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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은 자신이 코끼리인 줄 알았다. 주변에 있는 동물들이 죄다 코끼리였으므로,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코끼리이며 평생 코끼리들과 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노든은 자신이 코끼리 고아원의 유일한 코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앞으로 걱정 없이 코끼리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코뿔소 무리를 찾아 떠나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 노든에게 할머니 코끼리가 이렇게 말해준다.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15쪽)
바깥세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찾아 떠난 노든. 예상은 했지만, 바깥세상은 노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기도 하고, 잔혹한 사냥꾼들에게 코뿔을 베일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전쟁이 발발해 동물원이 무너지고 주변 동물들이 떼죽음 당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든은 꿋꿋이 살아간다. 언젠가 어느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펭귄 치쿠의 알을 무사히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노든과 치쿠 외에도 다양한 연대와 협력의 관계가 등장한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게 서툰 노든을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준 노든의 아내, 분노에 찬 노든의 이야기를 언제나 말없이 듣고 위로해 준 앙가부,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치쿠를 위해 항상 치쿠의 오른쪽에 서서 대신 눈이 되어주었던 윔보 등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불안정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유는 곁에 나로 인해 살아가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존재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침내 펭귄은 바다 앞에 선다. 그 옛날 노든이 코끼리 어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처럼 말이다. 이제부터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고 억울하게 당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의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기적과도 같은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긴긴밤을 견뎌내기만 하면, 삶은 무엇이든 준다. 그 밤을 함께 견딜 존재가 있다면, 삶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