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이야기 - 거리 이름에 담긴 부와 권력, 정체성에 대하여
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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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주소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주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쓴 디어드라 마스크는 하버드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하버드 로스쿨 등에서 공부한 작가이자 변호사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주소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가 사는 런던에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거리 이름이나 도로명이 많았기 때문이다(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는 책으로 확인하시길). 


주소에는 권력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 대부분이 주소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소는커녕 지도조차 완성되지 않은 지역이 전 세계 70퍼센트에 달한다. 주소가 없다는 것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고, 교통과 통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복지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저자는 인도 콜카타에서 시행 중인 주소 만들어주기 운동을 소개하며 주소의 의미와 효과를 상기시킨다. 


주소에는 또한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사고 체계가 반영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예부터 한자를 사용한 일본과 한국에선 공간을 구획(면) 중심으로 인식하는 지번 주소를 사용하고, 알파벳을 비롯한 표음 문자를 주로 사용한 서양에선 공간을 도로(선) 중심으로 인식하는 도로명 주소를 사용한다. 한국은 2014년부터 지번 주소 대신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도로명 주소가 아닌 지번 주소로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문자 때문이라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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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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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시리즈의 이름은 <국토박물관 순례>. 저자 유홍준은 '답사기'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한국의 문화유산과 유적을 소개했지만 아직도 소개하지 못한 것이 많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껴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한다. 새 시리즈의 테마가 박물관인 것은 '답사기' 제1권의 서문이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가 '답사기' 시리즈와 다른 점은 박물관을 테마로 삼았다는 점만이 아니다. '답사기' 시리즈가 지역별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는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토박물관 순례> 1권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삼국시대 중 고구려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2권은 백제, 신라, 비화가야를 다룬다.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는 전 4권 또는 5권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구석기시대의 답사처로 저자는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골랐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는 무려 200곳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유적지가 발견된 사연이 책에 나오는데 아주 드라마틱하다. 1978년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백인 청년 그레그 보엔이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인 애인과 한탄강 유원지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주먹도끼를 발견했다고. 발견 당시 상황과 발견 이후의 이야기도 재미있으니 책에서 확인하시길. 


신석기시대의 답사처로 저자가 고른 곳은 부산 영도의 동삼동 패총이다. 저자가 무수히 많은 신석기 유적 가운데 동삼동 패총을 고른 것은 그동안 부산을 '답사기'에 충분히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동삼동패총전시관 외에도 복천박물관, 국립해양박물관, 요산문학관 등 근처에 가볼 만한 박물관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이 중에 복천동 고분군은 저자가 부산 사람을 만났을 때 이를 아는 분과 모르는 분, 가본 분과 안 가본 분으로 문화적 소양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한다. 영도의 역사도 자세히 나와서 부산 여행 전에 읽으면 좋겠다.


청동기시대의 답사처로 저자가 고른 곳은 울산 언양이다. 언양 대곡천변에는 신석기시대 반구대암각화, 청동기시대 천전리각석, 초기철기시대 유물이 있는 울산대곡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선사시대 답사를 하기에 매우 좋다. 고구려 파트는 2000년 9월 <중앙일보>가 기획한 '압록, 두만강 대탐사단'에 단장으로 참여해 14박 15일간 중국에 있는 고구려, 발해 유적을 다녀온 답사기로 갈음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나온 유적지, 박물관 가운데 유일하게 가본 곳이라서 반가웠다. 동북공정 이후 한국인들은 가볼 수 없게 된 곳이라서 애틋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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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지금 1권 가제본을 읽는 중입니다. 거의 다 읽었기에 2권을 미리 온라인 주문했어요.

키치 2023-11-28 15:41   좋아요 0 | URL
저도 1권 가제본 읽고 바로 2권 주문했습니다. 저와 같으시네요 ^^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원의 지적 여정
데버라 워런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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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듀오링고로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작년에 듀오링고로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프랑스어를 배워보니 영어와 비슷한 듯 달랐다. 다른 부분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다 독일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독일어를 배워보니 이번에도 영어와 비슷한 듯 달랐다. 이번에는 다른 부분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다. 이 책에서 PIE(원시인도유럽어)라는 용어를 봤다. 아마도 이것이 영어와 프랑스어에는 없고 독일어에도 남지 않은 언어의 조상 아닐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럽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고 앞으로도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울 생각인데, 오랫동안 곁에 두고 참고할 만한 책을 만났다. 미국의 언어 전문가 데버라 워런이 쓴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이다. 저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후 라틴어와 영어 교사로 활동했고, 소트프웨어 엔지니어로도 일했다. 지금도 라틴어와 프랑스어 책 읽기를 취미로 하며, 시로 상을 받기도 하고, 다양한 언어로 된 책을 번역하고 언어에 대한 글을 쓴다. 


이 책은 영어 사용자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영어 단어들의 기원을 파고든다. 영국을 뜻하는 영단어 england는 덴마크의 낚싯바늘처럼 생긴 반도, angeln(앙겔른)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 건너 섬을 자꾸 침략하다 보니 그 땅 이름이 angle-land가 되고 england로 정착했다. 가을을 뜻하는 영단어 autumn은 '큰 수확'을 뜻하는 라틴어 auctumnus에서 유래했다. 경매를 뜻하는 영단어 auction과 어원이 같다. 승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uber)'는 독일어 uber에서 왔고 이는 '위'를 뜻하는 영단어 upper, over, above와 같다. 


이 과정에서 어원을 몰랐다면 평생 오해했을 단어들의 의미가 밝혀지기도 한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는 원래 털 구두였다. 프랑스어로 '털가죽'을 의미하는 'vair가 구전되면서 프랑스어로 '유리'를 의미하는 동음이의어 'verre'로 바뀌어 그대로 정착했다. 영어의 달(month) 이름이 로마에서 온 건 알았는데 요일 이름의 일부가 북유럽 신화에서 온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Tuesday는 전쟁의 신 튀르(Tyr), Wednesday는 주신 오딘(Odin), Thursday는 천둥의 토르(Thor), Friday는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Freyja)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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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은하수 - 우리은하의 비공식 자서전
모이야 맥티어 지음, 김소정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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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어려서부터 자연을 좋아해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아주 사적인 은하수>의 저자 모이야 맥티어도 비슷하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우주를 좋아했다. 지상의 부모님이 다툴 때마다 천상의 부모님인 해와 달에게 기도했고, 학교에서 유일한 흑인 아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밤하늘의 별들을 친구 삼아 놀았다. 그렇게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버드 대학교 사상 최초로 천문학과 신화학 학위를 동시에 받으며 천체물리학자이자 민속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은하수의 시점으로 우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의 화자인 은하수의 공식 명칭은 우리은하다. 우리은하는 1,000억 개가 훨씬 넘는 항성의 고향이자, 항성들 사이에 50간(참고로 10간은 10의 37승이다) 톤이나 되는 가스를 품고 있다. 우리은하의 나이는 130억 년이 넘고 앞으로 남은 수명은 1조 년 정도 된다. 우리은하 내의 물질은 우리은하 내의 항성들이 죽을 때 생성되는 물질로 형성된다. 인간도 스마트폰도 우리은하 내의 별의 잔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책에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주에 관한 신화나 전설도 나온다. 우리은하는 은하수 외에 우유의 길, 은의 강, 새들의 길, 사슴의 장애물, 미리내 등 다양한 별명이 있다. 고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은하수를 지푸라기 도둑의 길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르메니아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을 때 불의 신이 이웃 나라에서 불을 훔쳐 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은하수를 영어로는 'galaxy'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우유'를 뜻하는 '갈락시아스(galaxias)'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나 편견을 바로잡는 내용도 있다. 항성의 밝기가 변하는 기간이 절대 밝기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헨리에타 레빗인데 여성이라서 주목받지 못했다. 항성의 회전 속도는 은하가 가진 암흑 물질의 양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베라 루빈인데, 그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조롱당하고 무시당한 과거가 있다. 망원경으로 유명한 허셜은 사실 남매다. 오빠인 윌리엄 허셜과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은 함께 장비를 만들고 우주를 탐구했으나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건 오빠뿐이다. 


블랙홀이라고 하면 우주 한가운데에 있는 칠흑같이 어두운 구멍이 주변 물질을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블랙홀은 그 주위를 지나가던 물질이 굴러떨어지는 구덩이에 가깝다. 천문학은 서양의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그리스인이나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신들만의 별자리를 수백 년 이상 발전시켜왔다. 서양의 '과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무시당하는 - 다양한 지역의 과학적 지식과 신화, 전설, SF 문학작품까지도 우주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으니 지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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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는 길 - 운명을 거슬러 문을 열어젖힌 이방인
에이미 스탠리 지음, 유강은 옮김 / 생각의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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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 여성은 어떻게 살았을까. 노스웨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에이미 스탠리의 책 <에도로 가는 길>은 1804년 일본 에치고(현재의 니이가타 현)에서 승려의 딸로 태어나 자기 힘으로 운명을 개척한 '쓰네노'라는 여성을 통해 당시 여성의 삶은 물론이고 19세기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을 보여주는 논픽션이다. 


쓰네노는 1804년 린센지의 승려 에몬의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 승려는 사무라이보다 낮지만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이었다. 덕분에 쓰네노는 유복한 형편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혼담이 많았다. 열두 살 때 첫 결혼을 한 쓰네노는 15년 만에 이혼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후 두 번째 결혼, 세 번째 결혼까지 했지만 모두 불행하게 끝이 났고 아이도 남기지 못했다. 집안에서 네 번째 결혼을 준비할 때, 쓰네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에도(현재의 도쿄)로 가는 것이다. 


당시 에도는 일본의 수도는 아니지만 도쿠가와 막부의 근거지로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였다. 세 번의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마친 쓰네노로서는 결말이 뻔한 네 번째 결혼을 하느니 새로운 도시로 가서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여자 혼자 여행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에도에 사는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생활의 기반을 닦는 데 필요한 초기 자금이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도로 향한 쓰네노는 1839년 우여곡절 끝에 에도에 도착한다. 쓰네노가 에도에서 구한 첫 일자리가 하녀인 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가야'에 살았던 점 등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책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책과 비슷한 시대, 같은 공간을 다루는 '미시마야 시리즈'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의 의미가 단지 역사상에 기록되지 않은 실존 인물의 생애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일본이 그토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사연들을 품고 도시로 가서 저임금 노동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 덕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발전을 이끈 -그러나 저평가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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