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인네가 춘심산촌에  또 오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당뇨악화로 거동이 더 편치 않게 된 노인네가 평평치 못한 산촌 길에서 발걸음을 떼다가 넘어지는 사고라도 날까 걱정돼, 침묵함으로써 짐짓 모른 체했다.

그런데 오늘 노인네가, 내가 다른 일로 경황이 없는 새 춘심산촌을 다녀갔다는 게 아닌가. 아내가 나서서 차에 노인네를 태우고 20여리 되는 그곳까지 운전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외출했다 밤늦게 귀가한 내게 아내가 말했다.

“꽃들을 보며 몹시 좋아하시더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랬다가는 넘어져서 골절사고가 날지도 몰라, 그냥 제자리에서 화초들에 물이나 주라고 고무호스를 건넸지. 그랬더니 시키는 대로 호스로 물을 주면서 내게 지난번처럼 또 그러대.‘네가 내 소원을 이뤘구나!’”

노인네는 본래 꽃들을 돌보는 게 낙이었다. 병석에 눕게 되면서 그 소박한 낙조차 제약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수많은 화초들을 다시 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을‘네가 내 소원을 이뤘구나!

노인네는 아내의 친정어머니, 내게는 장모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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