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수많은 친구와 풍요롭고 고귀한 우정을 나누었다. 또한 계속해서 여러 편의 소설과 단편소설을 썼으며, 그 대부분이 걸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21년에는 <순수의 시대>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서문> 신시아 그리핀 울프

 

 

 

 

 

 

 

 

 

 

 

 

 

 

 

 

어제 이 책을 다 읽었다. 어찌나 더운지 몸 속까지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하루 종일 멍했다. 어떤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계속 나빴다. 더위와 이 책 때문에 기분이 저조했던 것같다. 이 책의 서문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그리고 서문의 곳곳에 나오는 이 소설의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서문의 저자 신시아의 얘기에 쉽게 동조하기는 힘들었다. 이 책의 서문은 그러니 책을 다 읽고 되짚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스포일러는 무언가를 각오하게 한다. 삶에서 고통에 면역이 되지 않는 것처럼 비극적인 결말도 미리 안다고 해서 덜 충격을 받거나 조금 슬프고 마는 것은 아니다. 다 읽고 나면 저절로 힘이 빠지는 이야기다.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이디스 워튼의 사진을 보면 흑백 사진 속에서 코르셋으로 잔뜩 죈 것 같은 허리를 가진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떤 그녀의 작품이라도 그 주인공의 용모로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책 날개에는 이디스 워튼이 1862년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닌 뉴욕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요즘말로는 엄친딸이었던 모양이다. 뉴욕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이 책 <기쁨의 집>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녀가 몸담고 있었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 '내가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주제'였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보다 독자들의 적절한 몸풀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닫힌 이야기처럼 빗장을 열기 시작한 이야기는 이윽고 실타래처럼 풀리면서 독자의 시공간을 장악하게 된다. 그것은 한정되고 근시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정밀하고 농축된 지점으로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지대가 된다. 그래서 정치 사회적인 비판의식, 원대한 가치에 대한 탐사가 없더라도 우리는 제인 오스틴과 이디스 워튼에게 기꺼이 굴복하게 된다.

 

결혼 적령기를 살짝 넘긴 릴리 바트라는 미모의 여자가 있다. 안락하고 사치스러운 것에 익숙하고 고상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쉽게 느껴지도록 자라온 그녀는 정작 조실부모하고 깐깐한 고모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이다. 작가의 말처럼 세속적인 이상주의자인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에 근원적인 환멸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 세계를 벗어나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수많은 유혹과 간계들 앞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주변부로 밀려나가게 된다. 이런 몰락에는 그녀가 정작 추구했던 것들을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음을 알려주는 방증일런지도 모른다. 그녀의 속물적인 배우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로렌스 셀던이 일깨워 주었던 것들은 그녀를 불편하게 했지만 그녀를 가장 그녀답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릴리 바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슬몃 자신의 고민들을 끼워 넣었던 것 같다. 자신이 몸담은 세계의 가치 기준과 자신의 내면에서 숙성된 미덕이 상충할 때 불행해지기란 그냥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과도 같다.

 

릴리 바트는 너무 인간적이고 생생해서 도저히 소설 속 주인공으로만 납득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릴리가 9월의 어느 화창한 날 눈부신 모습으로 로렌스 셀던과 만났던 그 날로부터 걸어나와 초라하고 추레한 방에서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로렌스 셀던에게 대답을 줄 수 없었을 때 그래서 나는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 이건 단지 이야기일 뿐이야, 릴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얼러 주어야 했다.  누구의 마음 속에도 릴리 한 명쯤은 살고 있기에 그래서 릴리의 몰락에 울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들이대는 가치 기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은 이상이다. 오늘도 밥을 먹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면 우리는 그 세속적인 기준, 속물적인 욕망에 어느 정도 동참하고 스스로를 물들여야 한다.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다분히 작위적인 일이기도 하다. 때로 완전히 세상이 등을 돌릴 때가 있다. 어떤 욕했던 세계에서 완벽하게 쫓겨나게 될 때도 있다. 릴리처럼 이 세계를 경멸하기는 쉬웠지만 머물 만한 또다른 세계를 찾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죽을 때까지 아말 그럴 것이다.

 

이디스 워튼에게는 다행히도 머물 만한 또다른 세계가 있었다. "도대체 내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지 기억할 수조차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녀는 여저히 행운의 별자리를 타고 난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안락하고 사치스러웠던 세계를 등지고 비판하고 세세하게 이야기로 그려낼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는 고귀하다. 누구나 다분히 속물적이지만 속물이 안 되고 싶고 속물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그 자체가 소중한 것 같다. 좀 덜 속물적이고 좀 더 이상적인 것이 철이 덜 든 것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라고 폄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릴리 바트는 끝까지 돈을 추구했고 돈의 위력 앞에서 벌벌 떨었지만 그 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방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 모습을 차마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남자에게 꼭 기억하게 하고 가고 싶었던 마음이 이디스 워튼의 결이 고운 문체로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지글거리는 주변 공기가 갑자기 시렵게 느껴진다. 편안하고자 하는 마음,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 이기고자 하는 마음, 그래도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 힘든 사람을 보면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 그러한 것들이 다 한데 모인 곳이 인간이다. 그래서 사는 것은 때로 참으로 힘겹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견딜 만하고 고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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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7-2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에 근원적인 환멸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 세계를 벗아나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이 문장에 크게 공감해요.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속물이 되기를 선택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세계를 꿈꾸고.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은 모순덩어리 같아요. 꿈을 꾸는게 참 다행스럽다가도 이게 무슨 소용이냐며 시들시들해질 때가 수천 수만번 지나가니 말이에요. <순수의 시대> 민음사판에 실린 이디스 워튼의 사진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녀의 글은 어떨지 또 궁금해지네요. blanca님 서재에 오면 불현듯 잊고 있던, 그리고 새롭게 읽고 싶어지는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

blanca 2012-07-29 22:56   좋아요 0 | URL
살면 살수록 제가 성숙하고 있는 건지도 도통 모르겠어요. 아직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후회는 많고 그래요^^;; 이디스 워튼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일단 재미있어서 저는 이번에 또 이디스 워튼 책들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랍니다.아, 정말 너무 더워서 재미없는 책은 참고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요.

2012-07-2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우리는 이디스 워튼처럼 이야기를 쓸 순 없으니, '머물 만한 또 다른 세계'가 '이야기를 읽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우리를 구해줄런지요?!
2. "릴리 바트는 끝까지 돈을 추구했고 돈의 위력 앞에서 벌벌 떨었지만 그 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방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 모습을 차마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남자에게 꼭 기억하게 하고 가고 싶었던 마음이 이디스 워튼의 결이 고운 문체로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이 말만 읽어도 마음 아픈 책입니다.

-- 이디스 워튼이란 작가를 마음 속에 담게 되는 페이퍼네요. 항상 블랑카님이 소개하는 책은 다 읽고 싶어요.^^

blanca 2012-07-29 23:01   좋아요 0 | URL
섬님, 이 책은 가벼운 여자에 대하여 쓴 책인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 가슴 아프고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릴리 바트가 죽기 전에 사랑했던 남자에게 가서 자기가 끝까지 어떤 중심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모습을 얘기하는 장면이 너무 가슴 아프더라고요. 저는 이야기가 우리를 구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머물 만한 또 따른 세계를 꿈꾸게 하고 그려볼 수 있게 한다는 것으로 작은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어요. 섬님이 소개해 주신 책들 중 저는 아직도 조셉 캠벨의 책들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LAYLA 2012-07-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저도 무척 기진맥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굳이 해피엔딩까진 아니더라도 순수의 시대 정도로 마무리를 해줄줄 알았거든요. 힘들게 산 제인 오스틴이 드리미한 사랑을 그리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산 이디스 워튼이 이리 잔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다니 인생은 정말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blanca 2012-07-29 23:03   좋아요 0 | URL
라일라님, 그렇죠! 저도 이 책 결말이 정말 너무... 소설 읽고 이렇게 다운되기도 한다는 게 참 놀라웠어요. 원래 달달한 책이 읽고 싶어 시작한 건데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저릿해지더라고요. 이디스 워튼의 자서전이 그래서 읽고 싶어졌는데 번역이 안 되어 있더라고요. 아쉬워요.
 

먼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읽고 찰스 램의 <굴뚝 청소부 예찬>을 읽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둘은 닮아 있었다. 마루야마 겐지야 같은 직장에서 폐를 많이 끼쳤던 여직원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이를 갖지 않고 소설을 쓰는 일에 전력을 투구하였고 찰스 램은 동인도회사의 회계원으로 33년간 근속하며 틈틈이 에세이를 쓰며 정신병이 있는 누이를 부양한 독신남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삶에 대한 자세 등이 개별적인 경험에 의하여 굴절되긴 했지만 이 동서양의 조금은 괴팍한 남자들은 만나면 대뜸 너무 공통점이 많아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울 것 같다. 흥미로웠다.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은 <달에 울다>를 접해 봤다. 문장 하나 하나가 어찌나 농밀하고 치열한지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사 계절을 담은 병풍의 그림과 '나'의 삶의 격랑이 서로 주고 받는 것들이 하나의 그림, 소리를 이루어 흘러 넘쳤다. 소설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 작품을 토해 낸 작가의 결의와 삶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인 소망, 관계에 대한 욕망을 희생한 것이었다. 모름지기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도모하기 위해서 이 정도의 각오는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문단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과 비아냥거림,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 등이 거슬렸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이 책의 미덕은 다름 아닌 이 소설가의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투철한 소명 의식때문일 것이다. 그가 쓰는 한 우리는 아무렇게나 이러나 저러나 한 글을 주워섬기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슬픈 고백.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없는 것이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산기슭에 살면서 개나 기르고, 소설 따위나 쓰고, 양지바른 곳에 웅크리고 있다니, 이렇게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화가 치민다.

- 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 중

 

그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상과 스스로를 절연시킨다. 일본의 북알프스 산맥 한 자락의 조그만 마을에서 개를 기르며 아내와 산다. 문학상 수상도 문학상 심사위원직도 거부한다. 세상에 대하여 쓴다는 것이 세상과 이별하여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삶의 자잘한 고충들 대신 굵직 굵직한 서사와 깊은 사색, 치밀한 묘사, 함축적인 문장 등으로 잊혀진다. 저런 이야기가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나이들어 객사할 각오까지 하고 그 어떤 다른 생계를 도모하는 일도 저어한 채 오로지 쓰는 일. 미루야마 겐지 스스로의 삶은 슬프다. 그럼에도 그는 또 온에너지를 쏟아 쓰고 산을 오르내리고 또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는 기간 동안 먹고 마시며 버틸 돈을 계산한다. 그의 삶이 작가의 전범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쓰고 세상에 말하는 일들에 대하여 너무나 쉽고 편해져 버린 세태는 그가 쓰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비단 쓰는 일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에도 우리는 어떤 치열함을 잊어버리고 덤비게 되는 것 같다.

 

찰스 램의 에세이 <퇴직자>는 1825년의 풍경을 2012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만든다. 그 누구도 이 에세이를 읽고 웃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울 수도 있다. 찰스 램이 거의 40년간 근속했다 퇴직하는 날, 그의 소회는 바스티유 감옥의 수인이 갑자기 석방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스스로 스스로를 떠맡을 힘이 없다. 오십이 되어도 밤새도록 잠 속에서 근무하며 회계 업무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꿈에 아연 놀라 깨어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직장의 노역은 영혼까지 스며들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갑자기 광대하게 주어진 시간에 그는 아찔하다. 그렇다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거짓말하지는 않는다. 금요일 저녁의 해방감은 이제 만성화되어 강도가 약해지겠지만 노역에 대한 부담 및 시간에 대한 제약에서 풀려나온 해방감은 잔잔하게 언제까지나 그를 감쌀 것이다. 오죽하면 그에게 아들이 있다면 이름을 '나씽투두'로 짓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얘기할까. ㅋㅋ 글을 쓰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생계를 포기할 수 없었던 찰스 램의 글에는 수많은 자잘한 세상사와 일상사들이 때로는 따뜻한 시선 아래, 비틀린 시선 아래 나열되고 묘사되고 해석된다. 이 지점은 마루야마 겐지와 조금 다른 부분이다. 독신자들을 대하는 기혼녀들의 배려 없는 행동에 분노하는 글은 문단의 허위에 치를 떠는 마루야마 겐지의 끓어오르는 화와 만난다. 마루야마 겐지처럼 글을 쓰는 일에 자신의 삶 전체를 저당잡히지도 않고 사람들과의 교제에서도 멀어지지 않고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감싸안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조금 더 친밀하다. 그래서 이런 대목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이 녹색의 대지와, 도시와 시골의 풍경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농촌의 호젓함과, 길거리에서 느끼는 달콤한 안온함 따위를 사랑한다. 나는 바로 이 지상에 거처를 짓고 싶다. 나는 내가 도달한 이 나이에 가만히 멈춰 있고 싶다. 나와 내 친구들이 더 젊어지거나 더 부유해지거나 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찰스 램 <섣달 그믐날 저녁> 중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 어쨌든 1821년을 살아서 맞이한다며 안심했던 그는 2012년 이제 없다. 2012년 나는 내가 도달한 이 나이에 가만히 멈춰 있고 싶지만 이 나이 후에도 이백 년은 가차 없이 흘러 어딘가에 닿아 있을 것이고 그 때 나는 이 지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살았다는 것, 읽었다는 것, 끼적인 것들의 흔적도 가차 없이 스러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사는 일은, 지금 내가 숨쉬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나가고 막간의 휴식 같은 것들이 삶을 연결하는 한 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몇 갑절은 좋다. 찰스 램을 읽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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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페이퍼야말로 '잘 읽었습니다'라는 인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페이퍼가 아닌가 싶어요.

잘 안넘어간다고 말씀하시던 굴뚝 청소부를 다 읽으셨군요.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셨으니, 이제 새로 읽으시려고 계획한 책은(혹은 이미 시작하신 책은) 어떤건가요, 블랑카님?

blanca 2012-07-19 10:57   좋아요 0 | URL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 대기 중이에요. 달콤한 책을 읽고 싶어서요. 달콤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파스칼 키냐르의 <옛날에 대하여>도 대기 중인데 아무래도 잘 읽히지 않을 것 같아요. 인내를 요하는 독서가 점점 힘들어져요. 좋은 작품들 중에 그러한 책들이 많네요.

twoshot 2012-07-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덕분에 찰스 램의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blanca 2012-07-19 10:58   좋아요 0 | URL
twoshot님 안녕하세요! 찰스 램 책은 저도 처음이에요. 곁에 두고 조금씩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7-1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야마 겐지 좋아하는 한국인이 참 많죠.장정일도 좋아하던데...예전에 오스트리아 소설가 호프만스탈 작품선을 읽고 우연히 마루야마 겐지의 수필 하나를 읽었는데 호프만스탈을 자기도 좋아한다고 썼더군요.그 수필이 소설가의 각오에 있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만...
찰스 램은 고교 국어참고서 수필 항목에 꼭 나오죠.엘리아 수필선도 기억이 나네요.셰익스피어 희곡을 동화처럼 쉽게 풀어쓰기도 했죠.

blanca 2012-07-19 10:5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찰스 램 저도 고등학교 선생님이 "성을 봐라, 얼마나 온순하겠냐" 했던 기억이 ㅋㅋ 나네요. 실제로 읽어 보니 그렇게 순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요^^;; 마루야마 겐지는 제가 읽었던 소설에서 연상한 분위기보다 조금 더 치열하고 쉽지 않은 사람 같아서 오히려 <소설가의 각오> 읽고는 조금 멈칫하게 되더라고요.

cyrus 2012-07-1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스 램이라면 그의 대표적인 수필인 '굴뚝 청소부 예찬'이랑 어렸을 때 읽은 동화전집 중의 한 권에 끼여 있는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생각나요. 찰스 램의 다른 수필돌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인용한 램의 수필 속 문장 보자마자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여요. 블랑카님 덕분에 읽어야 할 새로운 책 알게 되었습니다. ^^

blanca 2012-07-19 11:00   좋아요 0 | URL
아,노자님 말씀하신 위에 셰익스피어 책을 cyrus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퇴직자> 같은 수필은 정말 너무 좋아서 왜 찰스 램이 그렇게 추앙 받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추천합니다.^^

2012-07-2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이런 괴퍅한 사람 좋아해요. 배우자로선?이라고 묻는다면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마루야마 겐지는 좀 버겁고, 찰스 램 정도면 뭐?!ㅎㅎ)
그나저나 찰스 램의 저 따뜻한 마음이 참 좋네요. 아마 그는 혼자였어도, 친구들과, 세상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아. "나는 내가 도달한 이 나이에 가만히 멈춰 서 있고 싶다."라니요. 이런 평화로운 마음이 좋아요~~.
이 삶과 나란히 저 삶을 놓아보게 되네요. 마루야마 겐지는? 그는 아마 알프스의 깍아지른 험준한 봉우리를 보며 자기 삶을 더욱 단단히 벼렸을 것 같고. 그의 아내는 좀 외롭지 않았을까?? 아님 그의 개와 돈독하게 친구하며, 이웃과 잘 지내며, 남편은 붙박이 장처럼 여기며, 혹은 헌신하며, 나름대로의 삶을 즐겼을라나?
여튼 좋은 페이퍼 잘 읽고 갑니다. 여러 가지 생각해 보고 가요......(댓글로는 안 썼지만)^^

blanca 2012-07-20 14:02   좋아요 0 | URL
섬님, 찰스 램의 수필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퇴직과 섣달 그믐에 관한 글은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뭉클해지더라고요. 굉장히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 같아요. 특히 독신자로서 기혼자들에 대하여 성토하는 글은 귀엽기까지 하더라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년 가까이 잘 쓰던 오렌지빛 주물 프라이팬에 돼지 목살을 구웠더니 흡사 불이라도 난 것처럼 연기가 치솟았다. 군데 군데 코팅이 벗겨져 있고 식재료들이 눌어붙기 시작했다. 때가 된 것이다. 고작 2년이라니. 테플론 코팅과 주물의 차이를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같은 내구 기한을 자랑하는 것같다.

 

건강을 위해서나 환경을 위해서나 스텐 프라이팬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비교적 저렴한 것으로 하나 구비해 두었다. 그런데 역시 쉽지 않다. 지긋이 예열해 주어야 하고 어떤 식재료에 따라서는 그냥 아예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바닥에 엉겨붙는다. 내공이 쌓이면 두부부침(스텐 프라이팬으로 하기에 가장 고난도이라고)도 찰박이게 할 수 있다는데 계란 후라이가 한번 붙는 광경을 목도하고나서는 수분이 많은 야채볶음류 등으로 한정하게 되었다. 그러니 후라이팬은 또 쌓인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 스텐팬, 그리고 목하 맛가고 있는 중인 주물 프라이팬. 테플론 코팅팬을 처음 사서 요리를 할 때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부드럽고 탱탱하게 그 팬 위에서 미끄러져 의기충천하게 된다. 다 요리한 것을 뒤집개로 스르륵 밀기만 해도 바로 그릇으로 유연하게 낙하한다. 그런데 이 테플론이란 놈은 세월 앞에서 약하다. 점차 무언가를 떠나 보내지 않으려는 듯 발버둥치기 시작하며 새것을 외친다. 그렇다면 이 코팅재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프라이팬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안도. 또한 여자들 대부분이 테플론으로 코팅된 프라이팬에 애증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에쿠니 가오리 <부드러운 양상추> 중

 

 

에쿠니 가오리가 생선 초밥집에서 옆에 앉은 두 여자의 얘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크게 공감했던 경험이다.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하게 되면 결국 이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과 애증의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도 없는 게 어떤 분의 어머니는 이 얄팍하고도 수명이 짧은 팬을 10년간이나 생채기 없이 잘 사용하고 계신단다. 잦은 세척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얘기에 좀 더럽게도 사용해 보고 예열도 열심히 해 보고 해도 나의 경우에는 2년 이상은 관계를 지속할 수가 없다. 고기를 굽다 화재감지기 경보가 울릴 지도 모를 사태까지 가고나서는 다시 또 행사장의 주방용품대를 서성이게 된다. 나에게는 스텐팬이 있는데 테플론 코팅 따위는 멀리 날려 버리려고 이 책을 읽고 결심했었는데 결국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이 책에 따르면 테플론 코팅팬은 약 200도~300도 사이에서 코팅제가 분해되기 시작하고 팬이 360도 이상으로 가열되면 매우 독성이 강한 기체가 방출된다고 한다. (p.133) 심지어 이러한 조리 환경에 애완용 새가 노출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현대인들의 미숙한 요리 솜씨, 조급함 등이 정성과 시간을 요구하는 전통 무쇠팬(듣기만 해도 무거울 것 같다)이나 스텐팬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약간의 불편과 시간을 감수한다면 건강에도 해롭지 않고 제조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 조리기구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사실 이 대목을 읽고 스텐팬을 구입했었다. 예열이 관건이라는 말에 일단 중불로 바닥을 데웠다가 껐다 다시 켜서 기름을 또 가열하여 방사상으로 퍼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 식재료를 조리해야 들러붙지 않았다. 모든 요리를 다 이것으로 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기도 했지만 테플론 코팅팬은 아닌 주물팬을 발견하고서야 적절하게 타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주물이란 놈도 묘한 것이 과연 코팅이 안 되어 있는데 이렇게 식재료들이 부드럽게 굴러다닐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여하튼 지난 주말 나는 다시 핑크빛 주물 프라이팬을 질렀다. 이로써 도합 또 3개의 후라이팬이 차곡 차곡 쌓이게 됐다. 돼지 목살을 불타게 했던 오렌지빛 주물팬은 처분하게 되었고 언제 산 지도 모르겠는 코팅이 반나마 벗겨진 조그만 프라이팬과 바닥이 거뭇거뭇해 예전의 그 찬란했던 광은 흔적도 없어져 버린 스텐 프라이팬 위에 온 몸으로 신참임을 자랑하며 위무도 당당하게 입성한 나의 핑크 주물 프라이팬은 이렇게 오게 되었던 것이다. 불 위에서 하는 요리들은 다시 탄력을 받게 되었다. 결핍은 이렇게 새로운 사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과 시간과 노련한 요리 솜씨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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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2-07-17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모친은 그리하여 잘 들어서 효율이 높다는 칼, 무겁지만 수분 없는 요리를 가능케 하는 프라이팬과 도구들, 빈틈없는 압력을 가하는 솥으로 주방을 가득 메우셨어요. 환경 호르몬 없음과 효율성, 영양소 파괴 없음의 삼위일체에 이어 장만하신 밀폐용기의 최강자 터퍼웨어는 공기를 완전 차단하여 심지어 식재료가 더욱 싱싱해진다는 진공상태 달나라의 기적까지 보여주시더이다. 하긴 냉장고가 세 개(이건 저도 좀 뜨악), 가스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텃밭을 두고 농산물 시장을 이용하며서 최첨단 조리기구를 구비하고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바지런히 구비하는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한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처음 고개를 내미는 풀을 어디선가 구해와서 최첨단 무공해(과연?) 조리기구로 요리하시는 모친님을 보면 저는 늘 쓰레기로 온몸을 그득그득 채우는 듯한 죄책감마저 들어요. 먹는 것은 인내심과 애정, 노련함과 본능의 이중주에요. 데코레이션으로 깨를 뿌려두고는 '당신을 위해 나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인처럼.


덧-마지막 말은 부친의 생일상을 차리던 모친이 하시던 말. 먹는 것과 요리하는 것의 묘한 역설로 들렸어요.물론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는 표정을 곁들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blanca 2012-07-18 09:45   좋아요 0 | URL
쥬드님 어머님의 묘사가 참 실감나네요.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떠올려 보니 미소가 지어져요. 냉장고가 세 개나^^;; 그런데 먹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몸을 대우하고 상대를 대접하는 일이기도 해서 단순한 의미로 그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쥬드님 어머니가 아버님에게 생신상을 차려드리는 일, 그 시간, 땀에는 아버님에 대한 사랑도 담겨 있겠지요. 저는 그래서 맛있는 것을 사 주는 사람과 만들어 주는 사람에게는 단순하게 무장해제되어버리나 봐요. 아, 그런데 막상 제가 부엌의 주인이 되어 버리니 부엌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아존중감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아 버렸답니다.

Arch 2012-07-1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는 <이기적 식탁>에서 '남자는 무쇠팬과 다를 게 없다'는 구절이 나와요. 스텐이나 무쇠팬은 정말 요리 고수나 쓸 수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쇠팬 길들이기도 만만치 않고. 요리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프라이팬에 대한 애증은 덜하지만 참 다루기 힘든 조리기구인 것 같아요.

blanca 2012-07-18 09:47   좋아요 0 | URL
아, ㅋㅋ 정말 좋은 표현이네요. 무쇠팬 길들이기^^ 무언가를 길들이기까지가 너무 힘든 것 같아 겁먹어 미리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텐팬도 길들인답시고 시행착오 다 겪어 놓고 도망가게 되어 버려요. <이기적 식탁> 책 찾아 볼게요, 고마워요, Arch님^^

감은빛 2012-07-1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도 스텐 프라이팬 있는데, 맨날 눌러 붙어서 거의 안쓰고 있어요.
아내는 채식을 해서 프라이 팬을 하나 따로 쓰고 있구요.
저와 아이들을 위해 '계란', '생선', '고기' 등을 굽는 프라이팬이 두개쯤 있어요.

코팅 팬이 나쁘다는 건 잘 아는데, 스텐 프라이팬을 쓰는 건 기술 부족으로 참 어렵네요!

blanca 2012-07-19 11:0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저도 스텐팬은 너무 힘들어요. 생각한 거란 실전은 정말 다르더라고요. 코팅팬에서 조금만 더 양보해서 주물팬으로 타협하고 있어요.
 

 

그 책의 작품성과 관계없이 책을 읽는 데에는 책을 읽는 사람의 취향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아, 나는 마술적 리얼리즘과 안 맞는다.--;; 아니, 이해가 부족하다고 하는 게 더, 공감력이 떨어진다는 게 더 적절한 고백일까.

물론 인내심을 가지고 다 읽어내긴 했다.(다 읽어야 새 책을 주문할 수 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이 작품이 위대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칭찬했다. 칠레의 역사와 한 가문의 몇 세대에 걸친 내력과 여성들의 삶들이 마술적 리얼리즘과 맞물려 장대하고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생몰이 신비롭게 그려지고 온갖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 쉽게 가능하고 역사적 사건들에 개인의 삶의 반전과 맞물리고 캐릭터들의 개성이 단지 기질이 아니라 어떤 기행과 신비로운 능력으로 탈바꿈하는 데에 쉽게 적응이 안 되고 몰입도 안 되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모든 삶이 기적이다>로 처음 만났다. 그녀의 자전적 기록인 이 책은 가벼운 에세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고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작가의 삶을 채운 그 서사들의 다이나믹함도 놀라웠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형상화해낼 수 있는 재능도 놀라웠다. 소설가는 삶 자체도 소설적 진폭을 가지게 되나 보다. 사실 소설가의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좋아하기로 마음먹을 정도였으니.

 

 

 

 

 

 

 

 

 

 

 

 

 

 

 

칭찬 일색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도 나는 힘겹게 읽었다. 상상력이 빈곤해서 그런 것인지 감수성이 너무 무뎌져서 그런 것인지 그 공상과 현실의 경계를 마구 넘나드는 역동적인 흐름에 쉽게 빠져들 수가 없었다. 한번 그러기로 마음 먹으면 도저히 몰입도 안 되고 행간이 텅 비어 버리고 이야기의 연결은 툭툭 끊기기 시작한다.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끝이다. 세대의 경계를 허물고 꿈과 죽음, 영혼의 세계를 부유하는 등장인물들은 반드시 독자가 손을 내밀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젬병이다.  어렸을 때에는 너무 공상에 빠져들어서 문제였는데 크고 나니 이제 그러한 공상에서 지나치게 발을 빼게 되어 재미가 없으니 아이러니하다.

 

 

뜬금없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두 번째로 보았다. 보려고 했던 게 아닌데 처음도 아닌데 메릴 스트립의 영화는 꼭 나를 붙든다. 그녀의 외모는 전형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헐리우드에 넘치는 탱탱한 금발 미녀상은 아니다. 눈꺼풀이 처져도 배가 좀 나와도 그녀에게서는 그 흔적들이 억지로 위장되지 않는다. 과장된 제스처도 인위적인 어조도 아닌 자연스러움이 그녀의 연기를 하나의 재연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연기자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곳에서 그녀는 처음부터 출발했고 그 고지를 자신의 앞에서 점점 더 밀어올리는 것 같다. 환갑이 훌쩍 넘어도 그녀는 계속 성장하고 성숙한다. 아, 나는 메릴빠다.

 

 

 

배가 풍선처럼 부풀고 너그러운 알렉 볼드윈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수시로 돋보기를 껴야 하는 메릴 스트립을 만날 수 있는 영화다. 아주 진지한 영화는 아니지만 중년들의 로맨스가 이토록 달콤할 수 있다는 데에 나이 들어가는 게 좀 덜 서글퍼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다소 비현실적이다. 성공한 이혼녀가 젊은 여자와 외도했던 전남편의 귀환을 결국 거부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 집도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도 장성한 아이들 셋도 다 지나치게 고급이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중노년 버전 같기도 한 진부함들이 달달하다. 아, 이것은 취향의 문제다. 삶은,일상은 달달한 해피엔딩과는 먼 곳에 있는 것을 알아가는 게 나이들어 가는 것임을 배워가면서도 이런 퇴행이 가능하다는 환상 앞에서는 항상 무기력해진다. 메릴 스트립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하고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 탓이다. 어쩌면 이사벨 아옌데의 허구보다 이러한 허구가 더 불가능한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관객들은 속아 넘어간다. 저렇게 살 수도 있어, 삶은 아름다운 거야. 삶의 적나라한 잔인함과 비참함을 수긍하는 것보다 아름답게 살고 달달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착각에 우리는, 아니 나는 더 관대한 것 같다.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평온하고 정돈된 삶 한편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만방에 알여야 한다고 했다. 정상적인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과 자신들이 뗏목에 몸을 싣고 슬픔의 바다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 참상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행복에 겨운 그들의 세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두운 곳에는 방황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2> 중

 

여전히 이사벨 아옌데도 좋고 메릴 스트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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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의 집]이 마술적 리얼리즘....책이었군요! 저도 잘 안맞더라구요, 마술적 리얼리즘은요. 다만, 백년동안의 고독은 그 사람들 내면이라고 해야하나, 개개인의 감정들 때문에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푹 빠져서 읽었더랬죠.

그나저나 저 영화는 뭐죠? 보렵니다, 보겠어요! 꺅 >.<

blanca 2012-07-04 22:15   좋아요 0 | URL
남미 작가들이 대체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 이 영화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일단 영상이 너무 이뻐요. 메릴 스트립 아들로 나오는 배우도 정말 훈훈하고요 ㅋㅋㅋ 그저 흐뭇하게 봤던 영화예요. 다락방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heima 2012-07-0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와 메릴스트립을 정말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반가워서 인사드리고 갑니다 :) 블랑카님 글 늘 잘 읽고 있어요 ^ ^

blanca 2012-07-04 22:16   좋아요 0 | URL
아, heima님 너무 반갑습니다. 지금 메릴 스트립이 줄리아 로버츠와 영화 찍는 게 있다고 해서 또 기대중이랍니다.

... 2012-07-0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벨 아옌데도 좋고 메릴 스트립도 좋으시다면 영화 <영혼의 집>을 보셔야 되요!!! 저는 제레미 아이언스 때문에 그 영화를 봤지만요.
<사랑은 너무 복잡해> 저도 재밌게 봤어요. 이번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메릴 스트립의 수상소감은 능청스러워서 호감가더라구요. 관록에서 나오는 여유인가...

blanca 2012-07-04 22:18   좋아요 0 | URL
아, 저 제레미 아이언스도 나오는군요. 안 그래도 이사벨 아옌데가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에 대해서 호평을 해서 어떤 영화인가 했었어요. 보통 원작자들은 기대치가 높잖아요. 메릴 스트립이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서로 러브러브한 제스쳐도 취해서 남편이 또 어떤 사람인가 폭풍검색 들어갔었는데 거의 정보가 없더라고요^^;;

하이드 2012-07-0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술적 리얼리즘이 안 맞는다고 하시기엔 읽으신 책들이 쉽지 않았네요 ^^

백년동안의 고독은 마지막 열장때문에 그 전의 길고 길고 긴 여정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콜레라시대의 마지막 사랑' 읽어보셨나요? 재미도 있고, 뭉클해요. 아옌데는 저도 좋아하긴 하는데,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추천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blanca 2012-07-04 22:19   좋아요 0 | URL
아, 하이드님, '콜레라시대의 마지막 사랑'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읽어볼게요. 백년동안의 고독의 마지막 열장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이진 2012-07-04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메릴빠이기에 저 영화는 절대 놓칠 수 없게습니다. 다락방님과 함께 영화 찾으러 달려가야겠어요==33

blanca 2012-07-04 22:20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이 영화 넘 이쁘고 좋아요. 막내 아들 졸업식 장면도 정말 너무 근사하더라고요. 강추합니다.

비로그인 2012-07-0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페이퍼 읽고 두 권의 책을 담았었는데, 여태 안 읽었다는 사실을 오늘 또 다시 깨닫네요 ㅠ ㅠ
<작은 것들의 신> (제목이 맞나?...), 그리고 <모든 삶이 기적이다> 요번 방학 때 꼭 읽겠어요!

저도 메릴빠이기에 저 영화는 절대 놓칠 수 없게습니다. 2 (ㅎㅎ)

blanca 2012-07-04 22:21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꼭 읽으세요. 꼭. 방학. 얘기만 들어도 막 제가 다 흥분되네요. 지금 다시 대학생이되어 방학을 맞이한다면 정말 맘껏 놀고 책도 많이 읽고 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없는 것을 보면 정말 서글프답니다.

비로그인 2012-07-05 00:02   좋아요 0 | URL
네, 꼭 읽고 글 올릴게요! 그런데 막상 방학 되니까 뭐 해야 되겠는지 모르겠는 거 있죠? 이럴 때 참 꿀꿀해져요. 시간이 많고 여유로운건 행복한 건데, 막상 구미가 당기는 일이 없는 거요. 뭐라도 해야 되는데... 가만히 앉아 이러고만 있네요. 정말 뭐든 찾아봐야겠어요 ㅠ

프레이야 2012-07-0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도 메디슨카운티의다리, 몇 번 봐도 감동이 뭉글뭉글^^
차 손잡이를 잡고 갈등하던 메릴의 손도 뒷거울을 살피던 클린트도.ㅠㅠ 가슴 저려요.
'사랑은 너무 복잡해'는 저도 재미나게 봤어요. 크로와상 굽던 장면이요. 빵냄새 폴폴 나던 장면도 좋았어요.
백년동안의고독,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제게. 언젠가 다시 읽어볼 생각이에요. 현실이 더 마술적인가요?
이사벨 아옌데의 저 에세이가 더 끌리네요. 담아갑니다. 영화 '영혼의 집'도요.^^

blanca 2012-07-05 22: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차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두 번 봐도 여전히 눈물이 펑펑 나왔어요. 아, 크로와상 굽던 장면도 역시요!

2012-07-1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영혼의 집> (책) 재밌다고 해서, 전 책은 안 읽고 영화로 봤더랬지요. 저도 이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근데 메릴 스트립이 아주 젊은 역부터 늙은 역까지 다~ 해서 첨엔 좀 어색했어요.ㅎㅎ

마술적 리얼리즘. 좋고 싫고를 알기 이전이에요. 아직 안 읽어봤어요.
아마 <사랑은 너무 복잡해>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느라, 시간이 없었겠지요. 마르케스도 보르헤스도 안 읽은 이유는.. 블랑카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 이것은 취향의 문제다." 입니다.^^ 그러고보니 블랑카님과 제가 취향이 비슷?!! ㅎㅎㅎ

blanca 2012-07-15 10:55   좋아요 0 | URL
아, 메릴 스트립이 그런 연기를 했군요. 저, 보르헤스도 그렇더라고요^^;; 정말 섬님이랑 취향이 비슷한 듯 해요. 저는 아직 달달하고 비현실적이라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그런 류의 얘기들이 더 좋아요.
 

내가  64살이 되면 딸아이는 34살이 되니 운이 좋으면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무릎에 앉아주기를 바란다) 책을 읽어줄 수도 있겠다. 비틀즈의 <when I'm 64>에는 이십 대의 폴 매카트니가(실제 이 노래를 만든 때는 십 대라고 하니 놀랍다. 누가 감히 열다섯 살 때 자신이 환갑이 넘은 상황을 상상하고 싶겠는가? 비틀즈는 그래서 위대하다) 미래의 손자들을 등장시킨다. 베라, 척, 데이브. 그리고 비틀즈와 전혀 상관없는 릭 게코스키의 이 책은 그들에게 헌정된다. 하필 이 책을 쓸 때의 릭 게코스키의 나이는 64살이다. 아쉽게도 아직 손주는 없다.

 

 

   

                                                                  

 

이런 책은 수없이 많다. 책은 넘치고 그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들은 더욱 넘친다. 읽는 행위는 살아가는 행위와 분리될 수 없다. 나의 삶은 언제나 나에게 가장 다이나믹한 서사이다. 그러니 내가 읽은 책의 갈피짬에 나의 삶을 끼워넣는 행위는 당연하기도 하고 가장 조심스러워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해체되어 전혀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혼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만천하에 공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의 허락을 득하지 않은 철저한 오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 때에는 일말의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진실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릭 게코스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워릭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이것은 과거형의 고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자신이 교수가 되기로 선택한 것을 하나의 실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의 나약한 내면과 강력한 자아의 결핍을 의미한다고 고백한다. 두 아이의 가장은 이윽고 종신고용이 보장된 안정적이고 명예로운 직책을 던지고 덜 지적인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희귀본 거래상'으로 전업한다. 침대맡에서 닥터수스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의 읽기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성애도서를 읽는 것으로 확장되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를 거쳐 엘리엇, 예이츠로 확장되었다 로날드 달의 <마틸다>로 돌아온다. 그의 성장과 그의 퇴행은 책에 대한 탐닉, 집착, 외면, 재회의 과정과 만난다. 릭 게코스키라는 인간은

 

나는 이론에 회의적이고 본질을 믿지 않으며 특수성을 숭배하고, 관념이 아니라 텍스트에 신경 쓰기를 좋아한다.
-p.398

 

이 독서 편력의 기사는 책을 찬미하지 않는다. 30년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아파트와 그 부속물을 전부인에게 주기로 약속한 후 큰 집을 얻으면 돌려받기로 한 그의 책을 한 권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릭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한편 시원해하기도 한다.(이 대목은 정말 코믹하다) 책을 좋아하고 항상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는 남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을 때로 한다. 특히 시련 앞에서는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덜 담대하고 더 호들갑이다. 그래서 절망했는데 여기에서 동지를 발견한다. 물론 이 대목은 불편하고 뼈아프다. 모두가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되면 너무 비참하니까.

 

나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행위가 실생활의 감정적 시련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 거북스럽고 정신적으로 나약하며 융통성 없고 언어와 허구에 빠지고 이기적이고 정신이 산만한 인간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p.198

 

책에서는 시련을 간접경험하게는 하지만 그것을 이겨나가게끔 단련을 시켜주지는 않는다. "인생은 똥이야."라는 유언을 남기고 고개를 돌려버렸던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릭 게코스키는 독서의 무용함을 절감한다. 수많은 간접경험은 직접경험에 대한 면역이 아니라 내성에 약한 항생제 처방 정도인 것도 같다. 릭은 여기에 '역설'이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타인의 정신'을 쐬지 않고서는 세계관을 형성할 수 없으면서도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이 되고 진정성을 잃을 위험을 갖게 된다.

-p.77

 

어렸을 때  이광수가 변절을 합리화했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전장에 나가도록 독려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이문열이 가부장적인 사고를 부덕으로 미화하는 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전작주의를 시도하며 그들에게 경도되었었다. 아직 어렸고 이야기 안에 교묘하게 삽입된 그들의 세계관이 나에게 두서없이 들어와 나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에 와서야 바보 같은 놈이었다고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미 그와 나눈 교감과 시간 그 자체를 통해 나까지 부정하게 되는 상실이다. 위험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들의 편린이 나의 내부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다음에는 더 나은 사람을 더 나은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는 가능성으로의 전진이 아닐까. 릭 게코스키도 수긍해 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bookman은 책을 욕해대면서 책에 대해 얘기하여 어떤 결론을 내린 걸까. 그는 이 책에서 "여기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는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탐색"이라고 고백한다.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사랑의 본질을 찾아헤매려 했던 편력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릭은 덧붙인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서만 배우게 된다."고

 

빛이 사라지고 밤이 드리워질 때까지 더는 책을 읽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책을 읽게 되리라.
-p.404

 

자, 나는 다시 64살이 된다. 노안이 오겠지. 하지만 더 천천히 아주 경미하게 오기를 바란다. 여전히 종이로 만든 책이 꽂혀 있는 서점과 도서관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이 들었다고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이 선뜻 나에게 다가와 무릎에 앉아 내가 읽어주는 책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책은, 독서는 많은 맹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베라, 척, 데이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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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9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6-2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64는 오겠지요. 그런 날을 상상해 보는 일은 어려워요.
어떤 일이 올지 알 수 없으니 막막하기도 하고요.
'타인의 정신'을 쐬는 일에 대한 저 문장은 참 모순이면서도 맞다싶은 말이네요.
그래도 늘 읽을 거리 찾아 두리번거리겠지요, 저도요.^^
블랑카님 이 리뷰도 늘 그렇듯 너무 좋아요.^^

blanca 2012-06-29 22:3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지금의 나이도 사실 제가 경험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답니다.^^;; 이젠 마흔도 쉰도 환갑도 될 수 있다는 것이 때로 두렵기도 하고 대체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잘 그리지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건강했으면 좋겠고 읽는 일은 여전히 저를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2012-06-2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안이 오면, 오디오북을 이용할까? 생각했어요. ㅎㅎ
내가 64살 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문장이 맘에 듭니다. 눈물 많고 정 많은 블랑카님의 것이라 또한 그 애정이 느껴지는 문장이구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려면, 아무래도 노안은, 오디오북만으로는 안 되겠군요.^^

미래의 손주들의 이름을 너무 사랑스럽게 지었는걸요. 폴 메카트니는. 왠지 그의 노래 특유의 낭만적인 멜로디가 그의 성격을 반영한 것 같은 느낌. 아, 저 노래 좋아요.

게코스키 얘기도 재밌고, 이광수와 이문열과의 옛사랑에 대한 블랑카님의 성찰도 재밌어요.

blanca 2012-06-29 22:35   좋아요 0 | URL
섬님, 저희 엄마가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책을 읽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다고. 그 얘기가 너무 슬프더라고요. 엄마에게 노안이 빨리 왔거든요. 오디오북이 서양에서는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다면서요. 그래도 이 활자 중독은 꼭 눈으로 읽어야 치유가 되는데^^;; 나이 들면 더 좋은 기술들이 나오겠지요?

2012-06-29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2-07-0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젊을 때, 하루에 영화를 다섯 편까지도 보고 밤이면 커피를 마시며 밤새 책을 읽어도 좋았는데."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재작년 함께 공연장에 갔을 때 눈이 부셔 힘들다며 약 세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계셨어요.

"엄마, 십 년 만에 그 동네 문방구점에 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늙으셔서 놀랐어."

"너희 엄마도 그만큼 늙었단다."

이런 대화.


blanca 2012-07-06 22:38   좋아요 0 | URL
쥬드님, 저도 느껴요. 벌써 제 나이도 삼십 대 중반인 걸요. 마음은 중학생인데. 어쩔 수 없는 세월의 격랑에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뭉클함도 느끼고 아직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인데 풍경은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