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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레드케이스 포함) -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이동진 지음, 김흥구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평점 :
"어쩌면 나는 물건을 모은 게 아니라 이야기를 모았는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이자 작가 이동진의 책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다. 부제가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인 이 책에는 그동안 저자가 수집한 책과 영화. 음악 관련 물품들을 소장해 둔 공간 '파이아키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파이아키아는 원주율을 뜻하는 수학 기호 '파이'와 아카이브(archive) 혹은 아키텍처(architecture)에서 따온 '아키'와 공간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ia'를 합친 것이라고 한다. 파이아키아는 또한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의 섬 이름이기도 하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지척에 있는 고향 이타카 섬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10년간 바다를 떠돌아야 했다. 마침내 10년 만에 이타카 섬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도착했던 섬의 이름이 바로 파이아키아라고 한다.
이 책은 읽으면서 여러 가지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저자가 수집한 물품들의 양을 보는 것이고(책 2만 권, 음반 1만 장, DVD 5천 장, 그 외 수집품 5천여 점), 두 번째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물품들을 살펴보는 것이고(박찬욱 감독에게 사인받은 장도리와 영화 <어벤저스>의 슈퍼 히어로 25명의 사인이 담긴 포스터, 알베르 카뮈의 사인본이 기억에 남는다), 세 번째는 각각의 물품들에 얽힌 사연을 읽는 것이다.
저자의 경우,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이나 음반을 준비하는 건 기본이고 일부러 작품 또는 해당 인물과 관련된 물건을 따로 준비한다든지(예를 들면 영화감독 봉준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영화 <기생충>의 주요 소품인 수석을 따로 준비함),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직접 사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사이트를 뒤져서 사인본을 구하기도 하고, 외국에 갔을 때 발품을 팔아서 헌책방이나 중고 매장을 살피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사인을 받게 될지 모르니 항상 서명용 펜을 가지고 다닌다고(검은색만으로는 부족할까 봐 은색도 챙긴다).
영화 평론가로서 행사 또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받은 물품이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비롯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당시에 받은 물품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한때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열심히 들었고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비롯한 라디오 프로그램도 애청했던 사람으로서 무척 반갑고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추억은 방울방울~).
저자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안경'과 관련해 수집한 물품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반려묘 '소미'와 관련한 물품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4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물품들도 나온다. 마그넷을 주로 수집하신다고 들어서 얼마나 모으셨는지 궁금했는데 책에서 보니 그 양이 엄청나다. 오랫동안 수집가로 지내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감동적이었던 순간, 후회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어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