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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 : 하나의 논박서 (천줄읽기) ㅣ 지만지 천줄읽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강영계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들 인식하는 자들도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결코 우리를 탐구한 일이 없다. 우리가 어느 날 우리를 찾는 일이 어떻게 당연히 생길 수 있는가? 사람들이 다음처럼 말하는 것은 옳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복음>, 6장 21절) 우리의 보물은 우리 인식의 벌통이 있는 곳에 있다.우리는 본래부터 날개 달린 동물이며 정신의 벌통을 모으는 자로서 언제나 그 벌통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원래 오직 한 가지만을 위해서 진심으로 염려하는데 그것은 어떤 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 밖의 삶, 곧 ‘체험’에 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중에서 누가 그것에 대해서 충분하리만큼 진지한가? 아니면 누가 충분한 시간을 가졌는가? 그러한 일들에서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몰두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곳에는 우리의 마음도 없었고 우리의 귀도 일찍이 없었다! 오히려 신적으로 마음을 풀고 자기 자신에 탐닉하여 있는 사람의 귀에 정말 온 힘을 다해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울렸을 때 그가 단번에 깨어나서 “도대체 몇 시 종을 친 거야?”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 역시 때때로 훨씬 뒤에 귀를 비비며 매우 놀라고 매우 당황해 다음처럼 묻는다. “우리는 원래 무엇을 체험했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는 본래 누구인가?” 이미 말한 것처럼 뒤에 가서 우리는 우리 체험의, 우리 삶의, 우리 존재의 모든 진동하는 열두 번의 종소리를 헤아린다. 아차! 우리는 그것을 잘못 센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바로 필연적으로 이방인으로 남아 있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는 분명히 우리 자신을 혼동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이 가장 먼 존재다”라는 명제는 영원히 우리에게 의미 있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하등의 ‘인식하는 자’가 아니다….
(서문 中)
§
세월호의 기적(汽笛)소리가 울렸고,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깨어났다. 더불어 자신의 부모, 자식, 형제, 친구, 연인, 이웃도 제대로 못 챙겼다는 것 또한 알람으로 들었다. 불시에 날아든 놀람을 간밤의 악몽으로 털어내고 싶었고, 하나 둘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밥을 먹고, 일상을 시작했다.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타인이란 의지와 상관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짐이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얼굴은 무표정한 바로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던가! 타인보다 그들에게는 온갖 치장과 먹을거리, 물건들이 더 소중했고, 더 가까웠으며, 더 위안을 주었고, 더 확실히 ‘좋았다’! “허버트 스펜서는 ‘좋은’이라는 개념을 ‘유용한’, ‘합목적적인’이라는 개념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은 팽목항, 청운동, 광화문, 전국을 돌아다녀도 ‘좋은’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니체는 ‘자연’이란 “약속할 수 있는 동물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식의 문과 창”을 끊임없이 닫는 망각의 인간이 그 대표적인 동물이었다. 능동적 망각. 인간은 사회성과 풍습의 윤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서 그 나무에서 “주권적 개인”이라는 열매를 따서 먹지만, 그것은 매트릭스의 파란 알약(가짜약)에 지나지 않았다. 망각에서 깨어났을 때 사람들은 다시 파란 약을 먹거나, 양심(Gewissen)이라는 징계용 채찍을 들었다. 이때 니체는 말한다. 그것이 과연 본인의 양심이 맞느냐고. ‘양심’ 개념에 “그 배후에 이미 오랜 역사와 형태 변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짐작되지 않느냐고.
인간에 있어 “기억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피와 고문과 희생 없이 일이 진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희생과 제의 형태의 모든 종교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잔인성의 체계, 금욕주의(그 관념들을 ‘잊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한 수단), 끔찍한 형벌들 … “그 같은 모습과 선례들 덕에 드디어 사람들은 사회생활과 편익 아래 살기 위해서 자신이 약속했던 것과 연관하여 대여섯 가지의 “나는 원하지 않는다”를 기억 속에 지닌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이 같은 종류의 기억의 도움으로 마침내 ‘이성’에 도달했다! 아, 이성, 진지함, 정서의 통제, 숙고라고 일컬어지는 이 전체의 음울한 일, 인간의 모든 특권과 사치. 이것들을 위해서 얼마나 값비싼 대가가 치러졌던가! 모든 ‘좋은 것들’의 바탕에는 얼마나 많은 피와 전율이 있는 것인가!”[****]
니체는, 합리주의와 교의(敎義)로서의 도덕의 몰락은 진리를 향한 의지의 자기의식화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
나는 교육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세월호 관련 일들을 보는 구경꾼이고 싶지 않다. 세월호가 뭍으로 완전히 끌어 올려 지길 바란다. 그것은 “인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줄 이 시대의 마음을 보여 줄 것이다. 사람들의 눈물을 한없이 쏟게 만들며, 그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가버렸는지를 보여줄 “무(Nichts)”로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도덕과 윤리의 가치 판단은 그 이후 다시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에 가까운 시간이 걸릴 지라도.
망각에서 깨어날 때마다 먹는 生의 알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야 하리라. 자신이 무슨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ㅡAgalma
[*] 『도덕의 계보학:하나의 논박서』 첫 번째 논문: ‘선과 악’, ‘좋음과 나쁨’ p39
[**] 『도덕의 계보학:하나의 논박서』 두 번째 논문: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유사한 것들 p51
[***] 『도덕의 계보학:하나의 논박서』 두 번째 논문, p58
[****] 『도덕의 계보학:하나의 논박서』 두 번째 논문, p60
[*****] 『도덕의 계보학:하나의 논박서』 세 번째 논문: 금욕적 이상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p 116~117
* 이후 다시 읽어볼 책
『도덕의 계보학:하나의 논박서』는 <<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Friedrich Nietzsche, KSA 5, Munchen, 1988)를 원전으로 삼아 옮긴 것입니다. 이 책은 원문의 약 3분의 1을 발췌해 번역한 것으로, 『도덕의 계보학』의 요점을 쉬우면서도 잘 전달해 줍니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뒤 원문 또는 전문을 보는 것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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