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 - 불꽃놀이 축제가 열리는 밤, 우리는 '사랑의 도피'를 했다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이와이 슌지를 직접 본 적이 있다. 2016년 가을 건국대 법학관 5층에서였다. 그곳에는 <립반윙클의 신부>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이와이 슌지가 있었고, <러브레터>이든 <하나와 앨리스>든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든 이와이 슌지의 어떤 작품을 계기로 그의 세계에 매료된 적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의 작품은 <4월 이야기>이다). 


이와이 슌지를 만나러 가기 전 그가 쓴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를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이와이 슌지는 영화도 잘 찍고 소설도 잘 쓰는구나'라고 감탄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최근 출간된 이와이 슌지의 소설 <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를 구입해 읽었다. 이 소설은 얼마 전 개봉한 애니메이션 <쏘아 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원작이자, 이와이 슌지의 데뷔작인 텔레비전 드라마의 각본을 소설 형식으로 고친 것이다. 


<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풋풋한 성장 소설이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소년 노리미치는 어느 날 친구들과 실컷 놀고 집에 갔더니 같은 반 소녀 나즈나가 있어 당황한다. 영문도 모른 채 나즈나와 하룻밤을 보낸 노리미치는, 얼마 후 나즈나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마을을 떠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즈나가 이사를 가는 날이 하필이면 불꽃놀이 축제가 열리는 날이고, 친구들은 노리미치의 속도 모른 채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면 둥글지 납작할지를 두고 내기를 벌인다. 


<쏘아 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만화 판에 비하면 <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가 압도적으로 좋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이제 막 느끼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의 심리를 잘 그렸고,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른 채 설익은 감정 때문에 고민하고 철없는 행동을 일삼는 모습도 귀엽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 철도의 밤>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도입부도 좋고, 불꽃을 앞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를 모두 보여주는 방식으로 결말을 맺은 것도 좋다. 


저자 후기도 잔잔하게 마음을 울린다. 이와이 슌지는 현재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이지만, 이 소설의 초고를 쓸 때만 해도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갈 때 혼자 대학에 남아 장래를 걱정하던 처지였다. 32년 만에 완성된 이 소설처럼 인생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나봐야 그 실체와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쓰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몽을 파는 가게 1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을 읽으려고 몇 번인가 책을 사보기도 하고 읽기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지는 못했다. 번역이 나쁜 탓일까. 영화의 아우라가 워낙 강해서일까.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왜 나는 좋아하지 못할까. 그 이유를 찾느라 혼자서 속을 끓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스티븐 킹의 소설집 <악몽을 파는 가게>가 퍽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구입해 읽었다. 과연 재밌을까. 심드렁한 기분으로 1권을 읽기 시작했는데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고, 혹시나 해서 구입하지 않은 2권을 마저 주문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래서 다들 스티븐 킹, 스티븐 킹 하는구나. 스티븐 킹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비로소 발 하나를 들이민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악몽을 파는 가게>는 1,2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2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인 소설집과 달리 각 단편에 스티븐 킹이 덧붙인 짤막한 글이 실려 있는데 이게 상당히 재미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해당 단편을 구상했는지, 해당 단편을 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쓰고 나서 어떤 후일담이 있었는지 등이 실려 있어 소설집에 스티븐 킹의 수필집 내지는 창작론이 딸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원 플러스 원, 아니 원 플러스 투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1권에 실린 <모래 언덕>이라는 단편이다. 무심하게 읽다가 결말을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은,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처럼 아찔하고 허망했다. 행운과 불운은 한 끗 차이이고, 때때로 그 둘은 차이를 분별할 수 없을 만큼 닮아 있음을 새삼 느꼈다. 같은 이유로 2권에 실린 <컨디션 난조>라는 단편도 좋았다. 이제 스티븐 킹의 장편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8-01-2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무서우셨어요???

키치 2018-01-23 12:39   좋아요 0 | URL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무서운 이야기 싫어하는 분들에겐 읽기 힘든 책일 수도 있겠네요 ㅎㅎ
 
악몽을 파는 가게 1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의 장편을 잘 못 읽었는데 단편으로 만나니 한결 쉽고 친숙하게 느껴지네요. 이제 장편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중혁 작가가 출연하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애청자이고, 김중혁 작가의 강연이나 북 콘서트 등에 참석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자연스럽게 그의 창작 비결과 글쓰기 철학 등을 주워들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구들링'이라는 세 글자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창을 열고 '구글링(googling)'하듯이, 그는 글 쓸 거리가 있으면 무작정 책상 앞에 앉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구들 위를 뒹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고 했다. 


김중혁 작가의 창작의 비결을 담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도 실은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잘 생각하는 법'에 관한 책인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애용하는 '창작의 도구'부터 소개한다. 노트, 메모지, A4용지 쓰는 법부터 연필, 펜, 스마트 펜, 컴퓨터까지, 저자가 애용하는 도구가 제법 많다. 저자는 '무엇을 쓸까' 만큼이나 '무엇으로 쓸까',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새로운 것, 기발한 것, 그중에서도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찾아가는 태도는 저자의 작품 세계와도 많이 닮았다. 


이어지는 '창작의 시작'은 글을 쓸 때 저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개한다. 글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자기 검열을 경계하는지, 글을 쓰다가 막혔을 때는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지 등이 나와 있다. 잘 쓰기 보다 자주 쓰고 많이 쓰려고 마음먹는 편이 완벽주의를 막고 창작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다는 조언에 깊이 공감했다. '실전 글쓰기', '실전 그림 그리기', '대화 완전정복' 등은 저자의 창의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코너다. 이 중에서 '대화 완전정복'은 채널예스에 연재된 칼럼을 엮은 것으로, 저자 특유의 유머가 빵빵 터진다(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편이 취향 저격이었다). 


어차피 글 쓰는 법, 글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은 널렸다. 하늘 아래 이미 개발된 것보다 새로운 창작의 기술은 없다. 그렇다면 그냥 내가 글 쓰는 법에 관해 서로 이야기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글쓰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김중혁이라는 작가가 무엇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독자로 하여금 그걸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이 선사하는 최고의 효과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중전쟁 1 - 풍계리 수소폭탄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진명의 신작 <미중 전쟁>은 2017년 말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실제 국제 정세에 기반을 두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실제보다 허구에 가깝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육사 출신으로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특별 조사요원으로 일하는 변호사 김인철. 인철은 세계은행의 공적자금 관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비밀리에 비엔나로 급파되지만, 인철을 돕기로 한 스타 펀드매니저가 시체로 발견되고 인철 또한 괴한의 습격을 받으며 미궁에 빠진다. 


수상한 냄새를 맡은 인철은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카리브해의 케이맨 제도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트럼프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FBI 요원 아이린을 만난다. 출발지는 다르지만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 그러나 얼마 후 아이린이 괴한에게 납치되고, 아이린을 찾기 위해 인철은 러시아로 급히 날아간다. 러시아에 도착한 인철은 자신이 쫓고 있는 사건이 실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열강과 대한민국이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진진하다. 인철이 오스트리아, 미국, 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사건의 전모를 추적하는 과정은 긴장감 넘치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나 단체도 그럴 법하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북핵 위기가 현존하는 한반도 상황을 잘 담아냈고, 문재인, 트럼프, 아베, 푸틴 등 실존 인물을 줄줄이 등장시켜 소설의 사실성을 높였다(외국 정치인은 모르겠는데 한국 정치인이 등장하는 대목은 왜인지 오글오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현실 같지 않고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듯했다. 장면 하나하나는 근사한데 연결이 엉성하다. 북핵 위기가 미중 전쟁의 소산이라는 메시지는 잘 전달되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애초에 두 권짜리 소설에 담기에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너무 컸다. 여기에 인철이 최이지, 아이린과 썸 타는 이야기를 더해지며 소설이 꽉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분량을 늘리거나 스케일을 줄였다면 이야기가 훨씬 촘촘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