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님은 이때부터 현빈에 진심이셨던 것이다.. ㅎㅎㅎ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중 “우아한 연인” 꼭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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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8 1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진심 다락방님이죠 ㅋ 독서괭님 이책 시작하셨군요~!!

독서괭 2021-11-19 10:48   좋아요 1 | URL
저번 페이퍼에 쓴 <독서공감> 중 읽은 책에 관한 꼭지 먼저 읽었고, 이번에 <우아한 연인> 읽었기 땜에 그부분만 찾아 읽었어요^^

다락방 2021-11-18 18: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끄럽기 짝이 없네요. 이게 뭔일이래요? 😱

독서괭 2021-11-19 10:49   좋아요 1 | URL
<우아한 연인> 읽고 이 꼭지 찾아 읽다가 마지막 현빈에서 막 웃었어요 ㅎㅎㅎ

수이 2021-11-18 1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요. 역시 저때부터 현빈이었군요.

독서괭 2021-11-19 10:49   좋아요 0 | URL
ㅋㅋㅋ 현빈 찐팬 인증. 다락방님은 정말 귀여우십니다.

단발머리 2021-11-18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거의 저 때부터 …..
현빈이었어요 🤭🤭🤭
다락방님, 찌찌뽕!!!

독서괭 2021-11-19 11:01   좋아요 0 | URL
오 단발님도~~ 저는 현빈이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왔을 때가 젤 좋았어요. 그 뒤에 너무 살이 빠졌.. ㅠㅠ

얄라알라 2021-11-18 2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전 나름 다락방님 팬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뭐랍니까? 저 북플 헛 클릭질하고 다닌 건가요? 독서괭님 덕분에 다락방님께서 이미 8년전에 내신 책을 이제서야 알다니요!!!!

독서괭 2021-11-19 11:02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 팬으로서 좀더 분발하셔야겠습니다 ㅎㅎㅎㅎ 얼마전 새파랑님이 이 책에 쓰신 리뷰 읽어보시고 구매를 추천합니다~^^

그렇게혜윰 2021-11-19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알게되네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11-19 11: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일관성이 있으신 것 같아요. 현빈 이후 그를 뛰어넘을 자가 여태 없다는 것이 슬픈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ㅋㅋ

건수하 2021-11-19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여전히 현빈을 좋아하시는건가요? ㅎㅎ

다락방 2021-11-19 10:02   좋아요 1 | URL
아... 아니... 뭐... 딱히 그렇다기 보다는.... 그러니까.........그게 아니고........

=3=3=3=3=3=3=3=3=3=3=3=3=3=3=3=3=3=3

독서괭 2021-11-19 11:03   좋아요 0 | URL
수하님, 찾아보시면 다락방님 얼마전 페이퍼에도 현빈이 등장한답니다 ㅋㅋ
 



이유경작가님의 이 글, '오지라퍼'라도 괜찮아-는 세상에 오지라퍼가 얼마나 필요한지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려준다. 사실 이 글에 나온 에피소드는 결과적으로는 꼭 필요하지 않은 오지랖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에피소드를 요약하면 이렇다(지금 책이 다른 데 있어서 기억에 의존).

네 살가량 여자아이가 보호자 없이 혼자 있다는 걸 깨달음 -> 불안하지만 오지랖이다 여기고 그냥 감 -> 그 아이와 닮았는데 좀더 큰 여자아이가 울면서 "동생 찾아올게!" 외치는 말을 들음 -> 으악 길 잃은 거잖아! 싶어 큰아이를 따라감 -> 동생을 찾았길래 한마디 해주고 싶어서 "동생 잃어버려서 많이 놀랐지?" 했는데 큰아이가 "그게 아니라, 오빠한테 사과하러 가야하는데 동생도 데리고 가야해서요. 친오빠는 아니고요."라고 함 -> 아니 대체 친오빠 아닌 그 오빠한테 왜 사과하러 가는거지?? 의문에 휩싸인 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감 -> 놀이터에서 만난 그 오빠들은 별로 무시무시하지 않았고.. 동생이 먼저 욕해서 사과를 요구하던 중이었다 -> 당황하던 와중 아이들 엄마가 나타나 사건 종결 


작가님이 없었더라도 사건은 그대로 흘러갔을 테고 엄마가 마무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그래도 우리가 위험한 줄 알고 따라와준 어떤 어른이 있었다고 기억하지 않을까?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을 것 같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위험이 닥쳤다면, 어른 한명의 관심은 아이들의 생명을 구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원제: Before We Were Yours)는 가슴 아픈 실화를 담고 있다. 1920년대부터 1950년까지 '조지아 탠'이라는 미국 여성은 미국 테니시주 멤피스에 테네시 보육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보육하다가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보냈다. 하지만 실상은 아동매매였다. 그녀는 빈곤층 부부 등을 상대로 서류 내용을 속여서 서명하게 하거나 협박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빼앗아 갔다. 조지아 탠은 정치인 등 유명인들과 가까웠고, 심지어 멤피스 가정법원의 카밀레 켈리 판사는 이혼 가정 엄마의 친권을 금지하면서 아이들을 탠의 시설로 보내는 방법으로 이 범죄행위에 가담했다. 그러나 조지아 탠은 합당한 처벌을 받기도 전에 암으로 사망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사건 종결을 원했기 때문에 그대로 종료됐다. 


관련 블로그 글 참조: https://kingshandle.tistory.com/547


소설은 1939년과 현재(아마도 2016년 내지 2017년?)를 오간다. 1939년 강가에서 살던 일가족은 끔찍한 위기에 처한다. 엄마가 출산 중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아빠는 다섯아이를 집에 두고 엄마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부모가 떠난 집에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들이닥쳐 다섯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엄마아빠를 보러 병원으로 가는 거라고 믿지만, 도착한 곳은 테네시 보육원. 순식간에 그들은 고아가 되어버렸고, 영문을 모른 채 보육원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간다. 당시 열두살이었던 릴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 보육원 이야기가 너무 힘들어서, 소설이 정말 재미있음에도 자꾸 중단하게 된다. 릴은 동생을 하나둘 빼앗긴다. 보육원에는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악마도 살고 있다... 

그 와중에 보육원에 새로 일하러 온 젊은 여성이 릴의 이야기를 듣고 밖에서 릴의 부모를 찾아내 연락한다. 실낱같은 희망. 이미 동생 셋을 잃은 릴은 남은 동생 한명을 데리고 가기 위해 탈출의 기회를 미룬다... 아아ㅏ아.. 미뤄버린 탈출의 기회는 이제 다시 오지 않아 ㅠㅠ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네 ㅠㅠㅠ 이 대목에서 또 힘들어서 중단. 


그러나 그 젊은 여성의 오지랖은 얼마나 큰 일을 했는가.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눈감고 귀 막고 그저 돈 받고 일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면, 아니면 조금만 이기적이었다면, 조금만 동생을 덜 사랑했다면, 그녀로 인해 릴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오지랖.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오지랖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남의 집 애‘라는 말이 좋았다. 그러면 나는 ‘남의 집엄마‘ ‘남의 집 아빠‘ ‘남의 집 이모 삼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좋아하고 샘내고 안심하고 걱정하면서 ‘남의 집 애’를 같이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어떤 어린이의 ‘남의 집 할머니‘도 될 수 있다. 어린이의 초콜릿을 지퍼백에 넣어 주고, 어머니에게 어깨를 빌려 드리면서 나도 한몫을 할 수 있다. 양육자가 아니어도 ‘남의 집어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엄마가 된 친구와 나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간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자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내가 가있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어른은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 <어린이라는 세계>, 181쪽



<어린이라는 세계>, 이 책이 특별히 좋았던 이유는 엄마로서가 아니라,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남의 집 어른'으로서도 '다른 집 어린이'를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어린이들에 대한 책임을 양육자(특히 주 양육자, 대부분 엄마)에게만 돌리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양육자를 비난하고, "코로나로 인해 돌밥, 힘들다"는 호소에 "지 자식 밥 차려주는 것도 힘들다고 난리냐 ㅉㅉㅉ"하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이 세상에는 자기 자식이, 자기 조카가 아니라도 어린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해주는 어른들이, 오지랖이라고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라도 손 내밀 준비가 되어있는 어른들이 있다고. 


그러고보니 나도 몇달 전 오지랖을 부려본 일이 있다. 

퇴근길에 늘 지나가는 빌라단지 옆 골목에서, 아이 둘이 있다가 한 명이 썡 빌라로 달려가고 한 명이 남아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결국 가서 물어보니, 다리를 다쳐서 못 걷겠다고 했다. 곧 돌아온 다른 한 명이 형이라고 했다. 집에 갔다 왔는데 엄마가 못 나오니 둘이 알아서 오라고 했다고. 다친 동생쪽이 덩치가 더 컸고, "아줌마가 업어줄까?"했다가 거절당해서, 형인 아이와 내가 양쪽에서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다쳐서 못 걷는데 집에서 나올 수 없는 엄마는 어떤 상황인 걸까. 아직 어린 동생이 또 있는 걸까,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이 있는 걸까, 본인이 몸이 불편한가.. 아무튼 집 앞에 무사히 갔고 형은 깍듯하게 내게 인사를 했다. 

퇴근길 그 빌라단지를 지날 때마다 그 아이들 생각이 난다. 다리는 잘 치료했겠지, 잘 지내고 있겠지. 아이들도 나를 떠올리기도 할까? 가끔은 나를 떠올리며 "그때 지나가던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를 도와줬지.", 그렇게 어른에 대한 믿음을 지탱해 줄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세상의 오지라퍼들이여! "잘 살고 있는 비혼자들에게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 명절 친척들"의 모습으로 '오지라퍼'의 의미를 축소시키지 말자. 세상을,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오지라퍼다. 출동, 오지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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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1-15 14: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유경 작가님도 독서괭님도 너무 멋지세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마음이 막 반짝반짝 빛나네요!!
오지라퍼가 세상을 구원하리니!!!!

독서괭 2021-11-15 15:42   좋아요 1 | URL
사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갑자기 고백) 애를 낳고나니 다른 애들도 예쁘게 보이더라구요. 나이들면서 친구의 아이, 동생의 아이 등 가까운 아이들이 생기다 보면 점점 모르는 아이들도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 같아요. 오지라퍼 화이팅!!

mini74 2021-11-15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온 동네가 키우던 때가 있었죠. 독서괭님 착한 오지라퍼! 👍 맘이 넘 예쁘세요 ~ 예전엔 동네아줌마들 할머니들 이해가 안됐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 관련해선 저도 오지랖을 떨게 되더라고요 ㅎㅎ 이제 그때 어른들이 이해가 됩니다 *^^*

독서괭 2021-11-15 15:44   좋아요 1 | URL
지금도 동네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르더라구요. 예전에 소규모 단지에 살 때는 서로 인사하고 아이들 데리고 같이 놀고 그랬는데 대단지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좀 냉담한 분위기라 아쉬울 때가 있어요. 저도 이제 예전 어른들이 이해가 되면서, 과거 쌩했던 자신을 반성하곤 합니다^^;;

다락방 2021-11-15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 독서괭 님의 글만으로도 너무 아파서 저는 읽을 생각을 못하겠네요. 아니, 저걸 어떻게 읽으셨어요 ㅠㅠ 진짜 애들한테 나쁜 행동 하는 사람들 너무 싫어요 진짜 싫어요. 아 저 소설 책 내용 너무 싫으네요 ㅠㅠ

독서괭 2021-11-15 15:45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이거 쓰면서 다락방님이 절대 못 읽겠다고 하시겠다 싶었어요. 묘사를 자극적으로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읽으며 힘든지 모르겠어요. 실화라 그런가.. 저도 이럴줄 모르고 잡은 거라..ㅠㅠ 근데 중도에 그만두면 더 찜찜할 것 같아 끝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으...

잠자냥 2021-11-15 16: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이런 책들을 이렇게 연결지어 쓰신 글 참으로 멋집니다요.
그나저나 정말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오지라퍼가 꼭 필요하죠. 다부장님 같은. ㅎㅎ

독서괭 2021-11-15 17:08   좋아요 2 | URL
앗 저도 이유경님 글 읽으며 다부장님을 떠올렸는데 이런 우연이..! 찌찌뽕!ㅋㅋㅋ

다락방 2021-11-15 17:11   좋아요 2 | URL
다부장님 만세만세 만만세!!

=3=3=3=3=3=3=3=3=3=3=3=3=3

독서괭 2021-11-15 17:19   좋아요 2 | URL
다부장님 자아분열의 현장 ㅋㅋㅋ

2021-11-15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6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 보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세 권 갖게 되었다. '3기니'와 함께 실려 있는 두툼한 민음사판 <자기만의 방>이 첫번째, 민음사 쏜살에선 나온 얇은 판 <자기만의 방>이 두 번째, 열린책들 Noon세트에 포함된 것이 세번째.


민음사판 두 권은 번역자가 동일(이미애)하고 열린책들판은 공경희 번역이다. 읽는 건 이번이 2.5번째인데(민음사판으로 1번 완독 후 재독할 때 절반 정도 읽어서^^;) 이번에 어쩐지 더 잘 읽히는 것 같아 번역을 비교해 보니 차이가 있다. 거의 모든 문장이 미묘하게 다르고 확 다른 부분도 있다. 특히 공경희 번역이 단문을 더 많이 사용하고 좀더 구어체에 가깝게 해서 읽기가 매끄러웠던 것 같다. 


번역 비교를 위해 서론 부분을 인용해 본다.


그러나 그중 가장 흥미롭게 보이는 이 마지막 방법으로 그 주제를 고찰하기 시작하자, 거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연자의 첫 번째 의무를 완수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한 시간의 강연이 끝난 후 여러분의 공책 갈피 속에 숨겨진 채 벽난로 위 선반에 영원히 보관될, 순수한 진실의 알맹이를 전달해 주어야하는 임무를 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견해로는 여성의 진정한 본성과 픽션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크나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 둘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두 가지 문제의 결론에 도달해야 할 의무를 회피했고 따라서 나에게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는 셈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라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방과 돈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지 최선을 다해 보여 주겠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사고의 궤적을 여러분 앞에 될 수 있는 대로 충실하고 자유롭게 개진할 것입니다.    - 민음 쏜살판, 18쪽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마지막 관점에서 주제를 고심하기 시작하니 곧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리란 점이지요. 한 시간의 토론이 끝나면, 강연자가 알려준 순수한 진실 덩어리가 여러분의 공책 갈피에 담겨 영원히 벽난로 선반에 꽂혀야 합니다. 그게 강연자의 첫 번째 의무지만 난 그러지 못할 터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해봐야 사소한 부분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정도였습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된다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여성의 본질과 소설의 본질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미제로 남깁니다. 나는 이 두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의무를 회피해 왔습니다. 내게 여성과 소설은 풀리지 않은 문제들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간 벌충하기 위해 어떻게 이 방과 돈에 대한 견해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힘껏 밝혀 보겠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최대한 온전하고 자유롭게 이 생각에 이른 맥락을 짚어 보겠습니다.   - 열린책들판, 8쪽



민음사판은 두 권이니 하나를 처분할까 싶었는데, 두꺼운 책은 '3기니'가 함께 실려 있으니 안 되고, 쏜살은 앞에 실린 이민경의 추천의 말이 좋아서 소장각.. 그냥 끌어안고 살아야겠다. 


『자기만의 방』에서 그랬듯이, 모든 페미니스트는 자신이 딛고 선 삶의 틈바구니에서 또 다른 삶을 퍼 올린다. 때로는 아직 오지 않은, 때로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어떤 여성 혹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삶, 자기만의 방을 가지거나 가지지 못했거나 여성은 쉼 없이 상상했다. 각자가 피워 올린 허구에 현실이 화답하는 일이 과연 찾아올지, 만약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언제일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허구에 빚진다.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삶 역시 그랬다.   - 쏜살판, 6, 7쪽(이민경 추천의 말)


 얼마전 읽은 <올랜도>의 작품 해설에서 <올랜도>가 <자기만의 방>의 소설 버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이번에 <자기만의 방>을 재독하게 됐다. <올랜도>는 1928년, <자기만의 방>은 1929년에 출간되었다. <올랜도>를 읽게 된 것은 같은 해인 1928년에 출간된 래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을 읽었기 때문이다. 해설에서 이 책을 <올랜도>와 비교하길래 읽게 되었다. 이렇게 꼬리를 무는 독서는 흥미롭다.

 이번에 <자기만의 방>을 재독하니 <올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조금 감이 잡힌다. <올랜도>는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 리뷰를 쓰기는 어려운 작품이라 백자평만 썼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통해 보여준 이상적인 소설가의 마음- 성별을 의식함으로써 야기되는 분노와 비탄에 휩쓸리지 않고 양성의 장점을 모두 가지는 -을 '올랜도'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로 형상화 한 것이다. <올랜도>는 주인공 올랜도가 '참나무'라는 한편의 시를 완성해 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그는 성별이 바뀌기도 하고 신분이 바뀌기도 하며 300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관통해 나간다. 




<올랜도>는 성별이 바뀌는 실험을 행한다는 점에서 성역할 고정성을 깨는 면이 있고 퀴어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현실의 퀴어 문제를 다루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고독의 우물>이 FTM(트랜스남성)의 삶, 그가 겪는 실존의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나간 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고독의 우물> 리뷰:  

https://blog.aladin.co.kr/703039174/12922963











얼마전 본가에서 챙겨 온 오래 묵은(안 읽은 채) 책들 중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책>이 눈에 띄어 목차를 보니, '여성' 항목의 두 번째에 <자기만의 방>이 자리하고 있다. 

첫번째는 메리 울스턴그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 세번째는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네번째는 저메인 그리어의 <여성, 거세당하다>, 다섯번째는 알리스 슈바르처의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다. 음 자기만의 방 외에 읽은 게 없군...


















울프 관련 책으로 읽고 싶어 찜해둔 책은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과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3기니'를 읽으려면 <카탈루냐 찬가>를 먼저 읽는 게 좋다는 말에 읽고 3기니 재독하려고 사놨는데 못 읽는 중. 

오래 묵혀 둔<댈러웨이 부인>부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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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9 13: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3기니 이니까 <자기만의 방>을 세권 가지고 있어야죠 ^^
저는 이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 이번에 저도 다시 읽어보려고요.

전 댈러웨이 부인하고 카탈르냐 찬가 아주 좋게 읽었어요 ^^ 이제 눈 세트 얼마 안남으셨겠어요~!!

독서괭 2021-11-09 13:34   좋아요 6 | URL
3기니이니까 세권?? 와 이런 신선한 해석이! 세 권 가지고 있음이 마땅하네요. 마음이 편안해졌어요ㅎㅎ
열린책들 공경희님 번역이 좋더라구요. 덜 어렵게 느껴졌어요.
저 눈세트는 <자기만의 방>이 처음입니다^^;; 이제 시작. 얇아서 금방금방 읽을 것 같지만 아니라는...!!ㅜㅜ

scott 2021-11-09 13: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괭님 울프 인용구문 부터 자기만의 방 출판본 번역 비교까지 읽으니 역자에 따라 느낌이 다르네요 저도 집중해서 읽는 작품들중 다양한 판본을 갖고 있습니다 울프여사의 댈러웨이 부인 강추!여성권리 옹호도 필독 ^^

독서괭 2021-11-09 13:35   좋아요 5 | URL
두분 다 댈러웨이 부인 좋았다고 하시니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여성권리 옹호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저 다섯권 모두~^^
전 다양한 판본을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자기만의방을 세권이나 갖게 됐네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스콧님 서재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책이..!!

다락방 2021-11-09 13:56   좋아요 5 | URL
스콧님은 댁에 소장하고 계신 책이 몇 권이나 되나요? 일단 3천권은 넘기실 것 같은데요!

독서괭 2021-11-09 14:30   좋아요 3 | URL
스콧님 소장량 진짜 궁금해요 ㅎㅎ

다락방 2021-11-09 14: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해전에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과 3기니 읽고 아 사람들이 왜 버지니아 울프를 그렇게나 외치는지 알겠다.. 뒤늦게 생각했어요. 저는 대학졸업하고 나서였나 여튼 이십대 중반즈음에 댈러웨이 부인 너무 책장 안넘어가서 미치는 줄 알았거든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그때 처음 읽었는데 그거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서 그 뒤로 버지니아 울프를 아예 멀리했어요.

몇해전에 버지니아 울프 좋아한다고 하셨던 알라디너 분 활동하실 때도 아 그렇구나 하며 관심도 갖지 않았었는데, 최근에야 자기만의 방과 3기니 읽고 아아 나 바보 나 똥멍충이.. 바보바보바보바보 했었답니다. 댈러웨이 부인을 지금 읽게 되면 저도 재미있게 읽게 될까요? 올랜도 사두었는데 댈러웨이 부인은 저는 아무래도 다시 시도를 못하겠어요. 그 때 진짜 너무 지루했어서..

아 저 등대로 도 가지고 있으니 등대로나 올랜도로 다음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야겠어요. 독서괭 님, 우리 울프 화이팅!!

독서괭 2021-11-09 14:35   좋아요 6 | URL
아휴 다락방님의 다정한 댓글 너무 좋네요♥
저도 이십대 중후반 쯤에 댈러웨이 부인 사서 읽으려다 몇장 못 읽고 놓은 후 여태 못 읽고 있습니다;; 그땐 왜이리 읽기 힘들어 했는데 이제는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전에 ‘라디오북클럽‘에서 최민석 작가가 댈러웨이 부인을 소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들으니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이번에 <자기만의 방>을 재독하면서 아 정말 울프 글을 잘 쓰는구나,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등대로>는 단발머리님이 많이 어렵다고 쓰신 글을 본 것 같은데..!! 그래서 등대로 살까 하다가 그냥 있는 댈러웨이 부터 읽자로 된 거거든요. ㅎㅎ 다락방님은 이십대에 비해 지금은 독서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셨을테니 괜찮지 않을까요??
함께 울프에 도전해요~ 화이팅!! >ㅁ<

mini74 2021-11-09 14: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방 세 칸짜라 집 마련하신겁니까 감축드리옵니다 ㅎㅎ 전 등대로 읽었고ㅠㅠ < 세월>에서 길을 잃은 ㅠㅠ 자기만의 방 읽어야 하는데 그러고 있습니다 ~ 그 와중에 독서괭님 고독의 우물 보며 군침을 ㅎㅎㅎ ~

독서괭 2021-11-09 16:12   좋아요 6 | URL
으아 <세월>은 더 어려운가 봅니다 ㅜㅜ <등대로>는 읽어내셨군요! 그렇다면 <자기만의 방>은 쉽게 읽으실 겁니다. 소설보다 에세이가 쉬운 것 같아요.
<고독의 우물> 두 권이라 분량이 상당하지만 재미있으니 꿀꺽 하세요~^^

건수하 2021-11-09 19: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3기니> 얼마전 새로 나온거 샀는데, 카탈루냐 찬가를 읽으면 도움이 되는 군요! (메모)

저는 <파도>도 넘 어려웠어요..

독서괭 2021-11-09 23:01   좋아요 2 | URL
오 찾아보니 문지에서 <3기니>가 새로 나왔군요! 저는 3기니에는 크게 감흥을 못 느꼈었는데, 어느 분이 스페인내전을 알고 보면 훨씬 흥미롭다며 <카탈루냐 찬가>를 추천해주셨어요.
<파도>도 어렵군요… 어려운 당신, 울프…

페넬로페 2021-11-09 20: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찌어찌해서 자기만의 방이 세 권이 되었어요. 열린책들 빨리 읽어야하는데 공경희 번역가의 글이 기대되네요~~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저는 정희진 작가의 책보다는 자기만의 방이 훨씬 좋았던 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09 23:03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도 세권 가지고 계시다니 으하하 반갑습니다^^ 열린책들로 어서 만나 보세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전 전자책으로 보다가 하도 하이라이트를 많이 해서 에라 종이책으로 사자 하고 샀는데 못 읽고 있네요^^;;

그레이스 2021-11-09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3권 정도 있는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09 23:45   좋아요 1 | URL
아니, 그레이스님도?!! 하이파이브 한번 하시죠(손)!

그레이스 2021-11-09 23:46   좋아요 0 | URL
🤚

공쟝쟝 2021-11-13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쏜살로 읽었고 그거 한권 있어요. 진짜 좋았는 데, 이민경님의 추천사 첫 페이지부터 오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아, 열린책들 번역 좋다시니 찾아볼래요. 그러나저러나 댈러웨이부인은 나만 힘든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합니다. 몇번 포기했다가 언제고 다시 읽으려고 드릉드릉 중인데, 또 댈러웨이 부인이 엄청 많잖아요? 어느 번역이 좋을까요? (여기서 물어보면 답이나온다는 듯이)

독서괭 2021-11-13 01:05   좋아요 2 | URL
이민경님의 추천사 참 좋더라구요. 열린책들 번역이 제게는 쉽게 다가왔어요! 댈러웨이부인은 어려운 책들 척척 읽어내시는 분들까지 포기하데 만드는가 봅니다.. 아 과연 읽을 수 있을 것인가..<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샀으니 도움이 좀 되겠죠?
여기서 물어보시면 답이 나올까요? ㅋㅋㅋ 저는 열린책들로 갖고 있는데 번역이 좋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단발머리 2021-11-14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책> 제목이 약간 올드한데 그래도 확 관심이 생기네요 ㅎㅎ 알리스 책 읽은 것이라 한 번 더 반갑고요^^

독서괭 2021-11-14 10:21   좋아요 1 | URL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 이런 책 유행할 때 나왔던 것 같아요ㅋ 이런 책은 목록이 중요하지 내용은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이 읽으신 단발님^^
 




1964년, 만 18세의 여성 A씨는 집 앞에 찾아온 어떤 남자로부터 집요한 요구를 받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갑자기 돌변해 A씨를 쓰러뜨리고 키스를 하려고 했고, 도망가려는 그녀를 세 번이나 붙잡고 쓰러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A씨는 실랑이 끝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남자의 혀를 깨물어 그 혀가 일부 절단되었다. 며칠 뒤 남자는 A씨가 자신의 혀를 끊었다는 이유로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녀의 집에 침입하여 식칼로 A씨의 아버지를 죽인다고 위협했다."(36쪽) 성폭력범이 오히려 흉기를 들고 찾아와 협박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뒤 벌어진 일은 더 당황스럽다. "남자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른 A씨를 중상해죄로 고소했고, 경찰은 그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했으나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검찰은 A씨 행위가 과잉방위라면서 그녀를 중상해 혐의로 기소하고 구속했다."(37쪽)

 법원의 판단 내용은 더욱 당황스럽다. 


법원은 A씨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하여 강제키스로부터 처녀의 순결성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젊은 청년을 일생 불구로 만들었고, 사춘기의 처녀가 범행 장소까지 자유로운 의사로 따라간 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이며, 이는 남자로 하여금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법원은 A씨가 소리를 질러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였다.  - 37쪽

형량은? A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남자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가 더 중한 형을 받은 것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재판과정에서 '어차피 이런 험한 일 당한 처녀가 혼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남자도 불구의 몸으로 혼인이 어려울 것이니 둘이 혼인하라'는 설득이 지속되었다고 한다"는 부분이다. 오 마이 갓... 


다행스럽게도 1988년 일어난 유사한 사건에서는 1심이 여전히 혀를 절단한 여성에게 유죄를 선고한 데 반해 2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인정하였다. 정당방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64년도 사건의 피고인이자 피해자인 A씨는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는 용기를 냈다. 

관련기사 링크 - https://www.yna.co.kr/view/AKR20200504115000051

그녀는 "나의 재심 청구로 아직 용기 내지 못한 여성이 당당하게 사실을 밝히고 상처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2월 부산지법은 재심청구를 기각했고, 지난 9월 항고심도 항고를 기각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8324

재심은 워낙 법률에 정해진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허용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아쉬운 결론이다. 그래도 A씨가 내 준 용기 덕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잊혀졌던 피해자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2017년, 택시 기사인 여성 B씨(67세)는 승객으로부터 추행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던 그 승객은 해임처분을 받았다. 교감은 해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했다. 1심 재판부는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서, 그 이유로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이고, 진술 내용상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31쪽 참조).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하다거나 상대적으로 고령인 점 등을 내세워 사안이 경미하다거나 비위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가볍게 단정 지을 것은 아니다"라면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yna.co.kr/view/AKR20200108129400004


최근에는 여성 버스기사들에 대한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서 버스회사 대표이사와 회사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은 성희롱 피해에 대한 사후조치에 대해 논의하다가 "내가 앞으로 과부는 절대 안 뽑는다.""여자들은 안 쓴다"는 발언을 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2349



64년도 법원의 '황당 판결'은 그저 이상한 개인이 내린 판단이 아니다. 당시 시대가 여성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88년도 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것은 시대가 그만큼 변했다는 것이다. 2017년 교감해임처분 사건 2심을 맡은 고등법원에서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은 수치심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은 여전히 사회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중년 남성들의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대법원에서 그 판결을 파기했다는 것과 2021년 버스기사 성희롱 사건에서 사측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는 것은 법원이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저자가 서문에 쓴 이야기는 옳다. 우리는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여성들의 싸움은 돌을 굴려 산 정상에 올려놔도 내일 다시 또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절망과는 다른 것이다. 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같은 싸움은 없다. 포기하지 않은 싸움에는 늘 한발 전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 12쪽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

 "(...)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 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손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 <피프티 피플> 380,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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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03 16: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2쪽 인용문이 의미 있네요.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독서괭 2021-11-03 17:33   좋아요 4 | URL
같은 싸움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계속 힘내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scott 2021-11-03 17: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처벌이 더 강해 져야 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강력 처벌과 엄벌의 의지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

독서괭 2021-11-03 20:23   좋아요 4 | URL
넵 예전엔 범죄라고조차 제대로 인식이 안 되었던 행위들에 대해 제대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감시와 예방을 철저히 해야하겠습니다!!

새파랑 2021-11-03 1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사건 아주 예전에 영화인가 드라마로 본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지금이 예전보다는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독서괭 2021-11-03 20:29   좋아요 3 | URL
오 보셨군요. 전 영상으로 못 봤어요. 나아진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1-11-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3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11-03 2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과 비슷한 시기로 기억하는데 [왕진가방 속의 페미니즘] 이라고 추혜인 의사가 쓴 에세이가 있거든요. 혹시 독서괭님 벌써 읽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주 오래된 유죄는 변호사, 왕진가방 속의 페미니즘은 의사. 이렇게 나와서 막 그 자체로 신났더랬어요. 여성들이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써주는 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씐나서 두 권을 다 읽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추혜인의 책이 좀 더 좋았어요. 이건 읽고 엄마와 여동생에게도 읽어보라 주었는데 여동생은 엄청 밑줄 그으면서 읽더라고요.

최근에 독서괭님도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시고 계시잖아요. 그거 너무 좋아요. 어떤 책이든 부지런히 읽고 그에 대한 글을 부지런히 쓰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합시다, 독서괭 님!!

독서괭 2021-11-03 20:43   좋아요 3 | URL
아 그 책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소개하는 거 듣고 담아둔 지는 오래됐는데 아직 못 읽어봤네요~ 두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군요. 왕진가방이 더 좋으셨다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근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자꾸자꾸 해야 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력 중입니다. 북플이 큰 자극이 돼요. 다락방님처럼 열심히 읽고 쓰는 분들 느릿느릿 따라가며 즐겁습니다~^^ 함께 힘내요 다락방님!!

붕붕툐툐 2021-11-03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말씀에 완전 동의해요! 저 어린 시절에 비해서도 지금은 완전 나아졌다고 느껴요~ 어이없는 판결들을 보니 더욱 나아짐이 느껴집니다. 근데 저 피프티 피플 읽었는데 저 구절 너무 낯설어서 차암... 머리 속에 왕지우개가 있네용~

독서괭 2021-11-03 22:42   좋아요 2 | URL
최근 대법원이 특히 성 관련 문제에서 많이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백래시에 지지 말고 계속 나아가기를!
왕지우개 ㅎㅎㅎㅎ 저도 뭐 마찬가지라 그저 공감한다는 말씀만😝
 

와우 유부만두님 글 보고 혹했으나 절판이어서 알람 신청해 뒀었는데, 입고알람이 왔습니다!! 찜해 두었던 분들은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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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23 09: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전에 이거 중고에 올라온 거 보고 살까 했으나, 일단 프루스트부터 읽어!! 하고 꾹 참았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1-10-23 17:53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프루스트 먼저 읽는 건 요원해보여서 요걸로 안 읽고 아는척 하기 해보려구요😝