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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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듣는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의 최근 에피소드 제목이 '돈에 얽힌 마음'이었다. 에피소드의 테마를 제공한 청취자 사연에 따르면, 어릴 때는 고만고만한 배경의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가난하다는 인식을 못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출발선 자체가 다른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사연을 보낸 청취자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부러진 사다리>를 쓴 미국의 심리학자 키스 페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페인은 학창 시절 무상 급식 대상자였다. 페인은 자신이 무상 급식 대상자임을 인식한 순간부터 보는 풍경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이 더 잘 차려입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 모양도 예쁘고 신발도 좋아 보였다. 말투도 무상 급식을 받는 아이들은 느리고 어설프고,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은 뉴스 앵커 같았다. 


심리학자가 된 페인은 가난하다는 인식이 인간의 감정과 선택,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평등한 상태일 때보다 불평등한 상태일 때 불안감을 느끼고 난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 내에서 난동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한 실험에서 일등석이 있는 항공편은 그렇지 않은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이 발생할 확률이 4배 이상 높았다. 탑승이 비행기 앞쪽에서 이루어져서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일등석 승객들 옆을 지나가야 하는 경우, 탑승이 비행기 뒤쪽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기내 난동이 일어날 확률이 2배 이상 높았다. 


고전적인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특정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그리하여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빤해 보이는 예측을 한다. 사람들은 더 적은 시간 동안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때 더 만족할 것이라고. 하지만 클라크와 오즈월드가 소득과 만족도의 관계를 분석해봤더니, 이상하게도 소득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위 20퍼센트보다 만족도가 약간 낮았고, 근무 시간은 만족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결과였다. (63쪽) 


저자는 불평등 자체도 문제이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불평등한 요인을 찾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악순환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절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준거 집단과 비교한 소득, 즉 상대 소득이 낮은 사람이 빈곤감을 더 많이 느끼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클라크와 오즈월드의 연구에 의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회적 비교도 변한다. "가난뱅이는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다른 가난뱅이를 질투한다." 


불평등이 미치는 악영향은 업무 성취도와 임금 만족도에도 해당된다.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위계질서가 명확할수록 직원들이 승진하고 싶어서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조직 내 위계질서가 명확할수록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업무 성취도도 낮았다. 임금에 격차가 있으면 직원들의 근로 의욕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임금 격차로 인한 동기 부여 효과보다 분노 유발 효과가 더 컸다. 


시장 경제에서는 경쟁의 결과로 어느 정도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런 시스템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중략)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오히려 신분 상승의 기회는 줄어든다. 이런 관계를 '개츠비 곡선'이라고 한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이 심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제적 미래는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가 된다. (248쪽) 


저자는 시장 경제에서 불평등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대신 심리학을 이용해 불평등한 상황에서 덜 불행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에 따라) 비교를 하되,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제때에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상향 비교는 학력을 높이거나 전문 분야에서 확실한 지위를 다지고 싶을 때 활용하면 좋다. 단, 마이클 조던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열등감만 느낄 수 있다. 


자기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하향 비교는 자신감이 없거나 주눅이 들 때 활용하면 좋다. 이때 비교 대상은 남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다.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면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좋다. 하향 비교의 이점("적어도 이제 그 얼빠진 십 대는 아니잖아!")를 취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상승 궤도를 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또 하나의 팁은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와 동기를 써보세요"라고 했을 때 돈이나 명예라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행동의 장점은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게 되고(남과 비교를 덜 하게 되고), 순간적인 쾌락보다 미래의 보상을 중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흔한 조언이지만 결국 이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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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창의 밖은 밤 1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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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부터 정주행합니다. 오컬트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bl 이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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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창의 밖은 밤 4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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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야마시타 토모코의 <화이트 노트 패드>를 재미있게 봤고, 최근에는 야마시타 토모코의 다른 만화 <삼각 창의 밖은 밤>에 푹 빠져 있다. <삼각 창의 밖은 밤>은 영능력자 미카도(일본어로 '삼각三角'이라고 쓴다)와 제령사 히야카와가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오컬트 물로, 대놓고 BL은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BL의 색채가 강하다(이런 은근한 BL, 좋아합니다 ^^). 


서점에서 일하는 미카도는 예전부터 기분 나쁜 것들이 잘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히야카와라는 남자가 미카도에게 다가와 자신과 함께 악령을 쫓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미카도는 강력하게 저항하지만 히야카와가 상사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미카도는 뜻하지 않게 부업을 하게 되고, 전보다 기분 나쁜 것들을 더 많이 보게 되어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왜인지 그만두지는 못한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 악령 퇴치이다 보니 이 만화에는 무서운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것도 대놓고 무서운 장면이 아니라 은근히 무서운 장면이다. 심령사진처럼, 딱 봐선 모를 수도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의 얼굴만 일그러져 있다거나, 중간이 텅 비어 있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휙 지나간다거나.


히야카와도 무섭다. 히야카와는 외모가 근사하고 두뇌도 명석하지만, 인간관계에 필요한 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성격이 냉정하고 구사하는 언어도 이상하다. 미카도 역시 그런 점들을 눈치채지만, 히야카와의 속박과 (일종의) 저주에 매여 언제부터인가 자기 뜻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과연 히야카와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근 출간된 4권에서 미카도는 처음으로 히야카와와 크게 대립한다. 미카도와 히야카와는 이제까지 악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구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히야카와가 사람들에게 일부러 저주를 걸고 그걸 푸는 제령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태연히 말했다. 미카도는 히야카와의 말이 거슬리다 못해 섬뜩했다. 히야카와에게 제령이란 뭘까, 악령이란 뭘까, 나라면 그런 의문이 들었을 것 같다.


<삼각 창의 밖은 밤>의 또 다른 장점은 이야기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4권에서는 미카도가 히야카와가 아닌 무카에와 함께 제령 작업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미카도의 부모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난다. 저주술사 히우라 에리카, 제령사를 찾아도 영은 믿지 않는 형사 한자와 히로키의 사연도 나온다. 히야카와가 성격이 이상해지게 된 사연도 나오는데 구체적인 사연은 5권에야 나올 듯. 어서 5권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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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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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냐고 물으면 죽지 못해 산다고 답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 열심히 돈 벌어서 좋은 집을 사기 위해서라든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라든가, 그런 목표를 위해 사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 그런 건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들이 오로지 죽지 못해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출산을 한 내 친구는 자기 아들 얼굴만 봐도 살아갈 힘이 난다고 하고, 오랜만에 소개팅을 한 친구는 소개팅한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자기 심장이 뛴다는 걸 실감한다고 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강아지가 왕왕 짖을 때,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가 귀여울 때, 힘들게 찾아간 맛집이 진짜 맛집일 때, 그럴 때 사는 보람을 느끼고 살아갈 의미를 되새긴다. 


<파이 이야기>를 쓴 얀 마텔의 신작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토마스는 일주일 사이에 아들과 아내, 아버지를 잃었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분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토마스는 삶을 견디기 위한 방편으로 뒤로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스는 자신의 일터에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기독교계를 뒤집을 만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로 먼 길을 떠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에우제비우는 시체를 부검하는 일을 하는 병리학자이다. 새해 첫 날, 에우제비우에게 한 노부인이 찾아와 자신의 남편의 시신을 부검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노부인은 부검을 통해 남편이 왜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말해달라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피터는 캐나다의 유력 정치인이다. 얼마 전 아내를 잃고 정계에도 환멸을 느낀 피터는 우연히 만난 침팬지 오도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급기야 피터는 가산을 전부 정리하고 오도와 단둘이 포르투갈에 건너가 생활할 계획을 세운다. 


세 개의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의 상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만, 본질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거나, 이야기를 짓거나, 반려 동물 같은 존재를 곁에 둠으로써 슬픔과 분노를 해소하고 위로와 안식을 얻는다. 결국 이 소설은 인간이 무엇으로 고통받고 무엇으로 구원받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울러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는 결코 높은 산처럼 먼 곳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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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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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시간은 한참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책을 더 많이, 더 빨리 읽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건 좋은데 책을 읽는다고 내 삶이 바뀔까. 괜히 시간 낭비, 체력 낭비하는 건 아닐까. 


나쓰카와 소스케의 소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이 모든 생각과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남자 고등학생 나쓰키 린타로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생전 처음 보는 고모는 린타로에게 하루빨리 고서점을 정리하고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랠 여유도 없이 생활의 변화를 겪게 된 린타로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고서점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다. 


그런 린타로의 곁에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돌연 말을 건다. "상당히 음침한 곳이로군." 그러면서 고양이는 린타로의 힘이 필요하다며, 린타로를 어디론가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네 유형의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책을 많이 읽는 데에만 급급한 사람. 두 번째는 책은 줄거리만 알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 세 번째는 돈이 되는 책만 좋아하는 사람. 네 번째는 일그러진 마음으로 책을 대하는 사람. 린타로는 이들을 만나며 자신은 왜 책을 읽는지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마음이 뜨끔했다. 나 역시 한 번 읽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기보다는 새로운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에만 급급해 문장의 참맛과 행간의 의미를 음미하지 않은 적도 많다. 돈이 되는 책만 골라 읽은 적도 있고, 잘난 척하려고, 아는 척하려고 책을 읽은 적도 있다. 책의 재미에만 푹 빠져 정작 삶의 재미를 만끽하지 못한 적도 있다. 린타로가 만난 네 유형의 사람은 과거의 나였거나 현재의 나인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로 책을 대해야 할까. 저자는 린타로의 입을 빌려 말한다. 책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매체다. 책은 '논리로 말하기보다 훨씬 소중한 것,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걸' 알려주는 수단이다. 그러니 책을 맹신해서는 안 되고 책에 짓눌려서도 안 된다. 아무리 책이 좋아도 가끔은 고개를 들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것. 그 사람이 전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책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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