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벗어난 밭가 숲에는 생각도 못한 것들이 자랐다. 참외와 수박인데 올여름 우리 부부가 농협 매장에서 사다먹고 내버린 참외 수박의 씨앗들이 싹을 틔워 뒤늦게 자라난 결과물인 듯싶었다.

폭염의 여름도 가고 참외‧수박 수확의 시기를 지나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10월 초순에 발견된, 생각도 못한 놈들.

오늘 기념으로 놈들 중 수박 하나를 촬영했다. 얼마나 작은 수박인지, 사진을 보는 분들이 실감하도록 옆에 슬리퍼를 갖다 놓고 촬영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 보는 순간 마음 한편이 찡해 왔다. 왜냐면 너무 늦은 결실이라 마치‘환갑 넘은 나이에 자식을 하나 얻은 것’같아서다. 사진 속 수박에게 부모가 있다면 늙어서 낳은 자식을 애지중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 어린놈을 놓고 세상을 어찌 뜨나?’하는 수심(愁心)에 밤잠을 못 이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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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이병욱 2018-10-04 23:05   좋아요 2 | URL
겨울이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하는데 참 고민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4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박이 너무 귀엽고 햐~진짜 무심이병욱님 마음이 오히려 짠하게 전해져 옵니다 ^^

무심이병욱 2018-10-04 23:05   좋아요 1 | URL
숲 부근에서 농사지으면 묘한 일들이 많습니다
 

 

나는 노인네가 춘심산촌에  또 오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당뇨악화로 거동이 더 편치 않게 된 노인네가 평평치 못한 산촌 길에서 발걸음을 떼다가 넘어지는 사고라도 날까 걱정돼, 침묵함으로써 짐짓 모른 체했다.

그런데 오늘 노인네가, 내가 다른 일로 경황이 없는 새 춘심산촌을 다녀갔다는 게 아닌가. 아내가 나서서 차에 노인네를 태우고 20여리 되는 그곳까지 운전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외출했다 밤늦게 귀가한 내게 아내가 말했다.

“꽃들을 보며 몹시 좋아하시더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랬다가는 넘어져서 골절사고가 날지도 몰라, 그냥 제자리에서 화초들에 물이나 주라고 고무호스를 건넸지. 그랬더니 시키는 대로 호스로 물을 주면서 내게 지난번처럼 또 그러대.‘네가 내 소원을 이뤘구나!’”

노인네는 본래 꽃들을 돌보는 게 낙이었다. 병석에 눕게 되면서 그 소박한 낙조차 제약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수많은 화초들을 다시 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을‘네가 내 소원을 이뤘구나!

노인네는 아내의 친정어머니, 내게는 장모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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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춘심산촌에서 농사를 시작할 때 가장자리의 돌밭이 문제였다. 농사 시작 전 경지 정리 차 동원한 포클레인 기사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이쪽은 포클레인 날이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가는 날이 부서질 것 같아요. 그러니 이쪽은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천하의 무적 포클레인 기사가 그런 사정을 하니 어떡하나, 돌밭인 채로 내버려둘 수밖에. 나는 그리 체념하고 말았는데 아내는 달랐다. 여기저기‘돌밭에 심을 수 있는 나무’를 수소문하더니 기어코 어린 드릅 묘목들을 구해다가 돌밭에 심었다. 내 기억으로는 50 그루 정도? 100여 평에 50 그루는 듬성듬성 심은 거나 다름없는 풍경이다.

 

 

7년이 흘렀다. 드릅나무들이 무섭게 번식한 끝에 이제는 100여 평 돌밭 거의를 차지했다. 놀라웠다. 드릅나무는 뿌리로 번식한다는데 어떻게 돌투성이 밭을 연한 뿌리로 헤쳐 나가 자리 잡았는지.

 올봄에는 가지마다 연한 순들이 달려 우리 집 밥상은 한동안 호사를 부렸다.

 

  

그런데 여름 지나 가을이 되자 그러잖아도 돌밭을 점령하다시피 한 드릅나무들이 극성까지 부려 빽빽하기가, 보기만 해도 숨 막힐 것 같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을 보듯 인구 과밀화 같은 현상이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두릅 밭 전체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아내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는 낫을 들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드릅나무 가지들을 쳐내며 정리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게 발견됐다. 가느다란 쑥대 두 가닥을 의지해 만들어진 작은 새집이 발견된 거다.

“여보 이리 와 봐요!

하며 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가 두릅 밭으로 가 봤더니 그런 앙증맞은 새집이었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먹이를 찾는 흉측한 뱀도 피할 수 있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나무를 타고 올라올 수 있는 들쥐 같은 놈들까지 피할 수 있는 절묘한 새집이었다. 땅 위로 1미터 남짓한 위치의, 가느다란 쑥대 두 가닥만을 활용한 집이니  말이다.

새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메추리알 껍질처럼 작은 껍질이 두어 개 남아 있을 뿐 이었다. 짐작이 갔다. 딱새 같은 작은 새가 여기에 집을 짓고는 알을 낳은 뒤 그 알이 부화하여 결국은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자,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는 것을.  

 


요즈음 수도권의 부동산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하룻밤 새에 억 단위로 뛰는 서울 쪽 아파트 값 때문에 매스컴들이 요란하다. 우리 부부는 오늘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차 안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새들이 얼마나 멋있어? 오직 자기가 낳은 알이 부화돼 어딘가로 분가해 나갈  때까지만 집을 유지하니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은 자식들이 분가한 뒤에도 그 집을 계속 소유하고, 나아가서는 집값을 뻥튀기하여 횡재하려고까지 하는데 새들은 전혀 그런 일이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게 사는 모습인 거야.

가는 쑥대 두 가닥에 집을 짓고서 새끼들과 얼마간 살다가, 때가 되면  그 집을 내버리고 하늘이나 숲 어딘가로 훌훌 날아가 버리는 새들. 오늘 너희들이 참 부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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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이병욱 2018-10-03 09:1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시 그들과 같은 자연에서 살았음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의 과대한 욕심에 대해 성찰할 때가 왔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에게서부터 인간이 배워야할 게 많은것 같습니다^^

무심이병욱 2018-10-03 07:20   좋아요 1 | URL
숲 속 밭에서 농사 지은 지 7년. 정말 자연은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 인간은 고향에서 멀어졌습니다. 살다 보니 그리 됐겠지만 그래도 고향(자연)에 있었을 때의 순수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두릅밭에서 발견한 소박한 새집은 무심한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2000년이다. 명퇴 신청 기회가 다시 왔다. 나는 고민 끝에 명퇴를 신청하지 않았다. ‘명퇴한 후 내가 좋아하는 글만 쓰며 살겠다’는 결심에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년도에 내가 명퇴를 신청했을 때 어머니가 밤잠을 못 이루고 힘들어하는 것을 겪으면서 비롯된 일일 수 있다. 어머니는‘남편의 장기간 실직으로 고생하며 살았던 시절이 떠올라’한동안 안절부절 못했다. 8년 전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뜨고 없는 아버지이지만 여전히 우리 집 내력 속에 존재했다.

신산(辛酸)한 삶의 후유증일 게다. 2003년 초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홍천의 모 고교에 있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1년 지나 나는 명퇴했다.

명퇴 신청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던 2003년 가을의 일이다. 태원이가 개인전을 연다고 안내장을 학교로 보내주었다. 장소는 옥천동의‘춘천미술관’.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찾아갔다. 1026일 일요일이었다.

태원이는 만나보지 못하고 전시장 여기저기 놓인 바위들만 보았다. 실제 바위인 줄 알았는데 한 가닥 가는 줄로 허공에 매달아놓은 것까지 있어 이상한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 살폈더니 세상에, 신문지 같은 종이를 잘게 조각내 바위처럼 만들어 놓은 작품이었다. 뒤늦게 안내장을 다시 봤다.

The STONE A SHORT STORY OF ETERNITY'

해석한다면 ‘바위― 영겁의 짧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풍경화나 인물화가 아니었다. 감상하는 이에게 의문부터 갖도록 한 뒤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하는 바위 모양 조형물들. 깊어가는 가을 날씨에 한기마저 느끼며 나는 왠지 장소를 잘못 찾아들어선 이방인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이제 그 가을 춘천미술관에서 몸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까지 한기를 느꼈던 까닭이 밝혀졌다. 여러 가지가 복합돼 있었다. 우선 아내한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서 명퇴 신청을 생각하고 있었던 마음의 쓸쓸함이다. 이유야 어쨌든 직장을 그만 둔다는 건 결코 마음 편한 일이 못됐다. 그 다음이 바로 열 달 전 어머니가 병석에서 고통스레 삶을 마친 데 따른 상실감이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둔 순간 나는 고아가 됐음을 절감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이럴 수가. 내 잠재의식의 어두운 바닥에서‘그 전시장이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 집 내력과 깊게 인연을 맺은 공간이었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떠올랐다. 소스라쳤다.

 

춘천미술관은 예전의 춘천중앙감리교회를 리모델링해서 연 미술관이었다. 그 교회는 어느 한 때 춘천의 명소였고 바로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었다. 그날의 장면이 담긴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내 앨범에 있다. 1948년 어느 봄날, 주위에서 뿌려주는 축하 꽃잎들을 수줍게 맞으며 서 있는 꽃다운 신랑 신부. 훗날 생계 문제로 질곡의 삶을 살 줄이야 꿈에도 몰랐으리. 그런데 오랜 세월 후 내가 그 결혼식장이었던 곳에서― 바위 모양 STONE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기막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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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산촌에 가을이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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