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춘심산촌이, 살고 있는 집에서 20여 리 떨어져 있다. 오늘 아내를 태우고 춘심산촌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문득 깨달은 일이다. 얼마나 많은 엔진들이 우리 주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당장 내가 모는 차부터 엔진의 힘으로 가고 있었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들, 그러다가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가는 차들, 어디 그뿐인가. 맞은편 도로에서 오는 차들 모두 엔진으로 작동한다. 경유니 휘발유니 연료는 제각각이지만 엔진을 작동하기 위함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무수한 차들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차에 쓰이는 엔진이 커다란 솥 크기라면 오토바이는 도시락만한 엔진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사람이 작은 엔진 하나 품고 달려가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어느덧 춘심산촌이 가까워지면서 밭들이 널려 있는 농촌 풍경이다. 어떤 농부는 예초기를 돌리고 어떤 농부는 농약 분무기를 돌린다. 오토바이 엔진보다 더 작은 엔진들로 일하는 모습들이다.

춘심산촌에 왔다. 아래 밭의 김씨가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다.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가는 경운기이지만 그 또한 차 엔진보다 조금 작은 엔진의 힘이다.

세상은 어느덧 엔진들의 천지였다. 우리는 우리 가슴 속 심장을 빼닮은 인조 심장엔진으로 쉼 없이 살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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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를 보았다.

 

요즈음은 춘심산촌의 밭일을 오후 3시 넘어서부터 시작한다. 땡볕을 피하는 거다. 어제도 그렇게 밭일 하다가 땀을 식힐 겸 그늘을 찾아 숲에 들어갔는데 20미터쯤 전방에 낯선 동물이 있었다. 담비였다.

내가 처음 본 동물을담비라 인식한 것은 언뜻 족제비를 닮았으되 그보다 훨씬 몸이 더 컸고(다 자란 개만했다.) 결정적으로는 금빛의 아름다운 털 빛깔이었다. 담비와 나는 그늘져 어둑한 숲속에서 몇 초 간 상대를 응시했다. 가슴 섬뜩했지만 삽을 쥐고 있어서 그를 믿었던 것 같다. 여차 싶으면 삽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담비가 먼저 옆의 높은 나뭇가지를 타고 더 깊은 숲속으로 사라지면서 우리의 짧은 조우가 끝났다. 나는 숲을 나와 농막에 두었던 스마트폰으로담비를 검색해 봤다. 그 동물이 담비가 맞았다. 고라니는 물론 새끼 멧돼지까지 잡아먹는다는 사나운 담비.

아내한테 함부로 숲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할 일이 생겼다. 한 가지 걱정이 더해졌지만 동시에 도시 근교 춘심산촌의 생태계가 뜻밖에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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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거미가 내 눈에 뜨인 건 평범치 않은 생김 때문이었다. 보호색을 거부하듯 검은색 바탕에 흰색 무늬는 "나를 건드리기만 해 봐라. 그냥 안 있을 테다"라고 사납게 경고하는 듯했다.

  그런 녀석이 어이없게 변을 당했다. 농막 문에 끼여 납짝한 주검으로 발견된 거다.
우리 내외 중 어느 한 사람이 그 문을 열었다가 닫는 순간 녀석이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이 또한 100여 년만이라는 유례없는 폭염 탓에 녀석이나 우리나 모두 정신이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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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산촌의 밭 한가운데에서 목격했다. 독사 한 마리가 아가리를 벌린 채 죽어 있었다.(첨부 사진 참조) 무엇을 삼키다가 목구멍에 걸렸거나 혹은 무거운 무엇에 밟혔거나 한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사상 유례가 없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길을 잘못 들어 춘심산촌 밭에 들어섰다가산 채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럴 만했다. 우리 밭이 산속에 있어서인지 잡초가 별나게 기승을 부린다. 그 까닭에 우리 내외는 밭두둑마다 비닐멀칭 한 것은 기본이고 밭고랑까지 잡초방지매트를 다 깔아놓았다. 예전의 허술한 느낌의 부직포 잡초방지매트가 아니라 최근에 개발돼 나온촘촘하고 질긴 플라스틱 재질의 것이다. 하필 검은색이라 밭고랑마다 깔린 그 광경을 보면 숨이 탁 막힐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 없다.

, 밭이 그 모양으로 무장되자 잡초는 방지할 수 있게 됐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시작됐다. 어쩌다가 밭으로 기어들어온 지렁이들이 꼼짝 못하고 잡초방지매트 위에서 말라죽는 꼴들인 것이다. 그러면 얼마 안 가 개미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그 귀중한 음식을 집으로 옮기느라 바빴다.

그러더니 마침내 독사 한 마리까지 지렁이처럼 매트 위에서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다만 아직 개미들은 보이지 않았고 흉칙하게도 아가리를 벌린 채다. 독사의 역정을 추리해 봤다.

숲에서 먹이를 찾다가 마땅치 않자 우리 밭으로 기어들어왔다. 근래에 우리 내외가 울타리 망까지 둘러놓아서 네 발 짐승들은 밭에 들어올 엄두를 못 내는데 독사는 다행히(?) 발 없이 기어 다니므로 가능했다. 그런데 독사 놈이 맞닥뜨린 것은 사방 검은색 플라스틱 재질의 사막! 어느 방향으로 가야 그늘 있는 숲이 나올지 막막하다. 게다가 땡볕에 뜨겁게 달아오른 잡초방지매트 사막에 몸이 구워질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목이 타 아가리를 딱 벌린 채 죽어갈 수밖에.

 

유례없는 폭염 탓이다. 예전에는 밭은 물론이고 주위의 숲에서 개구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올해 여름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그 놈이 숲에서 며칠을 굶다가 불가피하게 우리 밭까지혹시나싶어 진출한 결과 아가리를 벌린 채 죽게 된 것이다. 놈의 마지막 절규가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

 

말라 죽은 게 분명해 보이지만 워낙 맹독의 무서운 존재라 조심해야 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삽날 위에 그 놈 시신을 얹었다. 그리고는 숲속으로 멀리멀리 던져버렸다. 안됐긴 하지만 결코 정이 안 가는 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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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가 쇠고리에서 떨어졌다. '금속 피로' 현상이다. 하긴 사람의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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