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보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가 있다. 내가 읽은 책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중의 한 명은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작가라면 그 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그 이름만 듣고 슈테판 츠바이크를 흠모해 왔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셈이다.

 

이 책을 3분의 2 정도 읽었을 때, 책의 내용과 제목이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 작가들이 거의 그렇듯이 슈테판 츠바이크도 많은 비유와 고전의 인용으로 이루어진 격정적인 문장으로 인물의 감정과 내면을 서술한다. 그러나 롤란트(이 책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이름이다), 교수, 교수의 부인과의 얽힌 관계가 시작되자 혼란스러운 감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욕망에 대한 것도 생각하게 했다. 육체의 욕망이란 감정의 산물인지, 아님 욕망으로 인해 복잡한 감정이 생기는지 결정하기 어렵지만 서로 깊은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감정의 혼란60살이 된 주인공 롤란트의 회고로 시작된다. 베를린에서의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공부하러 간 롤란트는, 영어영문학 첫 수업에서 자신의 인생에 거의 전부일 정도로 영향을 끼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의 부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선생님은 그에게 강렬한 지성의 세계를 열어주었다면 그 아내는 건강한 신체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미묘한 관계에 있는 선생과 그 부인은 롤란트를 육체의 대상으로 보며, 서로에게서 롤란트가 벗어나기를 원한다.

 

사상이나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 욕망의 발산 역시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성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며 방황하는 교수의 삶은 지극히 불행하다. 그 아내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결정되는 운명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한 번씩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 감동하기도 한다. 롤란트가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의 영어영문학 첫수업에서 들은 강의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것이다. 작년에 집중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그의 작품이 훌륭한 것은 알지만 온전히 빠질 수는 없었다. 아마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바로 나에게 전달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의 작품이 인간의 원형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감정의 혼란을 읽으며 롤란트가 첫수업에서 들은 강의의 감동을 나도 고스란히 받았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에 열광하는 이유를 잘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는 기쁨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수가 롤란트에게 한 키스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은 그의 격정적인 문체와 함께 나를 소설 속으로 끌어당기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 끝까지 한마디로 정리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자 읽는 소설의 목적은 달성된 것 같다. 다음엔 평전으로 유명한 그의 문장을 읽어야겠다

 

그때까지 나는 그 사람 이외에 그토록 감격에 빠져 진실하게 마음을 끌며 강의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라틴어로 ‘랍투스(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황홀한 심리적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부르는 것, 즉 한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이끌려가는 상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 P38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인 동시에 모든 세대의 정신적 진술이자, 열정적으로 변모한 시대의 감각적인 표현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잉글핸드의 그 위대했던 시간을 단 한 번뿐이었던 황홀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P39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4-05 0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책 마지막 부분에 츠바이크 유서도 들어 있나요??그렇다면 더더욱 결말이 슬퍼지네요 ㅜ.ㅜ 츠바이크는 평전! 평전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

coolcat329 2021-04-05 09:03   좋아요 4 | URL
정말 정말 동감입니다!

페넬로페 2021-04-05 10:50   좋아요 3 | URL
네.유서가 있더라구요~~
집의 책장 보니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세 권이나 있네요^^그의 평전을 빨리 읽어야겠어요**

청아 2021-04-05 0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페넬로페님~♡ 읽으셨군요!!
저 자려고 누워서 북플 들어왔다가 이 리뷰읽고 또 소름요! 셰익스피어에 관련된 표현들 저도 다 밑줄쳤어요ㅋㅋ
리뷰 볼때마다 계속 감동이 살아납니당ㅋㅋ!

페넬로페 2021-04-05 10:53   좋아요 2 | URL
미미님 덕분에 이 책 읽게 되었어요. 생각은 많은데 글로 쓰기가 너무 어렵네요 ㅠㅠ
결국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은 셈인데 참 좋았어요^^

새파랑 2021-04-05 0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감정의 혼란을 준 책인데 ㅋ 전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이번주에 목표로 준비중입니다 ㅎㅎ 페네로페님의 리뷰 마지막 부분의 소설을 읽는 목적에 완전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04-05 10:56   좋아요 3 | URL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목처럼 감정의 혼란을 느꼈는데 결말은 예상한대로 흐르더라고요^^

바람돌이 2021-04-05 0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려고 누워서 잠시 마지막으로 댓글보다가 이 글을 보네요. 세익스피어 강의 저도 참 강렬하던데 문제는 제가 새익스피어에 도저히 공감이 안간다는... 원어로 읽으면 다르겠지만 그건 저의 능력밖이니.... ㅠㅠ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소설읽기에 저도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04-05 10:59   좋아요 3 | URL
정말 그렇죠! 저도 셰익스피어를 어렵게 읽었어요. 영어 전공한 분 도 그의 작품에 고어가 많아 읽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구요~~그냥 스토리와 느낌을 따라갈수밖에요^^

coolcat329 2021-04-05 09: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많이들 읽으시네요~^^

페넬로페 2021-04-05 11:01   좋아요 4 | URL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다른 책에 계속 밀렸는데 미미님 리뷰보고 그냥 시작했어요 ㅎㅎ~~그의 다른 책도 읽어보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