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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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병이 생기면, 그것은 나를 지배하는 주체이며 일부가 된다. 어쩌면 전체가 되기도 한다. 그 병을 치료하고자 병원에 가면, 그것은 객체이자 대상화가 된다. 이때부터 병은 나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불편하고 외로움을 주는 것이 된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p11(들어가는 말 중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문장은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말일 것이다. 대상화된 병엔 개인의 서사가 빠져있기 일쑤이며, 그것은 오로지 수치로만 판단되기 쉽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은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병과 환자를 대하는 생각 그 자체이다. 저자가 신경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더 그렇겠지만, 병리적 기술뿐 아니라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한다. 본문을 읽기 전에 들어가는 글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에 많이 공감했다.

 

이 책은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신경 기능의 장애나 불능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에 실린 기묘한 이야기들은 보통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세계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제목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어떤 상징인 줄 알았다. 설마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다니? 그러나 진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있었고 그 사람은 자신의 질서를 가지고 나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나의 육체를 제어할 수 없다면 그건 엄청난 불행이다. 우리는 아무도 우리 몸의 제육감의 기능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저절로 내 육체가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또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다 아주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는다.-p86

 

하루 아침에 몸의 고유감각을 잃은 크리스티너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난 마음이 너무 먹먹해져 며칠 동안 우울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어떤 사람은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존재의 무거움을 준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증세들은 사실 별다른 이유없이 생기는 것들이라 더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우리 몸의 어떤 기능의 상실이나 결손으로 인한 병도 힘들지만 과잉으로 생기는 증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투렛 증후군이나 흥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많아 활기차고 힘이 넘치는 듯 보이지만 그것 역시 고통이다.

 

위험하리만치 좋은 몸 상태병적인 특출함’, 그것은 기만적인 행복감이다. 그 밑에는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것은 과잉이 놓은 무시무시한 함정이다.........자아가 병과 제휴를 맺고 한 몸이 되어 결국에는 독립된 존재이기를 포기하고 병의 산물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p161

 

쇼스타코비치의 비밀이란 것이 있다. 그의 왼쪽 내실 관자 뿔 부분에 금속 파편인 탄환 부스러기가 있는데, 그것이 머릿속을 선율로 가득차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그는 그것을 제거하기 꺼려했다고 한다. 간질 증세가 있었던 도스토옙스키도 환영으로 인해 황홀감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자주 경험했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병적인 생리적인 현상이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받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병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창작의 원천이 될 수도 있으니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순함의 세계로 표현된 지적 장애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올리버 색스는 조금 모자란 이들의 세계의 특징을 구체성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 있고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통해 복잡해진 것도, 희박해진 것도, 통일된 것도 없다......신경학자들은 구체성, 구체적인 사상을 열등하고, 고려할 가치가 없고, 통일성이 결여되었고, 퇴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그러나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이야말로 기본이다. 현실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것으로, 개인적이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체성이다. 만일 이 구체성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p291

 

저자는 그들의 결함보다 능력을 찾아내야 한다고 한다.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에게 창조적인 지성이 있기 때문이고 그 지성을 소중하게 키워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지인 중에 아들이 자폐아인 분이 있다. 그 아들은 30살이 넘었다. 그 분은 아들이 어렸을 때, 자폐 판정을 받고 난 후, 아들의 지능과 사회성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 씩 이름난 교육 센터를 다니고, 병원을 오갔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 분은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들은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일 뿐이라고 하셨다. 나의 지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무엇이라 말할지는 모르겠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는 분들 역시 올리버 색스의 주장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인 나, 언제 내 몸에 병이 들지 모르는 나약한 육체를 가진 나는 이 책으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 혹시라도 병에 걸리면 난 올리버 색스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

 

몇 년 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었을 때, 그 기묘한 이야기들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한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번에 다시 읽은 이 책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그동안 난 나이를 먹었고, 늙음에 더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신경학적인 많은 전문용어들이 나오고 병에 대한 메커니즘적 설명도 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문장이 그만큼 뛰어나다. 인문학적이며 철학적인 접근도 돋보인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올리버 색스라는 인간에도 관심이 간다. .

 

겉보기에는 건강하지만 사실은 병에 걸린 상태라면 그것은 하나의 패러독스다......특히 예술을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매료되어 왔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적이면서도 비너스적이고, 동시에 파우스트적인 소재이다. 또한 토마스 만의 소설에 되풀이해서 나오는 소재이기도 하다.-159

 

이 문장은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인 온 더 무브를 읽을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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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9 22: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 병력을 하나의 서사로 만든다는것, 병리적 기술보다 환자를 인간 자체로 중요시하는게 환자에게 있어서 큰 위안이 될 것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정신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시는 의료인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합니다~!

페넬로페 2021-04-19 23:50   좋아요 3 | URL
병력을 하나의 서사로 보고, 인간 자체를 들여다보는게 참 위로가 되고 따뜻했어요.그래서 이 책이 너무 좋았어요^^

mini74 2021-04-19 22: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의 글엔 환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랑 관심이 깊이 담겨 있어 참 좋았어요 페널로페님 리뷰 참 좋아요 *^^*
저는 색맹의 섬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책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고 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셨는데 올리버만 외치고 말았다는 아이들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 편한 밤 보내세요 *^^*

페넬로페 2021-04-19 23:52   좋아요 4 | URL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이란 책도 있군요. 전 잘 몰랐어요. 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저자의 이름에 대해선 저도 ㅎㅎ. 글 쓰며 철자법이 맞는지 계속 확인했어요~~

미미 2021-04-19 22: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 팟케스트에서 이 소설 일부를 듣고 올리버 색스 작가님 책 다 읽고 싶었어요. 페넬로페님 리뷰 읽고나니 다음 책 구매때 얼른 사야겠습니다. 아 이곳은 장서가 양성소인건가요?
🙄🥲굿밤되세요~♡

페넬로페 2021-04-19 23:54   좋아요 3 | URL
안그래도 미미님 읽을 책 쌓여 있을텐데 책 추가시켜 드렸네요. 그래도 이 책 읽으시면 좋겠어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달라지거든요^^

scott 2021-04-20 0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엉클 텅스텐]이라는 자전적 성장 이야기 읽고 색스 박사에 홀딱 빠졌어요.

페넬로페님이 올려주신 이책을 토대로 이와 관련된 질병을 다룬 영화들이 꽤 만들어졌는데
혹시 페넬로페님 시간 나실때면 보삼 333
[카드로 만든집-엘리펀트 맨-셔터 아일랜드-지상의 별처럼]

페넬로페님이 다음번에 읽으실 ‘온 더 무브’‘ 이책 번역자 김명남!
믿고 보는 번역가 ^ㅎ^

페넬로페 2021-04-20 08:41   좋아요 1 | URL
와, 영화로도 이렇게 많이 만들어졌군요. 꼭 봐야겠어요.
감사해요^^


라로 2021-04-20 01: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든 것은 그자리에> 읽고 흠뻑 빠졌어요!! 이 책도 당근 넘 좋구요!!!

페넬로페 2021-04-20 08:46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은 그 자리에‘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미미님 말씀처럼 여기 북플은 장서가 양성소~~
감사해요^^

han22598 2021-04-21 0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어디서 읽은 구절인데, 인생은 생(1)과 죽음(0)처럼 이분법적이지 않고, 그 사이에 무한의 간격이 존재한 다는거. 인간의 몸이란 어떠한 전문적인 지식과 소견으로 질병이 있다와 없다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닌 무병과 질병의 무한대의 간격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몸,삶이지 않을까요? 올리브 색스는 그 간격을 좀더 치밀하고 촘촘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1-04-21 08:43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런것 같아요~~생과 죽음, 무병과 질병의 ‘무한의 간격 ‘이 삶을 이루고 존재의 깊이가 되죠. han님의 말씀을 듣고 올리버 색스에 더 관심이 가요^^

2021-04-27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7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8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5-07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페이퍼+리뷰 2관왕!!
축하해요 ^ㅎ^

페넬로페 2021-05-07 18:33   좋아요 2 | URL
에휴, 감사해요♡♡

새파랑 2021-05-07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페넬로페님 2관왕 축히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5-07 18:3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5-07 17: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5-07 18:34   좋아요 3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용♡♡♡

미미 2021-05-08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2관왕 축하드려요!!^0^♥

페넬로페 2021-05-08 11:35   좋아요 2 | URL
진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초딩 2021-05-08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ㅜㅜ 넘 읽고 싶은데, 불을 제대로 질러 주십니다 ㅎㅎㅎㅎ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5-08 19:4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읽고 인간의 육체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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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가 있다. 내가 읽은 책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중의 한 명은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작가라면 그 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그 이름만 듣고 슈테판 츠바이크를 흠모해 왔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셈이다.

 

이 책을 3분의 2 정도 읽었을 때, 책의 내용과 제목이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 작가들이 거의 그렇듯이 슈테판 츠바이크도 많은 비유와 고전의 인용으로 이루어진 격정적인 문장으로 인물의 감정과 내면을 서술한다. 그러나 롤란트(이 책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이름이다), 교수, 교수의 부인과의 얽힌 관계가 시작되자 혼란스러운 감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욕망에 대한 것도 생각하게 했다. 육체의 욕망이란 감정의 산물인지, 아님 욕망으로 인해 복잡한 감정이 생기는지 결정하기 어렵지만 서로 깊은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감정의 혼란60살이 된 주인공 롤란트의 회고로 시작된다. 베를린에서의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공부하러 간 롤란트는, 영어영문학 첫 수업에서 자신의 인생에 거의 전부일 정도로 영향을 끼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의 부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선생님은 그에게 강렬한 지성의 세계를 열어주었다면 그 아내는 건강한 신체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미묘한 관계에 있는 선생과 그 부인은 롤란트를 육체의 대상으로 보며, 서로에게서 롤란트가 벗어나기를 원한다.

 

사상이나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 욕망의 발산 역시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성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며 방황하는 교수의 삶은 지극히 불행하다. 그 아내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결정되는 운명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한 번씩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 감동하기도 한다. 롤란트가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의 영어영문학 첫수업에서 들은 강의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것이다. 작년에 집중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그의 작품이 훌륭한 것은 알지만 온전히 빠질 수는 없었다. 아마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바로 나에게 전달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의 작품이 인간의 원형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감정의 혼란을 읽으며 롤란트가 첫수업에서 들은 강의의 감동을 나도 고스란히 받았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에 열광하는 이유를 잘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는 기쁨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수가 롤란트에게 한 키스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은 그의 격정적인 문체와 함께 나를 소설 속으로 끌어당기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 끝까지 한마디로 정리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자 읽는 소설의 목적은 달성된 것 같다. 다음엔 평전으로 유명한 그의 문장을 읽어야겠다

 

그때까지 나는 그 사람 이외에 그토록 감격에 빠져 진실하게 마음을 끌며 강의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라틴어로 ‘랍투스(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황홀한 심리적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부르는 것, 즉 한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이끌려가는 상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 P38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인 동시에 모든 세대의 정신적 진술이자, 열정적으로 변모한 시대의 감각적인 표현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잉글핸드의 그 위대했던 시간을 단 한 번뿐이었던 황홀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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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5 0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책 마지막 부분에 츠바이크 유서도 들어 있나요??그렇다면 더더욱 결말이 슬퍼지네요 ㅜ.ㅜ 츠바이크는 평전! 평전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

coolcat329 2021-04-05 09:03   좋아요 4 | URL
정말 정말 동감입니다!

페넬로페 2021-04-05 10:50   좋아요 3 | URL
네.유서가 있더라구요~~
집의 책장 보니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세 권이나 있네요^^그의 평전을 빨리 읽어야겠어요**

미미 2021-04-05 0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페넬로페님~♡ 읽으셨군요!!
저 자려고 누워서 북플 들어왔다가 이 리뷰읽고 또 소름요! 셰익스피어에 관련된 표현들 저도 다 밑줄쳤어요ㅋㅋ
리뷰 볼때마다 계속 감동이 살아납니당ㅋㅋ!

페넬로페 2021-04-05 10:53   좋아요 2 | URL
미미님 덕분에 이 책 읽게 되었어요. 생각은 많은데 글로 쓰기가 너무 어렵네요 ㅠㅠ
결국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은 셈인데 참 좋았어요^^

새파랑 2021-04-05 0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감정의 혼란을 준 책인데 ㅋ 전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이번주에 목표로 준비중입니다 ㅎㅎ 페네로페님의 리뷰 마지막 부분의 소설을 읽는 목적에 완전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04-05 10:56   좋아요 3 | URL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목처럼 감정의 혼란을 느꼈는데 결말은 예상한대로 흐르더라고요^^

바람돌이 2021-04-05 0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려고 누워서 잠시 마지막으로 댓글보다가 이 글을 보네요. 세익스피어 강의 저도 참 강렬하던데 문제는 제가 새익스피어에 도저히 공감이 안간다는... 원어로 읽으면 다르겠지만 그건 저의 능력밖이니.... ㅠㅠ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소설읽기에 저도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04-05 10:59   좋아요 3 | URL
정말 그렇죠! 저도 셰익스피어를 어렵게 읽었어요. 영어 전공한 분 도 그의 작품에 고어가 많아 읽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구요~~그냥 스토리와 느낌을 따라갈수밖에요^^

coolcat329 2021-04-05 09: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많이들 읽으시네요~^^

페넬로페 2021-04-05 11:01   좋아요 4 | URL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다른 책에 계속 밀렸는데 미미님 리뷰보고 그냥 시작했어요 ㅎㅎ~~그의 다른 책도 읽어보려 해요^^
 
시간
홋타 요시에 지음, 박현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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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타 요시에시간은 일본인 작가가 난징 대학살을 소재로 1955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그 정도로만 알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글의 첫부분에 등장한 화자가 중국인이어서 의아했다. 난 당연히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일본인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 책표지로 넘어가 작가를 확인했다. 역시나 작가는 일본인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시기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본인 작가가 글을 썼다는 것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했다. 이 책의 끝부분에 실린 헨미 요의 해설에서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열리던 1940년대 후반의 시대 상황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학을 집필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한다. 오히려 1990년대에 들어서 일본은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내외 반일 세력의 음모라고까지 주장하는 세력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어느정도 납득이 되었다. 시대의 상황이 자유로웠다고 해서 작가의 의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작가의 국적을 떠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이 소설은 뛰어나다.

 

시간(時間)19371130일에서 1938103일까지, 중국 지식인인 천앙디의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 소설이다. 일본군이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으로 점점 전진해올 때 정부와 유력 인사들은 한커우로 떠나고 나, 천앙디는 비밀리에 난징의 동향을 알려야하는 임무를 맡고 난징에 남는다. 임신 9개월의 만삭인 아내, 5살된 아들 잉우, 일본군을 피해 난징으로 들어온 사촌 여동생 양양과 함께 였다. 1937,1213, 마침내 일본군이 난징으로 입성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살인, 방화, 강간, 약탈이 시작된다.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 이 소설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 사실적이고 연속적인 사건과 더불어 사람의 심리와 배경, 생각을 잘 묘사했다. ‘일기라는 연대기적인 형식에 바탕을 두면서도 시간의 흐름보다 순간적인 느낌과 감상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은 빨리 읽히지 않았다. 한 페이지마다 멈춰 화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상황과 마음을 함께 느껴야했다.

 

일본군이 입성하기 전의 상황을 나타낸 이 소설의 초반부에서 일기는 6개월을 훌쩍 넘어 다시 서술된다. 가족들의 생사를 모른 채 천앙디는 기리노라는 일본군 중위의 집사로-노예로-일하며, 집의 지하실에 설치된 무전기로 비밀 요원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 시점에서 지난 6개월을 회상하며, 동시에 시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예상했던대로 아내와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사촌 동생 양양은 매독에 걸렸으며 아편중독자가 되었고, 그 사이에 임신을 했으며, 아이를 지웠다는 사실도 안다. 6개월 동안에 그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일본의 폭력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능욕하며, 그것도 모자라 아편이나 헤로인까지 유통시켜 피폐하게 만든다.

 

양양은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접어 코를 풀었다. 얇은 종이에는 피가 묻어 나왔다....

정말로 고독하고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병든 나무, 그렇게 보였다. 불쌍하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눈은 가뭄에 드러난 호수 바닥처럼 말라 있었다.-p223

 

어수선한 시국엔 꼭 부정적인 예언자가 나타난다. 그들은 우리가 나약하고 허둥지둥 우왕좌왕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고 말한다.

 

이 논리를 따르자면 일본군의 폭력을 야기한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숙명론자가 민중 속에서 끊이지 않고 생겨나는 이상, 전쟁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 어떤 평화도 결코 평화가 아니다.-p109

 

부정적인 예언자는 이 시대에도 존재해 일본군 위안부를 만든 것은 우리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자살시도까지 한 양양은 결국 자신이 처음 강간당한 진링 대학의 병원으로 가 치료받기로 한다. 괜찮아지기 위해 도망가지 않고 그 현장으로 돌아가 뿌리를 움직이겠다고 한다. 작가는 전쟁에서 가장 고통받는 여자, 양양을 통해 치유와 희망을 얘기한다.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 투쟁의 첫걸음인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중국은 일본이 떠난 그 다음도 녹록지 않다. 정부냐 공산당이냐의 선택이 그들에게 남아있다.

 

홋타 요시에의 시간은 길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거의 모든 페이지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으며, 작가가 묘사한 순간의 배경과 에피소드에 감탄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의 확장(가령 중국인들은? 무수한 그들의 역사는 죽음으로 점철되었고, 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떠했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태평 천국의 난을 운운한 그 일본인 중위와 내가 뭐가 다를까?)을 애써 막으며 그냥 소설로서 이 책을 읽었다. 중일 전쟁중의 난징에만 집중해 그곳에서의 사람들의 죽음과 치유, 희망을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겪는 시간의 한복판에 있다. 그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그 시간은 존재한다.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하지만 얼마나 무의미한 말인가. 숫자는 관념을 지워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람이 이만큼이나 죽어야만 하는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 목적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죽은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죽을 사람은, 수만 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것이다.-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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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30 17: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홋타 요시 작가가 학살에 대현장에 목소리를 담은 책이네요 난징 그리고 미얀마,, 끊임없이 반복되는 끔찍한 죽음 앞에 침묵하고 있는 대다수의 우리들 [ 우리는 누구나 내가 겪는 시간의 한복판에 있다. 그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그 시간은 존재한다.]페넬로페님에 이 구절에 깊이 공감합니다. 코로나로 전세계가 이동의 제한이 되는 시기에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무고한 죽음을 맞게 되는지,,, 페넬로페님 리뷰 읽으며 죽음-치유- 희망,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

페넬로페 2021-03-30 20:35   좋아요 3 | URL
이 책 읽으며 난징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전쟁과 죽음을 생각했어요. 어디 난징만 그렇게 아수라장이었을까요?
지금 현재도 여전히 학살이 자행되니 세상은 그다지도 변하지 않는건지 허탈해져요^^

미미 2021-03-30 18: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꼭 읽어볼래요♡ 제가 모르는 부분이 참 많다는 걸 또 느낍니다. 빨리 읽기
힘든 책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표지도 인상적이예요! 머리 맞죠?😳

페넬로페 2021-03-30 20:37   좋아요 3 | URL
문장이 일기형식이라 굉장히 관념적이예요.그것을 하나하나 생각해야하기에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것 같아요. 표지의 그림이 굉장히 여러 모양으로 보이는데 머리 맞는것 같아요^^

새파랑 2021-03-30 1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라니~리뷰 보니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페넬로페 2021-03-30 20:38   좋아요 3 | URL
저는 좋게 읽었는데 새파랑님도 이 책에 대해 좋은 감동 받으시면 좋겠어요^^

감은빛 2021-03-30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일본인이 중국인 화자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라니!
정말 독특학 작품이네요.
덕분에 또 새로운 작가와 책을 알아가네요.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1-03-31 00:3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생각해보니 감은빛님께서 한번씩 올려주시는 일기같은 글과 홋타 요시에의 문장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삭매냐 2021-03-31 15: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의 뒷부분 갈수록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홋타 요시에 작가의 책들이 좀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페넬로페 2021-03-31 17:54   좋아요 1 | URL
네, 이 책 읽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 역시 이 작가의 다른책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보려고요**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임지호 지음 / 궁편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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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읽었던 책인 심복의 부생육기(浮生六記)’에는, 사랑이란 애지욕기생(愛之慾基生)’,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사랑이란 단어의 해석은 다양하지만, 난 그때부터 이 애지욕기생말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

이 고귀하고 눈물겨운 말은 나를 숙연하게하며, 내 몸과 마음을 사랑으로 이끈다. 사람을 살게 하는 방법과 종류는 각자 다를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며 살고 있다.

 

셰프 임지호가 사랑을 행하는 방식은 당연히 요리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건강하게 살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이는 것이다. 요리를 하며 두런두런 그들의 사연도 들어주고 위로도 해준다.

 

임지호의 밥-땅으로부터임지호가 만든 요리책답게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뿌리, , 꽃이 요리의 재료가 된다.

비트, 알토란, 나문재, 청보리순, 원추리, 부지깽이, 개망초, 사자발쑥, 함초, 엉겅퀴, 명아주, 진달래, 송화, 괭이밥, 작약, 아까시나무 꽃, 꽃 양귀비, 찔레꽃.....

이런 재료들로 카나페, 차 샐러드, 국수, 떡을 만든다. 그저 보기만해도 건강함이 느껴진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평생을 방랑 식객으로 산 그의 열정과 노력이 이 요리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쁜 현대인들은 이런 재료들로 요리를 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이 요리책에 소개된 요리중 할 수 있는게 몇 가지 밖에 안된다. 하지만 임지호 셰프가 추구하는 것을 잘 알기에 이 책에 들어있는 그의 요리를 예술 작품이라 이해했다. 그가 하는 요리 스케치와 장식 또한 예술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태어나 요리로써 삶을 노래했다. 때에 맞춰 변화하는 자연, 그 순환의 법칙 속에서 지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땅의 생명들에 언제나 도움을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자연의 진솔한 흔적이 녹아든 음식은 땅에 발붙인 또 다른 생명, 사람을 살리기에.

너와 내가 아닌 나와 나 밖의 내가 존재할 뿐인 세상에서, 살아있음에 대한 찬사와 같은 한 끼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다.-p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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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9 1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분이 운영하는 식당에 아주 아주 오래전에 가족들 하고 갔었는데
메뉴판에 음식은 없고 그날 그날 계절별로 메뉴가 짜여져 있었어요.
저희 가족이 간날은 유채꽃 밥상이였는데
유채 기름으로 볶은 나물과 산채 요리
00지역에서 몇월 몇일에 수확한 돌솥밭
산더덕을 넣어 끓인 수프 키조개 껍질 위에 야생 두릅, 달래, 제주도 유채꽃
요렇게 먹었던 기억이 ㅋㅋ

계절의 한부분을 감상하며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강한 밥상이였네요. ^.^

페넬로페 2021-03-09 17:53   좋아요 2 | URL
요즘은 강화도에서 ‘산당‘ 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하시더라구요~~
기회되면 꼭 한번 가보려고 해요^^
제가 임지호셰프 팬이거든요.
맛은 좀 심심할듯 한데 그래도 꼭 먹어보고 싶어요**
 
라이프 트렌드 2021 : Fight or Flight
김용섭 지음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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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항상 변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어느 정도의 예상도 한다. 물론 그 예상이 빗나가기도 하고, 어떤 변수에 의해 번복되기도 하지만, 2020년 한 해는 특히 우리에게 급변의 상황을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닥친 위기에 당황하고, 그 대처방안에 우왕좌왕했지만, 사실 이것이 오래전부터 경고되어 왔던 것의 결과물일지도 몰라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해가 바뀌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벼랑에 몰린 우리는 스스로 살아 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누군가를 믿고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절박하다.

 

대개의 계획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는 흐름에 기초하는데, 2021년을 앞두고는 계획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가 유독 많다. 우리가 살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 팬데믹이 초래한 사회적 격리와 봉쇄 속에서, 일상의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2020년을 살았기 때문이다.-p4

 

라이프 트렌드 2021에도 팬데믹이 그 중심에 있다. 저자는 2021년을 관통할 트렌드 코드로 ‘Fight or Flight(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를 제시한다. 상황이 급변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난무한 이 때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거나, 과감히 회피하여 도망가라고 한다. 여기서의 회피는 비겁하거나 무능한 것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이다.

또한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First), 뉴 프레퍼(New Prepper), 팬데믹 세대(Pandemic Generation), 욜리(YOLY), 피시(FISH), 로컬(Local), 메타버스(Metaverse)등의 단어를 제시하며 올해의 트렌드를 예상한다.

 

위기는 이미 누구에게나 다가왔고, 과거에 구축한 사회 체계와 관점으로는 풀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이지만 오히려 거대담론을 논의하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에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절체절명의 화두이다. 복지에 대한 방향, 기본 소득, 인구 절벽에 대한 대처 방안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담론으로 본다.

 

미국 캔자스주에 있는 서바이벌 콘도(Survival Condo)는 아주 비싼 호화 벙커다. 1960년대 초에 건설된 이곳은 원래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보관하던 지하 격납고였다. 이를 부동산 개발업자가 매입해서 부자들을 위한 피난처로 개조해 2012년에 분양했는데 100평 규모의 아파트가 450만 달러였지만 분양하자마자 다 팔렸다-p93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부자들은 위기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살아남을 수 있다. 비대면 경제시대에 가진 자가 훨씬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경제적 격차는 더 가속화되고 설국열차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그 원인을 찾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나로서는 역부족이지만 어쨌든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논의는 분명 있어야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각종 공해와 쓰레기가 이러한 팬데믹을 가져왔지만, 우리는 지금 살기 위해 일회용품을 무한정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의 의미를 새기고, 공존을 위한 삶은 필수이다.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그것에 관련된 책이 쏟아져나오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야하며 그것은 무척 어렵다. 다만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과 그 물결의 흐름을 아는데는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된다. 귀찮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세이프티 퍼스트
우리는 확실하게 경험했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도록 만들기 위한 지난 수십 년간의 어떤 시도보다, 한 번의 강력한 팬데믹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더라도 손 씻기와 개인위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안전민감증으로 우리는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되었고, 안전과 위생은 우리의 중요한 욕망으로 부상했다. - P35

뉴 프레퍼
프레퍼란 재난과 사고가 닥칠 것을 우려해 일상생활 중에도 생존을 위해 스스로 대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 P80

팬데믹 세대
팬데믹 세대는 나이도 어리고 지위와 돈도 없지만 온라인에서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강력하다...그들의 세력화는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고, 미닝 아웃을 통한 적극적인 소비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 P173

욜리(You Only Live for Yourself)
한 번뿐인 인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인생은 자기 힘으로 살자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살기보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 자신이 편한 관점에서 살자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195

피시(Financial Independence Sustainable Hobby)
경제적 독립을 이루려면 돈도 잘 벌고, 투자도 잘하면서 잘 관리하는 것이 필수다. 이렇게 확보한 경제적 기반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취미를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자는 것이다. - P196

메타버스
3억 5000만 명이 존재하는 메타버스 공간은 그 어떤 플랫폼보다 강력하다. 오죽하면 넷플릭스의 CEO가 넷플릭스의 라이벌은 디즈니가 아니라 포트나이트라고 했을까. 강력한 소셜 플랫폼은 좋은 콘텐츠만큼 중요한 무기다. - P290

서스테이너블 라이프(Sustainable Life)-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서스테이너블 라이프는 우리의 일상과 소비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삶의 관점과 태도가 되었다. 그리고 비즈니스에서도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는 필수 경쟁력이 되었다.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바로 공존 때문이다. ...많은 이가 전염병의 실체와 생태계 파괴, 기후 위기 문제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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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24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각자도생이지만 거대담론을 논해야할 때라는것에 공감해요. 뽑아주신 명칭들 두 개 빼고 다 완전 낯설어 궁금ㅋㅋ🙄 욜로아니고 이제 욜리네요!

페넬로페 2021-02-24 22:57   좋아요 2 | URL
네, 우리 모두 공존하기위해 노력해야 할 듯해요^^이 책에 나오는 새로운 용어들을 알아가는게 재밌어요.
뭔가 트렌드를 좀 아는 느낌!

scott 2021-02-24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그러네요 요즘 뉴노멀,뉴노멀이라고 전부들 한마디씩 하는데 페넬로페님이 적어주신 트렌드 용어 입에 착착 감기게 외워야쥥 근데 전 태생적으로 욜리 같이 살아서 솔직히 요즘 넘 편해여 ^.~

페넬로페 2021-02-25 00:41   좋아요 2 | URL
저는 전에는 트리플 A형처럼 살았는데 많이 바뀌었어요.요즘은 맘편히 살려고해요~~욜리에 가깝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