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영화, 이미지 - 시의 주제를 넘어 민예총문고 9
함종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제1장 시는 회화적인가 - 시 이미지의 동적 구조

 

시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의미보다 그것이 다른 시어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의해 시적 의미가 구현된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시는 명사보다는 동사나 형용사를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p17)

 

시를 명사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고정된 의미를 확인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이라면, 시를 동사나 형용사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은 시어의 의미가 특정한 것으로 고정되기 이전의 이미지의 발생과 그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7~18)

 

시에서 이미지(혹은 이미지를 통해 구현되는 정서 상태)가 특정한 것으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변주된다면, 그것은 이미지의 본질이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는 시의 구조가 그러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p19)

 

1. 재현의 위반 - 시 이미지의 발생 차원

시의 기능이 주로 정서 전달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의 이미지가 객관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해 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p19)

 

서정주 「국화 옆에서」경우 '꽃'과 '누님'의 동일시와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미지는 이들의 형태적 유사성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이라는 시구가 암시하는 어떤 느낌으로 서로 연결된다. …… 이들은 각각이 지닌 외형적인 형태의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시어가 내포하는 속성의 유사 관계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속성의 유사 관계는 반드시 그 유사 관계가 성립할 수 있도록 다른 시어가 그 연결 고리를 제공해야 한다.

…… 이미지의 발생에 있어서 외형적 형태보다 내재적 속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이미지는 실재 세계를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재 세계를 기초로 하여 허상의 세계, 상상의 세계를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19~22)

 

에코의 '거짓말 이론'에 의하면, 기호는 수많은 기의의 '미끄러짐'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진실하게 세계를 표상할 수 없다. …… 이미지는 대상을 재현하고 구체적인 감각을 동원하며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이지만, 이차적으로는 비재현적이며, 무규정적이고, 무한한 변화와 변형을 낳는 … 상징적 상상력의 산물. (p22)

 

"한마디 한마디의 말은 각각 한 개의 객관적 사물을 대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사물에 대하여 있는 것이다. …(중략)…말을 소재로 써야 하는 시는 결국은 그러한 말들이 대표하는 사물의 세계(자연=객관세계)와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관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객관세계에 대한 시의 관계」, 『김기림 전집 2』,심설당, 1988, 117쪽 (p23)

  

▣ (Agalma)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김기림의 발언은 모더니즘에서 중요한 작가 플로베르 '일물일어설'과 똑같지 않은가! 한국 모더니즘 시의 기원으로 인정되는, 김기림이 "이미지의 발생을 객관세계와의 닮음을 전제로 한 재현의 원리로 이해한 태도"는 이미지의 규정할 수 없는 차원의 움직임을 간과했고, 이후 평단에 (의도치 않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 비평가들은 1940년대 한국 시문학사의 중요한 위치 '청록파' 시들의 이미지들을 '유사성과 동일성의 원리'로만 바라보았고, '자연성, 향토성, 서정성', '회화시'라고 규정하는 오류와 한계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독자와 사회 또한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어 시험을 쳤지.

오, 묘사의 악령들이여! 

들뢰즈가 파악한 언어의 '무한소급'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의 가치 평가는 늘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도망친 詩들이 앨리스가 만드는 이상한 후추 공장으로 이미 보여지고 있듯이.▣

 

 

2. 시는 영화적이다.

일찍이 중국 송나라 때 소식은 왕유의 시와 그림을 일컬어 '시를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또 그림을 보면 그 속에 시가 있다'라고 하여 시와 회화의 상호 연관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송·원 이후 동양 예술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는 '시화 일치론'으로 대표된다. 서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모니데스가 시와 회화의 상호 연관성을 주장한 이래 여러 시대를 거쳐 시와 회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심지어 시와 회화는 '자매 예술sister's art'(*마리오 프라즈, 『문학과 미술의 대화』, 임철규 역, 연세대출판부, 1986,3쪽)로 불릴 정도이다. 그러므로 문학에 있어서의 모더니즘이 다다, 쉬르, 미래파, 입체파 등의 일련의 미술 사조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 발전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p28~29) 

<시와 회화의 차별성- 시는 동적 구조, 회화는 정적 구조>

- 시는 회화보다 시·공간에 대한 묘사가 보다 더 자유롭다.

- 시는 단편적인 영상들이 조화 혹은 병치되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 이동 등의 변화 양상을 묘사하기에 보다 용이하다.   

 

"화가의 영상은 하나의 전체적 영상이고,

카메라맨의 영상은 여러 개로 쪼개어져 있는 단편적 영상들로서,

이 단편적 영상들은 새로운 법칙에 의해 다시 조립된다."

ㅡ 발터 벤야민 『문예 이론』

 

 

제2장 시 이미지의 운동성

 

1. 이미지의 상호 작용 - 질적 변화

 

영화 형식에 내재된 운동, 혹은 지속의 특성은 영화의 이미지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차이를 일깨워 현실을 다양하게 인식하고 이를 제시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 시의 이미지들이 맺고 있는 관계, 혹은 시 이미지의 전개 양상은 영화처럼 이들 단편적인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지며, 시에서 이미지의 역동성, 운동성은 주로 시각 이미지의 지속과 병치를 통해 나타난다.(p52~53)

 

 

 

 

 

 

 

 

 

2. 이미지의 지속-시점 변화

일반적으로 회화 특히 풍경화에서는 풍경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점과 이를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점은 일치한다. 그러므로 회화에서는 대상과 이를 바라보는 주체(화가=감상자) 사이에 2차원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시점을 달리한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영화에서는(이를테면 '쇼트-역 쇼트 shot-reverse shot'와 같은)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시점, 그리고 대상과 등장인물이 놓여 있는 공간 너머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점(감상자의 시점-'잠재적 응시자'-이 되기도 하는) 등이 나타난다.(p62~63)

 

……영화에서 부분들의 결합 양상은 그 나름의 카메라 기법과 편집 기법에 의해 결정되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자유로운 시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p64)

 

……원근법은 객관세계를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각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뤼미에르와 르누아르의 영화들에서 특히 주로 사용된 방식이다. (p71)

 

 

 

 

 

 

제3장 시 이미지의 시간성

1. 이미지의 현재성-공간의 지속과 시간의 교차

 

시간이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볼 수 없는 시간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대상화하려 한다면, 시간을 공간적 성질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시간의 '공간적 성질'이란 구체적으로 사물의 변화이자 곧 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인 영화 공간에서는 시간적 성질이 참으로 농후하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물의 운동을 볼 때 시간성을 강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사진 공간이란, …(중략)… 사물의 어떤 순간의 상태이다. 그러나 회화 공간에서는 그것이 어떠한 순간이었던가 하는 '상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화 공간에 시간적 성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의 운동을 그린 회화도 있고, 역사화歷史畵와 같이 역사적 시간을 현재화한 회화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일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특히 현실 시간을 의식하는 법은 없다. 그것은 회화 공간에서는 시간적 성질이 내재화內在化되어 있기 때문이다.

 

ㅡ 시게모리 고엥 『사진예술론』, 홍순태 역, 해뜸, 1994, 90쪽

 

……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영화는 어떤 순간의 상태를 연속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시간성을 가장 잘 표현하며, 이때 표현되는 시간성은 시간의 변화와 운동을 내재하는 '공간적 성질', 혹은 공간적 상태에 의해 구현된다는 것이다.(p84~85)

 

 

▣ (Agalma)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문학 침체의 내부 주요 원인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을 즐기는 존재이면서, 반복되는 시간을 원하지는 않는다. 즉 관객과 독자가 되면 대다수는, 내부에 골몰해 시간이 정체되어 있는 작품을 원하지 않는다. 오, 멋진 셰익스피어(셰익스피어 인기도 요즘은 그닥), 따분한 베케트! 하면서.

캐릭터, 아이디어, 잔재주(트릭) 만으로는 더이상 작품의 완성도를 확보할 수 없다. 긴 시간을 다루는 문학과 영화들이 점점 더 스토리에서 추리와 미스터리쪽으로 기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의 경쟁력이자 장점은, 빠른 시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두통약 효과처럼 즉각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그토록 자폐적인 시·소설을 공격하는 것은, 사회·문단이라는 외부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근원·보편에 기반한 내부 반감에 더 기인한 것이라고 나는 진단한다.▣

 

 

2. 이미지의 종합, 혹은 과거의 현재화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를 조합하여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으로 재현해 내는 것은 회화에서는 찾기 어렵다. 이는 영화적인 특징인 동시에 시의 특징이다. (p98)

 

 

 

 

 

 

3. 순수 시간의 구현

들뢰즈에 의하면,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진행 방향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종합 과정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이에 관한 그의 주장을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시간은 오로지 어떤 근원적 종합 안에서만 구성된다. 순간들의 반복을 대상으로 하는 이 종합은 독립적이면서 계속 이어지는 순간들을 서로의 안으로 수축한다. 이런 종합을 통해 체험적 현재, 살아 있는 현재가 구성된다. 그리고 시간은 이런 현재 안에서 펼쳐진다. 과거와 미래도 모두 이런 현재에 속한다." 그리고 이때 나타나는 종합은 수동적인 것이다. 시간은 인간 주체 너머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신에 의해 능동적으로 종합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은 인간 주체 정신 안에서 저절로 종합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는 세 가지 수동적 종합의 형대로 구성된다. 그것은 각각 '기억의 형식', '습관의 형식', '시간의 텅 빈 형식' 등으로 나타난다.

'습관의 수동적 종합'은 순간들의 수축을 통해 시간을 현재로 구성하지만, 이렇게 구성된 현재는 늘 지나가 버린다는 점에서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기억의 수동적 종합'은 시간 안에서 순수 과거를 구성하고 '사라진 현재'와 '현행적 현재'를 비대칭적인 두 요소로 만들긴 하지만, 과거 시간은 네 가지 역설과 마주한다. 그것은 '현재는 현재인 동시에 과거가 아니고서는 결코 지나갈 수 없다'는 동시간성의 역설, '만일 각각의 과거가 자신이 한때 구가했던 현재와 동시간적이라면, 과거는 그것이 과거이기 위해 지금 거리를 둔 새로운 현재와 공존해야 한다'는 공존의 역설, '과거 일반의 순수 요소는 지나가는 현재에 선재한다'는 선재의 역설, '동시간성과 공존, 그리고 선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순수 과거와 관계한다'는 순수 과거의 자기 자신과의 공존이라는 역설이 그것이다. …(중략)… 시간은 현재와 과거처럼 설명 불가능한 차이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비재현적이고, 무규정적이며, 무한한 변화와 변형이 이루어질 수 있는 미래에 가까운 어떤 것이다. 결국 시간은 두 개의 범주를 갖는다. 하나는 운동을 참조해서 파악되는 간접적인 이미지로서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현존하지만 그렇다고 재현되지는 않는 직접적인 이미지로서의 고유한 순수 시간이다.(p99~101)

 

들뢰즈에 의하면 묘사는 '유기적 체제(운동적 체제)'와 '결정체적 체제(시간적 체제)'로 구분된다. '유기체적 체제'는 "대상의 독립성을 전제하는 묘사"를 지칭하며, 이에 반해 '결정체적 체제'는 "대상을 대체하고 창조함과 동시에 지우며, 이미 나타났던 것들을 반박하고 전치시키거나 혹은 변경시키는 또 다른 묘사들에 끊임없이 대체되는 묘사를 지칭한다. 이와 같은 들뢰즈의 논의를 참고한다면, 김춘수의 '서술적 이미지'는 운동-이미지로서의 '유기적 체제'에서 시간-이미지로서의 '결정체적 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p106)

 

 

 

 

 

 

 

 

▣(Agalma) 여기서 나는 저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데, 통일된 관념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적 자아의 관념과 서술(묘사)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 피할 수 없이 통일(이미지, 관념)의 관점으로 모아진다는 것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 끝에는 또한 비평의 마굿간과 채찍질이 기다리고 있다.

관념을 벗어나려 한 김춘수의 시를 무의미 시로 평가하지만, 그 무의미 속에는 오히려 해석할 수 없는 의미가 넘쳐난다. 최종적 수신자가 없는 이미지-의미의 편지들, 詩 ▣

 

 

 

 

제4장 영화 기법 수용에 따른 시 이미지 전개 방식

 

시와 영화는 공통적으로 단편적인 영상들을 병치시키는 방법을 통해 구조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p113)

 

영화의 몽타주 기법은 문학과 시각 예술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사물(대상)의 배열 방법이었다. (p117)

 

 

이 책에서는 영화와 문학의 긴밀한 연관 관계에 대한 논의가 여러 곳에 걸쳐 제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단편적인 예를 한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시와 영화의 실제적인 관련은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즘이라는 시 운동에 영향을 미친 몇몇 발견과 쟁점들은 작지만 확실한 영향을 영화에 미쳤다. 이 중 하나가 페널로사의 뒤를 이어 파운드가 유행시킨 상형 문자에 대한 매료이다. 위대한 동양학자인 어니스트 페널로사는 한자가 회화적으로 문자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어떤 개념이 표의문자라는 정교한 그림문자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중략)… 단어의 기능을 이용하여 그림을 만들고, 전통적인 구문이 아니라 병치를 통해 단어를 연결시키는 기법을 전위 시와 영화가 동시에 발견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중 속의 얼굴들의 환영/젖은 검은 가지에 달린 꽃잎'이라는 두 행으로 된 파운드의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와, 군중들이 분노로 동요하기 시작하는 쇼트 다음에 바로 빙산이 와르르 무너지는 쇼트를 보여 주는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시퀀스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중략)…(이것은) 단지 두 이미지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 설명 없이 보여 주는 병치만이 있을 뿐이다."

ㅡ 로버트 리처드슨 『영화와 문학』, 이형식 역, 동문선, p64)

 

 

§

 

슬슬 졸리운데,,,,,,,,,, 詩고,  영화고, 시간이고 간에 … 언제나 결과는 잠(Zzzam)

Zzzam을 들으며 잠을 자야겠다.

 

 

 

 

 

 

§§

국내에서 시와 영화를 비교분석한 논문 스타일은 있어도 완성도있는 저서가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자료이긴 하다.

이 책의 의의와 열의에는 당연 박수를 보낸다. 다만 들뢰즈 이론에 너무 기대어 그 이상은 찾지 못한 분석이었지 않나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은 아주 조그만 한데, 읽고 나면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늘어난다.

또 베르그손과 들뢰즈와 부딪혔어! 어딜 가나 피할 수가 없다네ㅎ;;;

 

 

 

 

ㅡ Agalma

 

 

 

 

 

 

 

 

 

 

 

 

 

 

 

 

 

 

 

 

 

 

 

 

 

 

 

 

 

 

 

 

 

 

 

 

바둑판에 놓인 하나의 돌은 다른 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 존재 가치와 의미가 생긴다.…… `왕`은 왜 그 비좁은 사각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지 하는 의문을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채 장기를 두었듯이, 우리의 교실에서도 시를 그 비좁은 사각의 테두리 밖에서 생각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서문 中)

들뢰즈에 의하면, 관념이란 동일성의 원리에 의해 재현된 `개념적 차이`에 불과하다. (p103)

이미지란 대상에 대한 통일된 전망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나에게는 이미지가 없다. 이 말은 나에게는 일정한 세계관이 없다는 것이 된다. …(중략)… 나에게 이미지가 없다고 할 때,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한 행行이나 또는 두 개나 세 개의 행이 어울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려는 기세를 보이게 되면, 나는 그것을 사정없이 처단하고 전연 다른 활로를 제시한다. 이미지가 되어 가려는 과정에서 하나는 또 하나의 과정에서 처단되지만 그것 또한 제3의 그것에 의하여 처단된다. 미완성 이미지들이 서로 이미지가 되고 싶어 피비린내 나는 칼싸움을 하는 것이지만, 살아남아 끝내 자기를 완성시키는 일이 없다. 이것이 나의 수사修辭요 나의 기교라면 기교겠지만 그 뿌리는 나의 자아에 있고 나의 의식에 있다. …(중략)… 한 행이나 두 행이 어울려 이미지로 응고하려는 순간, 하나의 장면으로 처단하기도 한다. 『김춘수 시론 전집 Ⅰ』(현대문학, 2004, p537~53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4-0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