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기계 - 신이 검을 하사한 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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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가 배경인 일본 소설을 제법 많이 읽었지만 로봇이 등장하는 작품은 <금색기계>가 처음일 것이다. 에도 시대와 로봇.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부자연스럽다거나 억지 같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만큼 현대의 로봇과 별로 다르지 않은 금색 기계의 존재가 소설의 줄거리에 잘 녹아 있다. 


손만 대면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소녀가 있다. 명의로 소문난 소녀의 아버지는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보내는 용도로 소녀의 힘을 이용한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의 능력에 대해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소녀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해하려던 남자를 얼떨결에 죽이고 만 소녀는 집을 나간다. 소녀가 향한 곳은 소문의 '금색님'이 머무는 산속의 암자. 어떤 질문이든 답해준다는 금색님을 찾아간 소녀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겪게 된다.


여기까지가 제1장의 줄거리. 제2장의 주인공은 새 아내를 맞은 아버지가 눈엣가시인 자신을 죽이려는 걸 눈치채고 산으로 도망친 소년 구마고로다. 산속을 헤매다 건장한 사내 둘과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만난 구마고로는 그들의 소개로 '귀어전'의 하인이 된다. 귀어전은 가혹한 세금 징수를 피해 몰래 농사를 짓고 유곽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귀어전의 두령인 한도 고키의 배후에는 금색 옷을 입은 현인 또는 금색 기계로 알려진 금색님이 있다. 


짐작했겠지만 금색님으로 불리는 자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 즉 로봇이다. 로봇이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형적인 에도 시대 배경의 시대물과 다르지 않다. 보통 이런 소설에서 귀신이나 혼령이 맡을 법한 역할을 금색기계라는 로봇이 맡은 덕에 이야기가 참신해 보이는 동시에 탄탄하게 연결되었다. 이런 기발한 수를 쓸 줄 아는 작가의 소설을 더 읽고 싶은데,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저작은 대부분 절판된 듯하다(부디 재판을...!).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 언뜻 보기에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소녀가 복수를 감행하는 흔한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는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전혀 알지 못하고 가혹한 정치를 펼치는 에도 막부와 그들의 비호 세력, 겉으로는 관에 맞서 민중들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탈세와 범죄를 일삼는 자들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시대물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쓰네카와 고타로라는 걸출한 시대물 작가를 알게 되어 매우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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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스타워즈
가와하라 가즈히사 지음, 권윤경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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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스타워즈>의 저자 가와하라 가즈히사는 전 세계에 있는 스타워즈 팬들 중에서도 VVIP 급의 전문성과 접근성을 지닌 사람이다. 1978년 여름, 요코하마의 극장에서 처음 스타워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저자는 이후 스타워즈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 매료된 나머지 생업으로 영상 관련 직업을 택했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프로모션과 자막 감수, 잡지 연재, 스타워즈 셀레브레이션 재팬의 감수와 연출 등을 맡으며 최고의 스타워즈 전문가가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작과 영화 역사에서 스타워즈 시리즈가 차지하는 위상, 스타워즈 시리즈의 내용적 특징,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사가 루카스 픽처스에서 디즈니로 바뀐 이후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1977년 조지 루카스가 감독과 각본, 제작 총괄을 맡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3년 간격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이 개봉되었으며, 이 세 작품은 현재 오리지널 3부작으로 불린다. 


저자에 따르면 오리지널 3부작은 기술과 내용, 산업 측면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영향을 낳았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비전에 맞춘 영상을 실현해 내기 위해 ILM을 설립해 특수 시각 효과의 지평을 넓혔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의 대성공 이후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 등을 줄줄이 흥행시키며 흥행작의 후속편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깼다. 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B급, 비주류 장르 취급받던 SF 영화를 A급, 주류 장르의 반열에 올리며 영화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당시 유행이던 전쟁 영화에서 압도적 악으로 등장했던 나치를 제국 군으로 바꿨고, 서부극의 히어로였던 건맨을 조끼를 입고 허리에 총을 산 한 솔로로 대신했다. 서부극의 단골 장면인 술집에서의 속사포 경쟁까지 등장시켰다. SF 영화이기 때문에 당시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였던 베트남 전쟁과도 무관했고, 인종 문제에도 자유로웠다. 여성 인권 운동에 영향을 받아 당시로서는 드물게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인 레아 공주가 탄생했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스타워즈 시리즈가 일본 문화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설에 대해서는 일축한다. 조지 루카스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며, 두 손을 사용하여 칼을 쓰는 장면은 사무라이 영화를 참고했고 기모노 등 일본의 복식문화를 참고한 것 또한 맞지만, 오비완의 이름이 기모노의 허리띠를 가리키는 '오비'에서 유래했다거나, 요다라는 이름이 일본의 성씨 '요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오해다. 참고로 요다는 '전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 어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2012년 미국 월트 디즈니가 루카스 필름을 매수함으로써 스타워즈 시리즈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하는 한편 우려도 나타낸다. 디즈니 산하에서 루카스 필름 시절의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디즈니의 대표 상품인 마블 시리즈를 닮아갈까. 저자의 우려가 맞을지 틀릴지는 향후 개봉될 스타워즈 시리즈를 지켜보면서 확인해야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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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5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키치 2018-02-15 19:3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설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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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한국 사람들은 왜 식사 후에 꼭 커피를 마십니까?" 음식인문학자이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담당 교수인 저자 주영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만의 고유한 음식 문화와 독특한 식사 예절에 대해 답할 기회가 많았다. 한국 사람들은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하는지, 왜 양반다리로 앉아서 식사를 하는지, 집집마다 교자상이 있는지, 회식 자리에 명당이 따로 있는지...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낯설고 때로는 괴상했을 터. 


주영하 교수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는 외국인 학생들의 질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질문 열세 가지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쓰인 책이다. 앞에서 예로 든 질문 외에도 그 많던 도자기 식기는 어쩌다 사라졌는지, 공깃밥은 왜 항상 스틸 그릇에 담아 주는지,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과 달리 한국만 숟가락과 젓가락을 같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저자는 오랜 연구와 관찰, 참고 문헌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인이 전통으로 여기는 식문화 중에 엄밀히 따지면 전통이 아닌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상차림 중에서도 최고급 상차림인 십이첩반상은 중국 천자의 예를 기록한 것이고, 실제로 시행된 건 국격을 왕국에서 황제국으로 높인 대한제국 시절뿐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1인 1상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한 상에 여러 명이 둘러 앉아 먹는 상차림 또한 최근에 생겼다. 개다리소반은 아내가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의 '거안제미(擧案齊眉)' 고사를 동경한 사대부들이 만든 발명품이다. 


한국 사람들이 식사 후에 꼭 커피를 마시는 이유 중 하나로 저자는 숭늉을 마시던 습관을 든다. 숭늉은 커다란 솥에 밥을 지어먹은 다음 솥에 눌어붙은 밥알도 먹고 설거지도 편하게 하기 위해 조상들이 고안한 생활의 지혜다. 해방 이후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커피가 보급되고 믹스 커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식사 후 숭늉을 마시던 습관이 커피를 마시는 습관으로 교체된 것이라고. 이 밖에도 한국인이 알면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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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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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먹을까‘에 주목한 책. 학술서에 가깝지만 문장이 잘 읽히고 내용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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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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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해리 홀레 시리즈가 출간되면 밤을 새워가며 읽곤 했는데, 해리 홀레 시리즈 제9편인 이 책은 그렇게 읽고 싶지도 않고 읽을 수도 없었다. 총 11편으로 완결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해리 홀레의 끝, 시리즈의 정점'이라는 문구가 이 책 띠지에 콱 박혀 있는 걸 보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해리 홀레와 영영 이별할 일만 남은 것 같아서 서운하고 아쉬웠다. 


이야기는 형사를 그만두고 홍콩으로 떠난 해리 홀레가 오슬로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해리가 오슬로에 돌아온 이유는 헤어진 옛 애인 라켈의 외아들이자 '스노우 맨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친자식처럼 아꼈던 올레그가 마약을 소지한 것으로 모자라 친구인 구스토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 해리는 '스노우 맨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한때는 친아버지처럼 그를 돌봤던 책임감을 느끼며 올레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수사를 하면 할수록 해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만이 남아 해리를 괴롭힌다. 


소설에는 해리 말고도 또 하나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전직 신부이자 현재는 오슬로에서 제일 가는 마약 조직의 수장이며, 거리의 아이들을 제 수족처럼 부리다 쓸모가 없어지면 잔인하게 살해하는 '두바이'란 사내다. 두바이는 생판 남인 아이들은 물론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도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면 벼랑에서 밀어버리는 잔혹한 인간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해리는 두바이를 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어쩌면 자신도 올레그에게 그런 아버지로 비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리에게 올레그가 아픈 손가락이라면, 올레그에게 해리는 아픈 심장, 아픔을 느끼는 모든 이유이지 않았을까. 


"가정을 해보자는 거야. 내가 옳다고.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과거를 과거로 묻는 게 가능하다고." 

"당신을 따라다니는 유령들을 똑바로 노려봐서 굴복시키는 것도?" (519쪽) 


<스노우 맨>에서는 해리 홀레의 손가락을 뽑고, <레오파드>에서는 해리 홀레의 얼굴 절반을 찢은 작가는 <팬텀>에서 해리 홀레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것으로 모자라 최후로 이끈다. 앞으로 두 권이 남아있다는 걸 몰랐다면 이대로 해리 홀레 시리즈가 끝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그랬다면 해리 홀레 시리즈를 결말이 최악인 작품으로 기억했겠지). 


읽는 사람의 기분마저 축축 처지게 만드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고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대목은 해리와 라켈이 밀당을 하는 장면이다. 해리는 라켈에게 새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섣부른 기대를 접지만, 라켈이 여전히 해리를 그리워하며 해리가 떠난 자리는 그 누구로도 채울 수 없다는 확신을 주며 해리에게(그리고 라켈 자신에게도) 용기를 준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해리가 마침내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말을 믿기로 했을 때, 하필이면 겨우 다시 붙은 둘 사이를 떨어뜨리는 '그 사건'이 벌어질 줄이야. 완결편이 가까워지는 건 서운하지만, 그래도 어서 다음 편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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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14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이유로 이 책은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 그래서 님의 리뷰도 첫부분만 읽고 후일을 기약합니다. ^^;;;

키치 2018-02-14 18:15   좋아요 0 | URL
그 심정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다음 권 기다리기 힘들 것 같으니 라로 님처럼 고이 모셔두었다 읽을 걸 그랬나봐요 ^^;;;

시온 2018-02-1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요 네스뵈 시리즈를 정말 좋아해서 다 읽고 있는데 아직 레오파드와 팬텀은 읽지 못하고 있었어요. ㅠㅠ 저 질문이요.... 우리 고난의 아이콘 해리 홀레 시리즈가 팬텀 이후에 더 나오는 거죠? 그쵸? ㅠㅠ 망가지는 그를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레오파드부터는 좀 쉬고 있거든요... 그런데 팬텀을 보니 느낌이 아주아주...... 쌔~해서리..... 그래서 팬텀 이후에 더 나오는지 봐서 읽으려구요...

그리고 나중에 정말. ㅡㅡ;;; 작가한테 글을 좀 써보려구요... 그만 좀 괴롭히라고. ㅠㅠ

시온 2018-02-1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 다행히.두 권이 더 있군요.헷. 어여 사야겠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