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인지 드래곤 2
이시하라 케이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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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지 드래곤>은 중국 청나라를 모티프로 한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이단의 붉은 용 이사라를 수호룡으로 삼아 여왕이 된 히바나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만화다. 원래는 3화(<스트레인지 드래곤> 1권)로 종료되었는데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속편이 나왔다. 단행본은 전체 3권이며 3권 모두 한국에 정식 발행되었다. 


<스트레인지 드래곤> 1권에서 사이룬의 왕녀 히바나는 과거 백룡의 수호를 받았으나 끝내 버려진 왕국의 옥좌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머리카락 색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기는 했어도 왕궁에서 온실의 꽃처럼 자란 히바나는 바깥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그런 히바나가 위험에 처한 순간 구해준 것이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 이사라였다. 


이사라는 알고 보니 신력이 약해 날지 못한 탓에 일족에게 버림받은 변종 붉은 용이었고, 히바나는 자신처럼 일족에게 버림받고 외톨이로 지내는 이사라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왕궁에 돌아온 히바나가 또다시 위험에 처하자 숨어서 지켜보던 이사라는 붉은 용의 모습으로 히바나를 구했고, 붉은 용의 재림을 목격한 사람들은 히바나를 옥좌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히바나는 사이룬의 왕이 되었다. 


<스트레인지 드래곤> 2권에서 이사라는 왕이 된 히바나를 지키는 수호룡으로 인정받고 왕궁에서 지내게 된다. 히바나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이사라는 정식으로 호위가 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쌀쌀맞은 태도를 취한다. 이사라와 조금은 가까워진 줄 알았던 히바나는 이사라의 태도가 답답하고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이사라의 거만한 태도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또 있었으니 그는 바로 히바나의 아버지인 선대 왕을 모셨던 내무관 스즈리다. 


붉은 용을 인정하지 않는 스즈리와 붉은 용 이사라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히바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들이 왕궁에 침입하고 히바나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히바나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이사라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히바나는 그런 이사라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이사라가 자신을 걱정해줘서 기쁘다. 


한편, 예부터 왕국을 수호한 백룡이 아니라 붉은 용을 수호룡으로 삼아 왕좌에 등극한 히바나를 못 미더워하는 백성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히바나는 직접 그곳으로 가서 백성들을 만나고 그들의 민심을 달래려 한다. 왕으로서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제 겨우 십 대 소녀인 데다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 된 히바나가 과연 이 시련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을까. 


판타지 만화이기는 하지만 중국 청나라를 모티프로 한 가상의 나라가 배경이어서인지 중국 사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권으로 완결된 작품의 속편이라서 전체적인 완결성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1권을 프롤로그로 보고 2권부터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된다고 생각하면서 보니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1권에서 이미 커플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러브 라인에 긴장감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1권에서 말괄량이 왕녀에 불과했던 히바나가 2권에서 현명하고 인자한 왕의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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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눈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저우바오쑹 지음, 취화신 그림, 최지희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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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한 뮤지션 요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꼽았다. 내가 좋아하는 요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니. <어린왕자>를 읽고 대단한 감흥을 받지 못한 나는 <어린왕자>의 어떤 매력이 요조를 사로잡았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블랙피쉬에서 홍콩의 정치철학자가 <어린왕자>를 재해석한 책 <어린왕자의 눈>과 <어린왕자> 문고판을 묶은 세트를 출시했기에 읽어봤다.


<어린왕자의 눈>의 저자 저우바오쑹은 문학을 사랑하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정치철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014년 9월 홍콩에서 우산혁명(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민주화 시위)이 일어났을 때 저자는 수십만 명의 홍콩인과 함께 거리로 나가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했고 경찰에 체포되었다. 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몸과 마음이 지친 저자는 대만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쉬다가 <어린왕자>를 만났다. 어릴 적에 읽고 다시 읽은 <어린왕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왕자>를 읽으며 자기 삶의 장미와 여우를 찾고, 동심, 자유, 책임, 고독, 길들여짐, 사랑, 생의 오묘한 비밀과 죽음의 고민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텍쥐페리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그림(<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 그림이다!) 두 장을 그려 어른들에게 보여주었다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꾸중을 들은 일화를 소개한다. 어른들은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대신 장래에 도움이 되는 일, 즉 좋은 학교에 합격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높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일을 하기를 권한다. 이로 인해 아이는 일찍부터 꿈꾸기를 포기하고 어른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어른으로 자라난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똑같이 충고한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저자 또한 생텍쥐페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저자는 글쓰기에 빠져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주변 어른들의 충고에 따라 경영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경영학이 적성과 맞지 않았고, 결국 저자는 주변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치철학을 전공해 작가로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아가 향하는 길을 충실히 따라 걷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진정한 자아를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어린왕자>의 핵심 주제인 '길들여짐'과도 관계가 있다.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는 들판 위에 핀 오천 송이의 장미보다 어린왕자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장미가 더욱 소중하다고 말한다. 어린왕자와 장미는 단둘밖에 없는 소행성 B612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에게 길들여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징정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무시하면서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길들이거나 자기 자신에게 길들여질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이는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즉 자기 자신에게 잘 길들여지고 자기 자신을 잘 길들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다 쉽게 사랑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길들여질 수도 있다. 


개인의 행복한 삶은 사회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제도는 자연히 생겨난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우리가 그리는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 함께 세상을 바꾸려는 결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길들여짐은 정치적인 것이다. (215쪽) 


길들여짐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이고, 사람과 사람의 교류는 사회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차별, 인종 차별, 민족 차별, 장애인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이 묵인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사귀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며 매일 대립과 갈등에 노출된 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길들여짐은 권력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것도 아니고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굴복시키는 것도 아니다. 서로 상호적이고 대등한 관계 속에서 소통하는 가운데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어린왕자>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길들여짐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 삶을 보다 진지하게 성찰하고 진실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더욱 공정하고 공평해지며 민주화로 가는 길도 앞당겨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온갖 차별이 만연하고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 내에서도 유의미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어린왕자>를 읽는 눈을 키우고, 자신의 삶과 사회를 대하는 태도도 성찰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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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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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녀가 자신의 능력에 눈 뜨고 세계의 음모를 깨닫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드래곤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마저 주인공의 성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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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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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이란 책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지만 여자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 책은 손길이 가지 않았다. 무도회에서 함께 신나게 춤을 췄으면서 왕자가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신데렐라. 자기를 미워하는 왕비한테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쫓겨나는 백설공주. 물레 한 번 잘못 만진 게 뭐라고 세월아 네월아 잠만 자는 숲속의 공주. 왜 이들은 자기 힘으로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을까. 왜 바보같이 기다리고 쫓겨나고 잠만 잘까. 전부 다 답답했다. 누구 하나 닮고 싶지 않았다. 


나오미 노빅의 신작 <업루티드>의 아그니에슈카는 이들과 다르다. 일단 공주가 아니고 예쁘지 않고 착하지 않다. 십 년에 한 번 드래곤이 성에서 나와 그 해에 열일곱 살이 된 소녀를 잡아간다는 전설이 있고, 마침 올해가 드래곤이 성에서 나온다는 그 해이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아그니에슈카가 드래곤이라면 마을 최고의 미인이자 성격도 착하고 지성까지 갖춘 단짝 친구 카시아를 데려가지 잘난 구석 하나 없는 자신을 데려갈 리 없다. 나는 잠자코 있다가 카시아가 떠나면 멋진 남자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렇게 살면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때 아그니에슈카의 예상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한다. 성에서 나온 드래곤이 카시아가 아니라 아그니에슈카를 선택한 것이다. 드래곤의 성에 끌려간 아그니에슈카는 드래곤이 자신을 겁탈하거나 죽일 거라고 짐작해 잔뜩 겁을 먹는다. 드래곤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시키지도 않은 식사 준비까지 하는데 드래곤은 도리어 밥 지을 시간이 있으면 마법이나 연습하라고 화를 낸다. 그때부터 드래곤은 아그니에슈카에게 마법 공부를 시키는데, 아그니에슈카는 마법 책 읽는 것도 싫고 주문 외우는 것도 싫다. 마을에서 카시아를 데려와 자기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마을에 돌아가 예전처럼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래곤의 성에 마렉 왕자가 찾아온다. 잘 생기고 늠름하고 성격까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마렉 왕자는, 알고 보니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난봉꾼이었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아그니에슈카에게도 손을 뻗었다. 아그니에슈카는 왕국 전체가 칭송하는 마렉 왕자가 실은 나쁜 사람이고, 악명을 떨치는 드래곤이 실은 좋은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그니에슈카는 드래곤에게 키스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 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진정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번 들어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거나 미치광이가 된다는 소문이 퍼진 '우드'와 이를 둘러싼 왕국과 이웃 나라 사이의 갈등, 왕권을 빼앗으려 하는 세력, 이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십 년에 한 번씩 여자아이를 납치하며 악명을 쌓는 드래곤, 드래곤에게 순순히 여자아이를 바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펼친다. 


아그니에슈카를 성에 데려오고 마법 교육을 시킨 건 드래곤이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을 터득하고 마법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아그니에슈카 자신이다. 드래곤도 익히지 못한 야가의 주문을 저절로 습득한 아그니에슈카는 오랜 친구이자 마음의 빚을 진 상대인 카시아의 목숨을 구하고, 우드와 드래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푼다. 왕실 내의 암투와 거대한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우드의 정체도 밝힌다.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건 우드가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관습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 그 자체라는 것도 만천하에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드래곤이 납치한 힘없는 소녀에 불과했던 아그니에슈카는 모든 사건을 주도하고 해결하는 강력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아그니에슈카는 기존의 동화나 판타지 문학에 등장해온 여성상을 뒤엎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그니에슈카는 드래곤의 성에 갇혀 왕자가 자신을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왕자가 되어 위기에 빠진 카시아을 구출한다. 하룻밤 사이에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운명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풀어줄 때까지 버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선다. 사랑에는 대체로 적극적이지만 신중해야 할 때는 신중하다. 이렇게 멋진 여성 주인공은 예전에도 지금도 본 적이 없다. 


더욱 마음에 드는 건, 아그니에슈카가 처음부터 남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주어진 삶에 의문을 품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아그니에슈카는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평범한 여자애에 불과했지만 살던 곳에서 벗어나자 누구보다 강력하고 재능 있는 마법사로 성장한다. 다른 여자들처럼 시집가고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기를 꿈꿨지만 마법사의 재능을 발견하자 그 어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척척해낸다. 이러한 전개가 독자들(특히 여성)의 인생관은 물론 기존 판타지 문학의 여성상을 '뿌리째 뒤엎는(uproot)' 결과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받은 감동이 부디 다른 독자들에도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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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살이의 기술 - 일잘과 일못을 가르는 한 끗 차이
로스 맥커먼 지음, 김현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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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빠른 반면, 과소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작고 행동이 굼뜨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잘 포장하고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고, 능력 있고 성격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내쳐지고 사라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스 맥커먼이 쓴 <직장살이의 기술>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는 방법도 몰랐다. 대학 졸업 후 뉴욕에 있는 유명 언론사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뉴욕에서 결국 실패할 거라고 믿었으며, 한 달 안에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들통날 거라고 여겼다. 


놀랍게도 이런 현상은 저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1978년 조지아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는 '가면 현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현상은 성공한 사람들이 느끼는 세 가지 유형의 감정을 말한다. 첫째,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느낌, 둘째, 자신의 성취는 순전히 운이 좋은 덕택이라는 생각, 셋째, 자신이 일군 성공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과 케이트 윈슬렛도 이런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새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갈 때, 직장에 첫 출근할 때, 미팅에 참석했을 때, 지각했을 때, 퇴근 후 술 약속이 잡혔을 때 등의 상황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소개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지각했을 때는 왜 늦었는지 솔직하게 말하되 너무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지각한 이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회의에 10분 늦었다면, 도착한 뒤 10분간은 질문도 하지 않고 발언도 하지 않는다. "제가 놓친 게 뭐죠?" 같은 질문은 회의 시간을 늘려서 사람들을 더 짜증 나게 만들 뿐이다. 물론 이런 팁은 당신이 아주, 아주 유능할 때만 통한다. 무능한 데다가 지각까지 상습적으로 하면... (끝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왕재수와 일하게 되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나와 있다. 첫째,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둘째,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셋째,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 이도 저도 도움이 안 된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자.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이 질문은 왕재수가 자신의 왕 재수 없음을 해명하도록 종용하는 동시에, 재수 없음은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입을 다물게 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 질문을 들은 왕재수는 백이면 백, 말을 더듬거리다가 끝내 입을 다물었다고. 


반대로 내가 왕재수 취급 당하는 경우, 즉 직장 내에 대놓고 나를 싫어하고, 경계하고, 내가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 대처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에는 첫째, 그들의 행위를 유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둘째, 왕재수에게 던지는 기본 질문을 똑같이 던진다.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셋째, 이들을 대할 때는 결코 쓸데없이 친절하고 착하게 굴거나, 울거나 화를 내선 안 된다. '길거리를 걸어가다 선원 복장을 하고 뒷다리로 걷고 있는 치와와를 본 것처럼'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적당하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에스콰이어지 편집장인 백인 남성이다. 별 볼 일 없는 직장에 다니는 한국 여성이 겪는 '직장살이'는 이보다 더 독하고 가혹하다는 뜻이다. 참고할 만한 팁은 참고하되 어느 정도 깎아서 듣는 편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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