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문화사가 없어진 줄 알았더니 있더군요.요즘 철학사 책을 내는데 예전에 소련에서 나온 세계철학사 10권과 동일한 책 같아요.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값이 엄청나게 올랐더군요.헤겔 철학 해설서로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알려진 마르쿠제<이성과 혁명>도 이번에 새판이 나오면서 값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중원문화에서 철학.특히 독일 관념론이나 마르크스 철학 관련서적을 많이 냈지요.이 출판사 운영하는 황세연 씨나 그 동생인 황태연 씨 모두 헤겔 관련 책들을 번역을 많이 했습니다.한때 꽤 많이 팔렸지요.난해한 학술서적을 많이 냈지만 소설류나 역사 개설서도 꽤 냈지요.

  황세연 씨는 황인이라는 가명으로 번역을 한 책이 몇 권 있습니다.진순신의 방대한 <중국사>도 그 중 하나지요.진순신은 대만 출신이지만 일본어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하지만 이 책 번역은 좀 그렇습니다.지명이나 인명 오기도 그렇고  특히 사진복사가 잘못된 것 같아요.워낙 내용이 풍부하고 자세해서 도움은 됩니다만...그래서 한길사에서 다른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황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또다른 번역본이 <제 5공화국>인데 이 책의 원본은 그 유명한 일본 이와나미의 시사월간지 <세카이>의 연재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입니다.저자가 TK생이라 하여 한때 우리나라 정보당국에서 그 정체를 밝히느라고 용을 썼다지만 결국 헛다리만 짚었다는 전설이 있죠.이와나미 편집장인 야스에 료스케가 썼다...<찢겨진 산하>를 쓴 정경모가 썼다...말도 많았지만 결국 지명관 씨가 스스로 내가 했노라고 밝혔죠.야스에와 지명관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저자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지명관 씨는 한일 양국의 기독교인들이 보내주는 자료를 토대로 이 글을 썼지요.엄혹한 군사정권 시절,한국 언론을 통해선 얻기 힘든 정보를 이 연재물을 통해서 얻는 이들이 많았습니다.리영희 씨도 즐겨 읽었는데 당시 공안당국에선 세카이를 읽은 이들은 요주의 대상으로 찍었지요.물론 금서목록입니다.이적 표현물이라는 거죠.광주 광역시 같은 경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세카이는 안 들어오더군요.여기엔 일본어 전문서적이 한 군데 밖에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유신 때부터 시작하여 노태우 당선 무렵 연재가 끝납니다.현해탄 건너 거의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지명관 씨가 지인들이 몰래 날라주는 문헌들을 토대로 엄청난 작업을 해낸 것이지요.황인이 번역한 <제 5공화국>은 그 중 12,12사태부터 시작하여 구로구청 농성까지 다루고 있습니다.그 연재물의 5공시작부터 연재물의 마지막인 87년 선거 직후까지 다루는 셈이지요.이 책은 두 종류가 있어요.양장본이 따로 나왔지요.광주엔 한 때 헌책방에 이 양장본 10권 짜리 <5공화국>이 꽤 나와 돌아다녔죠.저도 한 권에 1000원으로 만원에 샀습니다.종이도 괜찮고 글자도 읽기 좋고 무엇보다 사진이 풍부하고 선명했지요.외국인 기자나 학자들이 쓴 한반도 정세 관련 글도 번역된 것이 있기도 하고 아주 내용이 풍부합니다.보급판으로 나온 책은 종이도 그다지 좋지 않고 사진이 선명치 못하더군요.올해엔 박정희 시대 때 연재분 일부도 번역하여 당시 시대상황을 해설한 책이 창작과 비평에서 한권으로 나왔습니다.이와나미는 우리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던 책들을 많이 냈지요.리영희 씨는 임헌영과의 대담집인 <대화>(한길사)에서 한국의 진보지식인들이 이와나미를 많이 읽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80년대 우리나라 매체에선 박정희 시대 비화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전두환은 군사정권이라서 박정희의 아류라는 평가를 들을까봐 의식적으로 박정희와 거리두기를 시작하지요.그래서 박정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글이 꽤 나왔습니다.김영삼 정부 들어 시작된 박정희 찬양열풍이 아직 없던 시절인 이때가 어찌 보면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는 좋은 글들이 많이 나온 것은 역사의 장난이라고나 할까요.그 시절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이가 이상우 씨였습니다.정치부 기자였던 이 씨는 직접 박정희를 취재하기도 한 경험을 살려 시사월간지를 통해 박정희 시대의 실상을 자세하고 풍부하게 그렸지요.저 역시 그 당시 월간지들을 보면 역시 이상우 것이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특히 이 씨는 아사히에서도 일했기 때문에 박정희와 자주 접촉했던 일본 극우인맥들을 상세히 다루어서 이른바 한일유착의 이면사를 알리는 데 기여했지요.이런 연재물을 모은 것이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박정희 시대> 전 3권입니다.그 시대의 사건의 맥을 추리는 데 아주 좋은 책이지요.저널리스트 특유의 매끄러운 문장도 술술 읽힙니다.제가 본 것 중에는 조갑제<유고!>와 함께 박정희의 개인이력을 가장 자세히 다룬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특히 박정희 비판으로는 교과서적인 책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상우 씨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한때 박정희 비판서로 젊은 시절의 조갑제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던 저널리스트인데요.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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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0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조갑제씨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4 23:52   좋아요 0 | URL
이상우 씨의 글은 뭐랄까...박력과 속도감이 있는데다가 군데군데 날카로운 경구가 매력적이죠.

쟈니 2008-12-0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아류인 전두환이 박정희를 견제하는 행위라. 아이러니 같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시작과 끝을 본 전두환으로선, 체육관 선거일 망정, 선출되었다고 말하고 싶겠죠. 그래서 거리를 두려 했던거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4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26직후 여론은 박정희 체제에 대해 굉장히 싸늘했어요.그래서 나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했지요.전두환은 박정희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차원에서 장기집권의 폐해를 강조했습니다.박정희도 이승만을 끝까지 정치규제자로 묶어 결국 외국에서 숨을 거두게 하지요.

드팀전 2008-12-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님 페이퍼의 댓글을 봤습니다.

한가지 오해하시는 지점은 '조중동'이란 말 자체가 하나의'보편적 현상'을 뜻한다는 겁니다.이 말의 이미는 '조중동'의 개별 기자들이 모두 하나 같이 '조중동'의 가치의 선봉장을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요.즉 미묘한 개별성을 모른다거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 역시 과거에 칼럼 공부 삼아 단행본으로 나온 최일남씨나 김중배씨의 글을 밑줄치며 읽었습니다. 그들이 명칼럼리스트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점을 동아일보의 변질 시점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 한국 언론이 굳건하게 유지해온 권언 유착의 시스템에서 동아일보는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아일보의 과거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기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들은 80년대 폭력적인 정권들에 의해 축출되고 또 유화되어 집니다. 여기에는 언론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정치권력의 그물코에서 벗어나는 지점에 대해서 ,즉 그들의 허용 한계 내에서 움질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지요. 물론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상대적 가치를 옹호하고 그런 공간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사적 언론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공간은 상당히 좁습니다.
예를 들어 김중배같은 분들이 금방 <동아일보>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동아일보의 건강성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보면 어떨까요? 정권과 편집국의 긴장 속에서 어떤 인물이 중요한 나사라면, 권력의 속성은 그것을 뽑는 방식보다는 그것을 유지하면서 무화시키는 방식을 택합니다. 긴장을 순치하는 방식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특히 편집국 내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을 뽑애 낼 경우 반골 기자들뿐만이 아니라 온건주의자들과의 갈등마저 빚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권력이 갈등을 수습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읽는다면 김중배같은 분들의 존치가 그다지 이해하기 힘들지 않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점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동아일보가 정치변동상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기회주의 노선에 의탁한 시점일 듯 합니다. 그것은 '원인'이라기 보다는 잠재된 언론의 피곤한'증후'에 가깝습니다.그것은 정권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공론화된 신문시장의 위기론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이 동아일보는 빼앗긴 정상의 위치에 대한 강박과 신문시장의 전체적 위축 사이에서 어떤 기회적 선택에 나설 수 밖에 없었겠지요.

말씀하신 것을 역으로 돌려 동아일보가 2001년 이전의 상대적 진보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언론사 세무조사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동아일보에 상대적 진보성을 부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건'적 계기로 '동아일보의 변절'을 읽어내는 것은 한국 언론의 역사적 편린과 보수언론의 과거 행적들에 대한 시각을 흐릴 수가 있지는 않을까요? 만약 애써 그 특정 시점의 변절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동아일보 편집국 내부의 인적 배치문제를 찾아서 정치변동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의미를 찾아야 될 듯 합니다.

세무조사 관련되서 재미있는 기억이 하나 있군요.당시 '조선일보' 기자 였던 제 지인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세무조사 그거 더 하라구 그래.얼마든지.그래봐야 우리 구독률은 더 높아져."


와우...부산에 눈이 오네요.와...미력한 생각을 길게 쓰니.. 딸리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5 21:48   좋아요 0 | URL
그런 사실도 수업시간에 배우는군요.저는 그냥 책에서 읽었습니다만...

노이에자이트 2008-12-0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000년 가을의 동아일보 기사를 낸 시점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제 그 시점으로 동아일보가 한민당 정통론의 한계가 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그 앞시기까지는 동아일보 특유의 양다리와 기회주의적 처신이 보이기도 했지만 한민당 식 시각으로도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 정도는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한동안 독재 대 반독재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제도권 야당도 어느 정도 저항적 존재노릇을 하던 시기.하지만 동아일보의 그러한 시각이 매카시즘의 헤게모니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2000년 남북정상 회담(남북화해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반공이데올로기가 완전 균열되어버리니까요) 이후 완전히 돌아가 버리고 이젠 절차적 민주주의조차도 찬성하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봅니다.당연히 그동안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보았던 호남 포기라고도 보아야지요.전라도는 빨갱이라는 조선일보 식 선전과 정운경의 만화 왈순아지매가 보여주는 노골적인 중앙일보 식 전라도 경멸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봅니다.어찌보면 동아일보의 그러한 태도는 예전 해방공간에서 동아일보가 보여줬던 철저한 반공주의로 복귀한 거라고도 봐야죠.신탁통치 정국당시 동아일보가 소련이 먼저 신탁통치를 제안했다는 둥 좌익계는 소련의 식민지가 되기를 바란다는 둥 그런 악선전을 했던 시기를 말합니다.거기다가 군사정권 이후의 호남따돌림까지 곁들인 조중과 반공헤게모니 구축.

드팀전 2008-12-06 04:39   좋아요 0 | URL
음 ..어떤 의미인지 알겠군요.반공주의(안그런적이 없긴한데)와 호남포기의 잣대로 본다면...
한국언론사 시간에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민족신문'동아일보의 최초 오보'사건 입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국내 보도와 관련된 것이지요. 노이에님의 마지막 글이 갑자기 대학 첫 학기 첫 수업을 생각나게 하네요.

비로그인 2008-12-0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카이, 이름은 참 많이 들어 봤는데 책을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읽을 수가 없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5 18:54   좋아요 0 | URL
위에 소개한 창비에서 나온 책에 세카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일부 번역이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그 책을 보면 지명관을 야스에에게 소개한 깜짝 놀랄 인물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