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들 주세요 사계절 중학년문고 2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양혜원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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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작가가 되고 싶어, 잘난척쟁이 경시대회> 등으로 친숙한 엔드루 클레먼츠의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미국의 학부모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 공립학교에서 7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작품에 잘 녹아들어 큰 호응을 받은 것 같다. 

기발한 상상을 잘하는 소년 닉을 주인공으로 개성있는 삽화와 큼직한 글씨는 초등 3학년이면 읽기에 좋을 책이다. 지루한 수업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분위기를 확 바꾸는 아이 닉은 개구쟁이고 말썽쟁일까? 통통 튀는 닉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 어린 독자들은 부러움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  

35년간 링컨초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신 그레인저 선생님은, 맞춤법과 문법, 어휘 실력을 높이기 위해 '사전찾기'를 철저하게 시킨다. 아이들은 초등 5학년을 피해갈 수 없기에 누구나 그레인저 선생님과 만나면 고역이다. '독불장군 그레인저를 건드리지 마라!'는 전설을 우습게 알았던 닉은,수업시간을 얼렁뚱땅 넘기려던 꾀에 자기가 빠져버린다. 사전에 있는 그 많은 낱말이 어디에서 오게 됐는지 스스로 조사해 발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ㅋㅋ  



선생님의 절대적인 사전 옹호에 반기를 들기로 작정한 닉은 재미있는 일을 꾸민다. 사전에 오른 말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펜'을 '프린들'(Frindle)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자연스런 사회적 요구가 아닌 의도적인 신조어 탄생을 막으려는 그레인저 선생님과 닉의 '낱말 전쟁'이 펼쳐진다. 이미 통용되는 '펜'이란 말을 '프린들'로 바꾸려는 닉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들 모두가 펜을 들고 '프린들' 하면서 찍은 5학년 단체사진은 파급효과가 대단했다. 곧 전교생이 동조하여 '펜을 '프린들'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교무실 앞에는 경고문이 붙었다. 

앞으로 펜 대신 프린들이라는 말을 쓰다가 발각되면, 방과 후에 남아서 '나는 펜으로 반성문을 쓰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백번씩 써야 합니다. -그레인저-

하지만 금지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아이들 심리다. 프린들이란 말을 써서 벌 받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5학년 전체가 남거나 다른 학년들도 남아 200명이 넘기도 했다. 부모들은 전화로 항의하고 학교 버스 기사들은 그만 둔다고 난리다. 교육 위원회와 교육감까지 나서게 되고, 교장선생님은 닉의 부모를 찾아 온다. 닉은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해를 끼치거나 나쁜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금지하냐며 엄마는 닉을 지지한다. 드디어 지역신문인 '웨스트필드 가제트'에 기사가 실리고, TV와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며 닉은 일약 스타가 된다.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꾹꾹 누르며 의기소침해진 닉을 불러 기운을 북돋아 준 그레인저 선생님이, 프린들이라 부르는 걸 왜 그렇게 반대했는지 알면 감동이 출렁인다. 프린들 낱말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에 부딪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지하는 실천의 문제, 어린이들의 창조적인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는 교육환경, 선생님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서도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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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나라에도 그레인저 같은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좋겠네요^^

순오기 2010-04-03 11:4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도 그레인저 같은 선생님들이 계실거라 믿어요.
물론 더 많아지면 그 이상 바랄게 없지만요.^^

무스탕 2010-04-0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우리나라에선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순오기 2010-04-03 11:44   좋아요 0 | URL
흠~ 우리나라에선 실현되기 어려운 동화일까요?ㅠㅠ

하늘바람 2010-04-0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 이책 재미나게 읽다가 잠시 멈추고 다른 일 한 기억. 앗 다시 찾아 읽어야겠어요 ^^

순오기 2010-04-03 11:44   좋아요 0 | URL
정말 재밌죠, 다시 읽어도 좋은 책!^^

bookJourney 2010-04-0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나라에서 삽화를 따로 그렸군요.
영어 책으로 들으면서 상상했던 그레인저 선생님과 여기 올려주신 그림의 그레인저 선생님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저는 좀더 마른 선생님을 떠올리고 있었던 듯 ... =3=3=3

순오기 2010-04-03 11:46   좋아요 0 | URL
영어판 그림은 다르군요, 양혜원 그림이라고 나와 있네요.^^
제가 올린 그레인저 선생님 그림은 전쟁을 불사하던 상황이거든요.ㅋㅋ

행복희망꿈 2010-04-0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좋은책이네요.
전 아직 못 읽어봤는데요.
보관함으로 쏙~~~

순오기 2010-04-03 11:46   좋아요 0 | URL
3~4학년이면 부담없이 재밌게 읽을만해요.^^

희망찬샘 2010-04-04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추천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순오기 2010-04-05 15:11   좋아요 0 | URL
아~ 읽으셨군요. 그레인저 선생님 정말 멋지죠!^^
 
전쟁은 무슨 짓을 저지르는가?
노근리, 그 해 여름 사계절 아동문고 56
김정희 지음, 강전희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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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이런 작품을 읽히기엔 참혹하지만, 그래도 감춰지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하기에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 노근리에서 벌어졌던 미군의 양민 학살에 대한 진실을 얘기한다. 열두 살 은실이가 겪은 그 참담한 사건을 담담하게 풀어내지만, 너무나 참혹하고 끔찍해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임계리에 사는 초등 5학년 은실이는 이웃집 현수 오빠를 좋아하는 평범하고 순진한 여자아이다. 전쟁이 났어도 산골마을이라 피난가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날 미군들이 도와준다며 무조건 피난가라고 몰아부쳤다. 임계리와 주곡리 주민들은 미군들의 총부리가 무서워 어쩔 수없이 피난길에 나섰고, 그들이 마을을 나서자 곧 집들이 불태워졌다. 다들 공포에 떨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피난 행렬에 폭격이 쏟아지고, 놀란 사람들은 철길에서 도랑으로 숨어들고 산으로 도망쳤다. 살아난 사람들은 노근리 쌍굴 다리에 이르렀고, 미군이 시키는대로 쌍굴다리 속으로 들어갔다. 굴 양쪽에서 총을 들고 지키는 미군이 무서워 꾸역꾸역 굴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을 때, 미군들은 굴속으로 총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상관들이 명령한 대로 행동할 뿐, 사람들이 읍내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라는 명령에 따라 흰 옷 입을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으면 무조건 사격한 것이다. 가만히 집에 있는 사람들을 총부리 들이대고 억지로 끌고 와서 죽인 미군, 대체 그런 명령을 내린 자는 누구인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25일 쯤, 노근리 쌍굴다리에 갇힌 사람들은 죽은 시체를 입구에 쌓아 올렸지만, 미군의 총질에 속수무책 죽어나갔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몰래 산속으로 도망쳤고, 죽은 시체더미에서 언뜻 인국이를 본 은실은 입을 다문다. 언니 금실이와 막내 홍이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은실이를 몸으로 감싼 엄마는 등판에 수없이 총을 맞고 죽었다. 그 나흘간 굴 속에 박힌 채 피비린내 나는 핏물을 마시고, 죽은 시체에 득시글거리는 구더기 속에서 그들은 죽은 듯 살아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을 은실이가 보고 겪은 그대로 풀어낼 뿐이다. 어린 소녀가 견디기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다. 미군이 쫒겨가고 인민군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죽은 이들을 버려둔채 산자들만 돌아가 죽은 듯이 사는 건, 정말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다시 국군이 들어오자 인민군에 부역한 사람들은 또 다시 죽어나가고... 은실이 아버지도 끌려서 전쟁터로 간다. 할머니는 다른 식구는 안중에도 없고 은실이 아빠만 걱정하는 게 어린 은실의 눈에는 야속하고 섭섭하다. 

나중에 집을 찾아온 언니 금실은 정신을 놓고, 늘 업어주던 막둥이 홍이를 잃고 베개를 아기 삼아 업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은실이도 감당하기 어려운 참혹함을 겪은 충격으로 말문이 닫혀버린다. 그렇게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미군이 마을에 들어와서 한 일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는 함구령이 떨어졌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보고 겪은 일을 말하지 못하는 그 억울함,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을 어찌할 것인가? 어린 은실이의 가슴은 무겁기만 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할머니는 아버지의 재혼을 서두른다. 은실이는 엄마와 죽은 가족을 배신하는 것 같아 새엄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새엄마가 아들을 낳고, 새엄마가 데려 온 단비가 동생에게 뺏겨버린 엄마의 사랑을 질투하자 은실이는 단비를 보듬어 준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지만, 은실이는 노근리를 잊지 않는다. 

너하고 난 전쟁터에서 용케도 살아남았어. 죽은 것도 슬프지만 살아남은 건 더 슬픈 일이지.
왜?
죽은 사람들을 늘 기억해야 하니까. 난 노근리 굴을 잊어버릴 수 없어.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겠어.

작품은 이렇게 끝이 나지만, 그 참혹한 일을 겪은 아이들이 자라서 노근리 사건의 진실을 밝혀냈다.  정부와 미국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발뺌을 했지만, 그 사건을 겪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노근리 쌍굴에서 식구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음과 뜻을 합쳐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공식발표는 사망자 177명, 부상당한 사람이 51명, 행방불명 된 사람이 20여명이지만, 일가족이 모두 죽거나 다른 지방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라니, 사상자가 공식발표보다 많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 서해에서 침몰한 천안함을 둘러싸고 무언가 은폐하려는 자들은 노근리 사건의 교훈을 새겨야 할 것이다. 80년 5월의 광주처럼 아무리 감추고 덮으려 해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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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3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 무료 시사회 날이었는데 못갔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것으로 영화를 대신했다. 우리 동네 영화관에선 상영하지 않을 것 같은데...

pjy 2010-03-3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종교가 있는건 아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카인의 후예라는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순오기 2010-04-02 07:23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죠.
때론 산자의 죄의식을 걸머져야 하니까요.

카스피 2010-03-3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서글픈 일이지요.진실은 언젠가는 꼭 드러나는 법입니다 ㅡ.ㅜ

순오기 2010-04-02 07:24   좋아요 0 | URL
진실은 언젠가는 꼭 드러난다는 걸 미련한 인간은 모르는가 봅니다.ㅜㅜ

같은하늘 2010-04-0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기언냐~~ 안녕하셨나요? ^^
오랜만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서글픈 책을 보고 가는군요. ㅜㅜ

순오기 2010-04-02 07:24   좋아요 0 | URL
서글프지만 또 우리가 알아야 할 아픈 역사죠.

blanca 2010-04-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마지막 말 너무 가슴에 와닿아요. 왜 항상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지. 사람 목숨을 초개 같이 아는 인간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4-02 07:25   좋아요 0 | URL
천안함의 베일이 벗겨지면 진실이 드러날까요?
아까운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됐어요.ㅜㅜ
 
무던이 우리들의 작문교실 2
이미륵 지음, 정규화 옮김, 윤문영 그림 / 계수나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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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미륵은 우리말이 아닌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3.1 운동 이후 쫒기듯 독일로 망명했고, 급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50년 독일에서 사망했다.
그는 독일어로 한국의 정서와 풍습을 아름답게 그려내 독일문학의 아름다움을 빛낸 작가로 인정받았다. 한국어로 쓴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안타깝지만, 1940년대 동양의 조그만 나라 한국을 독일에 알린 작가이기도 하다.  

 

무던하게 살라고 이름을 '무던이'라 지었을까? 하지만 부모의 바램과는 다르게 결코 무던하게 살지 못한 무던이의 삶이 짠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이미륵 자전적 이야기로 작품 속에서 무던이가 좋아했던 '우물이'는 바로 이미륵 자신이다. 무던이는 열두 살에 처음 만난 지주의 아들인 세 살 어린 우물이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엄연히 신분이 다름에도 우물이와 혼인하면 좋겠다는 꿈을 꾸는 철부지 딸이 안스러웠을 어머니 수압댁의 마음도 읽힌다. 어른을 위한 동화지만 초등 3~4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동화다. 

어쩌라고 무던이는 첫눈에 우물이에게 반했을까?
당시엔 여자들이 친척이 아닌 남자를 쳐다보거나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내외'하던 시대였는데... 어리지만 친절한 우물이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 무던이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에 보는 내내 긴장했다. 

우물이 작은어머니의 사정으로 하룻밤 무던이 집에서 자게 된 우물이, 무던이는 우물이와 같이 밥도 먹고 곁에서 잠을 잘 수 있어 마냥 좋았다. 그러나 신분이 달라 결코 우물이와 혼인할 수도 없으며, 아직 어린 우물이와 같이 놀러다니거나 말을 나누면 안된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 마음을 거두어 버린 무던이가 짠하다. 무던이의 첫사랑은 그렇게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게 되었다. 

 그러나 둘이 함께 했던 짧은 시간과 대화는 언제나 무던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너 늘 나하고 같이 자지 않을래? 이렇게 같이 누워 있으니깐 참 좋아."
"그래, 참 좋아."
"너는 내가 동이 트는 걸 볼 수 있게 아침마다 일찍 나를 깨워 주어야만 해. 그리고 등잔불도 켜 놓고, 또 다른 사람들이 아침밥 지으러 나가더라고 너만은 내 옆에 있어 줘."



우물이가 멀리 공부하러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무던이는, 어머니 생신에 쓸 고기를 사오는 것도 잊고 돌아왔다. 다시는 우물이를 볼 수 없을 거라며 슬프게 울었다. 무던이는 어머니의 생신에 입을 새치마도 마다하고, 죽은듯이 침묵 속에 잠겼다. 어머니도 속상해서 당신의 생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고 말씀하셨고... 무던이는 그날 밤, 어머니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랑스런 소녀였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내일 아침 일찌감치 가서 고기 사 올게요!"(41쪽)

무던이는 주막집 주모의 중매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바로 윗마을 젊잖은 신씨댁 아들에게로. 그댁에선 얌전한 무던이가 마음에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고 사람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무던이가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 부잣집으로 시집보내게 되어 흡족했다. 무던이는 좋은지 어쩐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환하게 비추는 달빛에도 숨어 버리고 싶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당시의 혼인 풍습을 알 수 있는 묘사와 삽화가 아름답다. 혼인을 앞두고 오고가는 사주와 봉치함,(혼례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청색 홍색의 비단과 혼서를 넣은 함)을 받고, 많은 이들의 축하와 인생선배들의 시집살이 교훈을 들으면서도 무덤덤하다. 어머니도 딸이 시집에 가서 나서지 말고 조심하라며 당부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착한 게 제일이라는 말씀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남편 일봉은 무던이를 아주 좋아했다. 어른들 앞에선 좋아하는 표시를 할 수 없어 밤에 몰래 친정마을에도 데려가고 함께 팔을 끼고 걷기도 했다.



그러나 무던이를 좋아하던 일봉은 한 순간 마음을 닫아 버린다. 어쩌자고 무던이는 신랑에게 우물이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정말 순수한 무던이 마음을 몰라준 일봉이도 야속하고, 그렇다고 집을 떠나버린 일봉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도 야속하다. 아~ 이제 남편이 좋아진 무던이 마음도 몰라주다니.......



일봉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무던이는 어머니의 아들을 다시 찾으라며 조용히 집을 나왔다. 비가 쏟아지던 그 날 밤 비를 맞으며 오래도록 수압댁의 집 댓돌 위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의 모습은 그 후 다시 볼 수 없었고, 혼자 늙어가는 과부 수압댁의 삶에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100년 전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보이는 애잔한 이야기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영혼의 무던이가 견디기엔 힘든 세상이었을 게 분명한 세월. 야무지고 똑똑한 무던이의 삶이 말 한 마디에 끝나버린 어이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일봉이는 좀 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졌으면 무던이의 마음을 온전하게 받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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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3-2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어른들이 지어주신 이름이 요즘 이름보다 더 속 깊은거 같아요. 무던이.. 좋은 이름이네요. 개똥이의 뜻도 참 좋던데. 우물이는 무슨 뜻이 있는 이름일까요?

순오기 2010-03-29 17:39   좋아요 0 | URL
우물이는 글자 그대로 '우물'을 뜻하는 이름일지도...
미륵은 미륵보살께 빌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아명을 미륵이라 했거든요.

섬사이 2010-03-2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수나무 출판사에서 이미륵님의 작품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것 같군요.
계수나무의 그 우직함이 마음에 들어요. ^^

순오기 2010-03-29 17:40   좋아요 0 | URL
계수나무에서 이미륵의 작품이 무던이와 압록강은 흐른다 상.하가 나왔지요.
지금은 보물창고에서 나온 압록강은 흐른다도 있고요.^^

후애(厚愛) 2010-03-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던이> 담아갑니다~ ^^

순오기 2010-03-30 10:56   좋아요 0 | URL
아~ 안타까운 무던이, 마음이 아파요.

희망찬샘 2010-04-04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던이는 좀 별로였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순오기 2010-04-04 12:26   좋아요 0 | URL
무던이의 사랑이 너무 짠하잖아요, 고런 순수함을 질투해서 남편이 버렸으니...
 
<큐엔에이 세계사 서양사 / 놀면서 혼자하는 수학>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놀면서 혼자하는 수학 1 : 집합과 수 - 설명이 자세해서 너무 쉬운 중학수학 놀면서 혼자하는 수학 시리즈 1
이윤경 지음, 최상규 그림 / 글담출판 / 2010년 3월
절판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을 포기하려는 학생들이 혼자서도 충분히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중학수학!"이라는 뒷표지에 마음이 끌린다. 정말 그럴까? 수학을 싫어하는 우리 딸은 혹하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펼쳐보지 않았다.ㅠㅠ

현직 중학교 수학선생님인 필자는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수학을 쉽게 배울 수는 없는지, 자세한 설명으로 혼자서도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고 머리말에 써 놓았다.

1부는 집합과 자연수에 대해 설명한다.
정확한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건 수학 공부에 필수다.
<수학과 친해지기 1.2.3>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쉽게 설명했다.

집합의 해결사라는 벤 다이어그램으로 집합을 설명했다. 벤 다이어그램은 다른 학습에도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라 친숙하다.

개인적으로 요즘 수학은 초등학교 과정부터 너무 어렵다고 생각된다. 수학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쓰이는지 보다는 무조건 문제풀이 위주라서 그걸 배워서 대체 무엇에 쓸지 걱정스럽다.

<수학아, 놀자!>에서는 수학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기초를 가르친다. 재밌는 그림도 책을 보면서 지루하지 않는 요소다.

<이런 문제 헷갈려요!>에서는 학생들이 착가하고 헷갈려 하는 개념과 문제들을 모아 놓았다.

<잠깐~ 쉬어가요> 코너에서는 수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머리를 식혀준다.

2부 수와 연산에서는, 정수와 유리수의 대소 관계와 사칙연산, 실수와 그 계산을 설명해 준다. 미리 머리 아파하지 않으면 읽어보면 어려울 것 없이 재밌게 설명했다.

유리수의 곱셉과 유리수의 나눗셈, 혼합계산 등 부호가 나오면 어렵게 생각되는 수학 겁쟁이들을 위한 <잠깐~ 쉬어가요>에 북한의 수학용어에 대해 삽화로 소개했다.
북한에서는 뺄셈을 덜기, 집합은 모임, 등식은 같기식, 정사각형은 마른사각형,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세평방정리, 배수는 곱절수, 교환법칙은 바꿈법칙 등으로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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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3-29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조카가 수학에 약합니다. 수학 때문에 학원에 보내 달라고 2년동안 조르던 조카였어요. 어제 통화를 했는데 수학학원에 2월달부터 다녔답니다.
그러면서 수학에 조금씩 늘고 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전 수학 정말 싫어했는데..ㅎㅎㅎ

순오기 2010-03-29 13:26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도 다 수학에 약해요. 싫어하는 과목이라 잘 안하니까 잘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수학 싫어한 엄마 죄라 생각하며 삽니다.ㅋㅋ
아무래도 학원수강을 하면 이해도 쉽고 문제풀이도 많이 하니까 좋을 거 같아요.

2010-03-29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3-29 13:26   좋아요 0 | URL
어머~ 무슨 책일지 기대되네요. 고맙습니다~ 잘 읽고 리뷰 올릴게요.^^
 
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꽃 한국사 인물 동화 1
한국역사논술연구회 지음, 류탁희 그림 / 동네스케치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독서회 3월 토론도서가 소설 덕혜옹주인데, 동화로 나온 덕혜옹주 표지가 마음에 끌려 같이 구입했다. 초등생들이 덕혜옹주의 삶을 따라 근현대사를 알아가는 데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옥의 티, 18쪽에 덕혜옹주의 탄생을 1925년이라고 잘못 적었다. 25쪽에는 "1912년 5월 25일, 가장 귀한 신분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가 세상에 태어났다."고 적었지만... 
  

덕혜의 삶을 통해 힘없는 조선 왕실이 스러져 가는 과정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가치가 있다. 오류를 신고하느라 토욜 출판사에 전화했더니, 편집자는 없고 잘못된 건 이미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아이들이 읽는 역사동화에 중대한 오류가 있으면 바로잡아 내보내야지 그냥 판매하면 어쩌란 말이냐? 2010년 2월 26일 초판이구만... 책임있는 답변을 듣고 싶어 월요일 담당자의 전화통화를 요청한다고 연락처를 남겼다.   

고종은 정비인 명성황후를 비롯한 여덟 명의 부인에게 9남 4녀를 두었지만, 성장한 자식은 순종과 의친왕 이강, 영친왕 이은과 덕혜옹주 뿐이었다. 딸 셋은 모두 일 년이 되기 전에 죽었다. 명성황후를 잃고 마음 붙일 곳 없던 고종이 환갑에 얻은 딸은, 정비가 아닌 후궁에게 났으므로 공주가 아닌 '옹주'다. 고종은 크게 기뻐하며 덕혜의 생모를 양귀인으로 봉하고 복녕당이란 당호를 내렸다. 고종을 쏙 빼닯았다는 덕수궁의 꽃이었던 덕혜가 다섯 살이던 1916년 4월 1일 덕수궁 함녕전의 별당인 즉조당에 신식 유치원을 만들었다. 고종은 덕혜의 재롱을 보며 지냈지만, 주권을 상실하고 왕위도 넘겨 아무 힘이 없었다. 일본은 조선의 왕실이 늘어나는 것을 꺼려 덕혜는 왕족에도 오르지 못했고, 이름조차 없어 '아지(이름 짓기 전 아기를 부르는 이름)'라 불렸다. 




조선 왕실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기관인 이왕직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간섭했다. 고종은 아들 이은을 일본의 볼모로 보내고 일본인 며느리를 맞는 치욕을 겪으며, 덕혜만은 꼭 지켜내리라 다짐했다. 고종은 사가에 나가 사는 다섯 째 아들 이강을 은밀히 찾아 독립세력과 줄을 잇고 지시했다. 왕실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한 이강은 고종과 엄귀인 사이에 얻은 아들이다. 고종은 덕혜를 일본에 뺏기지 않으려고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을 부마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일본은 김황진을 유배보내 궁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고, 고종마저 1919년 1월 21일 갑작스레 승하했다.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에 이어 2대 총독이 된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고종의 국장에 맞춘 3.1 만세를 부른 조선 백성을 총칼로 제압했다. 헌병을 경찰로 바꾸며 문화정치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일본 병력을 더 늘렸다. 덕혜보다 서른 여덟 살이 많은 순종은 어버이 같은 마음으로 돌봤지만, 이미 기울어진 조선은 덕혜를 지키지 못했다. 1921년 5월 4일, 일본 소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름을 얻고 공식적으로 '덕혜옹주'라고 불렸지만, 1925년 3월 28일 기모노를 입은 열세 살의 덕혜는 일본으로 떠나야만 했다.  

아버지 고종을 여의고 울지 않고 강해지리라 마음 먹었던 덕혜는, 더 강하고 단단해져 저들의 의도대로 살지 않으며, 조선황실의 옹주로 살아남으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일년 뒤 덕혜는 순종이 위독해서 돌아왔지만, 1926년 4월 25일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조선 백성의 마음이 덕혜에게 쏠릴 것을 염려한 일본은 순종의 장례도 참예치 못하게 일본으로 내몰았다. 일본으로 간 덕혜는 달라졌다. 독살당할까 두려워 보온병에 마실 물을 가지고 다녔고, 동무들이 주는 음식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이은 부부는 극진히 돌봤으나 덕혜는 점점 생기를 잃어 갔다.   

1929년 5월 30일, 생모인 양귀인의 죽음으로 조선에 왔으나 장례식 이틀 후인 6월 7일, 다시 일본으로 가야 했다. 덕혜는 여학교에서 처음으로 동무가 된 유카키의 "임금의 딸이라면 나라를 빼앗겼는데 왜 싸우지 않아? 앞장서서 싸워야 되는 거 아닌가?" 라는 물음에 충격을 받았다. 둘이 나눈 말이 새어나가 학교는 유카키를 전학 보냈고, 덕혜는 아무도 믿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상처를 안고 살던 덕혜는 조발성 치매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이은 부부는 가엾은 덕혜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안정을 찾게 해주고 싶었지만, 일본은 1930년 10월 소 다케유키와 덕혜의 결혼을 정해버렸다. 

1931년 5월, 덕혜의 나이 만 열아홉에 일본식으로 혼인을 했고, 옹주가 백작부인이 되자 조선 백성들은 덕혜를 잊었다. 아니 어쩌면 배신감에 애써 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덕혜는 조선과 일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자유를 느끼며 잠시 행복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1932년 8월 14일 딸 마사에를 낳았지만 정신분열증의 아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쟁에 나갔던 남편은 일년 삼개월만에 돌아왔지만, 패망한 일본은 귀족의 신분제를 폐지하고 지원금을 끊어버려 그들의 살림도 피폐해졌다. 딸 마사에는 조선의 피가 흐르는 것을 끔찍히 여기며 자꾸 엇나갔다고, 상처 입은 덕혜는 입을 닫았다. 이은 부부는 덕혜를 해방된 조선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1946년 일본의 공립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새로 생긴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인 남자와 혼인한 덕혜를 외면했고, 이조가문에서는 조선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제명처리해 한동안 어머니 성을 따라 양덕혜가 되어야 했다. 정신병원에 들어간지 10년, 이은 부부는 덕혜의 병이 더 이상 호전되지 않자 다케유키와의 25년 결혼을 끝냈다. 다케유키는 조선 황실에서 보낸 혼례물품을 모두 돌려보냈고, 이은 부부는 덕혜의 혼례물품들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1956년 1월 분카여자대학의 복식박물관에 기증했다. 덕혜의 이혼으로 다케유키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나쁘지 않은 남편이었던 거 같다. 덕혜의 딸 마사에는 1955년 스물 세 살에 결혼했으나 1957년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덕혜옹주의 불행한 삶은 그 딸에게도 치명적인 불행이었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김을한은 덕혜와 혼인하기로 했던 김장한의 형으로, 덕혜를 조선으로 데려오기 위해 애썼다. 이승만이 물러나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은과 덕혜의 귀국에 우호적이었다. 드디어 1962년 마흔아홉의 덕혜는, 꽃다운 열세 살에 일본으로 끌려 간지 36년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혼자는 걷지도 못하는 덕혜를 마중 나온, 덕혜가 태어나면서부터 돌봤던 유모 변복동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유... 유... 모....... 나, 왔어....  나... 조.... 선.... 에.... 왔.... 어." 




덕혜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살아보겠다는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병은 호전되었다. 덕혜는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와 함께 살았다. 1970년 오라버니 이은의 죽음을 알렸지만 덕혜의 정신은 가물거렸다. 덕혜의 곁을 지키던 유모도 세상을 떠났고 주변이 쓸쓸했지만,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덕혜는 홀로 조선말로 글자를 썼다.  

전하 비전하 보고 싶어요. 나는 조선이 좋아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대한민국 우리나라 

1989년 4월 21일,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삶은 막을 내렸다. 내가 24시간의 진통을 겪으며 첫딸을 낳은 바로 다음 날이었으니, 불과 21년 전이다. 비운의 조선 역사와 함께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덕혜옹주는 시대를 잘못 만난 희생제물이었다. 그녀의 운명이 안타까워서 너무나 가슴 아팠다. 정신병원으로 덕혜를 찾아간 김을한, 조선땅을 밟은 덕혜를 마중한 유모 변복동, 그들이 옹주의 참혹한 모습에 오열할 때 나도 하염없이 울었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억하기 위해 꼼꼼히 정리했다. 이젠 편안히 잠들었을지라도 힘없는 조선의 옹주로 슬프게 살다 간 덕혜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자!  

*리뷰에 첨부한 삽화 이미지는 본 책에 실린 거지만, 덕혜옹주와 유모를 찍은 사진이나 덕혜의 글씨는 KBS에서 방영했던 역사다큐멘터리 '한국사전'을 출판한 한겨레출판 '한국사전'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한국사전을 같이 보면 보다 정확한 역사자료와 관계 사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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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으로 만나는 덕혜옹주와 만덕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3-21 16:16 
    후애님 페이퍼에서 이 책을 보곤, 울듯한 애잔한 옹주가 눈에 밟혔고, 연두 저고리와 분홍 치마도 아프게 내 마음에 감겨 들었다. 스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비운의 덕혜옹주를 잊고 있었다는 자책에 더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었던 덕혜, 아버지 고종과 어머니 양귀인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마지막 보루였던 서른여덟 살 위인 어버이 같은
  2. 비운의 덕혜옹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3-29 17:57 
    이 책을 어머니독서회 3월 토론도서로 정한 것은 작가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황녀로서의 귀한 삶을 살지 못했던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흔적도 없이 잊혀져버린 그 삶이 너무 아파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책은 국내에 단 한 권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일본 번역서로 말이죠. 덕혜옹주 집필은 사명감이고 자존심이기
 
 
세실 2010-03-21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읽고 있으니 눈물이 납니다.
님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잘 기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해야죠..
다행히 최근소설이 책읽는 청주 선정도서가 되었습니다. 소설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렇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 듭니다.

순오기 2010-03-21 12:52   좋아요 0 | URL
슬픈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옹주를 기억해주자고요.

blanca 2010-03-2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덕혜옹주 소설은 어떤가요? 사서 읽을만 한지요? 저 한국사전 보고 완전 펑펑 울었잖아요. 노인이 되어 쪼그라든 덕혜옹주 앞에서 유모가 큰 절 올리는 장면 보고 정말 통곡했었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넘기지 않고 몸소 지적하여 고치는 순오기님 모습을 저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순오기 2010-03-21 16:58   좋아요 0 | URL
소설은 아직 못 읽었어요. 회원이 빌려가서 화욜에 가져오면 그때부터 읽어야지요. 저도 한국사전 보면서 펑펑 울었는데 동화책을 보면서도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어요. 정말 비운의 덕혜옹주를 우리가 기억해줘야지요.
제가 좀 오지랍이 넓어요.ㅋㅋ

마노아 2010-03-2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보고도 너무 슬퍼요. 한국사전에서도 얼마나 가엾던지요. 예전에 단막극으로 했던 드라마도 엄청 슬펐어요. 비운의 역사예요.ㅜ.ㅜ

순오기 2010-03-22 18:58   좋아요 0 | URL
덕혜옹주의 삶 자체가 우리의 슬픈 역사에요.ㅜㅜ
한국사전 마노아님도 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