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p.7) 


저자 김민섭은 2015년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펴냈다. 지방대 시간강사, 이른바 '지방시'의 처우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밝힌 죄(?)로 그는 그 해 12월 대학에서 나와야 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직업이 '대리기사'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대리기사로 일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대학에서의 10년보다, 거리에서의 1년이 더욱 가치 있었다." 라고 회고한다. 대학은 이제 성역(聖域)이 아니다. 대학 또한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며 그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대리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대리사회>는 그가 1년 동안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수집하고 기록하고 분석한 '거리의 언어'를 엮은 책이다. 자동차라는 타인의 공간에서 그는 김민섭이라는 인격이 아니라 대리기사라는 역할로서 존재했다. 그가 태운 손님들은 그의 직업이 대리기사이고 그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이유로 그의 행동과 언어, 사유를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대학 안에서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그는 거리에서 '아저씨'로 불렸다. 손님의 콜을 받는 순간부터 그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다가도, 아이를 보다가도 뛰어나가야 했다. 손님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땀이 나게 달려야 했다. 운전석에 앉으면 그때부터 그의 입은 손님이 뭐라고 말하든 "네, 맞습니다" 하고 영혼 없이 답하고, 그의 귀는 손님이 하는 말과 손님의 취향에 맞는 음악에 고정되어야 했다. 


'진상 손님'을 만나도 항의할 길이 없었다. 밤늦게 콜을 받고 갔는데 알고 보니 여러 명의 기사를 한꺼번에 부른 것이어서 허탕을 친 적도 있고, 처음에 약속한 금액과 다른 금액을 제시하며 흥정을 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지도대로 운전했는데도 일부러 돌아갔다며 시비를 걸고, 심지어는 지갑을 훔쳤다고 의심했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훌쩍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억울해도 손님은 갑, 대리기사는 을이므로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p.35) 


대리기사 일은 고되지만 대학교수가 되길 꿈꾸며 불합리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일하면서 4대 보험 혜택은커녕 합당한 보수도 받지 못 했다. 자연히 부모와 아내 등 가족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언젠가 교수가 되고 정규직이 되면 그의 부모는 '교수 부모', 그의 아내는 '교수 아내'가 되겠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희생이 보상받으리라고 합리화할 수 없었다. 


몇 년을 기다려야 교수가 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대학이라는 괴물의 욕망'에 포로가 된 자신 때문에 자신의 부모와 아내, 자녀들까지 고통을 겪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가 대학에서 타인의 욕망을 위해 '유령의 시간', '대리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사랑하는 가족까지 유령이 되고 대리 인생을 살길 강요할 순 없었다. 1년 3개월 동안 맥도날드에서 일한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것처럼, 대리기사로 일하는 경험 역시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진상 손님'이 있었다면 '좋은 손님'도 있었다. 집에 가서 아내, 아이와 나눠 먹으라며 빵을 한 아름 안겨주었던 손님도 있었고, "여기 높으니 버스 타고 가요" 하고 차비 2천 원을 덤으로 건네주었던 손님도 있었다. 비록 '대리 사회'에서 살지언정 주체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그는 만났다.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깨달았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저자의 아내는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대리운전을 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체력도 보전하고 평소보다 많은 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어린 아들을 늦은 밤 집에 혼자 두고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가정용 CCTV를 켜놓는 것으로 해결했다. 비록 대리일지라도 주체로서 결정하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니 훨씬 나았다. 


대리 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p.252)) 


사회가 개인을 주체가 아닌 대리인으로 대우하고 개인의 행동과 언어, 사유를 통제하면, 개인은 좌절감을 느끼고 끝내 분노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분노가, 분노를 야기한 사회 구조나 조직이 아니라 분노와 무관한 약하고 힘없는 개인 또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주체임을 부정당하고 경계에서 밀려나고 난 뒤에야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자각한다. 그전까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하고 조롱했던 존재가 되고 나서야, 자기를 대체할 새로운 대리인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한다. 


이미 보편화된 대리사회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려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연대하여 행동하는 경험을 자주 해봐야 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거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타인을 위해 길을 양보하고 문을 잡아주는 것도 좋고, 버스 기사든 식당 종업원이든 나를 위해 일해준 사람을 위해 따뜻한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좋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인생 2016-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리운저 이야기에 찡해 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우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정 절벽 -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말
미야 토쿠미츠 지음, 김잔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할 가치가 있는' 일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계층 이동과 근로자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근로자들이 이런 일을 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값비싼 학위와 자격증을 따야 하고, 인권 침해에 가까운 감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전력을 다해'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한다. (pp.18-9)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일을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침이면 빨리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깼다. 거울을 볼 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라고 묻고 "아니"라는 답이 나오면 변화를 꾀했다.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티브 잡스는 나의 멘토였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여러 번 인용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아침마다 일하고 싶어 죽겠다는 기분으로 직장에 달려가고 싶었고, 거울을 볼 때도 일 생각을 놓지 않는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막상 취업을 하고 보니 스티브 잡스의 말은 딴 세상 얘기였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죽겠고, 피로에 절어 생긴 다크서클 때문에 거울 보기가 두려웠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대답은 "아니"였다. 


<열정 절벽>의 저자 미야 토쿠미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좋아하는 일을 하라 Do What You Love, DWYL'는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근로자'를 이상적인 근로자의 모습으로 여기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허상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것과 보수를 받기 위한 노동은 일치하기 어려우며, 행여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수를 받는다 해도 그 일이 즐거움과 행복, 자아실현으로 연결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구호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것과 사랑과 열정, 행복 등을 임금노동과 연관 짓는 미사여구가 급증한 것은 무관하지 않다. "열정이 있는 곳에 성공이 따른다", "최고의 삶을 살라" 등의 구호가 늘어날수록, 근로자는 자신의 노동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을 합리화하고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직장과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다. (당연하게도) 그 열매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몫이다.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없거나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할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주의는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일을 제시했지만, 이런 일은 상당수가 비전문화되었거나 아예 사라졌다. ... 중간 수준의 괜찮은 일자리가 정말로 사라지고 있다면, 이제 사랑과 자율성이라는 미사여구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정해야 한다. (p.107)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구호는 노동 환경의 변화로 인한 문제를 미온적으로 해결하려는 수단이다. 기계화와 산업화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소수의 간부급 임원과 고위 관리직을 제외하고 거대 조직을 뒷받침하던 중간 관리직이 대거 없어지고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하위직만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대학(또는 대학원)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단순 업무를 처리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생활에 만족하게 하려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믿음만 한 것이 없다. 기업은 근로자가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인턴을 하고 취업을 하고 업무 성과를 올리고 승진 경쟁을 하는 모든 단계에서 근로자가 스스로 "이 일을 하고 싶다", "이 일을 좋아한다"고 인정하도록 강요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탈락시킨다. 근로자는 "이 일을 하고 싶다", "이 일을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거나 거짓말을 해야만 기업에 남고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궁지에 몰린다. 


"전통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답은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 이렇게 뿌리 깊은 성향은 가정을 벗어난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고분고분 협조하고 끊임없이 감사를 표하며 무상 또는 아주 적은 돈을 받고 일할 것을 강요하는 일자리는 전통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인 여성들에게 주어지기 쉽다. (pp.122-1) 


저자는 여성 문제도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가정에서 식사 준비나 청소, 빨래, 육아 등을 담당했으며 이는 노동으로 인식되지도 않고 당연히 보수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이런 일은 "사랑과 의무의 표현"이며 "아내이자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로 여겨졌다. 문제는 여성의 일을 저평가하는 인식이 가정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은 국가와 직종을 초월하며, 특히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36.7%에 달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이는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 3000원을 번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일을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 적은 보상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내하도록 강요당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따랐다가 내 노동을 헐값에 팔고, 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휴일도 반납하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떠맡아해야 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 노동'을 하고 있으리라. 언제쯤 이 문제가 바로잡아질까. 갈 길이 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아버지들 -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을 빛낸 효성스러운 아들딸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눈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의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먹을 것이 떨어지자 제 살을 베어 부모를 먹인 자식,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 년 동안 묘를 지킨 자식의 이야기는 동네마다 집안마다 하나둘씩 있다. 조선을 빛낸 아들딸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율곡 이이와 이매창 등 조선을 대표하는 관료와 예술가를 키워낸 신사임당,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라'는 말을 남긴 한석봉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에 반해 조선의 아버지들 이야기는 들어본 것이 없다. 있다 한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불행한 부자 관계뿐이다. 


<조선의 아버지들>을 쓴 과학기술교육대학교 교수 백승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왕따'에 가까운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울 것을 제안한다. 물론 모든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유교 원리를 지배 체제로 택한 조선 사회에선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아야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심청전>을 보더라도 심 봉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꽃다운 딸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심판을 받지 않았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만을 감시하고 자식에게만 효성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15세기 성리학자 김숙자와 유계린, 16세기 성리학자 이황과 김인후, 명장 이순신과 명재상 이항복, 17세기 김장생과 박세당, 18~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이익, 정약용, 김정희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11인의 아버지들과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행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영조의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이어서 아버지(정약용)는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서울에 살 자리를 마련하라."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문화(文華)의 안목(眼目)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pp.39-40) 


이 책에 소개된 아버지들은 조선 시대 선비 하며 떠오르는 엄격하고 고루한 이미지와 다르게 자상하고 다정하다. 이황은 자녀들에게 잔소리 대신 편지로 가르침을 전했고, 김인후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딸을 위해 비통에 찬 시문을 남겼다. 이항복은 아들과 손자가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친히 작성했고, 박세당은 병약한 아들이 눈에 밟힌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익은 자식들이 자신의 제사에 지나치게 공들이는 것을 염려해 검소하게 제사 지내는 법을 유언으로 남겼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며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정약용은 아내가 보낸 낡은 치마폭을 잘라 <하피첩>이라는 서첩으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의 교훈을 전했다. "하늘은 게으른 이를 미워하여 벌을 내린다.", "의복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족하다.", "음식은 목숨만 연장하면 된다." 등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지는 교훈 중에서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마라"는 교훈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죄인이라서 벼슬을 못한다고 시골로 내려가면 '문화(文華)'로부터 멀어진다. 지금은 폐족이지만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도모하라는 정약용의 당부가 애처롭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12-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귀양 생활 중에도 아들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친자식처럼 챙겼으니까요. ^^
 
질문하는 책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_인문 교양 지식 편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쯤 나오나 했는데 드디어 나왔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비소설 편 말이다. 소설 편은 재작년에 나왔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이라고, 출간 기념 북 콘서트까지 다녀왔다. 북 콘서트에서 이동진 작가가 비소설 편이 '조만간' 나온다고 해서 정말 조만간 나올 줄 알았는데 조만간이 약 2년이 될 줄이야.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이 나온 지 약 2년 만에 나온 이 책 <질문하는 책들>. 읽어보니 마음에 든다. 그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 책에는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이 그동안 빨간 책방에서 함께 나눈 아홉 권의 인문교양서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총, 균, 쇠>, <생각의 탄생>,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비틀스 앤솔로지>, <작가란 무엇인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철학자와 늑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등 빨간 책방 초창기에 다뤄진 책들이 많다. 


빨간 책방을 첫 회부터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들은 애청자인데도 책을 읽으면서 '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나?' 싶을 만큼 새로운 내용이 많았다. 가령 <생각의 탄생>과 <작가란 무엇인가> 편은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는데도 구체적인 설명이나 예시는 대부분 잊어버렸고, (김중혁 작가에게 굴욕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한) <총, 균, 쇠> 편은 아예 처음 접하는 듯 생소했다. 소리로 듣고 기억하는 것과 글자로 읽고 기억하는 것의 차이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머리가 나빠서일까(아마도 후자?). 시간 나는 대로 책도 다시 읽고 방송도 다시 들어야겠다. 


좋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좋지 않은 책은 간단하고도 명확한 답변을 자신 있게 제시하지만, 좋은 책은 늘 에둘러 가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긴 꼬리를 가진 질문을 남긴다. - 이동진 (p.6)


이동진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좋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은 묻고 또 묻는다. <비틀스 앤솔로지>는 음악인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묻고, <작가란 무엇인가>는 작가가 무엇을 쓰는지 묻는다. 이 책들은 네이버 검색창이나 위키피디아처럼 질문에 대한 답을 즉각 내놓지 않는다. 답을 내놓기는커녕 또 다른 질문으로 되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들은 질문(問)인 동시에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문(門)'이기도 하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답을 찾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아니고, 답을 찾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여기서 답을 찾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더 많은 질문이 생겼으면 좋겠다. - 김중혁 (p.5)


김중혁 작가는 '이동진 작가님이 골라준 책을 읽을 때마다 절벽 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라고 회고한다. 지난 4년 동안 빨간 책방을 애청한 나도 김중혁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총, 균, 쇠>나 <사피엔스>처럼 분량도 많고 내용도 어려운 책을 읽을 때면 '절벽 끝에 앉아 있는 기분'을 느꼈고, 두 분의 명쾌한 설명을 들을 때는 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왜 두 분처럼 설명을 못할까, 이러려고 책 읽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도 4년 동안 빨간 책방을 애청한 건 자괴감보다 두 분이 나누는 책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주는 즐거움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늑대> 편을 듣고 철학자의 일상과 철학을 결합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편을 듣고 평소 무관심했던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편을 듣고 전부터 좋아했던 빌 브라이슨을 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고, <비틀스 앤솔로지> 편을 듣고 비틀스의 음악을 생애 처음 찾아 들어보기도 했다. 이 모두 빨간 책방이 재미있지 않았다면, 빨간 책방을 듣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다. 


이 책의 매 챕터 마지막 장에는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가 추천하는 연관 도서가 두 권씩 소개되어 있다. <사피엔스>처럼 이미 방송에서 다룬 책도 있지만 <광대한 여행>, <우주의 통찰> 등 방송에서 다루지 않은 책도 있어서 앞으로 틈틈이 읽어볼 생각이다. 이번에는 '신임자' 이다혜 기자가 가세하기 전에 소개된 책 이야기를 엮었으니, 다음에는 이동진 작가와 이다혜 기자가 나눈 책 이야기도 엮어져 나왔으면 좋겠다. 제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와 할아버지 2017 일러스트북 캘린더
네코마키 지음, 오경화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귀엽고 따뜻한 캘린더라니!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네코마키의 <고양이와 할아버지 2017 일러스트북 캘린더>를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외딴섬에서 혼자 생활하는 75세 할아버지 다이키치와 사람보다 더 시크한 10세 고양이 타마가 함께 보내는 나날을 그린 코믹 에세이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팬으로서 마음에 쏙 들었다.


<고양이와 할아버지 2017 일러스트북 캘린더>에는 다이키치 할아버지와 고양이 타마 콤비의 1년 열두 달을 그린 일러스트와 캘린더가 담겨 있다. 월 별로 각기 다른 일러스트가 구성되어 있으며, 일러스트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흥취를 듬뿍 느낄 수 있다. 캘린더도 일반적인 캘린더와 달리 다이키치 할아버지와 고양이 타마 콤비의 일상이 담긴 미니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보기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감돈다. 캘린더 사이즈도 큼지막해 실내 장식용으로 손색이 없다. 


1년 열두 달을 그린 일러스트 중에 4월 일러스트가 가장 마음에 든다. 비록 현실은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ㅠㅠ) 활짝 핀 벚꽃 나무를 그린 일러스트를 보니 내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온 듯하다. 무사히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을 맞이했으면...! 여름과 가을, 겨울 일러스트도 하나같이 푸근하다. 하늘도 바다도 푸른빛으로 물드는 여름, 더위가 가시고 추위가 퍼지는 가을,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 풍경은 일러스트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있다. 2017년이 지나면 일러스트만 갈무리해 액자에 넣어 집안을 장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계절의 정취를 담은 특별 부록 엽서 세트도 담겨 있다. 이 특별 부록은 한국어판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서두르시길! 매년 회사나 은행에서 나눠주는 멋없는 캘린더를 사용했는데, 2017년에는 <고양이와 할아버지 2017 일러스트북 캘린더>를 사용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즐겁다. 소중한 친구나 가족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