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되었다. 샤워로 대신하다 보니 때를 미는 일도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살이 벌겋게 될 때까지 때를 밀어야 제대로 된 목욕을 했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그러고도 살 수 있냐고 신기해한다. 물론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뜨거운 김이 자욱한 목욕탕, 지우개 가루처럼 나오는 때를 무슨 전리품인 마냥 보람을 느끼며 씻어내는 맛, 무언가 정화된 느낌으로 먹으며 나오는 요쿠르트나 초코우유의 맛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까운 목욕탕을 찾아보면 대형스파나 찜질방과 연계되지 않은 그 옛날식의 아기자기한 목욕탕은 찾기 힘들다.

 

 

 

그러한 목욕탕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얘기다. 샤워만 해본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 투성이다. 냉탕에 몸을 던지는 맛이며 죽은 듯 누워 엄마에게 고문당하듯 때를 미는 그 고통이며 그러한 고통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 주는 포상품으로서의 시원한 야쿠르트 맛도 아이에게는 와닿지 않음에도 연거푸 계속 읽어달란다. 엄마는 항상 최소 두 번 이상 전신을 밀어야 밀린 숙제를 완수했다고 생각해서인지 나, 여동생, 엄마까지 도합 여섯 번의 강도 높은 때밀이 노동을 했다. 그 정도 되면 세 여자의 몸은 벌겋게 익어버린다. 이 때밀이 문화가 피부의 유익한 각질층까지 제거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망다니며 울며 불며 때를 밀리고 나서는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야쿠르트를 하나 달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언 머리카락을 헤쳐 푸는 재미가 쏠쏠했다.

 

목욕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조금 멀어도 조만간 목욕탕 원정을 갈 것이다. 내 몸을 두 번 밀 힘도 없는 저질체력이라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가열차게 때를 밀어주고 잡으러 다닐 자신은 서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줌마의 힘'이 엄마 세대에는 육아의 원동력이자 가정을 지키는 근원적인 힘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온탕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몸 전체를 막 넣었을 때의 그 화한 느낌을 감수할 용기를 내기 직전 그 찰나가 두렵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진다. 죽은 듯 엎드려 엄마에게 때를 다 밀리고 타 낸 요쿠르트를 몰래 건네줄 장수탕 선녀님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서양의 요정보다 좀 엽기적이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지만 이러한 나이든 할머니 선녀님을 만나는 목욕탕은 언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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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2-09-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유아 시절 단테의 지옥도를 떠올렸더랬습니다(그 나이에 왜 단테를 알고 있었는지는..그냥 지나쳐 주셔요)
하지만 블랑카님은 분홍공주님과 함께 장수탕 선녀님을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요쿠르트도 같이!

blanca 2012-09-28 09:0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유아 시절에 벌써 단테를! 쥬드님은 어렸을 때부터 성숙하고 진지했을 것 같아요. 이 그림책의 할머니가 은근 엽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들춰볼수록 중독이 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2-09-2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엄마가 때밀어주시는데 전 왜그렇게 울고짜면서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요ᆢ 아프고 답답하고 막 그랬던 기억이ㅠ 아마 선녀님이 주는 야쿠르트가 없어서였는지도ᆢㅎㅎ 이 그림책 그림 참 좋아보여요. 구름빵의 그 작가죠. 상상력도 놀라워요.

blanca 2012-09-28 09:04   좋아요 0 | URL
저도요! 프레이야님, 저는 저희 엄마가 유독 심하게 때를 민다고 생각했는데 프레이야님 어머님도 ㅋㅋ 그러셨군요. 이 작가는 여기까지가 전부인가 싶으면 또다른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요.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유독 아이가 이 작가의 책을 좋아하더라고요. 어른이 읽어도 웃음이 빵 터진답니다.
 
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는 강력한 독신주의자였다. 삶을 사랑한다는 확신은 없었는데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다. 현모양처와는 대체로 멀었고 손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서툴렀다. 서른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씩씩하게 혼자 늙어가는 모습을 그려본 적은 있다. 결론은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결혼했고 적잖은 기다림 끝에 아이를 얻었고 살면 살수록 겁나는 대상들의 목록이 늘어간다. 그리고 이젠 팔십이 된 나도 상상할 수 있다. 죽는 게 무섭고 때로 진저리 나기도 하지만 가을에는 특히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좋다. 살면 살수록 삶에 더 연연하게 되는 것 같다. 죽음과는 더 불화하게 되는 것 같다. 계획과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삶은 혼자서 흘러간다. 그리고 그러면 그런대로 또 그 풍경은 싫지 않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게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영화를 봤던가? 나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로라 브라운이 어린 아들을 놓아두고 어느 날 탈출을 감행했던 장면을 분명히 기억한다. 분명 세 명의 여자들의 시공간이 펼쳐졌을 터인데 나에게는 중산층의 전업주부 로라가 아들을 떠났던 그 장면만 남아있다. 왜 그랬을까?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연년생의 동생이 태어나고 할머니집에 잠시 맡져졌다 돌아와서는 엄마가 나를 떠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었다. 꿈에서 엄마는 매일 나의 동생을 업고 나만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그래서 로라가 결국 아들 곁으로 돌아왔음에도 나는 '떠났다'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 당시에 세상 그 자체였다. 그 세상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언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고문이었다. 그래서 로라 브라운이 둘째를 품고 모텔에서 단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 아들 곁으로 돌아왔을 때 놀랍기도 하고 안도가 되기도 했다. 엄마는, 모성애는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작동되는 생래적인 것이 아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이것을 알고 있고 직시한다.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공유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어느 날 외투에 돌을 가득 집어 넣고 호수로 걸어 들어가던 그 날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20세기 말 뉴욕의 동성애자 예술가에서 사이에서 비교적 성공한 축에 속하는 여인 클래리사는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동료이자 한 때 사랑했던 리차드(그는 클래리사를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부른다)의 문학상 수상 기념 파티를 준비한다. 시간은 1949년 로라 브라운 여사와 1923년 런던 교외의 호가스 하우스에서 신경 발작을 일으키는 버지니아 울프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세 여인은 동성애적 성향과 페미니즘적 가치관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인습의 힘은 중력의 힘보다 강하다'는 절망감을 공유한 채. 일상에 때로 진저리를 치면서도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지 못한다. 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이 지점을 포박한다. 그 불가사의한 삶에 대한 애착. 버지니아 울프가 결국 호수로 걸어들어가 모든 지각을 멈춘 것도 로라 브라운이 끝내 자살을 포기하고 자식들보다 더 오래 살아 온순한 노부인이 된 것도 그 엄마가 자신을 떠날 것을 예감하고 붙잡는 그 한 마디 "사랑해"를 외쳤지만 끝내 자신은 병마에 서서히 먹혀 들어가는 종말에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던 리차드도 (로라 부인의 아들이었다) 결국은 삶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죽음과 타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마이클 커닝햄의 통찰은 놀랍다. 그리고 그 통찰은 미려한 문장으로 술술 풀려 나온다.

 

몇몇 사람은 창에서 뛰어내리거나 스스로 물에 빠지거나 알약을 삼킨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대부분의 절대 다수는 서서히 어떤 질병에 먹히거나, 아니면 아주 행운아라면 세월에 먹힌다. 위로 삼을 것이라곤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아주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왔던 모든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그리고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이런 시간 뒤에는 불가피하게 그보다 더 훨씬 암울하고 어려운 다른 시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은 도시를, 그리고 아침을 마음에 품는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더 많은 것을 희망한다.

-p.306

 

 

성장은 희망을 키우고 세월은 희망을 포기하도록 학습시킨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희망과 작별하지 못한다. 그것은 고문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하다. 여인을 읽고 삶을 읽게 하는 책. 마이클 커밍햄이 첫키스보다 강렬했다고 추억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이렇게 그에게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돌아왔다. 그것을 듣는 일은 근사하고도 저릿한 일이었다. 로라 브라운은 '아이는 엄마를 영원히 지켜볼 것이다'라는 작품 속 예언처럼 아들의 죽음 앞에 다시 돌아왔다. 떠난 것이 아니었다. 아들을 떠나려고 했던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단죄를 받았다. 저마다의 희망은 고정된 인습의 틀 바깥으로 튀어 나가지 못하도록 조종된다. 그 너머로 넘어가는 일은. 삶을 넘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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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12-09-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테레즈 데케루>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살자,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체처럼 살자. 저 너머를 보려고 애쓰지 말자.
테레즈가 자살을 결심했던 순간 고모가 죽고 테레즈가 고모의 죽음 앞에서 마음 속으로 말하는 부분. blanca 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문득 떠올랐어요.
저는 그런 생각 들어요. 천상을 아울렀다 바닥을 쳤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면서라도 그냥 살아야 하는 게 삶 같아요. 쉬워지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서른을 넘겼고 이제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blanca 2012-09-21 10:52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테레즈 데케루> 읽고 계시군요! 저도 예전에 전혜린 책에 언급되어 있어 꼭 읽어야지, 해서 작년인가 읽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 그런 대목이 있었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렇게 얘기해 주시니 다시금 새롭게 받아들여집니다. 죽기 전에는 삶이라는 것을 다소 이해할 수 있을지 살면 살수록 의문 투성이입니다.

북극곰 2012-09-2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어요~!
다 읽고나서 블라카님 글 볼게요. ^^
왠지 잘 안들어와서 두 번은 읽어얄 것 같아요.

blanca 2012-09-21 10:52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도 중반부터 잘 안 넘어가서 그만 읽을까도 생각했었답니다. 참고 읽다 보니 마지막에 와서야 참 좋은 작품이구나, 싶었어요.

댈러웨이 2012-09-2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어떻게 이렇게 잘 각색할 수 있었는지 창작자의 창작행위가 그저 놀라울 뿐이에요. 저는 영화만 봤어요. 책은 지금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다음 주문까지 기다리고 있는 참인데, 영화 정말 좋았어요. 감독도 그렇고, 세 명의 주연 배우들도 그렇고, 에드 헤리스, 토니 콜렛... 셉티머스의 리차드화도 그렇고 아무튼 마이클 버닝햄이라는 작가의 이 책을 제가 아직까지 안 읽었다는 게 유감스러울 정도에요.

아, 저는 독신주의자도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더니 결국엔, ㅎㅎㅎ 제가 제일 먼저 결혼했어요, 블랑카님처럼. 저는 모성애가 아이 낳으면 당연히 생기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blanca 2012-09-21 10:54   좋아요 0 | URL
영화를 저도 봤던 것 같아요. 로라 장면만 남아 있지만요. 모성애에 관해서라면 --;; 저는 아이 낳기 전에 모성애로 충만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아이를 낳고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도 공부 중이고 노력 중이지만요. 저는 하도 결혼 안 할거라고 얘기하고 다녀서 무안했지요 ㅋㅋ

프레이야 2012-09-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이 책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표지가 아주 산뜻하고 마음에 들어 보관함으로 보셔갑니다.
영화도 있군요. 찾아봐야겠어요.
가을에는 이렇게 살아있는 게 좋다, 이 구절에 동감해요. 가을은 그런 계절인 것 같아요.
이렇게나 눈부시게 맑은 가을하늘 아래서는 대개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근데 님은 팔십을 상상하실 수 있어요? 전 못해요.ㅎㅎ 지금의 저도 십년 전에 상상할 수 없었지요.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 블랑카님의 참 좋은 리뷰 고마워요.^^ 마음이 더 좋아져요.

blanca 2012-09-21 10:5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그죠! 가을이 너무 좋아요. 너무 찰나이고 너무 예뻐서 이런 계절에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저는 이런 상상도 해요. 죽기 전. 정말 다 너무 허무하고 모든 게 꿈 같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너그러워지고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 책은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동기의 결혼식장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날을 위하여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번연히 알면서도 까만 나비 날개 같은 원피스를 구입하여 입고 평소 같으면 질끈 동여맬 머리를 풀고 귀찮아서 안 하던 귀걸이, 목걸이를 다 동원하였다.

 

우리는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때로 스물세 살 정도였다. 어떤 날은 기분이 너무 좋아 세상이 한없이 친절해 보이고 어떤 날은 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세상처럼 냉혹한 게 없어 보였다. 어떤 날은 세상 모든 이치를 알 것 같았고, 또 어떤 날은 세상에서 아는 게,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자학하였다. 시간이 한정없이 있으면 돈이 없었다. 동기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것도 같았고 때로 무심코 들은 한 마디에 큰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여 끙끙 앓기도 했다. 그게 바로 청춘이었을까?

 

해 질 녘, 초록색의 황혼 녘,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나의 별. 잘 익은 과일.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비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 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김화영 <행복의 충격> 중

 

 

 

이젠 중년들의 티가 완연히 났다. 사내 아이들은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이미 초등학생 학부형이 된 녀석은 아이 둘을 쫓아다니느라 대화의 맥이 자꾸 끊겼다. 여기 저기에서 익숙하지만 십여 년을 만나지 않고 나니 대학 시절처럼 무람없이 대할 수 없는 얼굴들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백팩을 매고 마구 그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 깡통매점에서 청량음료를 하나씩 나누어 들고 퍼더 앉아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들었던 얘기를 또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어제 같았다고밖에 그런 진부한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는 느낌을 가지고 내 앞에 포박해 들어온 그 아이들의 시간의 무게에 아연해졌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를 둘러싼 녀석들을 보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그 시간을 뒤로 밀어내며 왔던 것이다. 내 가슴 속의 별. 그 별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찬연하게 때로는 서럽게 빛나고 있다. 아무리 비하하고 아무리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것만큼 찬란한 별은 없을 것이다. 젊음. 청춘. 지금의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나이는 또 그 만큼의 어리석음과 치기를 들쳐업고 나타날 것이다. 청춘은 그런 것같다.

 

해질 녘이 되면 프로방스에서는 항상 우주가 보인다는 저자 김화영의 얘기는 그 젊음을 고스란히 집과 학교에 누려야 했던 좁은 공간 출신의 나로서는 더없이 샘이 나게 한다. 사실 나는 문학평론가서로도 유명한 번역가로서도 그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알게 된 그는 청춘을 우주가 보이는 지중해에서 보내고 그것을 적당한 거리에서 관조하며 복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세계.

 

그 꿈은 어느 여름 오후를 보낸 쿠르 미라보의 까페, 그늘지고 조용한 구시가의 작은 골목으로의 산책, 벤치 위에 내리는 햇빛의 반점들, 서점에서 만난 초록빛 눈의 처녀, 부활절 무렵부터 늦봄까지 피는 코클리코 붉은 야생화, 자동차로 십오 분이면 항상 눈앞에 출렁거리는 지중해, 근교의 푸른 하늘을 물들일 듯한 보랏빛 라벤더의 광활한 고랑들, 언덕배기의 자욱한 텡(타임)의 그윽한 냄새, 토르네 성으로 넘어가는 언덕길, 양옆의 숲 속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하얀 별장들, 작열하는 태양에 빛이 바랜 붉은 기와, 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이 소도시를 가득히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설렘, (중략)

- 김화영 <행복의 충격> p.37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흔쾌히 그렇다,고 얘기하는 대신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더 행복해하며 그 자체로 충만해하며 젊음을 누리고 싶다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가지고 덧붙일 것같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니까. 너무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나를 너무 아프게 했던 일들. 그 자체로 웃어도 되었던 일들을 왠지 망설이며 유보했던 일들. 청춘은 덜 익은 차가운 과일 같다. 싱그럽지만 처음 베어 먹을 때의 그 아릿한 차가움은 피할 수 없다.

 

누군가를 붙자고 이야기해도 그 자체로 용인되던 그 날들 같지는 않았다. 주고받는 안부 인사. 자꾸 끊기는 화제들. 우리는 그렇게 삶의 가장 바쁘고 과업이 많은 시기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충분히 나이들고 나면 그 때는 우리 다시 모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들 얘기했다. 지금은 아직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모든 것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언제든 느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오관과 살을 가지는 그 순간에 모든 목적은 달성되었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 김화영 <행복의 충격> p,80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는 어딘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딘가를 지향하며 직선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나이 드는 일도 또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도 두렵고 때로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과업들 앞에서 망연해지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게 죽음이라는 게 나이든다는 게 그 자체로 가치롭고 의미를 품고 있다는 가르침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중이다. 죽을 때까지 가장 찬란하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슬펐던 시간들은 제가끔 끊임없이 돌아올 것이다. 각기 다른 버전으로 다른 가르침으로.

 

공강 시간 결혼식의 신부와 나는 벤치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고민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느끼며 점심 때에 과연 명동까지 가서 틈새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시간과 거리를 가늠해 본다. 가능할 것도 같다. 우리 둘은 일어나서 명동까지 가기로 한다. 젊으니까 젊었으니까 가능한 일들. 그 빨갛고 강렬한 맛을 적절하게 중화시켜 줄 밥알이 탱탱한 김밥은 필수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꼭 껴안았다. 구태여 말하여지지 않아도 신부와 나는 눈을 맞추며 순간 눈물을 재빠르게 숨긴다. 이제 행복해할 일만 남기기로. 우리들의 역할은 잘 반죽된 빵 같은 지구에서 과일 같은 하루 하루를 맛있게 음미하며 먹는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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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8-30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blanca님!
나도 '잘 반죽된 빵 같은 지구에서 과일 같은 하루 하루를 맛있게 음미하며 먹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정신없이 분주한 나날들이라 하루 세끼 챙겨먹기도 어려워요, 더구나 책은 몇날 며칠 손놓기 일쑤고요.ㅠ

blanca 2012-08-30 13:0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요즘은 바쁜 것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선가 나를 찾아주고 내가 필요한 일들이 많다는 거잖아요. 그래도 세 끼는 꼭 챙겨 드세요. 저는 며칠 점심을 건너뛰곤 했었는데 몸이 지치더라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프레이야 2012-08-3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잘 익은 나날들,이란 제목이 책제목보다 더 좋아요. 요즘 포도알이 달달해요. 태풍에 과일들이 떨어져 안타까워요. 수확만 기다리고 있던 잘 익은 것들이요. 오늘하루도 맛나게 먹어야겠어요!^^

blanca 2012-08-30 13:0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네요. 행복의 충격보다 이게 낫겠어요! 오늘 또 태풍이 올라온다네요. 창문에 붙인 테이프를 뜯자 마자요. 농민들도 어민들도 피해 안 보고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어제 전복 폐사했다고 막 우는 모습 보니 안타깝더라고요. 저도 요새 거봉이 넘 맛나서 하루 걸러 한 송이씩 해치우는 것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2-08-3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감각적으로 글 잘 쓰는 블랑카님. 이 책 산다면 거의 전부가 님 글 덕분이지요. 나머지 10퍼센트가 김화영 브랜드 값. 크~

blanca 2012-08-31 18:17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이 댓글 읽고 배시시 웃음이^^;; 나요. 좋아서요.

굿바이 2012-08-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글을 읽으며 잠시 저도 이십대의 어느 날로 불려갔어요~! 좋은데요, 이렇게 추억할 것들이 있어서 말이죠.
그나저나 언제 읽어도 글이 참 따뜻하고 좋아요.

blanca 2012-08-31 18:19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도 그러셨다니 반갑네요. 저는 그런데 너무 옛날 생각을 많이 해서 할머니가 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할머니가 되면 또 지금을 추억할 텐데. 지금도 어떻게든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 놓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십 대의 그 풋풋하고 강렬한 싱그러운 추억과는 좀 성질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2-08-3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는 오고, 블랑카님 글 읽으며 난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잘 살아야겠다....남은 날들은 더 열심히~ 이러고 있어요.^^

blanca 2012-08-31 18:2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잘 지내고 계시죠? 이미 그러고 계신 것 같아요. 현준이 학교 생활 적응기 읽고 참 부러웠어요. 저는 배우는 입장인 걸요. 아이 키우는 일에서도 참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반성도 많이 하는 중이랍니다.
 

작가 이디스 워턴은 미국 상류층 가문 출신의 여류작가다. 여성 최초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고 위노나 라이더의 한창 때의 아름다운 눈망울을 볼 수 있는 영화 <순수의 시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신분의 성에 갇혀 있던 그녀는 어떻게 보면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이혼을 통하여 일탈을 감행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난민 보호와 자선사업에 투신하여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은 것은 그녀의 일탈이 단순히 가진 자의 개인적 치기로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순수의 시대>, <기쁨의 집> 같은 작품들은 그녀가 몸담았던 상류층 사교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니 만큼 그 작품이 가지는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더라도 그녀니까 그녀만이 쓸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물론 이 두 소설은 너무나 아름답고 단연코 지루하지 않지만 제인 오스틴이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바깥을 나가려는 시도도 나갈 필요도 없었던 것처럼 그 어떤 경계의 철책을 뛰어넘지 않는 용의주도함이 느껴져 아쉽기도 하다.

 

 

 

 

 

 

 

 

 

 

 

 

 

 

 

 

 

물론 <순수의 시대>도 <기쁨의 집>도 예쁘기만 한 작품들은 아니다. <기쁨의 집>에서의 여주인공의 슬픈 최후는 우리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물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얼마나 잔혹한 허구인지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실제 이디스 워턴은 이러한 세계를 "사람들과 이상을 천박하게 만드는 경박한 사회"로 명명한다. 누렸으니 불평할 수 있다,는 생래적 한계로 그녀의 시선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뭐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그녀의 작품은 그 자체로 어떤 정당성을 부여받은 목소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다층적인 내면을 포박하는 예리한 시선, 레이스 결 같은 묘사들, 마치 살아 움직이며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은 등장 인물들의 힘일까?

 

 

 

 

 

 

 

 

 

 

 

 

 

 

 

 

이디스 워턴에게는 이러한 작품들도 있었다. 대조되는 계절로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은 이 소설들의 주제는 다 같이 '좌절된 사랑'이다. 꿈꾸는 사랑 앞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현실의 벽을 이렇게도 사실적으로 비극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신분의 차, 사회의 편견, 인습, 전통 앞에서 <여름>의 소녀 채리티도 <겨울>속 초로의 사내 이선 프롬도 우리 앞에 마치 삶의 은유처럼 고독하게 서 있다.

 

광기가 자신을 어떠한 행동으로 이끌었는지를 갑자기 깨닫자 그 광기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한 농부였고, 자기가 버리면 고독과 가난 가운데 남아 있을 병든 여인의 남편이었다.

- 이디스 워턴 <겨울> 중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가 사랑 앞에서 버리고 놓고 떠날 수 없었던 것들보다 더 눅진하고 끈기 있는 것들이 가난한 농부 이선 프롬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삶'을 바라보며 그가 돌아선 곳에는 그럼에도 사랑을 떠나 보낼 용기마저 없었다. 그는 자살을 감행하고 실패한 자살은 더 곤궁하고 비참한  앞으로 그를 돌려 놓는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우리는 이선 프롬의 슬프고 비참한 삶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여름>의 산에서 내려온 소녀 채리티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그녀는 약혼녀가 있는 부잣집 도련님과 사랑과 빠진다. 그녀를 산에서 데려온 후견인이자 보호자인 로열 변호사를 끔찍히도 증오하며 그녀가 벌인 사랑의 행각들의 종점은 힘빠지기도 하고 괴이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렇게 체념이 쉬울까. 현실의 삶으로 그렇게도 잘들 돌아오는 걸까. 이디스 워턴은 삶이 죽음 다음으로 슬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별을 보고 그 별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슬픈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예정된 수순처럼 작용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가 어리고 가난했던 태오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디스 워턴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가 포기하고 현실에 양보했던 것들의 은유들로 반짝인다. 그것은 언제나 힘빠지는 것이기도 하고 가장 현실적인 것이기도 하고 잊었던 것들을 찰나라도 추억할 수 있는 순간들을 선물받는 일이기도 하다. 이디스 워턴은 곱게 늙은 충분히 제대로 늙은 고고한 할머니처럼 우리를 무릎에 앉혀 놓는다.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 너무 아파 차마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 하지만 달달한 향내를 품은 그 사연들은 손주들에게 안겨 주는 사탕 같은 것들. 언젠가는 충치 때문에 반드시 끊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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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8-17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때문일까요??? 내용도 밝고 즐거울 것 같았는데 뭔가 배신감이 드네요, ㅎㅎㅎㅎ
하지만 소개하신 이디스의 약력(?)을 보자니 그녀의 책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블랑카님은 여전히 고전(?)탐독 중이신가 봐요???^^
암튼, 제 서재에 달아주신 댓글도 마음을 따듯하게 해줬어요. 고마워요.
분홍 공주님은 잘 지내지요???^^

blanca 2012-08-19 07:5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이렇게 어두운 결말일 지는 모르고 시작했어요. 이 작가를 좋아해서 자서전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어 아쉬워요. 나비님 같은 실력이면 원서로 도전해 볼 터인데 자서전은 내용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망설여져요. 분홍 공주는 요새 말대꾸 연습 중이랍니다.ㅋㅋ

라로 2012-08-19 22:48   좋아요 0 | URL
자서전도 있군요!! 저도 실력이 별로라~~~~^^;;
그나저나 저희 해든이 말대꾸를 넘어 이제는 소리를 막 지르면서 호령하는 단계,,ㅠㅠ

댈러웨이 2012-08-2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아마 다음 달 정도엔 제가 <순수의 시대>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사정상 탱투나, 댓글은 못 달았지만, 이디스 워튼=blanca님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래 김연수 작가 코끼리 그림이 보이는군요. 교보 광화문도 눈에 확 들어오구요. 교보는 제게는 정든 곳이에요.

블랑카님께 저는 좀 많이 고맙습니다. 자주 올께요. ^^

blanca 2012-08-20 23:05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순수의 시대>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아요. 너무 예쁜 원서들이 많이 나와 있어 저는 이미 번역본으로 읽어버린 게 좀 아쉽더라고요. 아무리 번역이 잘 되어 있어도 작가가 쓴 글을 날것으로 접하는 감동은 못 따라갈 것 같아요. 들러 주셔서 고마워요.

Jeanne_Hebuterne 2012-08-2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만난지 백 년은 된 것 같군. 또 다시 만나려면 또다른 백 년이 지나야 할지도 모르지.
남자가 그렇게 말했어요. 선행하여(앞서간다는 말 대신 선행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살아가는 여자에게 할 수 있는 말.

blanca 2012-08-20 23:07   좋아요 0 | URL
음, 이 댓글은 조금 어려워요. ^^;; 음. 어떤 느낌일까요? 어떤 거리감의 표현일까요? 어긋남의 얘기일까요?

Jeanne_Hebuterne 2012-08-22 19:1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너무 앞뒤 상황 설명도 없이 말했군요! 습기에 글쓰기 능력도 변질되었나 봅니다.

순수의 시대 원작에서 남자가 여자에게(엘렌 카민스키였던가요?) 했던 말이었어요. 마차 안에서 겨우 만나서. 실제로 써먹지는 못할지언정 전 종종 이런 말들을 잘 기억하곤 해요.

마틴 스콜시지의 영화를 보고서는 친구들끼리 메이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다'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다'라고 열심히 각자의 의견을 토로했던(주로 그러니까 뒷담화죠) 기억이 납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중절모가 수많은 중절모 무리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도요. 개인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전 이 영화의 영화음악까지도 기억해요. 후훗

blanca 2012-08-23 13:09   좋아요 0 | URL
아,<순수의 시대> 다시 찾아 볼게요!

아이리시스 2012-08-2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해피엔딩처럼 생겼는데 이디스 워튼이 그런 게 아니군요. 이선 프롬이 농부라니, 장바구니에서 확 빼고 (일단 농부는 나중에..) [여름], [겨울] 저건 꼭 세트로 읽는 게 좋을지 궁금해요, 블랑카님. <달콤한 나의 도시> 저도 많이 좋아했었어요^^

blanca 2012-08-23 13:12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여름>, <겨울> 세트로 안 읽으셔도 돼요. 예전의 에쿠니 가오리라, 츠치 히토나리의 <좌안>, <우안> 같이 시점이 교차하는 작품도 아니고 <겨울>은 사실 제목이 이선 프롬인데 겨울로 번역되어 나온 거더라고요.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겨울>이 더 좋았어요. 저는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에 흠뻑 빠져서 정말 열심히 봤어요. 드라마도 책도 너무 좋았어요. 딱 그 시절, 그런 친구들과만 경험할 수 있는...

2012-08-21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7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2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험이 끝나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사고 싶은 책 두어 권을 고르면 아쉽고도 또 아쉬운 발걸음으로 근처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만나 주전부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기억. 재개장을 하고 얼굴을 바꾼 교보문고에 가도 과거의 그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발부리에 채인다.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하고도 소중한 느낌들. 오늘 교보문고는 세상에서 가장 사람이 많았다. 정말 너무 너무 많아서 숨이 턱턱 막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필 이 더운 오늘 날을 잡고 교보문고를 다 점령한 듯 했다. 재개장 속에서 건재하여 어떤 사람은 의아해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반가워하기도 한 그 식당에 들어오던 넥타이 부대 중 한 명이 "정말 처음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라는 말에 무조건 동조할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 정작 책은 한 권도 보지 못하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지구본들만 보다 지쳐 돌아오고 말았다.

 

거기는 거기 평생 갇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행복할 것만 같은 곳이었다. 나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 p.180

 

 

거기가 바로 여기다. 나도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때는 그런 곳을 죽을 때까지 점령하지 못할 것만 같은 그 목마름과 애타는 마음 때문에. 오늘은 정말 너무 덥고 (물론 안은 시원했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그 수많은 사람들은 교보문고로 향한 것이었을 것이기에) 갑자기 우리 나라의 독서 인구가 급증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편안하고 조용히 책 한 권 볼 여유도 자락도 없는 그 분주함과 그 빽빽한 밀도 때문에.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 끌린다. 김연수의 이 책은 이런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래! 맞아!"가 빗발치는 곳들이다. 그의 이 에세이를 읽고 나도 미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일산 호수공원에 이사가고 싶어지고 이 지글지글 뼈와 살이 익을 것같은 무더위 속에서 러너가 되고 싶어지고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당장 주문하고 싶어지고 등등. 수많은 충동과 변화를 종용하는 책. 그러니 무더위 속에서 이러한 책을 읽고 마음이 달뜨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책.

 

사실 이 책은 달리는 소설가로서의 자기 이야기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많다. 하루키의 소설을 완독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 두 작가의 작법이나 작풍의 공통점을 정확하게 지적해낼 수는 없지만 매일 매일 꾸준히 달리며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쓰는 그 자세와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 같은 것이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둘은 몹시 성실하다. 그리고 그 성실한 자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상당히 강력한 것이어서 읽는 이에까지 전염시킨다. 왠지 나도 몹시 성실해야 할 것 같고 그러는 것이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로 적절할 것 같아서.  달리는 일을 인생의 메타포로 치환하는 것은 김연수도 하루키도 동의한 일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달콤하기만 한 것도 고통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싫은 것도 아니다. 그러한 덤덤하면서도 일견 따뜻하기도 하고 쿨한 시선이 참 좋다. 위안이 된다. 조언이 된다. 지침이 된다. 겁쟁이이자 걱정 투성이인 나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 p.24

 

나에겐 상당히 유효한 전언이다. 미래의 일들도 그렇고 과거의 추억도 그렇고 고통거리는 산적해 있다. 그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삶은 고해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하나의 경험으로 자리매김하고 그것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집중할 때 갖게 되는 의미는 우연으로 흩어져 있는 것들을 구조적으로 통합하여 안정감을 준다. 할 만한 것이었고 해 볼만한 일들이다.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 이것도 경험이다. 그 때 그 터널을 통과하여 여기에 이른 것의 도정에는 성장이 있었다. 반드시 이기지 않았어도 나의 키는 이 만큼 자랐다. 괜찮다. 비교적.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볼 때마다 내가 여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여리다는 건 과거나 미래의 날씨 속에 살지 않겠다는 말이다. 나는 매 순간 변하는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그날의 날씨를 최대한 즐기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p.42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이제 자신있게 "나는 여리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리고 되도록 마음의 생채기가 다 꾸덕꾸덕 굳어 굉장히 굳건하고 안정감 있는 사람인 체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그 나약함이 인생 앞에서 패배자임을 인정하게 하는 근거로 폄하되지 않기를 바랐다. 강한 자가 되어 흔들리지 않고 전진만 하는 이들에 대한 환상이 환상으로서만 그치기를 결국 다 살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아니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삶을 더 많이 느끼고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유리했던 하나의 큰 장점이었음을 김연수의 고백으로 더 빨리 깨닫는 셈이 된 것임을. 그러고 보면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 투성이다.

 

교보문고로 가는 길 지하도에는 유행에 뒤떨어진, 그리고 당장 시급하게 쓰일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의 좌판이 한창이었다. 삼십년만 전이었어도 나는 그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를 졸랐을 지 모른다. 왜 갑자기 그 좌판을 보고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돌아왔는 지 알 수는 없다. 문득문득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추억들. 인생은 꼭 뒤돌아 봐야만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인지. 그건 그 순간에 충분히 몰두하지 않았던 때문인지. 그렇다면 그 추억은 흘려 보내고 지금은 내 옆의 딸아이의 손을 잡을 일이다. 삼십 년이 지나고 나는 또 지금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에. 왠지 모를 아련함과 서글프고 한없이 아쉬운 느낌으로.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지 않는 자는 유죄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히 몰두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같은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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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0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블랑카님 이책 읽으셨군요. 저는 포장도 안 뜯어놓고 있어요. 생각보다 하루키 에세이가 안 읽혀서요. 읽을 책도 쌓여있구요. 괜찮을 거 같아요. 당장 집에 가면 뜯어보려구요. 근사하게 하루키와 비교해서 쓰고 싶은데 무리일 것 같기도 하구요.

blanca 2012-08-04 18:20   좋아요 0 | URL
아, 소이진님 이 책 있군요! 저는 교보문고에서 하루키 신간 에세이 보긴 했는데 아직 안 읽어 봤어요. 비교해서 쓰면 아주 흥미있는 글이 될 것 같아요. 아, 오늘은 정말 너무 더워 숨이 턱턱 막히네요. 방학은 즐겁게 보내고 있죠?

꿈꾸는섬 2012-08-04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문고 재단장에 사람들이 많았군요. 안 가본지가 하도 오래됐어요. 전 예전에 종로서적 많이 이용했고, 종로서적 없어지고는 영풍문고에 다녔어요.^^
이 책 찜해두었어요.^^ 마지막 인용글 정말 좋네요.^^

blanca 2012-08-04 18:21   좋아요 0 | URL
꿈섬님, 정말 저엉말 많았어요. 진짜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무언가 하나 보려면 몇 겹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지. 방학이라 그런 건지 정말 놀라웠어요. 이 책 참 좋아요. 김연수나 김영하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객관적인 평가가 잘 되진 않지만요^^;;

꿈꾸는섬 2012-08-06 14:55   좋아요 0 | URL
김영하나 김연수는 저도 주관적으로 무지 좋아해요.^^

프레이야 2012-08-1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 저는 이책을 서평도서로 읽고있는데 참 운이 좋게도 이책이 내손에 왔구나 그러며 읽어요. 좋더군요. 님의 잊히지 않는 기억의 영상들도 좋으네요. 지금 여기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힘도 과거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충만한 기억이 현재의 그림을 더 풍성하게 하겠지요.

blanca 2012-08-19 07:5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 책 참 좋지요? 서평도서였다니 더 부럽습니다. 아, 이 책 읽는 기분은 나이를 한 팔십은 먹은 느낌이 들어요. 프레이야님 말씀처럼 저도 요새 과거의 기억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