합한 것이다.

 

 

 

 

 

[5장 공동체]

 

§ "민족주의는 거슬리는 애국심이고, 애국심은 선호되는 민족주의이다." - 홉스

(p279)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구분해주는 기준이, 그것이 드러나거나 감춰지길 바라는 우리의 열망이나 그것들을 인정하거나 거부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 혹은 양심의 가책이 어느 만큼인가 정도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이유가 있긴 하다. 이름이 다르니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 차이는 주로 수사적인 것이므로 거론되는 현상의 실제 내용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논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성이나 감정들, 그것들만 없다면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들을 어떻게 논하는가에 따라 구분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공존의 상태에 영향을 가하는 중요한 요인은 우리가 그에 대한 감정들을 서술할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그 감정과 감정의 본질, 그로 인한 행동과 정치적 결과이다.

 

 

§§ '짐 보관소'의 잠깐모임 사회 혹은 '카니발'의 화약고 사회 - 문제는 내버려두고 보복당할 위험이 없는 희생양 고르기

통합진보당 해체 이후 이제 다음 적은 누구인가?

얼마나 더 많은 찌라시들이 필요한가?

촛불집회는 언제까지 모였다 흩어지기만 반복해야 하는가?

우리가 모이는 곳은 정확히 어디인가?

(p307) 화약고 사회에는 반드시 폭력이 태어나야만 하고 그것이 계속 살아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사회에는 생존을 위협할 적, 집단적으로 처형하고 고문하고 절단시킬 적, 만일 전투에서 지게 될 경우, 상대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을 인류를 저버린 범죄의 방관자로 선포하고 기소하고 처벌받도록 하기 위한 적이 반드시 필요하다.

 

 

(p309)르네 지라르 "전쟁 포로, 노예, 파르마코스(고대 그리스에서 공동체에 큰 재앙이나 위기가 닥쳤을 떄 정화의식을 위한 희생양으로 선택된 사람)와 같이 사회의 바깥이나 주변부에 위치한 존재들  (……) 도시의 다른 거주자들과 연결되는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거나 공유할 수 없는, 외부나 변경 지역에 사는 개인들. 외국인 내지는 적으로서의 그들의 위상, 그들의 노예근성,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들의 나이 때문에 이들 미래의 희생양들은 그 공동체에 완전히 통합되지 못한다."

 

(p318) '카니발 공동체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동체들에게 적합한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그러한 공동체들은 매일의 고립적 투쟁이 주는 고민들로부터, 자신들의 힘든 문제들을 자력으로 해결하도록 설득당하거나 강요당하는 피곤한 법률상 개인의 처지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화약고 공동체들은 나날의 고독이 주는 단조로움을 날려버리는 사건들, 카니발의 경우가 그런 것처럼 억눌린 울적함을 해소하고 이들 축제의 가담자들이 흥청망청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돌라가야만 할 일상을 좀더 잘 버티게끔 해주는 사건들이다. 그리하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음울한 사색이 낳은 철학처럼 그들은 '매사를 그냥 그대로'(즉, 상처 입은 희생자들이나 '간접적 사상자들'이 될 운명을 가까스로 모면한 이들의 도덕적 상흔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p319) 짐 보관소/카니발 동동체 들이 지닌 한 가지 효과는, 이것들이 흉내내고 있고(오도하는 방식으로) 맨 처음부터 복제하거나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한 '진짜'(즉, 포괄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공동체로 모아지는 것을 제법 효과적으로 피해간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미처 분출되지 못한 사회성의 충동들을 집약하는 대신 분산시킴으로써, 극히 어쩌다 한 번씩 드물게 일어나는 조화롭고도 합심을 이룬 집단적 행동들 속에서 필사적으로, 그러나 허망하게 구제책을 찾으면서 고독을 영구화하는 데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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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사드 전집 1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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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춤추는 죽음' 한 대목에서 따온 듯한 제목과 강렬한 흑백의 표지에 이끌렸다.

사드 특성상 내용은,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스타일이라기보다 라스 폰 트리에 <님포 매니악 2>스럽지 않을까 했다. 금욕주의 철학자 셀리그먼과 색정증 환자 조의 대화같을 거라고 말이다.

셀리그먼이 파멸했듯이 사드도 그렇게 만들겠지 하며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를 펼쳤다.

 

 

§§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왜 프랑스일까 였다. 

라블레 - 사드 - 보들레르 - 로트레아몽 - 조르주 바타유 - 장 주네 … 알려진 작가만 짚어봐도 세계적으로 대단한 계보다.

그들이 그토록 외쳤던 "자유"의 토대가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싶어졌다.

보르도, 브르타뉴 기타 등등 프랑스산 포도주의 성분 분석(반 농담)을 비롯해 프랑스 역사 공부도 해야 할까.

장정일을 읽기 위해 삼국유사부터 읽자는 식인가? 그렇다면 미안하다.

(※ 이 리뷰를 쓴 이후 그 "자유"의 중요한 가닥을 알게 되었는데, 기묘하게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에서였다. 나머진 여러분들이 찾아보시길.)

 

이 책은,

사드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는 적당할지 모르지만 작품 분량이 겨우 90페이지라 큰 수확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드의 본격 방탕주의 편력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의 사상 기조와 생애를 훑어보는 정도 되겠다.

책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아폴리네르의 해설은 사드에 대한 전기(傳記)와 시대 양상, 사드 작품 자료에 대한 요약이다. 아폴리네르가 사드를 먼지 창고에서 구출해 현대에 알린 일등공신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장 주네를 감옥에서 구해낸 사르트르의 백과사전 분량 <聖 장 주네론>에 비하면 함량 미달이다.

사드 전집은 14권의 방대한 양이 기획되어 있다. 기존에 출판되었던 것들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일기, 서한집 등의 구성도 있어 전집답다.

모리스 블랑쇼, 롤랑 바르트 등의 사드 관련 글도 차후 전집에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예상하기론 2권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출판 시, 올림피아 출판사 판에 실렸던 조르주 바타유가 쓴 <사드 읽기의 관하여> 에세이가 실리지 않을까 싶은데 맞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름 조사와 정확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차후를 기약하며,

호기심으로만 접근하는 독자를 위해 몇 가지 당부만 남겨둔다.

 

사드 작품의 토대는 libertin(리베르탱) - 무신론적 자유사상이다.

"1. 종교(기독교)와 윤리의 형이상학적 도그마를 부정하여 그로부터 전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적 입장'과

 2. 그 입장을 토대로 하여 모든 육체적, 물질적 쾌락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식'"(p127)의 합이 그것이다.

 

무신론을 주장하고 일신론측 공박까지 하려면 종교론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 신학 세계가 지배하는 당시 세계에서 많은 교리철학과 싸우려면 억지나 윽박으로 될 일이 아니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에서 사드는 그에 대해 논박을 가한다.

사드가 중무장한 18세기 계몽사상을 알고 독서에 임할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로크의 감각론을 제대로 숙지하고 들어가면 좋다. 이후 현대철학까지 공부하면 더 좋고. 그래야 사드 언어에 스며있는 계몽사상의 한계점과 오류를 (긍정이든 부정이든) 비판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과 관련해 이집트 중점으로 4대 문명을 공부하고 들어가라. 관련한 문답에서 사드의 오류와 억지가 있는데 그걸 모른다면 당신은 사드의 논조에 바로 휘말려들 것이다.

이를테면  사드「종교의 요람으로서 이집트에 관한 소논문」에 대한 퓌제 기사의 반론에 응답 중 사드는 이집트 태양 숭배에 대해 "종교는 지리적 측면보다 정신적 측면을 고려하여 판단해야만 한다."라고 강력 주장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종교와 문명은 지역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천문 관찰이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곡창 지대지만 나일강의 범람을 늘 대비해야 했기에 천문학, 수학에 일찍이 관심을 뒀고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각종 교역과 함께 세계 최고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으며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공헌할 수 있었다. 천문관이 곧 신관이었기에 종교권력이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가 내세론이 우세하긴 했지만 총체적으로 정신성의 우세로 이집트 종교를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내분으로 들끓고 있는 지금의 이집트를 볼 때 사드의 소논문의 의의는 더 현저히 가치를 잃는다. 참고로 그리스 이오니아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찾아보세요.

사드는 귀류법(어떤 명제가 참임을 직접 증명하는 대신, 그 부정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여 그것의 불합리성을 증명함으로써 원래의 명제가 참인 것을 보여 주는 간접 증명법)도 자주 쓰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궤변이 될 때가 있다. 나도 종종 그러는데 안타깝다-_-

 

자, 이제 내가 당신에게 바닥 짐을 갖추고 사드에게 접근하라는 당부를 이해하겠는지? 

이 사드 전집으로 사드를 차례로 접하려는 독자여, 점점 강력해질 사드의 철학 논법과 일탈 행위의 충격요법을 그저 구경거리로만 보겠다고? 사드가 그토록 극단으로 밀어 부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정념이 아니었다. 당신과 세계를 뒤흔들기 위한 전쟁 선포였다. 

철학과 악덕으로 무장한 사드 VS 관광지로 여기며 찾아온 반바지 차림 독자의 대결이라.

사드가 찌든 관습과 무비판적 신앙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듯 안일한 독자에게도 그렇듯 덤벼들 것이다. 

히죽히죽 웃거나 이쯤이야, 무표정하게 넘겨버릴 독자라면 당신에게 사드를 읽는 게 무용하다는 것도 당부한다.

 

 

재밌는 에피소드들)

1. 사드의 정확한 외모를 알려주는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은데, (감옥에서 케익을 배달시켜 먹으며 살찐 사드로 변모하긴 했다지만) 금발머리에 미소년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내 생각이 다분히 편견이라는 걸 알지만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2. 바스티유 감옥으로 시민들이 쳐들어가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다는 일화.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전날, 사드가 감옥에서 죄수들을 죽인다고 바깥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날 당장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어 정작 본인은 바스티유 감옥에서 영광스러운 탈출을 못하는 불운을... 결국 사드는 다른 데서 탈출 경력을 쌓았고 심지어 정신 병원을 본인의 극장으로 만들어 병원 원장이 당국에 하소연 문서를 보내기도....역시 대단한 사드;

 

 

ㅡAgalma

 

 

 

 

[사드 전집 목록]

1.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2.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3.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4. 미덕의 불운
5.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6. 라 누벨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7. 언니 쥘리에르 이야기 혹은 악덕의 번영
8. 규방 철학
9. 사랑의 죄악,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들
10. 짧은 이야기들, 콩트와 우화들
11. 강주 후작 부인
12. 옥스티에른 혹은 방탕주의의 불행
13. 이탈리아 기행
14. 노트와 일기,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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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목소리도 어쩐지 지극히 사~아~드 적! 일것같다는 ...제가 읽는데 자동 더빙현상이..ㅎㅎ그이의 육성을 들어 본 바
없음에도 불구...죽음의 무도. 다같이..둥굴게!ㅎㅎㅎ재미있었어요.
그럼.Agalma님..좋은하루보내세요~

AgalmA 2015-01-04 10:54   좋아요 0 | URL
그쵸...사드 문체는 목소리가 느껴져요ㅋ...보들레르 이름과 - 머리벗겨진 아저씨 사진의 괴리처럼 그러네요ㅎ 그장소님도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그장소] 2015-01-0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닉넴..근사해요.
일요일인것도 몰랐네요..~!즐거운 주말!!

AgalmA 2015-01-04 18:58   좋아요 0 | URL
제 닉넴요? 누군가는 한글로 읽으면 웃기다고 놀리던데; 감사합니다^^ 파스칼 키냐르 책에서 가져왔는데 기억이 흐릿해져서 조만간 다시 만나러 가봐야겠어요

[그장소] 2015-01-0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라고요...? 의미가 멋지잖아요.^^
지금에 와선 (장식이나 성물, 귀한것 등..마음을 즐겁게 하는것.. )이라고 하는 듯한데..있는 자체로도 무언가를 기쁘게 하는 존재이기도 한 거잖아요. 깊이 파고들면 심상.아우라.이미지.초상. 드러난 걸 말하자면 동상..^^ 저는 이콘과 아방가르드 책에서 읽은 기억인데..아이콘이..이콘화에서 발생한 것.휘리릭 넘겨 보기 편한 책 ...카톨릭이라..성화에 관심이 있다 보니
주워 알게된 케이스...그리고 반복되는 글자ㅡa가 3개..ㅎㅎㅎ

AgalmA 2015-01-04 20:40   좋아요 0 | URL
네, 그 의미 맞아요^^ a가 세 개라서 가져왔는데 그장소님이 제 취향을 정확히 알고 말씀하시네요ㅎ...엄청 예리하신 분이잖아! 다른 의미로 그래서 aleph도 좋아하죠

[그장소] 2015-01-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째의..! 알레프 맞나요?이 숫자에 대한..것도 나오지않나요? 제로.

AgalmA 2015-01-04 20:52   좋아요 0 | URL
네... 뭘 다 아시는 걸 물어보셔서 제가 드릴 말이ㅎ

[그장소] 2015-01-04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숫자는 제가 완전 꽝이라서요.. 일반상식문제로 푼 기억...그니까 오늘 님이
이래저래 제가 아는 것만 ..얘기하신거라는.!

AgalmA 2015-01-04 21:03   좋아요 0 | URL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하는 게 아니고, 아는 걸 안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그장소님은 일반상식 수준보다 높으신 거 같은데요. 제가 일반상식이 더 낮아서 큰 일입니다. 저는 정말 취향주의자라서요.

[그장소] 2015-01-0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취향주의인걸요! 그러니 일반상식으로 때우는거죠.^^ 자신있어서 라기보단..빈 곳을 채우는 주입식..목적.ㅎㅎㅎ정말 제대로 해서 1:100 퀴즈 대한민국. 한번
도전하게요..!ㅡㅡ농 입니다..할거였음 진작에..했을거예요..

AgalmA 2015-01-04 21:12   좋아요 0 | URL
때우기와 채우기가 절묘하네요ㅎ 응원합니다~

[그장소] 2015-01-04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_ど) ....고.마..고맙습니다~!

AgalmA 2015-01-04 21:18   좋아요 0 | URL
쿠후후, 재밌는 분. 뭘 하시든 응원한다는 뜻이에요^^

[그장소] 2015-01-0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부끄럽고 쑥쓰럽지만 대따! 고마워
하고있는 저를 ㅡ고백하는 거예요! (^o^)b

AgalmA 2015-01-04 23:26   좋아요 0 | URL
그 고마움은 그장소님의 것임을 감사히 바라봅니다. 그장소님이 그 장소를 보여주시다니 이또한 절묘...

[그장소] 2015-01-04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묘,-이 또 한...절.묘!
같은 자릴 빙빙 도는 것은 무한의 원칙입니까..서로 감사인사로 정겹게 땡큐
토스하며 밤을 지냈다는 전설이.....

fledgling 2015-06-0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드 집에 2권 있는데... 바닥 짐이 부족해서 손대기가 두려워지네요. ㅎ읽고 싶어지긴 한데.. 읽고 나서 괴짜로 변하지는 않겠죠.ㅎㅋ

AgalmA 2015-06-08 21:18   좋아요 1 | URL
저도 사드를 처음 접할 땐 굉장히 심적인 부담과 거부감을 느끼며 읽었는데, 철학서를 꾸준히 읽으며 사드를 다시 보니 그 기저에 깔린 철학성에 더 흥미가 생기더군요.
지식의 바닥짐 보다 마음의 바닥짐을 잃지 않으면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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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물리학자들보다 실제 탐사연구자라 확실히 구체적인 설득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분자-원자 구조 생물체인 인간 이성의 한계 또한 보여준다. 물론 칼 세이건은 훌륭한 과학자다. 그가 용매가 필요없는 생물, 전자기호적 생물 상태를 얘기할 때 좀더 파고 들어가주길 바랐지만 칼 세이건은 언질로만 끝맺었다. 그는 실리적 존재방식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이기에 당연한가. 우리에게 그 이상의 존재 방식은 여전히 이론에 불과하다. 과학의 절대명제인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괘변적 과학자나 미치광이 사이비 종교가가 되기 쉽상이니...

 

 

ㅡ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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